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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매체와 노동운동의 결합

현장에서 미래를  제13호
김현숙

기획

자본이냐 노동이냐(12)

자본간 경쟁이 국경을 넘어 격화되면서, 국내 독점자본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총자본의 공세가 거세어지고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 자본의 신경영전략 등으로 드러나는 자본합리화 공세는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과 ‘자본 축적의 효율성’ 그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노동자의 생활과 노동을 새롭게 재편하려 하고 있다. 자본의 이러한 공세 앞에서 노동자는 ‘자본 축적의 논리에 전면적으로 순응하느냐’, 아니면 ‘미래 사회의 새로운 삶의 대안’을 찾아 투쟁하느냐의 양자택일에 직면해 있다. 이 양자택일의 문제는 단지 생산현장에만 국한되어지지 않고, 노동자를 둘러 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기되고 있다. 법적․제도적 측면만이 아니라 가치관․문화․습관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세계만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이 양자택일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자본이냐 노동이냐’.
이 기획은 생산현장에서의 노․자간 대립을 둘러 싼 쟁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둘러 싼 모든 영역에서 자본관계에 의해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 보이고, 노동자의 눈으로 세계와 미래를 재구성하고자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 열두번 째 내용으로 ‘영상매체와 노동운동의 결합’을 주제로 한 김현숙 씨의 글을 실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80년대 이후부터 노동운동이 ‘자기의 눈’으로 자기의 역사를 기록한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하면서 영상매체와 노동운동의 결합이 대중화되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영상매체운동의 과제로 필자는 노조의 영상매체 제작능력 강화와 영상매체운동 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각종 악법의 철폐투쟁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영상매체와 노동운동의 결합


김 현 숙 (한신대 강사, 사회학)


百聞이 不如一見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 ‘몸이 백냥이면 그 중에서 눈이 아흔 아홉냥이다'라는 우리 옛말들은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들이다. 실제로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80% 이상이 눈을 통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이야기들은 그다지 호들갑스레 과장된 말들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옛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단지 눈을 통해서 얻는 정보량이 압도적이라는 뜻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곧 알게 된다. ‘남의 눈'으로 본 것을 백번 들어 봤자 ‘자기 눈'으로 한 번 본 것만 같지 않다는 뜻, 즉 '누구의 눈으로 본 것이냐'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물건이나 사건도 ‘누구의 눈'으로 보았느냐에 따라서 달리 설명될 수 있다. 똑같은 사건을 보도한 각 신문들과 텔레비젼 뉴스를 비교해 본 적이 있는가? 최근에 광복절을 전후해서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한총련 집회와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매체들을 비교해 봐도 차이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연일 텔레비젼 9시 뉴스에는 학생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화염병을 던지고 하는 극렬한 장면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때 카메라는 어디서 돌아가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물론 전경들이 서 있던 쪽에서 학생들을 바라다 보고 찍었을 것이다. 만일 그 때 반대 방향에 서서 찍은 장면들을 우리가 봤다면 그건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뉴스에는 그런 장면들은 안 나오기 때문에 우린 추측만 해 볼 따름이다. 그러나 누가 그 뉴스를 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그 상황의 다른 모습들을 추측해 본단 말인가? “아, 그렇고 그런가 보지”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겨레 신문 1면에 나온 사진 2장과 그 밑의 설명 ‘학생-전경 모두 탈진'(8월17일)이라는 기사를 보고 나면 "모두 안됐어. 쯧쯧 …” 그러다가 그 다음날 받아든 신문 1면 상단에 있는 사진에 ‘우리는 집에 가고 싶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선 학생들의 사진을 보고 나면 “아니, 이거 애들이 집에 가겠다는데 경찰이 막고 있는 거야 뭐야?” 하게 된다. 도대체 그 사건 현장인 연세대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노사분규' 또는 ‘파업'이라고 보도되던 것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하게 했을까?
카메라, 어른들의 장난감? 딱지치기, 구슬치기 하고 공기놀이 하던 아이들이 자라면 무슨 장난감을 갖고 노나? 라이터? 카메라? 자동차? 아마도 이 중에서 카메라가 명실공히 가장 재미있는 장남감일 것이다. 딱지치기, 공기놀이가 단지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신체발육, 또래 집단 속에서의 사회성을 기르기 등의 기능을 하는 것처럼 카메라 놀이도 어떤 기능을 한다. 가족, 친구들, 그리고 회사 등등에서의 순간들을 영원하게 만들어 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자라던 어린 시절에는 아직 카메라가 어른들의 장난감이 아니었고, 직업사진가들만의 밥벌이 수단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껏해야 무슨 무슨 기념일에 찍은 사진들 몇장 밖에는 어린시절을 기록할 만한 것들이 없다. 그런데 요즘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기념일들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여러 모습들을 다양한 앵글로 찍은 사진들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고, 게다가 비디오 기록물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젠 돌잔치, 결혼식, 회갑연, 심지어 장례식에서조차도 비디오를 찍는다. 전문가들을 불러서 찍다가 이제는 친척들 중의 누군가는 가지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로 가족들의 기념일을 기록하고 두고 두고 보면서 같이 웃고 즐긴다. 아마도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분만실에서부터 무덤까지' 개인사의 주요 대목들을 영상으로 기록한 영상 기록물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른들의 장난감, 아니 요즘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기까지도 한 카메라는 개인과 그 집단의 기록을 통해 공통의 기억을 유지시켜 주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 전문가들만의 직업이었던 데에서 벗어나고 있고, 자신과 자신의 집단의 역사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도 특수층 만이 누리던 특권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젠 누구나 ‘남의 눈'이 아닌 ‘자기 눈'으로 찍은 영상물로 자기 집단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 만큼 영상매체가 대중화된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그걸 널리 상영해서 많은 사람들과도 함께 볼 수 없도록 제한하고, 금지하는 제도적․법적 문제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언로를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여러 시각들이 공존하며 상호 경쟁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지배질서를 유지시키려는 자본의 이해와 공권력의 집행 때문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뭐 그리 널리 알리고 말고 할게 뭐가 있다고 …' 하겠지만, 그 집단이 가족이 아니라 지역사회, 사회운동단체, 노동조합이라면 어떤가? 왜 이미 영상매체 제작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방송사, 영화회사 등 영상제작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만이 공개 상영할 수 있는가?

