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초국적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격이 격해지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 공공부문 민영화와 금융부문 구조조정은 내국 독점자본의 요구와 더불어 초국적 자본의 요구와도 일치하고 있는 사태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에 경제의 어려움, 제2의 경제위기 등이 회자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이 거론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금리인하는 경기활성화 정책이기 이전에 미국 경제가 그만큼 악화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정부는 IMF와의 협상에 의거 2001년 1월부터 외자 2차 개방을 하였습니다.
2001년 노동자․민중의 투쟁 역시 대우자동차 부도사태로 촉발된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더불어 비정규직 철폐투쟁,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등이 꿈틀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완수, 그 완결로서의 노동법 개악 대(對)노동자․민중의 구조조정 저지, 노동법 사수, 김대중 퇴진 투쟁이 맞붙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노동자들은 경제위기 이데올로기에 올바로 대처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에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이번호에서는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를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하여 경제위기를 틈타 들어온 온갖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파헤칠 필요가 있다는 판단하에 이러한 주제로 특집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현 국면* |
채 만 수/부소장 |
파국에 임박한 미국 및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1)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난 20세기를 가리켜서 ‘미국의 세기’라고 규정한다. 그러한 규정에는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확히 논리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 20세기의 특징을 가장 핵심적으로 혹은 가장 본질적으로 추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이의 제기는 타당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는 미국의 세기’라는 규정은 20세기의 주요하고 핵심적인 특징의 하나를 반영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20세기에는 일찍부터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그리고 국제 정치적 패권이 확립되어 강화돼 왔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듯이, 그 패권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확고부동한 것으로 되었고, 20세기 후기에 이를수록 문화적인 부면으로까지 전면적으로 확대되어 갔으며, 그러한 상태와 추이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리하여 그러한 면에서는, 비록 세력(歲曆)상으로는 21세기일지라도, 지금도 세계사는 역시 20세기사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경제가 지금 대파국에 임박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실제로 그렇다면,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대한 미국 경제의 비중․영향력 그리고 지배력을 고려할 때, 이는 바로 자본주의 세계 경제 자체가 대파국에 임박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압도적인 비중과 영향력․지배력은, 비록 그 호황을 통해서 다른 지역과 국가를 위기와 정체․불황에서 구제해 줄 수는 없지만, 그 위기와 불황을 통해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 전체를 위기와 파국으로 몰아 넣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 각국은 지금 미국이라는, 세계의 총수요의 거의 4분의 1을 소화하는 거대 시장에 기대어 생산을 지속하고 있고, 각국의 자본․증권시장의 상당 부분이 미국 지배의 국제 금융자본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심대한 공황으로 그들 국가의 경제가 수출에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자본․금융시장에 대혼란이 발생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공황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1)
이러한 상황은 당연히, 최근, 특히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에 미국 지배의 다국적 독점자본․금융자본이 전세계에 강행해 온 신자유주의, 그 중에서도 특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에 기초한 제반의 경제․사회정책이 거대한 도전과 파탄에 직면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계의, 특히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이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와서 급속도로 사실상 독점자본의 패권에 투항적으로 되어 왔고 제국주의적 (신)식민지 착취의 부산물이었던 작은 경제적 안락에 안주하던 자신들의 지난 실천을 반성․청산하고 자본의 지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에 나서야 함을, 혹은 그들이 그렇게 나설 수밖에 없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가, 따라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대파국에 임박했다는 조짐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그 중에서도, 미국 자본주의사상 최장기의 대호황이라던, 지난 1992년 혹은 93년 이래의 경기 팽창이 2000년 후반기 이후에 급격히 둔화되기 시작하더니, 지난 1월에는 제조업 생산이 마이너스 0.3%라는 축소생산을 기록했다는 미국 통계 당국의 발표가 있었다.
