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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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쟁취하리라
 투쟁

현장에서 미래를  제112호
장효안

노동자민중세상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쟁취하리라
-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9월 15일 거점파업 현장-

장효안 / 한노정연 연구원


2005년 6월 4일. 금속노조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가 설립된 후 숨가쁘게 투쟁해온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05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투쟁 과정>
- 2005년 6월 4일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설립
- 2005년 6월 29일 보성투쟁 승리
- 2005년 7월 29일 <05년 지회 단체협약 임금안> 1차 교섭 결렬
- 2005년 8월 26일 비정규직 지회 단독 파업
- 2005년 9월 6,8,14,15일 공동, 독자 파업
- 2005년 9월 16일 하청 사장단과의 1차 집단교섭

그러나 이런 한낱 문구들의 나열로 지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투쟁의 열기를 모두 전달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회는 6월에 뚝딱 나타나서 이와 같은 투쟁을 전개해 온 것이 아니다. 2004년도 7월부터 비정규직 현장투쟁단을 조직하여 활동해 왔고, 활동기간의 준비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여 비정규직 지회를 설립하였다. 지회는 설립 후 한 달 여 만에 800명이 넘는 조합원을 조직했고, 9월말 현재 9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어 현대자동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정규직 지회이다.
비정규직 현장투쟁단은 2005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보성투쟁을 비롯하여, 원직복직 투쟁, 불법파견 철폐투쟁, 비정규직 탄압분쇄 투쟁 등 현재 비정규직 내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는 사안들을 대부분 현장에서 투쟁으로 안아왔다. 현재 지회의 투쟁 방향도 현장투쟁단에서 진행해온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회의 투쟁이 이처럼 숨가쁘게 진행되어 온 것도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투쟁의 연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9월 15일 지회의 거점파업 현장을 다녀왔다. 9월 15일 투쟁은 기아 자본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기아 원청과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스스로 부인하게 하는 현장이었고 또한 비정규직에 대한 자본의 탄압이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필자는 거점파업 투쟁의 현장과, 현장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짤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지회에서 진행해온 투쟁을 소개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와 같은 지회의 투쟁이 전체 비정규직 투쟁에 시사하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보성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첫 번째 승리

어느 사업장, 어느 단위에서든지 비정규직이 차별받고 탄압받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혹은 책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할 겨를도 없이, 도급, 불법파견 등 점차 세분화되고 복잡해진 비정규직의 구조는 비정규직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하기 시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계약의 사슬에 묶여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형성하는 것, 노조에 가입하는 것,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행위 등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어떠한 범주도 형성하기 힘든 현실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로, 분화된 상태로 투쟁을 전개해 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되돌아온 것은 해고와 구속, 손배가압류, 그리고 죽음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기아자동차도 이와 같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에 똑같이 직면해 있었는데, 비정규직에 만연한 임금체불, 정리해고, 비정규직 탄압, 안전사고 등 20개가 넘는 하청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일상적인 산재는 물론이거니와 감전사, 압사 등이 잇따르고, 이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개선을 정규직 노동조합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지회는 노조를 결성하고 스스로의 권리 획득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먼저 기아하청을 중심으로 자행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하청투쟁의 사례는 보성 투쟁으로써 2005년 1월부터 승리한 6월말까지 6개월에 걸친 장기간의 투쟁이었다. 처음 투쟁의 계기는 ‘한 달에 한번 장갑을 지급해라’였다. 작업에 필요한 장갑하나도 눈치보고 사용해야 하며, 그 장갑하나에 나이 60이 넘는 노동자가 젊은 관리인에게 욕설과 모욕, 해고위협 등이 자행된 사실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용보장, 현장탄압 관리자 해고, 산안법 준수’를 요구로 내걸고 6개월이 넘도록 진행되어 온 보성 투쟁은 6개월의 천막농성, 잔업·특근 거부 투쟁, 연좌농성, 삭발투쟁 그리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 가열찬 투쟁을 진행해온 결과 6월 29일 승리를 이끌어 냈다.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으며, 70세까지도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장탄압관리자 해고보다 더 큰 성과로 보성 사장을 퇴출시켰으며, 산업안전법에 따른 교육을 준수하고 공정한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성문제를 해결하였다. 이것은 승리에 목말랐던 비정규직 투쟁에 획을 긋는 중요한 성과였다.

