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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통제와 노동자건강

현장에서 미래를  제4호
장임원

연 ◦ 구 ◦ 논 ◦ 문

노동통제와 노동자 건강


장 임 원 (중앙대 의대학장, 이사장)


1. 문제제기

산업재해로 인한 연간 사상자수는 1983년 3,941,152명의 대상 노동자 중 156,972명으로 재해율이 3.98%에 이르렀던 것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나 1993년의 연간 사상자수는 대상 노동자 6,942,527명 중 90,288명으로 여전히 선진국 및 중진국에 비하여 높은 수준이다. 특히 사망자수는 1983년 1,452명에서 1993년 2,210명으로, 장애자수는 16,868명에서 29,932명으로 늘어났고 1992년의 재해강도율은 2.89로 1993년의 2.66보다 높은 수준으로 중대재해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1986년에 1조원을 넘어섰고 1990년에는 2조원을, 93년에는 4조3천6백26억원으로 엄청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노동자 1인당 4.37일로 싱가포르의 62배에 이른다.
앞의 통계 자료는 노동부가 제시하고 있는 자료로써 자료의 신빙성에 더 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컨데 91년에 실시한 산업재해 처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3,017개의 사업장에서 4,409명이 산업재해를 당했으나 2,851명만이 산재로 보고되었을 뿐 나머지는 공상 또는 의료보헙으로 처리되었다.

2. 사적 유물론에 의한 노동과정 분석

외상성상병 및 직업병은 물론 일반 질환까지를 포함하여 노동자 건강을 지배하는 노동조건은 노동과정 안에서 성립된다. 따라서 노동조건의 개선을 통한 노동자 건강의 증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노동과정에 대한 분석, 즉 노동과정이 누구 또는 무엇에 의해 어떤 기재로 통제되는가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사적유물론을 도입하여 노동과정의 기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사적유물론은 한 사회의 기초를 ‘생산’으로 인식하고 그 사회 전체를 분석한다. 한 사회를 분석하는데서 기초는 ‘무엇이 생산되는가’, ‘어떻게 생산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분배되는가’의 문제이다. 모든 생산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2가지 요소, 즉 노동과정과 생산관계에 의하여 특징지워진다.
노동과정은 자연 그대로이거나 미리 노동이 가해진 일정한 대상을 일정한 생산품으로 변형시키는, 즉 일정한 인간의 행위를 가하고 일정한 노동기구를 이용하여 변형시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생산관계는 노동과정이 실현되는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이고 생산과정에 포함된 인간의 행위, 즉 노동을 둘러싼 인간관계이다.
생산품의 양으로 표현되는 노동은 일정량의 인간 에너지의 지출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에 쓰여지는 인간의 에너지를 노동력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노동과 노동력의 개념은 구분된다. 즉 노동력은 이미 실현된 노동과는 철저하게 다르다. 이미 실현된 노동은 노동력의 표현, 즉 노동력이 소비된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소비해야만 하는 소비대상과 서비스의 가격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그 비용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품의 가격보다 낮은, 최대의 이윤율 남길 수 있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요구하고 여기에 노동계급의 힘이 작용하여 개입한다.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이 갖는 가치 이상으로 생산하는 가치이다.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양식은 노동력을 통제하는 방식에 따라서 크게 2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두 가지 양식은 노동자를 궁핍하게 하고 그의 건강을 착취하는 형태가 다를 뿐 잉여가치의 최대 증식이라는 목적에서는 같다.
이 중 하나는 전체노동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형태는 생산력의 발전이 저급한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난다. 이 경우에는 생산력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이윤량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임금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시간의 연장과 동시에 저임금도 같이 추구하게 되고 그 결과 노동자는 과노동과 저소비의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어 심각하게 건강에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 대중의 힘이 점차 증대함에 따라 자본가들은 노동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증식시키는데 한계를 갖게 된다. 따라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거나, 생산수단의 변화를 시도하거나, 노동조직을 조직화하거나, 혹은 노동자를 전문화시키고 분업화시켜 소위 ‘상대적 잉여가치’를 높여 나간다.
노동의 강화와 새로운 조직형태의 도입은 피로와 압박감을 유발시키며, 새로운 생산수단의 도입은 새로운 재해와 독성 물질에 대한 노출을 유발시킨다. 노동과정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노동 분화는 노동자를 노동대상과 노동수단으로부터,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 자신의 통제로부터, 자신의 기술과 지식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동료 노동자로부터 분리시킨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분리를 ‘소외’라고 부른다. ‘소외’는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연구 보고들은 소외된 노동자들에게서 불만, 불안, 압박감의 호소가 늘어날 뿐 아니라 사망, 질병의 유병률이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상의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2가지 양식은 모두 그 통제권이 자본가에게 있다. 전자의 양식은 노동력을 직접 통제하는 것에 반해서 후자의 양식은 생산수단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그러나 더욱 강력하게 통제한다.

