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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출연 연구기관 구조조정 현황과 대응

현장에서 미래를  제68호
전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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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부출연 연구기관 구조조정 현황과 대응*



전주희/과기노조 건기연지부 사무차장, 연구원





들어가며

정부출연 연구기관에는 두 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하나는 인문사회계 정부출연(연) 노동조합인 ‘연구전문기술노동조합’과 또 하나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그것이다. 연구를 수행하는 직업이다보니, 자연스레 조합원들도 석/박사들이 많다. 그리고 업무 성격상 자료수집, 실험, 분석, 통계, 정리 등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출연연구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1). 이는 정부출연(연) 노동운동의 주체 스스로가 자신의 기록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제출하는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까지 전체 노동운동 진영에서 정부출연(연) 노동조합운동의 위상이 중요하게 자리잡지 않은데도 그 이유가 있다. 그러나 1998년 이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프로젝트는 정부출연(연) 또한 비껴갈 수 없었으며, 공공부분의 제일 앞에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어왔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출연(연) 노동자들은 엄청난 변화를 감당해야만 했으며, 연구현장은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졌다. 출연(연) 노동자들은 정부에 의해 쫓겨나거나, 다른 곳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지난 4년동안 연구현장이 얼마만큼, 어떠한 양상으로 파괴되어 왔는지 알 수 있는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얼만큼 증가했는지, 노동시간은 얼마나 늘어났는지, 현장통제는 얼마나 강화되었으며, 정부의 지배개입 정도는 어떠한지 등등 …

이 글 또한 모자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그나마 나와있는 자료조차 제대로 다 분석을 끝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 지난 4년간의 정부출연(연)의 구조조정이 연구현장에 끼친 영향과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해 보다 성실한 보고서를 약속하며, 미약하나마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구조조정과 노동조합의 대응’에 대한 글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I. 정부출연연구기관 구조조정 현황과 본질

1. 정부출연연구기관이란?

정부출연(연)은 정부가 예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출연금으로 지원하는 연구기관이다. 정부출연기관, 정부위탁기관, 정부보조연구기관 등과 함께 정부산하기관으로 분류된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제1차 경제개발 계획  및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 추진하면서 ‘우수한 연구인력을 갖춘 새로운 연구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966년 비영리 재단법인 형태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된 이래 꾸준히 증가하였다. 정부 출연(연)은 정부주도하 경제개발정책의 일환으로 범국가적 연구개발의 필요성으로 설립, 운영된 만큼 우리나라에서 특히 발달된 부문이다2).  1971년에 5개, 1981년에 21개, 1991년에 49개, 1998년에 59개, 2001년 현재 50개의 출연(연)이 있으며, 15,000여명의 노동자가 직종별로는 연구직, 행정직, 기능직, POST-DOC, 학연생, 인턴, 객원연구원 등으로 분포되어있다.


2. 김대중 정권 이전까지의 정부출연(연) 구조조정 과정

90년대 초, 정부투자기관의 경영혁신과 함께 정부출연(연)의 ‘기능재정립 및 운영의 효율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이후 역대 정권은 정부출연(연)의 확장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다. YS정권은 민영화․통폐합 추진으로 출연(연)의 위상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PBS(Project Base System,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 도입, 성과급제․연봉제 도입 등을 추진하면서 ‘유연화 전략’을 연구현장에 도입하게 된다. 이러한 정권의 의도는 과기노조를 중심으로 한 출연(연) 노동자들의 즉각적인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즉 민영화․통폐합에 대해서는 ‘민간부분에서 할 수 없는 공공성이 담보된 연구 결과물이 정권의 ‘세계화’의 논리로 특정재벌과 해외자본에게 무상양여3)’되는 것은 반민중적인 행위이며, 정권의 의도적인 정부출연(연) 연구생산성의 왜곡은 출연(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PBS는 정부가 국회의 예산 심의를 통하여 출연(연)에 지원해 오던 인건비와 경상운영비 등의 출연금제도를 폐지하고 오로지 프로젝트(연구개발사업) 수주에만 의존하여 출연(연)을 운영하는 제도이다4).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초연구보다는 단기 생산성 위주의 연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시켜 연구자들은 오로지 ‘돈벌이’성 사업에만 치중하는 등 출연(연) 고유의 공적 연구는커녕 안정적인 연구가 불가능한 상황인 ‘상시적인 경쟁’체제하에 내몰릴 것이라는 위기감으로 ‘PBS 철폐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하게 된다(1996년). 결국 94년 말 정부조직 개편과 개각 이후 대대적인 출연기관 통폐합․민영화 추진은 과기노조의 약 2개월에 걸친 투쟁으로 철회되었으나, 장관 경질과 함께 PBS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대부분의 출연(연)에 관철되었다.

<표 1> 역대 정권의 출연연구기관 구조조정5)

시기

근거

주요내용

비고

70년대말-

80년대초

(5공)

?중복 기능, 투자효과 저하

?주관부처 다원화

◎16개 연구소를

  9개 연구소로 통폐합

5공의 정치기반

확보의 도구

80년대말-

90년대초

(6공)

?과학기술정책선언

?기능재정립 및

  운영효율화

◎인력감축

◎연구인력 비정규직화의 초기시기 (임시직 채용의 시작)

◎출연(연) 현장 붕괴시작

출연(연)에 신자유주의 정책기조 도입의 초기

☞노조 설립기

90년대 중반

(YS정권)

?GATT체제 붕괴,

  UR협상타결과

  WTO체제 출범

◎PBS 도입

◎유연화전략의 초기

  (성과급제, 연봉제 도입

  민영화/통폐합의 구체적 논의)

세계화/일류화/전문화

☞노조 성장기

90년대말-

현재

(DJ정권)

◎ IMF 관리체제

   경제위기 극복

◎ 신자유주의 정책기조

◎임금삭감

  후생복지 축소

◎인적 구조조정

  (명예/희망퇴직)

시장경제체제하의

출연(연)으로 편입

☞노조 침체기

◎ 4대 부문 개혁

◎ 2차 구조조정에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로 전환

◎예산권 남용, 경영혁신 강제

◎노조 무력화

◎기관평가의 정교화/세밀화


WTO체제 출범 후 출연기관에 닥친 자본의 합리화 전략은 통폐합․민영화, PBS, 경영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연구현장을 옥죄어왔다. 이는 역대 정권이 출연기관을 시장경제체제에 편입하고자 하는 시도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과정은 무차별적이고 전면적인 김대중 정권의 출연(연) 구조조정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


3. 김대중 정권의 출범과 출연연구기관 구조조정의 시작(1998년)

“정부주도의 경제개발과 기술투자를 진행하여 왔던 우리나라로서는 한때 출연(연)은 인기가 좋았다. 그만큼 수행업무가 비중이 있었고 대접도 좋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출연연은 관할부처의 정책보증을 서주기에 바빠지고 낙하산 인사로 소위 고위층 퇴직 공무원의 요양처가 되는 듯 하더니 각종 예산비리가 떠들썩해진다. 연구기간의 절반은 공무원들 좋아하는 각종 근거서류를 만드느라 보내는데 그나마도 장관이나 바뀌면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하는게 태반이다. 연구와는 거리가 먼 비생산적인 작업에 지친데다 무엇보다도 일관성 없는 정책변덕에 표류하다 보니 안되겠다 싶어 뒤늦게 연구소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이덕희, 다른과학 편집위원)


1) 기획예산위원회: 정부출연연구기관 구조조정의 시작6)

