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민중세상 - 노동자 문화
걸을수록 정겨움이 묻어나는 길…
- 지리산 남부능선 산행기 2
윤수근 / 금속 노동자
6월 5일 (일요일)
한벗샘->대성골
갈림길->음양수샘->세석대피소->한신계곡->백무동
공기 좋은 곳에서 편안히 잤더니 아침이 굉장히 상쾌하다.
얼마 만인지 모르지만 온갖 새소리와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서 억지로 일어났다. 새벽부터 누군가 잠도 자지
않고 부스럭거려서 자다 깨다 했지만….
오늘 남은 산행은 어제보다 더욱 더 널널하다.
일부러 이렇게 편안히 잡은 탓도 있다.
일상에 찌들대로 찌든 내 몸이 조용하고 편안한 산행을 간절히
원해서….
아주 간단히 아침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밥을 먹자고 해서 국물 없이 김치와 짜장으로만 배를
채웠다.
이상하게도 산에 오면 밑의 세계보다 음식량이 굉장히
줄어든다.
물론 허기질 때는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과식은 산행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중 하나이다.
밥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드디어 출발이다.
어제는 헬기장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단지 한벗샘 위에 있을 것이라는 정보만 알았을 뿐….
완만한 오르막을 땀 빼고 오르니 드디어 풀숲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에 와보니 어제 한벗샘에서 자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닥도 엉망이고 이곳이야말로 온갖 동물들의 통로인 듯
싶고.
조금 편했던 길은 헬기장을 지나면서 오르내리락을 반복한다.
오늘은 태양이 살갗에 와서 박힐 듯 따가워서 숨이 목 턱까지
차오른다.
아침 먹었던 것도 어느덧 다 꺼지고,
누군가 사왔던 최후의 식량… 전망이 무진장 좋은 곳에서
치즈와 빵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현재 남아있는 먹거리는 빵과 라면 3봉뿐….
서로 바쁜 나머지 동료들을 너무 믿은 탓일까, 아무도 먹을 것을
제대로 사온 이가 없다.
배낭에 흔히 굴러다닌 오래된 행동식마저 이 날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석굴을 지나서 대성골 삼거리까지 인내심을 시험하듯이 연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였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배도 고프고….
내려가면 옻닭 사먹자고 도원결의 하듯 의지를 모으며, 드디어
세석평전과 산장이 한눈에 보이는 조망 좋은 곳까지 왔다.
바위에 걸터앉아 주능선과 세석 일대를 조망하니 아무 생각이
없다.
이대로 바람같이 흘러가면 좋으련만….
남은 구간은 길이 무척 편안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정겨움이
길에 묻어난다.
오늘 처음으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드디어 능선 끝에 있는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은 곳으로
알려진 음양수(陰陽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곳도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온갖 패악(?)을 하는 통에 예전만큼 물맛이
안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이곳 음양수 샘은 전설적인 여성 빨치산인 '김점분'이 생을
마감한 곳이다. 1953년 여름, 15명의 여성대원들과 음양수 바위
뒤에서 토벌대에게 포위되었는데, 포위망을 뚫고 나갈 가망이
없자 김점분은 15명의 여성대원들과 권총으로 자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음양수에서 물을 받으면서 그들의 고단했던 투쟁과
최후를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해진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진다. 아! 이제 세석에 도착하는가 싶다.
잘디잔 돌이 10만여 평에 걸쳐 광활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해서
세석(細石)평전이다. 동쪽으로는 촛대봉을, 서쪽으로 영신봉을
끼고 있는 세석평전은 지리산 주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최대의
평원지대다. 이 평원은 신라 때는 화랑의 수련도장으로,
한국전쟁 때에는 빨치산의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샘이 있는 밑에서부터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연신 복원지역 밖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해댄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다녀서 등산로가 훼손된 곳을 복구하여 출입금지를 했지만
많은 이들이 다시 망가뜨리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 밑에서 쉴 곳도 없고 오직 있다면 엄청난
인간들만이….
취사장 한쪽 구석에서 남은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휴식은 한신 계곡으로 가서 하기로 하고 미련 없이 자리 털고
일어났다.
한신 계곡으로 진입하기 전, 마루에 서면 북쪽으로 백두대간길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 남덕유와 서봉(장수덕유)이 보이고
함양 백운산도 보인다.