3. 노동통제를 위한 법률적 장치

노동과정은 일차적으로 법률적 장치에 의하여 통제된다. 즉 노동자에 의한 노동과정의 통제를 배제하고 자본가에 의한 통제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노동조건 개선을 통한 노동자 건강 증진을 위한 전략은 자본가에 의한 노동과정 통제를 줄이고 노동자에 의한 통제를 늘리는 법률적 장치의 확보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선언적인 것일 뿐 노동과정 및 노동조건 결정의 주체는 하위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1) 노동조건 관련 법령 및 규칙과 그 우선 순위

법령(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이 있으며 적용의 우선순위는 상기의 순서에 따른다. 즉 상위의 어느 사항에 우위의 근로조건이 정해져 있을 때에는 그 규정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의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하위의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조건이 근로기준법상의 규정보다 상회한다면 하위의 규정이 근로기준법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2) 노동조건의 결정 주체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에서 규정하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결국은 근로자와 사용자의 자유의지는 상충되기 마련으로 그들의 힘에 의해서 결정될 수 밖에 없으며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취업규칙은 그 작성권이 사용자에게 있으며 근로자 대표(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서 첨부는 구비서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저촉될 때 노동부장관은 그 취업규칙의 규정에 대하여 변경을 명할 수 있다.

3) 법적용의 제한

노동조건의 결정주체에서는 노동자가 갖는 한계 이외에도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률적 강제성이 제한되어 있다. 예컨데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이 정하는 사업장(법에 의한 강제적 보호가 더 요구되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는 안전보건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4. 산업안전보건상의 노동조건 관계 규정에서의 노동자 참여

1) 안전보건관리 조직체계와 노동자 참여

①중앙정부 조직체계
산업안전 보건업무에 관한 기본 계획 및 중앙행정기관과 관련되는 주요 정책, 산업재해예방기금 운용계획을 종합적으로 심의 조정하기 위하여 노동부에 「산업안전보건정책 심의위원회」를 두고 노동자의 참여를 허용하고 있으나, 25인의 위원 중 정부측이 15명인데 반하여 근로자 대표의 수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수에 대해서 약간명으로 규정하고 있음) 그러한 실정은 전문위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기본 계획 또는 주요 정책 등으로 규정된 기능 즉 구체적으로 명시된 규정이 아니므로 「산업안전보건정책 심의위원회」의 역할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

②사업장내 조직체계
사업장내 안전보건관리조직체계는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로부터 안전관리자 및 보건관리자 또는 각각의 대행 기관과 관리감독자 또는 안전담당자로 이어지는 조직구조를 갖는다.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는 대개의 경우 공장장이 담당하고 전문직으로서의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및 대행기관은 기준 인원이 태부족이고 그 선임권 역시 사업주에게 있다.

2) 주요 노동조건과 노동자 참여

①노동시간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시간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1일에 8시간, 1주일에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그러나 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하여 1주일에 12시간 한도로 연장 근로할 수 있고 특별하 사정이 있는 경우에 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본인의 동의를 얻어 근로시간을 더 연장할 수 있으며 사태가 급박하여 노동부장관의 인가를 얻을 여가가 없을 경우에는 사후에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어 노동시간은 사실상 사업주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자의 동의를 받는데 저임금이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②작업환경
ㄱ.작업환경의 표준 및 기술상의 지침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부장관의 책임하에 안전보건의 조치로서 사업주 또는 근로자가 준수하여야 할 기술상의 지침과 작업환경의 표준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해당 분야별 기준 제정위원회를 구성,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새로운 유해, 위험 요인에 대한 기준 제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ㄴ.유해물질의 표시 및 유해성 조사
용기 또는 포장에 유해 물질의 명칭, 성분 및 함유량, 인체에 미치는 영향, 저장 또는 취급상의 주의사항 및 긴급 방재 요령 등을 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유해물질이 110종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 또는 수입하고자 하는 사업주는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미리 유해성 조사를 실시하고 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이 없고 사실상 유해, 위험 요인에 대한 노동자의 알 권리는 보장되어 있지 않다. 미국이 1988년부터 전면적으로 그리고 일본이 1994년부터 위해 공시제도로써 MSDS를 도입하고 있는데 그 대상 물질은 약 2,400종에 이른다.

