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96년 정세를 점검한다
자본축적의 안정성과 노동자식 경제읽기
김 윤 자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교수)
l. 한국자본주의 분석의 과제
먼저 한국자본주의의 현황을 분석하고 전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부터 시작하자. 노동자들은 왜 한국자본주의를
분석하는가?
매년 이맘때쯤이면 정부나 관변 연구단체들에서 새해
‘국가경제가 나아갈 길’, 혹은 ‘국가경제의 경쟁력 강화’에
대해 이러저러한 경기전망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때
국가경제라는 표현은 매우 절묘한 표현이다. 그것은 노동자나
자본가, 농민이나 도시빈민, 재벌이나 중소자본 등이 그
대립이나 차이와 무관하게 한마음으로 꾸려 가야 할, 다분히
공동체적인 어떤 경제 실체가 있는 것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사실상 국가경제의 경쟁력 강화란 다름 아닌
세계시장에서 일국자본, 즉 국민자본의 경쟁력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국민자본의 경쟁력 강화란 자본의 보다 효율적인
이윤수취로 귀결되는 것이다. 결국 국제경쟁력 강화란 노동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노동력 동원에 성공하는 것, 흔한
표현으로 노동생산성 강화에 달려있는 셈이다.
물론 이때의 노동통제는 반드시 80년대 시기의 병영식
노동통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90년대 이후
기업문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보다 세련화되고 있는 이른바
이데올로기적 통제, 노동자 간 생산성 강화 경쟁을 겨냥하는
성과급 중심의 신인사제도․신임금제도 등의 경영합리화도
핵심은 효과적인 노동력 동원에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이란 국내 자본의
고도축적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다시 자본측이 효과적인
노동력 동원에 성공했음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자본주의
분석이란 다름 아닌 자본의 축적전략과 그에 대한 노동자들의
정치적․경제적 대응을 포착하는 것이다. 요컨대 부(富)의
생산과 분배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 간의 대립이 어떤 지형으로
전개되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당연히 정부가
누구 편에서 어떻게 개입하고 결탁하느냐는 것이 포함된다.
정부의 개입과 결탁은 경제정책의 결정에서부터 각종 입법조치,
문화정책, 정치적 결정 등에 두루 걸쳐 전개되므로 이 모든
행위의 계급적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하에서는 새해 자본측의 축적전략을 정부와 자본가단체 등의
새해 경기전망에 기초하여 살펴보면서 그것이 각각 노동 측에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리하는 것으로 글을 진행하도록 한다.
2. 자본축적의 안정성 지속
새해 정부의 경제운영 기조는 ‘민간주도체제에 기반한
시장경제체제를 정착’시킨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
직접적인 규제나 간섭을 완화하면서 기업 간 공정한 경쟁 여건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 개방화를 가속화하여 국내 자본의
경쟁체질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재벌 산하의 민간연구기관에서는 ‘시장의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가 훨씬 더 심각한 경제 왜곡을
낳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재벌들의 경영방식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기대만큼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대기업 집단의 상호출자 등 소유구조에까지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비난하고 있으며 또 공정거래위원회 활동이
물가관리나 자의적 산업정책 등 다른 정책의 집행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을 비난한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정부와 자본측의 축적전략이 ‘민간’
주도라는 이름 아래 탈규제의 보수주의적 선회를 강화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규제가 자동적으로 국민적 규제,
보다 정확히는 생산대중적 규제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규제의 내용은 각 정부가 기대고 있는 계급적 지지기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규제 자체를
왜곡으로 간주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노동에 대한
자본측의 입지 강화를 내포하는 것이다. 특히 시장구조가 이미
독점화되어 대기업 집단, 즉 재벌이 지배하는 큰손구조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 경쟁이란 ‘재벌’ 주도를 포장하는
말일 뿐이다.
이처럼 대자본측의 입지가 강화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새해
한국의 자본축적 기조는 비교적 순조로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새해 한국경제가 양적 성장에 있어서는
95년만 못하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안정과 조화를 달성하여 이른바
경기연착륙에 성공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재정경제원 산하의
정부출연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의 견해는 그동안 대체로 정부의
경제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
전망은 거의 그대로 정부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자본축적 구조를 감안할 때 이러한
안정전망은 무엇보다도 새해 세계경제가 95년의 2.8%보다 높은
3.3%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는 데서 비롯되는 듯
하다. 국제원자재 가격도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특히 (한국의 자본축적을 주도하는 수출대자본의 자본축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엔화와 달러화의 가치가 95년 상반기의
급등과 급락의 불안정세에서 하반기 이후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것도 새해 경기를 안정세로 전망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대체로 엔-달러 환율은 95년 하반기의 달러 당
1백엔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조 위에서 새해의 경제성장률은 7.5%정도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95년 전망치 9.2%에 비해 낮아진 것이지만 94년
경제성장률이 8.4%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경기 과열과 그에 따른
이른바 거품현상을 피하면서 동시에 경기의 급랭을 아울러 피할
수 있는, 요컨대 경기의 연착륙을 이룰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성장률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더우기 95년에는 높은 성장률과는
별도로 경상수지 적자가 86억 달러(무역수지는 1백억달러
규모)에 달하였었는데 새해에는 경상수지 적자 폭이 60억 달러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새해 수출은 11.8%로
전망되고 있어 95년의 24.8%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둔화되겠지만
