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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그리고 6.15공동선언

현장에서 미래를  제67호
채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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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전쟁 그리고 ‘6․15 공동선언’


채 만 수
부소장





Ⅰ
1950년 6월 25일을 기해 ‘전면화’되었고, 그 후 수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채 남북의 분단을 더욱 고착시키면서 끝난 비극의 ‘한국전쟁’ 이 전쟁은 우측의 ‘6․25사변’에서 좌측의 ‘민족해방전쟁’까지 여러 이름이 있는데, 여기서는 비교적 객관적인 명칭인 ‘Korean War’의 번역어로서의 ‘한국전쟁’이라고 부르자. 물론, ‘Korea’가 남에서는 ‘한국’, 북에서는 ‘조선’으로 번역되는 상황, 그것도 강한 정치적 이유로 그렇게 번역되는 상황에서 이 번역어는 그 만큼의 객관성을 잃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6월이면 우리는 새삼 분단과 전쟁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작년 6월에는 분단과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의 정상 사이에 그야말로 역사적인 회담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는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어 있어서 더욱 더 그렇다.
특히 전쟁과 관련,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1950년 6월 25일 미명에 ‘북의 남침’에 의해서 전쟁이 터졌고, 그리하여 ‘6․25 사변’이라는 것이 교과서적 정설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그 전후 맥락을 깊이 생각한다면 그 ‘정설’은 금방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의 외국 학자들, 특히 인도 학자들에 의해서 강하게 제기되었던, 6월 25일 새벽의 ‘남의 해주 침공’ 설을 얘기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남과 북간의 전쟁은 1950년 6월 25일보다 훨씬 전부터 3․8선을 연해서, 그리고 남쪽의 여러 산악 속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따라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6월 25일을 기한 ‘확전’이 아니라 6월 25일 훨씬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전쟁 그 자체이다. 확전이 주로 전술적 고려의 결과였다면, 전쟁 자체의 발발과 지금까지도 사실상 지속되고 있는 남과 북간의 적대 자체는 전적으로 전략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전쟁은 무엇이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당연히 남북의 분단은 무엇이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의 문제로 직통한다. 분단은 그 전쟁이 있게 된 구조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단과 전쟁의 정체와 성격 그리고 원인을 밝히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양분하고 있는 이른바 ‘NL’(민족해방파)과 이른바 ‘PD’(민중민주주의파)의 각각이 그 이론․논리와 실천에서 기본적으로 어떠한 부족 혹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를 밝힐 수 있게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NL’과 ‘PD’라는 이 분열은, 이른바 민족문제 혹은 민족모순과 계급문제 혹은 계급모순을 사실상 형이상학적으로 파악하면서, 이 양대 모순이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하는 것을 일원론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Ⅱ
분단과 전쟁은 분명 계급모순 혹은 계급간 적대의 외화형태(外化形態)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즉, 이른바 민족문제 혹은 민족모순은 계급모순이 외화된 하나의, 그러나 물론 주요한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분단과 전쟁을 이렇게 계급모순 혹은 계급간 적대의 외화형태로 파악하는 데에 대해서는 맑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여러 인텔리들로부터 ‘계급 환원론’이라는 강한 ‘비판’이 쏟아진다. ‘계급 환원론’이란 용어는 사회적 제사상(諸事象)의 상호연관과 역사 발전에서의 계급 혹은 경제의 중심성을 부인하고 사적유물론에 적대하는 (소)부르주아 정치․사회학자들이 형이상학적 다원론을 합리화하는 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이 최소한의 설득력이라도 가지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절대적으로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우선, 일제로부터 해방된 정치 공간에서는 만주 등지를 배경으로 항일 빨치산 투쟁을 벌였던 무장 세력, 중국 공산당 등과 협력하여 항일 투쟁을 벌였던 세력, ‘조선공산당’․‘신민당’․‘인민당’(후에 ‘조선노동당’) 등등 노동자․농민을 위시한 ‘인민의 국가’를 지향하는 ‘좌익’ 정치세력과, 한민당 등 지주․자본가와 친일 관료 중심의 ‘우익’ 정치세력이 치열하게 각축했고, 그들이 각각 북과 남의 지배적 정치세력을 형성했으며, 그 대립이 결국 분단과 전쟁, 그리고 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둘째로, 많은 경우 미국과 쏘련에 의한 3․8 이남과 이북의 분할 점령을 분단의 주요한 ‘원인’으로 들지만, 이 또한 쏘련은 국제적인 노동자 전선의 이익을, 그리고 미국은 독점자본의 전선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었지 않은가? 즉, 미․쏘의 분할 점령이란, 비록 두 국가가 제2차 대전 기간 동안 반파시즘 투쟁에서 협조했지만, (독점)자본과 노동이라는 계급 대립의 국제적 형태를 의미했던 게 아닌가? 나아가, 미․쏘에 의한 남․북의 분할 점령은 남과 북에 걸쳐 존재하던 계급적 분열․분단을 남과 북의 지리적 분열․분단으로 전화시키고 강화시킨 조건과 힘이었을 뿐 분열․분단 ‘그 자체의 원인’은 아니지 않은가? 혹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직후나 그 이후의 민족 내부의 계급간 힘의 우열 관계로 미루어 짐작할 때 좌익이 우익을 제압하는 것을 저지해온 미국조차 계급적 분열․분단 자체를 ‘창출’한 것은 아니며, 그들의 그러한 역할 또한 계급적 이해에서가 아닌가?
셋째로, 그 동안 한국 사회를 짓눌러온 파시즘, 군사독재, 국가보안법 등은 노동자 계급과 농민 등이 자주적이고 변혁적인 정치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 그 본질적 존재이유․목적이 있지 않은가?
넷째로, 한 마디로, 남과 북이라는 분단의 당사자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 계급적 기초․성격․지향을 전적으로 달리하고 있지 않은가?
이상과 같은 사실들은 분단과 전쟁이 사실은 적대적 계급 분열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 때문에 그 분단이 그토록 강고하고, 그 전쟁이나 이후의 정치 상황이 그토록 처절․잔인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이른바 ‘계급 환원론’ 운운하는 자들이 만일 위의 사실들을 부인하는 정당한 사실과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는 어떤 발언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Ⅲ
그런데, 여기서 “분단과 전쟁이, 그리고 나아가서 미국과의 민족모순이 계급모순의 외화형태”임을 확인하는 주요한 목적이 이른바 ‘계급 환원론’을 공박하려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주요 목적의 하나는, “민족모순은 사실은 계급모순의 외화형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자체에 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등 민족모순은 현 시기 계급모순의 ‘주요한’ 외화형태의 하나”이며 “그것은, 그것의 해결 없이는, 혹은 그것과의 대결 없이는 계급모순의 직접적 형태인 노-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말하자면 노동자․민중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NL’과 ‘PD’ 양측이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라는 이 양대 모순의 통일적․일원론적 관계를 파악하여 그것을 자신들의 이론과 전술․전략에 반영하지 않는 한, 양자간의 소모적 분열과 대립은, 따라서 오류는 지양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주요 목적은, 지난 해 이른바 ‘6․15 선언’ 이후에 더욱 심화되고 있는 NL측의 일반적 편향과 오류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른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통일적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PD’측은 일반적으로 민족모순 및 그와 대결해야 하는 실천적 요구의 의의를 경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북(北)을 포함한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역사적․정치적 의의를 오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NL’ 측은, 자신들이 대결하고 있는 민족문제, 민족모순의 기초에 계급모순이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본적으로 그 민족모순이 계급모순, 즉 계급적 적대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경우 민족주의적 태도로 일관하는 편향․오류를 범해오고 있다.
그리고 ‘6․15 선언’ 이후 그러한 편향과 오류가 더욱 심화돼가고 있는데, 여기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6․15 선언’ 속의 이른바 “민족 대단결”의 원칙과 관련해서다. 이는 주지하듯이 1972년의 ‘7․4 남북 공동선언’에서의 원칙들을 확인 한 것이다.