영상매체와 노동운동의 결합 - 그 역사와 내용

그럼 이제 노동운동 진영이 ‘남의 눈'이 아닌 ‘자기의 눈'으로 자기 역사를 영상물로 기록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지금 어떤 단계인가를 살펴보자. 다행히 노동운동도 그 어린시절부터 자기의 영상기록물을 갖고 있다. 초기에는 영상운동을 업(?)으로 하는 진보적인 영상매체운동 단체들이 그 작업을 해 주었고, 이제 비디오 제작이 대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 되면서 노동자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내기 시작하고 있다.

(1) 80년대
‘혹시 <순영이의 사랑 이야기>나 <우리는 떡고물이나 받아 먹는 그런 나약한 노동자가 아니다>는 제목의 슬라이드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과연 몇 사람이나 ‘예'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런 대답을 한 사람은 노동운동과 영상매체운동이 처음으로 결합된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람이다. 여성노동자회와 서울영상집단이 같이 제작한 <순영이의 사랑이야기>(1, 2부 각 20분)는 여성노동자 순영이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교육물이었다. 이것을 만든 서울영화집단(82년 창립, 86년 서울 영상집단으로 개칭)은 5공화국 하의 엄혹한 시절 충무로와 텔레비젼 방송국이 아닌 곳에서 지배계급의 이해를 반영하거나 대변하지 않는 대안적인 영상매체운동을 최초로 전개하였던 영상집단이었다. 이 서울영상집단은 민중성, 현장성을 강조하면서 농민들의 수세싸움을 다룬 <수리세>(1983. 구례의 카농조직과 같이 만듬), 소싸움을 다룬 <파랑새>(1986), 그리고 목동의 도시빈민 싸움으로부터 꼬방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 여름>(1984) 등의 8mm 극영화와 노동자 문제를 다룬 슬라이들을 만들면서 극장 영화,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에서는 보고 들을 수 없는 새로운 영상물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든 영상물들을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선 제작비가 적게 드는 8mm 필름으로 제작할 수밖에 없었던데 그 이유가 있다. 8mm 필름은 국내에서는 복제가 불가능해서 여러 벌의 프린트를 만들 수 없었고, 따라서 보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필름을 돌려야 하는 영사기가 널리 보급되어 있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매체 상의 제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5공화국 하의 엄혹한 분위기와 사회운동의 미약함이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사회운동과 영상매체운동이 결합할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회운동과 영상매체운동의 결합이 본격화된 것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였다. 장산곶매, 민족영화연구소, 한겨레 영화제작소, 바리터, 노동자뉴스단, 노문연 영상팀 등등의 여러 영상운동 조직들이 결성되었고, 많은 영상물들이 제작되었다. 시위현장의 현장감 있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활발히 결성되기 시작한 사회운동 조직들의 교육, 선전매체를 제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영상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 비디오가 등장했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인데, 비디오는 필름보다 화질은 떨어지지만 기동성있는 촬영이 가능하고, 대량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시기와 같은 정치적 격변기에 아주 유용한 매체였다. 자, 이제 그 시절을 되돌이켜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자. <오! 꿈의 나라>(16mm,극영화, 88년), <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비디오 다큐멘터리, 89년), <노동악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비디오 다큐, 88년), <5공이 6공인데>(비디오 다큐, 88년), <깡순이, 슈어프로덕츠 노동자>(비디오 다큐, 89년), <천만형제여 총단결하라>(비디오 다큐, 89년), <노동자뉴스1-7호>(비디오 다큐, 포멧방식 89년) …. 이 작품들이 ‘공영'방송의 보도 앵글에 맞서서 사회운동 진영의 시각으로, 노동자의 시각으로 정세를 분석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한 단계 더 진전할 수 있던 힘을 주었던 소중한 기록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여러 작품들의 이름을 억지로 기억하려고 애쓰지는 말자.

