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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위원회, 침묵의 체제에 균열을 내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67호
박정미

100인위원회, 침묵의 체제에 균열을 내다


박정미/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원회 회원




100인위원회가 첫 모임을 가진 지 약 10개월, 가해자의 명단을 공개한 지 5개월이 지났다. 누군가가 존재했지만 드러날 수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요되는 경험들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날선 분노로 이 목소리들을 짓눌러버렸고, 어떤 이들은 두 귀를 틀어막은 채 지겹도록 같은 말만 반복했고, 어떤 이들은 그저 비아냥거리기만 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지지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약 반년이 지난 지금, 공개직후 진보넷 자유게시판을 벌집으로 만든 온라인 마초들과 소위 ‘운동권’(주변) 남성들의 이른바 ‘좌우합작’이 한 풀 꺾이고, 100인위원회 논쟁은 명예훼손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강철구 KBS노조 부위원장 사건은 2001년 현재, 진보진영(현재 KBS 노동조합을 과연 진보진영이라 칭할 수 있는지는 논쟁적이지만),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해결의 지표이자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아직도 서울대에 남아있는 화학과 교수 신정휴 사건처럼 말이다. 후자가 직장 내 성희롱을 법적으로 판결 내린 상징적인 사건이라면, 전자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의 경험에 대해서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오히려 명예훼손의 피의자로 지목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가해자 실명공개는 자신의 인권 회복과 제 2, 3의 범행을 막기 위해 피해자들이 사용한 자구책이자, 사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반성폭력 운동이 사용한 중요한 전술이었다. 가해자 실명공개가 ‘위법’으로 판정될 경우,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한 제도적인 수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여성 인권에 대한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피해자가 가해자를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할 경우에도 검찰이 기소할 확률은 0.2%에 불과하다. 대부분 수사나 법적 대응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2차 폭력을 경험하는 등 수많은 장애에 부딪혀 포기하거나, 합의를 종용받는다. 여기에 기소율보다 더 낮은, 피해자가 고소할 확률을 곱하면, 성폭력 사건이 법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100인위는 강철구 고소에 대응해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100인위가 대응하는 논리는 성폭력 가해자 실명 공개가 현행법 상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곧 공개된 사실이 분명한 사실이고, (혹 사실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그렇게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고) 그것을 공개하는 것이 순전히 공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권인숙, 서준식씨를 비롯하여, 여성 지식인 57인, 남성 사회학 연구자 24인, 서울대 대학원생 17인 등이 이를 지지하면서 연서한 의견서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동안 다소 소극적 자세를 유지하던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운동 단체 역시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다.
신정휴도 당시 피해자인 우조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으나 사회의 적극적인 여론화를 의식한 검찰이 계속해서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결국 공소시효만료로 처벌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할 경우, 이에 대해 적극적인 법적 투쟁을 벌임과 동시에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1년이라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기로 한정한 것을 반대하는 적극적인 싸움을 조직할 예정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데, 100인위원회는 애초 구성될 때부터 명예훼손을 각오하였으나, 이처럼 법적, 제도적 싸움에 승부를 걸기보다는 운동사회 내부에서 싸우고 설득하는 것을 은연중에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이로부터 운동사회를 한 편으로는 ‘믿고’ 한편으로는 ‘믿지 않았던’ 100인위원회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참세상 BBS에서 자신은 혈기왕성한 남성이므로 모든 여성들을 성적대상화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즐기지 못한 여성은 보수적 소녀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을 싫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한 여성은 금치산자로 매도하는 같은 천박한 자유주의자들이 운동사회 언저리에서 발호할 지에 대해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 첫 번째 문제이다(여기서 내가 굳이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주장대로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맥락에서든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면 그만큼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자아도취를 부추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러한 날뜀은 사실 운동권 주류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운동사회 성원의 대다수는 김성희, 이영주, 정병도, 최재혁 사건과 같은 첨예한 논쟁지점에 대해서 계속 침묵을 지켰을 뿐이다. 그것은 오히려 신정휴 사건처럼 교수-제자와의 심각한 권력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언제라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으며, 여성들이 언제라도 그것을 성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과장된 공포를 보여준다. 그들은 젠더 관계 그 자체가 권력관계임을 수백 번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믿지 않으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딜레마의 두 번째 측면은 가해자 처벌의 어려움이다. 100인위원회는 가해자들을 운동사회의 커뮤니티 룰, 곧 내부 규범에 의해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현행 법률과 같은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가해자들은 징계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운동사회를 떠남으로써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곧 가해자들을 피해자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함과 동시에 내부 규범으로 처벌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그들이 어떠한 반성과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생생히 증언하는 일이다.
현재 100인위원회는 강철구와 그에 이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박일문 사건에 대한 법적 대응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형편이다. 그럼에도 지난 반년간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치열하게 되짚어 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100인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침묵의 체제에 균열을 내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반백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호명할 수 있었던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과, 공권력의 성폭력에 대한 권인숙씨의 고발과, 그녀가 증언하는 브라운 대학 화장실의 낙서들(“나는 누구누구에게 강간당했다”)과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이를 입막으려는 무시무시한 폭력이 계속 자행되겠지만, 앞으로도 그녀들의 증언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001-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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