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지ˇ상ˇ강ˇ좌
유럽 좌파정치의 역사와 현황
노동자 교양정치학의 두 번째 강의입니다. 이 시간에는 유럽 노동운동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좌파정당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노조와 노조운동도 좌파정치의 커다란 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시간 관계상 모두 다룰 수가 없습니다. 정당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 노조는 정당과의 관계라는 맥락에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 강의는 크게 서유럽 4개국의 (중도-)좌파 정권의 현주소, 좌파정당의 변천사 그리고 좌파정당과 노조의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현 유럽 4개국 (중도-)좌파정권의 현주소를 알아본 다음, 좌파정당의 역사와 변화 과정을 더듬고 이를 다시 노조와의 관계와 더불어 설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좌파정당에 관한 설명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당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앞선 강의의 정리를 기초로 과연 노동운동의 선진국인 이들의 경험이 무계급사회 건설을 위한 올바른 역정이었는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유럽 4개국 (중도-)좌파정권의 현주소
지금도 그다지 달라진 바는 없지만, 현 좌파정권 또는 중도좌파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높은 실업률과 상대적 빈부차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 정치의 경험이 전 유럽을 관통하는 사정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럽 평균 11%라는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과 복지삭감은 계속되어 왔기에 ‘3분의 1의 사회’나 ‘4분의 1의 사회’라는 말이 회자되기에 이르렀다는 것도 상식입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영국과 독일의 유권자들은 ‘급진 중도’와 ‘신중도’로 호소하는 블레어와 쉬뢰더, 그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유권자들은 ‘쇄신 좌파’와 ‘유럽사회주의’로 호소하는 조스팽과 달레마를 선택해 새로운 좌파 정치 실험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쉬뢰더는 블레어에 비해 ‘덜 신자유주의적’이 되었다고는 하나, 블레어-쉬뢰더 성명이 아직 유효한 것처럼 이러한 차이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고 보입니다. 반면 이탈리아의 프로디 총리 시절은 프랑스 조스팽과 독일 쉬뢰더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으나, 공산당이 연정에 참여한 달레마 총리 때는 프랑스와 발을 맞추었습니다. 달레마가 사임한 후 아마토 내각에 와서 또다시 중도-우파 정부 시기로까지 회귀하는 듯도 합니다만, 이탈리아는 대개 영국, 독일보다는 프랑스와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4개국 정부의 정책은 중간층 강조의 정도와 일부 사회정책과 유럽정책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영국과 독일이 상호 근접하며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그와 다르게 나타납니다.
다음 도표의 요약을 보며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표 1>에서 보는 것처럼 영국과 독일이 보수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치를 답습하는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실업해소와 소외층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조스팽 총리가 “사회주의 장점을 부활시킨 쇄신좌파”임을 강조하고, 달레마 전총리가 “조스팽이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표현한 점에서도 드러난 바 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또한 영국과 독일의 노선이 중간층에 치중된 것에 반해, 좌파 지지층을 기반으로 중간층과 연합한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전 공산당원으로서 좌파민주당 당수인 달레마가 사임한 후 전 사회당원이었던 아마토가 총리가 된 지금에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향우 경향이 없지는 않으나, 영국, 독일과 비교한다면 이러한 설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블레어의 신노동당이 추구하는 급진중도란 주지하다시피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완전고용과 사회복지국가 및 케인즈적 수요정책에 기반한 전통 사민주의의 길과 대처 시절 보수당의 신자유주의적 길의 중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 쉬뢰더의 신중도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입장에서 다소 좌익의 경향을 띤 것이 프랑스의 ‘쇄신 좌파’와 이탈리아의 ‘유럽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구체적 내용들이 도표의 중간이하 부분입니다.
