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투의 의의와 한계
노동자의 올바른 사상과 실천을 위해
김 혜 란/사무처장
임투의 의의와 한계
주면 주는대로 받던 노동운동의 암흑기를 지나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아니 보다 엄밀하게는 최초의 전국조직인
전노협이 결성된 이후 비로소 민주노조는 매년 임금인상을
‘투쟁’을 통해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 왔다.
물론 대투쟁 이전에도 임금인상투쟁은 있었지만 한정된 몇몇
사업장에 머문 정도였다.
1990년 전노협이 결성된 이듬해인 1991년부터 전노협은
‘임금인상투쟁지침서’를 발간하고, 기업별노조체계에서나마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공동활동의 수단을 사용했었다.
공동투쟁본부의 구성, 공동요구안 확정, 시기집중 등이 당시
공동임투를 성사시키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던 방법이었고,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오고 있다. 그 결과 매년 8% 이상의
임금인상을 가져올 수 있었고, 출발은 임금인상이라는 경제적
이해였지만 자본(가)와의 대립과 투쟁 속에 해고자복직,
노조탄압분쇄, 경영참가, 경제민주화 등으로 그 요구의 질을
확장해 왔다. 더불어 임투를 통해 노동자의 의식 역시 임금 몇
푼보다 조합의 단결이 중요하다는 점, 노동자 투쟁의 궁극적
목표는 임금제도 자체의 폐지에 있다는 점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90년대 중반 이후 임투는 노동자의
최종목표를 향한 투쟁의 징검다리라는 위상보다는 임금의
유지․보전 그 자체에만 한정되어 버렸다. 이것은 과거에는
임투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집중했던 것과 달리 사회보장투쟁,
구조조정반대투쟁 등과 같이 투쟁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임투를 통한 현장투쟁의 활성화가
실종되거나, 매우 관성적으로 되어버렸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임금과 관련된 조합의 교육은 요구안의
정당성에만 국한되어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이란
무엇인지, 또는 자본의 임금억제 이데올로기의 본질은
무엇인지와 같은 교육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심지어는
대중투쟁으로서의 임투의 중요성이 새겨지기보다는 적당히
밀고당기다 적정수준에서 타협하는 사안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사이 정부/자본은 고율(?)의
인상요구안에 대해서는 집단이기주의라고 퍼부어대고 있다.
임투는 여전히 노동조합의 활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일상투쟁이다. 그만큼 임투를 매개로 형성되는 노/자의 대립은
노동자의 사상과 실천이 녹아 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임투에
대한 노동자의 올바른 사상과 실천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매년 임투를 해야만 하는가?
때로는 힘들고, 과도한 탄압을 감내하면서도 노동조합은 왜 매년
임투를 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리고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무엇인가이다.
복잡한 이론을 떠나 한마디로 임금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투쟁에 의해 결정된다. 87년 대투쟁 이전의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3% 정도의 임금인상에도 조직적 단결이 미약하여 속으로 불만을
누그러뜨려야만 했다. 그러나 87년 투쟁으로 이론생계비에
근거한 임상요구안이 제출되고, 노동조합을 무기로 투쟁을 통해
매년 상당 수준의 임금인상을 쟁취해 왔다. 경제위기
노동자책임론과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극심했던
91년의 경우도 17.5%에 이르는 임상을 쟁취했고, ‘세계화’와
국가경쟁력 강화가 극성을 부렸던 95년에도 11.7%의 인상을
이루었다. 이 결과는 오로지 노동자의 조직적 단결을 배경으로
임금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투쟁의 결과이다.
따라서 임투는 계투의 연장선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자본가에게 임금은 생산비용이지만 노동자에게 임금은
생활수단이다. 오로지 노동력만으로, 그 노동력의 판매만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있어서 임금은
끊임없이 올려야할 생활도구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임금은
‘그 임금으로 그 나라에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에
의해 높고, 낮음이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임금은 무조건 낮추어야 할 생산비용이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위기는 무한경쟁에 의한 과잉생산에 의한
것이고, 개별 자본이 이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싸게 생산해서 비싸게 팔아야 하고, 싸게 생산하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임금을 끊임없이
낮추어야 하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다. 그러니 엄청난 생산력에
물건은 과잉생산되지만 임금이 낮아지면 질수록 그것을 살 수
있는 유효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한마디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분담을 하자는, 임금을
동결하자는 주장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것이지만 역으로 과잉생산을 부추기는 과정이다. 결국
경제위기가 가중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뭇 우스운 일이지만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금을
많이 올려, 여유로운 생활도 하고, 유효수요도 늘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계획경제체제로 가든가.
