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 제 ◦ 노 ◦ 동
러시아 대선의 정세론적 의미
이 성 백 (연구위원, 서울대 강사, 철학)
지난 6, 7월에 걸쳐 마침내 역사적인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졌다. 결선투표에서 54%를 득표한 옐친이 13%라는
적지않은 표 차이로 주가노프를 누루고 재선되었다. 이 대통령
선거는 소련 체제 와해 이후 잊혀져 있던 러시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다시 한번 끌어모았다. 이번 선거가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것이 소련 체제 해체후 최초로 실시된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였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러시아 공산당 당수인 겐나디 쥬가노프가
승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데에 있었을 것이다. 이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산당이 쥬가노프가 대통령직까지 차지함으로써
개혁세력을 밀어내고 과연 권력을 재탈환하게 될 것인지가 특히
이번 선거에 초미의 관심을 끌게 했다고 할 것이다.
구체적인 진행과정과 그 속에서 돌출한 여러 변화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실 보도와 일차적인 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러시아 대선이 갖는 여러
문제점들과 의미들을 좀더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는 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 이런 취지에서 첫째, 선거 자체에 대한 분석과
평가 둘째, 대선의 결과로 벌어질 향후 정국변화의 예측 셋째,
대선 결과가 갖는 이행기 단계론적 의미 등이 대강 이 글에서
고찰하게 될 구체적인 내용이 된다.
옐친은 어떻게 ‘부활의 기적’을 이루었나?
러시아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대중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옐친의 인기는 “충격요법”으로 불리운 급진적 시장 개혁정책의
실패를 기화로 하여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그의 대선 예상득표율은 한자리
숫자를 넘어서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가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그보다도 더 적었다. 매달
조사되는 정치인 인기도 순위에서도 그는 80위 이하로 떨어져
고르바초프와 앞뒤를 다투고 있을 정도였다. 그가 국민들로부터
이 정도로 모든 신망을 잃게 된 데에는 상당히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었다. 물론 범국민적 여망이었던 경제개혁이란
대의를 지키지 못한 것이 필경 가장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옐친은 여러 측면에 걸쳐 범실만을 일삼았다.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과 체첸 사태를 비롯한 여러 실정(失政),
그리고 거의 상습적으로 벌어진 만취상태에서의 여러 한심한
작태 등이 그에 대한 신뢰를 상실케 하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
외국 순방 길에 술에 완전히 취해서 방문국 공항에서 일정을
취소하거나, 중심을 가누지 못하면서 외국 군악대를 지휘하는
옐친의 국제적인 망신행위는 국민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옐친은 선거전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거의 정치적으로 ‘식물인간’이
되어있었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말기 상태에
빠져있는 알코올 증독증과 이의 가장 결정적인 후유증인 심각한
협심증 때문에, 옐친은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일신상으로도
이미 생명이 다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판단되었다. 이런 판단
때문에 1995년 경에 옐친을 이을 개혁세력의 차세대 주자들에
대한 논의가 곳곳에서 숙덕거리게 되었다. 비록 개혁의 제대로
된 성과는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슈퍼인플레와 물가 인상을
일정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린 체르노무르딘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며, 서방에서도 그러한 관측 속에서 여러 통로를 통해
그에 대한 지지와 지원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체르노무르딘 스스로도 차기를 노리는 정치적 계산 속에서
자기의 지지 기반인 국가 관료들이 주축이 된
“우리집-러시아”당을 창당하기까지 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이제 이번 대선 최대의 의문점이 제기된다.
