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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투쟁의 의미

현장에서 미래를  제67호
오세철


2001년 6월 투쟁의 의미
권두언




오 세 철
이사, 연세대 교수




Ⅰ
5월은 군부독재 타도투쟁과 제국주의 반대투쟁의 달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그러나 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을 기점으로 5월은 노동계급의 선도적 투쟁의 달로 아로새겨져 있다. 2001년 5월은 어떠한가? 111주년 세계 노동절 투쟁대오가 시청광장을 점거한 평화로운 집회로 마무리되었지만 신자유주의 분쇄와 김대중 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결의는 드높았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투쟁세력은 6월 12일 정치총파업을 선언하고 총력투쟁의 불을 당기고 있다. 그 가운데 광주항쟁 21주기를 맞이하였다.
지난 4월 9일 출범한 ‘진보적 지성과 양심의 소리’의 회원들(종교계와 학계의 15명)은 5월 19일 캐리어 비정규직 노동조합 동지들이 투쟁하는 광산경찰서 앞 농성장을 지지방문하고 경찰서에 항의방문하였다. 캐리어라는 초국적 자본의 억압, 착취와 구사대폭력에 전신을 구타당한 노동형제들이 오히려 공권력에 의해 구속되고 있는 현실은 2001년 5월의 광주의 현주소임을 뼈
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5월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망월동 묘역은 어떠한가? 광주와 서울에서 두 개의 기념식이 치루어진 것뿐만 아니라 박제화된 신묘역, 홀대당하고 있는 구묘역 역시 혁명의 정신을 거세시킨 김대중 정권의 본질을 증명하고 있었다.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짓밟은 전두환, 노태우 등의 학살원흉에 면죄부를 주고 진상규명을 은폐시킨 채 보상으로 마무리하려 하는 김대중 정권이야말로 투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음을 한적한 망월동이 웅변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6월 투쟁이 다가서고 있다. 민주노총은 5월 31일 교섭을 중단하고 전 간부 서울집중 대정부투쟁을 전개하며 6월 1일에서 2일까지 상경투쟁 그리고 6월 12일 총파업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핵심투쟁으로는 첫째, 구조조정저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 둘째, 건강보험 재정파탄 공공의료 쟁취투쟁, 셋째, 공교육 정상화 쟁취투쟁을 배치하고 있으며 3월 15~16일 중앙위원회에서 결의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분쇄와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을 상반기 투쟁의 기조로 삼고 있다. 이른바 ‘5말 6초 투쟁’으로 이름 붙여진 민주노총의 투쟁은 의례적인 연례행사인가? 시기적으로 임단협이 집중되어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매년 반복되는 일상투쟁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으나 2001년 6월 투쟁은 예년과 질적으로 다른 투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제는 6월을 6월 항쟁 정도로 규정하지 않는다. 민중적이며 계급적 요구와 투쟁을 대통령직선제 개헌으로 축소 왜곡시키고 보수정치세력의 활용도구로 전락시킨 87년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노동계급의 전 계급적 투쟁이 밑으로부터 솟구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노조 건설투쟁이 중심을 이룬 87년 노동자대투쟁을 넘어 정치의 주체로 역사의 주체로 당당하게 나서는 계급투쟁의 본령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Ⅱ
2001년 6월 투쟁과 2000년 6월 투쟁은 무엇이 다른가? 전국노동단체연합의 기관지 ꡔ노동전선ꡕ 2000년 6월호는 특집으로 ‘5말 6초 투쟁의 현황과 과제’를 다루고 있다. 특집의 취지를 인용하자. “5월 31일 총파업투쟁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민주노총의 5월말 6월초 투쟁은 짜여진 일정 단 며칠간의 투쟁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4월 끝맺지 못한 완성 4사투쟁을 이어가고 이후 닥쳐올 제2의 구조조정을 막아내는 투쟁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IMF 이후 2년간 빼앗겨온 노동자들의 권리들을 한꺼번에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지도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의지입니다. 자본에 맞서 당당하게 우리의 생존권을 지켜냅시다.” 이 당시 민주노총의 3대 투쟁요구는 첫째, 주 5일(주 40시간제) 쟁취, 둘째, 구조조정 중단과 IMF 피해 원상회복, 자동차산업 해외매각 중단과 협동조합 강제통합 중단, 셋째, 조세개혁과 사회보장예산 GDP기준 10% 확보-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정규직화였다. 2000년 5말 6초 투쟁의 정세적 조건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지속,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김대중 정권의 4․13총선 패배 등이었고 노동계급의 밑으로부터의 투쟁이 몇 차례의 형식적 총파업 선언과 강력한 투쟁지도부의 부재 때문에 힘있게 조직되지 못하는 내부적 한계가 맞물려 있었으며 자본과 권력에 대한 반대투쟁이 명확한 투쟁기조로 자리잡지 못했던 시점이었다. 그러면 2001년 6월 투쟁은 왜 자본과 권력을 향한 분쇄투쟁으로 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가? 세계정세, 남북한 정세 그리고 국내정세가 총체적으로 맞물리는 정세적 규정력은 무엇인가? 2000년 6월에도 그러한 맞물림의 맹아적 조건이 있었음에도 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투쟁을 조직하지 못한 이유는 단지 민주노총 지도부의 문제였는가를 반성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첫째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불균등한 인식수준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대응을 지연시켰다는 점이다. 