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분할 사유화와
사업본부제적 조직개편간의 관계
한국전력공사 사례를 중심으로
1. 들어가며
본 글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한전 경영진이 자본합리화 전략의 일환으로 실시한 사업본부제적 조직개편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개 공기업 내부의 자본합리화 전략은 매각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본격적인 공기업 사유화 과정 이전부터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본인이 한전에 대해 분석 초점을 요즘 한창 논쟁이 되는 한전의 분할사유화 전략보다는, 오히려 한전 내부의 사업본부제적 조직개편으로 삼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대중 정부의 한전 분할사유화 전략은 그전에 총체적으로 전개되었던 사업본부제 조직개편과 노동착취의 강화, 이를 통한 수익성중심의 운영체계 정착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전의 사업본부제→분사→분할사유화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서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의 사유화전략과 자본합리화 전략간의 긴밀한 연계를 이해할 수 있다. 원래 거대 공기업을 분할 사유화하고자 할 때, 신자유주의적 정부는 이전에 그 공기업에 대해 수익성을 중심으로 균등하게 쪼개고 각각의 쪼개어진 작업단위에 이익중심적인 사업본부제를 조직화한다. 그 후 정부 및 거대공기업의 본사 경영진은 각각의 사업본부제 조직에 대해 이윤극대화를 위한 ‘자율책임경영제’를 이식시키고 각각의 사업본부들을 경쟁시키며 마치 독자적인 기업인 양 행세하도록 강제한다. 이러한 통제맥락에서 각각의 사업본부장과 중간관리자들은 현장밀착적인 노동통제를 시도하여 인원감축과 저임금, 노동강도 강화를 이루어내고 결국 그 사업본부의 매각가치를 극대화하게 되어 분사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분할사유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한전의 경우를 보면 정부 및 본사 경영진은 1993년부터 사업본부제를 시도하여 실질적인 노동착취의 단위를 분할하고 각각의 사업본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통제체제를 구성하였다. 2001년에 가시화된 분사화는 단지 각 사업본부가 개별자본으로서의 노동착취를 위한 형식적인 법인격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며 그 후 분사화된 공기업 단위는 더욱 더 노동착취와 경쟁을 가속하여 매각가치를 극대화하며 결국 국가소유로부터 사적소유로 이전되는 사유화전략을 통해 그 신자유주의적 코메디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 노동자는 신자유주의적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시도하는 사업본부제→분사→분할사유화의 연계성을 깊이 이해하고 초기에 시도하는 조직개편전략부터 반대전선을 펼쳐 현장에서의 단련된 투쟁주체를 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유화 반대투쟁을 밑으로부터 조직해야 한다.
둘째,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의 양 날개인 자본합리화 전략과 사유화전략간의 연계를 파악해야 김대중 정부에 대한 사유화 반대투쟁과 작업현장에서의 자본합리화 반대투쟁을 실질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사회 내에서 가장 알짜배기 공기업이 한국전력공사(한국통신공사와 더불어)라는 사실은 국내외 독점자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국내외 독점자본의 압력 하에 한국전력공사의 사유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주인찾기식’ 공기업 사유화 시도는 자본간의 과다경쟁과 노동자 및 민중들의 반발로 인해 실패했다.1) 그 후 1998년 IMF 위기를 계기로 김대중 정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정책(핵심은 발전-송전-배전의 분할사유화임)을 발표하면서 한국전력공사에 대한 본격적인 사유화를 시도하였다. 이에 대해 1999년 전국전력노조는 사유화 반대 투쟁을 조직하여 전력산업 5개사 및 대국민 연대를 통해 한국전력공사의 조급한 매각을 지연시켰으나 2000년말에 결국 위원장의 직권조인으로 인해 한전 분할사유화 반대투쟁에 실패하게 되었다. 왜 당시 한전 노조의 분할 사유화반대투쟁이 실패하였을까? 전국전력노조 위원장의 인격적 문제일까?. 물론 투쟁과정에서 상층간부의 지도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노선과 사업방식으로, 그 지도부가 투쟁의 기본적인 동력과 방향을 어떻게 잡고 노동대중과 같이 그 투쟁사업을 어떻게 진행했는가이다. 한국전력공사 노동자들은 파업의 무풍지대에 있다가 근래 들어 정부의 한국전력공사의 사유화와 이로 인한 고용불안정의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위해 노조위원장의 직선제, 사유화 반대를 위한 대정부 연대 투쟁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사유화 투쟁 과정에서 전국전력노조 상층노조 간부들은 주로 국회청원적, 여론형성적 사업방식을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국회의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 반면, 한전 노동자에게 이전부터 다가왔던 자본합리화 반대투쟁을 등한시 또는 찬성함으로서 작업현장 노동자의 신뢰와 현장동력을 상실하고 나아가 조합원을 단지 동원대상으로 간주하게 되어 결국 2000년말 정부의 분할사유화와 자본합리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한전 노조의 1999년, 2000년 ‘민영화 반대투쟁’은 대정부에 대한 사유화 반대투쟁만을 부각시키며 현장수준에서의 자본합리화 반대투쟁을 방기함으로서 한전 노동자의 내부투쟁동력을 고갈시키고 결국 사유화반대투쟁도 실패한 것이었다.2)
따라서 다음에서는 우선 김대중 정부의 한전 분할사유화 전략을 개관하고 그후 1993년부터 실시된 ‘사업본부제적 조직개편과 내부경영평가제도’를 살펴봄으로서 한국전력공사에서의 사유화전력과 자본합리화 전략간의 연계성을 입증하고자 한다.3)
2. 한전의 분할사유화와 이익센터적 사업본부제
1) 김대중 정부에서 한전 분할사유화의 정치적 맥락과 그 내용
IMF 위기와 더불어 정치권력을 장악한 김대중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전면화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금융구조조정, 기업구조조정, 공공부문 구조조정, 노동시장 구조조정으로 표현되는데 특히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 하에 진행되면서 금융, 기업 구조조정의 돈줄역할을 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공기업 사유화와 그 이전에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는 자본합리화전략(핵심은 인원감축과 노동강도 강화임)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구조로의 재편전략 하에서 김대중 정부는 1999년 들어 ‘전력산업 구조개편’(분할 사유화)의 안을 내고 이를 법제화하고자 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단기적 방안으로서, 한국전력공사의 발전부문을 수 개의 발전자회사로 분할(분사)하여 내부경쟁체제를 구축하고 대폭적인 인원감축과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발전원가를 절감한다. 그후 각각의 발전자회사는 단계적으로 국내외 독점자본에게 사유화하고자 하고 있다. 물론 이때 원자력 발전과 송전, 배전부문은 국가소유 하에서 한국전력공사로 유지한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한국전력산업의 장기적 방안으로 배전부문도 수 개의 배전회사로 나누어 전력 도․소매 부문에 본격적인 경쟁을 도입하고 송전망을 개방하여 국내외 발전산업의 독점업체도 전국적인 송전망을 자유로이 이용하는, 이른바 ‘전력산업의 전면적인 민영화와 경쟁체제’를 의도하고 있다.
