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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론,임금에 대한 계급적 및 과학적 이해

현장에서 미래를  제67호
김두한







여러 단위사업장에서 임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경총은 ‘임금조정 기본방향’에서 올해의 임금인상율 상한을 3.5%로 제시했고, 민주노총은 이론생계비에 기초하여 임금인상 요구안을 제출했습니다. 각각의 단위사업장에서는 보다 다양한 사안을 둘러싸고 임투 또는 임단투가 진행 중인데, 현실에 있어서 진행되는 과정들을 볼 때 임금수준 결정에는 매우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비입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충당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이론생계비에 기초해서 올해의 임금인상 요구안을 작성한 것은 그러한 내용을 잘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임투는 오히려 임금인상의 수준, 혹은 임금체계의 변경에만 집중이 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또한 임투의 과정들을 통해 노동조건 혹은 노동자건강의 문제가 부차화되기도 합니다. 고용, 임금, 노동조건 혹은 노동자건강의 문제는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식으로 인식될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에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은 ‘임금․임투를 생각한다’라는 제하의 특집을 기획하였습니다. 실려 있는 글들을 통해 임금을 과학적, 계급적으로 이해하고, 현실의 임금체계가 가지고 있는 성격들을 짚어보며,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와 임금, 그리고 임투가 가지고 있는 의의와 한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임금론: 임금에 대한 계급적 및 과학적 이해

김 두 한/연구원




임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노동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통 매월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그것은 뻔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임금은 매월 자본가인 고용주로부터 받는 것이며 노동자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며, 투쟁으로 더 얻기도 하고 힘이 약할 때는 덜 받기도 한다. 따라서 임금이란 마치 매일 매일의 변동하는 날씨처럼 어떤 원칙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매일 매일 변하는 날씨도 열대, 온대, 냉대 등 지역마다 일정한 날씨인 기후가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의 날씨는 매일 매일 바뀌지만 일년을 혹은 10년을 두고 보면 일정하게 변하는 법칙이 있다. 그렇다면 임금은 어떤가? 여기서는 임금에 대해 세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임금의 본질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임금이란 무엇인가? 경험적으로 볼 때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화폐로 상품을 사거나 혹은 상품을 화폐를 받고 파는 것처럼, 노동도 화폐로 사고 파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금은 노동자가 노동이 끝난 후에 자본가로부터 받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그리하여 다른 상품들도 제 값을 치르고 사고 팔듯이, 경험은 임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이 낳은 오해이다.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경험적으로는 명백히 진실인 것 같지만, 현실은 경험에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의 경험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은 느끼지 못하는 반면에 태양이 도는 것은 눈으로 매일 경험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코페르니쿠스 이래의 과학의 발전의 결과이다. 임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매달마다 경험 속에서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라고 느끼지만,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는 사실도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밝혀졌다.

그러나 앞서도 말한 것처럼 임금은 노동을 자본가에게 파는 것에 대한 대가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임금은 노동자가 노동이라는 상품을 팔아서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시장을 노동시장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노동자가 파는 것도 여타의 상품처럼 상품이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파는 상품은 노동이 아니다. 그리고 임금도 노동을 판 것의 대가가 아니다.


상품과 노동: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왜 노동자가 파는 상품이 노동이 아닌지를 살펴보고 그러면 노동자가 파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노동자는 어떤 상품을 시장에 가지고 가는 것인가? 예를 들어 시장에서 상품판매자는 쌀, 옷, 가방, 기계, 석유 등등을 시장 내놓는다. 그러면 노동자는 무엇을 시장에 내놓는가? 노동을 판다면, 노동을 시장에 가져가야 할 것이다. 즉 모든 상품은 그것을 판매하려면 시장에 가지고 가야 한다. 그러나 노동은 시장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요컨대 상품으로 판매하려면, 판매하기 전에 존재해야 할 것인데 노동은 그렇지 못하다. 즉 노동은 팔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런데 노동이 상품이 아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노동자가 파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상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상품은 수많은 종류가 있다. 소비재 상품의 종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재래시장이나 할인점 혹은 백화점등에 가면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기계, 원자재 등의 생산재 상품들도 존재한다. 이 모든 상품들은 모두 쓸모 있는 물건들이다. 이 쓸모가 있어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 여기에는 먹거나 입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소비재도 있으며, 생산재처럼 간접적으로 필요를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어째든 상품은 이처럼 만족을 주는 각양각색의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모든 상품은 이와 함께 얼마라고 하는 가격을 가지고 있다. 이 가격에서 상품들은 모양과 형태와 성질은 다르더라도 동일한 단위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무수한 상품들이 동일한 단위인 가격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이 모든 상품들이 동일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천 수만 가지 상품에 동일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하나, 노동이 들어가서 만들어진 생산물이라는 점이다. 상품들의 가격은 바로 노동이 들어간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것을 생산하는 데 많은 노동이 들어가면 비싸고, 그것을 만드는 데 적은 노동이 들어가면 그만큼 싸다. 상품은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상품은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에 따라 가치를 가진다. 노동이 많이 들어가면 가치가 크고 적게 들어가면 가치가 적다. 이 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이 바로 가격이다.

