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장 통 신
현대중공업의 신경영전략
: 1995년 임투와 현장
[현대중공업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 활성화방안] 연구
프로젝트팀
1. 1995년 임투와 신경영전략
지난달 중순 현대중공업의 임금협상은 임금 7.7% 인상과
무분규시 성과급 및 상여금 310%를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조합원들의 실리”를 얻어내면서
무쟁의 타결을 이루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임투에서 해고자
복직문제가 뒷전에 밀리고 조합원들이 쟁의를 회피했다는 점
등을 들면서 “조합원들의 실리주의화 경향”을 지적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변화하고 있는 자본의 전략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이 두가지 문제를 먼저 간단히 살펴보자.
최근 조합원의 경제적 상태, 생활양식의 변화는 조합원
의식에서도 많은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같은 조합원의 의식변화는 현장에서 ‘실리주의’라는 용어로
표현되곤 한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점은 ‘실리주의’라는
용어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점이다. ‘실리주의’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연대활동에 무관심하며 자본과의 협력을
통해서 임금수준 및 후생복지를 향상시키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실리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노사 협조주의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조합원의식을 ‘실리주의’로 표현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첫번째로 임금인상이나
후생복지의 개선과 같은 조합원들의 매우 정당한 요구들을 마치
노사 협조주의에 대한 지향과 등치시키고, 둘째로 임금(또는
후생복지) 이외에 노자간의 모든 이슈(이를테면 연대활동,
해고자문제 등)는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의 ‘실리’와
무관하다는 극히 잘못된 관점을 유포시킨다. 따라서 노동정책과
연관하여 ‘실리주의’라는 담론에 얽매인 고민은 노동조합의
선택의 폭을 매우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고, 이른바
“조합원 정서를 고려한 유연한 노동조합 정책”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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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은 ‘협조적’ 노사관계론과 별다른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의 의식변화는 자본측의 노동통제전략, 노조관리전략,
교섭전략, 그리고 그에 대한 노조의 대응 전략, 그리고 양자간의
투쟁과정의 효과로서 파악하는 것이 올바를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실리주의화’되어 가는 조합원의식에 주목하기 보다는
‘실리주의화’시켜 가는 자본의 전략 및 관리방식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신인사제도(=능력주의적 인사제도)’가
도입된 사업장에서는 예외없이 ‘개인주의화’된 조합원들에
대한 노조간부의 실망과 좌절이 발견된다.
. 그같은 분석작업이 전제되지 않는 한 ‘조합원의식의
실리주의화’라는 판단은 매우 성급하고 위험한 것이다.
다음으로 현대중공업에서는 금년 들어 새로운 자본전략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초 이후 점진적으로 전개해 오던
현대중공업의 경영혁신운동은 1994년 임단투를 지나면서 매우
공세적이며 전사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있다. 이른바
‘신경영전략’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추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신경영전략은 대우조선의 신경영전략을 대부분
모방하면서 ‘힘찬 21’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조선산업의 신경영전략은 대우조선의 사례가 명확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이 노조의 현장장악력을 와해시키면서 현장에서 자본의
통제력을 높이려는 데 주요한 목표를 둔다. 최근
현대중공업에서는 신경영전략의 전면화와 함께 현장을
장악하려는 자본의 끊임없는 시도가 전개되고 있다.
1995년의 임투 과정과 그 결과는 이같은 자본의
신경영전략이라는 맥락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올해
사측은 조선산업의 호황에 따른 지불능력을 바탕으로 임금에서
일정한 양보를 하였다. 이같은 양보는 전국적 임투지형내에서
현대중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 총자본 수준에서의 전략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별자본 수준에서의 전략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측은 이번 임투를 통해 조합원들 사이에 민주적 집행부의
한계를 드러내 보이는 반사적 이득을 얻는 한편, 1995년 들어
전면적으로 추진해 오던 신경영전략을 보다 강도 높게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지형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본의
전략은 임금에서의 일정한 양보를 통해 ‘협조가 곧 실리’라는
담론을 유포하면서 민주적 집행부를 조합원내에서 고립시켜
나가는 동시에 노동조합운동 내에 ‘협조주의’ 성향의 조류를
육성하고 신경영전략을 통해 현장을 장악해 들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래에서는 현대중공업에서 신경영전략의 일환으로 도입된
‘두레활동’을 중심으로 현장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같은 현장의 변화를 보면서 신경영전략에 의해 조합원들의
‘실리’는 현장에서 어떻게 실종되고 있는지, 임금교섭에서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자본측 양보의 이면에는 어떤 전략이
포함되어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현장의 변화: 자본의 신경영전략과 ‘두레활동’
1995년초 현대중공업에서는 대우조선의 ‘반생산회의’를
모방하여 ‘두레활동’이라는 소집단활동을
도입하였다(조선사업부에서는 1994년 초 이미 반장중심의
반생산체제를 도입한 바 있다). 대우조선의 ‘반생산회의’,
코리아 타마코의 ‘한마음 생산회의’, 한라중공업의
‘반생산회의’ 등 소집단활동의 활용은 조선산업 대기업의
신경영전략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산업은 컨베이어
라인이 돌아가는 자동차산업과는 달리 노동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현장의 직접적인 노동통제를 통해 노동자를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에 따라 조선산업 대기업들에서는
작업조직 내에 노동통제체계를 강고히 확립하는 데 자본이
주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 주요수단으로 소집단활동이 널리
활용된다.