<그림 1> 김대중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2) 한전의 사업본부제를 통한 내부경쟁체제 구축과정
(1) 사업본부제의 반노동자적 본질
앞서 살펴본 한전의 분할사유화 이전에 중장정부 및 한전경영진은 효율적인 통제체계 즉 수익성 중심의 사업본부제를 도입하였다. 대개 도입시점에서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은 사업본부제로의 조직개편을 일컬어 ‘현업으로의 자율권 부여’, ‘경영의 민주주의 확장’, ‘분권적 권한 이양’ 등 이데올로기를 제시하며 국민과 노동자들을 설득하였다. 또한 노동자들도 이전의 공기업이 상층 관료중심으로 운영되어 발생된 많은 폐단을 인식해서 그런지 이러한 조직개편의 외양만 보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본부제 조직’, ‘원가절감 목표에 대한 현업의 책임도 증가’를 현업 지향적인 작업장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본부제 조직개편의 본질은 수익성위주의 노동착취적, 노동자 경쟁적인 분할통제전략이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부 및 경영진이 사업본부제적 조직개편을 시도하는 이유가 1) 인원축소을 통한 원가절감을 목표로 노동자들을 스스로 동원하도록 강제한다는 점, 2) 그 후 적은 인원의 노동자들에게 수익성 증가를 위해 스스로 착취하도록 현장 통제를 강화한다는 점, 3) 직종간 사업소간 조직적 분리와 경쟁을 통해 이후 한전 전체의 분할 사유화를 원활히 진행시킨다는 점, 4) 노동자들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그 결과 경쟁에서 진 사업본부제 노동자들에게 외주하청의 위협을 가한다는 점, 5) 외주하청된 비정규직 노동자와 공기업의 정규직 노동자간 분할통치를 시도한다는 점을 통해 매각가치를 극대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사업본부제적 조직개편에서 그 의미가 애매모호한 ‘자율권’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자율성’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그 실제적 내용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점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특히 신자유주의적인 공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사업본부제라는 하위조직은 그냥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본사의 수익성 중심의 강제적 통제구조(내부경영평가)하에 작동된다. 따라서 통제의 맥락에서 공기업 내 사업본부는 ‘공공성’의 실현과 ‘작업장의 민주화’, ‘노동방식의 인간화’보다는 주로 이익센터(profit center)로서의 역할 즉 수익성-위주의 상업주의적 운영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통제의 효율성을 위해 한국전력공사 본사에서는 각 사업본부별, 사업소별로 원가회계정보와 경영정보의 전자적 통제가 추진되는 것이다. 사업본부제적 조직이라는 틀거리에서 본사는 회계제도의 전산화, 유사 사업부간 내부경영평가 결과를 비교하여, 이에 근거한 성과급의 차별적 지급 등을 통해 공기업의 반 노동자적 변화과정, 매각준비과정을 압박, 통제하고 사업본부장 및 팀장으로 하여금 마치 중소기업의 사장과 같이 현장통제를 강화하여 효율성을 상승시키고 공기업 인원수를 감축시키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나아가 김대중 정부와 경영진은 각각의 사업본부의 매각가치를 향상시켜 분사→분할 사유화를 원활히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1993년부터 현재까지 한전에서 벌어졌던 자본합리화전략의 반노동자적 본질인 것이다. 이러한 자본합리화과정은 1년 내로 한순간에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장기간의 구성과정을 경유하게 된다.
(2) 1993년~1995년: 한전에서 내부경쟁체제를 준비하는 단계
이 시기 한전이 처한 정치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1993년 초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서 ‘공기업의 대대적인 개혁’을 부르짖자 한전 경영진은 발빠르게 사업본부제적 조직개편을 시도하였다. 그 내용은 기존의 네트워크적 기능별 조직형태에서 초보적인 경쟁형태인 내부경영평가제를 실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한전 경영진은 자본합리화전략의 본격적인 첫발을 디디게 된다.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은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새한전 창달’이라는 전사적 기업문화운동을 벌이면서 한전노동자를 동원하였고 1995년 말에 들어서면서 경영진은 본격적인 합리화를 위해 ‘경쟁력 10% 이상 높이기 운동’을 가동하였다. 이러한 자본합리화 운동 하에서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은 1993년 들어 ‘경영평가위원회(종합조정실장을 위원장)’을 신설하고 이 한시적 평가조직(이후에 상시적 조직으로 변화)을 통해 ‘신내부평가제도’를 도입하였다. ‘신내부평가제도’는 각 사업소(발전-송전-배전-판매)들을 비교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 성과급을 20% 정도 차등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였다. 당시 ‘신내부경영평가’는 주로 같은 부문 내 사업장을 묶어 비교함으로서 각 부분별 이익센터적 사업본부제 조직을 이식하고 경쟁을 유도했는데 예를 들어 판매분야 및 송배전분야는 1차-2차-3차 사업소가 규모별로 있기 때문에 같은 규모끼리 비교했으며 발전분야는 발전소별, 또는 발전용량별로 묶어 비교하였다.
