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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예견된 실패-공황 후 3년 한국 경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63호
강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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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예견된 실패

공황 후 3년, 한국 경제

강 성 윤/연구원




1. 머리말

이 글의 목적은 흔히 ‘IMF 체제’라고 일컬어지는 1997년 말의 공황 이후 3년간 한국 정부가 수행해 온 구조조정의 현황을 경제적 측면에서 간단히 점검해보는 것이다. 당시 외환위기의 형태로 발발한 공황 이후, 한국 정부는 이른바 ‘환란(換亂)’의 해결에 필요한 구제금융을 제공한 IMF와의 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합의사항의 핵심은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을 무제한 보장하는 각종 자유화, 개방화 조치와, 막대한 공적 자금의 투입과 대량의 정리해고를 동반하는 금융과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이었고, 그 결과는 각종 거시지표의 회복과 900억 달러를 넘는 외환보유고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국은 IMF의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들어가며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긴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2000년 상반기 이후 대우자동차, 현대건설 등 한때 ‘주식회사 한국’을 대표하던 대기업들이 퇴출 직전의 위기에까지 몰리고, 크게 하락한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신용경색이 지속되는가 하면, 주가가 1년 사이 반토막이 나는 등 주식시장의 침체와 함께 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이 더욱 철저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지난번과 같은 공황이 다시 도래할 수도 있다는 이른바 ‘제2위기설’이 횡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절대 다수 보수언론을 비롯한 자본가계급의 대변자들은 구조조정의 가속화를 통해 금융과 기업구조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변하면서,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배후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한국 경제가 성장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연고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불리는 이제까지의 국가-기업-은행의 유기적 협조체제 대신, ‘시장 중심 체제(market-based system)’로 표현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다시 말해 1997년 말의 공황은 과거 한국형 발전 모델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 경제를 장기적인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체제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이 얼마나 정부와 자본가계급의 의도대로 관철되고 있는가와는 별도로, 과연 이 구조조정이 자본의 안정적 축적을 보장해주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선,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에 대한 IMF의 처방이 철저하게 국제 채권단, 즉 화폐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처방은 채무국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약화시키고 한계기업의 퇴출과 통폐합 등을 통해 이른바 ‘산업합리화’를 도모함으로써, 해당국가의 자본가들에게도 보다 나은 축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거의 예외 없이 대외종속의 심화와 항상적인 경제불안정, 제반 노동조건의 악화와 빈부격차의 확대로 나타났으며, 현재까지의 진행과정을 본다면 한국 또한 같은 경로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IMF의 요구와 국내 독점자본의 이해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사실상 노동자 계급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단히 제시한 다음,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하는 정부와 자본가계급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최근 회자되고 있는 ‘제2위기설’의 근원이 사실은 그들이 위기 극복의 주문처럼 되뇌어 온 구조조정 자체에 내재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2. 노동자 계급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 ‘4대 개혁’의 본질

2차대전 이후 장기간 지속되어온 전세계적인 자본의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은 동시에 적당한 생산적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휴화폐자본을 점점 커다란 규모로 발생시켰다. 1970년대 초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급팽창한 이 자본들은 초국적 금융자본이라는 형태로 각국 통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을 일삼아왔으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주기적 공황은 점점 더 빈번하게 외환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외환위기의 해소를 위해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구들이 제공하는 구제금융은, 이미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윤율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 세계자본주의의 위기극복전략인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해당 국가에 관철시키는 확실한 계기로 이용되어 왔다. 한편 한국자본주의는 급속한 후발산업화를 통한 축적과정에서부터 국가주도의 금융구조를 통해 자본의 과잉축적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축적규모의 증대와 사회주의권의 몰락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예외적인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된 국제환경의 변화와 함께, 축적에 필요한 자본 조달의 자유와 축적전략에 대한 국가의 규율 완화를 요구하는 국내 독점자본의 이해에 조응하여 1990년대부터 금융자유화와 대외개방조치를 본격화하였고, 그 귀결은 초국적 금융자본의 공격에 뒤이은 1997년 말의 파국적인 공황이었다.

