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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강좌/노동자 교양 경제학 독점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현장에서 미래를  제63호
채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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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ˇ상ˇ강ˇ좌

본 지상강좌는 연구소가 노동자 교양강좌의 첫 기획으로 지난 1월13일부터 주 1회 7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의내용을 강사가 수정․보완하여 싣고 있습니다.
강좌는 시간상의 제약으로 경제학의 많은 내용을 모두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진행도 주로 논쟁적인 방식으로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상강좌는 강사가 강의 과정에서 여러 제약으로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내용들을 보강하여, 강의를 듣지 못한 분들뿐만 아니라 강의를 들은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충실하게 정리하여 싣고 있습니다.

이번 '노동자 교양경제학'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그 운동법칙에 대한 윤곽을 수강생들이 머리 속에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윤곽을 형성할 수 있다면, 구체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점검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임․단협투쟁은 하면서도 임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속에 자본가의 이윤이 어떻게 녹아있는지 등의 임금교육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현장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지상강좌/노동자 교양경제학



독점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채 만 수
부소장





지난번에는 경제위기, 즉 공황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원인은 비자본주의 시대의 경제위기와 다르게, 과잉생산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 그런데 그 과잉생산이라는 것이 사실은 사회를 구성하는 노동자․농민 등의 욕망을 채우고도 남아도는 과잉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소득관계와 괴리되는 과잉이라는 것, 그리고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경제위기, 즉 공황은 필연적이고 주기적이라는 것 등이 그 대강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발달한 자본주의’라고 하더라도 예컨대 19세기의 자본주의와 지금의 자본주의는, 물론 자본주의 경제로서의 본질적 특징은 변함이 없지만, 형태와 운동 상에 많은 변화가 있어서 경쟁적인 산업자본주의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까지의 단계를 밟아 왔음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독점자본주의 및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특징과 운동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합시다. 독점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란 바로 현대 자본주의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만 그러한 현대 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 이전의 시기까지를 보기로 합시다.
1. 경쟁에서 독점으로
1)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의 특징과 그 운동법칙에 대해서는 일찍이 레닌이 ꡔ제국주의론ꡕ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참고로, 일반적으로 ꡔ제국주의론ꡕ이라고 불리는 이 책의 본래 제목은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서의 제국주의’(독일어 번역으로는, Der Imperialismus als hchstes Stadium des Kapitalismus)입니다. 물론 여기서 ‘제국주의’란 독점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데, 레닌은 이렇게 독점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 따라서 ‘최후의 단계’로 파악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 논쟁 혹은 시비가 있습니다. 독점자본주의니 국가독점자본주의니 하는 식의 파악 자체를 거부하고 부인하는 사람들, 즉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 대한 맑스주의적 파악 자체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부르주아 경제․사회학자들은 물론 여기선 문제로도 삼지 않습니다. 문제는 맑스주의적 파악을 기본적으로 승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논쟁 혹은 시비인데, 그 내용인즉 자본주의는 이미 ‘독점자본주의 단계’를 넘어서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한 지 오래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레닌이 제국주의, 즉 독점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 혹은 ‘최후의 단계’로 파악한 것은 오류라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과학의 르네상스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지난 80년대 후반에 일부에서 실제로 그러한 문제의식이 표출되었습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독자적 단계냐? 아니면, 독점자본주의 단계 내의 아단계(亞段階)냐”하는 문제 제기가 그것이었지요.
그런데,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사고 혹은 문제 제기는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를 비논리적으로, 일직선상에서 파악하려고 하는 잘못된 것이지요. 즉 자본주의가 비독점적․경쟁적 단계에서 독점적 단계로 이행하는 문제와 비국가적․‘자유방임적’ 단계에서 국가적․국가 개입적 단계로 이행하는 문제는 논리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격화되면서 국가가 필연적으로 경제적 재생산 과정에 개입하게 되지만, 그리하여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되지만, 독점 단계와 비독점 단계, 그리고 국가 개입적 단계와 비개입적 단계를 나누는 구분지가 다르기 때문에 추상적․개념적으로는 각 구분간에 여러 가지로 결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예컨대 비독점 단계와 비개입이 결합해서 경쟁적인 산업자본주의 단계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후진․후발 자본주의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독점적 단계와 국가 개입이 결합해서 비독점적인 국가자본주의 단계를 형성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본다면, 즉 독점이냐 비독점이냐 그리고 국가 개입적이냐 아니냐는 전혀 구분지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발달한 자본주의가 이미 오래 전에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했고,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자본주의 경제가 국가독점자본주의적이라고 해서 “레닌이 독점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 혹은 ‘최후의 단계’로 파악한 것은 오류가 아니냐”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자본주의의 현 단계는 여전히 독점자본주의=제국주의이면서 동시에 국가독점자본주의이기 때문이지요.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는 최후의 계급사회, 혹은 인류가 적대적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의 최후의 형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자본주의 사회가 역사적으로 그 형태를 바꾸면서 변화해갔다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를 최후의 계급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한다면 타당한 얘기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제국주의 혹은 독점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레닌이야말로 제국주의론을 쓰기 이전에 이미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독점자본주의란 거대화한 소수의 독점자본이 사회적 생산의 주요 부분을, 따라서 사실상 사회 전체와 국가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말하는데, 그 논리적 전제가 되는 ‘독점자본’에 대해서 부르주아 경제학 혹은 이른바 근대경제학으로부터 부정직한 이의가 제기되어 있습니다. ‘독점’을 얘기하는 대신에 ‘독점’과 이른바 ‘과점’(寡占)을, 즉 ‘독과점’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이는 실제로는 ‘독점자본’과 그 지배로서의 독점자본주의를 사실상 부인하는 어법입니다.
근대경제학에서 독점은 어떤 산업부문에 오로지 하나의 거대 자본만이 남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 비해서 소수의 기업이 그 산업 부문을 지배하는 경우는 독점이 아니라 과점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 부문은 하나의 거대 자본 대신에 현대, 대우, 기아 등이 아직 공존하기 때문에 현대 자동차나 대우 자동차, 기아 자동차 등은 독점자본이 아니라 과점자본일 뿐이고, 시장은 독점 상태가 아니라 과점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언뜻 보면 독과점이란 개념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문자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관념적인 것입니다. 독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기업이 그 시장을 다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독점이란 어떤 자본이 굉장히 커져서 여타의 자본들이 올리는 평균 이윤율보다 높은 이윤율을 올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어떤 자본이 거대해져서 그 자본이 구조적으로 다른 자본이 올리는 평균 이윤율보다 높은 이윤율을 올릴 때, 그 거대화된 자본이 하나든 둘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그 자본은 독점자본인 것입니다. 근대경제학적인 구별인 독점자본과 과점자본은 시장에서의 그 운동과 영향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에 독점자본은 이렇게 규정될 때에만 경제적, 경제학적 의의를 갖는 것입니다.