현대중공업의 두레활동이 과거의 분임조 활동과 두드러진
차이점은 소위 ‘의식개선활동’이다. 의식개선활동에서는
반단위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팀웤조성활동’, 그리고 청정활동, 시간지키기,
예절지키기 등 작업장에서 노동규율을 확립하기 위한 질서운동
등이 포함된다.
예를들어 현대중공업의 특수선 사업부에서는 두레활동의 주요한
부분이 생산일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생산일지는 제안실적,
복장상태, 그리고 앞선 행동(안전행동, 정리정돈, 상호협조)
등의 각 항목에 따라 반원 각자를 평가한다. 그리고
반원들에게는 안전위원, 제안위원, 레크레이션위원 등의 직책을
부여하여 두레활동에 대한 책임을 분담시킨다. 이때 조합쪽
노동자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두레활동을 인간관계망
형성의 기제로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가족사진을 제출하게 하거나
결혼기념일과 생일을 파악하고, 현장감독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합원들의 경조사를 챙긴다. 이 밖에도 특수선 사업부에서는
반장에서 부장까지 7시 20분에서 7시 40분까지 조기청소와
안전캠페인을 실시하고, 조합원들에게는 5분전 체조와 중식시간
지키기를 강요한다. 또한 환경미화운동을 벌이고 반별로 그것에
대해 평가하여 포상금을 지급함으로써 반간의 경쟁을
고무시키고, 반장급 이상은 매월 따로 모여 부서별 단합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은 정도만 다를 뿐 다른 사업부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볼 때 사측이 두레활동을 추진하는 주요한 목표 중의
하나는 작업장내의 인간관계를 회사의 공식조직, 즉
현장감독자가 중심이 된 반조직을 축으로 묶어내는 것이다. 과거
대소위원(또는 노조활동가)을 중심으로 형성된 조합원간 관계,
또는 현장조직으로 묶여진 작업장 인간관계를 재편하여 회사의
조직과 직제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려는 사측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팀웤 조성활동과 같은 인간관계 활동 이외에
사측에서는 두레활동을 통해 작업 규율을 확립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두레활동 중 시간지키기 활동 등을 강조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즉, 인간관계 활동과 같은 매우 ‘부드러운’ 활동
이면에는 작업규율의 확립이라는 ‘강제적’ 관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레활동에서는 반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술책을 꾀하고 있다. “조합쪽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질서요원, 안전요원, 물통관리 요원 등
사소한 감투를 부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반간의
경쟁을 조장하기 위한 다양한 포상제도, 행사 등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두레활동의 도입에서 중요한 점은 현장에서
현장감독자층의 변화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에서는 현장감독자의
위상과 권한이 눈에 띠게 높아지고 있다. 부서장·과장도
반장들이 현장문제를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
과거 대의원이 부서장이나 과장을 만나 처리하던 조합원의
고충도 이제는 반장의 몫이 되고 있다. 또한 직책자 대상의
교육(‘조직활성화’, ‘다물교육’)을 받고난 이후 직반장들은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노조활동가들을 대하기 시작했고, 하나의
집단적 세력으로 현장에 자리잡아 가고 있는 추세이다.
