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컬럼 > 목록보기 > 글읽기

 
일본의 역사왜곡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64호
이은영

이은영.hwp 이은영.hwp(38 KB)

일본의 역사왜곡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일본의 역사왜곡과 한국 지배계급의 위선


이 은 영
연구원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맑스, ꡔ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ꡕ)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맑스, ꡔ공산주의당 선언ꡕ)


최근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독도영유권 주장에 이어 일본 내의 고대역사 조작문제까지. 최근의 논란은 일본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신화 등을 역사적 사실로 기술하고 태평양전쟁을 아시아 민족해방전쟁으로 묘사한 중학교 사회과 역사교과서를 문부성에 검정신청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일본 내에서는 역사학자와 교수들, 소위 양심적인 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한국, 중국 등이 즉각적인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4월에 결정될 사안이며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으므로 별 문제없으면 교과서로 선택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사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 파문이 단지 “역사왜곡”의 문제만이 아니고 지금의 대부분의 우려처럼 일본 국수주의/군국주의의 부활―이것은 일본 지배계급내의 역학변화,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배전략 변화를 의미한다―이라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더 진행될 것이고 이것이 노동자계급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는 어떠한 배경에서 제기되었고, 역사왜곡 교과서를 통한 일본 우익들의 국수주의/군국주의 부활 시도는 일본 내 정치․사회․경제적 상황들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해보고 나아가 한국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이 글은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쓰여진 것이다.

이 글은 ‘역사왜곡’ 반대라는 현재의 일반적인 반응과는 달리 논란의 내면에 감추어진 본질은 무엇인지를 그 배경이 되는 일본의 상황으로부터 다룰 것이다. 또한 일본 노동자계급의 처지와 대응이 남한 노동자계급에게는 어떠한 교훈을 주며, 이렇듯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많은 사건들에 대해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가질 것인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제기배경
일본 자본가 정권이 국수주의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에 불안요소가 내재되어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먼저 경제적 상황을 간략히 살펴본다면, 일본은 10여년간 계속된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길을 모색해 왔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99년 봄의 불안한 회복의 불씨마저 꺼지면서 새로운 침체국면에 들어섰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의 동향에서도 이런 심각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본의 신용평가등급은 이전에 비해 한 단계 떨어졌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일본은 두 차례의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등 해외 금융완화압력에 굴복하면서까지 경기회복을 꾀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일본정부는 최근 경제상황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재정지출의 확대조치도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고, 기업의 투자 또한 소극적인 상황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금융권의 부실채권과 부채가 많은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ꡔ인터넷한겨레ꡕ, 국제/통신원리포트, 2001.3.6.


위와 같은 상황은 단지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따른 하나의 현상이다. 세계자본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대세로 여겨지고 있으며 곧 세계자본이 국경에 연연하지 않는 무한질주의 시장통합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국의 자본은 이제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경쟁을 추구함으로써 시장의 확대를 통한 이윤 확보를 바라지만, 반대로 자국 시장을 타국 자본에게서 방어해야 하는 모순에 빠졌다. 자본이 직면한 이러한 모순은 모든 시장에서의 국적을 불문한 경쟁의 심화를 낳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이러한 경제상황과 맞물려 현재 위기와 혼란에 직면해 있다. KSD 뇌물사건, 외무성 기밀비 유용사건 등에서 나타나듯이 일본정치권의 ‘도덕적 타락’과 경제정책의 무능력으로 국민은 현 정부와 정치권에 등을 돌렸고 이로 인해 내각은 ‘식물내각’이 되어버렸다. 현재 일본 모리 총리가 사퇴의사를 밝히고 후임 선출을 위한 인물탐색이 진행중이다. 자세한 경과과정은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사회적 상황을 본다면, 일본 사회는 정부 주도, 제조업 기반의 경제가 서비스산업 및 정보기술 분야로 옮아가면서 기존의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해고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고 이것은 사회구성원의 동요와 사회안전이 파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일본 정부와 언론이 이수현씨 사건 전철에서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가 사망한 故 이수현님 사건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언론은 계속해서 특집을 내고 있다고 하고 정부와 학교들도 계속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은 KBS 취재파일 3월 11일자.
을 ‘현재 일본의 젊은 층에는 없는 타인에 대한 희생정신’으로 추켜세우고 이를 통해 일본의 젊은 층이 배울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볼 때 거꾸로 일본의 젊은 층이 얼마나 탈국가/탈공동체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그만큼 사회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결국 일본은 모든 면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고, 지배계급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떨어져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일본의 지배계급은 새로운 대중장악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고 지배계급 자신들 내부의 역학관계의 변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확보 등이 관건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가계급의 분열과 경쟁으로 인하여 전체 대중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 한 자본가 분파가 장악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국가․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지배형태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인가 파시즘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위와 같은 상황, 즉 자본가 계급의 무능력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통제하지 못했을 때 자본가 한 분파가 전체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대중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 따른다. 이때 노동자계급의 힘 그리고 자본과의 투쟁의 정도에 따라, 자본의 음모를 저지해내지 못한다면 부르주아 파시즘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본의 지배계급이 경제위기에 적절한 대응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빈사상태에 빠지고, 세계차원의 경쟁과 일본경제의 위기라는 조건이 극복지점을 못 찾고 있는 현 상황이 극우․민족주의라는 새로운―그러나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이데올로기 출현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상황을 혹자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과거 독일에서 경제가 바닥을 헤매고 기성정치인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할 때 히틀러가 등장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ꡔ인터넷한겨레ꡕ, 국제/통신원리포트, 2001.3.6.

