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일수록 처음처럼
최도은 첫 콘서트를 다녀와서
한 진 용/편집기획실 차장
지난 1월 “도은아 추운데 노래나 하자”란 주제로 최도은의 첫
콘서트가 있었다. 나는 무척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하는
최도은 선배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노래를 무기로 10여년 이상
활동해온 선배가 처음으로 준비한 콘서트이기에 더욱 설레었고,
기대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집회에서는 도은 선배의 공연을 볼 수 없어 가슴 한편으로는 늘
아쉬웠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공연은 세종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서 2회씩 진행되었고 다녀온
사람마다 공연을 본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물론 내가 참석한 두
번의 공연도 첫 날과 마지막 날의 차이인지 아니면 그 날 그
자리에 모였던 동지들이 달라서인지 다른 느낌과 분위기였다.
그래서 공연 참관기라는 글 속에서 그 공연의 맛을, 그 날의
감동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어진다.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하라
날씨마저 탄압을 하는지 유독히 추운 겨울날 오후였다. 꽁꽁 언
몸으로 공연장에 모인 동지들의 상기된 얼굴에서도 느껴지는
혹독함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여는 마당으로 몸짓 선언의
춤꾼인 박현욱 동지가 나와서 <인터내셔널가>를 비롯한 공연에서
불려질 노래들을 가르쳐 주었다. 여는 마당에서는 그날그날 모인
많은 동지들이 무대로 뛰어 올라와 연대발언을 했고, 그러면서
나는 여기에 어떤 동지들이 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공연은 시작되었고, 자리에서 일어선 동지들과 함께 부른 첫
노래는 만국의 노동자의 단결을 외치는 <인터내셔널가>였다.
최도은 선배의 공연 리플렛에서 소개된 <인터내셔널가>는 1870년
파리꼬뮨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노동자 권력을 만들고
70여일간 싸우다 꼬뮨과정에서 사망한 유진 포티에르의 글이
삐에르 디제떼에 의해 작곡된 것으로 현재까지 전세계 노동자
투쟁에 함께 하는 노래라고 한다. 그리고 <인터내셔널가>로
시작해서 현장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와 80년대의 노래, 그리고
자신의 창작곡으로 공연은 진행되었다. 현장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로는 <불나비>, <동지의 길>, <민중의 노래>, <파업가>,
<철의 노동자>, <전노협 진군가>, <혁명의 투혼> 등이었다.
<불나비>는 최도은 선배가 부르는 것이 역시 노래의 맛이 난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거침없이 내지르는 소리속에서
최도은 선배의 운동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노래이다. <불나비>는 80년 겨울부터 불려진 노래로 당시
상황을 태내에 담고 있는 곡이라 하는데 특히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을 위해 투쟁했던 청계피복 선배들이 투쟁 속에서 많이
부르면서 노동현장에서 불려진 노래라고 한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과 <오월의 노래2>, <농민가>를 열창했다.
<농민가>를 부를땐 모두들 일어나 4박자 춤을 흥겹게
덩실거렸다. 창작곡인 <내일의 여성을 위해>는 실직 남편을 두고
여기저기 돈벌러 나선 여성 노동자의 삶을 경쾌한 리듬으로 만든
노래이다.
<돌아가자>는 해고되어 지쳐있는 친구를 보면서 힘내라고 만든
서정적인 노래였고, <그대로지>는 신자유주의, 정리해고,
고용불안, 생존경쟁을 담은 노래이다. 가사를 보면,
신세대 N세대 그리고 기성세대/ 사람들은 말을 하지 세상은
변했다고/
대머리 노가리 그리고 국민시대/ 사람들은 말을 하지 세상은
변했다고/
쥐꼬리만한 월급봉투 뛰는 물가/ 구조조정 고용파괴 우리는
생존전쟁/
그 무엇이 달라졌나 이름만 바뀌었지/우리살림 외면하는 세상은
그대로지/
노랫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21세기에는 뭔가 좀 바뀔
것처럼 외쳤던 자본과 정권의 공세는 현실에서 아무것도 바꾸어
주지 않았다. 변한게 있다면 더 많이 착취했을 뿐이고 탄압했을
뿐이다. 구조조정, 고용불안 속에서의 생존권 쟁취투쟁은 10년이
지나도 20년도 지나도 그대로인 우리들의 전쟁일 뿐이다.
