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4
96년 정세를 점검한다
김영삼 정권 노동통제전략의 변화와 96년 전망
편 집 부
이른바 ‘문민정권’으로 출범하였던 김영삼 정권 초반기에
노동정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정권은
노정권과 달리 군부독재체제에 장기간 대항해왔던
야당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노동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리고 정권 초기 김영삼 정부가 몇 가지 민주적
‘개혁’을 약속하고 부분적으로 실시하였던 것도 이런 기대를
부추겼다. 그러나 노동운동 측의 기대는 집권 첫 해 여름을 채
지나기도 전에 무산되었고,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은 노정권
시기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을 답습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김정권 시기 노동통제전략의 중요한 분수령은
1993년 현대그룹노동조합의 연대파업에 대한 대응과
노동부장관의 개혁시도였다.
이인제 실험의 한계와 의미
신정부의 초대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한 이인제 장관은 야당시절
노정권의 계급적 노동배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만큼,
진일보한 정책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입각 직후 ‘3자 개입
사실상 사문화’, ‘해고자 전원 원직복직’, ‘전노협
합법화’, ‘무노동 유임금’, ‘경영․인사권 참여인정’
등 과거 정권이 노동배제전략에서 핵심적인 정책사안들로
고수하였던 여러가지 쟁점들에 대해 개혁 방침을 제시하였다.
위원장이 임금교섭안에 직권으로 조인함으로써 발생한 울산
현대정공노동조합의 불법파업에 대해서도 그는 경찰력투입을
최대한 자제하였다. 개혁정책의 골간은 크게 ‘노동조합 활동의
자율성 보장’과 ‘국가의 중립성 견지’라는 두 가지 요소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하반기에 노동법 개정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방향의 선회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에도 반영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노동부 장관의 개혁 시도는 7월 7일 시작된 현총련
연대파업을 계기로 완전히 봉쇄되고 말았다. 당시 파업의 배경은
‘노․경총 사회적 합의’(4월1일)에서 제시된 4.7%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둘러싼 현대재벌과 현총련의 첨예한
대립이었다. 현대노조 연대파업을 계기로 제도언론은 ‘무노동
무임금’, ‘경영․인사권 문제’에 대해 집중적인 공세를
시작하였고, 정부 내에서도 경제기획원과 상공부를 중심으로
노동부 장관의 개혁정책이 노사분규를 조장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러한 지배블럭과 국가기구 내부의 반응은
김정권이 당면한 초미의 과제였던 경제활성화 담론과 맞물려
노동부 장관의 개혁정책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이장관은 현대자동차노동조합 파업에 대해 자신이
폐지를 공약했고, 노정권에서도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던
노동쟁의조정법 상의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였다. 그리고 8월
24일에는 “노동법 개정문제 논의는 내년 적절한 시기로 넘기고
연내 개정은 불가하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개혁시도가
실패하였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노민영,
‘전국노조대표자회의와 기로에 선 노동법개정투쟁’, 월간
ꡔ말ꡕ, 1993.10; 이성희, ‘현대암초에 걸려
좌초한 이인제 개혁호’, 월간 ꡔ말ꡕ, 1993.8)
노동부장관의 실험은 김정권 시기의 노동정치의 구도를 분명하게
드러내준 사건이었고, 그만큼 여러가지 함의를 갖고 있었다.
먼저 그것은 1990년 이래 꾸준히 지배블럭 일각에서 추진해 오던
노동법 개정의 구도가 한국의 노동정치 구조에서 수용될 수 없는
것 임을 보여주었다. 노동부를 중심으로 한 지배블럭 내부의
온건파는 집단적 노사관계와 관련해서 4개의 노동악법조항(제3자
개입 금지, 복수노조 금지, 공무원․교원의 단결 금지,
정치활동 금지)과 행정적 지침들(무노동 무임금,
경영권․인사권 관련 지침)을 전향적으로 개정하는 대신,
자본측에서 요구하는 개별적 노사관계와 관련된 몇 가지
법조항들(파견 근로자제도, 시간제 근로자제도, 제반 수당의
축소, 변형근로시간제 도입 등)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노동법
개정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성희,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 월간
ꡔ사회평론․길ꡕ, 1993년 9월호. 노정권
기간의 노동법개정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노중기(1995:
170-183) 참고.