2005년 임단협, 마침내 독자 파업 성사!

지회는 7월 25-26일 양일간 진행한 투표를 통해 97%의 조합원의 찬성으로 <05년 지회 단체협약 임금안>을 단독으로 제출하였으며 현재까지 단체협약 투쟁을 뜨겁게 진행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8월 26일 비정규직 단독파업을 이루어 냈으며, 지속적인 공동·독자 파업을 수행해 왔고 9월말 현재 신성과 PDI를 중심으로 기아자동차 전 공정의 라인을 세우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신성은 처음 부품이 가공되는 공정을 거치는 하청업체이며, PDI는 자동차가 마지막에 출고되는 공정의 하청업체이다. 처음 공정과 마지막 공정의 업체에서 거점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전체 공정을 세우는 독자적인 비정규직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단체협약안을 제출했을 때, 8차 시기까지 어느 업체도 단체협상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8월 26일 독자파업을 계기로 24개 업체 중 20개 업체가 단체협상 테이블에 나타났다. 하지만 각 하청기업은 일관되게 개별 교섭을 주장하였다. 지회는 이와 같은 무성의한 자본에 원·하청 단체협상 이라는 주장을 고수, 공동·독자 파업으로 대응하였다. 결국 지속적인 파업투쟁의 결과로 9월 16일 기아 원청을 제외한 전체 기아 하청과의 집단 교섭을 약속받아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 속에서 기아 원청은 줄곧 비정규직과 원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집단 협약을 하루 앞둔 9월 15일 원청은 200명이 넘는 대체인력을 파견하고 비정규직 파업투쟁을 무력으로 탄압하려 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원청의 관계를 스스로 시인하는 격이 되었고, 지회는 원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투쟁을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9월 15일 거점파업 현장: 허구로 드러난 기아원청의 사용자성 부인

기아 원청과 비정규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기아자본의 일관된 주장이 결국 허구였음이 드러났던 9월 15일 화성 공단. 단체협상에 대한 거부는 물론이거니와 연관성까지 부인했던 기아원청은 200명의 원청관리인을 파업현장에 파견함으로써 스스로가 기아 비정규직의 실질적 사용자임을 드러냈다.
9월 15일 거점파업 현장은 언제든 충돌이 가능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거점은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되어 있는 상태였고, 사측은 취재를 위한 연구원의 출입도 제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노정연 연구원 2명이 현장에 출입하는 과정에서도 조합원과 관리인 간의 몸싸움이 벌어질 정도로 현장은 긴박한 순간이었다.
거점 외부는 원청관리자들이 둘러싸고 있고, 내부로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어 연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지회조합원들이 원청관리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철망 밖에는 ‘기아자동차’라고 선명히 새겨진 소방차와,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원청관리자들을 실어 나르던 관광버스들, 그리고 200여명의 원청관리자와 용역깡패들이 위압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충돌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 2시경 원청 관리자들은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소방 가루를 뿌렸으며, 이내 차량 한 대가 철망으로 돌진했다. 철망 가까이에서 거점파업을 사수하고 있었던 많은 비정규직 조합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차량은 돌진하였다. 또한 외부로부터 돌멩이들이 끊임없이 넘어 들어왔으며 몇몇의 원청 관리자들이 철망 안으로 들어와서 지회장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넘어 들어오던 돌멩이에 조합원들의 머리가 깨지거나 찢어졌고 현장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또한 반대편 철망 편에도 용역 깡패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충돌 현장에 모든 조합원들이 집결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조직국장은 분신을 시도하는 등 원청의 탄압에 굴하지 않은 결연한 투쟁의지를 현장에서 보여줬다.
결국 지회 조합원들은 현장을 사수하였으며 보성과 정규직 선봉대들의 연대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보성은 현장을 함께 사수했으며 정규직 선봉대는 철망 밖에서 원청관리자들과 대치하여 투쟁을 엄호함으로써 연대를 통해 원청 관리자들로부터 거점파업 현장을 지켜냈다.
충돌이 지나간 후 파업 현장은 바닥에 고인 물과 소방 가루, 철망을 막아내는데 사용했던 박스와 판자의 잔해들 그리고 피에 젖은 거즈 등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보성, 정규직 선봉대, PDI를 사수하고 있던 조합원 등이 지속적으로 연대하여 야간 파업까지 무사히 사수함으로써 9월 16일 집단교섭을 수행할 수 있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의 투쟁이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 사회는 열사정국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비정규직 열사 정국이다. 누군가의 피가 마르기 전에, 그 죽음에 대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른 열사가, 그리고 또 다른 열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는 열사로 ‘칭’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논쟁하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9월 12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잠정합의안을 접하고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것은 비단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비정규직 투쟁이 정규직 노동조합에 크게 의존하며 진행되었지만 실제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크게 비중을 두지 못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현대 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번 잠정합의안의 내용은 기본적인 비정규직 권리 보장은커녕 임금격차마저도 더욱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결코 합의될 수 없는 사안들을 합의로 해결하려 하는 노동조합. 이것이 현대 자본에 대응하는 현대 노조의 오늘의 모습인 것이다. 비단 현대노조 뿐이겠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 이것은 정녕 해결될 수 없는 현실 노동운동의 과제가 되어버린 것일까?

