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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반동 내각의 등장과 노동자 인민의 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68호
다케이 데루오

국/제/노/동


고이즈미 반동 내각의 등장과 노동자 인민의 과제*

인민의 위기를 협동의 기회로, 통일전선의 형성과 전위 기능의 재건을 지향하자1)



다케이 데루오(武井昭夫)

활동가집단 ‘사상운동’ 대표





매스컴의 여론 조작과 고이즈미 내각의 등장

최근의 고이즈미(小泉) 정권의 등장에 이르는 정치상황과 과제에 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자민당 측은 장기간 계속된 불황 하에서 독점 구제, 즉 인민 희생의 ‘경제구조개혁’에 착수하려고 함으로써 인민의 반발을 사서 지난 번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배를 당하고, 하시모토(橋本) 정권은 와해되었다. 이후 오부치(小淵)․모리(森)의 불황대책도, 당연한 일이지만, 성과가 나지 않고, 게다가 모리의 무능과 노골적인 반동적 언사는 자공보(自民․公明․保守 연립) 정권의 지지율을 10% 이하라고 하는 사상 최저의 수치로 낮추는 상황을 낳았다. 그러나 이 결과도 투쟁 속에서의 인민의 성장에 의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랜 불황에 대한 인민의 싫증과 그에 편승한 매스컴의 여론 유도였던 것이 문제다.

인민 측의 이러한 사상적 약점은 다음 국면에서 곧 드러났다. 즉, 지배체제 측은 만만치 않게도 이 정부의 위기를 역용, 이번엔 이 매스컴을 활용하여 고이즈미를 ‘혁신’의 영웅으로서 받들어 올리는 연출을 함으로써 일거에 신내각의 지지율을 이 또한 사상 초유인 80~90%대라고 하는 고율로까지 밀어 올린 것이다. 일단 그들의 위기 역전책은 성공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매스컴의 여론 유도도 경지에 달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반복해서 지적해온 것처럼 노동자 인민 측이 스스로를 계급적 투쟁 속에서 사상적으로 단련하는 것을 태만히 하는 한, 계급적 역관계에서의 전체적인 후퇴를 계속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고이즈미 수상 출현이라는 이번 드라마는 이러한 교훈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현상면에서 말하자면, 거슬러올라가서 아오시마(靑島) 도쿄도지사(東京都知事)나 요코야마(橫山) 오사카부지사(大阪府知事)가 당선되었을 때 매스컴은 이를 무당파(無黨派) 유권자들의 승리인 듯이 논평했는데, 우리는 이를 새로운 형태의 포퓰리즘(민중주의) 현상이라고 규정하고, 향후 이에 의한 자본의 위기 타개책, 매스컴 중심의 새로운 형태의 파쇼체제 만들기가 진행돼갈 위험을 지적하면서 경계를 호소했다. 이제는 이것이 지난번의 이시하라(石原) 도쿄도지사의 등장, 그리고 이번의 고이즈미 내각 붐에 의해서 더욱더 규모를 확대해 왔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보산업의 새로운 성과를 활용하여 지금부터는 과거와 같은 형태의 매스컴 지배만이 아니라 더욱 다양한 장치를 동원한 모략을 포함한, 근로인민에 대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지배가 교묘히 전개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처해 있다.



무당파층의 증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당파층의 증대를, 이른바 ‘좌익’ 세력이 사람들도 포함해서, 무언가 보수정치의 55년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으로서 이를 기쁜 일인 듯이 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는 반체제 측이 자본주의체제에 대해서 체계적인 투쟁 프로그램을 제기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결국 일본의 근로자 인민이 전위(前衛)를 상실하여 체제 변혁의 정치적 기본축을 못보고 있는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거기에는 확실히 기성정당에 대한 대중적인 불신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태반은 그것을 대신할 상황 타개의 적극적․능동적 실천지침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흐리멍덩하고 따분한 정치적 허무주의가 떠돌고 있고, 나아가서 그 바깥쪽에는 팽배한 정치적 무관심층조차 괴어 있다. 또한 이 웅덩이는 때때로 매스컴이 기름을 부어 방화할 때 용이하게 포퓰리즘적 맹동으로 전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 측면에서 일본의 노동자 인민 측의 이기는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민중’으로 변하고 있는 일본의 노동자 인민은 지금 그 노동현장에서는 조합 조직조차 없고, 설사 조합이 있다 해도 그 다수는 자본가가 고용한 렌코간부(聯合幹部)들의 지배 하에서 저항다운 것은 한 조각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제22차 세계대전 후의 선배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획득한 권리들을 뿌리째 빼앗기고 있다. 한편, 자공보 정권은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차례차례 뒤엎어가고 있다. 의료․연금 등의 개악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 고이즈미 수상은 노동자 전체를 2년 단위의 단기고용으로 바꾸어 버리자고 공공연히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자본에게는 해고의 자유,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한다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어이없기까지 한 인민 측의 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등장으로 장기를 빼앗긴 야당들