이미 정치적으로 거의 죽은 자가 되어있던 옐친이 단지 몇 개월
간의 선거전을 통해 어떻게 정치적인 ‘부활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일반 여론은 퇴역장성 알렉산드르 레베드의 부상을
이번 대선 최대의 이변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보다 옐친이 재선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대선
최대의 이변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이런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해명하기 위해, 이번 대선의 진행과정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 선거전 기간 동안에 옐친의 인기
만회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이렇다 할 사건도 없었다. 개혁의
성과가 나타나 경제가 호전될 기미도 전혀 없었고, 정치적으로도
체첸과의 일시적인 휴전 협정외에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사실 체첸과의 휴전 협정도 전혀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오로지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억지로 급조된 선거전략의 일환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렇게 선거전 동안에 옐친이 인기를 회복할
어떤 외적인 요소도 없었기 때문에, 옐친의 득표율을 높힌
요인들은 선거 운동 과정 내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옐친의 선거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이제 옐친의 재선을 성사시키기까지의 선거과정의 결정적
요인들을 재구성해 보고, 나아가 과연 이번 선거가 얼마나
공정한 선거였는지를 평가해 보도록 한다. 서방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대선의 공정한 시행을 감시하기 위해 전세계로부터
파견되었던 각국의 감시단들은 이번 선거가 대체적으로 공정하게
치루어진 선거였다고 평했다. 그런데 공명선거와 부정선거를
나누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투표함 바꿔치기, 몰표, 유권자
매수와 정치적 압력 행사 등을 대표적인 부정선거의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선거에서는 지금까지 연필로
투표용지에 표시를 해오고 있는데, 이것이 조작의 우려가 있어,
이 연필을 지울 수 없는 다른 도구로 대체할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이것은 옐친 진영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옐친측이 개표과정에서 표식을 옐친 지지 쪽으로
변조하는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음이 우려되었다. 이러한 류의
전형적인 부정은 이번 선거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는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과연 투표와 개표 과정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이것만으로 공정선거라 할 수 있을까?
온갖 선거부정이 자행되던 자유당 시절 농촌에서 출마한 어떤 한
후보는 각 농가에 새끼 송아지 한 마리씩을 나누어준 뒤, 선거
기간이 되자, 각 농가를 돌면서 “어떻게 새끼 송아리는 잘
자라고 있는지요?”라고 물었다. 이것으로 그의 선거유세는
충분했다. 비록 투표와 개표과정에서의 직접적인 부정은
없었지만, 서방언론의 일반적인 평과는 달리 이번 대선은 선거
전 과정에 이 자유당 후보가 행한 류의 모든 불공정한
선거수단이 동원된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부정선거였다. 공정한
선거유세를 감시해야할 선거관리위원회가 옐친의 수족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옐친 진영은 선거전에 모든 관권을
총동원했다. 각 지방 주지사들에게 정치보복 등의 각종 위협을
통해 자기들의 선거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종용했다.
나아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방송 등 모든 대중 언론매체들을
옐친의 이미지 부각에 적극 활용했으며, 쥬가노프 등 다른
후보들에게는 텔레비젼 출연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차단되다시피 했다. 각종 여론조사 기구도
선거전에 적절하게 활용되었다. 작위적으로 이루어진 여론
조사를 통해 마치 옐친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것처럼
꾸며졌다. 이 여론조작은 옐친에게 실망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부동층을 다시 끌어들이는데 큰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국내적인 요인외에 서방 열강들의 직간접적인 선거 관여도
옐친의 지지율 상승에 막대한 역할을 했음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한편으로 공산당이 집권할 경우 모든 외국 투자를
중단시키고, 러시아를 다시 고립시킬 것임을 분명히 하여,
유권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당한
액수의 차관 제공 등을 통해 옐친 진영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옐친 진영의 선거전략 중 최대 걸작은 극비에
이루어진 미국 선거운동 전문가들의 고용이었다. 이들의 고용은
대단한 정치적 모험이기도 했다. 이 사실의 발각은 옐친이 결국
미국의 정치적 꼭두각시라는 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거전략 입안에서부터 선거전 각
국면에서 여론조작 등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거운동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했다. 마치 신분을 숨긴 채 동네
조기 축구회에 끼여서 종횡무진하는 프로 축구 선수에 비유될 수
있을 이들의 활동이 1차 선거에서 35%를 얻으면서 옐친을
최다득표자로 만들어 놓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미국의 선거 운동 전문가들의 치밀한 선거전략과 이에 의거하여
모든 이용가능한 수단들이 총동원된 총체적 부정선거운동이
옐친의 정치적 부활이란 기적이 일어나게 했던 것이다.
