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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귀신인가 살쾡이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68호
김상태


언론개혁, 귀신인가 살쾡이인가


김 상 태
연구위원





지난 6월 29일 국세청의 언론사들에 대한 전격적인 고발내용이 발표되었다. 법인탈세, 사주 세금탈루, 비자금 조성, 이에 대한 검찰 고발, 수백억원대의 추징금 징수 등등 굉장한 소란이 일어났다. 물론 우리는 놀라기도 하고 반대로 놀라기는커녕 콧방귀도 아까와하곤 했다. 우리가 놀라는 이유는 노상 구경하는 깜짝쇼임에도 그 엄청난 규모가 언제나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돼지들은 엉덩이 아래 얼마의 돈방석을 묻어놓고 있는 것일까라는 그 의구심을 두고 하는 얘기다. 다른 한편 우리는 과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시종일관 이른 바 ‘자유당 시절’의 논리로 지배구조가 엮어져 왔던 것인데 해먹는 놈들이 그렇게 해먹어 왔다는 건 지난 수십년간 참으로 진절머리나도록 확인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에 대한 반응 또한 자로 잰 것 같은 재탕들이다.

조선일보 - 해당 신문사들을 고립시키고 재갈을 물리기 위한 정치적 의도이다!
중앙일보 - 잘못은 시정하되 탄압의도에는 당당히 대처하겠다.
동아일보 -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한겨레 - 언론자유는 탈세자유 아니다.

그리고

한나라당-언론사 세무조사와 검찰고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울 답방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다!!

정말로 자로 잰 것 같지 않은가. 관련 당사자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보지 않았더라도 이미 뻔했을 것들이었던 것이다. 이젠 맙소사라는 탄식도 안 나온다. 그래서 이건 사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소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평범한 서민이자 인간이라는 동물이므로 저렇게 고출력 앰프로 떠들어대면 뭔가 혼동을 느끼곤 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대립하는 양자, 그러니까 정부와 언론사 그리고 야당과 시민단체들 중 누가 더 옳으냐는 부질없는 수수께끼에 빠져드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 항상 이것이 문제다. 지난 번 정부의 화염병 시위 엄정대처라는 소란도 우리를 이런 함정으로 몰고 갔었다. 하지만 이런 수수께끼는 ‘아름다운 것은 얼마나 무거운가’라는 형편없는 궤변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따라서 질문 자체가 즉시 바뀌어야 한다. ‘이 사건은 노동자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바로 이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은 지금으로서는 노동자 민중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이 싸움은 철저하게 자본 내부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이 노동자 민중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으로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내분이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있어 좀 더 유리한 국면으로 발전되거나 확장될 수 있을 때뿐이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대응은 사태의 핵심을 올바로 통찰하고 있어야한다.

첫째,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지난 수십년간 노동자 민중의 줄기찬 투쟁을 근원에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의 부족은 무척 안타까운 일인데 사람들은 이 사건이 단지 현 정부나 시민단체의 운동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야한다. 최근에는 각종 이익단체들의 시위와 저항이 있었다. 의사나 약사들의 파업이 그 예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방법과 대단한 용기(?)들을 어디서 배웠던 걸까. 이 모든 건 하나도 빠짐없이 지난 시기 노동자 민중들이 죽음으로 쌓아왔던 투쟁과 그것을 통해 획득한 민주적 공간의 확대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고 싶으면 이 이익단체들이 3공이나 5공 때 동일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어떻게 반응했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면 된다. 그 시절에 그들이 시위나 파업을 한다는 건 참으로 요령부득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처럼 행동하는 것은 뒤를 보아주는 어머니 앞에서 촐랑대는 어린애의 모습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이 사실을 은폐하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확산을 자신들의 업적으로 가져가려는 파렴치한 작태들이다.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도 예외가 아니다. 썩을대로 썩은, 그러나 중세의 거대한 성곽같은 군부독재 시절의 깡패들에게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 등이 도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깡패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었던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없었다면, 그리고 지금도 그 투쟁이 면면하지 않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근원적인 사실은 철저하게 삭제한 채 사회정의니 언론개혁이니 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다.