여전히 전체 성장률 7.5%를 웃돌아 축적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새해의 설비투자 역시 95년의 18.4%에 비해 절반
수준인 9.2%에 머물겠지만 이 경우에도 전체적인 성장률을
상회하여 수출과 함께 축적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부르조아사회에서는 통계자료 자체가 정부나 자본 측
연구단체들에 의해 거의 독점적으로 수집되고 자본측의 기준과
분류에 따라 처리되기 때문에 이들 자료를 노동측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정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러한 한계를
전제하면서도 이들 부르조아 통계자료를 조금만 유의깊게
읽어보면 우리는 한국의 GNP가 세계 12위로 부상했다는 통계의
또 다른 의미를 간파할 수 있다. 한국의 GNP는 구매력 기준으로
살펴보면 세계 32위로 내려가고 다시 복지예산 순위로는 세계
120위 이하로, 1인당 교육예산 순위에서는 그보다도 더 아래로
내려간다. 그런가 하면 94년 한해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연간 2,700여 명에 달하여 하루 평균 7-8명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이는 삼풍백화점 붕괴가 상징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현단계 한국자본주의 발전의 모순이 발현하는 지점을 포착해
내는 것이 바로 노동 측 입장에서 한국경제를 분석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3. 개방의 가속화, 자율성 강화
새해 정부와 자본측의 축적전략을 특징짓는 것은
해외부문(수출)의 지속적인 팽창을 주축으로 하여 국내외로
축적기반을 확충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개방을 가속화하고
자본의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안정적인
물가, 국제수지 적자 감소 등을 동시에 이룰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물가는 임금노동자의 생계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본의 투자결정에도 결정적인 것이다. 높은 인플레이션
하에서 투자보다 투기를 통해 가치증식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투자를 기대할 수 없고 자본주의체제의 원만한
유지재생산은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물가가 94년
6.2%의 상승률에서 95년 4.5%로 안정된 데 이어 다시 새해에는
4%로 더욱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총선정국과 9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선심행정으로 돈이 풀릴
것을 우려하여 물가를 가장 불안한 경제지표로 지적하고 있다.
‘돈 안드는 선거’는 정치도덕의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임금노동자의 생활안정과도
직결되는 구호인 것이다.
여기에다 한국은 96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신청해 놓고 있어서 축적을 둘러싼 노․자 대립의 지평이
양적․질적으로 보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 경우 자본이동 자유화 규약에 따라
회원국은 점진적으로 자본시장을 개방하여야 한다. 한국은 이미
1992년 증권시장의 국제화에 이어 1995년 4월 외국인주식투자
한도를 종전 12%에서 15%로 확대하였으며 96년-97년 사이에
환율의 일일변동폭을 확대하여 선진국과 같은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정착시킨다는 외환자유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또 이 기간 동안에 외국자본의 국내투자 및 국내 자본의
해외 직접투자에 대해 신고제를 정착시킬 예정으로 있으며
국내기업의 외자조달 방식에서 외화증권 발행을 신고제로 하여
점차 상업차관을 허용할 방침이다.
대규모의 자본 유․출입은 국내 물가불안과 직결될 뿐
아니라 환율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자본시장의 개방은 다양한 자금조달 수단을 제공하여 부채비율이
높은 국내 기업의 자본비용을 낮추고 이른바 경쟁력을 강화시켜
줄 유리한 계기로 기대되고 있다. 다른 한편 보다 용이해진
자본의 진입, 퇴출은 그만큼 노동자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노동측에서는 입법운동이나 단체협약 등을 통해 고용 및
임금보호 등 노동측의 규제장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의할 것은 90년대 이후 구조조정에 따른
경기양극화 현상이 새해에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경기양극화에 따라 호황업종과 불황업종이 나뉠 수 있고
대기업과 중기업, 소기업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는데
이러한 자본 간 이해관계의 대립은 흔히 각각 이들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간의 갈등으로 옮겨진다. 오랜 산고 끝에
출범한 민주노총과 향후 산별노동조합으로 발전해 가는 행보에서
이러한 갈등이 전체 노동자의 대오를 저해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한국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은
이러한 함정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4. 노동자식 경제읽기 필요
흥미로운 것은 재벌기업 산하의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새해
기업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정부가 홍보하는 세계화 전략이나
경쟁력 제고 보다는 노사관계의 안정을 꼽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이러저러한 축적기반의 확충이 지속적인 노동력
동원체제의 확보, 보다 구체적으로 노동력 통제의 지속적인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노동자들의
대응 여하에 따라 한국경제의 발전방향과 내용이 보다 평등하고
진정으로 효율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80년대 이후 정부와 자본은 민간주도의 경제를 주장하여 왔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사관계 안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재벌들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상납하고 그
댓가로 이권사업에서 특혜를 받는 이러한 구조는 한국경제의
비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생산을 직접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응분의 통제를 행사하였더라면 이번과 같이
기업소유주가 독단으로 거액의 뇌물을 상납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는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생산현장에서부터 출발하여 분배 및
소비의 과정 등 물질적 생활 일반에 ‘노동자적 개입’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개입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정책에 대한
개입으로 나타날 것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 개입의 효과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이른바
문민정부 출범 초기의 요란한 개혁이 새로운 수구파를
형성하면서 표적사정에 그친 것은 사실상 ‘문민’정부가
노동자․농민 등 생산대중의 이해관계에 기반하는 광범위한
국민적 기반을 추구하기 보다 특권적 자본집단의 지지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범위한 연대 속에서 지속적으로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바꾸어내고자 개입하는 노동자식
경제읽기를 강화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