자본의 축적 전략의 변화를 포스트류 담론으로 전환시키면서 유연화 전략을 마치 노동친화적인 패러다임의 변동인 것처럼 해석하는 서구의 탈맑스주의 진영의 논쟁구도를 기계적으로 한국사회에 대입하는 시기와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중첩되어 신자유주의의 독무대를 방치하고 있었던 좌파의 혼란과 무능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 포드주의와 도요타주의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아닌 더욱 착취적인 초포드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포스트 모더니즘이 신자유주의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외피에 불과하다는 점, 참여와 유연화로 위장된 자본의 전략은 노동에 대한 더 많은 착취, 억압의 구조라는 사실 등은 국가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자본주의의 전일적 지배법칙과 그 경험의 축적 그리고 역사적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이고 반성적 평가와 더불어 지구적 차원의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사상으로서, 체제로서 그리고 정책으로 다른 층위에서 이해되는 경향이 존재하였고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정책이라는 가장 낮은 수준의 이해에 머물렀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반대”를 소리높이 외쳐도 신자유주의정책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면 되는 것으로 용인되고 영미식의 신자유주의가 아닌 유럽식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바람직하다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난무하고 있다. 시장숭배의 이데올로기가 근간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의 순환적이며 구조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계급타협의 산물인 복지를 파괴하고 노동계급을 착취, 억압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나 그 길은 결국 자본주의의 폐절로 다다르게 된다는 것 그래서 결국 신자유주의는 제어장치 없는 생명을 다해가는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점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집중화는 금융화, 보건, 교육 등 모든 영역으로 관철되는 상품화, 그리고 사회관계의 탈규제화를 기본법칙으로 하는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분쇄하지 않고서는 인류에게 희망이 없다는 전세계 노동계급과 민중의 깨달음과 투쟁이 바로 21세기를 시작하는 2001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계적 정세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동계급과 민중들과 제3세계 노동계급과 민중들의 인식과 투쟁이 그 힘과 강도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폭은 좁혀지면서 신자유주의 분쇄투쟁, 다시 말하여 반자본주의 투쟁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불붙기 시작하였고 특히 시애틀 투쟁이 그 단초가 되었다.
전세계적 차원의 노동계급과 민중의 연대는 이제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욱 그 폭을 넓히고 힘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그 흐름은 NGO를 중심으로 한 소수자 투쟁과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투쟁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자본주의 반대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대안세상, 즉 역사적 사회주의를 극복한 사회주의를 제시하는 데 있다. 그나마 반자본주의를 주창하는 시민운동세력과는 연대하면서 노동계급의 세계적 단결을 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자본과 권력의 이중대로 전락할 위험이 많은 친자본의 시민운동은 타격의 대상이 되거나 비판적 견인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전면적 저지, 공공부문의 사영화 저지, 노동 유연화의 저지 등은 우리나라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목표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노동계급과 민중의 공통의 투쟁목표이며 2001년 6월 투쟁은 이러한 세계적 차원의 인식틀 속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투쟁이다.
위와 같은 세계 정세와 세계적 차원의 투쟁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와 남북문제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2000년 6월 15일 두 김씨의 남북회담이 개최되었을 때 신자유주의의 한반도 관철을 저지시킬 수 있는가? 남북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가? 남북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중심이 되는 민중적 통일이 가능한가 하는 점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올바른 평가 속에서 민족주의 세력의 비계급적 인식과 통일운동실천을 염려하기도 하였다. 전쟁위험으로부터 해방되고 남북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서 올바른 대안사회를 건설하는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남북한 노동계급과 민중의 연대와 단결로 세계 노동계급 및 민중과 연대할 수 있는 필수적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에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동안 미국의 부시 정권의 등장,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으로 전쟁의 위협과 파시즘의 부활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전세계가 자본주의체제 내에 포섭되어 있으면서도 군사적 긴장을 조성시키는 이유는 세계 자본주의체제 내에서의 헤게모니를 쟁탈하기 위한 것이며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경기부양시킬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자본의 축적위기를 전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각축장에서 혈맹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반제국주의 연대투쟁을 전개해야만 한다. 반제투쟁이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가간 투쟁이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이 지배하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초국적 자본(금융자본, 산업자본)과 그의 대리기구인 IMF, WTO, IBRD 등 국제기구와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주의세력이 미국과 일본반대를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반제투쟁, 반자본투쟁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의 대리역할을 하면서 노동계급과 민중을 압살하는 정권과 타협하는 환상적 민족통일전선에 갇혀있는 모습을 보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 노선과 정파를 뛰어넘어 단결한다는 것은 오직 자본과 그 권력에 대한 투쟁을 원칙으로 했을 때만이 가능하다. 2001년 6월 시점에서 민족주의세력은 우려했던 대로 김대중 정권과 협력하여 6․15행사를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세계 노동계급의 연대와 단결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남북한 노동계급의 연대와 단결을 위해서도 신자유주의 대리권력인 김대중 정권과 손을 잡는 어떤 세력과도 투쟁해야만 한다. 