임투를 매년 해야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를 올림으로써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지속적으로 삭감한다. 자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임금이
오른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깎여나간
임금을 올리기 위해 노동자는 주기적으로 임금인상투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으로 굴러 떨어진 임금을
투쟁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굴러떨어진
돌을 끊임없이 다시 올리는 시지포스의 신화와 같은 이 반복된
투쟁을 통해 노동자, 노동조합은 단지 임금인상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즉
무산자(無産者)이고,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들, 즉
유산자(有産者)이다. 생산수단은 소수의 자본가에게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물로 되어 있는 반면, 사회적 생산은 무산자인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비로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모든 생산을 담당하면서도 생산수단은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사회적 생산간의 모순이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인 동시에 착취의 본질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기본적인 과제는 생산수단을 생산자와 다시
결합시키는 것, 노동자가 생산수단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임투를 매개로 노동조건을 끊임없이 상승시키는 것과 함께
임금제도 그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목적이다.
물론, 현실적 요구의 해결은 매우 중요하다. 손에 잡히는
성과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투쟁하라고 하는 것만큼
설득하기 어려운 게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성과가 임금
몇 퍼센트냐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다. 왜? 한번의
임금인상, 한번의 요구가 해결되었더라도 노동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조는
임금 1%보다 조직역량의 강화에 전통적으로 강조점을 찍어왔다.
가장 절실한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조차도 조직역량 강화가
강조되어 왔던 것이다. 임투는 조합원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일상활동(투쟁)의 계기였고, 순종과 체념을 벗어나 노동자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계기였으며, 보편적 요구를 바탕으로
노조활동의 자유확보, 노동기본권의 완전쟁취를 위한 의식적
토대의 계기로 작동해 왔다. 그래서 조합은 항상 이중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중지시키고(단결), 자본에
대해 대항(투쟁)하는 것이다. 임금을 낮추려는 자본가의 억압에
맞서려면 임금의 유지보다 조합의 단결이 더욱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임투의 의의와 한계를 정리해 보자.
맑스는 임투의 불필요함을 주장한 프루동과의 논쟁에서
임금인상투쟁의 불가피성과 그 의의 및 한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는 노동자들이 공통의 조건, 공통의
이해(임금의 유지)를 갖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노동자가
단결하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벌이는 것은 자본의
지배하에서 노동자가 객관적으로 놓여 있는 공통된 이해에 의한
것이어서, 이 객관적인 조건이 계속되는 한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을 옹호하기 위한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은 필연적이다.
또한,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본의 지배가 노동자에게 공통된
지위와 이해관계를 만들어내며,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는 ‘이미
자본에 대항하는 계급’이지만, 노동자가 공통된 요구를 내걸고
결합․단결하여 자본에 대항하여 투쟁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들은 노동자 ‘자신을 위한 계급’이 된다. 이렇게
구성된 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최대의 생산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사협조에 의해
노동자의 요구가 획득될 수 있다는 주장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에 대한 ‘공포’와 ‘경멸’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자본에 대한 공격은, 노동조합이 임금을 인상하는
데에만 머무르고 노동자계급의 궁극적 해방을 위한, 즉
임금제도의 궁극적 폐지를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않을 때,
완전히 실패한다.”
그리고 임금인상투쟁은 “100번 중 99번까지는 노동력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하다. 임금인상투쟁은 임금의 하락
추세의 속도를 늦추는 것일 뿐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며,
완화제를 제공하는 것일 뿐, 질병을 치유하는 것은 아니다”고
임투의 한계에 대해 힘주어 언급하며, 노동자의 투쟁이 임투에
머물지 않을 것을 강조했다.
87년 이후 노동자에게 있어서 임투는?
임투(단협투쟁)은 민주노조건설․사수투쟁과 더불어 87년
이후 민주노조진영이 가장 중요하게 주목해 온 투쟁 중의
하나로서 민주노조와 중간노조가 광범위하게 연대하여 투쟁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전노협은 임투를 통해 임금인상
뿐 아니라 조직확대를 꾀했고, 민주노총은 전국전선을 구축하는
적극적 계기로 활용해 왔다. 일반적으로 임투는 공동준비,
공동요구, 공동교섭, 공동투쟁, 공동타결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민주노조가 내세운 임투의 목적은 생활조건의 개선, 조직 확대와
강화, 노동자 대중의 정치의식 향상, 노동운동탄압 분쇄였다.
여기서 임투의 목적으로 정치의식의 향상과 노동운동탄압 분쇄가
매년 설정된 것은 정부의 임금억제 이데올로기 정부와 자본이
사용해 온 임금억제 이데올로기는 ‘지불능력론’ ‘임금-물가
악순환론’ ‘생산성 임금론’ ‘총액임금제’ ‘임금의
공익성’ ‘임금이냐, 고용이냐’ ‘경제성장규모 이내에서
임금조정’ ‘성과배분/총액기준 임금인상’ ‘국제경쟁력
약화’ ‘경제위기론 고통분담론’ ‘경제위기노동자책임론’
‘집단이기주의’ 등 시기와 정세에 따라 이루 말할 수 없이
교묘하게 발전해 왔다.