이러한 통제맥락 하에서 본사 경영진은 현장노동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실시하였다. 우선 한전 경영진은 내부경영평가의 주요지표로 인원감축 성과뿐만 아니라 ‘기능적 유연화(다기능공 만들기)’와 ‘수량적 유연화(외주하청 비정규직 확대)’를 추가하고 대대적인 직무분석 및 직무통합을 시도하였다. 특히 본사경영진은 현장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능직에 대해 직무통합을 함으로서 기존 80개 직무를 7개 대범위 직무로 통합하고 별정직 또한 기존의 35개 직무를 7개 대범위 직무로 통합하여 ‘다기능화’와 ‘외주하청화’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직무통합 및 정원감축과정에서 한전 노동자는 많은 업무를 동시적으로 수행하는 초과노동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신규사업소로의 ’다기능을 위한 보직이동‘을 강제받게 된다(1995년 당시 전력노동자 3,304명이 사업소간 이동을 강제받았으며 사업소 내에서도 자체 순환보직을 시행하였음).
<표 1> ‘신내부경영평가 제도’에서 사업소별 평가기준
분야 |
|
평가군 구성기준 |
본사 처, 실 |
기능별 분류(본부 평가군, 사업단 평가군) |
판매분야 |
사업소 등급(규모)에 따른 분류 |
발전분야 |
발전소별, 용량, 직급별 분류 |
송변전분야 |
사업소 등급(규모)에 따른 분류 |
건설분야 |
수화력, 원자력건설사업소 통합평가 |
특수분야 |
사업내용의 유사성에 따른 분류 |
출처: 1995년 한국전력공사 경영실적 보고서.
1995년에 들어서 경영진은 점차 내부경영평가제도가 한전에 정착됨에 따라 각 사업소간의 비교평가결과를 인센티브와 연계시키고 나아가 차등폭을 이전의 20%에서 50%로 확대하여 성과에 근거한 보상방식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즉 경영진은 내부경영평가 결과를 한전 노동자의 능력주의적 인사관리제도와 연결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우수 사업소로 평가된 곳의 전력노동자들은 승진후보에 우선적으로 추천하거나 승진배점을 가산하였고 순환보직의 이동시 선호하는 우대 사업장으로 우선 배치시켰다.4)
그런데 경영진은 사업본부제적 조직-내부경영평가-능력주의적 인사관리제도를 연계시키는 과정에서 하나의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 그 문제란 노동자로부터의 사업본부간 평가기준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시비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경영진은 ‘수익성 중심의 신재무회계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회사전체 내에 있는 사업소(사업본부제적 조직)를 독자적 활동단위로 간주하여 사업소별 수익과 원가를 뽑아내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책임회계제도(활동기준 원가회계)이다. 이러한 원가기법을 통해 경영진은 사업본부간의 내부경영평가제도의 평가기준을 좀더 세련화시킨 것이고 나아가 각 사업본부 및 사업소의 ‘수익성’에 대한 공헌도를 측정하여 이를 노동자의 능력주의적 인사관리에 점차 반영하고자 하였다.
(3) 1996년~1997년: 본격적인 내부경쟁체제에 돌입하는 단계
1996년에 들어서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이 본격적인 자본합리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그 정치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우선 1996년 들어 김영삼 정부는 초기의 민주화조치(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등)로부터 후퇴하여 노골적으로 재벌을 비호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표명하였다. 특히 김영삼 정부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산업경제연구원, 안진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에 한국전력공사의 경영진단을 실시하여 1996년에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한국전력공사의 분할사유화는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사유화 추진의 기본전제로서 전력산업구조개편 즉 강력한 경영합리화의 필요성을 주문’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치 상황에서 한전 경영진은 발빠르게 본격적인 자본합리화 전략과 세련된 내부경쟁체제 도입을 본격화하게 됐다. 우선 한전 경영진은 1996년 ‘고객서비스 혁신을 위한 VISION 21’을 추진하였다. 이는 이후 ‘한전 분할사유화’와 ‘상업주의적 관리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었으며 그 구체적 실행방식은 대국민적 홍보활동과 판매분야 노동자의 ‘서비스 수준의 향상’이라는 고객지향적 이데올로기적 비젼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5) 동시에 한전 경영진은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에 부응하여 민자발전 추진을 통한 발전사업의 경쟁체계를 도입하여 한전 사유화의 기반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1995년 한국사회가 WTO에 가입함에 따라 김영삼 정부는 국내 전력시장을 개방해야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그 결과 1996년 1월부터 발전사업에 대해 민간, 외국기업의 투자를 허용했으며, WTO와 정부의 조달협정 발효에 따라 발전설비 건설시장을 개방하였으며 외국인의 유가증권 취득제한 완화에 따른 한전주 취득한도를 15%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 속에서 한전 경영진은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LNG 복합화력(40만kW 2기)를 2개 민간업체(LG, 현대)에, 석탄화력(50만kW 2기)을 1개업체(포스에너지)에 허용함으로서 국내 사적독점자본이 발전소 건설, 운영, 소유를 가능케 하고 나아가 한전이라는 공기업과 경쟁체제를 가능케 하였다. 이러한 민간-공기업 경쟁체제는 한전 전체에 경쟁논리를 이식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하였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업본부, 사업소간 내부경쟁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경영진은 1996년부터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부응하여 동경전력(가장 착취적인 전력기업을 알려져 있음)의 경영효율을 세계화의 지표를 내부경영평가의 주요 지표로 도입함으로서 정원감축 및 노동강도강화 위주의 내부경쟁구조 구축에 박차를 가하였다. 또한 본사 경영진은 1996년 들어 한전 내부에 본격적인 사업본부제와 내부경영평가를 도입하여 조직의 위계를 축소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관료주의적 의사결정과정을 수익성 위주의 현업지향적 의사결정과정으로 변화시켰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중간조직 관리자와 노동자들이 명예퇴직되고 남은 사람은 현업조직으로 강제 배치되었다. 즉 이러한 조직축소과정에서 의사결정 단계도 기존의 5단계(본부장→부처장→처장→부장→과장)에서 3단계(본부장→부처장, 처장→과장, 부장)로 축소되고 기존의 수많은 본사권한이 본부 및 1차 사업소로 위양(예: 3직급 사업소장 보직이동권 등 19개 항목 위양)되어 수익성을 위한 현장통제가 강화되었고 또한 인원감축 실적은 그 사업소의 내부평가와 긴밀히 연계되어 강제되었다.6) 당시 정원감축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내부평가제도를 통해 각 사업소에서 정원 219명을 자진 반납하였으며 배전부문의 경우 변전소 59개소를 무인화를 함으로서 63명을 감축했고 발전부문의 경우 ‘발전소 플랜트 운전제 도입(발전소 POST별 운전원 배치→전체 플랜트 공동순회 점검근무로 전환)’으로 46명을 감축하였다.7) 이 과정에서 감축된 현원은 신규발전소나 사업소 증가로 인한 인력증가로 배치전환되어 흡수되었다.