단순한 전술적 문제를 넘어선 사상과 전략의 문제이기 때문에 6월 투쟁을 통하여 민족주의의 허구성과 몰계급성을 폭로하고 그 본질과 한계를 대중적으로 검증받게 해야 한다. 남한 노동계급과 민중의 독자적 발전과 혁명성에 기반하지 않고 북한의 의도에 무비판적으로 따르거나 남한의 정치권력에 대한 섣부른 활용론을 내세우는 논리와 실천에 대해서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하며 이번 6월 투쟁은 신자유주의 분쇄투쟁뿐만 아니라 몰계급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투쟁의 대중적 기초를 쌓는 첫걸음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투쟁은 그것의 정치적 외피를 쓰고 있는 자본의 권력과의 투쟁으로 귀결된다.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전빈련, 계급적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단체 그리고 노동자계급 정치조직 등은 김대중 정권 퇴진을 투쟁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신자유주의 분쇄투쟁과 결합하여 2001년 6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군부독재뿐만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 정권이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자본가계급의 정권임을 폭로, 비판하고 퇴진과 타도투쟁을 전개했고 또 전개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권력이라는 대안적 권력의 충분한 창출조건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퇴진투쟁을 대중투쟁과 결합시킴으로써 대안권력 창출의 기반을 만들어간다는 목표는 분명하였다. 자본의 권력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대중적으로 무너지는 시점이 존재하지만 군부독재라는 반민주권력에 대응하는 민주세력(?)으로서 인정받던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 대한 대중의 환상과 그들을 추종하는 이른바 민주화세력의 착종은 자본가계급으로서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데 시간을 필요로 했다. 더구나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과의 차별성을 준거로 하여 민주와 인권 그리고 통일의 상징으로 조작되었고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2~3년 피부로 경험하면서도 실낱같은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대중적 정서가 뒷받침되고 있었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포함한 대중운동조직 내에서도, 그리고 민족주의 통일운동 진영 내에서는 더더욱 김대중 정권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남아 있었으며 설사 그것이 전술적 활용이라는 구도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전술은 비판, 타격되어야 할 전술이었다.
2000년에는 김대중 반대, 2001년에는 김대중 퇴진이라는 강도변화는 세계정세, 남북한 정세가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자본주의) 분쇄라는 투쟁목표가 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그 대리권력으로서의 김대중 정권임이 명확해졌다는 사실이 대중적 기반과 정서가 되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이 금융, 기업, 공공부문에 단계적으로 적용되면서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증식을 위하여 진행되고 있고 최종적으로 노동계급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압살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뼈 속 깊이 경험하게 되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무자비한 공권력으로 진압하는 생생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국민의 건강을 해치며 모든 영역을 파괴하는 주범이 자본과 김대중 정권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노동계급과 민중의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도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은 바로 반자본주의투쟁이요 반제국주의투쟁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급과 민중을 구체적으로 압살하는 정치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은 단기적인 투쟁목표이다.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을 전개할 정세적 조건이 아니라거나 반제투쟁이 더 중요하다거나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김대중 정권의 퇴진을 말할 수 없다는 민족주의 세력의 궁색한 논리는 비과학적이고 몰계급적인 민족주의일 뿐이다.
2001년 6월 투쟁은 바로 반자본주의 투쟁, 반제국주의 투쟁,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이 통일적으로 만나는 투쟁이요 그 통일적 만남이 정세적으로 세계, 한반도, 그리고 남한에서 교집되는 마당판 위에서의 투쟁이다. 총체적 정세의 어우러짐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남한에서 6월 투쟁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전세계의 투쟁과 만나는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세계혁명운동에서의 우리의 위상을 자리매김할 중차대한 기회이다. 신자유주의 분쇄와 김대중 정권 퇴진을 위한 정치총파업투쟁은 6월 투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며 지속적 투쟁을 불지필 정세는 주어졌다. 우리에게 얼마나 투쟁을 잘 조직하고 실행하고 그 성과를 축적하는가의 문제만 남아 있다. 6월 정치총파업투쟁과 지속되는 신자유주의 분쇄투쟁을 통하여 대안권력의 상을 제시하고 투쟁하는 노동계급 및 민중과 함께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정치조직(당)을 힘있게 건설해 나가는 일이 김대중 정권 퇴진을 구호나 선전선동을 넘어서서 실질적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실물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분쇄투쟁과 김대중 정권 퇴진투쟁에 함께 하는 노동계급과 민중은 당연히 계급정치의 주체이며 21세기 노동계급의 희망인 것이다. 이렇게 투쟁하는 세력은 반제국주의투쟁과 반자본주의(신자유주의)투쟁을 남북한 노동계급과 세계노동계급의 연대로 돌파함으로써 맹아적 형태로 형성되는 반자본주의 세계민중연대전선을 강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2001년 6월 투쟁의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한/노/정/연

2001-06-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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