‘문민정부’ 초기의 높은 정치적 지지와 개혁적 분위기 속에서
정권의 핵심적 인물이 추진하였던 노동법 개정의 실패는 국가의
전략 선택의 여지가 매우 협소한 한국사회 노동정치 구조
때문이었다.
둘째로 노동부의 개혁안이 지배블럭의 단기적, 장기적 이해와
배치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법 개정의 실패는
6공 국가가 독점자본으로부터 구조적 자율성은 물론, 도구적
자율성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배블럭이 1990년 이래 확보하였던 계급역관계의 압도적 우위가
1993년에 와서도 크게 변화하고 있지 않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민정부’는 군부지배의 정치적 낙인을 상당한
정도로 탈피함으로써 노정권보다 더 강한 정당성 자원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힘의 우위는 기존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
노중기,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에 관한 연구: 1987-1992”,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편, 『현장에서 미래로』(1995년
11월호) 참고.
의 유지가 상당기간 가능하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이어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노동개혁의 패배는 김영삼정권의
경제정책 전반이 매우 보수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중요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1993년 연말 이후 경제정책의 개혁적
성격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이후 1994년부터 김정권은
국제화․세계화 담론을 정권의 제 일의 과제로 채택하여
독점대자본의 이해를 직접적으로 대변하였다. 김정권 시기
국가의 자율성에 관한 일반적 평가는 정영태, “김영삼정권의
개혁과 국가자율성”, 한국사회과학연구소 편, 계간
ꡔ동향과 전망ꡕ, 1995년 봄호를 참고.
셋째로 1991년과 1992년의 노동법개정 시도와 마찬가지로
1993년의 실험은 한국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의 제도화와
안정된 노사관계 체제의 수립이 매우 지난한 과정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연대와 정치적 성장이 지속될 것 임을 말한다.
역설적으로 김정권의 개혁실패는 노동조합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1995년 하반기에 민주노총을
결성하기 위한 연대의 기반은 1993년 현대그룹파업에 대한
국가의 대응과 노동법 개정 방침의 철회, 1994년 철도파업에
대한 경찰력투입, 1995년 한국통신사태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정부의 노동법 개정 불가 방침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던 범 민주노조세력을 하나의 정치적
입장으로 묶어주는 중요한 연대의 계기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성희, ‘공권력 투입이 제2노총 건설을 도왔다’, 월간
ꡔ사회평론․길ꡕ, 1994년 8월호; 이성희,
“95년 11월까지는 제2노총 만든다”(양규헌 전노협의장 인터뷰
기사), 월간 ꡔ사회평론․길ꡕ, 1994년 3월호;
노민영, 앞의 글 참고.
한층 강화된 노동배제전략과 노동운동의 대응
1993년 노동법 개정과 노사관계 개혁시도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김정권의 노동통제전략은 노정권의 그것을 답습하고 강화한
것이었다. 예컨대 표면적으로 상당한 변화라고 평가되기도
하였던 1993년과 1994년의 노․경총 임금합의는 비록 그
형식이 서구의 ‘사회적 합의’ 모델을 취하고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노정권 시기의 임금가이드라인 정책을 답습한
노동배제전략의 일환이었다.(김수진, 1995) 그리고 노동법개정
실패 과정이나 고용보험제 실시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기구의
노동정책결정은 여전히 경제부처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노동부는 실무행정기구의 위상을 전혀 벗어날 수 없었다.
황덕순, ‘「고용보험제」 정부 입법안 문제
있다.’ 월간 ꡔ말ꡕ, 1993년 12월호; 이성희,
‘임금정책 위에 군림하는 경제정책이 노사분규를 부른다.’
월간 ꡔ사회평론․길ꡕ, 1993년 12월호
참고.
이와 같이 김정권 시기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은
계급배제전략이었을 뿐만 아니라, 헤게모니적 통제방식을 더욱
강화한 것이었다.
