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
일본의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송 호 준/철도해고노동자, 편집위원
“일하는 청년노동자를 위한”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으로 바뀐 이유
7월 26일부터 4박 5일간 일본을 방문하였다. 일본의
‘젠코(全交: 全國交歡會)’라는 단체에서 내가 소속된 한국
‘철도민주노동자회’를 초청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일본에서 주문한 발제문을 작성하면서도 나는 초청자인
“젠코”에 대해서도, 그들이 우릴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젠코가 일본국철노조(日本國鐵勞組,
고쿠로)와 긴밀한 관련이 있고, 우리가 주로 상대하게 될 사람들
역시 “고쿠로 해고자”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리타공항으로 내리자, 안내를 맡은 젠코 관계자와 통역이 이미
나와 있었다. 이들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나가노시(2000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 근교에 위치한 지가고원이란 곳으로
곧바로 이동하였다. 이 곳에서 젠코 실행위원장을 비롯해 우리를
초청한 분들을 만났고, 비로써 이들의 초청의도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젠코대회는 올해로 32회차에 이를 만큼 연원이 깊고 권위도 있는
행사이다. 올해만 해도 일본 전역에서 약 5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이들은 대부분 노동운동이나 평화운동, 시민운동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다. 이번 행사의 정식명칭에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는데, 이는 젠코대회를
처음 시작할 때 사용했던 “일하는 청년노동자를 위한”에서
바뀐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후 진행된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대회명칭이
변경된 배경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회명칭을 변경한 배경에 “일본 노동운동의 좌절이 남긴
아픔과 상처”가 함축되어 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판단일까!
어쨌든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젠코대회의 어색한 상징, 고쿠로투쟁단
2002 젠코대회의 중심주제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이다. 이를 위해 젠코는 일본 고이즈미 내각이 추진하고
있는 “유사삼법안”을 막기 위한 활동이나 미국의 전쟁도발
움직임에 반대하는 국제행동의 조직화 등에 적극적이다.
대회기간 중 개최된 국제심포지움, 분과토론회, 문화예술행사
등도 모두 이같은 목적에 부합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6개의 과제별 분과회 중에 “고쿠로투쟁단을 지원하는
공동행동을(이하 고쿠로분과)”이란 분과가 개설되었는데 왠지
나머지 분과와는 달리 전체적인 주제에서 일정하게 벗어나 있고,
논의내용과 느낌도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어색함보다 더 이상한 것은 주최측이나 참석자들 모두
“고쿠로 분과를 특별히 대우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점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고쿠로분과에 주제발표자로 나서게 되었다. 한국의
국철사유화 반대투쟁을 보고하고 일본과 한국 노동자 사이의
지원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강연의 목표였다. 이미 번역된 발제문이 배포되었지만, 그에
따른 형식적인 발언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다소 과감(!)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전투적 민주노조운동, 총파업으로 상징되는 노동자대중투쟁,
맑시즘, 사회주의 등 한국 노동운동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핵심
화두를 구체적 경험과 연관지어 거침없이 풀어내었다. 그리고
내가 만약 고쿠로 해고자라면, 일본철도노동자들의 대중투쟁, 더
나아가 총파업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삼고
활동할 것이다라고 건방지게(!) 주장하였다.
강연을 듣고 있던 고쿠로 분과 사람들(이들은 대개
노동자들이고, 노동운동의 오랜 전력을 갖고 있었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지난 시절 투쟁하던 기억이 나 가슴속으로
눈물을 흐렸다는 분, 나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일본 노동운동의
현실에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끝을 흐리는 분, 어렵고
힘들겠지만 대중투쟁을 만들어내는 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해보겠다는 동지들까지 열기가 넘쳐났다.
강연 후 토론이 이어지면서 나는 비로써 “왜 젠코에서
고쿠로투쟁단을 특별하게 대우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일본
노동운동 아니 일본의 혁명적 운동은 모두 고쿠로투쟁단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상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일본의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운동의 대명사로서
87년 국철민영화에 맞서 최후까지 투쟁했던, 부당해고와
국철노조 탄압에 맞서 200여 명이 자살하는 극단적 행동을
불사했던 국철노동자들의 피어린 역사가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억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노동운동의 몰락으로
계급모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이 거의 소멸되었고, 평화운동,
지역시민운동 등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쉽게 포기하기 힘든 그 무엇인가가 남아있던 것이다.
고쿠로 해고자와의 뜨거운 만남
일본 국철은 1987년 4월 1일에 7개의 JR그룹으로
분할민영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JR은
일본국철노동자들을 소속 노동조합(기업내 복수노조 인정),
투쟁가담 정도, 개인별 성향 등에 따라 재채용(고용승계)
과정에서 차별하였고, 결국 1,047명을 해고하였다.
조합원 수가 16만(86년 4월 기준)에 달하는 국철 내 최대
노조였던 국노는 민영화 반대투쟁 과정에서 JR 회사측으로부터
“국노를 탈퇴해야만 채용하겠다”는 협박을 받는 등 온갖
탄압의 표적이 되었다. 그 결과 국노 조합원 수는 1년만에
1/4(4만여 명)로 줄어들었다. 민영화 이후에도 국철소속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연고지 한직으로 근무처를 배정받거나,
승진과 보너스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빈번하게
조근(파견근무)․전출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 국철이 민영화 된 후 15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상당수의 낙오자가 생겼지만 해고자들의 복직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국노에 대한 차별적 탄압과 박해도
그대로이다.
