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대중 정부가 집권 4년차에 들어섰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97년
집권 이후 IMF와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부합하여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업, 금융, 공공, 노동의
4대 부문에 대한 정부의 구조조정은 경제를 안정시키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기보다는 노동자․민중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하는 결과만을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2002년 있을
지자체 선거와 대선으로 김대중 정부는 현재 진행중인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선거일정으로 돌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금융권 통폐합과 공공부문 민영화의 가속화, 그리고
대우자동차 파업에 대한 조기진압 시도는 바로 김대중 정부가
얼마나 서둘러 구조조정 일정을 마무리지으려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들입니다.
이에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은, 지속되어야만 할
구조조정 저지, 정리해고 철폐투쟁의 전망을 세워내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부의 지난 3년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김대중 정부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것의 의미, 기간의
구조조정이 가져온 사회구조적 효과, 노동자․민중의 삶의
하락에 대한 글을 ‘김대중 정부 3년 결산’이라는 주제하에
배치하였습니다.
특집 : 김대중 정부 3년 결산
김 세 균/소장
특집: 김대중 정부 3년 결산
김대중정권의 개혁
1. 들어가면서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외환-금융위기가 폭발하고, 이로 인해 한국이 IMF 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된 조건 속에서 ‘국민의 정부’라고 자처하는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지도 3년이 지났다. 이 3년간 김대중 정권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생산적 복지’,
‘남북화해’ 등을 국정의 제1목표로 제시하는 가운데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사회의 새로운 발전을 담보하기 위한 제반
‘개혁’에 착수해 왔다.
김대중 정권이 행한 그간의 개혁은, 그것이 지닌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내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의 완성을 위한 개혁’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민주개혁’은 그것이 김대중 정권이
그간 추구해온 수구보수세력과의 타협에 지장을 않는 한계
내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원활하게 추진해 나가는
데에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한에서 행해졌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자본이 기업수준에서 이른바
‘신경영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고,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의 구호를 높이 제창할 때부터 이미 본격적으로
착수되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대중
정권하에서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2단계’ 내지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완성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혹자는 한국사회가 김영삼 정권 하에서
‘민주화의 1단계’를 거친 후 김대중 정권 하에서 ‘민주화의
2단계’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예를 들어 정대화,
「국민의 정부: 민주화 2단계 진입, 그 성과와
한계」, 학술단체협의회 ’99년 제1회 정책토론회,
ꡔ김대중 정부 1년을 평가한다ꡕ 자료집 참조.
이와 유사한 견해이지만 주류 부르주아학자들은 대체로 한국은
오늘날에도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 내지 ‘민주주의
공고화’의 2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민주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그 차이를 일정하게 인식하면서도
사회발전을 노자간의 계급관계 및 지배블록 대 노동자-민중과의
관계에서 사고하지 않고 단지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준으로 하여 파악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개방화, 유연화 등의 구호에 의해
대변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원래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의 선진자본주의가 ‘장기적인 구조적 과잉축적
위기’에 빠져들면서 이 위기를 자본운동의 자유를 규제하는
일체의 제약들을 제거하고, 위기부담을 노동자-민중에게
전면적으로 전가시켜 해결하려는 선진국 독점자본의
위기타개책으로서 생겨난 것이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동 내지 노동자-민중에
대한 자본의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공세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사회구조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많든
적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를 강제하는
계기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민주개혁이 일정하게
이루어질지라도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추진되면, 그 과정은
‘실질적인 반동의 증대 내지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한
민주주의의 형식화와 형해화(形骸化)’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경제의 불안정성을 한층 더
증대시켜 경제체제를 위기발발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며,
한국경제에 대한 초국적 독점자본의 지배력을 한층 더 높이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이 글에서 김대중 정권 하에서의 3년을
분석하는 것을 통해 이러한 본인의 주장을 입증해 보려고
한다.
