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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

현장에서 미래를  제68호
채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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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

?한국 조선산업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대응정책?이 의미하는 것

채 만 수/부소장




1)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조선산업분과 명의의 ꡔ조선업종 구조조정 대응정책 중간보고서ꡕ(2001년 3월)를 사실상 총괄하고 있는 「한국 조선산업 노동조합의구조조정 대응정책」1)(pp.54~62, 이하에서는 「대응정책」으로 약칭)은 그것이 전경련이나 경총 혹은 조선공업협회 같은 자본가단체가 아니라 노동조합, 그것도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재정에 의한 프로젝트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한다. 그 내용이 철저히 친자본적, 따라서 철저히 반노동자적이기 때문이다.



1. 이른바 “경쟁력구조 개선” 등을 통한 대응과 관련하여

「대응정책」이 제시하는 ‘노동조합의 대응정책’은 “첫째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취약한 경쟁력구조를 개선하는 것과 둘째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구조조정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함께 지향하면서 수립되어야 할 것”(p.59)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우리는 「대응정책」이 “취약한 경쟁력구조를 개선하는 것”, 즉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대전제로 하고 있는 점,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노동자의 이해와 관련해서는 그 구조조정의 비용이 노동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용 전가를 “최소화하는 것을 함께 지향”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대응정책」의 주요 관심, 핵심적인 목표는 자본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고, 그를 위한 구조조정을 달성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 구조조정과 경쟁력 제고를 제반 조치에 노동조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조선산업의 경쟁력 문제는 … 노동자의 이해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며 … 산업경쟁력과 노동자의 이해는 … 상반”(p.55)된다고 하면서도, “(조선산업의 경쟁력 문제는) 노동자의 이해(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다”느니,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대가로 한 산업경쟁력의 강화는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하(다)”는 등의 둔사로 구실을 찾으면서.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경쟁력구조의 개선”을 핵심적인 과제로 삼는 이유는 그들이 ‘구조조정의 압력’ 혹은 그 불가피성(p.55 등)의 ‘(주도적) 원인’(p.59)을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 혹은 시장과 경쟁 자체, 혹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에서 찾는 대신에 “시장 내부에서의 경쟁력의 구조적 취약성”(p.59)에서 찾기 때문이다. 물론 「대응정책」은 글의 첫머리(p.54)에서 “자본의 과잉축적으로부터 비롯되는 재생산체계의 위기”와 “자본구성이 변화함으로써 나타나는 노동절약적 경향”에서 구조조정의 “일반적 … 두 가지 요인”을 찾고 있지만, 여기에서도 경쟁이나 생산의 무정부성 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도외시되어 있고, 그 요인들은 그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생산과 그 무정부성, 경쟁 등은 “자연적인 것”인 것이다.

이미 그 계급적 본성을 익히 주지하는 바이지만, 「대응정책」이 제시하는 “경쟁력구조의 개선”을 통한 대응이란, 첫째로는 경쟁 상대인 다른 기업 혹은 다른 국가의 노동자들을 희생으로 삼아서 자기 기업 혹은 한국의 조선노동자의 이해를 (그것도 극히 불완전하게 밖에) 지키자는 주장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국제주의 대신에 배타적인 애사주의, 애국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바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켜서 서로 대립시키려는 자본의 주장을 노동조합의 재정을 받아서 외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 주장대로 상황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타기업, 타국 조선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될 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기업, 한국 조선노동자의 극심한 희생으로 된다. ‘경쟁력구조 개선’의 핵심은 결국 “축적된 기술이나 숙련”(p.58)을 통한 생산성의 증대인데,2)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가는 「대응정책」의 (중심적) 필자로 짐작되는 강신준 교수 자신이 제시하는 자료(p.102)를 보자. 독일의 조선업에서는 1951년에 5만 3천 857명의 노동자가 30만 2천 gt의 선박을 건조했는데, ‘경쟁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축적된 기술이나 숙련” 덕택에 1998년에는 2만 2천 500명의 노동자가 104만 9천 gt의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혹은, 1950년대 후반에는 10만을 넘는 노동자들이 많아야 124만 1천 gt의 선박을 건조했는데 ‘경쟁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축적된 기술이나 숙련” 덕택에 1998년에는 2만 2천 500명의 노동자가 104만 9천 gt의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조선 양은 거의 비슷한데 노동자는 10만에서 2만으로 줄어든 것이다! 「대응정책」은 바로 이것을 하자고 하는 것 아닌가?