<표 1> 유럽 4개국 (중도-)좌파정부 정책 비교
|
영국 |
독일 |
프랑스 |
이탈리아 |
총리 |
블레어 |
쉬뢰더 |
조스팽 |
프로디→달레마→아마토 |
정부구성 |
노동당 |
사민당, 녹색당 |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
좌파민주당, (신)공산당, 월계수연맹내 중도 및 좌파 군소정당 |
표방이념 |
급진중도
(제3의 길) |
신중도 |
쇄신 좌파 |
유럽사회주의 |
전략상 지지층 |
중간층 중심 |
전통사회주의 지지자와 중간층 연합 |
좌파와 중간층 연합 |
경제정책 |
탈규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 |
시장경제 보장틀 내 국가 개입 |
전통 사민주의 국가 개입 |
사회정책 |
‘노동을 위한 복지’ |
‘근로를 촉진하는 국가’ |
소외층 강조, 노동시간단축 통한 실업 해결 |
노동시간단축 통한 실업 해결, 빈곤층 지원 |
유럽정책 |
성장과 고용 |
연대와 고용 |
노조 참여 여부 |
배제 |
‘고용 협정’ 활용: 의사결정 참여 불가 |
‘사회 협약’ 시도 |
노사정 협의체 반영 |
독일과 영국에서 사민당과 노동당이 선거전략상 지지층으로 규정하는 계층은 신중간층을 중심으로한 광범위한 중간층이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좌파정당들의 선거전략은 비록 지적하는 바는 다르지만 전통적 사회주의 지지층에 중간층을 포섭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 정책에서 독일 사민당과 영국 노동당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하는 탈규제 정책을 중심으로 한다면, 프랑스는 전통 사민주의 노선에서 일정하게 완화된 정책으로서, 시장경제의 틀을 보장하는 한도에서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보다 더 전통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데, 공개적으로 전통 사민주의적 국가개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경제정책에서 나타나는 4개국 정당과 정부의 차이점들은 사회정책 면에도 결부되어 있습니다. 우선 영국 노동당은 ‘노동을 위한 복지’를 주장하고 독일 사민당은 ‘근로를 촉진하는 국가’라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슘페터식 경쟁국가를 지향하며 복지제도가 시장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연정 내의 갈등을 반영하여 소외층 및 빈곤층 지원과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합니다. 노동정책과 관련해 영국 노동당은 당내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으로 노조의 주요한 정책결정 참여제도인 블럭투표제를 폐지하는 등 노조의 정책참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독일 사민당은 ‘고용협정’이라는 노사정 협의기제를 시도하고 있으나, 1960년대 말 이후 시도되어 온 노사정 협의기제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노조측의 의사결정 참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각각 사회협약을 시도하거나 실시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경우는 아직 실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 이후 정착한 노사정 협의회가 국가 인플레이션 정책 등에 실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이 기제의 성과가 현 정부와는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를 해체하고자 하는 시도가 거의 없다고 하는 표현이 오히려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한편 유럽정책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독일과 영국이 유럽연합을 주도할 것을 경계하며 ‘성장과 고용’ 대신 ‘연대와 고용’이라는 보다 진보적인 안을 내놓았습니다. 유럽정책도 국내정책의 연장선에서 보면 쉽게 이해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서 나타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상대적 진보성도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산당의 연정참여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경제 정책상 탈규제, 민영화, 조세인하를 중심으로 하고 사회정책면에서 재정적자 해소와 연결된 복지제도의 효율화와 감축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4개국 정부는 동일합니다. 이러한 상위 목표와 기본 노선의 틀 내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상대적 진보성도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불투명합니다. 최근 이들 정부에 대한 각국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아졌다는 보도가 있으나, 그 상승폭은 집권후 다시 하락했던 지지도를 만회한 것이거나 상승했다 하더라도 괄목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지지도 상승이 국민들의 ‘새로운’ 정책 수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찌기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보삐오(Norberto Bobbio)는 “제3의 길은 가능한가-좌파냐 우파냐?”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 그의 질문은 낡은 질문이기 이전에 이미 우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삐오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해 ‘제3의 길’은 “양극단의 산술평균에 불과한 양비론적 중도론”이자 “대중을 현혹하는 사이비 샛길”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제3의 길은 좌파정당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치’라는 진실 규명이 이번 좌파정부 실험의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2. 정당 구분을 위한 개념
‘좌파정당’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이야기를 좀더 체계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정치학에서 의미하는 ‘좌파’의 개념과 범주를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좌-중도-우라는 이데올로기 구분이 학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이른바 ‘탈물질주의’ 학파의 등장 이전까지는 다음 스펙트럼(<그림 1>)상의 배열로 설명되곤 했습니다.