2. 김대중 정권의 개혁
1) IMF 처방과 김대중 정권의 개혁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기 직전 한국경제를 국가부도사태 직전까지
내몬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른바 ‘IMF 한파’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우리 사회 전역을 덮쳤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터진 와중에 15대 대선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IMF(와 미국)가 제시한 제반
요구사항들을 유보 없이 수용했다. 또한 그는 IMF 처방을
외부로부터 강제된 것이 아니라 위기극복과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한 한국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IMF 처방은 한국경제가 겪는 외환위기가 세계경제 전체에
파국적인 영향을 곧장 미치는 사태를 막기 위한 ‘단기처방’과
그러한 위기의 도래를 초래한 경제구조의 개선을 요구하는
‘중․장기적 처방’으로 구분된다. 이때 ‘단기처방’은
외환위기의 책임이 해당국가에게 있다는 입장에서 해당국가에게
긴축재정 정책과 고금리정책의 실시 등을 요구하는 것이고,
‘중․장기적 처방’은 위기의 원인이 해당국가의
경제체제가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을 가로막는 중대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그 결함을 시정할 수 있는,
(‘자유화 프로그램’으로 불리기도 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IMF는 한국이 위기에
빠지게 된 근본 원인을 한국의 ‘금융 및 기업부분의 근본적인
결함’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부실 금융기관의 도태와 정리,
기업구조, 특히 재벌기업 구조의 개선과 경영투명성의 확보,
금융-자본-상품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위기극복을 위한 중-장기적인 구조조정프로그램의
내용으로 제시했다. IMF 처방의 기본성격은 초국적 독점자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내지 시장주의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IMF는 선진국의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진출을 방해하는 일체의 장애물들을 제거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
요구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에게도 시장의 완전개방과 민영화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행할 것과, 외자유치와 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통한 위기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내수시장 중심체제가 아니라 해외시장
의존체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자국시장을
개방함이 없이 수출을 확대하고 해외로의 자본진출을 추진해
나가는 것은 (선진국 자본이 시장개방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점에서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은 단지 초국적 독점자본들의
이익만이 아니라, 수출산업을 주도하고 있고, 해외로 적극
진출하고 있는 내국 독점자본의 이익과도 기본적으로 부합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은 초국적 독점자본만이 아니라, 내국 독점자본 자신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IMF의 요구사항은, 내국
독점자본들의 이익과 상치되는 측면들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초국적 독점자본만이 아니라 내국독점자본들의 이익과도
기본적으로 부합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 한국의 경제체제가 선진국 독점자본에 의해
기본적으로 지배되고 있는 세계시장으로의 상품수출과
해외로부터의 자본재 수입 등에 의존하는 대외 의존적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경제위기는 애초에 ‘외환위기’의 형태로
폭발했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자본의 과잉축적 위기’였다.
한국경제가 빠져든 이 과잉축적위기는 멀리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장기적인 구조적
과잉축적 위기’의 일환이며, 가까이는 최근에 발생한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일환이기도 했다. (현대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는
‘독점자본 부분의 과잉축적’이 핵심을 이루는) 자본의
과잉축적 위기는 한편으로는 경쟁력을 상실한 자본들의
대규모적인 폐기와 자본의 가치절하, 대량실업의 발생,
임금인하,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적인 기술혁신과 경영혁신 및 경쟁력을 지닌
자본으로의 자본의 집적-집중 등을 가져온다. 이때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은, 그 개입이 어떤 성격의 개입인가에 따라
시장경제법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이 과정을 ‘촉진’시키거나,
아니면 ‘지연’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이 이 과정을 촉진시키는 것이 되려면,
국가개입은 앞에서 언급한 경제위기가 행하는 기능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 경우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은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국가개입’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닌 것이 된다. 다시 말해,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위기해결책은
과잉축적의 위기가 행하는 역할을 정치적으로 촉진시키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이와는 달리, 완전고용의 달성 등을 위해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조차도 가능한 한 살리려고 하는 ‘케인즈주의적
국가개입’은 계급갈등을 완화하고 장기호황 국면에 발생하는
‘과소소비 위기’를 예방하거나 대처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자본의 과잉축적 위기 시에는 그 위기를 지속시키고
위기로부터의 탈출을 한층 어렵게 만든 요인이 된다. 이 점에서
자본의 과잉축적 위기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결책에 합당한
국가정책은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정책이지, 결코
케인즈주의적 정책이 아니다. 이 점은 1970년대 중반이후
자본주의가 장기적인 구조적 과잉축적 위기에 빠져들면서
케인즈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렇지만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이 아무리 신자유주의적인
것일지라도, 파산할 경우 국민경제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는 대기업이나 국가기간 산업의 경우 국가는―성공 여부를
떠나서―그 기업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해 다시
경쟁력을 지닌 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은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결코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IMF 처방을 수용한 김대중 정권의
정책이란 결국 과잉축적 위기가 행하는 위기정화기능을
촉진시키는 것 내지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켜 경제위기를
타개하려는 정책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니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정책은 경쟁력을 상실한 많은 기업들의 퇴출을
촉진하고 위기에서 살아남을 능력을 지닌 기업이나 국민경제
전체에 중요한 비중을 지닌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회
전체의 모든 자원을 가동시키고,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는 과정을
동반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러한 국가정책은 노동자들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에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위기해결책이란
축적위기로부터 자본을 구하기 위해 사회 전체의 희생을
요구하고, 또 이로 인해 위기 부담을 최종적으로
노동자-민중에게 전가시키는 정책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의 논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위기타개를 위한
김대중 정권의 ‘개혁’정책이란 기본적으로
‘반노동자적-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개혁정책’의
성격을 지님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이로부터 우리는 김대중
정권을 기본적으로 ‘종속적 신자유주의정권’으로 규정할 수
있다.