「대응정책」은 그것이 제시하는 “노동조합의 대응정책”까지도 모두 사실상 한국의 조선산업의 “경쟁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들인데, 그 가운데 “출혈수주경쟁”이니 “경쟁적 설비증설”이니 “초기업적 연대... 부족”이니 하는 것과 관련한 논의들(pp.56, 60)은 한국 조선업의 카르텔 강화, 즉 독점의 강화를 촉구하는 주장이다. 즉, 「대응정책」은 철저하게 한국의 대조선자본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들 가운데 이른바 “조선사들의 경영다각화전략”(p.56 이하)에 관한 논의는 「대응전략」의 필자의 사고가 극히 형이상학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조선산업에서의 경쟁 격화 혹은 과잉생산, 그의 표현대로라면 “구조조정의 압력” 혹은 “과잉건조능력”을 전체 산업 속에서 그것들과의 연관 속에서 보지 못하고, 조선산업에 한정된 문제로 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실 이 ‘경영다각화전략’이란 주장은 구조조정을 대전제로 삼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조정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함께 지향”해야 하는 것이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정책’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위선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3)


그러나 지금 과잉생산의 문제는 단지 조선산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에서의 문제인데 조선산업에서의 과잉을 해소하거나 축소하기 위해서 어느 산업들 쪽으로 ‘다각화’한다는 말인가?



2. 노동조합의 구체적 대응방책과 관련하여

「대응정책」이 제시하는 대응의 또 다른 특징은 그 대응이 철저히 교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응정책」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투쟁할 수 있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논의의 흐름은 사실상 그러한 투쟁을 배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실행을 담당한 영남노동운동연구소는 익히 아는 대로 노동조합 산별화의 강한 주장자인데,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 산별노조조차도 결국 자본의 “경쟁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다음의 논의를 보라.


“…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장기적으로 시장내부에서의 경쟁력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구조조정의 주도적인 원인이 되리라는 점이고 둘째는 이런 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대응정책은 첫째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취약한 경쟁력구조를 개선하는 것과 둘째…

이런 두 가지 목표는 현재의 교섭지형을 고려할 때 조선산업 노동조합들에게 두 가지 방향의 교섭정책을 필요로 한다. 첫째는 현재의 기업별 교섭단위로는 이들 목표에 접근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며 둘째 교섭정책의 기조가 정부의 산업정책은 물론 기업의 경영전략에도 노동조합이 의식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초기업적 교섭단위의 구성과 적극적 교섭정책이 바로 그것이다.”(p.59, 강조는 인용자.)


하기야 「영남노련」은 이미 과거에 ‘노사동반자관계의 확립’을 산별노조의 목표로 공언한 바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아무튼 「대응정책」은 그렇게 “경쟁력구조를 개선”하는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교섭구조”(p.59)를 확보하기 위해서 몇 가지 조직방안(pp. 59~61)을 제시하는데, 그 성격은 이런 것이다.


1) 조선업종협의회: ‘이미 가동 중이나 “실질적인 교섭단위로 구성”해야.’―“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용자) 논의하기 위한 초기업적 교섭단위,” 혹은 “경쟁력구조 개선”을 위한 노동 측의 “초기업적” 기구.


2) 조선산업발전위원회(가칭): “조선산업의 경쟁력과 산업정책을 협의하기” 위해 “이 교섭단위(‘경쟁력구조 개선’을 위한 기구로서의 조선업종협의회)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이 “정부와 조선업체들에게 주도적으로 요구”하여 구성하는 조직.―다른 말로 하면, 조선산업의 노사정위원회.


3) 경영발전위원회(가칭): “(조선산업발전위원회 등: 인용자) 이런 초기업적 교섭단위에서 합의된 사항들을 기업단위에서 이행하기 위한 기업단위 조직. 혹은, “기업단위에서의 경쟁력구조 개편”을 위한 기구. 즉, 다른 말로 하면, 기업단위 노사협의회.


그러면, 「대응정책」의 입안자들이 ‘조선업종협의회’나 ‘조선산업발전위원회’, ‘경영발전위원회’ 등에 기대하는 역할 혹은 기능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슨 궤변을 동원하더라도 어김없이 조선산업의 고용감소, 즉 조선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그 내용으로 하는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을 “노동조합의 적극적 참여”(p.60) 하에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결국 노동조합이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그러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을 미리 봉쇄하고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나 노사협의회의 역할과 기능이 그러한 것처럼.