<그림 1> 이데올로기 스펙트럼 1
극좌파에 해당되는 정당들은 주로 무력투쟁과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반자본주의 정치세력이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의 공산당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좌파는 유럽 사회주의나 사민주의 정당 또는 노동당 등 의회주의적 노선을 선택한 좌파정당들을 일컫습니다. 반면 우파는 주로 자유당이나 자민당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정당들로서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정당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극우파란 (네오)파시스트나 (네오)나치정당 또는 우익집단주의적 반동 성향의 정치세력을 말합니다. 반면 중도파는 보수당, 기독민주당 등 현 질서와 기득권을 유지하는 온건한 경향의 정당들을 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 자체가 서구 보수세력, 좀더 엄밀히 말해 중도에 위치한 세력들의 구미에 맞을 뿐 아니라 실제 이러한 경향을 띤 구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그리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중도파와 우파의 대변 경향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모호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구분을 소개하는 것은 중도파나 우파로부터 확연히 구분되는 좌파군에 대해 설명하고자 함입니다. 고전적 좌파를 통칭할 때 우리는 이러한 구분에 따라 위 스펙트럼 상의 좌파와 극좌파를 일컬어 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잉글하트(R. Inglehart) 등 ‘탈물질주의’의 대두를 주장하는 측의 이야기가 좌우 구분에 미친 영향을 보겠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위 스펙트럼 상에 위치한 모든 정당들은 동일한 가치구분의 관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즉 좌파이건 우파이건 또는 중도파이건 이들의 구분은 자유시장 옹호와 평등 가치의 주장이라는 경제와 분배를 둘러싼 갈등, 즉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물질적 욕구가 해결되지 못한 시절에 유용했으며, 2차대전 이후 출생하여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서구 세대들에게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후기산업사회를 경험한 이 세대들은 물질적 가치보다 인간성, 환경, 자치, 성 등 탈물질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이러한 경향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두 개의 축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응용해 나름대로 4개의 구분에 대한 해석을 첨가하여 다음의 이데올로기 스펙트럼 2를 보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림 2> 이데올로기 스펙트럼 2
현재 환경운동, 반핵․평화운동이나 여성해방운동 및 기타 다양한 탈권위주의 운동들이 의미를 더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구분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운동들이 물질적 가치와 종횡으로 얽히면서 탈물질주의적 가치에 대한 좌우 구분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탈물질적 가치관에 따른 운동들이 물질적 가치관을 가진 저항세력과 기득권 세력을 동시에 적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좌우의 구분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물질적 기득권 계층(착취 계층)과 비기득권 계층(피착취 계층)으로 구분 짓는 것이라면, 이러한 구분은 탈물질적 가치관을 가진 그룹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도표 상에서 물질주의적인, 다시 말해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그룹은 ②③이며, 탈물질주의 가치관을 가진 그룹은 ①④입니다. 그리고 물질주의 가치관을 가진 두 그룹 중에서 ③은 전통적인 부르조아 계층인데, 설명이 더 필요 없이 이해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②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좌파로서 과거의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및 빈민운동을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다른 두 그룹과 비교하면서 설명을 보충하겠습니다. 두 탈물질주의 그룹 중에서 ④의 대표적인 예는 자유주의적 또는 엘리트적 여성운동이나 순수 환경보호 운동처럼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문제삼지 않고 환경, 성, 권위 자체만을 문제삼는 그룹이라 한다면, ①은 자본주의 구조의 모순과 환경모순, 가부장적 모순 및 권위주의․관료주의의 모순을 함께 해결하려는 그룹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그룹은 전형적으로 68운동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신좌파로 칭하는 그룹은 대개 이 부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때로는 ①④를 모두 이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탈물질주의 그룹을 모두 칭한다는 것인데, 이럴 때는 다시 신좌파 그룹내의 좌파를 ①이라 할 수 있고, 우파를 ④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유럽 정당들 중에서 녹색당도 좌파라 일컫는데 이견은 없다고 봅니다. 녹색당은 환경운동만 하는 정치세력이 아닙니다. 환경보호, 여성해방, 인권, 탈권위주의 그룹들이 녹색당이라는 정치그룹으로 통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①④를 포괄하고 있는 정치단체입니다. 그래서 다시 녹색당내의 정향을 근본주의와 현실주의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것이 ①과 ④라는 구분과 명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게 구분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최근 탈공산주의 정당이나 사민주의 정당들의 대부분은 현재 사회의 기본모순을 노자간에서만 찾지 않고 환경모순, 가부장적 모순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에 권위주의의 모순도 같이 보아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해방운동 신념이 노동자들의 특수 이익만을 대변하지 않고 인간해방 운동으로 발전하여 과학적 신념체계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순들을 함께 언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 사민주의 정당들의 노선은 이러한 문제들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노자간의 모순을 바탕으로 하는 가운데 다른 제반 모순들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아니라, 노자 모순에 대한 인식을 폐기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좌우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맺고 이제 정당 개념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강의에서 계급정당과 전위정당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와는 조금 달리 정치학적으로 사용되는 정당의 개념 구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선 계급정당이란 특정 계급에 기반을 두고 그 이해관계를 강령적으로나 조직구조적, 실천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을 말합니다. 