예전에는 노동자 인민의 전위이자 그 선두에 선 조직자임을 자임하고 그것을 지향하기도 했던 일본공산당은 이제는 완전히 국회 내의 야당의 일원으로 변모―라기보다도 몸도 마음도 변신․전향―하여 국회 내에서, 그리고 각급 의회 내에서 수다떠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이 대중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은 선거를 위한 자기당의 집회와 가두집회 때뿐이다. 그들은 38만 당원을 자랑하고 자기당의 선거연설회에는 수천 수만 명의 지지자를 모으고 있지만, 한번이라도 국회를 둘러싼 항의 데모를 호소하고 그것을 선도한 일이 있는가? 또한 가혹한 자본의 공격에 저항하는 직장투쟁의 조직화에 진심으로 씨름하고 있는 지부가 몇이나 있는가? 그들의 다수는 표 모으기는 하지만 투쟁을 조직하는 담력도 기술도 상실해버린 것이다.

바로 이렇게 때문에 현재의 국회의 모습을 보더라도 야당은 전체적으로 아주 풀이 죽어 있다. 원래 ‘구조개혁’ ‘개헌’을 주장하던 하토야마(鳩山)의 민주당은 고이즈미의 등장으로 장기(長技)를 빼앗겨, 텔레비전에서의 국회 논의를 보더라도, 정면에서 정책 논의를 도전하지도 못하고 있다. 사소한 일에서 각료들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일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쓸모 없는 야당임은 다 아는 일이지만 공산당도 다른 야당과 마찬가지로 생기를 잃어버렸다. 스스로 자본주의를 구제하는 당으로 키를 줄여버린 이 당은 국회 내 야당으로서의 힘도 상실해 버렸다. 망신스럽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확인한 위에서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누차 지적해온 것처럼 자본의 위기가 곧바로 인민의 위기로서 전가되어 바리는 그러한 구조가 그들과 우리 사이에 이미 만들어져 있다. 고이즈미로 우두머리가 바뀌기까지는 모리의 우둔함과 연이은 실책에 의해서 자공보 정권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것처럼 보였다. 집권당으로서의 자민당이 붕괴되고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는가라고도 생각되었다. 그때는 민주당이 분열해 자민당을 보완하든가 혹은 자민당이 분열해 민주당 주도로 독점자본을 옹호하는 정권을 만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재편’은 고이즈미 내각의 출현이라는 생각지 못한 회로를 통해서 진행되려고 하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이야말로 독점자본에 봉사하는 극반동 내각

고이즈미 울트라(Ultra) 반동 내각은 인민을 철저하게 희생시켜서 가장 손쉽게 위기를 타개하는 방책을 공공연하게 부르짖고 있다. 지금까지의 자만당의 주류는 이를 단행하는 데에 대한 인민의 반발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의 엄청난 도산, 나아가서는 자민당 정치가의 상당수가 스스로의 이권 부분을 방기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 선거 기반을 잃을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말하면, 스스로도 출혈을 각오하고 인민을 들볶는 정책으로서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개혁’을 마침 환상처럼 나타난 ‘고이즈미+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의 인기를 빌어 해치우려 하는 것이다. 지금 인민의 다수는 이러한 고이즈미 ‘개혁’이 종래의 하시모토파 등 자민당의 본류 파벌과 대립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들어, ‘무언가 좋은 것을 하려고 하고 있다’라든가 ‘무언가 자기들 인민의 측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등의 착각을 가지고 있다. 반드시 근로인민 모두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스컴에 의해서 그러한 방향으로 유도되고, 그러한 이미지로 지금 굳어지고 있다.1)