“민족 대단결”! 일견 거부하기 어려운 명제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와 역사는 무엇에 의해서 추동되는가’, 혹은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지금 “민족 대단결” 그것을 말하게 하는 분단과 적대는 무엇에 의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면, 그 명제는 전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며 자칫 함정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15 선언’(‘7․4 선언’도 물론)과 이른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은 분단과 적대를 절대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계급’, ‘계급적 분열’, ‘계급적 적대’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은, 물론 바로 그 ‘침묵’이라는 소극적인 방법을 통해서이지만, 분단과 적대의 기초에 있는 계급적 분열과 적대를 은폐하고 그 문제의식조차 기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론 ‘6․15 선언’이나 ‘7․4 공동선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남북 합의로서의 “민족 대단결”의 원칙 등을 무시하거나 폄하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들은 남․북 간의 긴장과 적대를 완화시키고, 따라서 남과 북이 외부로부터의 과도한 압력으로부터 다소라도 자유로워져서 각자의 사회운동 법칙에 따라서 발전해 갈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것은 긍정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선언’의 한계를 보지 못한다면,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NL’측의 상당 수 사람들이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적인 권력에 불과한 김대중 정권에 기생․협력하면서 김대중 정권의 이른바 ‘남북 화해정책’에서 변신의 구실을 찾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남․북 간 ‘공동선언’의 한계는 그 ‘선언’의 성격상 당연한 것이다. 그 ‘선언’이란 다름 아니라 전적으로 계급적 성격과 지향을 달리하는 두 정치집단의 ‘공동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선언’에는, 독점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요구도 담을 수 없다면, 노동자․민중 계급의 정치적 요구도 담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 ‘선언’ 그것과 그 안의 이른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이 지상의 것인 양하는 인식과 그에 기초한 실천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계급적 관점을 견지한 주체적인 태도와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한/노/정/연

2001-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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