이처럼 노동은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노동은 상품의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상품으로 팔릴 수 없다. 다시 말해 노동을 판다는 것은 상품에서 노동을 빼내서 판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상품으로서의 노동력과 그 가치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상품은 노동력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필요생활수단량(생계비)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노동자가 도대체 노동으로 만들어진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노동자가 노동시장에 내놓는 것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몸뚱이밖에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몸뚱이를 판 것은 아니다. 만일 노동자가 몸을 전부 팔았다면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일 것이다. 노동자가 파는 것은 몸뚱이가 아니라 그 몸의 살아 움직이는 능력 즉 노동력을 판 것이다.

노동자가 파는 것이 노동력이고 그것이 상품이라면, 다른 상품들처럼 노동력을 만드는 데도 노동이 들어갈 것이다. 노동력을 만드는 데 노동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언뜻 보기에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은 먹고 자고 입어야 한다. 즉 노동력을 다시 만드는 데는, 먹고 입고 자야 할 생활수단이 필요하다. 이 생활수단들은 상품으로서 그것을 만드는 데는 일정량의 노동이 투하되어 있다. 따라서 결국 노동력을 만드는 데는 생활수단이 소비되기 때문에 노동력에는 일정량의 노동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바로 이 생활수단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노동력은 노동을 통해서 실현되며 소모된다. 즉 노동력은 노동 중에 인간의 근육․신경․뇌 등이 사용됨으로써 지출된다. 노동자는 생활수단의 소비를 통해서 그 노동력을 다시 회복한다. 따라서 노동력의 소유자가 받아야하는 생활수단량은, 오늘 그가 노동을 마쳤다면 내일도 오늘과 동일한 힘과 건강을 가지고 동일한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따라서 생활수단의 총량은 노동하는 개인을 정상적인 생활상태로 유지하는 데 충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정상적인 노동력을 회복하는 만큼의 생활수단보다 적게 받는다면, 그는 그의 노동력의 제 값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력의 지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다시 생산하는 데는 더 많은 생활수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의 지출 정도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러면 이 생활수단에는 어떤 항목이 들어가는 가며, 얼마나 들어가는가? 우선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위해서 음식물․의복․난방․주택 등을 소비한다. 그런데 이 생활수단에는 노동자의 다른 가족이 소비하는 생활수단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노동력은 소모될 뿐만 아니라 사멸하는 상품이다. 따라서 소모되고 사멸하는 노동력을 다시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에는 노동자의 부양가족의 생활수단도 포함된다. 이것은 다른 모든 상품들도 소모되고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여 폐물이 되면, 다른 상품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는 한 가족의 생활수단, 즉 생계비가 그 중심이 된다. 그런데 이 생활수단량이 단지 노동자 가족의 육체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정도라면, 노동자는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노동력을 파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노동자 가족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저해되며, 따라서 정상적인 수준의 노동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연히 노동력의 가치를 이루는 생활수단의 양은 사회․역사적으로 다르게 결정된다. 즉 자본주의 역사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한 나라의 문화수준과 사회 발전수준에 따라 그 나라에서 필요한 생활수단량은 상이하다. 예컨대 이동수단이 도보인 사회, 자전거인 사회, 버스인 사회, 자가용인 사회에 따라 상이한 교통비가 포함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상품의 가치와 달리 확정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가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나라들에서 일정한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필요생활수단량의 평균적 범위는 정해져 있다. 즉 문화나 사회가 그리 쉽사리 바뀌지 않는 한 일정한 노동력의 가치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노동력의 가치 결정에 들어가는 것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교육비 혹은 훈련비이다.