2) 김대중 정권의 개혁: 그 내용과 문제점
(1) 김대중 정권의 경제개혁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가 터지자 외환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시 한국이 진 총외채 1,500억 달러의 80% 가량을 차지한
단기외채를 중-장기외채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금융-자본시장의 완전개방을
추진하고 강도 높은 긴축재정과 고금리정책을 실시했다. 정부의
이러한 대처는 단기외채 비중을 떨어뜨리고 외환위기를
진정시키는 데에는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부의
긴축재정정책과 고금리정책은 신용경색 등을 보다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켜 ‘실물경제의 위기’를 엄청나게 촉진-심화시켰다.
그 결과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로 쓰러지고 전 산업분야에서
조업단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경제성장률은 97년
5.5%에서 98년 -6.4%선까지 떨어졌다. 실물경제의 이러한
위축과정은 (이후의 인력감축 위주의 기업구조 조정과정과
맞물리면서) 대량해고 사태를 불러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또한 그러한 과정은 임금삭감과 소득감소 및
부동산 및 주택가격의 하락을 촉진시켜 노동자층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급격하게 추락시키고 중산층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고금리정책 등은 현금을 소지한
일부 부유층에게 막대한 이자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이른바 ‘이대로 족(族)’이라는
신특권층이 생겨났으며, 빈부격차와 소득불평등 및 사회
양극화과정이 크게 촉진되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자살율과
범죄율을 세계최고 수준으로 급증시키고, ‘가족해체’와
노숙자의 증대와 같은 현상이 대규모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그런데 정부는 실물경제의 위축과정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자 IMF의 양해를 얻어
금리 인하조치를 단행했으며, 외환위기가 일정하게 진정된
99년부터는 경기부양책을 아울러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김대중 정권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산업구조조정 내지 금융, 기업 및
공공부분의 구조조정이다. 이를 위해 김대중 정권은 그간
한편으로는 기업이 과잉노동력을 감축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실기업과
한계기업을 퇴출시키고 대기업과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주요기업들이 경쟁력을 지니도록 재무구조의 개선과 경영
투명성의 확보 등을 촉구했다. 그리하여 정부는 98년 말까지
금융부문에 대한 1차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공공부문에 대한
1차 구조조정을 행하는 동시에 사기업들의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은숙,
「구조조정과 노동자투쟁: 평가와 전망(1)」,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41호(99년
2․3월호).
이 과정에서 정부는 98년에 약 1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금융기간과 기업의 구조조정비용으로 지불했다. 그런데 정부는
5대재벌에 대해서는 이른바 ‘빅 딜’을 통한 자율적인
사업구조조정을 행하도록 했지만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채권단을
통한 ‘워크아웃’ 정책을 실시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해
왔다. 또한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평균 400%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2년 이내에 200% 선으로 줄일 것을
재벌기업들에게 요구하는 동시에 기업의 인수합병 개방,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 사외이사제의 도입 등과 같은 조치를
취했으며, 기아자동차를 경매에 부쳐 막대한 금액의 부채탕감을
해주는 조건으로 기아를 현대자동차에게 낙찰시켰다.
