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김대중 정부 3년 결산
백 선 미/실업대책을 위한 범국민운동 경남본부 취업알선팀장
특집: 김대중 정부 3년 결산
더 이상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는 없다
지난 99년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그녀는 실업대책을 위한
범국민운동 경남본부 ‘실업대책을 위한 범국민운동
경남본부’는 IMF 이후 사회적 문제가 된 실업을 전국민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경남지역의 사회, 시민, 종교단체 및
양심적인 개인의 참여로 이루어진 근본적 실업대책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출범한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산하 실업자종합지원경남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저는 40대의 이혼여성입니다. 전남편이 공기업의 간부생활을
하다가 IMF 이후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로 실직,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 있다가 결국에는 도박에
빠져 가정이 파탄났습니다. 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저에게는 자식이 둘 있습니다. 고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있는데 현재 버스비가 없어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하지 않는 자식들을 보며 용기를 얻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그녀의 첫인상은 비장했다. 눈물을 끝내 참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이제 무엇이라도 해서 자식을 벌어 먹여야만 한다는
다짐뿐인 것 같았다.
그후 그녀는 내가 알선한 골프연습장의 휴게식당에 취직을 했다.
오전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휴게식당 청소 및 홀써빙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일해서 받을 수 있는 월급은
고작 60만원. 하지만 그녀는 자기에게 일할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몇 번이나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녀는 나를 재차 방문했다. 호전된다던 경기가
더 악화되면서 골프연습장도 불경기를 맞은 것이다. 식당사장은
손님이 다시 늘어날 때까지 단기영업을 한다며 근무시간을
줄였다. 오후 3시까지로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임금 또한 삭감해
한달 35만원으로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후
시간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냐고 물었다. 내년이면
아들이 대학교에도 가야하고 중학생이던 딸이 고등학교도
진학해야 하는데 생활비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지난해 10월에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기치로 내걸고
탄생시킨 야심작(?)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도 되지
못했다. 집이 있다는 것이다. 10년이 훨씬 넘어 물이 새도
수리할 비용조차 없는 애물딱지 집이 오히려 이번에는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그녀는 자녀의 교육지원만이라도 안정적으로
받고 싶어 살고 있는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그러나 1년이 넘게
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하기야 이런 불경기에 새 집도
아닌 낡은 집이 팔릴 리 만무하다. 국민의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보장한다는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깡그리 무시한 채 무늬만
보장법이 되어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런 차상위계층의 가장인
것이다.
그녀는 일어서면서 조심스럽게 마지막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의 지금 솔직한 심정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심지어 저는 이런 생각도
했어요. 요즘 노래방의 아줌마일이 수입도 좋다는데
그쪽으로라도 취직이 되었으면 …” 머뭇거리며 그녀는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정부는 지난 2000년 1월 국무회의에서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며 분배문제에도 관심이 큰 만큼 이 문제를 주요
과제로 인식하고 국민의 바램대로 구제금융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도록 계획을 세워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삶의 질
향상기획단’을 중심으로 2002년까지 실업률을 3%대로
떨어뜨리고 물가상승률을 2%대로 유지해 소득분배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며 사회보장지출 규모를 2002년까지 10%이상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마저도 구멍이
뚫린 채 분배불평등을 완화할 제도적 장치도 미비한 상태에다
구조조정 바람이 맞물리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에 국민들은 절망을 넘어 죽음을 택하는
마지막 몸부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월, 한 노숙자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기사가 사회 1면을
장식했다. 최소한 보름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동안 주변
쥐들이 주검을 갉아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화려한
패션상가와 온갖 상점들이 밀집해 있고 전화부스마저 있는,
수십만의 유동인구가 넘나드는 도심 한복판에서도 그의 죽음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치려고
열심히 생활하여 조경사업을 시작했으며 결혼도 했단다. 그러나
결혼을 미끼로 접근한 상대로부터의 결혼실패와 설상가상으로
덮친 IMF는 그를 더 이상 회생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고
갔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노숙자생활이었으며 그리고
죽음이었다.