1997년에 들어서 본사 경영진은 중간관리자에 대해 새로운 통제방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업본부장인 1급의 ‘경영계약제’라는 새로운 고용형태를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후 1998년에 시행될 연봉제 실시와 긴밀히 연계되어 준비된 것이다. 우선 본사경영진은 1급 관리직에 대해 경영계약제를 도입하여 매년 보직이동 발령시 경영계약을 체결하고 그후 1년간의 사업본부의 경영실적을 평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5등급으로 강제 배분하였다. 나아가 경영진은 2, 3직급에 대해서는 내부정서를 고려하여 ‘경영계약제’를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평가결과를 승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능력주의적 인사관리를 시도하였다. 나아가 본사 경영진은 인원감축의 방도로 ‘기능직 별정직 인원감축 계획’ 그리고 ‘외주하청의 확대’라는 비정규직 확대방안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게 된다. 이를 위해 본사 경영진은 본격적으로 핵심업무와 주변업무를 구분하고 전자에 대해서는 다기능화와 직능자격제도 도입을 위한 ‘전문분야 직무관리제도’를 시행하였으며8) 후자에 대해서는 비정규직화를 위한 ‘기능직 별정직의 정원 현원 감축 계획’을 시도하게 된다. 특히 당시 한전에서의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과정을 보면 자세히 살펴보자. 경영진은 자의적 기준에 의해 기능직들을 받았던 기존의 네트워크적 연계업무를 존속, 위탁, 폐지업무로 나누었다. 그후 존속업무는 기능직 8개 그리고 별정직 49개로 확정하여 이를 축소된 정원운영의 기준으로 책정하였다. 그리고 위탁, 폐지 대상의 업무는 기능직 26개, 별정직 52개로 선정되어 이후 정원삭제, 결원발생시 정원자동삭제 및 직무전환, 사업장간 이동을 적극 추천하면서 향후 ‘10년간 기능직, 별정직 인력 3,000명 감축’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드러내 보였다. 특히 분할사유화 과정에서 가장 예민한 수화력발전소의 경우 경영진은 2001년 소요인원 9,040명에 대해 목표인원을 7,156명으로 설정함으로서 1,884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을 감축시키고자 하였다. 경영진에 의해 기획된 ‘수화력 인원감축계획’을 보면 우선 지원부서(총무, 자재, 환경, 통신, 설비담당)의 유사기능을 통폐합하여 중간 관리직을 축소, 현업배치하며 중앙제어실에 근무하는 운전원의 직무범위를 플랜트 운전제 확대를 통해 통합하였으며 발전소 내 업무 중 주변적인 3D 업종적 업무는 외주하청하고자 하였다. 경영진에 의해 3D 업종으로 폄하되어 주변업무화된 전형적인 예는 석탄발전소의 ‘회처리설비 운전업무’이다.9) 반면 송전부문 기능직의 경우를 보면 ‘정비업무 위탁’ 조치를 통해 기존에 송전 전기원이 수행하던 ‘송전 선로 정비업무’를 설비증가에 따른 신규인력 소요분에 대해 정비전문업체인 한전기공에 위탁하였고 나아가 판매부분의 경우 기존 정규직이 하던 전화응대업무에 파트타임 주부사원 비정규직으로 인력보강하였다(1996: 230명→1997년: 248명으로 확대경향).
(4) 1998년~2001년: 분할민영화를 위한 발전부문의 분사화 준비단계
1998년초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이 직면했던 정치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1998년 들어 김대중 정부는 IMF 정국 하에서 ‘공기업 비효율성’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키면서 공기업 노동자의 대규모 인원감축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한전 경영진은 재빠르게 조직통폐합과 고령노동자의 명예퇴직 및 한시퇴직을 통해 대폭적인 인원감축을 시도하였고 계획치보다 높은 실적치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10) 그 결과 1998년 한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폭적인 인원감축이 이루어졌다. 우선 정원감축의 상황을 보면 1997년말 정원 39,454명에서 98년말 정원 35,689명으로 총 3,765명이 감축되었고 현원의 경우 1997년말 현원 37,827명에서 98년말 현원 34,766명으로 총 3,765명이 실질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강제적 인원감축의 재정적 결과는 인건비 약 925억원(현원 3,061명분)의 절감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전 경영진의 높은 충성도로 인해 정부 지침 1,072명을 과도초과하여 1,989명(189%)을 추가 해고시켰다. 1998년 당시 무리한 인원감축 상황에서 정원대비 현원이 1,009명(2.7%)이나 모자랐으며 나아가 신규전력설비의 증가현상과 맞물리면서 살아남은 전력노동자들은 더욱 더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있어 1998년의 인원감축은 끝난 상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부에서는 2001년까지 지속적으로 공기업 인원감축을 지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9년에도 한전 경영진은 대대적인 인원감축(지침 2,699명보다 1,066명 추가감축)을 하여 정부지침을 139%초과 달성하는 과도한 충성도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한전 노동자들은 4,604명이 감축되어 정원은 1998년 35,689명에서 1999년 34,850명으로 축소되었다.
