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지ˇ상ˇ강ˇ좌
본 지상강좌는 연구소가 노동자 교양경제학 강좌 이후의 두 번째
기획으로 지난 1월 29일부터 주 1회 9차례에 걸쳐 진행한 내용을
강사가 수정․보완하여 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고자하는 국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는 노동유연화를 기조로 하여 법,
제도적 개악과 현장까지 도입되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막론하고
전면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진영은 구조조정 반대투쟁, 생존권
사수투쟁을 전개해 왔습니다. 또한 그 와중에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제 정치조직이
건설되었습니다. 이제 현장의 노동자들, 활동가들은
노동조합운동을 넘어선 정치운동, 전국적 계급투쟁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역사적 맥락과
현황을 함께 살펴보고, 현시점에서 제기되는 올바른
정치세력화의 방향, 과제 등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대해 한국과
유럽, 제3세계 등의 차원에서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의
현시기 과제를 모색해 보고자 정치학 교양강좌를 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투쟁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의 실천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상강좌/노동자 교양정치학
현실 사회주의와 정치․경제
송 태 수
연구위원
1
이번 강의에서 현실사회주의와 정치가 아니라 정치․경제의
주제로 바꾸어 다루는 이유는 현실사회주의에서 대중들의 정치적
권리의 문제에서의 한계 혹은 문제점이 경제의 문제와 깊숙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본 강의에서는 이론적인 논쟁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현실사회주의의 구체 현실에 대한 이해와
이의 발전 결과로서 10~15년 전 사회 개혁시도(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와 동구진영 붕괴의 과정을 다루기로 한다. 동구
현실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과 그 한 예로서
동독의 경우 노동대중의 서독으로의 탈주가 국가붕괴의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하였던 점을 염두에 두고 강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2
1989년 초까지 작동했던 유럽의 블록(진영)체제는 2차대전에서
그 기점을 찾을 수 있다(얄타체제). 1920년대 초반까지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정통성을 확보한
소련은 이후 파쇼세력 타도에서 스탈린이 영도하는 소비에트
인민의 혁명과 공헌을 인정받으면서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동시에 당대 수준으로서는 자유민주적인 국가체제로
미국의 역할이 인정받는 상태에서 각기 독자적 발전노선을 지향,
영토적 분할 및 재구획과 함께 서로 대립적으로 공존하는
동서유럽구도가 지속되었다. 즉 냉전으로 급변한 구도 속에서
나토(NATO)와 바르샤바 동맹을 핵으로 한 대결체제가
유지되었다.
동유럽의 경제발전과정은 체코 등의 산업화가 진전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서유럽과 달리 농업 중심적인 국가가 많았다.
반(半)자본, 반(半)봉건 체제에서 사회주의로의 비약적 이행은
동유럽국가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정상적으로
흡수할 기회를 상실하게 했고,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헤게모니에 의해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사회주의 과정을
겪게되었다. 당시까지 사회주의 건설에서 파시즘의 침공과 그에
대응하는 조국방위전쟁을 거친 소련의 1917년 혁명이후
발전과정은 전시공산주의체제라는 용어를 써서 설명되고 있다.
즉 사회주의체제 발전과정에서 현실사회주의는 독자적인,
안정적인 발전과정을 겪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소련 및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사회주의의 형성, 발전과정은
일정정도 역사적으로 제약적인 것이었으며 현실사회주에서의
민주성은 세계사적인 현실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사전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항상적 대결체제를 전제로 한 반파쇼, 반제국주의 투쟁전선의
유지라는 당면목표가 수정될 이유가 없는 한 실질적인
전시공산주의체제인 국가사회주의 구도 내에서 모든 사회발전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비상체제가 장기화되고 이른바
‘제국주의’ 진영의 태도변화가 거의 인지되지 않은
60/70년대의 세계정세에 힘입어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당과
인민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관료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현실 사회주의의 상황은 그 긍정적 발전 가능성이나 계기들이
차단되고 인민대중의 계기적 저항과 이의 탄압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3
70년대까지를 살펴볼 때 동구유럽 현실사회주의체제의 경제는
서구자본주의의 발전과 비교해 크게 뒤지지 않고 있어 고도의
생산성 향상을 보였다. 정치적인 민주성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발전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었고, 인민들의 불만도 억제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70년대까지 무력대립 등의 상황 때문에
동유럽 인민대중의 밑으로부터의 민주적 요구는 억제되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계기가 적극적으로 분출되고 개혁 필요성의
신호로서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개혁의 길은 선택되지
못했다.