증권시장의 상황을 보면 더욱 심각하다. 미국에서 첨단기술주의 광풍이 불기 시작하던 1995년에 이들 주식의 가격 지표인 나스닥(NASDAQ) 지수는 1,000 이하였었는데, 2000년 3월에 그것은 5,100을 넘었다. 그러나 2000년 12월 29일 그 해 장을 마감할 때에는 그것은 이미 2,500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나스닥 18년의 역사에 가장 가파른 하락이었다. 보다 ‘전통적인 산업’의 대기업 주가 지표인 다우존스공업지수(Dow-Jones Industrial Index)도 나스닥보다 별반 나을 게 없었다. 그 역시 1998년 초의 8,000 이하에서 2년만에 급상승해서 2000년 3월에는 11,700 이상을 기록했는데, 2000년 말에는 10,800 이하로 떨어졌다. 유럽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부분의 증시가 요동쳤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2000년 3월 초 한때 280 이상을 기록했던 한국의 코스닥지수는 지난해 말 불과 52를 갓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고, 지금도 지수 80 언저리를 헤매고 있다. 종합주가지수 역시 그 형편이 크게 다를 바 없다. 모두 ‘드디어 올 것이 오고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하는 사실들이다.
실제로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수많은 부르주아 경제․사회학자들은 일견 번창 일로에 있던 미국 경제를 가리켜서 “인플레이션과 산업순환을 극복한 ‘신경제’”, 혹은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 데에 별로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수개월 사이에 그들의 담론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경기의 ‘연착륙’이니 ‘경착륙’이니 하는 용어들 자체가 부르주아적 소망과 공포를 반영한 헛소리에 불과하지만, “연착륙할 것”이라는 소망 섞인 기대에서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하는 당황감의 표현으로, 그리고 다시 “경착륙하는 것 아닌가”하는 공포의 외침으로 말이다. 이러한 공포는, 비록 한국 신문(ꡔ동아일보ꡕ 2001. 2. 23.)에서지만, “미 증시(에) ‘저승사자’[스태그플레이션](가) 오나” 하는, 가히 주먹만한 기사 제목으로까지 표출되고 있다.
미국 경제와 더불어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3대 축의 하나를 형성하는 일본 경제가 90년대 내내 위기와 정체를 거듭하고, 다른 하나의 축인 유럽 경제 역시 장기간의 걸친 불황에 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1997년 하반기 이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주요 국가 및 러시아, 중․남미의 여러 경제가 외환․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던 미국 경제는, 사물의 본질에는 별반 관심도 없고 그것을 파악할 능력도 없는 부르주아 경제․사회학자들에게, 그러한 ‘신경제’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하여, 그 원인을 찾아 나선 그들에게 때마침 “‘정보통신혁명’을 통한 생산력의 지속적 증대”라는 ‘정답’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정답’은 사실은 본질적으로 이윽고 그들의 기대와 소망에 대한 철저한 배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서 ‘신경제’ 혹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한가한 찬양보다는 ‘경기 하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하는, 보다 현실적인 소리를 듣고 있다. 물론 많은 논자들이 아직도 몽상에서 깨어나지 못해서, 혹은 다가올 사태에 대한 공포를 짐짓 외면하기 위해서 “경기가 곧 바닥을 치고 상승할 것”이라는 주문을 외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낙관론과 비판
실제로 많은 부르주아 경제․사회학자들이나 언론인들은, 더 이상 ‘신경제’니 ‘새로운 자본주의’니 하는 헛소리에 도취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직도 미구에 미국 경제에, 따라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 전체에 닥칠 대파국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비록 미국 및 세계 경제가 둔화되더라도, 그것이 이른바 ‘경착륙’하기보다, 즉 급격히 위기에 빠져들기보다 이른바 ‘연착륙’하리라는 믿음, 즉 단지 경제의 성장 속도나 성장률, 즉 자본의 축적 속도나 축적률이 다소 둔화되는 데에 그칠 것이라는 믿음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주로 주식시세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라는 미국의 한 ‘맑스주의자’는 그들의 이러한 믿음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에 근거하고 있다고 정리하고 있다.2)
첫째, 인터넷 첨단 정보통신 혁명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생산성을 항구적으로 증대시켰다. 과거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노동자 한 명당 산출이 매년 1~1.5%씩 증대했음에 비해서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 덕택으로 지금은 3~4%씩 증대하고 있다. 그것이 1960년대라는 황금 시대 수준의 보다 빠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발달한 OECD 국가들에서의 내년 및 그 후의 성장은 최악의 경우에도 약 3% 어름이 될 것이다.