그에 대한 대척적인 개념은 국민정당입니다. 특정 계급과는 무관하고 초계급적으로 국민 일반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catch-all-party라는 ‘모든 것, 모든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어떠한 계층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선거정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유럽의 좌파정당은 대개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3. 유럽 좌파정당들의 변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좌파정당 지형은 매우 색다르기도 하지만, 일정하게 유사한 성격을 갖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독일의 사민당과 영국의 노동당이 유사하다고 한다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또한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별로 살펴보면서 비교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일 사민당은 맑스 사상보다 당의 창설자인 라쌀(F. Lassalle)의 사상에 뿌리고 두고 있습니다. 라쌀은 의회활동과 사회법제정을 통한 노동자상태 개선을 전략목표로 규정한 국가주의자이자 의회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비스마르크와 비밀협약을 맺어 사회복지 정책을 도입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경제투쟁 위주의 영국 노동조합들이 노동자 이해관계의 의회적 대변을 위해 노동당을 만든 것도 경로는 다르지만 그 뿌리의 이념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독일 사민당과 영국 노동당은 맑시즘에 의한 영향의 정도가 달랐습니다. 수정주의 논쟁이후 맑스주의자들이 분리해 나가기까지 특히 제2인터내셔널과 관련해 독일 사민당에 대한 맑스의 영향력은 적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반면 영국 노동당의 경우는 지속적으로 점진적인 개혁전략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집권의 전략과 경험을 통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노동당은 2차대전 중 연정에서 내치를 맡은 경험을 통해 수 차례 집권과 실권을 반복해 왔지만, 독일 사민당은 최근의 집권을 제외하면 1960년대 연정이후 1983년까지가 종전후 유일한 집권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영국 노동당의 강령과 전략 변화가 커다란 굴곡 없이 이루어져 왔던 반면, 독일 사민당의 경우는 수정주의 논쟁 이후에도 일정한 시점을 두고 획기적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독일 사민당은 수정주의 논쟁이후 의회주의적 국가주의로 회귀했음에도, 2차대전 종전후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주의 실현을 최종목표로 하는 노동자 정당으로 활동했음이 사실입니다. 독일 사민당의 첫번째 변화는 1959년 강령변화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제 강령과 전략은 수단에만 그치지 않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표마저 포기한 것입니다. 산업노동자에 기반한 계급정당이기를 포기하고 국민일반을 지지기반으로 하고자 하는 국민정당으로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강령상의 변화는 1960년대 말 연정 참가와 집권을 통해 실천적으로 완성됩니다. 이는 선거전략이나 정부의 정책이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우선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사민당의 구체적인 정책은 이른바 전통 사민주의 정책이라고 일컫는 케인즈주의적 수요조절과 완전고용 및 복지 정책이었습니다. 맑시즘적 사회주의와 사민주의가 확연히 갈라지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사민주의는 이제 자본주의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 자본주의를 목표로 하는 이념이 된 것입니다. 1959년 이후의 독일 사민당을 일컬어 학자들은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이라고 합니다. 국민정당으로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대변을 존재이유로 하지는 않지만 구체적 정책과 당의 구조는 여전히 친근로자적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2차대전 이후 영국 노동당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의 노선을 지속적으로 취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를 거치면서 완성된 양국의 대표적 좌파정당의 변천을 보도록 합시다. 한 마디로 ‘친근로자적’이라는 수식어조차 떼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현 정권의 정책들을 비교하면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노동당과 사민당은 이른바 전통적 사민주의 정책이라고 하는 케인즈주의적 정책과 복지국가 이념을 버리고 국가의 경쟁력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초이너(B. Zeuner) 교수는 블레어-쉬뢰더 성명 이후의 독일 사민당을 일컬어 ‘민족적 경쟁국가’ 또는 ‘현대적 경제정당’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최근 영국 노동당도 동일한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스페인을 포함한 이른바 라틴문화권에 속하는 국가들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 상의 다원성과 원심성을 보입니다. 좌파의 위치에는 사회당과 사민당 외에 미미한 세력이지만 녹색당도 있으며, 극좌파로는 공산당을 비롯한 선언파 그룹, 급진파 등 그야말로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정당지형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정당들이 더욱 많은데, 어떠한 정당도 40% 이상을 차지한 경우가 없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다당제가 나타나고 있으나, 프랑스와 비교할 때 기민당과 공산당이 양대 정당의 위치를 지속해 왔던 점이 다릅니다.