둘째, 이 사건은 역시 그 근원에 있어 자본 내부의 싸움이자 자본자체의 자기운동이다. 이 또한 조금 더 확장된 시야로 분명하게 짚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 대체 누구와 누구의 싸움인가. 군부 파쇼 치하의 지배계급의 잉여분배 메카니즘은 앞서 말한 그대로 정말이지 몇 놈이 다해먹기이다. 폭력과 탄압을 기제로 두목과 졸개라는 피라미드식 구조를 생존의 법칙으로 확립했던 것인데 사실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이 기발한 생존법칙의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지역이 아니라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는 두목과 졸개들의 라인 업이다. 사람들은 마음 깊은 데서 절망했으며 진실이란 피라미드 구조의 자기 두목에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지 않겠는가. 대단하고 잘났다는 화상들이 다 똑같은 게 불을 보듯 뻔한데 그나마 자기를 보살펴 주는 건 자기 두목 밖에는 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한국사회는 서양 중세 초기에 도적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주는 명분으로 영주-농노제를 구성했던 그 메카니즘과 너무도 닮았다. 조선일보의 그 방모라는 작자는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데 그는 요정에서 당시 대통령 박정희를 대통령 형님이라 불렀으며 그 요정들의 기생들 머리를 가장 많이 올려준 작자이며 풍모가 실로 호탕해서 가히 밤의 대통령이라 불렸다는 것이다. 이는 ꡔ한겨레 21ꡕ 기사에 나와 있는 대목인데 요지인 즉 해먹는 놈들이 저들끼리 앉아서 이렇게 해먹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배메카니즘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인지 태조 왕건이란 드라마에서는 형님 황제, 동생 장군이란 말들이 지겹도록 반복되곤 한다. 따라서 정치에 있어 보스와 파당따라 3만리라는 논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다 아무리 정치윤리를 들이대고 떠들어봐야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을 이런 모양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성격이나 검은 마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생존 구조와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력이 발전하고 잉여가 증가하면 이 몇 놈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소외된 다른 두목들이 자기 몫을 달라고 꿈틀대기 시작한다. 오늘날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정부이며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그들인 것이다. 아주 당연한 것인데 이들이 자기 몫을 달라고 할 때는 반드시 새로운 명분을 내놓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명분의 핵심은 서구식 자본주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 그런 게 있는 지는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니다. 합리성, 공정성, 효율성 등이 다 그런 말들이다. 그리고 이 말들과 명분의 뒤에는 앞서 말한 다른 두목들의 피라미드와 좀더 근원적인 한국자본의 자기모순이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다. 말하자면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언론이야말로 지난 수십년간 몇 놈이 다해먹기라는 논리의 아성이었는데 그것을 이 새로운 두목군단이 공략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순수한 의도는 없느냐고? 나라면 그런 건 절대로 없다고 확신한다. 그 증거는 다른 데서가 아니라 이 개혁이 성공한다 해도 언론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태도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싸움은 귀신과 살쾡이의 싸움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어느 쪽인가를 골라야 하는 가? 과연 귀신인가 살쾡이인가.
다시 말하지만 고출력 앰프의 소음에 어물쩡할 때가 아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 중인지 우리는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노동자 민중의 이 사건에 대한 대처는 오로지 투쟁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한 전술적 대응은 섬세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손따라 바둑두면 아주 망한다고 이 사건을 그 표피에서 읽고 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그 정당성이 오로지 힘에서만 결정난다. 투쟁이 초기이고 미약할 때는 온갖 욕설과 이데올로기 공세가 난무하지만 투쟁이 거대해지면 그런 것들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진다. 이는 96~97 총파업을 비롯하여 모든 투쟁에서 예외없이 확인되었던 것이었다. 이 교훈은 지금시기에 더욱 중요하다. 2001년 김대중 정권 퇴진을 기치에 올리면 시작되었던 투쟁은 현재 치열한 공방전으로 점철되고 있다. 만일 이 싸움에서 밀린다면 다른 모든 것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이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도 저희들끼리의 명분싸움에 성과 가져가기로 끝나고 만다. 노동자 민중은 이 사건이 노동자 민중 자신들을 얼마나 소외시키고 있으며 언론 개혁 자체가 지금까지의 반 노동자 민중적 작태는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폭로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서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이 사건의 본질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현재 투쟁의 승리를 위해 매진해야한다. 만일 여기에 혼선이 있다면 이야말로 앞뒤를 잃어버린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노/정/연

2001-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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