정부의 그러한 노력으로 한국경제는 99년에 들어서면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위기에서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보유고는
97년 12월 당시 39억 달러의 최저수준에서 2000년 12월 현재
963억 달러로 세계 5위 수준으로 늘어났으며, 경제성장률도 98년
-6.7%에서 99년에는 10.7%를, 그리고 2000년에는 9% 내외를
달성할 수 있었다. 게다가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2000년의 경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3%에 그치고 약
110억불의 경상수지를 달성한 반면, 98년 6.8%까지 치솟았던
공식 실업률도 2000년에는 4.1% 수준으로 감소했고, 공황 직후
급등했던 이자율과 환율도 적정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화려한 외형적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하반기부터는 위기재발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이 시기부터는 산업생산과 소비증가세가 둔화하기 시작하고,
제조업 평균가동률, 설비투자, 소비자 기대지수,
기업경기전망지수 등 실물지표와 체감경기전망 모두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경기회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데다가 과도한 구조조정이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가져오는 사태를 방지할 목적으로 정부가 1998년 하반기부터
구조조정의 속도를 조율하기 시작한 것에,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자본공급기능이 약한 자본시장 중심적인 미국식
금융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장기적으로는 투자의 축소와 정체를,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연이은 도산과 그에 따른 은행의 부실
증가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강성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예견된 실패」,
ꡔ신자유주의의 현 국면과
한국경제ꡕ(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제7차 정기총회토론회
자료집), 23쪽 이하 참조.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정부는 2001년에 들어서서 약 50조원의
공적 자금을 재투입하는 대대적인 제2차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위기재발에 대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변경, 재벌기업인 대우에 대해서도 ‘워크아웃’ 정책을 행하고,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을 추진하든 등 초국적 자본에 의한 기업
인수 등에 더 한층 매달리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추진을 위해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큰 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위기타개책이, 비록 그것이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로 표현되는 세계자본주의 질서에 더욱 확고하게
편입하는 것을 통해 한국자본주의의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미국경제와 일본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있고 세계자본주의 전체가 공황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정세 속에서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2) 김대중 정권의 대노동정책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은 노동자-민중의 삶을
온통 짓밟고 있는 가운데 사회구성원 모두가 시장의 정글법칙과
경쟁의 논리에 따라 살아갈 것을 강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개혁정책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자본의 운동은 경영을
합리화하고 경직된 노동을 ‘부드럽게 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계급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노동자와
실업노동자 및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 등으로 분할시키고
있으며, 이들이 오직 경쟁을 매개로 사회적 관계를 맺도록
강제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대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노-사-정’간의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빌려 추진하고,
그러한 합의를 추진하기 위한 기구로서 ‘노사정위원회’를
가동시키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목표로
하는 바는 노동조합의 상층과 현장대중을 분할시켜 자본지배를
공고화하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책참여를 통한 실리의 획득이라는 유혹과, 현장대중의
저항과 밑으로부터의 압력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상층 일부를 포섭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을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해’에 가두고, 또 이에 기초하여 민주노조운동이
미조직노동자와 실업자를 포함한 전체노동자계급과 전체
근로민중의 이해를 옹호하는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추구하는 사회적
합의주의란 결국 ‘총노동에 대한 총자본의 실질적인 양보’를
끌어냄으로써 계급타협 체제의 유지와 노동자계급의 체제로의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합주의적 이해와 관계되는
몇 가지 양보를 행하는 미끼를 던져 노조상층 간부를 포섭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제1기 노사정위원회’는
무엇보다 정리해고제의 관철에 따른 노동자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기구였다면, ‘제2기
노사정위원회’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착수하고 있는
산업구조조정 작업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기구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지난 99년 2월 24일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함으로써 김대중 정권이 구축하려 한 사회적 합의주의체제가
뿌리내릴 수 없다는 점이 이미 드러났다. 게다가 김대중 정권은
한국경제가 다시 위기재발의 위험에 노출되자 노동자계급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에 착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국민-주택은행간의 합병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중재로 이루어진 노사합의를 전면적으로 무시했으며, 1,750명에
달하는 대규모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대우노동자들의 농성장에
공권력을 조기투입해 진압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김대중
정권이 그간 내세운 사회적 합의주의체제를 스스로 내팽개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김대중 정권은 그간 자신의
대노동 포섭전략을 ‘신노사문화의 정착’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해 왔는데, 부르주아 노동이론가들은 이를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완성’ 등으로 치켜세우고, 노동운동진영
내부의 일부 이론가들 역시 이를 ‘사회적 합의’와
‘정책참가’ 또는 ‘실현가능한 차선책의 추구’ 등을 들어
장단맞추어 왔다. 그러나 정권 자신이 사회적 합의주의체제를
내팽개치고 잇는 상황 속에서 ‘신노사문화의 정착’ 역시
알맹이를 상실한 반동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다.