공황 직후 IMF가 외국 자본 유입과 대외신인도 회복이라는 명목 하에 강요한 고금리와 긴축정책이 사실상 공황을 연장시키고 공황으로부터 회복하는 것을 지연시켰다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1) 또한 이 시기에는 97년 말 종금사 대거 퇴출로 시작된 구조조정이 98년 6월 55개 기업과 5개 은행의 퇴출 조치 등으로 이어지면서 대량해고가 본격화되었다. 그렇지만 98년 하반기 이후 빠른 속도로 금리가 하락하고 긴축정책이 일시적인 경기부양정책으로 선회하면서, 98년 9월 정부가 1차 구조조정 마무리를 선언하는 등 구조조정의 속도와 강도가 적어도 가시적으로는 저하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언론과 경제학자/경제분석가들은 2000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금융권 부실과 연이은 대기업 부도로 인한 금융시장 경색, 주가폭락 등을 구조조정의 지연 탓으로 돌리면서, 2000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2단계 구조조정을 더욱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98년 3/4분기부터 99년 1/4분기까지 실업률은 계속 증가추세에 있었으며(<표 1> 참조), 1999년 2/4분기 이후의 실업률 감소 또한 2000년 말까지의 신규취업자 중 정규직(상용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6% 수준에 그치는 등 고용구조의 악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표 2> 참조), 구조조정이 정부의 경기부양정책과 병행하여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표 1> 공황 전후 실업률과 경제활동참가율 추이                        (단위: %)

 

1997

1998

1999

2000

1/4

2/4

3/4

4/4

1/4

2/4

3/4

4/4

1/4

2/4

3/4

실업률

2.6

5.6

6.8

7.4

7.4

8.4

6.6

5.6

4.6

5.1

3.8

3.6

경제활동참가율

62.2

59.5

61.5

61.1

60.5

58.6

61.0

61.2

61.2

59.5

61.3

61.3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ꡔ분기별 노동동향분석ꡕ, 2000. 4/4.



<표 2> 신규취업자의 종사상 지위별 추이                               (단위: %)

구 분

1997

1998

1999

2000

상용근로자

11.6

5.8

5.7

6.7

임      시

39.3

28.5

27.5

28.1

일      용

26.7

35.3

39.9

38.5

고용주?자영자

15.5

18.0

15.7

15.4

무급가족종사자

7.0

12.3

11.3

11.3

계

100.0

100.0

100.0

100.0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ꡔ분기별 노동동향분석ꡕ, 2000. 4/4.


한편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깃발을 들고 등장한 김대중 정부가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한 이른바 ‘4대 개혁’(금융, 기업, 공공, 노동 부문)은 얼핏 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고통분담과 체질개선작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선전문구들의 실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4대 개혁’이란 결국 철저하게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자본 합리화’, 즉 축적 체제의 재편을 시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 부문이 아닌 나머지 3개 부문에서 ‘개혁’의 진행과정이 대량의 정리해고를 필수적으로 동반하며, ‘개혁’의 가장 큰 성과로 선전되는 것들 또한 인원 감축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그 본질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회복하고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목표 하에 추진된 금융부문 개혁을 보자. 정부는 구조조정의 결과, “새로운 자산건전성 감독기준의 강화로 부실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가운데에서도 BIS비율 등 은행의 자본구조가 충실해졌으며,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제고되고 생산성도 향상”되었다고 주장한다.2) 그러나 은행의 생산성 지표로 사용되는 1인당 총자산과 1인당 예수금이 큰 폭으로 증가3)한 것은, 퇴출과 합병 등을 통해 은행의 수가 97년 33개에서 2000년 8월말 현재 22개로 감소함에 따라 은행당 평균 총자산과 자기자본이 각각 45.5%와 80.8% 증가하였고, 평균 점포수가 약 20%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당 평균 임직원 수는 오히려 3.4% 감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5+3 원칙’4)이라는 기조 하에 진행된 기업부문 개혁의 결과,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고 핵심역량 집중을 통해 경영실적이 향상되었고,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 정부의 평가이다.5) 그렇지만 4대그룹 평균 부채비율이 97년말의 479.8%에서 99년말 140.5%로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된 이유는 대부분 부채의 감소보다는 유상증자와 자산재평가 등을 통한 자본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기업의 실질적인 금융비용부담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빅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사업조정은 큰 성과 없이 오히려 4대 재벌의 자산총액과 그 비중만 늘려주는 결과를 낳았으며,6) 기업의 수익성 개선 역시 대부분 자산매각이나 주식시장 호조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의지하고 있다. 오직 노동생산성만이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태이다(<표 3> 참조).