한가지 덧붙여 부언해 둘 사실은 옐친 진영의 대선
시나리오이다. 이미 풍문으로 나돌기도 했는데, 이들은 다른
한편 1차 투표의 결과를 보아 옐친이 선거를 통해 재선될
가능성이 불투명할 경우, 친위 쿠테타를 일으켜 독재체제를
수립해서라도 권력을 유지할 시나리오를 미리 짜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1차 선거 후에 해임된 강경파의 한 사람인 소스코베츠는
미국인 선거 운동 전문가들을 비밀리에 접견하면서, 이들에게
선거일로부터 한달 전에 자신들이 선거에 지게 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럴 경우에는 선거를
취소할 계산이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분명해지는 것은 ‘민주주의자’로서 공공연하게
자처했던 이들에게 결국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어떤 식으로든지
유지하는 것이었으며, 민주적 절차로서의 선거란 단지 형식적
명분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옐친이
최다득표를 함으로써 이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일차 투표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난 뒤, 결선 투표에서 옐친의
당선은 곧바로 기정사실화 되어버렸다. 14, 5%로 예상을 뒤엎고
세 번째 득표자가 된 군장성 출신 레베드가 결선투표에서 옐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사실 주가노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을 점쳤던 이유는 지난 총선 득표율을 고려해 볼 때,
공산당 표에 반옐친 진영에 속하는 애국민족주의 진영의 표가
주가노프에게 올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슬라보필레’라고
불리우는 애국민족주의 진영은 근대화 역사상 러시아는
서구유럽과는 독자적인 문명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해온
반서구파였으며,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다시 부활하여
서구주의자들인 옐친 진영을 매판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이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소련 해체후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서구에서는 극우파로 간주되는 이들이 제3의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런 점에서 당연히 주가노프쪽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레베드가 애국민족주의적인 유권자들의 표를 들고
옐친 진영으로 말을 옮겨 탄 것이다. 당시 일각에서 그를 옐친
진영에 침투한 ‘트로이의 목마’라고 하나, 도리어 옐친에 의해
애국민족주의 진영에 심어진 ‘트로이의 목마’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얼마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미 일차 투표가
있기 몇주 전에 옐친과 레베드 사이에 물밑 접촉이 있었다.
여기에서 양자간에 제휴가 성사되어 레베드는 옐친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았으며, 아울러 텔레비젼 매체 등에 그의 얼굴이
더 많이 방영되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레베드는 옐친에게
돈에 팔려간 것이었다.
이미 대세가 결정된 상황속에서 야블린스키도 옐친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괴벽스런 행동으로 스스로
궁지에 몰리게 된 지리노프스키마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 보고자 하는 일말의 시도로 그간의 표독스런 비판의
꼬리를 감추고 옐친의 지지로 돌변했다.
대선 이후 러시아 정치 세력 판도의 향방
이번 대선은 러시아 정치 세력 판도에 상당한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그 중에서 가장 돌출된 변화는 레베드의 새로운 정치
강자로의 부상일 것이다. 옐친에 의해 그의 후계자로 암시되기도
했던 그의 행보는 앞으로 러시아의 정치 역학관계에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레베드는 그동안 대쪽 같은 성품을 지닌
청렴한 군인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는 사단장 시절 국방장관
그라초프의 전횡과 부패를 비판했고, 이 때문에 군복을 벗게
되었다. 레베드는 선거 유세 중에 “사회주의의 정체와
자본주의의 타락”을 모두 고치겠다는 정치적 신념을
표방하면서, 국가의 안보 기강 확립, 범죄 추방, 그리고 경제
부패의 척결을 구체적인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이때까지
그는 청렴하고 강직한 이념형의 정치인으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의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이념형보다는 권력형의 인물로 분류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신념보다는 권력 획득이 더 앞서는 정치인에
속한다는 뜻이다. 옐친의 건강상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부통령직을 요구하고 나선 데에서 권력을 획득하려는 그의
정치적인 야심이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물론 그가 어떤 유형의
정치인에 속할지는 앞으로 더 관찰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하여간 향후 예상되는 권력투쟁에서 그는 단단히 한 몫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통제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터프가이 레베드가 새로
끼어들게 된 집권 세력들 내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 지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물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혹자가 지칭하는
대로 ‘옐친 집권 2기’는 결코 순탄하지 않은 시기가 될 것
같다. 비록 옐친이 정치적으로 기사회생을 했지만, 이것으로