둘째, 고도의 생산력이란 어떤 현저한 인플레이션의 폭발 없이 고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률은 낮게 유지될 것이지만,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장비에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임금을 지나치게 인상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노동자들이 그렇게 임금을 인상시키더라도, 회사는 컴퓨터화된 새로운 시스템과 인터넷에 의한 비용 절감을 통해서 그것을 보상할 수 있다.
셋째, 세계 경제가 둔화되면, 각국의 중앙은행은 2000년도에 그랬던 것처럼, 이자율을 올리던 자신들의 정책을 바꿀 것이다. 올해에는 이자율이 빠르게 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차금(借金) 비용이 줄어들면서 투자자들로 하여금 주식을 사도록 유도할 것이고, 그리하여 경제 둔화가 경기 후퇴로 발전하는 것을 확실히 저지할 것이다. 기업을 위해서 감세(減稅)를 계획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과 이자율을 인하할 것으로 기대되는 연방준비은행의 그린스펀 의장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자. 그러면 (너무 뜨겁거나 빠르지도 않고 너무 차거나 느리지도 않은) ‘이상적인’(Goldilocks) 경제가 지속될 것이다.
마이클 로버츠에 의하면, 이들 낙관론자들의 주장은 결국 과학기술혁명 혹은 정보기술혁명에 따른 노동생산력의 빠른 증대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정책이 계속적인 호황을 보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로서의 노동생산성의 증대가 자본의 위기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잠시 논의를 미루고, 미 연방준비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이자율 조작이 과연 공황을 방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이에 대해서는 마이클 로버츠가 훌륭한 반증을 들고 있다. 즉, 낙관론자들은 중앙은행의 이자율 인하가 자본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 가계의 소비 지출을 지속시켜서 투자가 붕괴하지 않고, 실업률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며, 그리하여 경기의 이른바 ‘연착륙’을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 낙관론자들은 “1929년에도 바로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929년 10월에 주식시장이 붕괴되기 수개월 전부터 6%였던 이자율을 내리기 시작하여 1931년 중엽에는 1.5%까지 내렸지만, 대공황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90년대에 일본도 ‘0%대의 이자 정책’을 취했지만, 장기적인 공황과 침체에서 일본 경제를 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3)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과학기술혁명 혹은 정보통신혁명
위에서 본 것처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과학기술혁명 혹은 정보통신혁명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빠른 증대는 호황을 보장하는 주요한 지렛대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예컨대, 일본의 저명한 공황론 연구가의 한 사람인 이무라 기요꼬(井村喜代子) 교수조차도 이렇게 쓰고 있다.4)
“자본제 생산에서는 경제 정체로부터의 탈각은 혁신적 기술의 개발(…)에 의한 본격적인 설비투자의 출현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데, [1970년대 이후: 인용자] 이러한 혁신적 기술의 개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재정․금융면으로부터 유효수요 확대정책을 취하더라도, 일시적 효과밖에는 없고, 불황은 극복되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70년대, 특히 후반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그 표현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듯 위 인용문의 끝에 다음과 같은 긴 문장을 괄호 속에 넣어 덧붙이고 있다.5)
“일본만은 70년대 후반 이래 ME=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응용 기기의 개발, 생산․유통과정에의 ME 기술․기기의 도입과 철저한 감량 경영에 의해서, IC, ME 기기,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대량 수출확대를 실현하고, 80년대를 통해서 ‘예외적’으로 수출 의존적 성장을 계속했다.”