1998년 3월 하순 추경예산 심의과정에서 공무원을 시작으로 하여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인건비 예산의 10%를 일방적으로 삭감하였던 기획예산위원회는, 공공부문 중에서도 인원이나 예산의 규모 면에서 가장 작은 출연연구기관을 구조조정의 첫 대상으로 삼았다.7)

1998년 4월 3일, 기획예산위는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영혁신 추진지침’을 정부 각 부처에 시달하였는데, 그 내용은 ▶독립기관으로 존치할 필요성이 없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통합 또는 폐지 ▶전체 또는 일부 기능의 민영화 또는 민간위탁(outsourcing) ▶기구와 인력의 연구기능 위주 편성 및 최소규모 조정, 운영시스템에 있어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전문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기관장 선임시 공정성확보 ▶주무부처의 당연직 이사제도 등의 개선 ▶성과급에 기초한 연봉제 도입 ▶기관평가제도 마련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영혁신을 위한 제2차 공청회”(5.8.)에서 제출한 정부 시안에서는 위의 내용을 근간으로 ’98 예산기준 경상경비의 20%를 삭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기존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개별이사회를 폐지하고 연합이사회를 구성함으로써 경제 및 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연구수용의 변화에 부응하여 연구원의 통폐합이 유연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며, 추후 연합이사회를 통하여 정부가 의도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표 2> 연합이사회 소속 정부출연(연) 조직도

2)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이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

12월에 제정된 이 법은 관계 전문가들과 정부출연(연) 종사자, 그리고 노동조합을 경악케 했다. “연구기관은 연구 및 경영에 있어서 독립성 및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간판만 하나 걸어둔 채, 오로지 획일적인 통제를 위한 기제들의 나열뿐이었다. 법률안에 따르면 경제사회이사회․인문사회연구회․기초과학연구회․산업기술연구회․공공기술연구회 등 5개의 연구회(연합이사회)가 소관 연구기관에 대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연구기관의 경영상태 악화되어 출연금의 지급을 중단한 경우와 국가정책상 연구기관의 존속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연구회는 소관연구기관의 해산을 국무총리에게 요청할 수 있다. 또한 연구회는 연구기획 뿐만 아니라 소관 연구기관의 발전방향도 기획하고, 신설․통합 및 해산을 포함하는 연구기관이 기능조정 및 정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연구기관의 경영목표 및 사업계획서, 예산서, 결산서 등이 모두 연구회에 제출되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들이다.

정부는 스스로가 고백한 바와 같이(2차 공청회)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추진해 오고 있는 공공부문 개혁의 첫걸음으로서, 이후 있을 다른 공공부문 개혁, 나아가서는 금융개혁이나 재벌개혁과 같은 여타 국가적 개혁들의 시금석으로 삼겠다”는 적극적의 의도하에 연합이사회라는 통제기반을 확보하였다.



4. 기획예산처 4대 지침(1999~2000)

98년 정부의 발빠른 작업들은 99년도에 와서 구체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폭력적 관철로 이어졌다. 이미 ‘희망퇴직’이라는 변형된 정리해고제로 연구현장과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데 일정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는 노동조합의 단협(안)으로 ‘정리해고제 요건 강화’, ‘희망퇴직, 명예퇴직 시 노사합의’ 등을 제출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에 실질적인 토대를 만들었다. 이러한 정부의 고용유연화 전략에 뒤이어 연봉제 도입을 통한 임금유연화 전략은 99년 한해 실제로 정부출연기관 전 기관에 걸쳐 관철되었다.


□ 정부보조기관 등 경영혁신 추진계획(1999. 12.) 중

■ 보수?인사 제도 개선

  - 계약제, 연봉제 도입, 성과상여금 확대 추진

  - 공무원 수준으로 정년 단축

■ 과다한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을 적정 수준으로 조정

  - ‘98년 인건비?경상비 예산 총액 대비 2000년 인건비?경상비 예산 총액 15%(±5%) 수준 삭감

  - 단, ‘99년 말까지 퇴직금 및 명예퇴직금제도를 개선한 기관은 예산 사정에 따라 3% 인센티브 가산 가능

  - 본 경영혁신 방안에 따른 2000년도 인력감축에 의한 삭감분을 제외한 후 삭감.

■ ‘98 『출연?위탁기관 경영혁신방안(’98.8.17.)』에 의거 경영혁신을 추진해온 기관은 예산사정에 따라 ‘99년 인건비?경상비 예산 총액 대비 2000년 인건비?경상비 예산 총액을 5% 수준에서 증액가능

  - 단, ‘99년 말까지 퇴직금 및 명예퇴직금제도를 개선한 기관은 예산사정에 따라 3% 인센티브 가산 가능.


위의 정부 지침에 의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는 연봉제․계약제․정년단축․퇴직금누진제 폐지(평가제 도입)를 정부출연(연)에 관철시키기 위해 정부의 예산권을 무기로 출연(연)을 압박하는 한편, 4대 지침 달성도에 따라 기관 성과급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한 공동대응을 무력화 시킨다. 그리고 ‘밑빠진 독의 돈 붓기-출연연’ 식의 대 언론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하여 출연(연) 종사자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한편, 과기부 산하, 연합이사회 소속 기관 경영진들에게 대 노조 공세를 취할 유리한 고지를 마련해 주었다.


5. 2단계 구조조정-상시적 구조조정 전략(2001년)

1) 경과

?예산배정 유보와 연계한 2차 구조조정 내용과 전략

<2001년 정부산하기관 구조조정 지침 :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제5차 회의 결과(1.30)>

  ? 기본방향 : 지속적인 경영혁신추진, 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시개혁체제

  ? 분야별 추진지침 : 기 계획된 경영혁신 추진과제를 차질 없이 마무리

    - 인력감축: 연구(8) : 지원(2) 비율

    - 외부위탁 또는 민영화 지속 추진 --> 대상기관 3월 내 선정

    - 유사?중복 기능을 수행하는 부서조직 통폐합

    - 예산운영의 적정성 확보 : 사내복지기금에 지출방지, 복리후생 경비 억제 및 폐지

   - 경영의 효율성 제고 : 연봉제, 계약제 강화

<2001년도 세출예산집행 지침 :기획예산처(2.1)>

  ? 개혁과제 미추진시 예산집행 중지


※ 국무조정실 공문내용

   1. 기획예산처 예총 41120-1(‘01.1.2호)호와 관련.

   2. 기획예산처에서는 공공부문개혁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계약제 및 대학생자녀학자금지원, 연월차수당, 유급휴가제도 등 출연연구기관 복리후생제도 개선 미이행기관에 대해 과제 이행 완료시까지 기관고유사업비를 전액 유보키로 하고, 당실 산하 해당연구기관에 대하여 기관고유사업비 배정유보액을 관련으로 당실에 통보해온 바 있습니다.