먼저 이데올로기적 통제수단의 측면에서 김정권은 노정권의
‘경제위기 이데올로기’를 더욱 발전시켰다. 1993년의
‘고통분담론’과 ‘경쟁력 담론’, 1994년의 ‘국제화
이데올로기’와 연말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그 대표적
사례다. 이와 같은 경제이데올로기는 경제․사회정책
전반에 걸쳐 기능하였지만, 그 전략적 목표는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경제이데올로기는 여타
이데올로기와 여타 노동통제 수단들의 내용과 실행 방향 전체를
규정하는 최상위 통제수단으로서 지위를 가졌다. 그리고
1994년의 지하철파업과 철도파업, 1995년 한국통신사태에서
대규모로 유포된 ‘법과 질서이데올로기’ 또한 노동쟁의를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김인호, ‘정권이
저지르고 언론은 청소했다’, 월간
ꡔ사회평론․길ꡕ, 1994년 8월호
특히 대통령이 직접 단위사업장 노사관계에 개입하고, 이를
‘국가전복행위’로 규정한 것은 ‘법과 질서 이데올로기’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 자유민주주의이데올로기는
기존의 무노동 무임금제도와 경영․인사권 원칙을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한층 강화되었으며, ‘문민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모든 담론들을 통해서 유포되었다. 반면에
반공이데올로기의 위상은 위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홍 총장의 ‘노동현장 주사파’ 발언은 그 좋은
사례일 것이다.
다음으로 법적․행정적 수단을 보면 기존의 노동법과 기타
법률의 통제 조항들이 여전히 노동통제에 동원되었다. 특히
노동관계법 조항 중에서는 ‘제3자 개입 금지조항’, ‘복수노조
금지조항’, ‘공무원․교원의 단결 금지조항’,
‘긴급명령권 조항’, ‘행정관청의 노동조합 업무조사권’ 등이
중요한 통제수단으로 동원되었으며, 현재는 ‘근로자 파견법’
제정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행정적 수단으로는
1995년 하반기에 ‘생리휴가․월차수당의 폐지’,
‘노동조합 전임자수 제한’, ‘해고 요건의 완화’ 등이
시도되었다.
셋째로 물리적 강제수단의 동원은 1993년 상반기 동안
일시적으로 제한되었으나, 현대그룹파업 이후 경주 아폴로산업에
대한 경찰력투입을 계기로 다시금 주요 통제수단으로
동원되었다. 1994년 철도파업과 지하철파업에 경찰력이 투입된
이래, 대우기전, 금호타이어, 부산 메리놀병원, 창원현대정공,
효성금속, 부산 신일금속, 한국통신 등 다수의 사업장에 물리적
강제수단이 사용되었다. 물리적 강제수단의 통제효과는 노정권
기간 동안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야기하는 정치적 비용으로
말미암아 김정권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특히 1995년 한국통신 노동조합에 대한
경찰력투입은 헤게모니적 통제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직적 통제수단의 노동통제 효과는 더욱 더
약화되었다. 노․경총 사회적 합의를 계기로 조직적 통제는
일시적으로 강화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의 통제효과는
미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1995년 임금인상률의 합의
자체가 무산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그것은 반대급부 없는
정치적 타협의 한계가 노동대중에게 명확히 인식되었고, 노총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극히 낮아졌기
때문이었다.(윤진호․정영태, 1995)
결국 김영삼 정권 기간 전반기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은 노정권
기간의 노동통제전략인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을 더욱 더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이 갖는
내재적 한계로 말미암아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연대는 더욱
강화되어 왔다.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에 대한 노동운동의 전략적 대응양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먼저 개별 기업 노동조합 차원에서
노동조합은 크게 보아 저항과 묵종의 두 가지 전략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전략선택을 가늠지은 것은 단위 노동조합의 자원동원
능력과 이데올로기적 지향이었다. 그러나 저항전략의 경우 종종
격렬한 투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제한된 자원
동원능력으로 말미암아 묵종전략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었다.
기업별 체제의 구조적 제약에서 근원하는 이와 같은 극심한 힘의
불균형은 1992년 ‘노동운동의 위기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조진영은 1990년부터 목적의식적으로 이런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대응양식을 모색해 왔다.