<눈물꽃>은 최도은 선배가 정리해고,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지쳐 떨어져 사표를 쓰고 떠나는 사람, 투쟁을 통해서
돌파하자고 설득하는 동지들 모두를 보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청춘이 시들은 나의 가슴에/ 지나간 일들이 스쳐 지나고/
가진 자 오만의 끝은 멀은데/ 혼자서만 더 가지려 비굴하진
말자/
어제의 승리가 오늘 우리의 패배가/ 세월의 상처와 시련을
딛고서 성난 불꽃으로/
저 비정한 철판더미 그 속에서/ 내일의 꿈을 걸자
노동해방을/
지금 선배가 부르는 이 노래는 구조조정 싸움 속에서 지쳐있는
동지들에게 성난 불꽃으로, 희망의 불꽃으로 싸우자고,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인거라고 노래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정말 날씨가
추워도 현실에서 싸우는 동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도은아
추워도 니 노래만 들으면 하나도 안춥다”고 하는 동지들이
희망의 불꽃으로 춤추고 있었다. 오늘 이 싸움을 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동지들의 모습 속에서 해방의 투혼을 나는 느낄 수
있었고, 보았다.
열린 콘서트의 실험
최도은 선배는 무대에서 우리들을 하나, 둘 불러 세우는 시간을
마련했는데, 투쟁의 현장에서 찾아온 동지들에게 맘껏
이야기하라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지들의
이야기도 마련한 것이다. 한창 파업중인 한통 계약직 노조,
멀티데이타시스템 노조, 이랜드 노조, 마마 노조, 대우자동차
노조의 동지들이 자리에 있었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동지들의 지금 투쟁을 이야기했는데 콘서트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투쟁의 결의는 해방의 힘으로 해방의
노래가 되었다. 물론 최도은 선배는 우리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투쟁기금을 모금하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 자리에 모인 동지들은 그런 말들을 했다. 올 겨울 들어
동지들이 가장 많이 모인 집회라고, 제대로 싸움 한 번 못한
겨울 이 자리에서나마 투쟁하는 동지들 만나서 신명난다고...
나는 몇 가지 고민이 되었다. 우선 기존의 집회문화와 다른
점인데 그것은 이 콘서트를 구경하는 한 사람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물론 집회는
대중선동과 선전의 장이자, 투쟁의 장, 축제의 장이었지만,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머리 속에만 있는 공문구였고, 집회문화를
구경하고 박수 쳐주는 역할만 우리에게 주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 날 콘서트는 최도은 선배와 투쟁하는 동지들이 만든 투쟁의
장이자 축제의 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투쟁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고, 진정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박준성 선생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다.
평생을 바쳐 운동의 역사를 영상으로 만들고 계신 박준성
선생님은 노래운동의 역사를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다. 최도은
선배가 노래하고 선생님은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이 노래가
운동의 역사에서 어떤 자리를 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설명해
주셨다. 슬라이드를 본 것 중에 머리에 새겨진 <우리들의
죽음>은 농촌에서 가난을 못 이겨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문을 걸어놓고
일하러 갔다가 아이들이 불장난을 해서 불타죽은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림은
전교조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노래와 신문기사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떠오르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이 그림은
노래운동의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니는 노래일 것이다. 지금도
변한 것이 없는 현실이기에...
박준성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처럼 다양한 기획과 내용으로
동지들을 만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한다.