   3. 이와 관련 그 내용을 붙임과 같이 통보하니 개선과제가 조기에 완료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과제 이행완료시에는 관련증빙서류를 첨부하여 소속연구회로 수시배정대상의 해제를 요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국무조정실장 (전결 규제개혁조정관 정강정)

기획예산처가 1월 5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내용은, 소위 개혁부진 기관의 2001년도 인건비 및 사업비 등 718억원을 삭감하고, 1조 3,122억원을 수시배정 대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출연(연)과 관련해서는 2000년 경영혁신사항 미진기관에 대해 2001년 정부출연연구지원비 1천 50억원을 배정유보하고 2월말까지 완료하라는 일정을 밝힌 바 있다. 김대중정권의 이러한 방침에 의해, 기획예산처는 2001년 1월 2일 국무총리소관 33개 출연기관의 기관고유사업비 1,411억원을 분기별로 배정유보한다고 국무조정실에 통보하고[공문: 기획예산처 예총 41120-1(’01.1.2)], 국무조정실은 기획예산처의 지침에 따라 “… 이행완료시까지 기관고유사업비 전액 배정유보”한다고 1월 12일 산하기관에 통보하였다. (국무규제 41120-38, ’01.1.12)

이상의 지침은 김대중 정권이 소위 ꡔ개혁과 예산․감사의 연계를 통한 강력한 개혁추진체계ꡕ를 확립하고, 더 나아가 해당 기관의 반발을 국민적 시각에서 무력화하기 위해 ꡔ점검평가단: 관변 시민단체ꡕ를 포함시켜 여론의 압박을 가하는 전략과 동시에, 감사원과 유기적 협조체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감사원 정기감사시 개혁부진사항을 감사대상에 포함시키고, 감사지적사항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점검평가단에서 재감사를 요구하는 형식으로 지속적인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표 3> 총리실 소속(연합이사회 체제) 출연(연) 예산배정 유보 현황    (단위 : 백만원)

구  분

합 계

1/4

2/4

3/4

4/4

과기노조 : 17개 기관

105,236

36,833

28,414

21,048

18,941

출연(연) : 44개 기관

141,147

48,700

37,970

28,579

25,898

※출처: 기획예산처(2001.2.10.)



이러한 정부의 초법적 예산 수시배정은 과기노조의 대응으로 인해 현재 유보된 상태이다. 과기노조는 기획예산처의 ‘예산권 남용, 정출연법 위반, 국회가 의결한 예산배정을 집행하지 않는 월권행위, 노사관계 개입’ 등의 초법적 방침의 부당성과 이를 철회하여 줄 것을 요구하는 한편, 기획예산처 장관을 상대로 ‘예산배정유보 취소 소송(3월 20일)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과 과기노조 산하 기관들의 공동 대응을 통해 현재 6월까지의 예산이 풀린 상황이다. 그러나 예산수시배정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25일 과기부 장관은 예산 수시배정 대상 기관장들에게 ‘6월말까지 정부의 경영혁신 사항을 관철시키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게 하였다. 물론 과기노조의 대국회, 대언론을 통한 기획예산처의 압박과 공동전선의 유지, 법적 대응 등으로 더 이상 예산을 유보할 수 없게 된 기획예산처가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명분이기는 하지만, 이는 정부의 정부출연(연) 구조조정 방침이 철회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다가오는 6월말의 정세는 노동조합에 있어서도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다. 앞으로 해당 각 기관에서는 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정부지침=무조건 수용=다른 형태로 보존”하겠다는 여론전을 통해 “노조는 실리를 챙겨라, 노조 때문에 연구 못한다”는 등의 회유와 협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본질

소속 연구회가 정한 4대 개악안 마무리 시한(2월 17일)을 준수하기 위해 일부 기관의 경영진들의 일방적․불법적 규정개정 시도들이 최근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은 ‘노사합의 사항’을 스스로 파기하는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규정개정을 시도하였으며, 노조 가입율을 50% 이하로 떨어뜨리기 위해 노조탈퇴 공작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기관의 일방적 규정개정이 아무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진행하였으며, 노동조합 또한 규정개정 과정에서 기관의 이런 움직임을 알고서도 물리적 대응을 통해 저지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난 3년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당 각 기관에서 경영진과 노조의 싸움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노사가 공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관측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규정개정을 통해 해당 이사회에 면피용으로 제출하고, 노조는 기관내의 싸움이 아닌 과기노조 차원의 공동대응과 ‘일방적 규정개정의 위법성’을 증명하기 위한 법적 대응을 통해 정부 지침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이는 현재 정출(연)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조정의 본질이 정출(연)의 고질적인 문제해결(낙하산 인사, 연구환경, 불필요한 경영, 정부의 지배개입 등)을 위하여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정출(연) 노동자들이 주장했던 경영혁신이 아닌, 획일적인 축소, 조정, 감축, 경쟁, 효율, 통합을 위한 신자유주의 질서로의 재편에 불과하다.


상시적 구조조정 전략

이른바 4대 개악안이 의도하는 바

연월차수당 축소, 대학생자녀 학자금지원 폐지 또는 융자 전환, 체력단련휴가 폐지, 호봉승급분 폐지 등 노동자들의 복리후생관련 4대 개안안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2000년 기관운영 평가항목 지표>의 60여개 항목은 단체협약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그 중 4개의 개악안을 ‘예산수시배정’과 감사원 감사를 통한 기관 평가를 통하여 우선 관철시키고, 이로부터 60여개에 이르는 노동조건, 복리후생에 관련된 개악안을 ‘상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이다. 하기에 2001년 4대 개악안을 둘러싼 노-정간의 대립은 단순한 복리후생 조항 몇 개를 둘러싼 대립이 아니라,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첫 출발임과 동시에 지난 3년여간 관철시킨 구조조정을 통한 연구현장 장악, 노조 무력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율혁신 체제 도입

이러한 정부의 의도는 지난 5월 11일 열렸던 제8차 정부혁신추진위에서 결정된 ‘2001년 출연기관 경영혁신방침(일명 자율혁신)’에서 그 의도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자율혁신’의 기본방향은 정부의 지침이 각 기관에 하방되는 것이 아닌, 각 기관이 자체 경영사항을 진단하여 경영혁신 사항을 제출하고 이행하도록 하는데 있다. 이 이행여부에 따라 차기년도의 예산이 배정되는 것은 물론이다. 즉 상시적인 구조조정 전략은 ‘예산과 감사’를 통한 정부차원의 관리와 함께 각 출연(연)이 ‘자기 검열’을 통해 ‘자기 통제’를 상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그 핵심이다.

<표 4> 정부출연기관 구조조정안 추진 결과(2001년 현재)

구조조정 항목

관련 정부지침

현황

비고

인력

?

조직정비

인력감축

- 98년 인건비?경상비 예산 총액 대비 2000년 인건비?경상비 예산 총액 15%(±5%) 수준 삭감

?16개 기관 대상 2천8백여명 인력감축.

?명예퇴직, 희망퇴직 실시→이후 정리해고

?정규직 하위직급, 행정인력, 여성, 고령 노동자 중심으로 실시됨.

 

퇴직금 제도

퇴직금누진제 폐지

* 단, 99년말까지 퇴직금 및 명예퇴직금제도를 개선한 기관은 3% 인센티브 가산 가능

?2000. 11. 현재 54개 대상 기관 모두 도입

 

인건비 등 복리

후생제도

인건비 절감

- 본 경영혁신 방안에 따른 2000년도 인력감축에 의한 삭감분을 제외한 후 삭감.