일본에서 예정된 마지막 일정은 바로 87년 민영화 반대투쟁의
상징인 고쿠로 투쟁단과의 간담회였다. 그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 흥분되었다.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되었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철도해고자다. 파업으로 해고된 후
8년째 투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감정이 복받칠
것 같았다. 약속장소로 가는 차안에서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꼬장꼬장하면서도 동시에 너그러운 투사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간담회 장소에 도착하자, 7~8명의 사람들이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로를 소개하고, 상황을 보고하면서 ‘내
예상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함께 토로하였고, 힘들고 어려웠지만
끝까지 지켜나가고자 했던 영웅적인 투쟁담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함께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너와 나의 구분을 없애버린
열기는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현재 고쿠로 투쟁단(정식명칭: 國鐵鬪爭共鬪會議)은 일본정부와
법원이 ILO 87호, 98호(단결권 존중) 조약을 위반한 것에 맞서
국제적 지원과 연대를 조직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이 투쟁은 “전원해고 후 선별채용 방식”으로 이뤄진
1,047명 대량해고와 국철노조에 대한 차별적 탄압에 맞선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 국철노조 본부가
투쟁의 원칙을 저버리고 배신과 타협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본부 주도로 연초에 열린 국노 대의원대회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복직을 알선한다’는 명분으로 자민당이나 사회당에서
제안한 5가지 요구조건을 수용한다고 결정하였다(2/3찬성). 이
요구조건에는 1. 국철민영화를 인정하고 찬성할 것, 2. 국노의
명칭을 포기할 것 3. 새로운 이름으로 JR렌코(어용노조)와
통합할 것 4. 행정소송 및 ILO 제소 행동을 중단할 것 등으로
지난 투쟁을 부정하고 사실상 완전히 항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노본부도 이 같은 의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간 효과적 대중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정치권이나 법원에
의지하는 소극적 투쟁만으로 버티어왔던 패배감이 청산주의로
변하고 결국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고쿠로투쟁단이 이와 같은 국노 본부의 배반적 태도를 비판하고
나서자, 지난 15년 간 계속되어 왔던 2,500엔의 생활원조금
지급을 동결하였다.
이와 같은 보고를 들으면서 우리는 국노해고자들의 기막힌
처지에 가슴 아파했다. 국노본부의 파렴치한 행태에 분노하였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국노 해고자들의 투쟁에 가능한 모든
지원과 연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노본부의 타락을 바로잡고,
진정한 복직의 가능성을 열고, 더 나아가 일본노동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노동현장에서부터 대중 투쟁력을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공감하였다.
일본 동지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
“파업이란 말 자체가 생소해요. 현장 대중투쟁을 통해 요구를
관철시킨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 먼 얘기 같아요.”
일본 노동운동이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아 역사와 사회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현장 대중투쟁을 살려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나의 주장에 상당수 일본 활동가들의
반응은 위와 같았다. 과거 격렬했던 대중투쟁을 경험한 지긋한
연배의 분들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암묵적 동의를 표시할
뿐이었다.
고쿠로 투쟁단의 경우를 놓고 보자. 그들은 일본노동운동의 어떤
세력보다도 계급적 입장에 있어 분명하다. 오랜 고난을 무릅쓰고
투쟁의 끈을 놓지 않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정부와 사용자의 채용거부, 현장의 노동조건 악화 그리고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배신에 대항하기 위해 찾은 투쟁 방법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ILO같은 국제기구에 제소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스스로의 힘과 투쟁에
의지하기보다는 국민여론과 국제적 지원에 더 큰 기대를 건다.
과거 급진적 정치이념과 대중적 투쟁으로 일본노동운동을 이끌어
온 장본인들의 투쟁방법으론 너무 초라하다. 왜 그런가?
오랜 패배와 좌절 속에서 끊임없이 강요당해 온 체념과
패배주의가 “대중투쟁, 총파업”하면 남의 이야기로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제3세계로부터
경제적 잉여를 착취하며 살쪄온 일본자본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체제내화하고, 노동조합 간부들을 관료화하는 공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결과이다.
일본 노동운동이 평화운동이나 지역운동에 유달리 관심을
집중하고 힘을 쏟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자구책이란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노동자 대중투쟁에
바탕한 힘을 상실하고, 대국민 여론사업이나 정치권 로비에
중심을 둔 운동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도 없다. 국철 민영화
반대투쟁 당시 사회당에 의존한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면 너무나 분명해진다.
90년대로 들어서면서 장기불황과 만성적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자본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강화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군국주의로 치닫는 정치적 모험주의가 헤게모니를 확장해 가고
있으며, 노동법 개악․비정규직 확대 등으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대폭 강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공격에 맞서 일본노동운동이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현장 대중투쟁의 복원”이다.
“총파업”의 무기를 가질 수 없는 노동자, 노동조합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개별적 주체일 뿐이다. 깊은 패배감에
체념하였거나,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자각과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 속에서 대중투쟁을 복원해 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치권력의 반동성이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의 현실 속에서 파업의 무기를 갖지 않는
투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이 최소한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나는 15년 간 계속되어 온 어렵고 힘든 투쟁에서 유혹을
뿌리치며 원칙을 지키며 싸워 온 고쿠로투쟁단이 일본노동자들의
희망을 밝히는 선구자로 적극 나설 것을 기대한다.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역으로 초국적 자본에 맞선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서 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가 없다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 기득권 유지와 실리주의에 빠져 역사적
반동으로 전락했던 제1세계 노동운동이 세계 노동계급의
일원으로서 원칙과 투쟁성을 차츰 되찾아 가고 있다. 노동자의
세계적 단결과 투쟁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고, 이를 이끌 중심
세력들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자의
미래를 낙관한다. 파렴치하고 탐욕스런 초국적자본과 신자유주의
세계권력에 맞서 온 인류의 평화와 평등을 보장할 새로운 세계의
희망을 쟁취해 가는 투쟁에 한국과 일본의 철도노동자가
앞장서자.” (일본에서 강연했던 내용 중에서)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