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부평과 인권운동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대표
ꡔ한겨레신문ꡕ, 2001년 3월 16일자
가끔 인권운동가에게 비애를 느끼게 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열흘쯤 전, 여느 때처럼 밤늦은 귀가였다. 대강 씻고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켰더니 화면 속에서 마흔쯤 돼 보이는 아낙이
울부짖고 있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구! 이 판에 쫓겨나면 뭘
해먹고 살겠어!” 가슴에 안긴 아기가 울부짖는 아낙의 옷깃을
말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어서 아파트 집집마다 돌면서
우편물을 나눠주는 배달부, 그 우편물을 뜯어보는 사람들의
얼굴엔 당혹과 울분, 체념과 냉소가 교차하고 있었다.
문화방송의 MBC 스페셜 ‘1,750명의 해고통지서’는 이런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계엄 뺨치는 대우차 진압작전
부도부터 정리해고까지 파국으로 치닫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추적한 이 다큐멘타리 속에서 노동자들의 모습은 숨김없었다.
애초에 파업으로 정리해고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파업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숨김없었다.
애초에 파업으로 정리해고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파업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몸부림에는 체념과
세상에 대한 원한이 짙게 배어 있었다. 파업을 결의해놓고도
모두 파업을 두려워했다. 건장한 모습들과는 달리 그들은
한결같이 주눅이 들어 있었다.
공장에서 농성에 들어간 남편을 찾아 아낙들이 모여들었다. 그저
막막해서 가만히 집에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농성장 곳곳에
아이들의 불안한 얼굴이 비친다. 내레이션은 이렇게 나갔다.
“아이들에게 이 날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500명의 농성 노동자를 진압하기 위한 체포조 4,200명의 힘으로
‘게임’은 10분만에 끝난다.
끝 장면에서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올라가는 1,750명의
이름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그들에게
무심한 세상에 대해 파업을 한 것이다. 이 무력한 인권운동가를
향해 파업을 던진 것이다.”
파업이 진압된 뒤 부평은 흡사 ‘계엄상태’였다. 3월 7일
부평공장이 조업을 재개하던 날엔 8천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됐다.
식당에 모여 밥을 먹고 있는 노동자들이 몽땅 경찰에 잡혀가고,
공장 주변을 서성이던 해고자 부인은 머리채를 잡힌 채 다짜고짜
경찰에 끌려갔다. 생일날에 경찰에 잡혀간 여성은 면회 온
남편과 수갑을 차고 면회를 해야 했다. 부평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집회도 합법적으로 할 수가 없다. 부평역 주변을 가득 메운
전경들은 오가는 사람마다 무차별 검문을 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권한을 경찰에 주었는가? 이 모든 것이 분명한 불법인데도
언론사들은 이 무법천지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정리해고로부터 한 달이 지났어도 부평은 여전히 무법천지다.
부평역에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이른 도로엔 수많은 전경들이
진압봉을 들고 늘어섰다. 부평공장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은
전투경찰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으며, 공장 노조사무실도 문이
용접되는 등 완전봉쇄 상태다.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이 공장
안에서 항시 노동자들을 감시할 뿐 아니라 평소에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동료 이름을 팔도록 종용한다고 한다. 공장에는
전경 버스 30~40대가 상주한다. 이를테면 노예공장이다. 경찰이
어떤 계급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부평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막혀오고 국가폭력에 대해 무력한
인권운동가의 비애를 느낀다. 나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불법행위를 밀어붙이는 경찰에 대해 우리의 무력한
인권운동이 취할 수 있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힘 앞에 무기력한 인권운동 비애
원래 한 사회의 인권상황에는 당대 지배계급의 지배의지가
그대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인권운동이란 한 사회에서
지배권력이 자신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지 않은 범위에서
우리에게 가지고 놀도록 허용해주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은
것이고, 우리는 그 장난감을 가지고 허용범위 안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부평은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인권은 ‘보편적’이지 않고 부자와
강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약한 인권운동을 믿지 않겠다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하는 일도 없으면서, 경찰의 횡포를
막지도 못하면서 신문에 무난한 글이나 쓰고 세월을 보내는
인권운동가를 믿지 않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