?1998년 임금동결, 삭감 단행

 

대학생자녀 학자금 제도 폐지

- 유치원 및 대학자녀학비보조 폐지 또는 융자전환 등

?예산수시배정 대상 기관 제외 도입

유보

정년 축소

- 공무원수준으로 정년 단축

?전 기관 정년단축(58세)

 

휴가제도 개선

- 연월차수당 축소

- 체력단련휴가 폐지

?예산수시배정 대상 기관 제외 도입

유보

외부위탁 등

시설부문 민영화

- 시설관리 민간위탁 확대

?해양연, 원자력연, 과기원, KIST 시설부문 용역화

 

산학연 협동연구 활성화

- 산?학?연 협동연구 활성화를 위한 위탁연구 실시

- 추진기간: 계속

- 용역과제 확대를 통한 인건비 절감

 

외부위탁

(아웃소싱) 활성화

- 외부위탁(아웃소싱) 활성화

항공, 자원, 생명, 전통, 표준, 에너지에

파견직 확대

 

연봉제 등

연봉제 실시

- 계약제, 연봉제 도입, 성과상여금 확대 추진

?2000.12. 현재 61개 대상 기관 모두 도입

 

계약제 실시

?2000.12. 현재 61개 대상 기관 모두 도입

 

평가제 실시

?평가제 모두 도입했으나 시행하고 있지 않음

 



5. 노동조합의 대응 - 쟁점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의 초기 대응

98년 4월 3일,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영혁신 추진 지침’이 발표되자, 인문사회계 정부출연(연) 노동조합인 전국연구전문노동조합(위원장 고형곤)과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 노동조합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위원장 이성우)와 상급단체인 전국공익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위원장 양경규)는 즉각 성명서8)를 내고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였다. 그 후 과기노조는 간부 야간농성, 조합원 총회 및 간담회, 각종 집회 등을 조직하여 투쟁역량을 결집하는 한편, 기획예산위원회와 관계기관을 대상으로 노동조합의 정책자료들을 제시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 경영혁신을 위한 공청회’에 참여하여 “연구현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갖고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한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태세가 되어 있으나, 구조조정의 주된 내용이 일방적인 정부의 방침에 맞추어 가는 것이라면 연구현장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과기․연전)노동조합은 ▷장기(5~10년) 계속지원 연구비 제도 확충  ▷기관장 직선제 ▷노동조합의 실질적인 경영참가 보장 ▷상향평가제 또는 상호평가제 ▷정책실명제 ▷정부출연연구기관 관련 특별법 제정 ▷이사회 제도의 획기적 개선 ▷상임감사제 폐지 ▷낙하산 인사의 중단 등 다양한 정책대안을 제시하였고, 연합이사회에 대한 연구기관 통폐합 권한 부여 금지, 상임감사제 폐지, 낙하산 인사의 중단, 연봉계약제의 졸속 도입 재고 등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측의 전향적인 답변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정부출연(연)의 구조조정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거짓약속’ 이었음이 드러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연기관 구조조정은 인력감축부터 시작되었다. 정부에서는 인력감축과 통폐합으로 3천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여론을 유포시켰다. 그때는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위기의식이 ‘한판하자’는 싸움으로 모을 수 있었다. 5월 28일 광화문 앞 집회에는 1,000여명의 조합원들이 모였고 6.30 집회도 대중적으로 조직되었다. 연전/과기 지부장단 연석회의룰 구성해 공동투쟁을 모색했으며, 공동으로 정부 공청회도 대응했다. 98년 4월부터 6월까지는 현장투쟁 중심이었다. 이후 기획예산처 4대 지침에 대응하여 대국회 투쟁이 중심이 되었다. 원래 정부의도는 98년까지 연봉제를 마무리하는 게 방침이었으나, 이를 지연시켰다. 2박 3일간의 간부 상경 투쟁, 이성우는 과기부 대전지부에 점거 단식투쟁을 동시에 진행시켰고, 결국 연봉제 도입 논의를 위한 연합이사회 회의를 무산시켜 99년으로 넘기게 된 것이다. 대중적인 집회와 조직력을 바탕으로한 간부들의 점거 단식 농성까지 했는데도 연봉제를 지연시켰을 뿐이다.”(이성우 전과기노조 위원장)



희망퇴직에 대한 논란

“KIST의 경우 98년에 154명이 희망퇴직했고, 그 중 50% 이상이 조합원이었다.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하여 지부에서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 조합원들 내에서도 인원감축이 필요하다는 정서가 있었다. 당사자들은 위로금 받고 본인이 선택해서 ‘희망퇴직’했다. 강압적 구조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KIST 강용준 사무국장)


“건기연의 경우 98년부터 인원감출에 대한 준비를 했다. 결과적으로는 자발적 희망퇴직으로 되었다. 희망퇴직한 15명 중 13명이 조합원이었다. 내부(집행부)에서는 혼선이 엄청 많았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윗놈들을 짤라내자’, ‘아니다. 결과적으로 하위직만 날라갈거다.’ 이렇게 조합이 혼선이 있다보니 어정쩡하게 자발적 희망퇴직으로 갔다. 그리고 험악한 분위기에서 5명이 사직을 권고 당했고, 2명이 나갔다. 후에 야간농성을 진행했지만 조합이 실패한 싸움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합 간부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건기연 정성원 부지부장)


“지금도 그렇지만 작년에 연구원 상황이 어려웠다. 조합원들을 모아서 찬반투표를 통해 희망퇴직을 받아들였다. 권고사직과 같은 사측의 강요는 없었지만 조합이 결사 저지한 것은 아니었다.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조합이 무조건적으로 인력감축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으로 정년을 조합 스스로 55세까지 단축했다. 그 때까지는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시행했다.”(한식연 김인호 지부장)


(이상 과학기술현장 2호, 1999년, 좌담회 내용 중)


98년 당시 ‘희망퇴직’을 둘러싼 논란이 노동조합에서 있었다. 즉 ‘정리해고의 일환인가 아닌가’부터 ‘정리해고의 일환’ 이기는 하나 자발적 퇴직의 형태를 띠므로 강압적인 구조조정은 아니라는 논란이었다. 또한 ‘자발적’ 희망퇴직을 원하는 조합원들에 대한 판단이 쉽사리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전사회적으로 유포된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논리와 혁신이데올로기, 그리고 공공연하게 ‘살생부’가 나돌았던 상황에서 자발적 ‘희망퇴직’ 이란 하위직급, 여성, 기능직, 행정인력 중심의 비자발적 강제퇴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권고사직’여부만을 소극적으로 대응했을 뿐, 희망퇴직을 묵인하거나, 아니며 다른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즉,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윗놈들을 짤라낼 수 있다’는 순진한 기대치가 있었고, ‘살생부 작성’에 협조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짜르는 것에 대하여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암묵적 협조자’의 역할을 하였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최소화했느냐, 아니냐’ ‘자발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정리해고’ 그 자체를 노동조합에서 수용했다는 것에 있다.

 

4․19 지하철 파업의 실패가 원인이었다?

“1999년 연봉제 등의 기획예산처 4대 지침이 전면화되었다. 초기에는 ‘연봉제 반대, 저지’의 완강한 입장을 유지하다가 ‘교섭국면으로 전환, 교섭으로 푼다’는 기조로 전환했다. 4․19 연맹 총파업 때 과기노조는 4․21(과학의 날) 하루 파업을 대학로에서 진행하였다. 그리고 연맹 차원의 투쟁에 적극 결합하였다. 연맹의 슬로건처럼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꾸는 투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하철 파업이 패배하면서 과기노조는 4월말 지부별 교섭국면으로 전환하였다. 연봉제에 대한 몇 가지 원칙(개별계약 금지, 차등폭 최소화)은 확인하고서.”(이성우 전 과기노조 위원장)


4월 말 지부별 교섭으로 전환하면서 4대 지침에 대하여 과기노조는 지부별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투쟁의 해산을 의미한다. 즉 각 지부는 지부로 고립된 채 기관 경영진들과 정부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과기노조 본부는 지부별로 진행되고 있는 대응에 대하여 어떠한 개입도 불가능한 조건이 되어버렸다. 즉 과기노조로의 공동 대응이 허물어지면서 지부 간부들은 각 기관의 ‘경영논리’, ‘우리 연구원부터 살고 보자’는 식의 기관 이기주의에 적극적으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한 지부가 4대 지침을 받아들인 순간 공동 전선은 쉽게 허물어졌다.