(3) 대량실업의 발생과 소득불평등의 심화 등 가속화되는
‘사회파괴’ 경향에 대한 대응
김대중 정권의 위기해결책은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지닌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위에서 지적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위기해결책은 ‘경쟁과 이윤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회
전체를 희생시키고 황폐화시키는 과정’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과정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대량실업의 발생과
소득불평등의 심화 및 자살율과 범죄율의 급증, 가정파괴 현상의
확대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적인 실업사태가 발생하자 서둘러
98년의 경우 근 8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실업문제에
대처해 왔다. 정부의 실업대책은 그러나 노동자-민중의 생존과
삶의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보장을 지향하기보다는 한시적이고,
실업자폭등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발생함으로 말미암아
실업문제가 체제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는 최소대책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차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정부의
실업대책이 지닌 정책기조이다. 정부는 구조조정 등을 조기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기업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고용을 재창출한다는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정책기조를
실업대책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 이는 정부의 실업대책이
실업을 발생시키는 구조조정을 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방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가리키는데, 이런 기조
아래서는 정부의 실업대책이란 실업발생의 원인을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대량실업이 발생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면서
발생한 실업에 사후적으로 대처한다는 정책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으며,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확보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성화와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을 통해 실업문제에 대처한다는 한계를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99년에 이르러 경기회복이 이루어지면서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경기가 다시 침체하고 제2차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부터 실업률은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도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으로 규정지울 수 있는
정부의 이른바 ‘생산적 복지’ 정책은 실업자대책다운
실업자대책의 시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실업대책은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전체 임금노동자 중 임시직, 파트 타임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 및 노동자들 간의 임금격차가 오늘날
크게 증대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로 말미암아
취업노동자 중에서 임시직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취업노동자들 중의 많은 부분이
(‘무급가족노동자’ 등과 더불어) 일종의 ‘반실업자층’ 내지
‘숨겨진 실업자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법정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국사회
역시 앞으로 ‘대량의 장기적인 구조적 실업’을 지닌 사회가 될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관계의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개편은
소득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고 대다수 국민들의 빈궁화를
촉진시키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경향은 설령 경제가 다시
회복국면에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사회 운용이 신자유주의적 기조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 결코 멈추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회복을 위해 우선은 이러한 사회 양극화과정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본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사회 전체가 희생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한국경제 및 세계경제의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조건 속에서 그러한 사회양극화과정은 앞으로
더욱 진척될 것으로 예상된다.
(4) 민주개혁의 주변화와 형해화-공동화 및 정치지형 변화시도의
보수성
김대중 정권은 출범 당시 시장경제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
역시 국정의 제1목표로서 제시했었다. 그러나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김대중 정권의 노력은 한편으로는 DJP연합에
기초하여 집권한 데다가 집권 이후에도 수구보수세력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들 수구보수세력과의 화해와 타협을
추구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수준에서 한정시킴으로 말미암아
민주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주의적’ 접근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은 전교조의 합법화와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을 정리해고제의 법제화와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그리고
정치수준에서는 양심수 석방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그러나
애초의 양심수 석방은 전면적인 것이 아니었고, 새로운 형태의
전향서라고 불릴만한 준법서약서 제출을 조건으로 하고,
비리관련자들의 석방 등과 함께 시행한 것이었다―,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의문사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함으로써
과거와의 단절을 일정하게 꾀하면서도 의문사 및 민주화운동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체계의 폐기와
인권관련법의 제정과 같은, 민주주의의 신장에 핵심적인 의의를
지닌 부분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나아가
김대중 정권이 추진해온 그간의 교육개혁, 의료개혁 등도
기본적으로 경쟁과 효율 등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개혁이 오히려
공교육의 파탄과 학교붕괴 및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증대 등을
초래함으로써 교육과 의료체계 등의 전면적인 파탄이 초래되고
있다. 나아가 김대중 정권은 지역주의 타파 등을 명분으로 취임
전에는 전두환-노태우의 사면에 앞장섰으며, 출범 이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및 국회 내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건립 추진을 지원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국가원로로
대우하는 등 인권 탄압과 민주주의의 말살 및 독재통치의 상징인