또한 공공부문 역시 정부조직 인력감축과 함께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정리해고가 빼놓을 수 없는 매각조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요컨대 ‘4대 개혁’은 결코 네 가지 주요 부문에 대한 개혁이 아니라, 오로지 노동에 대한 ‘개혁’, 즉 대규모의 정리해고와 노동유연화를 통해 위기에 빠진 자본을 탈출시키려는 전략이며, 나머지 부문의 개혁은 이 ‘노동 부문 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한 사실상 거의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표 3> 제조업 생산성과 인건비효율 추이                              (단위: %)

 

1996

1997

1998

1999

노동생산성 증가율

5.5

6.5

7.7

17.9

인건비효율

(생산성/인건비)

1.88

1.86

2.15

2.33

출처: 유용주 외(2000.12), 「IMF 체제 3년간의 한국 경제 변화」, 삼성경제연구소, p.115.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개혁’ 즉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 대상인 노동자들의 단결된 저항은 자본의 위기 탈출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집단이기주의’라는 이름으로 단죄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생산적 복지’라는 미명하에 제공되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제외하고는 노동자 계급에게 다른 어떤 가능성도 주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동원가능한 모든 언론과 이데올로그들을 통해 구조조정에 성공한 영미식 자본주의에 대한 선전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듯 노동자 계급에 대한 철저한 배제와 일방적인 희생의 강요에 힘입어 성취한 ‘개혁’의 성적표는 일견 화려하다. 외환보유고는 97년 12월 당시 39억달러의 최저수준에서 2000년 12월 현재 962억달러로 무려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경제성장률도 98년 -6.7%에서 99년에는 10.7%, 그리고 2000년에는 9% 내외를 달성하였다.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0년에 2.3%에 그치는 한편, 약 110억불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였으며, 98년 6.8%까지 치솟았던 공식 실업률도 2000년에는 4.1% 수준으로 감소하였고, 공황 직후 급등했던 이자율과 환율도 적정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지난 3년간의 성과에 대해 ‘국민의 정부’는 “리더쉽과 국민의 결집된 노력, 그리고 대외여건의 호전에 힘입어 거시지표 등 경제전반의 회복을 이루어냈다”고 자찬하고 있다.7)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거시지표의 회복은 기껏해야 공황 이전의 상태로 복귀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의 상태가 크게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실업률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50%를 넘어서고, 36시간 미만 취업자 비중이 10%에 달하는 등 고용구조의 악화에도 불구하고(<표 4> 참조) 공황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득분배 불균형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는 97년 0.283에서 2000년 2/4분기에 0.317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증가하였다. 또한 소득 상위 20%의 소득점유율도 공황 이전 37%대에서 공황 이후에는 계속 40%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5분위배율은 97년의 4.49에서 2000년 2/4분기에 5.28로 증가하였다.8)


<표 4> 취업자의 종사상지위별/취업시간별 추이                        (단위: %)

구 분

1997

1998

1999

2000. 1/4~3/4

상용근로자

54.1

53.0

48.3

47.5

임      시

31.6

32.8

33.4

34.4

일      용

14.3

14.2

18.3

18.1

36시간 미만

7.4

9.4

10.6

10.0

36시간 이상

92.6

90.6

89.4

90.0

출처: 유용주외(2000.12), 「IMF 체제 3년간의 한국 경제 변화」, 삼성경제연구소, pp.18~20.