(2) 90년대 전반기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 감동과 함께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 ‘파업전야'(장산곶매,1990)가 있다. 전노협 원년을 기념하는 극영화인 파업전야는 실제 파업 중인 한 공장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극장에서도, 텔레비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노동자의 시각에서 만든 노동자의 영화였다. 공권력은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이 영화의 상영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이를 물리치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상영회가 열렸었다. 이러한 상황이 영상운동에 있어서의 조직적 발전을 한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파업전야' 상영을 계기로 그간 각기 활동하던 영상운동 단체들(장산곶매, 서영집, 노동자뉴스제작단, 노문연 영상팀, 바리터)은 ‘파업전야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영상운동 사상 최초로 공동투쟁체를 가동하였고, 이것이 이후 노동자영화운동 대표자회의라는 연대기구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의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반하여 영상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이 새로운 형태로 모색되기 시작했다. 전노협과 노동자뉴스제작단의 결합이 그것이었다. 87년 이래로 결성되었던 영상운동 단체들은 자체적으로 기획을 하여 제작하거나, 아니면 특정 사회운동 조직과 사안별로 결합하여 제작하거나 하는 방식이었고, 아직 특정 사회운동 부문, 특정 조직과 지속적인 결합을 이뤄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은 노동운동이 대중적인 형태로 성장하기 시작하던 1989년 과거 서울영상집단의 일단의 성원들이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하여 노동자대중과 보다 긴밀한 결합을 꾀할 수 있는 활동방식과 체계를 구상하던 중 임투 시기에 ‘들풀'이라는 소그룹과 한시적인 공투체를 결성함으로써 탄생되게 되었다. 1990년 독자적인 독립영화단체로 탈바꿈한 노동자뉴스단은 89년 <건설! 전노협 1, 2>(1989.12)를 통해 전노협의 건설과정을 기록하고 선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주로 전노협과 긴밀한 협의 하에 제작을 해왔다. 투쟁 속보, 노동정책보고서, 기획특집물(<공익광고 다시 봅시다>, <산업재해> 등) 등의 작업을 통해서 노동운동의 교육, 선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전노협과의 긴밀한 결합은 제작물의 내용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배급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조체계로 조직된 노동자 대중을 주요한 배급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배급망'의 구축은 이전의 영상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뉴스제작단 이외의 다른 영상운동 단체들이 해체되거나, 활동은 계속할 지라도 이제는 노동문제를 다루지 않는 상황으로 변화한 것을 볼 때도 조직적인 결합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결국 노동운동과 영상운동의 결합체로서 남아 있는 것은 노동자뉴스단 뿐인 것이다. 조직적 결합이 중요하다는 점은 대표가 철거지역에 살면서 빈민운동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는 푸른영상(90년 가을 결성)만이 지속적으로 도시빈민 문제를 제작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3) 95년 이후