IMF 이후 우리나라의 실업자는 최고 8%대에 육박했으며 2000년
하반기 경기호전으로 잠시 3%를 유지하다 2차 구조조정으로 인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2001년 2월의 경우 신규미취업자의
대량증가로 인해 다시 100만 실업시대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2001년 1월 현재 전체 실업자의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의 비율이 11%에 이르고 있으며 40세 이상의 고연령
실업자가 36%, 중졸이하의 저학력 실업자가 2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고연령, 저학력 실업자의 실업기간이
해를 거듭할 수로 장기화되고 있으며 이는 곧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중장년층의 실업자를 위해 마련했다는 정부의
보완실업대책을 살펴보면 경기회복에 따른 기존 노동시장으로의
고용흡수와 창업지원에만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중장년의
실업자들은 경기가 회복된다하더라도 기존 노동시장으로의
재취업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장기실업자가 대부분이다. 또한
실업기간이 길어지면서 바닥난 생활비로 생계조차 해결되지 않는
그러한 장기실업자에게 창업이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인 것이다.
따라서 중장년층의 실업자에 대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 확대적용 및 사회안정망의 확보는 실질적인 중장년층의
실업자를 위한 지원제도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것이다.
일을 하고 싶은데도 일자리가 없어 노는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실업은 단순한 생계문제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IMF 이후 우리에게 닥친
실업문제는 개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바로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살리고 국민을
살리기 위해 실시했다는 정부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100만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양산했으며 실업자들의 실망, 무기력, 불만은
사회불안과 정치적 불안정의 요인이 되고 있다. 실업자
100만명이라는 것의 의미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볼 때 최소
400만명이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매일매일 실업의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야 하는 본연의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국민
그 누구도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1,750명을
대량 해고한 대우자동차 사태는 우리사회가 아주 심각한 지경에
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실업으로 인한 어려움은
실업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나아가 온 국민이 겪는 고통인
것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로지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세계화에 모든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삶의 질이 극도로 추락하고 있는 지금 현재에도 정부는
지나치게 눈앞의 실적만을 올리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재벌들이 교묘한 상속수법으로 2, 3세에게 거대한 재산을
물려주고 국가의 경제를 파탄시키며 해외로 빼돌리는 국민의
재산을 나몰라라 바라보고만 있다. 가정경제가 파탄나 어두운
구석으로 일자리를 찾는 주부로부터 사업실패로 가출한 노숙자,
정리해고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 그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의
자녀들을 올바르게 세울 정책은 어디에도 없이 정부는 여전히
국방비 증대, 경제개발 위주만의 정책을 펴고 있다.
빈곤의 대물림이 악순환되고 있는 저소득층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저소득층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일자리를 구해
고소득을 올리는 것이 유일한 대책으로 보인다. 이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중요요인이 교육수준이다. 그러나 지금현재 실업대란은
교육에 있어서도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00년 현재
우리나라의 컴퓨터 보급률은 3가구 가운데 2가구꼴이란다.
그러나 월소득 100만원이하의 저소득층 인터넷 이용률은 24.5%인
반면 월소득 400만원이상 고소득자의 인터넷 이용률은 53.4%이며
직장에서의 컴퓨터 이용능력이 중졸이하의 학력자가 대졸에 비해
9배나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이는 곧 21세기
기술정보산업사회에서의 취업문제와 연결되며 저소득층의
자녀들은 컴퓨터가 없어 취득하지 못한 정보자격증 등으로
취업경쟁에서마저 고소득자의 자녀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양상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곧 교육의 격차로 인한 빈곤의
대물림을 예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 불평등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없음을 위의
통계는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계층간의 교육비 격차가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할 수 있는 만큼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지원확대에 대한 대책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IMF 체제 이후 우리 사회의 노동자, 민중은 웃음을 잃어버렸고
대량실업사태의 지속으로 집 없이 길거리를 헤매는 노숙자가
몇천만명에 이르고 있다. 생계곤란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에
20여명이 넘고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각종 신종범죄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실직으로 인한 가정의 파탄 및 해체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농민들은 농가부채와 농자재의 가격폭등,
밀려오는 수입농산물로 인한 가격폭락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자연재해로 인해 더욱더 피폐화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모든 민중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리해고나 부당노동행위는 철저히
근절되어야 하며 절망에 빠진 실업자들이 생계걱정 없이 다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의 확대실시 및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 공익성을 담보로 하는
사회적 일자리창출 등의 정부의 적극적인 실업정책을 촉구하며
더 이상 노동시장에서의 고용창출이 이루어지지 않는
장기실업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확충, 국방비 감축을 통한
실업재원마련 등이 실업극복을 위해 조속히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들의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마련은 더 이상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
없는 민중들의 마지막 요구임을 정부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