2) 자본의 집적과 집중
아무튼 현대 자본주의의 첫 번째 특징은 자본이 거대하게 집적․집중되어 있고, 또 시장과 사회가 그렇게 거대화된 독점자본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념적으로 자본의 집적이란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전화(轉化)에 의해서, 즉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획득한 이윤의 커다란 부분이 다시 잉여가치의 착취를 위한 자본으로 전화됨으로써 그 자본이 거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본의 집중이란, 오늘날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소위 기업의 인수․합병(M&A)을 통해서 자본이 거대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튼 독점자본이란 그러한 과정, 즉 집적과 집중을 통해서 거대해진 자본이고, 그리하여 이제는 고만고만한 크기와 힘을 가진 수많은 자본이 경쟁을 통해서 얻는 평균이윤 대신에 경쟁을 배제하고 평균이윤 이상의 이윤, 즉 독점이윤을 올리는 자본입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중요한 점은 이러한 독점자본과 독점이 자유경쟁으로부터, 자유경쟁의 결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레닌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맑스가 자본론을 썼을 때에는 압도적 다수의 경제학자들에게 자유경쟁은 ‘자연법칙’처럼 생각되었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이론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자유경쟁은 생산의 집적을 낳고, 이 집적은 또 그 발전의 특정한 단계에서 독점을 야기한다는 것을 논증했는데, 어용과학은 맑스의 이 저서를 무시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드디어 독점은 사실로 되었다. … 사실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예컨대 보호관세인가 자유무역인가 하는 점에서의 각 자본주의 국가간의 차이는 독점의 형태 혹은 그 출현 시기에 있어서의 비본질적인 차이를 조건지움에 비해서, 생산의 집적에 의한 독점의 탄생은 대체로 자본주의의 발전의 현 단계의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한 법칙이다. 유럽에 관해서는 낡은 자본주의[즉, 자유경쟁적 자본주의: 인용자]가 새로운 자본주의[즉, 독점자본주의: 인용자]에 의해서 종국적으로 대체된 시기를 상당히 정확히 확정할 수 있다―그것은 곧 20세기 초다.”
(宇高基輔 譯, ꡔ帝國主義ꡕ, 岩波文庫, pp.34~35)