이렇게 혁신적인 신기술의 개발, 즉 노동생산성의 증대가 호황을 보장한다는 주장은 일견 수미가 일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쟁’이라는 자본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무라 교수가 예로 들고 있는 예에서 일본이 ME 기술 덕택에 “‘예외적’으로 성장”을 구가했다면,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예외적인 것으로서 오직 경쟁 상대인 다른 나라를 희생으로 한 대가에 불과하다. 만일 경쟁하고 있는 모든 나라와 기업이 그러한 기술혁신을 달성한다면 ―이러한 상황에서만 경쟁이 아니라 기술 혁신 자체의 효과를 순수하게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혁신적 기술 개발이 호황을 보장하고, ‘경제정체로부터의 탈각’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하나의 국가가 그러한 기술을 독점하고 있더라도, 만일 경쟁하는 상대 국가들이 높은 관세나 기타의 비관세 장벽을 통해서 경쟁을 봉쇄해도, 그 기술 혁신이 그 나라의 ‘예외적’ 호황을 보장할 수 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즉 경쟁이라는 측면을 배제하고 고찰한다면, 기술 혁신, 혹은 보다 전형적으로 과학기술혁명이나 정보통신혁명과 그에 따른 노동 생산성의 증대는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적 경제위기, 즉 공황의 원인은, 가장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모순 자체, 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전유의 사적 성격간의 모순이고, 공황은 그러한 모순의 강력한 폭발이자 폭력적인 해결이다.6)
그런데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에게 있어서도 노동력에 있어서도 모두 이중으로 나타난다. 우선 자본과 관련해서는, “첫째로는 이미 생산되어 있는 생산력의 크기에, 새로운 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한 생산조건의 가치의 크기와 양의 크기에, 그리고 이미 축적되어 있는 생산자본의 절대량에 나타난다.”7) 여기서 “모순은, 극히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독자적인 성격은 기존의 자본가치를 이 가치의 가능한 한 최대한의 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데 대해서, 그것이 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이윤율의 저하, 기존 자본의 감가, 즉 이미 생산되어 있는 생산력을 희생으로 한 노동의 생산력의 발전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8) 그리고 생산력의 발전을 통한 “기존 자본의 주기적 감가는 이윤율의 저하를 저지하여 신자본의 형성에 의한 자본가치의 축적을 촉진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수단이지만, 이 감가는 자본의 유통과 재생산과정이 이루어지는 기존의 제 관계를 교란하고, 따라서 생산과정의 돌연한 정체나 위기를 수반하게 된다.”9) 즉,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되는 것이다.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에게 있어서 “둘째로는, 임금에 투여되는 자본 부분이 총자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다고 하는 것에, 즉 주어진 자본의 재생산과 가치증식에 필요한, 결국 대량생산에 필요한, 살아 있는 노동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는 데에 나타난다.” 이 점은,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노동력에 있어서는 “첫째로는 잉여노동의 증대에, 즉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단축에 나타나고, 둘째로는 주어진 자본을 운전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 충용되는 노동력의 양(노동자의 수)의 감소로 나타난다”10)는 점과 어울려, 역시 위기를 초래하고 그것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된다. 이는 유명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의 문제이고, 그에 따른 이윤율의 저하와 위기 폭발의 문제이다.
그리고 과학기술혁명 혹은 정보통신혁명의 비약적 전개 및 그에 따른 노동생산력의 발전과 관련하여 우리는 “모든 현실의 공황의 궁극적인 원인은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의 충동에 대비되는 대중의 궁핍과 소비 제한인데, 이 충동은 마치 오직 사회의 절대적 소비능력만이 생산력의 한계를 이루고 있는 듯이 생산력을 발전시키려고 한다”11)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혁명의 전개와 그에 따른 노동생산력의 증대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개되는 한에서는 한편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궁핍과 소비제한을 심화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생산을 증대시켜서,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을 격화시키고, 따라서 공황의 폭발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새삼 물어야 할 것이다. ‘20세기 말에 신자유주의 속에서 급격히 전개돼 온 과학기술혁명, 정보기술혁명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모순을 극한으로까지 격화시키고, 따라서 대공황, 대파국을 준비해온 것이 아닌가?’