ㄷ.작업환경 측정
옥내 소음 작업장, 고열, 한랭, 다습의 옥내 작업장, 옥내 분진 작업장, 4알킬연 작업장, 유기용제 작업장, 특히 화학물질(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으로 지정)의 제조 및 사용 작업장, 산소 결핍의 위험이 있는 작업장은 해당의 작업환경을 6개월마다 1회 이상 측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노동자 대표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작업환경측정에 노동자의 입회가 가능하고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노동자에게 알려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작업환경 개선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법적 강제성이 약하고 작업환경 측정 기관 선입권이 사업주에 있는 등 사업주 책임하에 이루어짐으로써 그 한계가 크다.

3) 건강진단 재해 조사 및 보건교육과 노동자의 참여

①건강진단
노동조건의 개선이 노동자의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근원적이고 1차적인 조치라 한다면 건강진단은 2차적 조치이다.
사업주는 채용시 건강진단, 정기적 일반 건강진단과 특수 건강진단을 실시하여야 하고 노동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사업주에게 특정 근로자에 대한 임시 건강진단의 실시를 명령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건강진단의 결과를 노동자에게 통보하여야 하고 작업장소의 변경, 작업전환, 근로시간 단축, 작업환경 측정, 시설, 설비의 설치 또는 개선 및 기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건강진단이 사업주의 책임과 지배 하에 이루어지고 있고 특히 사후 조치를 사업주의 자의적 결정에 맡기고 있어 건강진단이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이어지는데 있어서는 실효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의 특수 건강진단 기피 현상을 유발하고 있다.

②재해 조사
재해조사 분석은 또 다른 재해를 해방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는 조치로써 재해조사 분석의 결과에 따라서 재해요인, 재해의 책임, 예방대책의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재해조사를 누가 실시하느냐에 따라 재해조사의 결과는 달라질 소지가 매우 넓다.
사업주는 사망자 또는 4일 이상의 요양을 요하는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자가 발생할 때에는 재해조사를 실시하여 재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지방 노동관서의 장에게 보고하고 특히 중대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48시간 이내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노동자의 재해조사 참여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사업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재해조사의 결과는 재해의 1차적 원인을 인간 요인에 85%, 환경 요인에 15%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 요인의 제거에 초점을 둔 재해 예방 대책은 인간의 불안전성으로 그 효과를 얻기 어렵다. 따라서 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는 환경 용인에 맞추어져야 한다.

③보건 교육
보건 교육은 재해의 예방을 위한 훌륭한 대책이나 노동조건의 개선에 우선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보건 교육의 대상은 노동자 뿐만 아니라 사업주 및 안전보건 관리자를 그 대상으로 하여야 하고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보건교육이어야 한다.

5. 노동보건 전문가의 속성과 과학의 한계

노동보건 과학자, 산업안전의, 보건관리자 및 안전관리자는 노동조건의 개선과 노동자 건강 증진에 있어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의 속성과 전문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과학지식의 대부분은 자본의 후원으로 또는 자본에 의해서 생산되고 자본가의 이익 증대를 위하여 사용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어떠한 의식도 없이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추구하거나 때로는 자본과 유착한다. 또한 많은 경우에 있어서 과학은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성 때문에 건강 장해와 관계되는 동일한 자료(그 자료마저 불완전한 경우가 많다)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요인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의 여부에 대하여 과학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 하는 경우가 많다.

6. 맺음말

앞에서 우리는 노동과정이 자본가에 의해 통제되는 기제와 그 통제가 법률적 장치 속에 어떻게 보장받고 있는가를, 국가권력이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전문가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실로 그 위력은 노동자 개개인이 대처하기에는 너무 크다. 계급적 노력에 의해서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를 노동자 스스로의 것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995-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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