<표 2> 1998년 한전 경영진 인원감축시도 (단위: 명)
구분 |
97년 말 정원 |
98년 정부지침 |
감축실적 |
98년 말 정원 |
인원 |
감축률 |
인원 |
달성률 |
본사 |
2,811 |
421 |
15% |
863 |
30.7% |
1,948 |
사업소 |
36,643 |
2,278 |
6.2% |
2,902 |
7.9% |
33,741 |
합계 |
39,454 |
2,699 |
6.8% |
3,765 |
9.5% |
35,689 |
출처: 1999년 한국전력공사 경영진단보고서.
앞서 살펴본 대규모 인원감축은 사실상 1999년에 발표된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김대중 정부는 한국전력공사를 분할 사유화하기 전에 매각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대규모 인원감축을 시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은 김대중 정부의 ‘분할민영화’ 지시에 따라 기존의 기획본부를 구조조정 본부로 확대개편하여 그 내에 ‘경쟁 구조설계팀’과 ‘외화부채관리대책반’, ‘수화력/원자력 발전회사 발족 준비팀’, ‘전력거래소 발족준비팀’, ‘통신회사 설립추진팀’ 등을 신설하고 이들 조직을 통해 구체적인 분할 사유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사측에서는 발전 자회사들을 분할하는 원칙을 1) 상업적 기준(발전소별 연료, 잔존수명, 가동율, 수익가치 등), 2) 기술적 기준(부하대별 발전소 균등배분, 지역안배, 계동안전도 등)으로 제시하며 한전 분할사유화에 임하는 국내외 독점자본간의 이윤추구를 위한 ‘평등’(?)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분할 사유화의 맥락에서 한전 경영진은 다음과 같이 발전사업 분리에 따른 부문별 사업본부제적 조직→나아가 분사화로 개편하였다.
<표 3> 기존 발전지부에서 분사되어 자회사로 되는 과정
발전 자회사 |
발전소 그룹 |
남동 발전자회사 |
삼천포, 영동, 여수(유전소), 분당복합, 무주양수/영흥건설 |
중부 발전자회사 |
보령, 서천, 서울, 인천/양양 양수건설, 북제주 |
서부 발전자회사 |
태안, 평택, 군산, 서인천(1,2단계) 삼랑진 양수/ 청송양수건설 |
남부 발전자회사 |
하동, 영월, 부산, 울산(3발) 서인천(3,4단계), 청평양수/ 부산복합건설, 남제주 |
동서 발전자회사 |
당진, 동해, 여수(석탄) 울진(1,2발), 일산복합/ 산청양수건설, 당진건설 |
원자력 발전 자회사 |
고리, 영광, 울진, 월성/ 전수력(한강, 강릉, 섬진강, 보성강, 괴산) |
출처: 한국전력공사 구조조정 본부(2001), ‘발전자회사 Grouping 개요’.
현재 분사화가 진행되는 상황을 볼 때 결국 한전 경영진이 1993년부터 시도하였던 발전부문의 사업본부제화는 현재 진행되는 분사를 통한 자회사 그리고 이후 추진될 분할 사유화 과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판단된다.11) 따라서 2000년 들어 한전 경영진은 앞서 살펴본 하드웨어적 분사화과정(설비 및 부채의 분할 및 인원감축과 분할)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적 분사화과정(자본합리화)에 더욱 더 초점을 두고 있다. 1993년 이래 시도된 한전의 자본합리화 전략은 ‘분사→분할사유화 방안’이 결정된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높은 매각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1999년 말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한전의 자본합리화 전략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본사 경영진은 본사의 권한을 사업소로 대폭적으로 이양하였다. 1999년 발전-송전-배전의 전면적인 분할 사유화가 구체화되자 2000년에 들어서 경영진은 모든 부문에 사업본부제를 확대하여 ‘노동통제’의 권한과 ‘수익성’의 책임을 ‘분권화’시키고 있다. 그 후 본사 경영진이 ‘중간점검→잠정평가→확정평가라는 3단계적 평가체계를 도입하여 예산절감 및 인원감축 그리고 자본합리화 도입정도에 대해 상시적인 중간 및 잠정 평가를 하여 12월 정기인사에 반영하고 잠정평가 결과를 분석하여 차년도 지표설정에 참고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년도 3, 6월에 실시되는 확정평가를 통해 내부경영평가 및 보상액이 최종결정된다.
나아가 본사 경영진은 가치경영체제(EVA) 및 신 재무정부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였다.12) 우선 본사 경영진은 사업본부별 책임회계시스템을 구축함으로서 전력거래소, 5개의 수화력 독립발전사업단의 재무성과를 각각 측정하여 사업본부의 독립적인 원가-이윤을 산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법은 이후 분사 및 분할사유화과정에서 각각의 자회사에 대해 자산과 부채를 정확히 측정, 분할하고 나아가 인력감축 및 분할을 통해 각 자회사의 이윤창출능력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또한 본사 경영진은 ‘EVA-내부경영평가제도-능력주의 인사관리제도간의 연계’를 시도하여 1)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경영계약제 및 내부경영평가-연봉제간 연계를 강화시키고 있으며 2) 현장노동자를 대상으로 내부경영평가를 통한 차별적인 인센티브제를 실시함으로서 능력주의적 임금체계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 본사 경영진이 사업본부제와 관련하여 외주하청을 도입하는 방식을 보자. 한국전력공사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송전-배전-발전부문에 있어 설비유지, 보수라는 전력산업의 핵심적 업무를 한전기공(주)와 중소기업에 외주하청하였다. 본사 경영진은 2000년에 들어 기존의 ‘전산 업무’를 전면 위탁하기로 결정하고 그후 전산직군을 폐지하였다13). 그 결과 한전에서 정규직으로 전산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원 KDN로 전직하거나 타직군으로 전환되었고 그 결과 204명을 인원감축하였다.14). 기타 외주하청의 대상은 경비인력이었다. 다만 한전내 국가보안시설 가-다급은 용역이 법적으로 불가한 상황이라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이는 이후 법개정을 통해 외주화될 전망임) 자체보호시설 49개소의 경비업무는 외부위탁하여 430명이 감축되었다.