이러한 상황은 일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전세계적 경쟁 하에서 자국 시장에서의 경쟁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각국의 정부와 자본들은 다시 한 번 노동자계급을 국가이데올로기로, 민족이데올로기로 묶어 세울 필요성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일본 노동계급의 상황과 대응 일본 지배계급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내용은 도마쯔 카쯔노리, 「일본제국주의의 군사대국화와 신자유주의」, ꡔ사회진보연대ꡕ 창간호(2000년 3월)를 참고하였다.

지금까지 일본 지배계급의 반동화, 보수우익화에 맞서 반대태도를 견지한 것은 ‘일본공산당’이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공산당은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통일전선으로 조직해야 할 임무를 방기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경우,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는 내부대립을 배경으로 동요와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대중집회를 조직하지 않고 있다. ‘전국노동조합총연합’는 일본공산당을 지지하지만 현장에서의 계급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장투쟁 속에서 파업을 준비하려는 운동을 포기한지 오래이다. 1999년 국회에서의 반동입법들의 대거 통과를 거치면서 현재까지의 상황은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노동자계급의 상황을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좀 더 상세히 본다면, 지배계급은 정부주도, 제조업 기반의 경제구조에서 서비스산업과 정보기술에 바탕을 둔 더욱 경쟁력 있는 경제로 산업부문을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들을 전통적 직장에서 내몰고 있으며, 인터넷 공급부문에서의 새로운 경쟁의 촉발하고 있다. 결국 실업, 임시직 노동자의 증가 등 불안정 고용으로 노동자들은 더욱 격화된 경쟁에 던져지고 있다. ꡔ인터넷한겨레ꡕ, 국제/일본, 2001.1.16.

따라서 일본 노동자계급의 지배계급 반동화에 대항할 전국적 관점의 연대축이 형성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각각 개별적인 과제에 매몰되어 있고, 노동운동 또한 노사협조주의화되어 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투쟁의 전망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위기의식이 조직된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으로 인해 일본 지배계급의 통제전략은 이후 발생할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제어하기 위하여 군국주의로의 회귀와 대외팽창을 통한 환상, 즉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과거의 영광을 주입시키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정책들을 시행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대응양상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먼저 대응한 것은 한국과 중국이었다.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정의와 도덕에 심히 어긋나는 매우 비열한 정치적 협잡행위이며 해외팽창의 전철을 다시 밟으려는 군국주의 야망을 다시금 드러내 놓은 것이라고 밖에 달리 볼 수 없’으며 일본이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고 계속 정당화하면서 군국주의의 부활로 나간다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인민들의 강력한 항의에 부닥치게 될 것이며 수치스러운 패망의 말로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정부는 ‘역사교과서 문제는 중대한 정치문제’이므로 중․일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조속히 유효한 조처를 취하도록 일본측에 요구하였고, 중국의 네티즌들은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70여개의 일본기관 웹사이트를 공격하였다.