두 나라의 공산당은 197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이른바 ‘유로코뮤니즘’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는 당시 국내적으로 적군파와 같은 극좌파와의 구분의 필요성과 국외적으로 소련의 동유럽 침공 등에 영향받은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공산당은 물론 1980년대까지도 대외적으로 친소노선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국내적으로는 이탈리아에 비해 다소 늦기는 했어도 유로코뮤니즘적 경향을 띠어가고 있었습니다. 유로코뮤니즘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폭력 혁명을 포기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과 생산수단의 사회화 그리고 산업노동자에 기반한 사회전략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 및 스페인의 공산당들은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상의 극좌에서 좌로 이동해 가고 있었습니다.
일반성 속에서도 특수성은 항상 존재하듯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산당 변천사에도 차이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경우, 그람시 이후 2대 당수인 톨리아티를 거치면서 이미 유로코뮤니즘의 맹아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대전 막바지에 귀국한 톨리아티는 정치전략과 사회전략을 구분하여 사회전략에서는 산업노동자에 기반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되 정치전략적으로는 의회주의를 우선한다는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라고 보아서는 안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유로코뮤니즘으로의 변화를 노정하는 첫 걸음이라고 볼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유로코뮤니즘으로의 변화는 최근의 변화와도 연결됩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당내 논쟁을 거쳐 1990년대 초에 공산당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무색무취의 ‘좌파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채택했습니다. 당내의 정통 공산주의 계파는 탈당해 극좌 및 신좌파 정치세력들과 연합하여 재건공산당을 설립했습니다. 이 후 좌파민주당은 1990년대 후반에 다시 ‘당’이라는 글자를 때어 ‘좌파민주주의자’로 개명하여 사민주의화 경향을 더욱 가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독자적인 뿌리로 볼 때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의 현재 모습과 같다고 할 수는 없고, 그들의 옛 모습인 전통 사민주의에 가까운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프랑스에서 공산당이 지속되는 실표에도 불구하고 명맥을 유지하면서 현재 연정까지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와 대조되는 상황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구 공산당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분리해 나와 다른 외부 정파들과 함께 재건공산당을 설립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창당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건공산당 내에서는 또 다시 외부 정파들과 구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자들 간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간 지속해 오던 연정지지를 철회하는 문제를 두고 재건공산당은 분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 공산계 노조 내에 비판적 노조정파를 설립한 베르티노티(F. Bertinotti)가 당권을 장악했고, 연정지지 철회를 반대하던 스탈린주의자들이 탈당하여 ‘공산당’을 재창당했습니다. 이로써 이탈리아에는 두 개의 공산당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두 공산당 중에서는 토대민주주의와 신좌파 경향을 띤 재건공산당이 정부의 중도화 및 우경화를 막는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재건공산당은 현재 주35시간제, 남부 지원, 실업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노동시간단축을 빌미로 한 유연화의 도입을 단연코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사회당은 그람시가 공산당을 창당하기 전에 몸 담았던 만큼 공산당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반파시즘 전선에서 사회당보다는 공산당의 활동이 지배적이었고, 그에 따라 종전 후에도 이탈리아의 좌파정치 지형은 공산당에 의해 대표되어 왔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이탈리아 사회당은 득표율이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정에 참여하기 시작해 1980년대에는 장기간 사회당 총리(Craxi)를 배출하며 정국의 주요한 국면을 장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회당은 기민당과 함께 이탈리아 정치 부패의 온상이 되어 왔었고 그로 인해 정치개혁후 해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당내 좌파들은 그후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라는 군소정당으로 결합해 있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969년 온건좌파로서 창당된 사회당이 공산주의와 맑시즘과의 차별화에 성공하고 당세를 확장해 왔습니다. 결국 1981년에는 사회당 당수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현재에도 조스팽 총리가 보수당의 시락 대통령과 동거정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의 역사가 이탈리아 사회당보다 짧지는 않습니다. 1969년 창당된 사회당은 1905년 독립 사회주의파 및 포시벌리스트(FTS) 등이 결성한 우파 프랑스 사회당과 게르파(POF) 및 블랑키스트들이 창립한 좌파 프랑스 사회당이 통합한 것입니다. 프랑스 사회당이 이탈리아 사회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좌파적 색깔을 선명히 하고 있으나, 이 당 역시 미테랑의 선거전술 및 조스팽 이후의 변화에서 보이듯이 ‘선거사회주의’적 성향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당선을 위해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길로 나아간 것입니다.