공세가 갈수록 세련되고, 치밀해지면서 정부의 개입과 탄압이
정상적인 임금 교섭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조가 강조했던 투쟁방식은 ‘공동임투’와 ‘주요
사업장의 선도적 배치’였다. 시기의 집중, 요구의 통일,
공동전술의 구사 등으로 이루어지는 공동투쟁전술은
기업별노조체제에서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공동투쟁이었다.
특히, 민주노조가 임투를 준비하면서 노동조합의 요구를
통일하기 위해 수행한 정책사업들은 종래의 활동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것이었다. 매년 생계비조사에 근거한 임금인상,
하후상박의 원칙확립,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의한 임금격차의
해소, 노동시간과 임금의 연계 등 매우 과학적인 요구지침을
작성하였으며, 조합원의 요구를 파악하는 설문조사 활동,
현장총회를 통한 요구안 결정, 최종타결에 대한 조합원
인준총회, 타결 이후 설문조사(임금인상액에 대한 만족도,
조합원의 단결정도, 집행부에 대한 지지도, 조합원의 참여도,
현장토론의 필요성, 지역연대집회참석여부) 등 요구안의
구성과정이나 임투의 전개과정, 마무리에서 세련된
조합민주주의를 구현하기도 했다.
민주노조의 임투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별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술로써 ‘공동임투’의
상을 제시하였다. 둘째, 타이틀은 임투였지만 실제 요구는
임금협상에 국한되지 않고 항상 해고자 복직, 노동운동탄압 분쇄
등 다양한 요구가 결합되어 이었다. 셋째, 임투의 주요 관심이
초기에는 임금인상액에 있었으나, 그 이후에는 정부의 임금억제
이데올로기 분쇄와 노동조합 간의 공동활동에 있었다. 넷째,
임투를 통해 조합민주주의 구현이라는 민주노조의 전통을
창출했다. 다섯째, 임투 요구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연구자를 결합시켜 요구안의 과학성을 증진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간 임금격차를 줄이지는 못했다.
한 마디로 민주노조의 임투는 조합원 참여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급조직의 결정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면서 현장토론도,
현장교육도 실종되고 임금과 관련돼서는 해결사노조,
자판기노조로 불리는 경제적 조합주의의 경향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점점 본질적이고,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민주노조가 수행하고 있는 임투는
과거에 비해 그 계급성이나 전투성에서 밀리는 추세이다.
노동자가 싸워야 할 과제가 늘어날수록 임투의 중요성이
삭감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동되는 방향에서 이제 민주노조의
전통을 계승하고, 노동자의 본래적 과제에 충실한 임투를
복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조가 견지해야 할 임투의 전략과 전술은
무엇인가?
우선, 조직의 확대와 투쟁의 확대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했으면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산별노조 건설이
성숙되었다고 하지만 투쟁(전선)의 확대없는 조직의 확대는
무의미할 뿐더러, 그렇게 확대된 조직이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단결일지 의문이다. 임투를 통한 조직역량의 강화와 확대는 임투
그 자체의 확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미조직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지역연대투쟁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 점을 십분활용하여 산별연맹으로만 모아지는
임투전선을 지역차원의 연대투쟁으로 연계시킨다면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정세를 배경으로 노동자․민중의 전체 전선과
하나되는 실천이 필요하다. 임투가 노동자의 대중적인 참여를
토대로 본격적인 계급투쟁으로 가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전체
전선에 복무할 수 있도록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연맹과
사업장마다 역량도 차이가 있고, 처한 조건도 다르지만 그러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더더욱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임투는 경제투쟁, 신자유주의 반대는 정치투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현실 투쟁에서는
항상 연동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수반되는
임투여야 한다. 최근에는 경영분석에 입각한 노조 요구안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노조가 알아둘
필요는 있겠지만 요구안을 그에 근거해서 작성해서는 곤란하다.
경영은 자본의 지표이고 그것조차 그들이 임의대로 언제든지
조작할 수 있다. 임투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에 의해 만들어지는 투쟁이다. 때문에 철저히 노동자의
생활권 쟁취에 입각해서 전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투쟁을 통한
의식의 강화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자본은 임투 시기
각종 지침을 남발함으로써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핵심노조 침탈을 통한 전국 전선․공동전선 구축
교란, 조기타결 유도를 통한 공투전선 약화, 경제적으로는
부분적 양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노조 조직력을 약화, 무력감,
패배의식 확대(사양산업, 폐업, 매각 사업장 등) 등으로 그
전술이 악랄해지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임투는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경제투쟁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투쟁이거니와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독립하는 첫걸음이지만,
거기에서 머물 경우 노동자는 언제나 어린아이의 첫걸음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