3. ‘제2위기설’의 근원 - 구조조정 자체에 내재한 위기의 원인

그러나 이처럼 노동자 계급의 희생을 대가로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공황에서 완전히 탈출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2000년 하반기부터 산업생산과 소비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제조업평균가동률, 설비투자, 소비자 기대지수, 기업경기전망조사지수(BSI) 등 실물지표와 체감경기전망 모두가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구조조정과 제한적 경기조절정책의 병행 추진으로 2001년 하반기부터는 5~6%대의 적정성장궤도로 진입하리라는 정부의 낙관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제2위기설’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시장 중심 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초래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답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경제 시스템 이식 자체의 어려움이다. 현재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이전의 공황기에 행해졌던 구조조정과 크게 다르다. 사실상 한국 경제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겪을 때마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정부, 은행, 대기업들이 대규모 빚잔치를 벌여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예컨대, 1972년의 8․3 조치는 정부가 부실기업들의 사채를 동결해 은행이 떠맡도록 하고 세금감면, 금리인하 등 기업 금융부담을 경감하는 것이었다. 또한 1980년대 중반의 산업합리화 조치는 기업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은행 빚 유예, 세제와 금융지원의 확대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위해 조세감면법이 개정되고 한국은행의 특별융자가 부활되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논리는 공황기에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국가의 구제를 최소화할 것을 요구한다. 즉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과 금융기관은 과감하게 파산시키고, 경쟁력 있는 건전한 기업과 금융기관들만이 살아남아서 미국식의 자본시장 중심 모델을 확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본의 급격한 파괴와 은행, 기업의 연쇄도산과 같은 고전적 형태의 공황, 즉 공황 자체를 전면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독점자본주의 하에서 공황의 전면화는 자칫 체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1998년 하반기부터 정부가 구조조정의 속도를 조율하기 시작한 것은 구조조정을 적당히 해도 된다는 인식 때문이 아니라, 이대로 밀어붙이다가는 새로운 축적 체제의 이식이 완료되기도 전에 체제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자본주의의 상대적으로 열악한 생산력 수준이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정권의 취약한 기반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철저한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외국 자본들 또한 막상 구조조정이 자국의 문제가 되었을 때에는 항상 정부의 개입과 구제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부가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신용완화에 나선 사례는 많다. 가장 최근의 예를 보자. 1980년대 내내 계속된 무분별한 과잉차입의 결과로 1990년대 초 미국 기업들의 금융구조가 악화되고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미국 정부는 공황을 방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연방준비은행은 1989년부터 1994년까지 금리를 많이 내린 다음, 낮은 수준의 금리를 계속 유지했으며, 이와 동시에 미국 정부는 정리신탁공사(Resolution Trust Corp.)를 통해 2천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지출하면서 저축대부조합 구제에 나섬으로써 금융시스템이 극심한 붕괴에 처하는 상황을 막았던 것이다.9)

둘째, 더욱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사실은 미국식의 ‘시장 중심 체제’ 자체가 결코 자본의 안정적 축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 자본시장은 결코 안전한 자본조달처가 아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에도 기업들의 신규투자에 필요한 돈이 얼마나 자본시장에서 동원되었는가에 관한 통계를 보면, 그 수치가 아주 낮거나 미미하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970년에서 1989년 사이에 신규 산업투자에 대한 자본시장의 기여는 미국에서 -8.8%, 영국에서 -8.0%, 일본에서 +2.7%, 독일에서 +0.7%였다.10) 또한 미국에서 1952년부터 1997년 사이의 비금융 기업 자본지출의 92%가 내부자금에서 나왔고 나머지 8%만이 외부 차입이나 주식 발행을 통해 조달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른바 ‘시장 중심 체제’에서 기업 외부금융이 갖는 중요성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1980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의 주식시장은 마이너스 자금공급원으로 기능(자본지출의 -11%)했는데, 이것은 비금융기업들이 외부차입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과 기업인수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주가를 부풀리는 데에만 주력했기 때문이었다.11)