대공황과 ‘케인즈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
아직 확정적으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임박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공황, 그것이 정말 현실적인 것으로 된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지금 한창 기세를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노동자들의 삶에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를 짐작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신자유주의가 왜, 어떻게 해서 등장하고 강화되어 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란 본래부터 자유주의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봉건제의 태내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토지 즉 생산수단과 신분제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군(群)이 없으면 성립․유지․성장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시장에 대한 봉건적 간섭과 억압을 배제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서 봉건적 억압과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 따라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유주의적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자유주의는 물론 자본주의적 착취와 수탈, 그리고 약탈의 자유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지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끝없이 계급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자유주의였다. 하지만, 이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발원지이자 일찍이 그것이 본격적으로 확산․발전한 본거지인 유럽을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대략 19세기 전반기까지의 이른바 자유방임주의 시대를 지나서도 아무튼 1920년대까지는 기본적으로 유지되었다. 주기적으로 거듭되는 공황과 수시로 일어나는 전쟁,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경제 전반, 재생산 과정 전반에 대해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가해졌다. 하지만, 전시국가자본주의 등 경제에 대한 국가의 이러한 간섭과 통제는 어디까지나 예외적․한시적인 것이었고, ‘자유주의’로의 회귀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실제로도 또 그렇게 회귀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의 대공황은 상황을 일변시켰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위기가 너무나 격렬하고 지속적이어서 재생산과정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지원이 없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형태 별로 말하자면, 파시즘 혹은 나치즘과 뉴딜이었다. 그리고 이 국가 개입, 특히 뉴딜을 이른바 복지국가 지향적으로 이론화한 것이 케인즈주의 혹은 ‘케인즈 혁명’이었다.12)
나치즘과 뉴딜이 과연 자본주의적 재생산을 위기로부터 구출했는가 어떤가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하고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나, 대략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나치즘은 나치당이 1933년에 권력을 잡고 재생산과정에 대한 강력한 개입과 통제를 실시한 결과 불과 수개월 사이에 만연했던 실업률을 현저히 끌어내리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등, 독일 자본주의를 위기로부터 구제하는 외양을 띠었다. 그런데 그것은, 오늘날 나치즘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온갖 악행, 즉 극단의 인종주의와 대중 동원, 억압, 대량 학살 등을 수반한 것이었고, 마침내는 제국주의적 팽창전쟁을 도발, 끝내 패망하였다.
뉴딜의 경우 정치적으로 대중을 회유․포섭하는 전략이 나치즘과 현저하게 대비되는 점이었다. 유효수요의 창출, 즉 경제 부양을 위해서 대규모의 재정․금융적 수단을 동원하는 면에서는 나치즘과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그 재정 지출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사회보장제도의 확립과 확대를 위해서 지출되었고,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노동자․민중의 분노를 제어․회유하면서 그들을 체제 내로 포섭해 냈던 것이다. 그러나 1939년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즉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까지 미국의 연간 평균 실업률이 거의 20%에 육박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뉴딜 정책과 케인즈주의가, 그것이 경제위기를 격화시키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경제위기를 치유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대공황으로부터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구제한 것은 대량 파괴와 대량 학살의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가, 이데올로그들이 그 구제의 공을 대량 파괴와 대량 학살의 전쟁으로 돌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공은 뉴딜과 그 이론적 기초․수단으로서의 케인즈주의로 돌려졌다. 전시 통제 경제와 케인즈주의적 경제가 다 같이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물론 전제였다. 