이번호 현장통신은 97년에 있었던 중요 산재문제를 중심으로,
97년 산재활동과 98년 산업안전보건활동의 방향을 검토해 보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중대재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98년의 상황은 경제위기와 맞물려
산재보험의 민영화, 기업의 제반 산재 규제조치들의 완화 등으로
더욱 어려운 여건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지난 10년간의
산재투쟁의 성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하고,
분명한 노동자 투쟁만이 상황을 돌파할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 장 통 신
산업안전보건활동의 평가와 98년 전망
모 진 희 / 금속연맹 산업안전부장
현장통신
산업안전보건활동의 평가과 98년 전망
97년 산업재해, 직업병 실태와 사건들
97년 재해통계는 아직 노동부에서 발표되지 않았다(96년
산재통계도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다만 98년
산재보험요율 인하를 발표하면서 산재발생률이 낮아진 것을
한가지 요인으로 밝혔기 때문에 산재발생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노동부의 통계는 사업장내에서
자체처리, 공상이라는 이름의 은폐된 재해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산재보상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에도 포함되지
않아 전체 재해통계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지적되어 왔으나
정부나 노동조합 어느곳에서도 별다른 재해통계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97년 10월 한국산업안전공단이 발표한
‘직업병 발생분석’자료에 의하면 그동안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했던 진폐증의 발생건수가 4분의 1로 감소한 반면
VDT증후군, 뇌혈관, 심장질환으로 인한 직업병은 820건에 달해
93년의 6건에 비해 무려 273배나 증가했다.
97년 투쟁은 96년 말부터 계속되어온 포항 건설노동자들의
망간중독 문제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금속산업에서 이루어지는
용접공정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노동자들에게 망간이 뇌에
침착되어 파킨슨씨 증후군이라는 치료불가능한 질병이
발생했다는 언론보도는 많은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용접작업이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조선소에서는 조금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너도 망간중독이냐?”는 농담이 오고 갈
정도였고 금속연맹에서 실시한 용접작업자 검진 사업결과
설명회에는 150여명의 작업자들이 참석하여 이 문제의 중요도를
짐작케 했다. 이 설명회에서 작업자들은 “저녁때가 되면 온몸이
아파서 식은땀이 흐른다. 기억력이 없어져 내 차의 번호를
외우지 못할정도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번도 특수검진에서는
이런 문제를 밝혀주지 않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하루라도
빨리 밝혀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며 직업병의 참담한
현실과 허구적인 제도를 증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동부는
용접작업이 많은 조선업종 등의 작업장에서는 과거의
작업환경측정과 건강검진 결과를 검토하고, 이중에서 망간과
관련된 작업환경측정과 임시검진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 임시검진을 실시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끝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물론 이 실태조사와 임시검진결과는 그후 어떤
곳에서도 속시원히 알려주지 않았다. 노동부는 96년 대우조선을
비롯해 금속연맹에서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 도장작업자들에게서
유기용제 중독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임시검진을
실시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그 결과를 노동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금속연맹에서는 부산지방청 항의방문, 노동부
면담 등을 통해 임시검진 결과를 노동조합에 알려 대책수립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97년 7월 제30회 산업안전보건대회 세미나에서 노동부
산업보건과가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784개 사업장에 대한
실태점검 결과 272개 사업장에서 그동안 망간에 대한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하지 않았으며 506개 사업장에서 작업자
특수검진에서 망간에 대한 검진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총 643개 사업장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고 밝혔지만, 어떤 사업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고 시정조치들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물론 노동부는 이 시정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었는지
감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뒤이어 3월에는 대우조선 의장부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석면으로 인한 직업성 암에 걸린 것이 밝혀졌다. 뒤이어 8월에는
현대중공업에서도 같은 환자가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직업성
암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드문일이며 더구나 조선업종의
경우에는 90년대초까지 석면을 광범위하게 사용해왔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작업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직, 퇴직자를 포함하여 수천명이 석면에 노출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에 대한 역학조사을 실시하지
않았다.
한국통신 전화교환원들에게서 집단발생되어 널리 알려진
경견완장애 등 반복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장애가 제조업
노동자들에게도 심각한 상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금속연맹에서
15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진에서도 70% 이상이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마창여성노동자회,
인천산업보건연구회 등에서 지역의 전자, 금속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노동부는
특수검진제도 개선안에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특수검진을
실시하도록 포함시켰고 반복작업에서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작업지침을 마련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10월에는 현대미포조선에서 수리중이던 애틀란틱 블루호
화재사건이 발생하여 오랫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잔류가스에 용접불똥이 튀었다는 것이었지만 이
사고는 산업재해의 다양한 원인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같은 배에 작업시켰던 점, 그동안 잔류가스 검사를
형식적으로 실시해왔지만 이를 제대로 감독하는 곳이 없었다는
점, 사고에 대비한 구급장비가 없거나 고장난 상태여서 구조하러
간 사람조차 사망했던 점, 무리한 작업일정에 쫒겨
사전점검 없이 작업을 강행했던 점은 형식적인 법적 규제와 이를
감독하지 않는 노동부, 생산만을 생각하는 기업, 용역,
하청노동자의 증가로 인한 안전관리 체계의 사각지대 등
산업재해의 원인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었다.