바람 솔솔 부는 숲속에서 휴식은 대지의 기를 흠뻑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다. 하루 종일 태양에 혹사당한 피부에게
영양제를 공급하는 것처럼….
장터목에서 내려가는 하동바위 거쳐 가는 코스보다는 길이 훨씬
편안하다.
처음의 지겨운 바위 계단 길을 내려가고 나면 어느덧 평탄하고
편안한 길이 나온다. 곳곳에 폭포와 작은 소들이 연달아 있어
마지막 여정을 시원하게 한다.
이상하리만큼 하산을 완료하는 지점부터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역시 자동차 소음과 인간들의 채취가 물씬 나는
곳은 자연도 견디지를 못하나보다. 그 시원하던 계곡의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끈적이는 피부와 땀내음만이 가득하다.
다음에 올 날을 생각하니 마음에 가벼운 흥분이 일렁인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기를 바라며….
智異風雲堂鴻洞 지리산의 풍운이 당홍동에 감도는데
伏劍千里南州越 검을 품고 남주로 넘어오길 천리로다.
一念向時非祖國 언제 내 마음속에서 조국이 떠난 적이 있었을까
胸有萬甲心有血 가슴엔 단단한 각오가 있고 마음엔 끓는 피가
있도다
* 51년 봄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가 덕유산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지었던 한시이다.
사살 된 후 수첩에서 발견되었다.
** 산행 안내: 지리산 종주코스
지리산 종주는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 주능선을 타고
천왕봉에서 대원사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삼재 도로
포장 이후 지금은 성삼재까지 차로 오른 후 성삼재에서 산행에
들어가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다. 그러나 등정코스를
노고단을 먼저 오르는 것으로 잡지 않고 역코스로 종주하기도
한다. 천왕봉에서 하산도 대원사코스 만을 고집하지 않고
중산리, 백무동 등 다양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등정과
하산코스는 개의치 않고, 노고단에서 천왕봉, 또는 천왕봉에서
노고단 까지 주능선을 산행하는 것을 지리산 종주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산꾼들은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 대원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고집하기도 한다.
지리산 주능선 25.5km에 등정과 하산까지 합하면 약 60km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만 25.5km에
식사시간 포함 18시간 정도 소요된다. 등정과 하산을 어느
코스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나 등정과 하산을 합하면 약
50-60km에 22-25시간 정도 걸린다.
산장(대피소)간 소요시간 : 성삼재 -(1시간)- 노고단산장
-(3시간)- 뱀사골산장 -(2시간)- 연하천산장 -(2시간)-
벽소령산장 -(3시간)- 세석산장 -(2시간)- 장터목산장 -(1시간)-
천왕봉
2박3일 종주코스 안내
첫째 날: 오전 7-8시 성삼재에서 산행시작, 벽소령 산장 1박
코스: 성삼재 - 노고단 - 임걸령 - 노루목 - 삼도봉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산장 - 벽소령대피소
- 구례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까지 버스로 1시간, 오전 6시에
첫차가 출발. 2시간 간격. 노고단 산장에서 아침식사,
삼도봉에서 점심식사, 벽소령 산장에서 1박.
-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올랐다가 내려오려면 연하천 산장에서
1박을 한다. 연하천 산장은 50여명 수용규모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취사장도 없다.
- 가급적이면 오후 4시 이전에 숙박할 산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운다. 일행 중 낙오자가 있어 산행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날(벽소령산장-장터목산장 7시간)
코스: 벽소령산장 - 선비샘 -영신봉 - 세석산장 - 촛대봉
-연하봉 - 장터목산장
- 오전 7-8시 산행시작, 세석산장에서 점심식사, 장터목산장
2박
셋째 날(장터목산장 - 대원사계곡 매표소 7시간 30분)
코스: 장터목산장 - 제석봉 - 천왕봉 - 천왕봉 일출을 보고
하산
- 새벽 4-5시 산행 시작, 천왕봉 일출(약 1시간 소요)
- 천왕봉에서 6-7시 하산 코스에 따라 하산
- 하산 코스
천왕봉 - 중산리(4시간)
천왕봉 - 장터목 - 백무동(5시간)
천왕봉 - 대원사(8시간)
천왕봉 - 칠선계곡(7시간)
* 무더운 여름, 휴가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