사실은 그 역시 기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대량 파괴와 학살에 힘입었던 1960년대 말경까지의 이른바 ‘장기호황’13)이 케인즈주의의 영광으로 돌려졌던 것도 그러한 사정에 의했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오늘날 진보를 내세우는 일부 소부르주아적 공론가들에 의해서 ‘이상적인 복지국가 모델’로서 찬양되기까지 하는 케인즈주의란 그렇게 대공황 및 대전쟁이라는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전반적 위기의 산물이었다. 더구나 케인즈주의가 내세우는 ‘복지국가’ 혹은 ‘복지국가 정책’이라는 것도 사실은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회유하여 포섭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사실은 노동자 계급이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극히 위선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독점자본 및 그 이데올로그들에게 있어서는 그 위선조차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되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1970년대 이후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되자 독점자본은 서둘러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고, 나아가 제국주의적 공세도 강화해 갔다. 그러자니 역시 신자유주의라는 허위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그를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바로 ‘케인즈주의가 재생산 과정에 대한 국가 개입을 불러 왔고, 그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는 등의 케인즈주의에 대한 매도나, ‘그러므로 자본의 활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국․공유기업은 민영화해야 된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등의 공세다.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되고 따라서 자본의 과잉생산이 항상화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독점자본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완화․배제하고, 국․공유기업과 세계 곳곳으로 그 잉여노동 착취의 영역을 넓히며(민영화 및 세계화), 노동조합 등을 무력화 내지 해체시켜서 착취를 강화하고자 독점자본의 열망은 국가의 규제에 대한 강력한 반대․악선전과 시장 및 자유주의에 대한 열렬한 선전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그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순진한 비판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정말로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대한 케인즈주의적인 개입을 반대․배제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 공산당 계열의 경제학자이자 신자유주의에 대한 나름의 격렬한 비판자인 니노미야 아쯔미(二宮厚美)는 최근의 저서에서 “신자유주의란 사회의 자원 배분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 결국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시장의 자유경쟁 하에서 실현하려고 하는 사고 방식을 가리킨다”거나 “신자유주의란 요컨대 시장 원리에 완고하기까지 한 신뢰나 신앙심을 보내는 흐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14)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허위 주장과 신자유주의 그 자체를 구별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의 실체가 그 허위 주장의 내용과 같은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왕왕 케인즈주의로서 표상되는, 자본주의적 재생산과정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규제의 본질은, 앞에서 본 것처럼, 1930년대에 등장한, “독점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격화에 의한 ‘위기’에의 대응”,15)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에 대한 독점자본의 대응으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다. 바로 그 때문에 1970년대 이후 전반적 위기의 재격화는 결코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없으며, 단지 그 내용과 형태만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상황도 그렇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경제 과정에 대한 국가 개입의 배제를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은 기만적인 것이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니노미야의 정의는 최소한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만 최소한의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란 사회의 자원 배분을 시장원리에 맡기자는 거짓 주장, 결국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시장의 자유경쟁 하에서 실현하겠다고 하는 허위 주장을 가리킨다”거나 “신자유주의란 요컨대 시장 원리에 완고하기까지 한 신뢰나 신앙심을 보내는 척 하는 허위의 흐름이다”라고! 그리고 “신자유주의란 그러한 허위 주장과는 정반대로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반노동자․반민중적으로 강화하고, 폭력적․파쇼적․제국주의적으로 강화함으로써 착취를 강화하여 위기에 처한 독점자본의 지배를 유지하려는, 자본의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된 시대의 자본주의”라고 덧붙임으로써 비로소 의미 있는 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현 국면과 노동자 계급의 과제