그것은 범 정부적 차원에서 가해지는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에
대해서 단위노동조합 수준의 고립된 대응을 지양하고, 계급적
연대에 기초한 대응전략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1990년 1월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 5월의 ‘업종별 노동조합회의’,
1990년 12월의 ‘대기업연대회의’, 1991년 10월의
‘ILO공대위’, 1993년 6월의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1995년 11월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합’ 등으로 이어지는
노동조합 조직발전 과정은 계급적 연대전략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국가의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은 역설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적 발전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96년 노동정치의 전망
민주노총 원년인 1996년에도 헤게모니적 배제전략-민주노조의
조직발전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가능한가? 국가의 노동통제전략의
전개논리를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대답은 전체적으로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96년의 노동정치 정세를
분석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변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정권의 노동통제전략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노동정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정치적 정세나 역관계의 변동이 노동정치 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었다. 한국 노동정치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보자면, 1960년 4.19,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 1989년 공안정국과 3당합당 정국, 1993년
‘문민정부’성립 등과 같은 중요한 정치 과정들은 곧바로
노동정치 구조의 급격한 변동과 긴밀히 연결되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나아가 노동정치는 국가정치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되어
왔을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국가정치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동원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1989년의 공안정국기와
1995년 한국통신사태에서 국가가 노동통제를 강화하였던 것은
국가정치과정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자세한 것은
노중기(1995), 앞의 글 참고.
1995년 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자금 정국, 5.18 특별법 제정
정국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1996년 국가정치의 구조와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국가정치
정세의 전개에 따른 노동정치의 변화 방향은 노동통제를 더욱
강화하거나, 완화하는 두 가지 방향이 모두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서 문제로 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헤게모니적 배제전략이 강화될 경우에 노동운동진영의
대응전략은 크게 달라 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악법
조항들을 개정하는 등 노동개혁이 부분적으로나마 실시되고
노동정책의 기조가 변화할 경우에 노동운동은 새로운 대응전략을
수립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국가정치의 변동 요인 외에도, 최근 민주노총의 결성 등 계급적
연대의 수준과 폭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노동운동의 주체적
조건에 대해 국가와 자본이 능동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고려해야 할 요인은 국가의 노동통제와 구별되는 기업
단위, 사업장 단위의 노동통제강화 현상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강화되었던 자본의 현장장악 시도는 1996년에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흔히 ‘신경영전략’으로 불리는 작업장
노동통제 강화 현상은 국가의 노동통제전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신경영전략의 대표적 사례로는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정책수립을 위한 연구보고서-자본의
신경영전략에 대한 대응과 노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방안”,
1995와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생활안정과 창의적 참여노동을
위한 인사․임금제도 개편안”, 1995를 참고.
그것은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효율적으로 실시되고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국가수준의 제도적 장치의 뒷받침을 반드시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도 국가와 자본의 법제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근로자파견제도’의 경우, 그것은 자본의 현장 장악력 제고를
위한 노동력의 수량적 유연화전략에서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1996년에도
‘근로자파견제도’ ‘임시근로자제도’ ‘변형근로시간제도’
‘전임자축소’ ‘해고요건 완화’ 등의 노동통제 장치들을
제도화하기 위한 시도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특히 노동법 개정 작업이 시도될 경우 노동시간의 연장, 휴일
휴가 연장근로기준의 하락, 여러 가지 법정수당의 축소 폐지,
노조대표자체결권(직권조인) 명문화 등 다양한 방식의 통제
장치들을 도입하고자 할 것이다.
1996년 국가 노동통제의 전개방향과 노동정치 정세의 이와 같은
불투명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노동운동의 전략적
대응방침의 큰 줄기는 분명하다. 그것은 먼저 정치과정의 전개가
노동운동에 불리한 노동정치 정세를 만들지 않도록 현재의
정치적 쟁점들에 능동적으로 개입해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동정치 정세에 대한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와 자본이
노동관계법 개정을 전격적으로 시도할 경우에 대비해서 미리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안적인 노동관계법
개정안의 마련 및 주도적 문제제기, 개악 저지투쟁을 위한
조직적인 사전 준비작업과 대중적 공감대 확산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통제수단으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을 도입하고자 하는 국가․자본의 시도에 대해서는
총력적인 저지투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조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법적․행정적 통제수단들의 도입이 국가와
자본의 ‘개별 기업수준의 신경영전략-현장장악력 제고’ 전략과
긴밀히 연관된 것이라는 인식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