“최악의 조건이라 하더라도 지부 집행부들의 생각이 ‘30개 지부가 모두 꼴찌를 하자’면 모두가 함께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지부장들은 ‘우리 연구소 예산 깎이면 본부에서 책임질거냐’ 이런 식으로 따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예산 편성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각 기관 예산 차이가 5~6%정도의 미미한 차이였고, 20% 예산 삭감은 결국 협박임이 밝혀졌다.”(과학기술현장 2호, 좌담회 내용 중)


과기노조의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지하철 파업의 실패’가 지적되었다. 이는 연맹 차원의 ‘정책기조를 바꾸자’는 기조하에 진행된 대정부 전선의 패배로 인해 과기노조 역시도 무력화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주장과 지하철 같은 대규모 사업장 노조의 파업에 동원되면서 과기노조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교섭전술을 전개하지 못했다는 피해의식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패배의식과 피해의식이 4월투쟁을 전후하여 정부출연(연) 차원의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쟁전술을 배치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지부별 교섭으로 전환해 직권조인 등 조직내 분열을 야기하였으며, 4대 지침에 대해 노동조합이 무력하게 대응하는 과정에서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는 박탈감과 좌절감이 팽배하게 되었다.


“(본부가) 지부의 싸움으로 만들어 논 것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지부싸움으로 전환되면서 다 날라갔다. 공공이사회 소속 지부들 중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합의했다. 연봉제, 계약제는 임금과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는 등 정부 지침에 관련해서는 최대한 껍데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조합의 역사성이다. 89년에 계약제 철폐투쟁을 통해 건설되었고, 당시 조합을 중심으로 투쟁해 결국 계약제를 폐지시켰다. 그런데 10년만에 계약제를 부활시켰다. 노동조합으로서는 이만한 수모가 없는 것이다.”(K지부 조합원)


노동조합의 경영 참가를 통해 구조조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해

“99년 수도권 6개지부의 공동교섭은 공세적이었다. 처음으로 ‘공동의 단체협약안’을 관철시키는 과정이었고, 임금 인상 등 몇 가지 성과가 있었다. 또한 지부차원의 적극적인 투쟁배치로 공동교섭이 힘을 받을 수 있었다.”


공세적이라고 했는데, 무엇이 공세적인가? 99년 공동교섭은 ‘공동교섭의 틀 마련’과 ‘공동협약안’을 중심으로 한 투쟁방식에 대한 성과는 있었으나, 계약제․연봉제․평가제․정년축소․퇴직금누진제 폐지 등에 대하여 다시 한번 철회시키고자 하는 공동대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5대 사항에 대한 노조측의 ‘폐지’ 항목은 있었으나, 노동조합은 이것을 미끼(?)로 임금인상, 복리후생조항 강화, 노조 재정자립기금 확보, 인사위원회 노사 동수 참여 등 경제적 요구와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주된 목표로 설정하지 않았는가?


“경영참가에 대한 입장은 상대적으로 봐야한다. 97~98년에는 방어적인 의미가 컸고, 99년에는 ‘구조조정의 저지선’으로서의 의미로서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그래서 몇 개 지부에서 ‘구조조정시 노사합의’ 조항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저지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과기노조 전 임원)


“일반 기업과는 달리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노사가 없다. 정부가 사용자이다. 기관 내부에서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로 인해 효과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과기노조의 경영참가는 아주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조합원들에게 유리한 연구활동의 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경영참가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의 압력을 기관안에서 일부 막아낼 수 있다. 또한 연구현장의 요구를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개선할 수 있다.”(과기노조 현 임원 인터뷰 내용 중)


과기노조에서 노동조합의 경영참가에 대한 요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낙하산 인사, 비합리적․비전문적 경영, 정부의 지배개입 등에 대하여 일찍이 정부출연(연) 노동자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으며,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의 요구 역시 출연(연) 노동조합의 결성원인의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오로지 정부 고위직 공무원들의 퇴임 후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설립되었거나, 해당 부처간의 이권다툼으로 통폐합, 분할되는 정출(연)이 존재하기에 ‘경영혁신’의 요구는 일부 조합간부들만의 요구는 아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하 구조조정 과정에서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투쟁이 폐기되는 근거로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다’ 거나, ‘정부의 구조조정에서 ‘개혁’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제기되는 경영참가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즉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일환=노동조합의 경영참가=경영지분의 확보=경영혁신의 구상은 구조조정안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자율혁신’ 체제하에서는 더더욱 극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경영참여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범위를 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노사동수’, ‘노사합의’를 관철시키는 것은 자칫 정부의 ‘자율혁신’전략에 철저하게 포섭되는 지름길이다.

향후 노동조합의 투쟁 전망

“4월까지는 연월차수당 축소, 대학생자녀 학자금 지원 폐지 등 4대 개악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조합원들의 인식이 많이 부족했다. ‘연봉제, 계약제 다 내주고 나서, 뭐 그 까짓 거 가지고 …’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조합원 선전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설득, 법정 투쟁의 성과로 지노위에서 ‘불법’ 판정을 받으면서 조합원들이 인식이 좋아졌다. 그러나 6월말 각 기관장들의 압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몇 개 지부에서 흔들릴 수 있다. 지금은 본부차원에서 교섭전술에 대한 방침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법은 사용자들의 것이다. 현 정세속에서 법정싸움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과기노조의 힘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대국회 여론전이나 법정대응은 주된 전술이 아닌 부차적인 것이어야 한다.”


“3월 28일 광화문 집회의 즉자적인 설정이나, 4월 21일 투쟁도 아닌, 문화제도 아닌 대중 동원식의 ‘과학기술노동자 총력 결의대회’는 현시기 투쟁 주체들이 투쟁에 대한 전망이 없다는 것을 반영한다. 또한 법정 투쟁의 승리를 과도하게 인식한 나머지 6월말로 다가오는 기관장들의 ‘각서’ 시한에 대하여 안일하게 사고하는 경향도 있다. 법정투쟁은 주체가 간부들이다. 즉 조합원 전체가 싸우는 전술은 아니다. 물론 현재 조합원들의 정서는 ‘투쟁은 안된다’는 무력감이 팽배하다. 그렇다면 교섭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기획예산처는 과기노조에 ‘한번 봐줬다’는 분위기다. 현재 이 상태로 시간을 더 끌면 6월 말은 우리에게 99년의 악몽을 되살릴 수 있을만큼 불리해진다. 즉각적인 투쟁으로 조합원 조직이 불가능하다면 교섭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을 조직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3월 28일의 헤프닝을 보며 올해 투쟁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지금 현재 법정 투쟁의 승리는 이번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지난 시기에도 그러한 성과는 있었지만 결국 현장에는 정부 지침이 다 관철되었다.”(과기노조 간부들 인터뷰 정리)


4년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출(연)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보다도 “싸워봤자 안된다”, “과기노조로 뭉쳐봤자 대안이 있는가”라는 패배감과 극도의 심리적 위축이다. 지금 지도부가 투쟁하자고 해도, 조합원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 올해 투쟁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99년처럼 기관 이기주의에 빠져 ‘먼저 합의해’ 준다 한들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또한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즉 지금의 ‘공동대응’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강고한 조직적 대응’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절박함의 공유이다. 이러한 가운데 향후 과기노조는 6월 말을 기점으로 교섭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99년의 고립분산적 교섭으로 또 다시 패배하느냐, 아니면 패배감에 젖어 있는 조합원 대중을 조직하고 투쟁하게 하는 교섭전술을 활용하느냐 기로에 놓여있다.