자유경쟁으로부터 독점의 출현은 필연적인 법칙이라는 얘기지요. 이러한 독점의 출현을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내재적 제 법칙의 작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맑스의 말을 들어 볼까요?

“이 전화과정[직접생산자로부터의 생산수단의 수탈과정: 인용자]이 낡은 사회를 깊이와 폭에서 충분히 분해하자마자,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로, 그들의 노동조건이 자본으로 전화되자마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자신의 발로 서자마자, 더 한층의 노동의 사회화도, 더 한층의 토지나 기타 생산수단의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생산수단 즉 공동의 생산수단으로의 전화도, 따라서 또 더 한층의 사유자(私有者)의 수탈도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번에 수탈되는 것은 이미 스스로 영업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내재적인 제 법칙의 작용에 의해서, 자본의 집중에 의해서 실현된다. 언제나 한 사람의 자본가가 다수를 죽인다. 이 집중 혹은 소수의 자본가에 의한 다수 자본가의 수탈과 …”
(MEW, Bd.23, S.790)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위에서의 자유경쟁은 그것이 확립되자마자 적대적 경쟁을 통해서 그 자체를 부정해가고, 그리하여 집중 즉 독점이 발생한다는 얘기지요. 그것이 실제로 이른바 ‘자유로운 시장경쟁’의 본성이고 결과 아닙니까? 그리하여 결국은 자본주의의 경쟁적 단계를 지양하고 독점적 단계로 이행한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독점자본주의화의 과정에서, 특히 자본의 집중 과정에서의 공황, 즉 경제위기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황기에는 수많은 자본이 도산하고, 또 현실적으로 도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도산의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 시기야말로 자본의 집중, 즉 인수․합병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독점자본주의가 20세기 초에 성립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심각한 공황의 결과인 것이지요. 레닌은 포겔쉬타인(Vogelstein)의 ꡔ자본주의적 공업의 금융조직과 독점형성ꡕ(1914)이라는 책에서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873년의 대폭락과 함께,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에 계속되는 불황과 함께 대변혁이 시작되었다. 이 불황은, 80년대 초의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중단과 1889년 경의 대단히 맹렬한, 그러나 단명(短命)한 ‘붐’[활황]이 있었을 뿐, 22년에 걸친 유럽의 경제사를 채우고 있다.”
(ꡔ帝國主義ꡕ, pp.35~36 참조)

그리고 “독점의 역사를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총괄”하고 있습니다. 즉,

“(1) 1860년대와 1870년대―자유경쟁의 발달의 최고의, 극한의 단계. 독점은 겨우 인정될 정도의 맹아에 불과하다. (2) 1873년의 공황 이후. 카르텔이 광범하게 발전한 시기지만, 그것은 아직 예외적이다. 그것은 아직 강고하지 못하고, 아직 일시적인 현상이다. (3) 19세기말의 고양과 1900~1903년의 공황. 카르텔은 경제생활 전체의 기초의 하나가 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전화했다.”
(ꡔ帝國主義ꡕ, p.37)