이러한 현상의 진실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사태는 이제 정말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인가? 절망적인 것인가? 답은,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는 일본의 반체제파들이 앞으로 총체적으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가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평화와 민주를 추구하는 반체제적인 운동들, 혹은 각종의 시민운동의 현황에 관해서 말하자면, 전국 각지의 기지(基地) 반대나 반핵․평화 운동, 개헌반대․헌법옹호 활동, 다양한 인민의 민주주의적 권리의 방위․확대 운동으로부터 환경보호 운동, 각종 차별철폐 운동, 전쟁책임의 추궁과 전쟁범죄의 보상 활동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노동자 인민은 개별 과제의 투쟁에는, 다수 ‘시민운동’적 형태에서지만, 지금 잘 달라붙어 활동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고 그 대열에 참가하고 있다. 이미 보아 온 것과 같은 상황에 의해서 많은 곤란에 봉착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가 투쟁을 낳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개별적 과제와 씨름하는 투쟁을 넘어 그 근원에 있는 오늘날의 독점자본주의체제의 부패, 그것을 끝까지 유지해 가려고 하는 자민당 정치(지금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자공보 정권이다)에 대해서 공동으로 정면 대결할 태세가 취해지고 있지 못한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에 기초해서 저항의 힘을 모으고, 이윽고 이 사회 자체를 변혁시키는 방향으로 그것을 모아 가는 기축이 없다. 이 점이 결정적인 애로로 되어 있는 것이다. 개별 과제에 기초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고 그것들은 전체가 합쳐지면 일정한 힘으로 될 무언가가 정치적 활동력으로서는 아직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의 발현되지 못하고, 국가적 규모의 정치투쟁의 힘으로서는 무력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다. 현상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절망하여 투쟁을 방기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 반대다. 투쟁 방법을 변혁해 가는 것, 그 조리를 세우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식과 실천이 지금이야말로 필요하다.



싸움은 좋든 싫든 적 측으로부터 밀려온다

위기가 인민의 측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본 대로지만,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체제야말로 그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거기에는 다양한 모순이 존재하고, 필사적인 호도책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도처에서 그것은 분출되고 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폭발하여 하시모토․오부치․모리는 그것에 잘 대응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고이즈미의 하시모토의 방책을 출혈을 각오하고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것을 기세 좋게 호언장담하고 있을 뿐이다. 텔레비전의 영상이 그것을 ‘신선’하게 보이도록 방영했다. 지금 속고 있는 사람들이 고이즈미의 ‘개혁’이 안겨줄 것이 어떠한 ‘고통’인가를 깨닫는 데에는 다시 조금 시간을 요하겠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도? 이래도?’ 하면서 싸움은 저쪽에서 밀려오고 있다.

특히 서둘러 싸워야 할 과제가 있다. 저들의 초조함을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전쟁체제 강화책과 그를 위한 개헌책동이 그것이다.

모리는 ‘신의 나라’ 발언으로 시작해서 스스로 지지율을 떨어뜨려 쓰러져 버렸지만, 독점자본의 구제책은 그 다름대로 추진했고 인민을 들볶는 정책을 강행하기 위한 입법조치 등은 착착 달성해 왔다. 고이즈미는 높은 지지율에 우쭐해진 면도 있어서 모리의 실책을 계승하고, 또한 그것을 상회하는 폭주를 지향하고 있다. 미 제국주의의 요청과도 서로 어울려서 새로운 전쟁협력태세의 확충을 꾀해 헌법의 확대해석의 틀도 뛰어넘는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 헌법 개악을 서두르고 있다. 천황 일족(天皇一族)의 남자 부족을 겨냥하여 여성 문제에도 추파를 보내는 황실전범(皇室典範) 개정안, 수상공선제(首相公選制)를 내걸고 헌법에 직접 손을 대는 개악안 등은 9조(일본의 군대 보유 금지,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제9조: 역자)를 개악하기 위한 외곽 때리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쉽게는 되지 않는다. 자민당 내에도 개헌으로는 가지 말고 확대해석으로 가자고 하는 세력도 있고, 공명당도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역자) 개헌을 곧바로 용인할 수는 없다. 민주당도 개헌 찬성으로 통일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문제는 국내의 여론 동향뿐만이 아니라 중국․조선․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의 강한 반응을 야기할 것이다. 후지오카(藤岡)․니시오(西尾) 등 울트라(ultra) 반동 이데올로그의 ‘교과서’ 만들기 등에 고무된 고이즈미의 8․15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공식참배 선언, 모리로부터 계승한 교육기본법 개악책 등, 외교문제로도 발전을 요소를 안고 있다.