[참고] 구조조정이후 정출(연) 노동자들의 상태

현장에서 1

구조조정이 가져온 변화들

연구원 복지정책의 후퇴(퇴직금, 휴가, 정년..), 개별계약제, 평가제, 성과급제 도입 … 연구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부분은 “자괴감”일 것 같다.  ‘잘나가던 내가(?) 어쩌다 발을 잘못 들여놓아 정출연에 들어왔을까?’ 아니 ‘어쩌다 이 나라에서 이공계를 택했을까?’ 하는 부분일 것이다. 사람들은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더 늦기 전에 다른 방면을 알아보라고 … 당신은 아직 젊고 능력이 있으니까 …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


갖가지 사회적 이슈(소위 말하는 경.영.혁.신.)가 있을 때 정부가 가장 쉽게 접근하는 부분이 과학기술계라는 사실, 생산성/경쟁력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모든 부분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같은 연구소 내에서도 단지 그들이 하는 연구부문이 정부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여유로운(?) 연구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연말평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 아니 급여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 동분서주 보따리 장사에 여념이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연구가 의미있는가, 올바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이 건수를 어떻게 사용해야 예산을 따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모든 생각의 중심에는 돈이, 그리고 그 돈을 주무르는 과기처/기획예산처/이사회가 자리잡고 있다. ‘학문에 대한 열정, 지적 호기심, 자부심 …’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직 철이 덜 들었군’하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사람들에게 연구원은 그저 현재 생활을 어떻게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껀수(연초에 계약한 내용)를 채우기 위해 필요없는 논문 발표하기, 의미없는 특허/프로그램 출원하기, 기술이전/중소기업 지원을 채우기 위해 그냥 전수해도 되는 내용을 굳이 서류절차를 거치게 하기.


효율적인 그룹운영은 비정규직으로부터 …

사람은 필요한데 … 현재 프로젝트로는 현재 인원 인건비 마련도 쉽지 않고 … 혹, 인건비가 된다해도 정규직 T/O는 정부 관리항목이라니 … 최고의 대안은 값싸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쉽게 짜를 수 있는 비정규직!  비정규직을 많이 운영하는 그룹이 연구소 경영혁신의 모범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 소위 잘나가는 그룹은 정규직 연구원은 프로젝트 관리에 전념하고, 실제 연구는 비정규직 및 외부 수탁으로 해결!


과기노조의 법적 대응?

이 사회에서 ‘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권력에 얽매어 있는지 다들 알고 있다. 그래서 법적 대응이라고 말하면 … 그저 한번 눈길주고 지나간다 … ‘별 일 없이 진행된다는 이야기군’하고 생각하며. 그리고 … 그 복잡한 소송내용을 이해할 만큼 사람들의 인내심이 깊지도 않다(H연구원 조합원).



현장에서 2

일단, 우리 연구원은 수탁연구 과제수가 엄청나게 증가하였습니다. 96년에 126개이던 수탁과제가 2000년에는 275개로 불과 4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연구원의 정규직원 수는 200명 남짓으로 거의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평균적으로 정규직 1인이 1개 과제에도 제대로 투입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제대로 된 연구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제가 10년 전에 연구원에 처음 왔을 때 연구원은 연구하는 곳으로 알았고 그때에는 그래도 연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연구가 일로 바뀌었습니다. 또 어느 순간부터 연구원에서 하는 일이 용역회사의 일과 큰 차이가 없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연구원의 경영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은 얘기를 합니다.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래야 평가를 잘 받는다구요. 누군들 논문을 쓰기 싫어서 쓰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소위 연구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논문을 쓰고 그것을 자기 업적으로 내세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논문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을만큼 돈 버는 일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고 돈벌이의 양으로 부서를 평가하고, 그룹을 평가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앞으로 개인별로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그 평가결과를 이용해서 연말에 인센티브라는 것을 주면서 더 열심히 일해서 내년에는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게 노력하라고 합니다. MBO라는 것을 만들어서 돈벌이 할당량을 정해줍니다. MBO를 달성하지 못하면 제 밥벌이도 못하는 죄인이 되어 눈치를 봐야 하고 MBO를 초과달성하면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줍니다.


연구원은 그렇게 돈벌이로 내몰고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연구의 양적인 면이나 수탁수입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양적인 팽창 뒤에 숨어있는 우리의 수준은 어떠한가요? 벌써 오래 전 외부로부터 연구의 수준에 대해 의심받기 시작하였고 공무원들에게는 공무원들의 정책 뒷받침이나 해주는 하부기관 정도로 밖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내부적으로 어떤가요? 2000년의 정규직은 221명이고 위촉직이 274명입니다. 위촉직 수가 정규직보다 훨씬 많은 수입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될 수 없는 조직이 우리는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서간 그룹간에도 위화감이 쌓여만 갑니다. 돈많이 버는 부서, 제 밥벌이도 못해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는 부서. 정규직과 정규직 보다 더 많은 위촉직 간의 벽. 지금과 같은 외부, 내부의 상황으로는 연구원은 용역회사 수준을 벗어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장기적으로 용역회사의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K연구원 조합원).


노동강도 강화, 노동통제 강화, 연구 질 하락, 비정규직 증가

정부출연(연) 구조조정 4년차, 연구자들은 스스로를 ‘보따리 장수’라 비하하며, 연구현장은 그야말로 황폐해졌다. MBO를 통해 개인 목표 달성치를 정해주고, 그것에 따라 개인 성과급에 차등을 준다. 개인간의 경쟁력이 격화되어 과제를 한꺼번에 3~4개를 수행하는 것은 보통이다. 이러다 보니 연구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고, 노동강도의 강화에 대한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기관은 노동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심리적인 고용불안 상태’는 조합원들을 위축시키기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연구성과의 외부유출을 금지한다는 명목 하에 네트워크 통제, 복사물․디스켓 유출 금지, 유해사이트 폐쇄, 주말 기관출입 사전 신고제 등 상시적인 통제가 강화되었다(전자통신연구원). 비정규직의 증가도 투렷한 특징중의 하나이다. 위촉직, 학연생, 일용직, 아르바이트, 파견직, 인턴 등의 다양한 비정규직이 4년새 크게 증가하였다.(과학기술현장 5호, 2000년 겨울호에 게재된 과기노조 비정규직 현황을 살펴보면 설문에 응답한 과기노조 소속 25개 지부, 총 인원 11,434명 중 3,870여명이 비정규직임을 응답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노동조합 차원에서 현장통제에 대한 대응은커녕 구체적인 실사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구조조정 투쟁을 현장으로부터 촉발시키기 위해서는 출연(연)에 행해지고 있는 노동조건의 변화를 분석하여, 구체적인 대응을 수립해야 한다. 그로부터 다시 노동조합과 이반되어 있는 조합원들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두 가지 사실 확인을 하고 싶다. <표 1> 비고 둘째란에 “출연(연) 현장붕괴 시작”이라고 씌어있다. 87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서 모든 부문에서 노조가 결성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시기 노조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이상할 게 별로 없는데, 어떻게 현장붕괴 시작과 연결되는가. “전체 또는 일부 기능의 민영화 또는 민간위탁이 무엇과 관련되는가.” 경영참가의 주된 내용이 무엇인지, 민간위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답: 출연연구기관 노조가 87, 88, 89년 기점으로 생겨났다. 90년대 초반에 91년도에 정부출연기관의 ‘기능 재정립 및 운영의 효율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연구가 보고서를 쓰려면 실험, 시험을 해야하는데, 시험 기능에 대한 용역화, 외주하청화, 파견직 노동자를 도입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문: 지식노동자의 경우에도 산업현장, 사무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임금문제와 노동조건, 고용 등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기술자라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로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높아졌을 것이다. 87년 이후 적어도 과학기술자라면 연구성과를 사회화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있지 않았나? 연구과제를 연구원 스스로 결정하는 것과 경영참가와 결부된 논의가 무엇이 있었나?


