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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95년 결산과 ’96년 전망
 96년 정세를 점검한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6호
정해구

특집 5

96년 정세를 점검한다

최근 남북한 관계, 그 결산과 전망

남북관계의 ’95년 결산과 ’96년 전망


정 해 구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1995년 이전의 남북관계 현황

수천억대에 달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동과 구속, 십수년 동안 제대로 해결치 못했던 5·18문제의 처리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격 구속, 그리고 이들 사안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정치적인 상황의 전개 등, 한 해가 끝나가는 마당에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격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관계 역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 간에 경수로공급협정이 체결됨으로써 그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1995년 올해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정리될 수 있으며, 1996년 내년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망할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올해의 남북관계를 살펴보기에 앞서 그 이전에 전개되었던 남북관계, 즉 1995년 이전의 남북관계를 간단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맥락에서 남북관계가 전환기 상황을 맞은 것은 1988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1988년 이후 외적으로는 탈냉전의 상황이 본격화되었고 내적으로는 남북대화 및 민간 통일운동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1992년 2월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 및 남북한 비핵화공동선언에 이르렀던 노태우정권 시절의 남북관계는 빠르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그러나 김영삼 정권 등장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한 악화의 길에 들어섰다. 그것은 우선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화되었던 북미관계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고, 다음으로는 그 과정에서 대북 강경론으로 일관했던 남한정부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악화되었던 남북관계가 또 다시 개선될 수 있었던 반전의 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1994년 6월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의 전대통령 카터가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타협과 남북정상회담의 약속을 이끌어냈을 때, 그것은 그 동안 악화되었던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를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계기를 적절히 활용했다. 그 결과 1994년 10월 21일 북미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북핵문제에 관한 대타협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남한은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것은 카터 전대통령의 방북 직후인 7월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남한에서 이를 둘러싼 ‘조문파동’이 발생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요컨대, 김영삼 정권 등장 이후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급속히 악화되었던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는 카터 전 미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던 반면 남한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1995년 출범 시점에서 북미관계는 개선되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악화된 상황에 있었다. 이같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분리는 이후 북한의 남한 배제 정책의 바탕이 되었다.

1995년 초 남북관계

1995년 초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는 지난 해 이미 합의를 본 북핵문제 관련 사안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경수로 제공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즉 10·21제네바 합의는 북한측이 핵관련 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북한측에 1,000메가와트급 경수로 2기를 북한측에 제공하기로 했는 바, 바로 이 문제를 중심으로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가 전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사이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대북한 경수로 지원에 있어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한국형 원자로 채택 문제였다. 우선 대북한 경수로 지원 재정의 많은 부분을 담당할 남한당국은 대북한 경수로 공급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한국형 원자로의 선택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것은 남한측이 대북한 경수로 지원에 수반될 여러가지 교류에 바탕하여 남북한 경제교류를 대폭 확대시키고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고자 의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남한측의 주도권을 우려했던 북한당국은 미국측의 역할 확대를 요구했다. 남북한의 이같은 입장에 비해 미국측의 입장은 기본적으로는 남한측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북한측 주장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그러한 위치, 즉 중간의 조정자 위치에 있었다. 이 같은 관련 당사자들의 서로 다른 입장 속에서 3월 9일 한․미․일 간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발족되었는데, 이 기구의 수립은 대북한 경수로 사업의 재원 조달 및 공급 그리고 북한측의 흑연감속로 동결에 따른 대체에너지 제공 문제 등을 전담키 위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북미는 북경 및 베를린에서 3차에 걸친 경수로 전문가회담을 개최했다. 그렇지만 전문가 회담에서 양측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뒤이어 6월에는 콸라룸프르에서 북미 간의 준고위급회담이 개최되었는 바, 그 협상 결과 양측은 대북한 경수로 공급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대북한 경수로 공급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한국형 원자로 채택은 명시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발주자인 KEDO가 주계약자 및 원자로 노형 선택권을 가지게 됨으로써 사실상 남한측은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한국형 원자로의 채택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이 점에서 양보한 북한측은 대신 시뮬레이터 제공 및 송배전 시설 등 약 10억달라에 달하는 추가시설 비용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콸라룸프르 합의는 일단 부지조사 및 부지조성 등 일괄수주에 따른 통상 비용은 공급자가 제공하기로 하는 한편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협의하도록 했다.
따라서 6월 북미간 콸라룸프르 합의를 계기로 대북한 경수로 공급 문제는 그 기본적인 골격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대북한 중유 공급 문제, 사용후 핵연료봉 보관 문제 등 다른 문제들은 비교적 순조롭게 처리되고 있었다.