95년은 민주노총을 건설함으로써 노동운동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던 해였다. 또한 영상매체운동과 관련해 볼 때도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해였다.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는 징후가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87년∼90년대 초와 같은 고양 국면에서 활동했던 전업적 활동가들의 영상운동 조직들은 소수만이 남은 반면, 일상생활의 영상문화화의 진전과 비디오 카메라의 대중적 보급에 따라서 일반시민, 노동자, 학생, 주부들이 카메라를 들고 자기의 일상 속의 문제들을 영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안적 영상매체운동의 새로운 주체가 막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YMCA의 시청자 시민운동본부가 실시한 2주간의 시청자 TV 제작교실의 수강생들로 구성된 ‘시청자뉴스제작단', 한겨레 문화센터의 비디오 제작교실 수강생들이 만든 ‘비디오로 만드는 세상'과 같은 조직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노조 내에 영상동아리가 조직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아자동차에서는 영상위원회가, 현대중공업, 동아건설, 지하철 등의 노조에서는 영상동아리가, 현대정공, 한국중공업 등의 노조에는 편집부 내에 영상담당자가 생겨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단위사업장 내에서의 주요 사건, 집회 등의 행사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민주노총 창립 대회 기간 동안 노동자뉴스제작단과 더불어 공동촬영단을 결성하여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노조의 영상동아리들끼리 모여 수련회를 함께 하는 등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시기 영상매체운동의 과제와 전망

일부 선진적인 노조에서 영상매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노조에서는 아직 이러한 인식이 없다. 신경영전략의 대두와 더불어 사내 방송을 통한 자본측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므로 이에 대응하여 노조에서도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우선 매체 비판 교육을 통해 노동현장 안팎의 영상매체를 통한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맞설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내방송을 통한 직접적인 것이든, 개봉관 극장의 영화나 TV뉴스, 공익광고, 뮤직비디오 등등을 통한 간접적인 것이든 간에 시기별로 관심의 주대상이 되는 것들을 망라할 필요가 있다.
매체 비판 교육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 매체를 직접 제작해 보는 것이다. 제작과정을 통해 그 미디어의 속성에 대해서, 제작자의 시각에 따른 의도적, 비의도적 왜곡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에서는 영상동아리들이 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들이 노동현장 안팎의 영상매체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할 수 있도록 지원할 뿐만 아니라, 직접 노동현장 및 인근 지역 사회의 문제들을 영상매체로 표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영상매체의 속성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제작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노조 영상동아리의 제작 능력은 사내 방송을 일방적으로 자본측이 끌고 나가는 것에 대해 실질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힘이 될 것이다. 이런 힘이 발전되어야 사내 방송 시간의 일정 부분을 노조가 따내서 노조의 입장에서 제작한 보도, 교육, 선전물들을 내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노조의 영상매체 제작 능력은 개별 노조의 범위를 넘어 설 때 보다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지역 내의 다른 노조들, 다른 지역의 동일 업종의 노조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나아가 전국 수준에서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KBS, MBC는 물론이고 후발주자인 상업방송 SBS도 지방 상업방송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비로소 그 위력이 커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대안적 영상매체운동을 하는 다양한 단체들과도 연대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관련 법규와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데 힘을 모을 수 있게 된다. 힘을 모아 싸워야 할 최대의 당면 과제는 ‘영화진흥법’과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에서 심의조항과 같은 악법조항을 개폐해야 문제이다. 최근 개정된 ‘영화진흥법'(1996년 7월),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1996년 6월, 이하 음비법)은 모든 영화와 비디오물에 대한 실질적인 검열을 여전히 규정하고 있다. 판매, 배포, 대여, 시청제공 등의 목적으로 제작한 모든 비디오물(음비법 제17조)과 모든 영화(영화진흥법 제12조)는 미리 상영 전에 공연윤리윈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체부는 민간인들로 구성된 공연윤리위원회는 순수한 심의기구로서 공윤의 사전심의는 검열이 아닌 민간단체의 자발적인 통제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윤의 구성, 조직과 운영, 경비 등을 볼 때 국가가 깊이 관여하고 있으므로 이는 자율적인 민간기구라고 볼 수 없고, 이들이 말하는 ‘표현행위를 사전에 억제하는 심의’란 실질적으로 검열인 것이다. 문민정부로의 이행이라는 허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해 제정해 놓은 법의 틀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어 국가 지배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기구가 법으로써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의조항이 있는 한 새로이 등장하고 있는 대안적 영상매체운동의 주체들은 제대로 자리도 잡기 전에 그 싹이 밑둥부터 잘려 나갈 것이다. 물론 노조에서 제작한 영상물도 심의를 받지 않고는 공개 상영될 수 없다.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은 심의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지 못한다'(영화진흥법 제18조 심의기준 제 1항)는 조항으로 자본의 이해에 반하는 영상물들의 상영은 모두 불법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음비법이 발효된 직후인 지난 6월 14일 도시빈민문제와 통일문제,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대안적 영상매체를 제작해 오던 푸른영상의 대표 김동원 감독을 연행했었다. 법과 공권력의 집행이 어떻게 폭압적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정 법안이 고시된 이래 이런 악법조항을 개정하기 위해서 계속 같이 노력해 오던 영상매체운동 단체들과 제반 사회운동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쟁취와 영화-비디오 법 폐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매주 토요일 7시 명동성당 앞에서 독립영화 거리상영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대책위원회에는 영상운동 단체 뿐만 아니라 정보연대 SING과 불교, 천주교 인권위원회, 인권운동 사랑방, 민예총, 그리고 민주언론운동협의회와 방송단일노조 건설 준비위원회 등 29개 단체가 동참하고 있다. 이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어려운 싸움이다. 언론 자유라는 기본 인권을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쟁취하려는 노력에 동참함으로써 영상 매체를 통한 자본의 일방적인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
위와 같은 노력들을 통해 대안적 영상매체 운동을 잘 발전시켰을 때인 21세기 초의 상황을 같이 꿈꾸며 의욕을 불태워 보자.