답: 연구회는 실질적으로 기획능력이나 집행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기획예산처가 장악하고 있다. 각 연구회는 기획예산처의 지침에 철저히 복무한다. 경영참가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기관에서 결정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노조의 경영참가가 실제적으로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오히려 대정부 투쟁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의식에 대해서는 과기노조 설립 이후에 대해 고민해왔지만 실질적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본다. 그것은 연구의 자율성 보장, 정부 정책의 보조자를 지양하겠다는 소망이자 동시에 극복하지 못 하는 한계이다. 원자력 연구소에서 91년 방사능 유출에 대해 확인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했다. 건기연 지부에서는 동강의 댐건설에 대해서도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 제고’에 대한 논문을 썼어야 하는 상황이다. 경영참여로 가능하다기보다는 대정부 차원에서 과기노조가 싸워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문: 현 임원 인터뷰 내용 중에 “조합원에게 유리한 연구활동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는데, 연구과제를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경영참가 논란은 혹시 없었는가.


답: 논란이 없었다. 연구활동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경영참가의 차원이 아니라 정부와의 투쟁의 필요성에서 나온 요구이다. 정부출연기관의 첫 번째 원칙은 공공성이다.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만들자는 것으로, 과기노조는 정책 노조를 구현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문: 동강댐과 관련해서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문을 적당히 써서 내라고 한다면, 반대하는 것을 쓰겠다는 움직임이 있는가.


답: ꡔ녹색평론ꡕ 등에 개인적으로 기고하는 이도 있지만, 이런 논문을 쓸 돈을 주지 않는다.


문: 출연기관이 국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를 내부적으로 풀 수 없다. 정부와 연관된다는 제한 하에서 연구의 자율성을 확인받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연 그 투쟁의 고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답: 외국의 경우에는 정부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율성이 보장된다. 주제에 관해서 다양하게 열린다. 과학기술현장에서 사측에서 강제된 문제를 제기하는 장으로 만들자는 야심이 있었으나 아직 자발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5공 시절에 공중전화기 50원이면 40원 쓰면 10원을 먹지 못하게 막는 것에 대한 특허를 냈었으나 안기부에서 몰수해 갔다. 그것이 전두환의 정치자금으로 흘러간 것이다. 현장에서 아주 소수이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갖는 조합원들이 있다. 그러한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이다. 과학기술시민운동단체와 연계작업이 필요하다.


문: 과학기술 노동자들이 일상 속에서 과연 노동자적 자각을 하고 있는가. 특히 공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노자간의 대립을 느끼고, 파업과 그에 준하는 투쟁을 통해서 자각을 해 나가지 못 하는 특성이 있었다. 또한 사회적 책임이 사회적 지위로 여겨질 수 있다. 고용의 불안과 과도한 노동강도의 문제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그것에 대한 각성이 있었을까. 그러한 상황에서만 연구과제의 자율성의 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던 것 같다. 단지 사회적 책임이라는 차원에서만 접근했다면 형식적인 차원에만 그쳤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한 편에서는 연구자, 또 한편에서는 공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는 굴레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 지금 얘기한 것과 관련해서 유럽에서는 과학자들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사기업의 용병화하고 있다는 자체 평가. 87년 이후 노동자의 저항에 대해서 공장자동화, 사무자동화로 자본주의가 적응해가고,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은 사회적 역할이 커진다. 이에 대한 내부의 토론이 있는가


답: 우리 나라의 정부출연기관의 상황과는 약간 다르다고 본다. 그 정도의 문제제기를 할만큼 위상이 높지 않다. 실질적으로 민간기업에 들어가는 연구투자액보다 훨씬 적은 연구비용이 지출된다. 대학과 기업의 연구기관의 결과가 회자되지 정부출연기관의 결과가 이슈화되는 경우가 적다고 본다. 자신의 연구과제가 사회적으로 권력화되는 것에 대한 경험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안정적 연구 조건. 노동조건, 예산 등에 있어서 장기적인 연구과제 수행 등 소박한 요구에 그치고 있다.


문: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서 본다면 한국 자본주의는 반주변부이다.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선진국과 경쟁상대로 할 수 없다. 세계자본주의 위상에 맞는 연구과제를 설정할 수밖에 없을 것. 연구과제의 구체적 내용이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해서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통해 민중복지를 지향한다는 관점에 대한 논의가 있는가.


답: 거의 없다고 본다.


문: 도대체 정부에서 출연연구기관 구조조정을 왜 하는지, 그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의도들을 정리해주면 좋겠다. 어떠한 맥락에서 구조조정이 위치지워지는가. 또, 전문가, 화이트칼라의 노동자로서, 과학기술자로서의 정체성이 융합되어서 활동이 진행되어야 할텐데, 그 와중에서 내부적 논란이 발생할 것 같다. 셋째로 연구전문기술노조와 전국과학기술노조가 공공부문에 속해 있고, 같이 활동을 했는데 연대와 공조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답: 본질과 관련해서는 출연연구기관은 박정희 정권이 야심차게 설립, 육성해왔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민영화, 통폐합 논의가 역대 정권에서 계속 제기되었다. 대통령 선거의 공약 사항. 민영화를 하지 못 한다면 출연 연구소 자체가 경제성이 떨어진다. 기초 기술 중심의 순수 연구도 있다. 출연연을 자립화시켜서 정부가 지원하지 않아도 잘 되어갈 수 있도록 사기업화하는 것이 목표다.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이 지금 당장은 예산을 줄이는 것도 있지만 실제적으로 과제 중심, 팀제, 소사장제 중심으로 편제될 것이다. 정부 예산이 20% 줄어들었다. 나머지 부분은 출연연구기관이 민간 부문과 경쟁을 해서 과제를 따오는 것으로 메꾸고 있다.

노동자, 과학기술자에 대한 논의를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과학기술자라는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라는 측면에서 과학기술자로서의 사회적 지위 등을 담보해야 하는 것처럼 과기노조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정책노조라는 구상으로 나타난다. 노동자로서 과학기술자를 바라보는 투쟁을 하고 있다. 지금 시기에는 정책노조에 대해서 재검토하는 과정 속에서 폐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연전을 조사하지 못 한 것은 저의 게으름 탓이라고 반성한다. 통합에 대한 논의는 연전노조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과기노조가 대공장이라는 유세를 떨다보니까 통합제의에 대해서 연전만큼 적극적이지 못 하다. 2000년 들어와서는 시기적 공조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공동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문: 연맹의 분과 형태로 존재하지만 기관들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내용 등이 고찰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대응과 전망이 나올 수 있지 않는가.