<표 4> 1998년까지 한국전력공사에서의 주요 외주하청 업무
부문 |
외부위탁내역 |
수탁업체 |
관리/지원 |
-청소/사옥관리
-경비(사옥 및 시설)
-정보통신설비 운전/정비 |
-민간전문회사
-민간전문회사
-한전 정보 네트웍 |
생산(발전) |
-발전설비 정비
-탈황설비 운전/정비
-계측제어설비 운전/정비
-상하탄설비 운전/정비
-방사선안전설비 정비 |
-한전 기공, 민간전문회사
-한전산업
-한전기공, 민간전문회사
-한전산업
-민간전문회사 |
수송(송전) |
-송전선로 위탁 정비 |
-한전기공, 민간전문회사 |
판매(배전) |
-고객사용량 검침업무 |
-한전산업, 민간전문회사 |
출처: 1999년 한국전력공사 경영실적보고서.
결국 한국전력공사에서 주변사업이 외주하청되는 과정은 임시방편으로 기업 내부의 노동자 수를 축소하려는 반노동자적 경영기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정규직 노동자는 이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강제전환되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부와 한전 경영진의 주변사업-외주화 전략은 공기업의 고용형태에 있어 유연한 고용계약제, 즉 파트타임제와 임시계약직이 늘어나는 구조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영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경쟁을 의도적으로 펼쳐 핵심사업을 수행하는 공기업 노동자는 일정 정도의 고용보장과 근로조건을 유지하나 주변사업으로 규정된 외주, 하청 노동자는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강요받았다.15)
3. 결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전력공사의 사업본부제를 중심으로 한 자본합리화 전략은 대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중앙정부의 압력하에 ‘인원 절감과 노동강도 강화 위주로 진행되어 현업 노동자의 이익을 철저히 배제했다는 점’을 특징적으로 지니고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치적 상황’ 내에서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의 ‘자본합리화’ 전략은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사실상 ‘자본합리화’ 전략의 주요목적은 분할사유화 시에 매각가치를 극대화하고 매각과정 자체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전력공사 경영진이 주로 사용했던 자본합리화 방식은 현대적 설비투자를 통한 효율향상이라기 보다는 주로 1) 인원감축과 2)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인원감축 방식은 1) 입직구 봉쇄를 통해 신입직원을 채용하지 않음으로써, 2) 퇴직구에서 고령노동자들을 대거 명예퇴직시킴으로써, 3) 주변업무를 분사, 외주하청, 파트타임 등으로 분리하여 비정규직을 확산시킴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력공사의 노동강도 강화방식은 1) 고객지향적 기업문화운동을 통해 판매분야 노동자의 업무량을 확대시킴으로써 2) 사업본부제 및 팀제적 조직개편과 내부경영평가를 통해 노동자간의 경쟁을 강요함으로써 3) 내부경영평가 결과를 임금, 승진에 연계시키는 능력주의적 인사관리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한국전력공사에서 1993년부터 전개된 자본합리화 그리고 1999년에 확정된 분할사유화는 그 본질에 있어 반노동자적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한전 작업현장에서 벌어진 자본합리화 과정이 이럴진대 우리 공기업 노동운동진영에는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혼란을 주는, 신자유주의에 일정정도 침윤된 ‘자율책임경영체제’라는 정책대안이 있다.16) ‘자율책임경영체제론’에서의 핵심적 주장은 1) 공기업 사유화와 관련하여 공공재의 소비자로서 반대하지만 공기업 통제형태와 관련하여서는 ‘자율책임경영체제’라는 대안을 제시하며 공기업의 전문 경영인에 의한 자본합리화 경영방식을 찬성하고 있다는 점, 2) 나아가 노자역관계의 정세에 따라 공기업 사유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소유구조에 있어 노동자 및 국민의 포섭기제로서의 국민주와 우리사주를 제안하며 통제구조에 있어 이해관계자(정부-전문경영인-시민사회단체-상층노조간부)간의 다자간 협의체 및 노동자, 민중과는 괴리된 상층중심의 규제위원회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기업 노동운동을 혼동시키고 있다.
첫째, ‘자율책임경영체제론’이 전문경영진 중심의 자본합리적 독재경영을 인정함으로서 발생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기존 공기업에서의 독점자본-정부-공기업 최고경영진간의 부패고리를 비판하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공기업을 중앙정부의 영향으로부터 분권화시키고 그 개별공기업을 전문경영자의 독재적 효율경영에 맞길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이들과 같이 공기업의 효율성 논리를 맹목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현재 김대중 정부가 진행하는 공기업 노동자의 인원감축 및 노동강도 강화는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분권경영을 통한 사이비 민주화는 사실 김대중 정부에서 의도하는 이익중심적 사업본부제 조직화전략과 사장추천제도와 너무도 동일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와 신자유주의자들은 중앙정부로 하여금 전략적 의사결정과 전자통제의 중앙집중화를 수행하며 개별공기업 경영자에게 일상적인 착취를 위한 운영권을 분권화시킬 것을 자신의 대안으로 제출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세련된 통제 논리와 시민사회론의 사이비 분권화 논리에 있어 실제로 공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된다면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신자유주의자들이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마치 독점자본에서의 본사가 각각의 개별 단사를 중앙집중적으로 조정하여 착취의 집합적 효과를 증폭하듯이 중앙정부의 조정역할이 다수의 공기업을 서로 연결시키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율책임경영체제론’의 분권화적 처방은 외관상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전자감시체제를 토대로 하여 중앙정부는 수익성을 중심으로 사후적 통제를 강화하고 개별 공기업의 전문경영자는 더욱 더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것이 본질이다. 결국 이러한 소시민적 이데올로기는 소비자인 시민이 사기업이건 공기업이건 어느 정도 품질의 공공재만 확보된다면 만약 그 속에서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착취되던 말던 상관없다는 중간계층의 이기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생산자의 권리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으면 소비자들도 제대로 된 공공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공공부문에 대한 진정한 대안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만이 아니라 한국 전체의 사회구성논리를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소부르주아적 논리는 비판되어야 한다.