어떤 노동부문에서 사용되는 노동력도 일정한 기능과 숙련을 가지고 있다. 즉 그 노동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일정한 훈련 또는 교육이 동원되었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에는 이런 교육․훈련비도 들어간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학력, 자격증 등에 의해서 임금이 차이가 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빌미로 임금의 격차를 과도하게 늘리며, 비숙련 혹은 생산직의 임금 압박에 이용하기도 한다. 이 비용은 노동력의 가치에 추가되는 항목이지 그것이 거꾸로 노동력의 가치, 즉 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 비용이 노동자의 생활수단의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부차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노동력의 가치는 필요한 생활수단의 양으로 결정되는 데, 어떤 생활수단은 매일 매일 필요하고, 어떤 생활수단은 일주일마다 필요하며, 어떤 생활수단은 분기별로 한 번씩 필요하다. 예컨대 매일 구매해야 하는 상품을 A, 일주일마다 구매해야 하는 상품B, 분기마다 구매해야 하는 상품을 C라고 하면, 일년에 필요한 상품량은 365(일)×A+52(주)×B+4(분기)×C일 것이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아래와 같다.


한 달에 필요한 평균상품량=(365×A+52×B+4×C)÷12

하루 필요한 평균상품량=(365×A+52×B+4×C)÷365


예를 들어 하루 필요한 평균 상품량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시간이 5시간이라면 하루 노동력의 가치는 5시간, 한달 노동력의 가치는 150 시간일 것이다. 따라서 만일 한 시간의 가치가 화폐로 1만원에 해당한다면, 하루에 5만원 한 달에 150만원이 노동력의 가격, 즉 임금이다. 노동력이 이와 같이 상품이라는 사실이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얻고,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용하여 잉여가치(이윤)를 착취한다.

이제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노동에 대한 대가와 노동력에 대한 대가의 차이는 단순한 말의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와 같은 근본적인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금전 문제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따져 보자.

예컨대 위에서처럼 한 시간에 해당하는 가치가 1만원으로 표현되고 노동자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평균적으로 5시간의 노동이 소요된다고 하자. 만일 노동자가 노동력의 가치대로 5시간만을 노동한다면, 생산이 끝나더라도 가치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고 이윤은 증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그가 들인 비용만큼만 얻을 뿐이기 때문이다. 즉 5만원(5시간)에 노동력을 사서 5만원(5시간)에 해당하는 노동만을 시킨다면, 자본가는 한푼도 남길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판매하고 나면, 그 노동력의 사용권한은 구매자인 자본가에게로 넘어 간다. 이런 사용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는 노동력을 5만원(5시간)에 구입한 후에, 예컨대 10시간 노동을 시킨다. 바로 노동자에게 추가적인 노동을 시킴으로써 자본가는 이윤(잉여가치)을 얻게된다. 이를 예를 통해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5시간 노동시킬 때=노동력의 가치에 포함된 노동시간만큼

만일 노동자가 5시간만 실제로 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자본가는 생산을 위해서 원료와 기계도 사야한다. 하루 원료는 10만원(10시간) 그리고 기계의 마모비용은 5만원(5시간)이라고 하자. 그 결과 생산물은 20개가 만들어졌다고 하자. 아래의 과정을 보면, 자본가는 20만원(20시간의 가치)을 들여서 20만원(20시간의 가치)을 생산했을 뿐이다. 이윤은 0원이다.


원료(10만원, 10시간)

+기계 마모비용(5만원, 5시간)

+노동력(5만원, 5시간)

노동력사용(5시간)

+원료(10만원)소비

+기계마모(5만원)

20개의 생산물

(20시간=20만원)

구매 →

생산과정 →

생산 결과 및 판매


2) 10시간 노동시킬 때

노동력의 가치는 마찬가지로 5만원(5시간)이지만, 그것을 두 배 연장해서 사용하였다. 노동시간이 두 배 길어지면 생산량은 2배 늘어난다. 그리고 이 때 원료비와 기계 마모도 두 배 증가한다. 따라서 원료비는 20만원(20시간), 기계 마모비는 10만원(10시간) 그리고 생산량은 40개(40만원)가 만들어진다. 이제 이윤은 20만원(20시간의 가치)이다.