4. 좌파정당과 노조의 관계
우리가 좌파정당을 제도권 활동에 국한된 국민정당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토대 대중조직인 노조와의 관계는 좌파정당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정당과 노조의 관계에 대해 “일상 경제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각성하게 됨으로써 경제투쟁이 계급투쟁으로 전화하며, 그와 더불어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노조는 사회주의를 위한 학교”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 규정을 둘러싼 해석은 인터내셔널을 거치면서 다양한 유형들을 형성해 왔습니다. 시간관계상 이 역사적 과정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고, 이 시간에는 2차대전 이후 서유럽 노조와 정당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하되 유형분류의 필요상 레닌 이론에 입각한 동구권의 유형을 곁들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표 2>를 보며 설명 드리겠습니다.
<표 2> 서유럽 노조-정당 관계 유형
노조-정부?사용자 관계
노조-정당
주도관계 |
갈등 해소 |
갈등 유지 |
독립주의 |
조합주의(corporatism: 의회주의적 국민정당과 경제투쟁에 국한된 통합노조, 사회 동반자 관계):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칸디아비아 국가들 |
갈등 동반자 관계:
사회/사민주의 정파 노조와 보수 정책 시기 사민주의적 통합노조 -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베네룩스 3 국
|
정당 우위 |
매개고리또는전달띠
(Transmissionsriemen):동구 공산주의 |
노조의 직접 정치활동: 서유럽 공산주의 정파노조와 공산당 -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
노조 우위 |
경제적 조합주의(정당을 통한노조의 의회 진출, 산업 민주주의): 영국 |
(무정부주의-)생디칼리즘 |
전통적으로 좌파정당과 노조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위에서 언급한 마르크스의 설명에서도 보았듯이 양 조직간의 역할 분담에 따른 주도권 논쟁과 노조 활동의 정치적 의미를 둘러싸고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선거라는 정치적 공간이 변수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좌파정당들은 국민정당화하면서 노조를 점차 멀리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노조들 또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를 수용하면서 국가와 직접 상대하거나 노사관계에만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조들의 이러한 입장은 정부와 사용자에 대한 노조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다시 달라집니다. 이 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조와 정부ּ사용자와의 관계가 성립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노조와 정부의 관계만 성립합니다. 현실 사회주의에는 더 이상 자본가로서의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조가 사용자 및 정부와 갖는 관계는 노동자와 정부ּ사용자의 이해관계 대립이나 갈등이 노사화합이나 삼자협의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과, 기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을 조절하거나 노동자 이익을 주장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면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적 모순이 극복되었다는 가정이 통용되므로 노동자 정부와 노조간에 갈등이 있을 수 없으며, 노동자 정부를 이끄는 공산당과 노조도 기본적으로 갈등관계에 있지 않다고 정리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노조와 정당의 역할 분담에 따른 주도 관계를 한 축으로 하고 노조의 정부 및 사용자에 대한 갈등 관계를 다른 한 축으로 하여 유럽 각국의 좌파정당과 노조를 새롭게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즉, 노조와 정당 관계를 독립주의, 정당 우위, 노조 우위로 세분하고, 노동자와 정부ּ사용자의 이해관계 대립을 기준으로 노조와 정부ּ사용자에 대한 관계를 갈등의 유지와 해소로 나누어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 분류에서 노조의 우위로 정의되면서 갈등 유지로 분류되는 형태는 현대 유럽에서 이미 존재하지 않는 생디칼리즘 또는 무정부주의적 생디칼리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물론 정당 활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지만, 노조 위주의 활동과 그것을 강조하는 형태로는 여전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정당활동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의 전통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서유럽의 경우, 노조와 정당의 관계는 그들간의 상호 대립과 갈등을 통해 노조가 점차 정당의 일방적인 우위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정립되어 왔습니다. 