아무래도 눈으로 보는 현장의 싸움은 우리를 더욱 전선으로
나서게 하는 힘을 가진 것 같다. 한마디로 노래만 하는 콘서트가
아니라 영상 등의 다양한 기획을 통한 새로운 노동자문화의
가능성을 마련해준 자리였다.
도은아 추운데 소주나 한잔하자
콘서트가 끝나고선 텅빈 객석이 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술
한잔하는 뒷풀이도 준비되어 있었다. 먼길 오는 동지에게
나누어주는 도은 선배의 노래 한 자락과 한 잔 소주는 아주
넉넉하면서도 애달픈 것이었다. 뒷풀이 자리에 모인 동지들은
소주한잔 기울이며 가슴에 묻어두었던 노래 한 자락을 부르는
너도 나도 최도은이었고, 오랜만에 큰소리로 외쳐가면서 술을
마셨다. 최도은 선배를 표현하는 동지들은 투쟁하는 자신과 함께
투쟁하고 잠도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고, 늘 현장에서만
있었기에 가수라기보다는 누구보다 더 많이 열심히 투쟁하는
동지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도은 선배에게 할 말들을
많아 했던 것 같다. 그날 우리들은 모두 취해가고 있었다.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현실에, 도은 선배의 노래에, 추운 날씨에
그리고 술에, 사는 일 모두에 취해서 저마다 자신의 치열한 삶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콘서트는 끝없는 이야기로
이어져갔고, 아쉬움을 남겼다. 생각해보면 최도은 선배의
콘서트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자원해서 콘서트를 만들었고,
진행중에 실수도 많았지만, 돈을 들여 크게 만들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가슴 따뜻한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던 자리로 남는다.
콘서트의 수익금을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돌려주는 공연의 취지에
맞게 현실과 싸우고자하는 동지들이 만나 만들어 간 자리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대우자동차 동지들의 싸움이 한창이다. 그날
콘서트에서 보았던 대자 노래패 소리 동지들의 피끓는
분노와 함성이 현장에 가득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최도은 선배도
선언동지들도 몸 던져가면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화려한 조명아래서가 아니라 거리의 싸움꾼으로
자신의 투쟁을 만들어가고 있는 최도은 선배는 노래운동을
운동답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도은 선배가 말했듯이, ‘그냥
주저앉으면 영원한 패배일 뿐이고 딛고 일어서면 세상을 사를
활화산’이어서, ‘싸우지 않는 자 어찌 해방의 의미를 알겠나
사랑하는 동지야 영원한 동지야’라는 노랫말처럼 말이다.
지금도 투쟁의 현장 속에서 살아 숨쉬며 실천하는 최도은 같은
동지들을 많이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 콘서트의 설레임과 각오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늘 우리
곁에서 싸우고 투쟁하고, 노래하는 선배로 남았으면 한다.
콘서트에서 만난 동지들과 여전히 현실과 투쟁하는 동지 모두가
최도은 선배의 노래를 들으면서 힘냈으면 한다. 아무리 현실은
입술 꽉 깨물어야 살 수 있다해도 말이다.
“다같이 살 수 없으니 30%는 잘라낼 수밖에 없다는 자본의
횡포가 판치는 현실에서 나는 투쟁하는 그 30%와 함께 연대하며
살아왔다. 나의 노래는 그들에게 때론 위안이었고, 때론 투쟁의
채찍이었다. 함께 노래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삶을 얘기하는
동안 싸움에서 이기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투쟁에서 만나왔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고향에 내려가
신발가게를 하는 사람, 사과장사를 하는 사람, 노조 간부가 된
사람,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 각자 삶의 모습은 달라도 우리들
모두는 신자유주의 내외 독점자본의 이익에 철저히 내팽개쳐진
삶을 살고 있다. 정리해고제, 구조조정에 맞서 삶을 지키려
싸우는 우리들의 힘만이 해방을 안아올 수 있다. 주저앉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오늘 이 시간 힘찬 노래 한 곡
띄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