원료(20만원, 20시간)

+기계마모비용(10만원, 5시간)

+노동력(5만원, 5시간)

노동력 사용(10시간)+

원료(20만원)소비+

기계마모(10만원)

40개의 생산물

(40시간=40만원)

구매 →

생산과정 →

생산 결과 및 판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이처럼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하는 시간 이상으로 노동을 시킴으로써 이윤을 낳는다. 위에서 10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 40개 생산물의 총 가격은 40만원(40시간)이고 하나의 가격은 1만원(1시간)이다. 따라서 40개의 상품 중 20개는 원료의 가치에 해당하고 10개의 가치는 기계 마모비용에 해당하고 나머지 10개는 10시간의 노동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10시간의 노동에 해당하는 절반 즉 5개는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하고 나머지 5개는 아무런 대가를 주지 않고 획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이윤(잉여가치)은 노동자가 삶을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을 얻기 위해 해야만 하는 노동이상으로 노동을 시킴으로써 발생한다. 삶을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 즉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하는 노동을 필요노동이라고 하며, 그 이상의 노동을 잉여노동이라고 한다. 혹은 전자를 지불 받은 것에 해당한다고 하여 지불노동, 그리고 후자를 지불 받지 못하다고 해서 부불노동이라고 한다. 위에서 필요노동은 5시간이고 착취되는 잉여노동시간도 5시간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력이 상품으로 됨에 따라 자본은 잉여노동을 착취하여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처음에 ‘노동에 대한 대가’는 잘못된 표현이며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옳은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 이유는 명확하다. 노동력이 상품인 현실의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는 그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 중 일부분만을 받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본가들은 예전에 지주들이 소작인들로부터 노동생산물을 착취해 가듯이 노동자로부터 잉여노동의 생산물을 착취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외관상 노동에 대한 대가(가치)로 보이며 그리하여 노동자는 자본가로부터 받을 것을 다 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외관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이용되고 있다. 요즘 노동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는 연봉제 등의 성과주의 임금론도 이런 것들 중에 하나이다. 임금이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라는 사실을 알 때만, 임금투쟁을 올바른 관점에서 전개할 수 있는 출발에 설 수 있다.

특히 노동력의 가치인 현실적인 생계비 이하로 임금을 받고 있는 한국의 노동계급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의 정당한 가치를 얻는 데조차도 단결․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임금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도 당연한 요구이고 권리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그 어떤 사이비 이론과 자본가측의 논리에 현혹됨이 없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력의 가치대로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삶의 향상을 위한 그 이상으로 임금 상승은 끊임없이 저지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임금을 받기 위하여 뼈빠지는 노동을 하여하며, 그 중 일부는 끊임없이 자본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는 백날 살아야 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은 임금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노동계급은 잊지 말아야 한다.



2. 임금 변동의 법칙

이제 까지 우리는 임금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면서 그 본질은 노동력의 가치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필요생활수단의 가치)가 화폐로 표현된 것, 즉 노동력의 가격이다. 그리고 임금은 표면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출렁거리지만, 한 사회의 임금의 중심에 노동력의 가치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일정한 사회에 노동력의 가치는 주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력의 가치도 상황과 조건이 변동하면 그에 따라 변동할 수 있다. 임금의 중심인 노동력의 가치에 변동이 일어나면, 그것의 표면인 임금은 그에 따라 당연히 변동한다. 그러므로 임금의 우연적인 변동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동의 법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가치와 관련시켜서 살펴야 한다. 또한 겉보기에는 우연적인 변동도 그 내부를 뜯어보면 본질적인 원인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하에서는 임금의 변동을 노동력의 가치와 관련시켜 분석해보겠다.

노동력의 가치의 변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그리하여 임금을 변동시키는 주요한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노동생산성이 변동하는 경우, 둘째 노동강도가 변동하는 경우, 셋째 노동시간이 변동하는 경우다.