둘째, ‘자율책임경영체제론’이 사유화과정에서 국민주라든가, 우리 사주, 규제위원회 등의 대안을 제안하며 마치 이것이 기존의 공기업을 국민의 소유 하에 있는 ‘국민기업화’로 발전시키는 것처럼 오도하는 문제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자본가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이들한테 중요한 것은 시민을 억압하는 국가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과 같은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배하는 자는 국내외 독점 자본가들이며 이들의 이해를 보증해주는 것인 자본주의 국가인 것이다. 독점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이론은 이미 영국에서 대중자본주의(people capitalism)와 결합되어 중산층 및 상층 노동자를 물질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섭한 바 있다. 이때 대중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토대가 바로 국민주, 우리사주, 규제위원회인 것이다. 그러나 사적 독점자본은 자본시장의 논리를 통해 소부르주아 및 핵심 노동자에게 분배된 국민주 및 우리사주를 자신에게로 재차 흡수할 경제적 권력이 있다. 또한 독점자본은 신자유주의적 국가와 더불어 민주적 규제위원회에서의 의사결정과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시민단체를 포섭하여 노동자를 고립시킬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이미 1998년 이후 김대중 정부에 의해 요긴하게 활용된 노사정 합의기구에서 드러난 바 있다. 결국 쁘띠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근거하고 있는 시민사회론적 공기업론자들은 사실 독점 자본가가 공기업 사유화를 통해 얻는 전체 이익 중에서 소부르주아 및 핵심 상층노동자에게 일정 정도 양보하여 발생되는 경제적 헤게모니를 정확히 표현하고 자본축적 촉진의 노골성을 완충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적 이론이라는 폭격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시민사회론적 약장수들은 노동자와 민중에게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을 국민 전체의 정당성인 양 설득하게 되며 그 후 신자유주의적 폭격이 본격화되어 이에 노동자 및 민중이 저항하게 되면 다시 시민사회론적 약장수들이 몰려와서 어설픈 사이비 대안이라는 약을 팔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적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자본주의적 논리라는 모태에서 나온 쌍둥이 형제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명확한 자기관점을 가져야 한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반대해야 하며 나아가 경제적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공기업을 유지 및 확장시켜야 한다. 동시에 과거 공기업의 정경유착적 관리방식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그 핵심고리인 중앙정부를 민주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 후 민주화된 중앙정부를 통해 노동자들이 공기업 혁신의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각 공기업에 민주적 경영방식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노동자 주도의 공기업 혁신과정에서 제 계층에 대해 헤게모니를 행사해야 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소비자로서의 시민운동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1) 노태우 정부는 1980년대 말 노자간의 역관계를 고려하여 한국전력공사를 국민주 매각방식으로 사유화하고자 하였다. 반면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 때에는 ‘세계화’정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공기업 사유화 조치를 기획하고 한국전력공사의 본격적인 사유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김영삼 정무의 무모한 공기업 사유화 시도는 자본간의 ‘노른자 공기업 먹기’의 과열경쟁와 노동계급(특히 공기업 노동자)의 반발로 인해 실패하였다.
2) 당시 한전노조의 민영화반대투쟁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자본합리화 전략에 한발을 담고 있었다. “한전 노동자들은 이전부터 자발적으로 뼈를 깎는 고통 즉 인원감축과 노동강도강화를 통해 이미 최상의 효율화를 달성하였다. 따라서 한전은 다른 공기업에 적용되는 공적소유로 인한 ‘비효율 논리’, 이를 위한 ‘한전 사유화 논리’를 적용시킬 수 없다.”
3) 대개 전사적 수준에서 실시되는 한전의 ‘자본합리화’전략은 실제적인 통제구조인 ‘이익센터적 사업본부제와 내부경영평가제도’를 매개로 하여 인원감축, 비정규직 확대, 저임금, 차별화된 임금지급, 노동강도 강화라는 현장노동자의 고용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4) 내부경영평가제도에 대한 조합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기준의 객관성이 문제이다. 그래서 대개 로비도 들어간다. 그리고 산재발생건수가 내부평가기준으로 들어가서 현장에는 휘휘 한다. 송배전은 특히 교통사고가 많을 수 있다. 또한 내부평가에 있어 ISO인증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직원들이 동원되어 잡다한 서류를 꾸미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 실제업무를 처리하는데도 많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작년 재작년에는 잡다한 서류가 많았다.”(배전부문 조합원과의 면접내용에서)
5) 당시 한전 판매직 노동자들에게는 1) ‘고객서비스 행동준칙’을 제정하며 2) 매일 일과전 10분간 부서별 고객응대 요령을 현장교육시키고 3) 사후적으로 고객을 위장한 ‘아주머니’를 통해 고객창구 직원의 서비스 자세를 모니터링하여 그 노동자 및 부서에 대해 매월 평가하여 통보함으로서 노동통제와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나아가 경영진은 다양한 제안제도, 건전건의를 도입하고 이를 상벌체계와 연결시킴으로서 노동자로 하여금 자본합리화전략에 동의하게끔 강요하였다.