개혁파 세력의 위기가 일단락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앞으로 여러 지표에 의하면 경제 위기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경제 분석 연구소 소장인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는 내년은 러시아 경제를 위해 더욱 힘겨운 해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을 제출했다. 옐친의 건강 이상으로 불안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서구로부터의 투자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집권 2기의 특히 치명적인 문제는 비록 재집권은 했지만, 과연
옐친이 통치를 해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브레즈네프 말기에
그랬던 것처럼, 측근들은 어떻게든 옐친의 생명을
연장시켜보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으나, 이미 그의 사망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런 정황들을 고려할 때,
옐친의 집권 2기는 경제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차기를
노리는 후계자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은 레베드와 체르노무르딘 사이의 싸움으로
좁혀질 것으로 예상되는 권력투쟁에서 이 둘 사이의 권력배분은
쉽지 않을 것이다. 레베드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척결을 외치고
있는데, 체르노무르딘이 바로 이 타락한 자본주의의 대표적
상징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번 선거는 의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레베드의
부상을 통해 전통적으로 반서구파이자, 러시아 공산당의 의회 내
제휴 세력이었던 소위 ‘애국민족주의 세력’에 혼란을 가져
왔다. 정치적 야심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레베드가 옐친 쪽으로
말을 바꿔탐으로써, 애국민족주의 진영은 해체와 분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진영이 어떤 식으로 해쳐모여가
이루어질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
옐친의 대선 승리는 공산당을 위시한 러시아 좌파에게는 새로운
시련의 시기가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력강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미 1차투표 뒤에 별다른 선거유세도
벌이지 않던 주가노프는 연정을 제의한 바 있다. 이 연정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소수분파의 연합체인 공산당이 다시 분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레베드는 선거전부터 공산당을
포함하는 연정을 주장해 왔었고, 옐친도 재선이 확실시 된 다음,
연정의 시그날을 공산당에게 보냈다. 이는 옐친 측의
진의라기보다는 공산당 분열 작전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부 논쟁에서 러시아 공산당의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우파는
연정에의 참여를 주장할 것이고, 이에 대해 숫자적으로 다수를
형성하는 중도파와 좌파는 우파의 정책에 반대할 것이다. 이번
옐친의 승리가 공산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가 더욱 악화되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권력투쟁에
개혁세력으로부터 이반한 대중들을 자기 지지쪽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세력기반을 더욱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러시아의 이행기 국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현존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동구권 사회의 현재를 규정하는
기본 범주는 ‘이행기 사회’이다. 기존의 사회체제가 해체되고,
다른 체제가 형성되기까지의 과도기 사회라는 뜻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규정해서 현재의 동구권 사회는 이행의 출발점은
이미 필연적으로 주어져 있지만, 이행의 지향점이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이행기의 첫 번째 단계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이 단계에서 최초의 국면은 공산당 패퇴와 서구 시장경제 세력의
집권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두 번째로 치루어진 총선에서
구공산당 후신 정치 세력들이 재집권함으로써 동구권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얼마전 체코에서도 예상외로 지리멸렬했던
사회민주당이 재집권으로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두 번째
선거에서 집권당인 기민당과 거의 대등한 득표를 함으로써
이른바 ‘신도미노’ 추세는 계속해서 확인되었다.
러시아에서도 공산당이 총선에서 크게 약진함으로써 이 신도미노
현상이 러시아에까지 확대될 것을 기대케 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옐친이 재선됨으로써 러시아에서는 공산당 세력이
재집권하는 국면전환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신도미노 추세는
일단 크레믈린 문전에서 일단 주춤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옐친의 재선은 러시아에서는 여타 동구권들에서와는 다른
국면전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다시 말해 신도미노 현상이
여기에서는 적용이 안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았듯이 그것이 옐친 세력의 경제 개혁적 주도권과
정치적 지배력의 강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옐친의 재선은 경제적 위기 심화와 자기 세력의 약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지배권의 단순 연장일 뿐이다. 따라서 옐친의
재선은 다른 국면 전개 내지 신도미노 추세의 중지가 아니라
국면전환 내지 신도미노 추세의 지연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