레닌은 특히 “모든 종류의 공황이” “집적과 독점으로의 경향을 비상한 정도로 강화한다”고 확인하면서, 야이델스(Jeidels)의 ꡔ독일 대은행의 공업, 특히 철강업에 대한 관계ꡕ(1905)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하여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00년의 공황 때에는, 주요 산업 부문의 거대경영과 나란히, 오늘날의 개념에서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을 가진 경영, 즉 호경기의 파도를 파고 등장한 ‘순수’(즉, 결합하고 있지 않은) 사업이 아직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가격의 하락과 수요의 감퇴는 이들 ‘순수’ 사업을 곤경에 몰아 넣었다. 그런데 결합한 거대경영은 이러한 곤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든가 혹은 극히 단기간 그것이 문제로 되었을 뿐이다. 그 결과 1900년의 공황은 1873년의 공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정도로 공업의 집적을 초래했다.”
(ꡔ帝國主義ꡕ, p.49)

그런데 이렇게 자유경쟁적인 산업자본주의로부터 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대공황은 공업부문에서만이 아니라 농업부문에서도 심각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농업과 식생활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했지요. 예를 들면, 식품점에 가면 여러 가지 가공식품이 많지요. 우리가 보통 ‘서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이 가공식품들도 그 대부분이 사실은 이 시기 공황의 산물입니다. 공황으로 소비가 안되니까 대자본이 많은 식품을 저장했던 것이고, 그러한 대량의 저장을 위해서 개발된 것이 바로 가공식품이었던 것이지요. 서양에서도 이 시기 이전에는 소시지가 우리네 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여기서 한 가지. 이렇게 자본이 거대하게 집적․집중되고 독점화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생산수단이 집적․집중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또 노동력 역시 소수의 자본가 밑에, 소수의 공장으로 집적․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무언지 아시겠어요? “분산된 소규모의 생산수단을 집중․통합해서 그것을 현대의 강력한 생산의 지렛대로 전화시키는 것”(ꡔ공상에서 과학으로ꡕ), 낡은 사회를 파괴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프롤레타리아트를 대규모로 조직하고 훈련시키는 것, 바로 새로운 사회를 위한 물질적 주체적 조건을 형성하는 것, 그것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담당자인 부르주아지의 역사적 역할’이니까 말입니다.