영국의 경우 경제적 조합주의에 입각한 노조 독립주의가 사회주의 정당의 약화와 노조의 일방적 우위로 발전해 갔으며 그것은 노조의 직접적인 정당 설립과 의회 진출 및 산업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계급화해 노선으로 현상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노조의 독자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법제정을 통한 국가의 지원 정책을 노동자의 사회적 처지 개선의 유일한 길로 삼았던 라쌀의 국가주의 사상과 마르크스 이념과의 갈등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이미 설명 드렸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민당의 우위와 함께 ‘정치적 팔’과 ‘경제적 팔’이라는 역할 분담이 유지되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승리를 위한 사민당의 계급정당 포기와 국민정당화 이후 독일노련도 1952년 공장법 제정에 대한 적극적 반대를 포기함으로써 수동적이지만 스스로 정치투쟁을 단념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양 조직의 역할 분담까지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과 양 조직의 독립주의를 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독일의 좌파정당과 노조의 관계는 국민정당과 통합노조라는 일견 상호 무관한 관계로 보이는, 상호 독립된 관계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관계는 좌파정당이 의회를 주요 무대로 하는 제도권 활동에 한정되고, 노조는 일체의 정치투쟁을 정당에 일임한 채 임금ּ단협투쟁에 함몰되어 국가에 의존하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또한 국가의존 경향으로 인해 사용자와의 갈등에서 국가를 매개로 한다면 노사관계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연결됩니다. 사민주의 정당들이 집권한 시기 중북부 유럽의 노사정간 협조적 사회동반자 관계는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경제투쟁에서 독립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노조는 보수적 정책을 둘러싸고 사회적 동반자 관계를 포기하고 갈등관계로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좌파 국민정당과의 관계에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엄격한 분리, 기본적인 국가 의존 및 의회주의적 문제 해결의 성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복수노조 체계를 가진 국가의 사회/사민주의 정파노조들도 정당에 대한 독립성을 강조하고 연립정부 시기와 경제위기 시에는 사회협약을 통해 사회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며 그 역시 사민주의적 해결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정파노조들은 보수정당의 집권 하에 있으므로 정부ּ사용자와 갈등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런 까닭에 이 경우는 협조적 동반자 관계로 분류되는 위의 경우와 동일할 수 없으며, 정부ּ사용자와 갈등을 유지하는 갈등 동반자 관계라는 독특한 유형으로 엮어집니다.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의 노조는 혁명에 성공한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 대중의 참여를 유도해 내는 전달띠로 규정되어 국가관료화한 정당의 통치기구로 격하됨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참여가 저지되는 결과를 빚었습니다. 그러나 Transmissionsriemen으로 일컬어지는 노조-정당 관계에 관한 레닌의 원래 구상은 동원기제로서의 노조가 아니었습니다. 레닌의 구상은 아래로부터 대중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결집해 당에 전달하며, 위로부터 당의 결정을 대중에게 전달해 실천되도록 하는 민주집중제적 관계였습니다. 여기에서 노조의 역할은 당과 대중의 연결고리 또는 매개고리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왜곡되어 현상하였다고는 하나, 적어도 정통 공산주의 이론에서의 Transmissionsriemen 개념은 매개고리나 연결고리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이제 ‘노조의 직접 정치활동’이라는 마지막 한 유형을 설명하겠습니다. 유로코뮤니즘 국가군에서 나타나는 이 유형은 그람시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람시 사상에 나타난 노조-정당 관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전선과 단계의 구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람시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전선은 경제 전선과 정치 전선 및 이데올로기 전선으로 구성됩니다. 그 중에서 경제 전선과 정치 전선은 다시금 각각 3가지 단계로 설정됩니다. 경제 전선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자발적 저항인 노동조합 단계에서 시작하여, 노동자에 의한 생산 통제를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기 단계를 거쳐, 사회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해체 투쟁이라는 마지막 단계로 나아갑니다. 정치 전선의 첫 단계는 의회 투쟁을 통한 부르주아 권력을 제한하는 단계인데, 민주적 권리를 획득함으로써 계급간의 세력 균형을 도모하며 노동자의 조직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둘째 단계는 권력 장악과 노동자 국가 건설 단계로, 이 단계에서는 복합적인 정치 활동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가 모든 반자본주의적 사회 세력을 규합함으로써 권력 장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지배 계급으로서의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단계로서, 공산주의 실현을 위해 모든 기술적ּ사회적 장애를 해소하는 것이 목표로 설정됩니다.