전직 대통령들을 미화하는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김대중 정권 하에서 민주개혁이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과제로 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나마 그것을 신자유주의정책의
관철과 수구보수세력과의 화해를 위한 볼모로 만듦으로써
민주주의의 형해화-공동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김대중 정권은 그간 정치지형이 국내외
총(독점)자본의 축적 요구를 대변할 수 있도록 과거의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해체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면서
수구보수세력과 개혁적 자유부르주아세력들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또한
부르주아 의회정치구도를 재편하여 집권당을 명실상부하게 전체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정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김대중 정권은 자신을 ‘총체적 개혁의
주체’로 격상시키는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지하는 자원을 사회로부터 끌어내고 노동자-민중진영을
고립시키기 위해 경실련, 참여연대 등의 시민운동세력을 적극
포섭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들을 정부가 참여하거나 후원하는
새로운 운동단체들을 결성해 왔다. 한겨fp신문을 앞세워 추진해
온 ‘실업극복 국민운동본부’와 ‘민족회의’ 소속의 많은
단체들을 포섭해 설립한 ‘민족화해 범국민협의회’ 및
‘민주개혁 국민연합’과 ‘제2건국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의
창설 등은 그러한 노력의 중요한 사례에 속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혁 등을
뒷받침하는 ‘정권의 제2중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취임 3년을 맞이할 무렵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개인적 위상을 최정점으로까지 끌어올렸지만,
한국경제가 다시 공황재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고 국정난맥과
비리 사건 등이 터져 나오면서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대중 정권은 개혁의
진로를 전면적으로 혁신시키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는 것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DJP공조체제의 복원과 같은 수구보수세력과의
협력체제 복원을 통해 정권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김대중 정권의 성격을 한층 더
반민중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김대중 정권으로 하여금 민주개혁에
한층 더 등을 돌리도록 만들고 있다.
(5)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대북 햇볕정책
김대중 정권이 그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대북 햇볕정책’은,
그것이 자본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대변하는
시장주의적-신자유주의적 접근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것이었지만,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6․15남북공동선언의 채택을 가져옴으로써 적대적
대결관계에 있었던 남북한관계를 개선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대북 햇볕정책은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많은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내적으로는 김대중 정권이 남북회담의 성과 등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데에 적극 활용한 데에다가 내국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크게 상실하게
되고 이에 힘입어 수구보수세력의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이
강화되고 있는 데에,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새롭게 출범한 미국의
부시정권이 대북 강경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는 데에 크게
기인한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정권이 대북관계에서 새로운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국의 방해 등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의
화해-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과 더불어 그러한 새로운 접근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힘의 결집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3.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김대중 정권이 그간 추진해온 개혁정책의
성격과 한계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김대중 정권의 개혁이란 기본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여
자본가의 헤게모니적 지배체제를 재구축하고, 한국경제가
지구화된 자본축적 운동에 걸맞은 체제로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임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김대중
정권의 개혁은 한국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천민적 요소를
대거 지닌 한국 자본주의’를 지구화된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걸맞은, ‘신자유주의적으로 근대화된 자본주의’로 만들기 위한
개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체제로의 전환은
위기부담의 노동자-민중에게로의 대대적인 전가와,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의 극대화 및 노동강도의 강화를 추구하는
‘유혈적인’ 신자유주의적 산업구조조정 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그 개혁은 소수재벌로의 자본의 더 많은 집중과 외국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를 강화시키고, 한국경제를
지구화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동학에 한층 더 노출시켜
한국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더욱 높이고 있으며, 노동자-민중의
생존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사회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는 김대중 정권 하에서
민주개혁이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과제로 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나마 그것을 신자유주의정책의 관철과 수구보수세력과의
화해를 위한 볼모로 만듦으로써 민주주의의 형해화-공동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의 개혁노력은 현시기에 이르러 세계자본주의체제가
공황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증대하고 있는 데다가 국정운영 상의 제반
난맥이 중첩되면서 총체적인 파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파탄을 계기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고 사회질서
전체를 전면적으로 혁신할 정치적 능력을 노동자-민중세력은
아직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민중의 삶은,
정권재창출이 이루어지든 아니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든, 앞으로
더욱 악화되고 더욱 고통스러운 상태로 내몰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태를 종지부 찍고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한 비상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