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웃는 풀무원의 영원한 청춘, 박제동”
-150여일 투쟁 중인 춘천 풀무원노동조합을 찾아-
손 미 아
한노정연 연구위원
인터뷰 • • •
춘천에 살면서도 풀무원동지들이 투쟁하는 현장을 이제야
찾았다. 무심한 내 탓도 있겠지만, 풀무원 동지들이 서울 본사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파업투쟁을 벌이고, 가두선전전과 전국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연대하느라 워낙 바쁘신 분들이어서 만나기가
쉽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생각으로 미안함을
덜면서, 풀무원 투쟁에서 여성의 힘^^, 박제동사무국장님을
만났다. 박제동사무국장님은 무척 젊어 보인다. 군복무 하러 간
아들과 이제 곧 대학에 들어갈 아들이 있지만 저렇게 젊은
모습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터뷰를 다 마치고나서 나는 그
푸르름은 바로 투쟁 속에서 나왔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파업은 언제 어떻게 시
작 되었는가?
- 회사의 단협 개악안,
도저히 안 된다!
환하게 웃는 풀무원의 영원한 청춘, 박제동
파업은 올해 7월 6일부터 시작해, 이제 150여일이 된다. 파업을
하자마자 회사는 7월에 바로 직장폐쇄를 했고, 8월 23일
출입금지가처분신청을 냈고, 10월 29일에 결정이 났다.
결정문에 따르면, 노동조합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회사가 임의로 임원 5명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회사
안에 5명이 있으면, 한명도 들여보내지 않았고, 차량출입도
시키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지어놓은 밥을 먹지도 못하고 쫓겨난
채, 회사문을 출입금지 당한지 오늘에 이르고 있다.
풀무원 동지들이 분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풀무원 동지들은 만나는 이마다 단협개악안이 가장 큰 문제라
이야기한다. 2004년 회사가 내건 단협개악안 중 노동자들이
분노하게 된 내용의 주요골자는 노동조합 임시상근을 삭제한 점,
징계사유항목에서 [회사의 재산에 고의로 막대한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서 “고의로”를 정말 고의로 뺌으로써 징계의 범위를
확대한 것과, [회사의 제규정 및 정당한 업무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를 집어넣은 점, 징계위원회 구성 및 의결부분에서
[징계의결은 참석인원의 2/3이상의 찬성시 해고한다고 정한
이전의 내용을 1/2이상 참석, 1/2이상 찬성시 해고하겠다]고
하면서 징계의 범위를 확대한 것,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확대한 것이다. 풀무원 동지들은 지금의 회사의 개악안은
노동조합 죽이기, 노동자 죽이기에 다름 아니며,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자본의 파렴치함, 변기통 ․ 똥통 이야기를 들어나
봤나?
풀무원 노동자들의 투쟁동안에 회사 측의 협박과 회유는 실로
엄청났다고 한다. 박제동 사무국장님은 풀무원 파업과정 중에
있었던 변기통․똥통 이야기를 해주신다.
의령공장에서의 일이었다. 공장이 폐쇄되고 조합원인 노동자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일부 비조합원 노동자들만이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잠시 열려진 문을 비집고 들어가 본
조합원 노동자들은 “으악!” 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업장 안에 왠 환자용 변기가 두개 있고, 응고제로 쓰이는 통에
냄새나는 것이 비닐로 싸서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냄새가 나니
한 통에 오물을 모아서 비닐로 싸서 모아놓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밥상이 있고… 현장에서 냄새나는 곳에서 변도 보고,
밥도 먹고... 회사는 일하는 비조합원 노동자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작업현장 안에다가 밥상과 변기통을 비치했던
것이다. 그제야 밖에서 투쟁하던 조합원 노동자들은 회사 측이
출입문을 폐쇄하고, 뒷문으로 비조합원을 들여보내 일을
시키면서 변기통을 작업현장에 아예 마련해두고 거기서 볼일도
보고 밥도 먹게 했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도대체 가축우리도
아니고 웬일이란 말인가?
정년퇴직을 며칠 앞둔 고령의 아주머니들이 열성인 이유
현재 어렵고 힘든 가운데, 정년퇴직이 며칠 앞둔 여성 조합원이
2명(1명은 손이 절단되었고, 손과 다리가 아프시다)이 요양을 못
들어가고 있다. 지난번 공장이 폐쇄되면서 회사가 위협 할 때도,
나이 드신 여성 조합원들이 투쟁을 사수하기 위해 현장을
지켰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시고, 식당을 사수하면서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조합을 지켜주었다. 한 고령의 여성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고 한다.