남북대화 재개 시도와 좌절

1988년 이후 노태우정권 당시 추진된 남북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는 결국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북대화는 이후 북핵문제를 둘러싼 남북관계가 나빠지면서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1994년 6월 카터 전미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전면적인 남북대화가 다시 열릴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또한 무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같이 남북대화의 중단이 지속되는 가운데, 5월 27일 남한당국은 북한에 대한 쌀 지원 의사를 밝힘으로써 대화 재개를 위한 시도에 나섰다. 식량난을 겪고 있던 북한에 쌀을 지원해줌으로써 남북한 당국자 사이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6월 남북한 사이에는 1차 쌀회담이 개최되었고, 그 결과 양측은 남한당국이 15만톤의 쌀을 북한측에 무상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의 이 같은 합의 직후 일본 역시 북한에 30만톤의 쌀을 제공하기로 했다. 일본측 역시 북한에 쌀을 지원함으로써 북일수교 협상을 빨리 재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쌀 지원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쌀 수송 과정에서 발생한 인공기 게양사건 및 쌀 수송선 억류사건 등이 상대방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우성호 송환 및 안승운 목사 사건 등 남북 사이의 미해결 사건들이 더 이상의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계기로 재개될 조짐을 보이던 남북대화는 또 다시 무산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남북간에는 8월과 9월에 2차, 3차 쌀회담이 계속 열렸지만,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이로써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또 한번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관계 부진과 그 원인

이처럼 남북관계는 계속 부진을 면치 못했다.김영삼 정권 초기 북핵문제로 대화가 결렬된 이후 남북관계는 그 개선을 위한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대화 재개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미 간 핵협상이 그런대로 순조롭게 해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남북관계 부진의 직접적인 원인은 남북한의 대북·대남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한의 경우,김영삼 정권의 대북정책은 북한과 대화를 거부하려는 의도를 가지진 않았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강경정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한당국의 시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당국은김영삼 정권의 이같은 강경정책을 흡수통일 정책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들은 대미관계 및 대남관계를 분리, 미국과 직접협상을 도모하고 남한당국에 대해서는 배제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한당국의 강경정책과 북한당국의 남한 배제정책이 남북관계 부진을 초래했던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남북관계 부진은 남북한 내부 사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한의 경우, 여러 측면에서 대북한 포용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한 유화정책에 대한 반론이 보수층 사이에서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의 경우, 두 측면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우려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선 식량난을 비롯한 북한 내부의 어려움이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원인의 하나라 생각된다. 즉 그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내부 상황에 비추어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체제 동요의 계기를 제공하지 않을 지 우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최근 군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승진 조치에서 보여지듯, 증대하고 있는 군부세력의 영향력이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상과 같은 배경 속에서 지지부진을 면치못하고 있는 남북관계는 쌀회담 결렬 이후에도 개선의 전망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9월 남한은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북한측을 자극했고, 북한측 역시 최근 휴전선 부근의 군사활동을 부쩍 늘림으로써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따라서 얼마남지 않은 12월 내에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주어지기는 거의 어렵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남북관계 전망

이상과 같이 올해 전개된 남북관계의 현황을 살펴볼 때 빠른 시일내에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남북한 당국이 자신들의 대북·대남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또한 남북한의 내부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남한측의 내부 정치일정을 볼 때 남북대화 재개 및 남북관계 개선에 많은 관심을 쓸 수 없는 것도 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좀더 길게 본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그리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북미관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이 언제까지 대립관계를 유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12월 15일 KEDO와 북한은 경수로공급협정을 최종적으로 타결함으로써 남북대화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편, 남북이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쌀지원을 위한 접촉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이러한 계기들을 통해 남북 당국자 사이의 대화 실마리가 잡히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가 점차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전망해볼 수 있다. 한/노/정/연

1995-1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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