6) 그 결과 1996년에 경영진은 대규모 정원감축(990명: 3.1%)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적은 인원으로 많은 업무를 강요함으로서 대폭적인 원가절감의 효과를 보았다(물론 현원감축도 이루어졌다).
7) 플렌트 운전제도는 일종의 직무통합, 이를 통한 다기능화, 결국 인원감축과 노동강도 강화 기법이다. 발전소에서 이전에는 자신이 맡은 부분의 일정 업무를 하였으나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공장전체를 순환하며 발전소 전체의 운전업무를 하게 되었다.
8) 이를 위해 본사 경영진은 일반직의 직무재분류를 시도하게 되는데 기존의 일반직 업무를 재차 1) 일반직무, 2) 계속성요구 직무, 3) 전문성요구직무로 분류하고 전문분야 노동자는 전문가 집단에 의한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하기 위해 순환보직에서 제외하고 장기보직을 유도했으며 반면에 일반분야 노동자들은 ‘다기능 인력양성’으로 목적으로 강제적 순환보직과 많은 업무를 통해 조직의 효율성을 증대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1997년 배치전환을 강요받은 핵심 업무의 노동자들은 총 3,528명에 달하였다.
9) 이 시기에 경영진은 신규석탄화력에서 시행중인 회처리 설비 운전용역을 기존발전소까지 확대하여 용역업체인 한전산업개발로 전직조치하였다.
10) 당시 한전에서 인원감축을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첫째, 한전 경영진이 시도한 본사 조직개편을 보면 1) 본사내 부서간 유사중복기능을 통폐합하고 2) 팀제로 조직개편하여 중간관리자를 날리고, 3) 본사 업무를 더욱 더 사업소로 위양하고 4) 기존의 14개 처실을 폐지함으로서 본사 노동자의 인원감축을 시도하였다. 둘째, 한전 경영진이 시도한 사업소 조직개편을 보면 1) 사업소 29개소를 폐지하고 2) 발전부문은 교대근무체제를 변경하며(원자력 6조 4교대→5조 4교대, 석탄화력 5조 3교대→4조 3교대) 3) 주변업무의 외주하청을 강화함으로서 4) 송변전부문은 전력소를 광역화하고 지원부서를 통폐합함으로서 5) 건설부문은 신규발주분을 단계적으로 외주화함으로서 6) 판매부문은 지사의 인근지점을 통합하여 광역화하고 동일행정구역의 2개 지점을 통합(28→14개)함으로서 7) 전산업무 외부위탁(전산직군 폐지), 경비업무 외부위탁, 식당 및 구판장 외부위탁을 이룸으로서 현장노동자의 대폭적 인원감축을 이루었다. 특히 경영진은 명예퇴직제도를 낭비적이라하여 한시퇴직제도(명예퇴직금의 45% 수준)라는 이상한 명칭으로 바꾸면서 고령 노동자 2,369명을 준-강제적으로 감축시켰다.
11) 대개 자본 및 정부가 기존의 대규모 회사를 분사하는 목적은 일반적으로 “저비용/고효율”을 추진하는 자본합리화 전략의 일환이다. 분사로 인해 노동자들이 겪게되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 1) 분사과정은 기존의 조직을 분할, 변경하는 과정에서 신규고용계약과 노동자 배치전환을 수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분사과정에 당면한 노동자들은 하락된 신규고용계약을 인정하던지 아니면 해고되어야 하는 고용불안을 느끼게 된다. 2) 분사화과정은 분사이후 자회사에서 남아있는 가용인력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급속히 강화된다. 3) 기존 본사 중심의 위계적 통제에 덧붙여 분사화된 자회사의 경영진이 실질적 통제권을 쥐게 됨으로서 하나의 발전 자회사에 두개의 통제주체(모회사와 자화사 경영진)가 등장하게 된다. 이에 따라 현장에 대한 사측의 통제력은 증대된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 세력은 약화되어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악화된다. 4) 노동조합이 중앙정부-한전 모회사 경영진-발전 자회사 경영진이라는 3개의 협상주체 사이에서 실질적 협상주체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12) 가치경영체제(EVA)는 내부 평가 중심 지표로 통제가능한 최소사업단위까지 책임회계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노동자간의 상호경쟁 및 이후 분할 사유화를 위해 이용된다.
13) 한전 본사경영진의 ‘전산직군 외주화’ 결정 또한 김대중 정부의 행정지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14) 전산직 외주하청에 대한 조합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한전내 통신 전문 담당부서는 작년 1월 자회사인 파워콤 나가있다. 이전에 나는 자동화를 위한 컴퓨터 운영만 하면 되었는데 파워컴 자회사가 되면서 남은 사람들이 한전내 모든 일을 떠안았다. 그래서 지금은 1.4배로 일의 양이 늘었다. 설비는 자동화되어가지만 일은 늘어난다. 자동화로 일이 수월해진만큼 더 사람을 빼냈다. 변전소 무인화, 변전소에도 사무 통신 등 전 업무가 있다. 사람이 빠지면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고 자동화는 기계만 되었다. 그것을 감당할 사람도 다 없어졌다. 지금은 없는 전산직군 업무가 없지만 여전히 한전 내부에는 소프트웨어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여전에 이들 담당하던 사람이 지금은 변전소로 가서 전혀 생소한 업무에 어렵게 적응하고 있다.”(전산업무 조합원과의 면접 내용에서)
15)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적 경계는 매우 자의적인 관계로 언제든지 경영진에 의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중요하다.
16) 공기업 노동운동에서의 ‘자율책임경영체제론’은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시민운동론을 공공부문에 적용시킨 것으로 보인다. 대개 시민운동론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해 노동조합이 전투성 일변도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일견 구조조정을 수용하면서 그 과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한국사회내에서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반봉건적 독재적 자본주의에서 합리적, 민주적 자본주의로 가는 진보적 대안이라 판단하는데서 노동운동과의 견해차이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