하나. 비정규직의 주체성 확립

기아자동차노조의 경우 현대노조의 투쟁이 정리되면 기아노조의 투쟁도 정리되어 왔던 것이 수순이었다. 그리고 9월 13일 기아노조와 기아원청 간의 잠정합의안이 제출되었다. 현대 자동차 노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의 합의안. 하지만 기아 비정규직 지회의 경우 변함없는 투쟁 진행형이다. 그럼으로써 하청과의 집단교섭을 이끌어 냈고, 9월 15일 기아 원청이 대체인력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를 사용자로 인정한 바 원청과의 집단교섭을 향한 가열찬 투쟁 중이다.
지회의 투쟁과 그 투쟁의 과정이 비정규직 전체 투쟁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먼저 정규직에 의지하지 않는 비정규직 스스로의 권리를 향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즉 비정규직 스스로의 주체의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이 동력이 정규직에 의존하지 않는 ‘비정규직 독자파업’을 조직해 낸 바탕이 되었다. 잠정합의안이 가결된 이 시점에서도 지회는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허공으로 떠다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이 원칙을 허공에 떠다니게끔 하고 있는 현대, 기아 등 대기업 노조를 비판하고 있다. 즉, 비판으로 그치지 않는 현실적 투쟁력. 이것이 기아 비정규직 투쟁에는 존재하고 있으며 결국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비정규직 완전 철폐의 쟁취는 주체적인 투쟁만으로 가능하다는 진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둘. 정규직 선봉대 연대를 통한 원·하청 공동투쟁

비정규직의 주체적 투쟁력 확보와 더불어 현장조직을 중심으로 구성된 정규직 선봉대는 지속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는 점 역시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정규직 선봉대의 투쟁은 합의안이 가결된 현재도 진행 중이다.
사내하청 불법파견에 대한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자본의 저항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뚜렷한 돌파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결국 믿을 것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이 단결투쟁, 즉 원·하청 공동투쟁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비교적 안정된 위치에 있는 정규직은 비정규직 투쟁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현실이며, 비정규직 역시 비정규직이라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권리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매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회의 투쟁 과정에서 발견된 원·하청 공동투쟁의 씨앗은 전체 비정규직 투쟁에 시사하는 바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실제로 기아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에서 정규직선봉대가 수행하는 역할은 매우 크며 그만큼 영향력도 강하다.
“우리들의 투쟁은 정규직선봉대와 더불어 원·하청공동투쟁을 진행하고 있는데 큰 의의가 있다. 비록 (현재 단체교섭을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을 쟁점화하고 있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그것은 원·하청 공동투쟁의 연속을 통해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투쟁 현장에서 이뤄진 조합원과의 짧은 인터뷰 속에 깨달은 바는 간단하다. 현장에서 투쟁하는 조합원들은 현재 무엇을 위해 싸워야하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관점이 성립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투쟁만이 살길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그들은 뼈 속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 오로지 그것이다.

2005-09-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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