3) 금융자본과 금융과두제
독점자본주의로 되면 공업이나 농업과 같은 생산 부면이나 그 생산물의 유통 부면에만 변화가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은행의 구조와 역할, 금융 부문에도 거대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은행이란 본래 지불을 중개하고, 사회에 흩어져 있는 유휴화폐를 긁어모아서 그것을 자본가들에게 대부함으로써 이윤을 낳는 자본으로 전화시키는 기구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아직 자유경쟁의 단계에 있었을 때에는 이러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은행도 고만고만한 크기로 다수 존재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함에 따라서 집적과 집중이 진행되어 독점자본주의 시대가 되면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만큼 거대한 힘을 가진 소수로 독점화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점자본화한 은행자본은 대산업자본과 유착하여 중․소기업을 인수․합병하고, 자본 참여 등을 통해서 그들 기업을 지배하게 됩니다. 거대 은행자본과 거대 산업자본간에 유착․결합이 형성되는 것인데, 그러한 자본이 곧 ‘금융자본’인 것입니다. 레닌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생산의 집적, 거기에서 발생하는 독점, 은행과 산업과의 융합 혹은 유착―이것이 금융자본의 발생사(發生史)고, 금융자본이란 개념의 내용”(ꡔ帝國主義ꡕ, p.78)인 것이지요.
그리고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이러한 유착은 당연히 이들 자본간의 ‘인적 결합’을 포함하고, 또 그것을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레닌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은행과 산업간의 ‘인적 결합’은 이들 은행이나 회사와 정부와의 ‘인적 결합’에 의해서 보완”(ꡔ帝國主義ꡕ, p.70)되고 있지요. 이 점이야말로 현대 부르주아 국가와 독점자본의 유착 혹은 그 국가의 독점자본에의 종속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보여 주는 것으로서, 이는 오늘날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고급 관리가 독점자본 기업의 중역으로 자리를 옮기고, 또 얼마나 많은 정부의 각료나 기타 고위 관리가 독점자본의 중역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그들 간에 얼마나 빈번한 사실상의 순환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실제로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예컨대 정부 각료의 대부분이 동시에 대자본가이거나 그들의 대리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다른 기준에서 보면 그들은 ‘불과 한 주먹밖에는 안 된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소수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누가 움직이는가 한번 보세요. 불과 수백 명도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기관의 주요 자리를 차고앉고, 주요 독점자본을 소유․지배하면서 이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나요? 그들간에 활발한 인사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불과 수만 명, 아니 어쩌면 불과 수천 명의 대자본가와 그들의 대리인들이 각 국가 및 국제기구의 주요한 자리를 차고앉아서 세계와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다름 아니라 바로 “‘금융과두제’(金融寡頭制)의 지배”라고 하는 상황이지요.
오늘날 많은 ‘진보적’ 인사들의 비판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대자본․대기업에 대한 ‘족벌지배체제’로서의 ‘재벌체제’는 이러한 금융과두제의 한 형태입니다. 어쩌면 가장 천박한, 가장 천민적인 형태겠지요.
그러나 이른바 ‘재벌 개혁론자들’ 혹은 ‘재벌 해체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족벌 지배체제’를 해체하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고 해서 금융과두제의 지배가 지양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금융과두제는 현대자본주의의 구조, 현대 자본주의의 기업구조와 절대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족벌 체제의 타도’의 기치를 들고 재벌의 개혁 혹은 해체를 외치는 자들의 주요 주장의 하나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지만, 이러한 주장은 재벌체제 자체에서, 나아가서 주식회사라는 현대 대기업체제 자체에서 이미 소유와 경영이 부당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은폐하는 주장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문경영인체제’를 주장하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독점자본의 합리화 방안으로서의 자신들의 ‘재벌체제 개혁’ 혹은 ‘해체’ 주장에 대중적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서 그들 자신이 규탄하는 바의, “불과 몇 퍼센트밖에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재벌 총수나 그 족벌의 부당한 지배”라는 주장과도 모순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재벌인 삼성이나 현대를 예로 들면, 이건희나 그 가족들, 혹은 정주영이나 그 가족들은 자신들이 경영․지배하고 있는 자본․기업의 주식의 불과 10퍼센트 남짓도 될까 말까 한 주식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고, 더욱이 엄청난 비율의 부채를 감안하면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곤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불과 1~2퍼센트, 혹은 3~4퍼센트도 될까 말까 하겠지요. 철저하게 그러면서도 부당하게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미 재벌체제 내에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대자본주의의 거대독점기업, 독점자본이 이렇게 극소 비율의 자본소유만으로 지배될 수 있다는 데에 금융과두제 지배의 필연성이 있는 것이지요. 현대 자본주의 기업형태의 이러한 본질적 측면에 비하면, ‘재벌 해체론자’ 등이 주장하는 ‘족벌 지배체제’나 ‘전문경영인체제’의 차이는 극히 비본질적이고 사소한 것 아닙니까?
이러한 ‘재벌 해체 투쟁’ 혹은 ‘재벌 개혁 투쟁’의 일환으로 오늘날 ‘소액주주 운동’이니 ‘국민주’ 운동이니, ‘국민기업’이니, ‘종업원 지주제’의 강화니, ‘우리사주제’니 하는 것, 한 마디로 ‘경제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것들이 대자본의 언론의 각광을 받는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레닌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실제 경험이 보여 주는 바에 의하면, 한 주식회사의 사업을 좌우하기 위해서는 주식의 40%를 소유하면 충분하다. 앞에서 본 것처럼, 오늘날에는 그보다 훨씬 적은 비율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왜냐하면 분산되어 있는 소주주의 특정 부분은 실제상 주주총회에의 참가 등등의 어떤 가능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적 궤변가나 기회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거기에서 ‘자본의 민주화’나 소생산의 역할과 의의의 강화 등을 기대하고 있는 (혹은 기대하고 있다고 칭하는) 주식 소유의 ‘민주화’란 것은 실은 금융과두 지배의 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다.”
(ꡔ帝國主義ꡕ, p.80)

즉 오늘날 이른바 시민운동을 비롯하여 ‘개혁’을 부르짖는 자들이 말하는 ‘재벌 해체’니 ‘소액주주운동’이니 ‘종업원 지주제’니 하는 것들은 사실은 독점자본의 지배를, 따라서 그것을 지배하는 금융과두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한 수단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애국주의, 경쟁력 이데올로기가 이러한 수단을 주요하게 매개하고 있지요.