금속연맹에서는 300여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용접작업과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검진 및 용접작업장 환경평가사업을
실시하여 발표하였다. 더불어 대우조선 노동조합에서는 96년
노동조합의 독자적인 조사로 문제를 제기했던 도장작업자
유기용제 중독에 대한 역학조사를 노-사가 합의한 기관에서
실시하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두 가지 사업에서는 모두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직업병 문제의 심각성과 작업환경의
유해성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 결과가
발표되자 과거와 같이 임시검진 등 일회적인 조치를 내리는 것과
함께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노동조합과 전문인들에 대해 몇몇
언론을 통해 그 결과의 신뢰성을 깍아내리려 했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주, 노동자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노동부와 제도권 전문가들의 의견외에
어떠한 비판이나 연구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96년 민주노총이 산재통계의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 공상건수를 조사하여 발표하였을 때에도
노동부는 공상처리라는 재해자 은폐가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하기보다는 발표된 사업장을 조사하여 민주노총 발표와 작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는 마치 공상건수 조사결과가 모두
잘못된 것처럼 호도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노동부의 대응이 지난 2~3년간 노동조합측에서 제기하는 문제와
사안들에 대해 수세적이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임시방편이긴
하지만) 대책을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동조합의
문제제기에 헛점을 찾아(또는 조작해서)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97년 5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시행령, 시행규칙도
부분적으로 개정되었으며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운영지침(예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지침(예규), VDT작업자 작업지침이
만들어지고 특수강진단제도 개선안이 준비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진전은 그동안 노동조합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항들을
수용하고 있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노동조합의
산업안전보건할동과 관련한 권한을 확대하는 것에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기업규제완화를
위한 특별조치법」(93년) 이후 지속적으로 산업안전보건
관련 감독 및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것도 제도변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예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안전,보건관리자의 수와 자격 등에 대한 규정을 없애면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는 노동조합이 관련 전문인의 임면에 대한
권한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설치,
운영 사업장이 적고 노사간에 합의한다는 것이 노사간의 힘의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에서 볼 때 노동조합에서는 더욱
열심히 투쟁해야만 최소한의 규정을 지켜낼 수 있게 된
것이다.
98년의 변화될 조건
첫째로는 부실한 국내금융자본을 키운다는 이유로 산재보험의
민영화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민연금,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제도를 통합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여 아직 구체적인 방향을 추측하기는 어렵다. 이와
더불어 산재보험금 지출을 낮추기 위해 보상수준이 악화되고
강제종결이 판을 치는, 한마디로 산재자들에게는 더욱 힘겨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도가 나거나 정리해고가 거론되고
있는 사업장에서는 재해자들이 산재처리를 기피하고 있다.
병원에 누워있다가 언제 일자리를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더구나 산재․직업병 환자들중 장애가 있거나
작업복귀가 어려운 경우는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정부는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98년도
산재보험요율을 0.13% 낮춘다고 발표했다. 덧붙여서
2000년까지는 5인 이하 사업장에도 산재보상을 확대하고
금융보험업종에도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이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리라 믿을 수 없다.
두번째로는 기업 살리기를 위해 각종 안전보건 규제를 완화하고
근로감독이 소홀해질 것이다. 기업들은 안전보건관련 투자를
줄이고 보험료를 생각해 산재은폐에 혈안이 될 것이다. 벌써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올해 사업주가 건강검진이나
환경측정을 할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98년 산업안전보건활동의 새로운 전환점
산업재해, 직업병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가 위축되고
있다. 어떤 조합에서는 일자리가 걱정인데 작업환경이니,
산재처리 문제를 얘기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98년은 문송면군 사망 10주년을 맞는 해이다. 직업병과
산업재해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화되고 노동조합의 투쟁과제로
자리잡기 시작한지 10년째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10년의
성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투쟁의
성과를 정리하여 축적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과거 60~70년대처럼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 열악한 작업환경, 장시간 노동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많은 조합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당연히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안전보건 조치 위반에
대응하지 못하고 산업재해, 직업병문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일자리와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해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대한 대응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부도, 폐업 등 회사가 어려운 경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기업의 경영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는
기업의 중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점검하면서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투자, 개선계획을 제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개별 기업내에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모든 사항을 검토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고발생 등 특별한 사안이나 조합원들의 불만사항을 처리하는
단발적인 내용으로 운영되어 왔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실제로 개별 사업장의 산업재해 예방
계획을 검토하고 중장기적 방향을 수립하는 기구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 노동조합의
참여기제들은 법적으로 권한과 역할이 확대되어 왔지만 실질적인
운영율은 낮은 실정이다. 산업재해예방정책심의위원회,
산업재해보상정책심의위원회 등 노사정이 공동구성하는 기구들도
그동안 참여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아 유명무실해져 있는데
실질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