그렇다면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국내의 대응은 어떠한가? 대부분 동일하게 ‘일본의 역사왜곡 반대! 저지!’라는 입장이지만 한 두 가지 축으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김대중 자본가정권의 태도를 본다면, 이정빈 외교통상장관이 정부의 기본입장을 제출하고, 대책회의를 구성하여 대응방침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한․일관계에 먹구름을 몰고 올 더 이상의 문제로까지 비화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요지이며 여기에 98년 일본방문 때의 ‘근린제국조항’을 근거로 제출하고 있다.
한편 여론은 “일본에서는 ‘일제(日帝)’를 미화, 자찬하는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정치인들의 망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며,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곧 한국, 중국의 근대사를 왜곡하는 것이 되므로 한․중(韓中)정부가 ‘당사자 자격’으로 이의를 제기”하였고, “정작 왜곡 투성이의 새로운 교과서야말로 일본을 타학자멸(他虐自蔑)로 이끄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ꡔ동아일보ꡕ, 피플/칼럼/사설, 2001.2.28.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분명한 청산과 해명 없이 그 당시에 나름대로 독립운동에 기여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여대는 조선일보 등도 정부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태도에는 일본과 국내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사안에 전혀 다른 반응을 취한다는 동질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지문날인의 경우,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지문날인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국내에서는 전자지문감시를 통한 전국민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의 강화를 꾀하고, 외국인 노동자 차별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고교생들의 봉사활동을 본다면, 국내에서는 봉사활동을 필수적인 것으로 채택해서 ‘땀의 소중함’을 배우게 한다며 전면화시켜 냈지만, 일본에서의 고교생 봉사활동에 대해서는 청소년을 동원하는 군국주의로의 회귀라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선상에서 박정희 기념관 설립에 국고를 지원하겠다고 나서기도 하면서 남한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동조하고 있다.
이와는 다른 입장에서 제출되는 것으로는 전교조의 경우가 있다. 전교조는 몇년전부터 한․일 학교 관련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일본의 역사왜곡을 저지해내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성명서에서 볼 수 있는 “특히 교과서의 왜곡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을 주목한다. 왜곡된 교과서는 미래를 이끌어 갈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라는 전교조의 입장은 순수한 역사적 측면과 교과서 문제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물론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스스로 문화적 주체성을 찾아 나서는 운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다”라고 하지만 문제는 동일하다.
왜곡된 역사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은 역사도 노동계급의 역사로 쓰여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태도로서 일본의 역사왜곡과 한국역사의 왜곡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함께 대안들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태도와 대응방향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허울에 쌓여 지난 투쟁의 과정에서 오류를 경험한 적이 있다. 몇 번의 ‘해외매각 반대’ 투쟁 ‘해외매각 반대’ 투쟁이 그 의의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 선 ‘해외매각 반대’가 아닌, (자국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지켜내기 위한 슬로건으로 등장할 때에만 그렇다.
, 그리고 ‘회사 살리기’. 물론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내재화되어 있는 ‘노동자 책임론’을 분쇄하는 데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세적 대응으로서는 투쟁의 성과가 그리 오래가지 않은 것도 또한 사실이지 않은가.
남한에서도 자본가계급은 경제위기, 정치의 위기를 은폐시키기 위해 그때마다 ‘블럭 버스터’를 터트려 왔다. 금강산 댐 건설, 북풍, 얼마 전의 6․15 남북정상회담 등,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이슈로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고 국내외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끊어낼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일본의 역사왜곡이라는 문제는 단지 ‘역사’ 혹은 ‘교과서’의 문제만이 아니라 각국내 자본의 심각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이슈이며, 이는 반드시 노동자계급에 대한 통제의 강화와 생존권 위협의 문제를 동반한다. 일본의 경험이 단지 일본의 것만이 아니라 현재 전세계적으로 구축, 확장되고 있는 노동자계급 통제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부터 오는 위기인 과잉축적, 과잉생산으로부터의 필연적인 공황의 조짐들을 모면하기 위해서 남한 자본가계급 또한 산업구조재편이라는 명목으로 이윤을 확대하고자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의 강화, 인원감축, 노동의 유연화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 노동자계급은, 투쟁으로부터 후퇴했던 역사가 있었지만 과거로부터 교훈을 끄집어내어 이번 사안에 대해 자국내의 강력한 투쟁을 재개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일본 노동자계급의 처지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또한 동일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우자동차 매각을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거리로 내몰고 있다. 이는 대우자동차 노동자, 해고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끊임없이 지속될 자본의 노동자통제 전략의 서막에 불과하다. 채찍과 함께 던지는 자본가 정권의 회유정책―최근의 예로 3월 10일 뉴스에 대우자동차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맞춤재취업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보도되었다. 퇴직이 하나의 ‘즐거운 경험’일 수 있다고 강변하는 자본가들의 선전과 함께―에 대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투쟁의지를 단결된 힘, 연대의 힘으로서 현실화시켜내야 한다.
개별 사업장에서 투쟁의 조건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혹은 조직력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계급대립 전선을 단사의 투쟁으로 방기해버린다면 자신의 투쟁전선에 연대로써 화답할 동지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역사 왜곡’이라는 사안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것이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지금의 시기에 지배계급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선전은 노자간의 화해불가능한 대립을 은폐, 왜곡시키려는 시도가 숨어 있다는 것, 곧 노동자계급의 임무는 그 화려한 ‘환상’의 외피를 벗겨내고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고자 하는 음모에 대항해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지금까지 투쟁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철의 규율을 배우고, 단결을 통해 조직을 건설해왔다. 이 거대한 힘을 가진 전진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주춤거리는 것이 아니라 더 힘찬 행진으로 나아가야 한다. ‘투쟁으로 만들어 온 역사’만이 진실이기에, 자본가 계급―국가기구를 포함한―전체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으로, 노동조합이라는 틀 안에서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정치, 해방의 정치를 쟁취하는 세력으로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해야 한다. 한/노/정/연

2001-03-10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