“나는 힘들게 살아갔지만 내 새끼들은 어렵게 살지 말라고,
탄압받고 어렵게 살지 말라고 끝까지 싸울 것이다”
풀무원동지들, 파업투쟁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현재 회사 밖으로 쫓겨나서 춘천 민주노총 사무실 윗 층에 진을
치고 있는데, 회사 안에 있을 때만큼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아침 8시에 강원지역본부에 출근하여 출석체크를 하고,
아침집회를 하고 8시 40분경에 봉고차를 타고, 본사로 이동해서
서울 수서역 앞에서 투쟁연좌시위를 한 후,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내려온다. 남성 조합원들은 2박3일을 교대로 노숙을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은 춘천에서 수서로 출퇴근을 한다. 교육이나 토론이
있을 시 1시간 늦게 출발한다. 1인당 30만원 걷었으나 완전히
바닥이 났고, 지금은 매일아침 국과 밥을 해가지고 올라가서
김치, 국, 밥을 해서 먹는다고 한다. 서울에 상주하는 노숙팀은
아침은 라면을 먹는다. 재정부족으로 1일 40명이 두 끼씩 사서
먹을 수 없다. 밥, 국, 김치만으로 먹기 시작한 게 벌써
지난달부터이다.
중도에 꺾어야 했던 풀무원 의령 동지들의 한
사무국장님은 의령동지들이 중도에 투쟁을 그만두어 매우
힘들었고, 함께 가지 못해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의령동지들 42명중 17명은 끝까지 싸우자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고, 노동자대회 전야제날 주막에 찾아와서 끌어안고 울면서
미안해했다고 한다.
회사는 의령노동자들에게 벌써 길들이기 작업을 하고 있다. 동네
정화작업을 시키기도 하고, 청소년수련관에서 공장장이 훈시를
하기도 한다. 조합원들이 길들이기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항의조차 못하는 의령노동조합을 박제동사무국장님은 못내
아쉬워했다.
2000년에 설립된 풀무원 노조, 불과 몇 년 만에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박제동 사무국장님의 대답이 지난 경제위기(IMF)때 탄압을 너무
받아서라고 한다. 하루에 14-17시간 일했고, 연월차도 못쓰게
강요당했다.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길러준 가장 큰 것은
교육효과라고 한다. 노동조합은 그동안 1년에 12시간인
조합원교육을 모두 쓰면서 노동자 교육을 꾸준히 했다. 교육을
12번 거치는 동안 조합원들은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신뢰구조란다. 하나에서 끝까지 회의구조이다.
집행부와 조합원과는 믿음이 있었고 의사소통이 항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것이 가장 컸단다. 자본도 신뢰를
이야기하는데, 자본이 이야기하는 신뢰는 신뢰가 아니고,
조합간부진과 조합원과 솔직한 의사소통을 통해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쌓여서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연대활동이란다.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1주
주간작업, 1주 야간작업을 하면서 야간작업이 끝나고 연대지원을
나갈 때는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야간 끝나고 아침에 안
가겠다는 것을 가야한다고 하면서 빠짐없이 갔던 것이 지금
노동자의 투쟁을 만들었다. 노동자대회에 갈 때 노동자들은 잠
못 자고 가면서 불만도 많았는데, 집회에서 계속 듣고 배운
것들이 투쟁력을 기르게 한 것 같다고 한다. 비용도 엄청
깨졌다. 이런 활동이 그래도 지금의 단결력을 만들었다.
사무국장님은 그전의 그런 연대활동들이 있어서 지금
파업투쟁중에 연대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단다.
동지애의 감동은 끝이 없다!
투쟁 중에 동지애의 감동은 끝이 없다. “조합원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도 끓여주고 제 생일날에 남성 조합원이 미역국을
끓여주었어요” 사무국장님이 말하신다.
아들은 엄마의 삭발한 모습을 가슴에 묻고 살고, 엄마는 아들을
위해서 끝까지 투쟁한다!!
박제동사무국장님은 3차 투쟁때 수서역 앞에서 삭발을 했다.
46년 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깎았다. 큰아들이 9월 6일날 입대를
했는데, 집에 안 들어갔더니, 미처 삭발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삭발한 머리를 보고 말을 잇지를 못했다고 한다. 아들은
엄마의 삭발한 모습을 보고 처음엔 가슴이 아팠으나,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군대 가서 힘을 내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엄마는 아들의 그 모습을 장하게 여기며 오늘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