이 두 전선과 각각의 세 단계는 이론 및 사상 정립과 선전 작업을 의미하는 이데올로기 전선과 다시 결합됩니다. 세 전선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정당은 ‘조직된 전위’로서 일상투쟁 전체를 통합하고 실체화할 의무를 부여받으므로 모든 것이 정당에게는 자신의 고유한 투쟁 자체입니다. 노조 투쟁 단계는 자발적인 단계로서 이 단계가 혁명의식으로 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사상 교육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지속적인 사상적ּ조직적 지원이 요청됩니다.
그러나 정당이 노동자들의 유일한 조직인 것은 아닙니다. 노조투쟁과 정당의 의회투쟁은 각각 경제투쟁 전선과 정치투쟁 전선의 출발단계로서 마지막 자본주의 해체투쟁과 공산주의 실현 투쟁에서 통합될 수밖에 없는 변증법적 관계에 있습니다. 노조도 생산 통제를 넘어 필연적으로 정치적 투쟁을 수행하게 되는, 자본주의 해체 투쟁의 한 주체로서 인정됩니다. 서유럽 공산당과 공산계 정파노조들의 관계를 ‘노조의 직접 정치 활동’ 유형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들이 그람시의 이러한 구상과 유사하다는 판단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구공산당이 사민주의화한 좌파민주당으로 변화한 후에는 좌파민주당과 공산계 노조의 관계를 더 이상 이러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없게 되기는 했습니다만, 재건공산당과 공산계 노조내 비판적 정파간의 관계는 여전히 이러한 유형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마치며
다소 장황한 이야기에다 사실의 전달에 치중한 강의가 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들이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인데, 서유럽 좌파정당들의 변화를 통해 우리가 짚어야 할 점은 한 마디로 이를 본 받지 않아야 한다는 부정적 교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정적 교훈일지라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 선택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여러 대안들 중 적어도 이것은 아니다 라거나 이러한 방향은 이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정도는 배울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서유럽 좌파정당들의 변화는 후기 산업사회 이후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탈물질주의 경향의 확대 현상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에서 언급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 상에서 보면, 서유럽 좌파정당들은 ①②의 대변에서 ①④의 대변으로 전환하다가, 이제는 ③의 대변도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은 가운데 ①④의 대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산업노동자 중에서도 빈곤층이 다수를 이루는 ②의 대변을 소홀히 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활동하는 좌파정당이라면 그 모순을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계층의 대변을 당연한 기본 의무로 해야 합니다. 따라서 ①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되 ②④를 견인해 내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임금노동의 착취라는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을 기본으로 환경 모순, 가부장적 모순 및 권위주의적 모순들을 해결해 나가는 노력을 융합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종점이 언제일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몇 년이라는 수치를 계산하고 말하기보다 반드시 극복되고 또 극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그 방법들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천에만 매몰되어서도 안될 것이며 실천을 사상한 지적 탐구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즐겨 이야기하는 경구 몇 마디로 이번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ꡔ대학(大學)ꡕ 8조목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중 앞부분의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물을 탐구하여 앎에 이르고 이를 바탕으로 뜻을 성실히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수기(修己)의 덕목입니다. 저는 여기에 나머지 8조목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신 맑스의 포이어바하 테제 11번을 연결합니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만 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비단 학자뿐만이 아닙니다. 비판하고 논구하기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뜻을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적 어려움보다 타인들의 비난이나 비판, 무시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맑스가 ꡔ자본론ꡕ 1권 서문에서 인용한 단테의 ꡔ신곡ꡕ의 한 마디로 각오를 새롭게 해 봅시다. “당신의 길을 가세요!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지라도 내버려두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