그런데 먼저 언급해 둘 것은 노동력의 가치변동과 자본가의 이윤의 변동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처럼 10시간 노동시에 노동력의 가치가 5시간에 해당하면, 자본가의 이윤은 나머지 5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사정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자본가의 이윤이 예컨대 6만원(6시간)으로 증대하면 노동자의 임금은 4만원(4시간)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노동력의 가치가 6시간(6만원)에 해당하면 자본가의 이윤은 4시간(4만원)에 해당한다. 이처럼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는 대립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 변동의 분석은 자본가의 이윤의 변동과 함께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1) 노동생산성이 변동하는 경우

노동력의 가치와 이윤을 변동시키고 그에 따라 임금을 변동시키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노동생산성의 증대다. 노동생산성이 증대하면, 상품의 생산에 더 적은 노동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노동자가 생활을 위해 소비하는 생활수단의 생산에도 더 적은 노동시간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앞에서처럼 10노동시간 중에 5시간은 노동자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하고, 나머지 5시간은 자본가가 이윤으로 가져간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노동시간은 그대로 10시간인데 생산성이 두 배 증가했다고 하자. 이 변화된 생산성아래서는 10시간 중 2시간 반은 노동자에게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에 해당한다. 즉 노동력의 가치가 이제는 절반의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이제 자본가는 10시간 중 7시간 반에 해당하는 이윤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는 경우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기존의 실질임금(즉 필요생활수단량)을 지급하면서도, 이윤을 증대시킬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기존의 실질임금, 노동력의 가치대로 받는다고 하더라도 더 많이 착취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실질임금 상승과 삶을 개선하려는 투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생산성 증대의 모든 결과를 자신의 몫으로 가져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이를 위하여 자본은 노동계급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온갖 속임수를 동원해서 실질임금의 인상을 저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인하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이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의 가치는 실질 임금을 상승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실질임금을 얼마만큼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저항에 달려 있다.

그 결과 현실의 실질임금은 노동생산성 상승과 함께 어느 정도 상승하더라도, 자본가에 의한 끊임없는 하락의 압력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일시적으로 상승한 실질임금도 시간이 지속되면서 자본가들의 압박에 의해서 낮아진다. 이런 현상은 1973년을 기점으로 한 미국의 실질 임금변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실질임금은 전후에 증가를 지속하다가, 1973년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실질임금이 어느 정도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자본가와의 생활수준의 격차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인상과 분배의 개선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2) 노동강도가 변동하는 경우

노동력의 가치를 변동시키며 그리하여 임금의 변동을 가져오는 것으로 노동강도의 강화가 있다. 가치는 노동에 의해서 결정되며 따라서 가치가 증대하려면 노동시간이 늘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대신에 노동강도가 강화되면 가치는 증대한다. 왜냐하면 강화된 노동은 정상적인 노동보다 더 많은 생산물을 생산하며, 거기에는 그 만큼 증대된 노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동강도가 20% 증대했다고 한다면, 기존의 10시간의 노동은 12시간의 노동에 해당하는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노동강도의 증대는 다름 아닌 노동력의 지출의 증대를 의미한다. 노동강도가 증대하는 경우에는 지출된 노동력의 회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생활수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가 증대하며, 당연히 노동력의 가격(실질임금)은 상승해야 한다. 노동강도가 20% 강화되어 10시간의 노동이 12시간으로 증대하는 경우에,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5시간 이상으로 예컨대 6시간에 해당하는 생활수단으로 상승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5시간에서 6시간으로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있다.

더욱이 실질임금이 상승했다고 해서 노동력의 가치대로 받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예컨대 노동력의 지출은 20% 증가했는데, 임금은 10%만이 증가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받는 것이 된다. 이러한 경향은 자본가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하는 실질임금을 획득하기 위해서 투쟁을 해야만 하는데, 이것의 쟁취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도 가능하기도 하며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노동강도 강화가 어느 수준을 넘으면, 노동력을 생산하는 신체의 급격한 파괴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임금으로 보상을 받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노동강도 강화를 거부하는 투쟁을 펼쳐야 한다.

노동강도 강화를 노동자가 막아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노동강도의 강화가 임금의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인하를 야기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노동강도의 강화는 그 만큼 더 많은 노동력을 공급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본가의 힘을 강화시키며 임금을 하락토록 만든다.