또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도 설명이 다소 부족한 것 같다. 서울대 등에서 기초 분야를 홀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사회간접자본의 차원에서 기관을 설립하였는데, 요새 와서는 세계화의 차원에서 일국적으로 그것을 싸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그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고 본다. 만약에 기초과학 분야 등을 싸안고 있으면 정부지출인데,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기조이다. 대학 연구기관, 기업 연구기관이 더욱 발달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 총체적인 시각 속에서 연구기관들에 대한 슬림화를 진행하는 것 같다. 그에 대한 대응은 기관별, 과기노조 차원에서 될 것이 아니라 공공연맹이나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연관되어 있어서 펼쳐놓고 고민을 해야한다고 본다. 이러한 자료는 앞으로의 대응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


답: 본질과 관련해서는 핵심적인 논거가 연구생산성이다. 연구의 생산성이 투여된 재원만큼의 효과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서 기초기술분야는 민간대학, 응용기술분야는 벤처나 민간기업으로 이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대응의 지점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공공성은 정부출연기관의 공공성은 공적으로 환원되는 공공성이 아니라 정부의 보조자로서의 공공성이었기 때문에 현재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측면도 있다. 주로 공기업 구조조정의 논리가 출연연구기관에 그대로 적용된다. 적고, 노동조합도 힘이 약하니까 다른 부문으로 확장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집단이라는 인식은 87년 투쟁과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에 의해서 깨졌다고 본다. 투쟁이 제대로 되지 못 한 것은 전문가집단이라는 인식보다는 투쟁 과정의 무력화와 패배주의로 인한 것이라고 본다.


문: 전문가집단이라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가 없어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그 전문 능력으로 노동자 계급의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 노조라는 지향이 왜 폐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답: 지금 당면한 현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지점을 포착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과학기술의 특성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편향을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정책노조가 정부에 공청회 열고 청원하고 입법 투쟁을 하는 수준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출연연구기관 종사자라는 정체성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노조의 함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 80년대 말 노조 설립 이후 그 투쟁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교육을 해왔는지,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는가. 여러 가지 방법들의 투쟁들이 있었는지 등등에 대해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 왔는가? 그런 것이 있었는지, 없었으면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답: 참과학정책연구소 시도가 딱 한번 있었는데, 그 뒤로 없었다. 연구와 관련한 써클 활동 등이 없는데 왜 없을까? 연구현장이 그마저도 할 수 없이 황폐화되어 있는 상황이고 그것을 먼저 극복해 나가야 하는 지점에 있다. 정확한 현장진단과 대응을 마련해 나가지 않으면, “정책노조”나 “계급적 입장”이나 모두 다 뜨는 이야기일 뿐이다.


문: 현장이 황폐화되어 있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는데, 대응을 위한 주체형성의 문제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그 바탕에서 연구현장의 여러 현안문제들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지식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노동의 특수성, 소외 양태에 대한 분석, 자기 노동의 결과인 연구생산물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는 상태이다. 그 상황들을 전체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한 대응의 주체는 형성되지 않는다. 투쟁의 동력이 만들어지기 위해, 주체형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사업이 무엇인가가 핵심이다.


답: 전문가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성을 경계해야 한다.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현재의 전문성 내지 전문가주의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폐해와 문제점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 87년 이후 상대적으로 고양되는 시기에 과기노조 같은 경우는 노조설립이 상대적으로 쉽게 된 과정에서, 설립 당시에는 과학기술자로서 뭔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오히려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런데 정부가 홀대하는 과정이 진행되었고, 전문가성이라는 것은 오히려 희석화되는 과정이 있었다. 현실은 거꾸로 진행되어 온 것이다.


답: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혹은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정책이 일반화되어온 과정에서 그 종사자들의 노동조건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과학기술 노동자로서 내부적인 주체형성의 과정이 있어야겠다. 올해는 주되게 입법청원투쟁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현장 조합원들이 투쟁의 주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장의 조합원들이 투쟁의 주체로 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 간부들이 투쟁을 조직하려하고 98, 99년 과기노조에서 총파업을 준비했었다. 간부들이 투쟁을 조직하는데 겪는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어려움이 뭔지 궁금하다.


답: 어려움을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 지 어렵다. 현장에 대한 접촉이 전혀 없는 상황에까지 치닫고 있다. 실질적으로 조합활동을 하고 있는 전임자들로 보았을 때 현장과 괴리되어 있다. 현장에 대한 조직화가 도지 못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래로부터 요구되는 바와 위로부터 의식적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서로 제대로 말하지 못 하고 있다. 현재 분노의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접근하지 못 한다는 문제이다. 과기노조 스스로를 바라보는 상이 각각 다르다. 이것은 출발 당시부터 다양한 시각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87년 상황에 의한 무임승차라는 측면에 동의한다. 노동조합 구성원들의 속내를 보면 노조를 만들자고 주도한 사람들은 연구원이었으나, 노조에 포함되어 있었던 사람들은 기능직과 행정직이 다수이다. 그런 조건에서 그들이 실질적으로 바라보았던 노조는 생존권 쟁취를 위한 것이다. 대중적인 조직화, 투쟁이 만들어졌던 싸움은 생존권의 문제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그런 면에서 전문성의 문제가 재고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엄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문: 노조의 간부들은 다수가 연구원들인가?


답: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직, 기능직 조합원들이 지부장은 연구원에서 나와야 한다고 본다.


문: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 노조의 이질적 노동의 성격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답: 두 가지 다 있다고 생각한다. 정책노조는 연구직에서 담당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연구직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노동조합의 업무의 영역을 스스로 구분하고 있다. 다른 이유에 대해서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다.


문: 고용불안을 어떻게 느끼냐의 차원에서 연구자들과 행정, 기능직이 느끼는 고용불안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답: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이 더 크다고 본다. 그 비정규직의 대부분이 연구직이다.


* 이 글은 지난 6월 9일 있었던 제1차 연구발표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1) 1989년에 발행된 ꡔ사무직․전문․기술직 노동운동ꡕ, 민주화운동직장청년회(준비위), 백산서당, ꡔ사무직 노동운동이란 무엇인가ꡕ 중 일부에 연구직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한 글이 짧막하게 실려있음.


2) 미국, 일본, 유럽 등 외국의 경우 국책연구소가 있으나, 정부 내에 연구소를 직접 설치하여 국가기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종사자의 신분도 공무원으로 되어있다(과기노조, 정책활동보고서, 이병민).


3) 과기노조, 1994.12.16., 「또다시 고개든 출연(연)의 통폐합․민영화 논의’에 대한 우리의 입장」.


4) 과기노조, 1996.2.8., 「올바른 과학기술정책을 국민의 힘으로 만듭시다」.


5) 과기노조, 2001. 3. 10. 「2001년 상반기 확대간부 수련회」자료집 중.


6) 이성우, 1998, 「구조조정 실태와 노동조합의 대응: 정부출연연구기관 중심으로」, ꡔ노동사회ꡕ 통권 23호, 1998.6.


7)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정부의 강압적인 구조조정의 시작은 연구현장에서는 ‘인력감축’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희망퇴직’, ‘명예퇴직’이었다. 소위 ‘살생부’가 나돌면서 조합원들은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렸으며, 이러한 상황하에서 진행된 것이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는 강제퇴직이었다. 현재 추정된 바로는 2천 8백여명의 노동자(과기노조 소속 기관)가 이 때 집중적으로 퇴출당하였다.


8) 1998.4.8. ‘출연(연) 경영 혁신 추진지침’에 대한 우리의 주장(1)’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공공부문 관련 노동조합을 망라한 ‘공공부문 고조조정 및 민영화 공동대책위원회’의 명의로 발표하였다.


2001-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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