결국 미국식의 자본시장 중심적 금융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기업의 주된 자금조달방식을 은행차입으로부터 주식 또는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로 전환하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전혀 다르다. 더욱이 한 나라가 자본시장 중심적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생적 기업들이 성장해 있어야 하며, 광범위하고 강력한 중산층에 의한 부의 축적이 뒷받침되는 등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12)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국가적 전략산업에 자금을 몰아주는 경제발전 전략을 고수해 온 한국에서, 대규모 신규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내부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구조조정은, 이제까지 축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던 은행을 버리고 ‘자금공급 기능 없는’ 자본시장을 선택한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투자의 축소와 성장의 정체로 귀결될 뿐 아니라, 단기적으로도 기업의 연이은 도산과 그에 따른 은행의 부실 증가로 구조조정을 끊임없이 계속해야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황의 원인이 전세계적인 과잉생산/과잉축적과 이윤율의 하락에 있다고 한다면,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산업의 기반을 확충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결국 새로운 과잉축적의 계기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초국적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구조조정 방식은 결코 신규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공급하는 자본시장의 조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들은 단기적인 주가상승을 장기적인 산업의 발전보다 중요시하며, 이를 위해 인수합병과 생산설비의 통폐합 등의 방법을 통해 산업의 규모 자체를 축소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또한 만연해 있는 전세계적 과잉생산의 부분적 해소책이기도 한데, 이 과정이 최근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에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통한 신용경색의 조장이다. 정부는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에게 국제기준인 8%의 BIS 비율보다 높은 10%의 기준을 요구했으며, 이에 미달하는 은행들은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금융지주회사로 편입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지침은 마치 IMF가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를 강요했던 상황과도 같은 영향을 미쳤다.13) 즉 은행들은 자금을 쌓아놓고도 BIS 비율 하락이 두려워 대출은 물론 초우량기업을 제외하고는 회사채 인수까지 거부했고, 시장 이자율은 크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자금을 구하지 못해 도산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다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늘어나면서 BIS 비율의 하락을 가져왔고, 그 반작용으로 은행들은 더욱더 돈줄을 죄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조차 건전성을 명분으로 한 BIS 비율 규제가 도리어 기업의 자금난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거세게 제기해 왔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발행한 막대한 규모의 회사채들의 만기가 도래하는 시점이 되자, 시장원리가 관철되는 자본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애초의 계획과는 정반대로, 정부가 직접 나서서 수십조원의 채권안정기금을 마련하고 신용보증기금이 보증하는 프라이머리 CBO(회사채담보부증권)나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 등을 발행하는 등의 편법으로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웃지못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4. 맺음말