3) 노동시간이 변동하는 경우

노동력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으며, 실질임금을 변동시키는 요인의 하나가 바로 노동시간의 변동이다. 노동시간은 현실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먼저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경우에 노동력의 가치와 이윤이 어떻게 변동하는지를 살펴보자. 다른 사정이 불변인 경우에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이윤은 그 자체로도 그리고 노동력의 가치와 비교해 보아도 작아진다. 바로 이것이 자본가가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예컨대 앞서 10시간의 노동 중에서 5시간이 노동력의 가치(실질임금)에 해당하고 나머지 5시간이 잉여가치(이윤)에 해당했다. 그런데 노동시간이 9시간으로 줄어드는 경우에 노동력의 가치, 즉 실질임금은 5시간으로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가 살아가는 데 필요생활수단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정이 변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이 단축은 이윤만을 4시간으로 줄어들게 만든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순순히 손실을 볼 자들인가? 그들은 노동자의 실질임금 삭감을 통해 손실을 전가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면, 파렴치하게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량(실질임금)의 삭감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가들의 압력에 대해 노동자들이 적절히 투쟁하기만 한다면, 노동시간의 단축은 실질임금의 감소를 결코 초래하지 못한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파렴치성은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그들이 일방적으로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왜냐하면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생산성의 상승과 노동강도의 강화가 노동시간 단축에 선행하든지 혹은 뒤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노동시간 단축에서 생기는 손해를 벌충하는 것을 넘어서 이익을 얻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허용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노동시간 단축시에 명백히 실질임금 인하 반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로 노동시간이 연장되는 경우를 살펴보자. 전체 노동시간이 10시간이고 노동력의 가치(실질임금)에 해당하는 필요노동이 5시간, 이윤에 해당하는 잉여노동이 5시간이라고 하자. 이 때 노동이 12시간으로 연장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노동력의 가치가 불변인 경우 전체 노동시간 중 노동자는 5시간 자본가는 7시간을 가진다. 노동자는 노동을 연장하고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게 된다. 따라서 노동시간이 연장되는 경우에 노동자는 그에 상응하는 부분을 요구할 수 있으며 쟁취해내야 한다. 이 경우에 노동력의 가격(실질임금)과 이윤은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 물론 자본가는 끊임없이 이전 수준으로 실질임금을 낮추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연장되는 경우에 노동력의 가격(실질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력의 가치 보다 작게 지급받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의 표준적인 수명을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그리고 정상적인 신체를 유지시킬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노동시간이 연장되면 노동력의 소모가 증대한다. 어느 시점까지는 노동력의 소모 정도는 실질임금의 증대로 보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을 넘으면 노동력의 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실질임금의 상승분으로 대체할 수 없다. 예컨대 잔업, 특근 등의 OT가 평균적인 임금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잔업과 특근으로 받는 임금이 노동자의 노동력의 급격히 소모와 생명의 단축의 대가라면, 그것은 정당한 액수라고 할 수 없다. 노동자들은 OT 수당에 현혹되지 말고, 그것이 노동력 소모와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냉철히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러한 OT가 없어도 생계를 확보할 수 있는 임금을 쟁취해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시간은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의 삶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수준을 향해서 끊임없이 단축되어야 한다. 현재 노동생산성이 발달하고 노동강도가 강화됨에도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해야할 노동을 이것을 노동계급에게 전가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증대하려는 자본가를 비롯한 기생적 특권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적 사회적 활동을 위한 시간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노동시간의 단축은 임금인하 저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은 앞서의 노동강도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즉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력의 공급 감소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3. 임금의 일반적 및 주기적 경향: 임금 혹은 이윤을 둘러싼 노자의 역관계

이제까지 노동력의 가치에 변동을 야기하는 원인들과 연결시켜서 실질임금의 변동법칙에 대해 일반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순전히 경제적인 법칙이 작동하기 위해서도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투쟁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이하에서 살펴볼 실질임금의 일반적이고 주기적인 경향에는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이 개입한다.