현대자본주의는 이렇게 1930년대의 대공황에 따른 전반적 위기의 등장으로 이른바 케인즈주의적인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되었고, 1970년대에 재격화된 전반적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것이 노동자 계급에 대해서 보다 온화한 케인즈주의든, 가혹하고 파쇼적인 신자유주의든, 자본주의의 경제적 재생산과정에 대한 국가의 대대적이고 항상적인 개입으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이렇게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전반적 위기는 물론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로서의 독점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격화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보다 좀 구체적으로는 독점이라는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본래의 모순을 더욱 격화시키는 데다가, 독점자본주의 하에서는 자본의 과잉과 이윤율의 저하, 경쟁의 격화로 가속도적으로 발전하는 기술 혁신, 과학기술혁명, 그 성과로서의 노동생산력의 더한층 빠른 증대가 한편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빈곤과 소비 제한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과잉생산을 더 한층 격화시키기 때문이다.16)
참고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러한 위기와 관련하여 국내의 진보적인 경제․사회학자들은 대부분 그것을 ‘순환적 위기’와 ‘구조적 위기’로 나누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개념적․분석적으로는 두 위기는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론자들이 왕왕 그러한 것처럼, 예컨대 “1930년대의 대공황이나 1970년대 이후의 그것은 ‘구조적 공황’이고, 다른 것들은 ‘순환적 공황’이다”는 식으로 현실의 공황을 구분․분류한다면, 그것은 오류일 수밖에 없다. 모든 순환적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 내부에 구조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폭발하는 것이고, 또한 모든 순환적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구조 변화를 수반․촉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순환적 공황은 동시에 구조적 공황이고, 그것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반적 혹은 만성적 공황과 순환적 공황의 개념과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전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전반적 공황이 단지 엥겔스가 [ꡔ자본론ꡕ 제3권(MEW, Bd.25, S.506의 주8)에서] 말하고 있는 바의, “상대적으로 짧고 약한 경기 호전과 상대적으로 길고 결정적이지 않은 불황”으로서의 “순환 주기가 10년이었던 주기적 과정의 급성적 형태”인지, 아니면 10년 주기의 순환적 공황을 동반하면서도 그 자체로서는 항상 존재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자유경쟁 단계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위기인지, 아직 정론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잠정적으로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무튼 공황의 형태를 둘러싼 이론적 논쟁이야 어떻든, 독점과 경쟁의 격화, 그에 따른 기술 혁신 및 노동생산력의 증대가 대중의 빈곤과 자본의 감가․과잉생산을 격화시키면서 공황을 초래하고 그것을 격화시킨다면, 20세기의 마지막 4/4분기, 특히 90년대 10년 동안이야말로 그러한 과정을 전형적으로 전개시키면서 결정적인 대공황을 준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급속도로 진전된 과학기술혁명, 정보통신혁명에 의해서, 거대하게 진전된 자본의 세계화와 금융의 투기화에 의해서 더욱 심각성을 더했다. 바로 우리가 지금 ‘세계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현 국면’을 묻는 이유이다.
우리를 포함한 세계의 노동자․민중은 당연히 이 임박한 파국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 1990년 전후에 발생한 소련 및 동유럽의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로 대부분의 노동자 단체와 정치조직들은 결정적으로 정치적 이념적 정체성을 상실한 채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발호와 그에 따른 노동자 대중의 고통의 심화․확대로 세계 도처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이 갈수록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고, 특히 1999년 11월 말의 시애틀 투쟁 이후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국제연대투쟁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벌어지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하지만 좀더 내용을 들여다보면 민중주의와 아나키즘, 심지어 독점자본의 지배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현대 사민주의적 경향조차 강하게 배어 있어서 많은 내부 투쟁과 정화가 요구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국가 내에서 노동자 민중 속에 확고히 정치적 지도력을 확립하고 그에 기초한 국민국가 내부에서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국제연대․국제주의를 추구하는 대신에 ‘국제주의’의 명분만을 선점하려는 일부 종파주의자들의 ‘국제주의꾼적’ 경향도 극복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서둘러 극복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인데, 바로 운동의 역사를 존중하고 그 역사적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려는 자세와 노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운동의 역사와 성과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판단이 어떤 면에서든 독점자본의 ‘선전’과 맞닿아 있다면, 우리의 시각과 판단이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가를 엄정하게 재성찰하고 교정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17)
어느 때보다도 주체적 각오와 노력이 요구되는 때라 하겠다.*
* 극히 조악한 미완성 초고임 - 필자.
