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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조선.동아의 친일광고 백태

현장에서 미래를  제65호
정운현

일제하 조선․동아의 친일광고 백태
“축 징병령”, “황군 무운 기원”, 조선․동아 광고도 친일 앞장, 어린이까지 선전 이용


정운현/친일문제연구가
ꡔ한겨레신문ꡕ 2001년 3월 28일




‘기(祈) 황군무운장구(皇軍武運長久)’(1937.10.13)
‘축(祝) 남경함락(南京陷落)’(1937.12.22)
‘봉축(奉祝) 명치절(明治節)’(1939.11.3)
‘축(祝) 지나신정권성립(支那新政權成立)’(1940.4.18)

얼핏 보면 신문기사의 큰 제목 같지만 사실은 일제 당시 한 국내신문에 실린 광고 선전문귀들이다. 기사보다도 훨씬 노골적으로 친일성향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당시의 자사신문을 두고 ‘민족지’라고 강변해온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에는 친일기사 이외에도 지면 하단부 광고란에는 이같은 친일광고가 수도 없이 많이 실렸다. 두 신문 가운데 대량의 친일광고를 게재한 신문은 조선일보 쪽이다. 조선일보는 1931년 발생한 만주사변 이후부터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 찬양하는 광고를 잇따라 게재했다.(사진 위) 기사에서 일본군을 아군(我軍), 황군(皇軍)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그 아래 광고란에서는 이들에게 위문품을 보내자거나, 황군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하는 문귀를 담은 상품광고를 버젓이 게재했다. 특히 이 신문들은 일부 친일기업인들이 전쟁특수를 노려 ‘후방의 위문대(袋) 지원은 전선과 후방을 잇는 가교’라고 선전해대자 이에 발맞춰 현란한 군국주의 문귀와 함께 전선의 군인을 등장시켜 전쟁 분위기를 한껏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하 조선일보에 게재된 친일성향의 광고는 총340여건으로 나타났다. 시기별로는 만주사변 이후(1932.3~1933.5) 14건, 중일전쟁 이후 폐간 때까지(1937.7~1940.8) 326건 등이다. 또 조선일보의 자매월간지인 ‘조광(朝光)’에 게재된 친일광고 건수는 70건 정도로 집계됐다. 이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보다는 적은 양이지만 경쟁지였던 동아일보보다는 훨씬 많은 수치다.
조선일보는 만주사변 발발후인 1932년 3~4월경에는 ‘부상전사를 위로합시다’ 정도의 친일광고를 실었으나 1937년 중일전쟁 개전 이후로는 노골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과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문귀를 담은 광고를 실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중일전쟁 발발 2개월 후인 37년 9월 7일자에는 총후(銃後), 즉 후방의 주민들을 상대로 ‘총후의 책무, 국가를 위하여’라는 문귀가 담긴 상품광고를 실었으며, 조선일보 6,000호 기념호인 이듬해 3월 1일자에는 ‘국민정신총동원’이라는 문귀가 담긴 인단(仁丹)광고를 실었다. 또 이해 5월 5일자에는 ‘군민일여(軍民一如) 거국적 국가보국(報國)’이라는 선전문귀의 아지노모도의 광고를 실었으며, 6월 8일자에는 ‘장기전(長期戰)에 준비하자’는 모리나가 건빵의 광고를, 11월 16일자에는 ‘중지(中支)에도 남지(南支)에도 황군(皇軍)의 기(旗)빨이 휘날리게’라며 멘소레담 광고를 실었다. 특히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37년 9월 7일자에는 어린이들이 일장기와 총, 일본도(刀)를 들고 전쟁놀이를 하는 그림과 함께 ‘총후의 책무 국가를 위하여’라는 문귀가 적힌 광고를 게재하였는데 이는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선전매체로 동원하여 침략전쟁을 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광고는 어린이들에게 단순히 전선에 위문대를 보내자는 정도가 아니라 어린이는 ‘내일의 일본군’(1937.10.28.), ‘작은 용사’(1937.11.14)라고 지칭하면서 ‘애기들이 자라나면 일본이 성장한다’(동아일보, 1939.11.18)고 강변하는가 하면, 태평양전쟁 무렵에는 ‘건아 만세! 뻗어나는 일본의 저력’(매일신보, 1943.4.15)이라며 어린이들을 ‘미래의 전사(戰士)’로 묘사하고 있다.
한편 조선일보의 자매지 ‘조광’ 역시 상당수의 친일광고를 게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1941년 1월호에는 ‘축(祝)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신춘(新春)’이라는 문귀의 인단광고를 실었으며, 이듬해 2월호에서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일억일심(一億一心) 총동원’ 광고를 실었다. 태평양전쟁 발발로 징병제가 실시되자 1943년 6, 7월호에서는 ‘축(祝) 징병령시행’ 문귀의 광고를 실어 은연중에 징병제를 선전하였으며,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전쟁에서 최후까지 이겨내기 위하여’(1944년 6월호), ‘싸우는 여성은 강하다’(1944년 5월호) 등의 자극적인 문귀를 담은 광고물 게재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1-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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