전쟁체제를 새롭게 확충해 가려는 방향에서의 개헌 문제에서도, 그를 위한 국내 이데올로기 정책의 중기전망으로서의 ‘교육개혁’ 문제에서도, 우익반동에 고무된 당장의 야스쿠니 참배 강행에서도, 노동자 인민의 측이 저항할 여지는 아직도 크게 열려 있다.



투쟁 속에서 추구해야 할 두 개의 과제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뿔뿔이 흩어진 인민의 활동력―거기에는 일정한 역량이 축적되어 있다―을 통합시킬 기회(chance)를 지배계급의 측이 준비해 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반전 평화, 민주와 인권의 제 세력이 힘을 합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협동 속에서 지금 뿔뿔이 흩어진 개별과제와 마주하고 있는 평화와 민주의 제 세력이 현체제 자체의 사회적 정치적 개혁이라는 기본적인 프로그램 형성의 필요에 관해서 이해를 넓히고, 그러한 노력을 축적해 간다면, 그 달성 여하에 따라서는 장래에 상황을 역전시켜 갈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는 것이다.

본래 이를 위한 전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그 선두에 서야 할 일본공산당이 그 임무를 방기하고, 우측으로 우측으로의 경향을 심화해 이제는 의회 일변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화를 완성하려 하고 있다. 당 전체로서 맑스주의적 전위당으로서의 그 기능을 회복할 조건은 이미 상실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변신․전향을 수긍하지 않는 세력도 소수파이긴 하지만 적지 않게 존재할 것이다.

한편, 공산당을 좌측으로 타고 넘으려고 했던 이른바 ‘신좌익’ 운동들은 정치세력으로서의 통일을 유지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조직화한다고 하는 사업에 실패하고, 일부의 극좌종파주의파를 제외하면 그 대부분은 바야흐로 ‘시민주의화’하든가 ‘사회민주주의화’로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거부하면서 맑스주의 정당의 재생을 아직 추구하는 세력과 개인들이 있다면, 그러한 뜻의 결집, 그를 위한 협동(공동)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고, 위에서 말한 개헌 저지 투쟁 등을 통해서 이들도 또한 재편하는 시도가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고찰한 것처럼, 당장 이시하라 동경도지사의 출현,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새로운 배외민족주의(排外民族主義) 체제 만들기에 항거하는 인민전선적 통일전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과제와 이 과제를 추구하는 속에서 노동자 인민의 맑스주의적 전위기능을 어떻게 재건해 갈 것인가 하는 과제, 이 두 개의 과제를 통일적으로 생각하고 그 대응책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더 절실한 것으로서 일본의 뜻이 있는 노동자 인민에게, 따라서 우리에게 제기되고 있다.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지만, 이 두 개의 과제의 해결은 어설픈 노력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된다면, 60년대 이래의 “전후 ‘후기사’”(戰後‘後期史’)를 대역전시키는 시대를 개막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후 혁명’의 패배를 보상하는 것으로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룰 수 없게 되면 “두 번째의” 지옥으로의 길이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수년이 역사의 운명의 결정적인 기로로 될 것이다. 

한/노/정/연



(번역: 편집기획실)


* 편집자 주: 이 글은 일본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의 반월간 뉴스레터인 ꡔ사상운동ꡕ 제652호(2001.6.1.)에 실린 武井昭夫, 「小泉極反動內閣の登場と勞動者人民の課題, 統一戰線の形成と前衛機能の再建をめざそう、人民の危機を協同のチャンスに」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본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ꡔ아사히ꡕ(朝日)의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5월 29일 발표)에서는 고이즈미 내각 지지가 84%로 상승해 있는데, 이 조사에서 정당 지지를 보면 자민당 지지는, 올라가진 했지만, 34%에 불과하다. 무당파와 타 당파 지지자들이 고이즈미 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 지지자(전체의 3%) 가운데도 천만 뜻밖에도 70%가 고이즈미 내각을 지지하고 있다. 실로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ꡔ아카하타ꡕ(赤旗)는 연일 제1면에서는 고이즈미 내각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지지자(그 속에는 당원도 있을 것이다)의 70%가 고이즈미 지지라면! ꡔ아카하타ꡕ의 전체 지면의 종합은 그러한 당원․독자․지지자를 만들어온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까지의 후와(不破)․시이(志位) 지도부의 방향이 이러한 현상 출현을 측면에서 응원해온 것이다.


2001-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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