1)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세계는 감기에 걸린다. 그리고 미국이 감기에 걸리면 세계는 독감과 폐렴에걸린다.”MichaelRoberts,“2001AD:FromBoom,toGloom,toDoom”(http://www.marxist.com/Economy/boom_gloom_doom.html)
2) Michael Roberts, 같은 글. 다만, 노동생산성 문제 혹은 과학기술혁명 문제와 관련해서 마이클 로버츠는, 추상적으로는 신기술에의 투자와 그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증대가 계속적인 호황의 조건이지만, 노동자들의 노동만이 가치를 창조하는데 “미국에서는 지금 사용 가능한 노동력이 최대한으로 이용되고 있고 (따라서 미국의 실업률은 1950년대 이래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최저를 기록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최대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어서”, 신기술 투자가 지속된다고 해도 “노동생산성의 증대는 급속히 후퇴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적인 호황은 보장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즉 잘못된 관점에서 낙관론을 비판하고 있다.
3) 이채언 교수도 “미국 신경제, 화약고 향해 돌진하는 폭주 기관차”(월간 ꡔ말ꡕ 2001년 3월호, pp.146~148 참조)에서 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논의 전개의 맥락으로 봐서 이 교수 역시 마이클 로버츠를 원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이클 로버츠는 이자율 인하 정책이 주식시장의 붕괴와 장기적인 불황을 저지할 수 없는 주요 이유를 이자율을 내리더라도 ‘디플레이션 때문에 실질 이자율이 상승’하는 데에서 찾고 있으나, 1930년대의 경우 미국은 1933년 3월 말에 금본위제를 정지한 이후에는 꾸준히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논증에는 한계가 있다.
4) 井村喜代子, 「20世紀末資本主義 ―資本主義はどこにいく―」, ꡔ經濟ꡕ No.61, 2000年 10月, 新日本出版社, pp.17~18.
5) 井村喜代子, 같은 글, p.18.
6) MEW, Bd.25, S.259.
7) 같은 책, S.257.
8) 같은 책, S.259.
9) 같은 책, S.260.
10) 이상, 같은 책, S.257.
11) 같은 책, S.501.
12) 케인즈주의를 신봉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소위 케인즈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일부의 ‘맑스주의자들’까지도 케인즈를 가리켜서 ‘위대한 경제학자’(?)라고 하는데(예컨대, 위에서 그 글을 인용한 마이클 로버츠도 예의 글에서 그를 가리켜 ‘위대한 자본주의 경제학자 great capitalist economist’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고전학파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적 경제학자들과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적 모순을 인정하면서 그 기초 위에서 그 모순의 해결 방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13) 일반적으로 ‘장기호황’ 혹은 심지어 자본주의 경제의 ‘황금기’라고까지 불리는 이 시기도 사실은 숱한 위기(공황)와 자본주의 국민경제간의 대립, 계급 투쟁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따라서 ‘장기호황’ 혹은 ‘황금기’ 등의 규정은 예컨대 70년대 이후에 재격화된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전반적 위기’ 등과 관련해서 상대적 제한적으로만 의의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14) 二宮厚美, ꡔ現代資本主義と新自由主義の暴走ꡕ, 新日本出版社, 1999, p.22, 25.
15) 北原 勇, 「20世紀末資本主義の現狀と行方 ―新しい國家獨占資本主義論」の立場から―」, 北原勇․伊藤誠․山田銳夫 공저 ꡔ現代資本主義をどう視るかꡕ, 靑木書店, 1997, p.27. 다만, 기타하라 교수는 경제과정에 대한 국가의 1930년대의 대공황을 계기로 등장했음을 확인하면서도 그것은 “일시적 일국적 수준의 것이었다”며, “국가가 대규모적이고 항상적으로 경제 과정에 개입하기에 이른 것은 제2차대전 후의 현대자본주의에서였다”(p.26)고 말하고 있고, 이 점 나와 의견을 달리한다.
16) MEW, Bd.25, S.266~7 참조.
*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한 자본주의 각국 화폐․통화제도의 금본위제로부터의 이탈, 특히 1970년대 초 구(舊) IMF 체제의 붕괴에 따른 국제통화제도의 금으로부터의 완벽한 이탈 이후 급속히 확대․발전되어 온 금융의 거대 투기자본화가 현대 자본주의의 불안정화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함 -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