# 오늘 아침 사내 방송에서는 회사 경영진의 ‘제 2차 21세기 신경영 5개년 계획'에 대한 발표와 새로운 업무지침이 내려졌다. 저게 또 뭘 어쩌자는 것인지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을 시작하려 컴퓨터를 켜자 점심시간의 사내방송을 주목해 달라는 노조의 광고가 들어 왔다. 바쁜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같은 부서 동료들과 함께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노조에서 진행하는 점심시간의 사내 방송에 눈을 맞추었다. 방송에서는 노조정책실에서 나와 아침에 경영진이 발표한 5개년 계획의 생산목표와 업무 및 조직개편, 그리고 임금인상률에 대한 노조의 입장과 비판 및 대안을 제시하고 부서별 토론을 당부했다. 이어서 다른 지역에 있는 연맹 산하 다른 사업장의 소식들을 전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다른 노조들에서도 ‘제2차 신경영 5개년 계획'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한 것 같다. 이때 무거워지는 우리의 마음을 살짝 달래준 것은 이어서 나온 꼬마들의 뮤직비디오. 지난번 노조의 가족동반 등산대회 때 따라왔던 꼬마들이 보여줬던 재롱을 노조방송국에서 편집한 것인가 보다. 이것을 끝으로 점심방송은 끝. 이젠 부서별 토른을 해 봐야지.

## 민노총 출범 제 0회 기념 전국노동자 대회가 활기차게 준비되고 있다. 전야제 행사 중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노동자 비디오 페스티벌이다. 지난 일년 간의 투쟁 뉴스, 정책분석 다큐,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다큐드라마, 노동가요로 만든 뮤직비디오 등 여러 쟝르별로 다양한 작품이 출품되었다. 예선은 전국의 사업장별로 사내방송 시간에 방영한 뒤에 조합원들의 인기투표를 거쳐 치뤄진다. 투표 결과는 곧바로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집계되어 다른 사업장에서의 결과까지도 알 수 있다. 전야제 밤을 달구어 줄 본선에는 각 쟝르별로 각 3편 씩이 진출해 있다. 인기상은 이미 결정나 있는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진실상, 감동상, 기쁨상 등이다. 금년에 본선에 진출한 작품들 중에서 눈에 띄는 새로운 이야기는 재택근무를 하는 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매우 감동적이다. 재작년에 결성된 임시직 노동자 노조에서 처음으로 출품한 작품이다. 아마도 진실상은 자기 회사의 폐수 비밀 방류 현장을 기동성 있게 찍어서 경영진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보도한 00산업 노조 방송국에 돌아가지 않을까? 한/노/정/연

1996-07-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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