「대응정책」은 또한, 영남노연이나 강신준 교수의 기타 여러 문건에서처럼, 노동조합에 색다른 임무를 부가한다. 즉, “노동력 수요구조의 변화에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실 하에 “노동력시장의 숙련형성에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p.61)는 것이다. 그것도 그 ‘숙련형성’의 비용(일부)을 노동조합, 즉 노동자가 부담하면서4) 말이다. 물론 대상이 극히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의 ‘재취업 기술훈련’ 및 실업수당도 전적으로 국가 및 관련 공단(公團)의 재정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데, 「대응정책」은 그 비용을 이제 노조가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3. 제기되는 근본 문제

「대응정책」이 노동자들에게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첫 번째 문제는 노동-자본의 관계를, 「대응정책」 혹은 영남노연 등처럼,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동반자 관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착취와 지배-예속의 관계, 대립의 관계로 볼 것인가이다. 이는 물론 임의로 이래저래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 관계의 실체, 실질의 문제이다.

그것이 제기하는 두 번째의 문제는 구조조정이나 자본․산업의 경쟁력 문제 등을, 「대응정책」 혹은 영남노연 등처럼, (독점)자본의 시각과 이해에 입각해서 파악하고 그 해결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시각과 이해에 입각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대응정책」이 지금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분명 그것이다.



추기

「대응정책」을 작성한 영남노연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대안’을 제시하라”는 말로 응수한다고 들린다.

‘대안’이라? 그들이 “대안을 제시하라”고 할 때 그 ‘대안’은 어떤 성격의 것일까? 그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내에서, (독점)자본의 이윤극대화 활동을 전제한 위에서의 대안’이다. 그들의 「대응정책」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대안’을 내와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노동자, 노동조합인가? 천만에!


그 주체는 다름 아니라 자신들의 이윤극대화 운동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저항․투쟁에 부딪힌 (독점)자본 자신이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할 일은 그러한 자본을 위한 ‘대안’을 내오는 일이 아니라 그들 즉 독점자본의 잉여가치 착취와 억압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이 투쟁이 당분간은, 즉 노동운동이 이 착취와 억압을 폐절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기 이전까지는 독점자본과 그 국가로 하여금 보다 더 노동자들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는 ‘대안’을 제시하도록 강요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영남노연의 「대응정책」과 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내에서, (독점)자본의 이윤극대화 활동을 전제한 위에서의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 그 노동자나 노동조합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경쟁력’이라는 자본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면서 자신의 혼까지도 자본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돌아오는 것은 당연히 재앙뿐이다. 

한/노/정/연


* 애초 이 글은 2001년 6월 30일 울산에서 열렸던, 본 연구소의 조선업종연구팀 개방수련회를 위해서 작성했던 것으로서, 마침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에서 “친자본 ‘진보’ 이데올로기”를 특집으로 기획하였기에 그 한 사례로서 게재합니다.


1) 같은 자료집의 다른 글들의 경우 그 필자를 밝히고 있음에 비해서 유독 이 글만은 무기명으로 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필자는 누구일까?


2) ‘생산성’과 관련하여 ‘질적 생산성’(p.58 등) 운운하는 무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대응정책」의 논의 전개에서 드러나는 숱한 방법론상의 오류․무지에 대해서도, 논급할 가치조차 없다.


3) 이른바 “경쟁력의 수평적 확대”(?)니 “해양관련산업 전체로의 사업영역의 확대”니 “새로운 사업영역의 개척”이니 “대안생산개념”이니 하는 논의(p.60)도 모두 마찬가지다.


4) “숙련시장의 통제에는 노동조합이 직접 참여하는 숙련화기금 및 숙련화기구가 필요하다. 이런 숙련화기금 및 기구는 실업정책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부의 고용재정정책과 노동조합 및 사용자간의 고용방어적 기금을 물적 자원으로 삼아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노사간의 기여금은 …”(p.61)


5) “이제 자본은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계발”했고, “자본은 이제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이제 자본은 불황이나 경제위기의 국면에서는 물론이고 호황의 국면에서도 노동에 대한 ‘자본의 양보’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노동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공세적 무기를 사용(임영일, 「공황기의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 영남노연, ꡔ연대와 실천ꡕ 98년 8월호)하고 있기 때문에 싸워봐야 손해라고? 그리하여 애완견이 주인의 비위를 맞춰서 살길을 찾듯이 ‘참여’라는 미명 하에 자본에의 굴종적 협력을 통해서 살길을 찾자고?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경제학의 기초인 가치법칙에 대한 철저한 무지의 소산인지에 대해서는 채만수, 「‘고용 없는 성장’의 기회주의와 공황」, 한노정연,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98년 10월호를 참조할 것.


2001-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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