사측에서는 교육을 통해 그들에게 노동자가 아닌 ‘관리자’라는
의식을 주입하고 있고, 노사관계에서 하나의 이해집단으로
형성시켜 나가고 있다. 반장들이 현장에서 ‘반장협의회
뺏지’를 달고 다니는 일 등은 현장감독자들의 위상 강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의 현장변화를 보면 현장감독자를
통한 현장통제라는 자본의 의도를 명확하게 읽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중공업에서는 ‘두레활동’을 추진하면서
작업장의 물리적 배치마저도 변화시키고 있다. 즉 과거 팀별로
사용하던 탈의실을 반단위 탈의실로 개조하여 사용하게
한다거나, 반단위로 사무실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전보다 좋은 시설에서 반원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현장노동자들에게 부분적인 유익성도
제공하지만, 현장을 반단위 공간(탈의실, 사무실)으로
구획하면서 조합원들을 반별로 고립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간부들도 현장내 일상활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노조간부들이 “홍보를 해도
옛날에는 팀 탈의실에서 한 번 하면 되었던 것을 이제는 반별로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한 조합원의 말은
앞에서 말한 현장의 변화를 잘 요약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지금 관리자들을 다물단으로 묶고, 평조합원들에
대해서는 두레를 통해 반별로 경쟁을 붙이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세계화와 회사발전에 이바지하라고 계속 선전하고
있다. 노조의 열성 활동가가 있는 팀이나 반의 경우 반의 실적이
떨어지고 따라서 주위 사람들은 물론 본인 스스로 반에서 필요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한 반에 8-12명인데, 이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노조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반원 전체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강조하고 있다. …… 반별로 관리카드가 있다.
팀장이 관리하는데 월별로 취합해서 분기별로 포상한다”
두레활동의 도입효과는 현장감독자층을 축으로 자본의
현장통제력이 강화되는 것으로, 그에 따라 노동강도 역시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노동자는 “도장부서인데
반생산회의가 들어와 노동강도가 세지고 체조시간도 빨라지고
조금 늦게 출근하면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준다. 반장의 권한이
강해서 누구라도 함부로 이야기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간부의 현장활동 역시 어려워지고, 더 나아가
조합원들로부터 그들이 고립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얼마전 반장하고 싸웠던 적이 있었다. 주위 동료들이 중간에나
있지 왜 나서냐고 얘기를 해서 난감한 경우가 있었다”는 어느
소위원의 말은 이같은 상황을 잘 말해준다. 지금 현장에서는
현장장악력을 둘러싼 노자간의 쉴 틈 없는 다툼이 전개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자본의 전면적이고 입체적인 공세가 현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의 신경영전략의 사례를 볼 때, 앞으로 현대중공업에서
능력주의적 인사제도가 도입된다면 자본의 현장통제력은 보다
현격히 높아지게 될 것이며, 현재 인간관계 활동이나 작업규율
확립에 주력하고 있는 두레활동도 노동자들에 대한 지배구조를
갖춘 견고한 통제장치로 발전하게 될 확률이 높다.
3. 자본의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
자본의 신경영전략은 현장을 주요 표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장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별 노동조합의 역량으로만 대응할 수 있는 문제
역시 아니다. 총자본 수준에서는 다양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그리고 법·제도적 개편을 통해 협조적 노사관계를
조장하면서 개별기업의 신경영전략을 지원, 주도하고 있다.
그같은 전체적 구도내에서 국내 대기업에서는 신경영전략을 강도
높게 추진하며 현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자본에
종속된 노동조합, 협조주의적인 기업별 노동조합을 구축하기
위한 자본의 노력은 개별자본에서 총자본에 이르기까지
입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경영전략의 문제를
단지 ‘현장’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 역시 잘못이다. 따라서
현재 노동운동 진영에서 추진하고 있는 산별노조·민주노총
건설이라는 전망하에서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현장을 생각해 보자.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의해 노조의 현장장악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어진다면, 그에
따라 산별노조·민주노총의 건설과정에서 현장의 동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노동조합운동은 매우 어려운
장애에 부딪칠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임금교섭에서 현대중공업은 일정한 양보를 통해 사내에
노사 협조주의 세력을 의도적으로 구축하고, 1987년 이후 연이은
쟁의에 따른 조합원들의 ‘피로’와 1994년 임단투에서의
조합원들의 패배감과 무력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임금교섭 과정에서 사측이 보였던 미소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노조의 현장장악력을 무너뜨리고 자본의 현장통제력을 높이기
위한 총공세를 벌여나가고 있는 중이다. 현장에서, 노동력이
지출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작업장에서 자본의 통제력이
확보되어 가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실리’는 실종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전략은 언제나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자본의
새로운 노동통제 방식은 새로운 노동의 저항을 낳는다.
대우조선에서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한 노동자의 죽음’과 함께 자본의
통제체제와 지배구조에 대한 노동자들의 새로운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한 사업장에
한정되어 추진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
역시 개별기업의 담장을 넘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장의
동력에 기반한 산별노조·민주노총의 건설을 전망하면서,
현장에서의 자본에 공세에 대응한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대응을
조직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