4) 자본 수출
한편, 자유경쟁이 지배하던 옛 자본주의에서는 상품의 수출이 전형적이었음에 비해서,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되면 자본의 수출이 전형적인 것으로 됩니다.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 자체에서의 산업간의 극심한 불균형이나 광범한 빈곤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러한 불균형과 대중의 빈곤 때문에, 대량의 ‘자본의 과잉’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누차 얘기하지만, ‘자본의 과잉’이란 주민 대중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는 의미의 ‘과잉’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산업의 부문간 불균등 발전을 지양하고도 남는다는 의미의 ‘과잉’도 역시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이 재생산을 지속하고 축적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일정한 율의 이윤을 획득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과잉’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균등 발전도, 대중의 생활의 반기아적 수준도 모두 이 생산양식의 근본적이고 불가피한 조건이고 전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로서 머무는 한, 자본의 과잉은 그 나라 대중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 쓰이지 않고, 국외로, 후진국으로 자본을 수출함으로써 이윤을 끌어올리는 데에 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본을 대중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에 사용한다면 자본가의 이윤을 끌어내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ꡔ帝國主義ꡕ, p.103).
자본 수출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의 하나는, “자본 수출의 필연성은, … 자본주의가 ‘완숙하고’, 자본에 있어서는 (… 대중의 빈곤이라는 조건하에서) ‘유리한’ 투하 장소가 없다고 하는 것에 의해서 창출된다”(ꡔ帝國主義ꡕ, p.103)고 하는 점입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필요한 일정 율의 이윤을 올릴 수 없는 ‘한계 자본’이 주로 수출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수출되는 자본이 후진국에서 올리는 높은 수익이 “세계의 대다수의 국민과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과 착취의 기초, 한 줌밖에 안 되는 가장 부유한 국가의 자본주의적 기생성의 기초”(ꡔ帝國主義ꡕ, p.105)인 거지요.
자본의 수출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하는 것은, 그에 따르는 부대조건과 그 효과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통칭 ‘IMF사태’라고 부르는 97년 말의 외환위기 때에 그것을 가장 극적이고 가혹한 형태로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 효과는 물론 현재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말입니다. 즉, 한국의 외환위기를 기화로 국제 금융자본들은 IMF라는 국제기구를 앞세워서 아주 고리를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주권의 상실’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가혹한 조건을 내세우고 강요했던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오늘날 국제 금융자본, 다국적 자본은 한국의 경제정책을 좌우하면서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대폭 강화하고 말입니다.
물론 자본수출에 따른 이러한 가혹한 부대조건의 강요는 예외적인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차츰 정상적인 것으로 되어 가고 있지만 아무튼 현재까지는 예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 수출에는, 그렇게까지 가혹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부대조건이 따릅니다. “보통 차관의 조건으로서 차관액의 일부분을 채권국의 생산물, 특히 군수품, 선박 등등의 구입을 위해서 지출할 것이 결정되는”(ꡔ帝國主義ꡕ, p.108) 것과 같은 경우지요. 이러한 경우 “자본의 수출은 상품의 수출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본의 수출이 상품의 수출을 촉진한 전형적인 경우가 한․일관계입니다. 즉, 지난 60년대 중반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서 강행된 한일회담 타결과 그 결과로 이른바 ‘청구권 자금’이니 ‘원조’이니 하는 이름으로 들어온 일본의 자본이 오늘날의 강고한 대일무역 역조구조를 고착시켰던 거지요. 상품 수출 등을 촉진시키고, 그리하여 자본의 수입 국가를 경제 구조적으로 그 수출 국가에 예속시키는 수단의 하나로서의 자본 수출의 특수한 형태가 바로 이른바 유상․무상의 ‘원조’인 것이지요. ‘인도주의적’인 것으로 위장․치장되고 선전되는 그 원조 말입니다. 한/노/정/연

2001-0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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