최근 미국 경제의 경착륙이 가시화되면서, 세계 대공황의 가능성과 함께 구조조정의 전범으로 삼아 온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서조차 결코 안정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 없는 체제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미국식 ‘시장 중심 체제’란 항상 불안정한 금융자본의 민감한 반응에 휘둘리면서 끊임없는 구조조정 ― 정리해고의 일상화, 비정규직화와 같은 고용불안, 임금과 노동조건의 악화 등 ― 을 통해서만 기능할 수 있는 체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본가계급에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한 자본축적체제의 개조와 이식 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김대중 정부가 얼마나 초국적 금융자본의 의도에 충실하게 움직이는가는 두 우량은행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소매금융을 주로 해 온 두 은행의 특성상 합병의 효과 자체가 불분명하고, 합병 이후에는 반 이상의 점포와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병을 통한 주가상승을 기대하고 있는 대주주들인 외국 자본의 의도대로 정부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반강제로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14) 또한 부도처리 후 회생을 담보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대우자동차와 퇴출 직전까지 내몰렸던 현대건설의 예는 국내독점자본도 얼마든지 제거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볼 때,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한국자본주의가 이전에 겪었던 공황기와는 달리, 국내자본(구조조정에 보다 적극적인 국내독점자본을 포함해서)보다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더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이러한 ‘제국주의적’ 성격을 확대해석하여 마치 모든 것이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파악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은 국내독점자본과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학계와 언론이 계속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라고 외치고 있는 사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적어도 이들 모두를 미국 숭배주의에 젖어 있는 맹목적인 신자유주의교 광신도로 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것은 그만큼 한국 자본주의가 이전보다 훨씬 더 세계 경제에 적극적으로 편입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의 반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국내독점자본의 일 분파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표현되는 세계자본주의 질서에 확고하게 동참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과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초국적 거대독점자본에 뒤지는 한국의 독점자본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결국 국내 노동자 계급에 대한 보다 노골적인 공세를 통해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전방위 공격으로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합법화시킨 자본은, 회생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의 노조가 구조조정 동의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지난 2월 9일 노사정위원회에서 한국노총을 파트너로 전격적으로 맞교환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조항과 복수노조 허용조항의 5년간 실시 연기는, 이후 어느새 ‘주5일 근무제’로 둔갑해버린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에 대한 탈규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법 개악을 맞바꾸기 위한 신호탄이다.15) 또한 의료보험과 연금제도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개악과 민영화 추진 시도에 더하여, 소액진료비를 본인이 부담하게 하고 이를 위해 강제의료저축을 하게 한다는 발상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난 16일 대우자동차의 1,750명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정리해고장을 던진 데 이어, 19일 전격적으로 농성장을 침탈함으로써 한국의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살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구조조정의 가장 확실한,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대상은 노동일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대응도 구조조정에 대한 전면 거부 이외의 것일 수 없다. 우리는 이미 97년 말 ‘재벌해체/재벌개혁’이라는 허울좋은 명분 아래, 위기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던 자본의 정리해고 공세를 무기력하게 받아들였던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잘못이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속셈을 치장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자본의 노골적인 공세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가릴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1.2.20.) 

한/노/정/연


1) 덧붙여, 여기에는 한국의 산업자본을 신속히 회복시키지 않고 감가(파괴)시킴으로써 전세계적으로 만연된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을 일시적,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려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 재정경제부(2001.1), ꡔ우리경제의 비전과 정책방향ꡕ, p.57.


3) 일반은행의 1인당 총자산은 97년의 42억8천8백만원에서 99년 72억7천만원으로, 1인당 예수금은 97년 29억7천4백만원에서 99년 49억9천6백만원으로 각각 증가하였다.


4)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역량강화, 지배주주 및 경영진 책임 강화의 5대 기본원칙과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억제 및 부당내부거래 차단, 변칙상속․증여의 방지라는 3대 보완원칙을 말한다.


5) 재정경제부, 앞의 책, p.58.


6) 99년 말 현재 4대 재벌(현대, 삼성, LG, SK)의 자산총액은 96년 말에 비해 38.9% 증가하였고, 이들 4대 재벌이 30대 기업집단의 전체 자산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6년 말 51.4%에서 99년 말 57.6%로 상승하였다.


7) 재정경제부, 앞의 책, pp.1~2.


8) 유용주 외(2000.12), 「IMF 체제 3년간의 한국 경제 변화」, 삼성경제연구소 연구보고서, pp.17~21.


9) Doug Henwood(1999), ꡔ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ꡕ, 사계절, pp.355~6.


10) 이찬근(2000), 「미국식 금융모델은 파멸의 길」, 월간 ꡔ말ꡕ, 2000년 12월호, p.48.


11) Doug Henwood, 앞의 책, pp.123~9.


12) 이찬근, 앞의 글, p.48.


13) 김두한(2001.1), 「금융권 구조조정, 어떻게 볼 것인가?」,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1년 1월호, pp.14~5.


14) 정부는 처음에 우량은행간 합병은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을 천명하였다가, 두 은행의 합병을 종용하였고, 노조와 임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합병은 없다’고 후퇴한 바로 직후, 평소 합병에 회의적이었던 두 은행장을 통해 전격 합병을 발표하였다.


15)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은숙, 「노동시간 단축운동 항로 제대로 잡아가고 있나?」,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0년 12월호, pp.92~97과 ꡔ사회화와 노동ꡕ 75호(사회진보연대 발행)에 실린 「이제 노동시간 단축의 깃발은 내려져야 한다!」를 참조.


2001-0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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