이러한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 속에서 기본적으로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대로 결정된다. 그러나 실질임금이 결국에는 노동력의 가치대로 결정된다는 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노동력의 가치 이상으로 실질임금을 얻으려는 투쟁이 잘못이거나, 자본주의 경제 내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각각 다른 수준의 문화가 있으며 그리하여 다른 수준의 노동력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각 사회의 실질 임금은 이 노동력의 가치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변동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상품들처럼 확정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와 그 사회의 전통 등에 의해 결정되는 가변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서 노동력가치가 결정되는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는 실질임금과 노동력의 가치 상승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그 정반대 편에 자본가 계급이 존재한다. 그들은 이윤을 최대한으로 늘리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서 노동력의 가치를, 육체적 생명만을 연명하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낮추려고 한다. 요컨대 노동력의 가치가 낮을 수록 이윤이 증대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노동력의 가치를 최소한으로 낮추려고 한다. 한쪽은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고 한쪽은 낮추려고 한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의 수준 혹은 실질임금의 중심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힘 대결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이 노동자가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역관계를 변동시키는 경제적이고 객관적 조건이 있다. 그것은 노동력의 전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정도이다. 노동력의 수요가 많으면, 노동계급의 힘이 상승한다. 반면에 노동력의 공급이 많으면 노동계급의 힘이 약화된다. 그리하여 노동력의 가격, 즉 실질임금이 전자의 경우에는 상승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하락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축적을 진행하면, 노동력을 점점 더 많이 고용할 것만 같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힘이 상승하면서 노동력의 가치는 점점 더 상승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의 자본의 축적은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서 진행된다. 다시 말하면 기계설비 등이 거대해지고 동시에 더 많은 것을 더 적은 노동력으로 생산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본을 뜯어보면, 기계 등의 물적 구성 비율은 증대하고 인적 구성 비율은 작아지게 된다.

이처럼 자본의 축적은 노동생산성의 증대, 즉 노동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감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에서는 일상적인 실업자와 비정규직 등의 반실업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본은 축적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노동의 공급을 늘이고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축적에 따른 실업자 반실업자의 증가라는 객관적인 상황은 자본가계급의 우위를 보장하고, 임금의 전반적인 상승을 가로막고 더 나아가 저하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축적방식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이다.

이렇게 노동계급을 실업자로 내모는 과정은 지속적이기도 하지만 주기적이다. 즉 자본주의는 대략 10년마다 경기순환을 한다. 즉 호황, 과잉생산, 공황, 침체, 회복을 겪는다. 호황과 과잉생산의 시기에는 노동력의 수요가 증대하고 실업자와 반실업자가 줄어든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지위는 상승하고 임금은 상승한다. 하지만 공황이 오면 기업들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신규고용을 중단한다. 그리하여 공황과 침체를 거치면서 줄어들었던 실업자와 반실업자가 증대한다. 그리고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자본은 생산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그 결과 다시금 거대한 실업자 및 반실업자가 생겨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실업자와 반실업자가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이는 주기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자본가 계급을 노동계급에 대해 우위에 놓이게 하며 임금의 하락을 수반한다. 이러한 것을 한국의 경우 97~8년 경제위기를 통해서 실제로 경험한 바 있으며, 작년 말과 현재 미국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열세의 경제적 관계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하여야 한다. 물론 이 단결에는 산업예비군인 실업자 및 반실업자와의 단결도 포함된다. 취업 노동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실업자 및 비정규직 등 반실업자의 증가는 바로 취업 노동자들 자신의 힘을 약화시키고 그들을 압박하는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취업 노동자들은 실업과 반실업을 줄이는 투쟁에 나서야 하며 그들과 단결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노동력가치에 해당하는 실질임금을 확보하는 데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본가들은 이러한 힘의 우위를 통해 임금을 최저의 육체적 수준 혹은 그 이하로 떨어뜨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노동력가치 이상으로 임금을 인상시킬 기회가 있다면 노동자들은 투쟁해야 한다. 즉 호황시기에는 노동계급은 임금의 인상을 위해서 전력 투쟁해야 한다. 그것은 공황시와 침체기의 임금인하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러한 점들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보면, 결국 현실의 임금 인상 투쟁은 보통 노동력의 가치를 확보하는 투쟁이 주류를 차지한다. 즉 자본주의 내에서 임금을 끊임없이 상승시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실업자 및 반실업자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양산함으로써 노동자를 압박한다. 그리고 임금을 상승시키는 개량적인 투쟁조차 자본주의 내에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임금 투쟁과 병행하여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추구할 때만이 그들 삶의 근본적인 개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노/정/연

2001-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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