새로운 움직임은 월남전의 종식과 미국의 위상변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최소한 유럽에서라도 돌발적인 사태로 인해 일시에
전쟁에 휩쓸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체결된 75년 8월 1일
이른바 헬싱키 의정서, 즉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정서 체결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CSCE의정서가 국가 간에는
군축상황 점검을 주로 하는 감시단이 주관심사였음에도, 당시
지하에 형성되고 있던 현실사회주의 내 저항세력에게 최소한의
신변보장을 담보받으며 표면에 부상할 기회를 준
셈이었다(이른바 ‘헬싱키 그룹’의 형성; 물론 CSCE의정서
발효는 서유럽 각국에서도 평화지향적이며 개혁적인 세력에게
긍정적인 계기로 작용). 다른 한편 CSCE의정서는
현실사회주의국가 발전에서 역(逆)축적 위기를 낳았다. 즉 CSCE
두 번째 주제인 국가간 경제협력 원칙에 입각하여 서방 자본주의
진영에서 동유럽국가에 공여된 외채는 폴란드
421억$(국민총생산의 55.7%), 헝가리 190억$(63.5%), 유고
235억$(23.9%)에 달했다(1989년 기준).
이때 외자를 도입하고 이를 이용해 공업화를 핵심으로 하는
조급하고도 무리한 현대화를 추진한 담당자가 실질적으로 모든
생산수단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공산당’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무리하게 감행된 현대화 계획의 부정적 결과는
‘인민’의 부담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은
폴란드에서부터 시작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이하
Pt독재)라는 이름 아래 추진된 당독재 정부의 대내외적 무능과
부패가 겹쳐들면서 민주화 요구는 점차 구체적 현실성과 저항
주체의 결집성을 강화해가기 시작했다. 외채상환 부담은
인민들에게로 전가되고 국민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경제발전
속도도 느려지고 소비재 결핍상황도 현저해졌다. 동구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서방의 기술이전이 제약된 채 70년대
초반~84년까지의 유류파동으로 인해 원자재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거치면서 경제는 위기적인 상황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구의
자급자족적인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체제에 비해 급격하게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인 경제로 되었다.
4
그렇다면 왜 이런 식의 체제가 유지되었는가? 많은 논쟁 중에
코르나이(Kornai)는 ‘연성’예산제약이라는 테제를 가지고
동유럽 경제체제에 공급결핍이 필연적으로 내재되어있음을
설명한다. 즉 ‘경성’예산제약적 계획에 따른 경영에서는 한
결정주체에게 처분가능하도록 주어진 총량이 지출양의 경계를
설정해 주는 것인 반면, 현실사회주의의 연성예산제약
경제체제에서는 이러한 예산제약 조건들이 ‘사후’에 협상을
통해 (당)국가의 관료에 의해서 적자부분을 메워주는 것이
가능한 상태로 되어 예산제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몰론 이러한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은 기업의 경영자가
당이나 관료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때 더
쉽게 가능했었다. 정부의 ‘사후’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예산제약은 더욱 연성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상당히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현실사회주의에서는 전사회적으로 물적 재화에 대한 만성적인
과잉수요=공급결핍이 지배하고 있었다. 즉 물적 재화가 항상
부족한 결핍경제로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기업경영에 있어서 저효율성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고르바초프의 발언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서방자본주의에서는 기계(고정자본)가 3교대로 돌아가고 있는데
동구 현실사회주의에서는 8시간(혹은 불가피할 경우 16시간)
가동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즉 자본주의에서는 고정자본의
가치실현을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데 반해,
현실사회주의에서는 설비재의 가치실현이 오래 걸리는 이유로
자본주의에 일반화되어 있는 끊임없는 기술혁신(Innovation)이
속도에서 현저히 뒤지게 되었다. 즉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고정자본 가치의 회전과 실현 속도가 자본주의 체제에 비해 훨씬
늦어져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동구권
경제시스템이 체제경쟁에서 비효율적인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
5
그러면 이제부터 동구권 붕괴의 문제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우선 페레스트로이카가 무엇을 목적했는지와 이에 대한 배경과
이념적 공방 속에서 남한 내의 이념대립의 형태 및 좌파들의
고민들에 대해 이해해 보기로 한다(여기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
우선 페레스트로이카는 개혁이 아닌 개조, 즉 고쳐 다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스탈린주의의 문제점에서
시작하여 소련이 정치과정상 사회주의의 원칙인 참여와 분배적
사회주의 원칙을 채택하지 않는 한 생산적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에 근거해
페레스트로이카는 우선 개인과 국가 및 사회와의 관계에 있어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며 이에 따른 경제적 효율성의 확대,
그리고 국가의 개인에 대한 후견적 보호를 상대적으로 줄이려는
시도였다. 둘째 전통적으로 국가소유만을 인정했던 과거의
정책에서 다양한 생산수단의 소유를 허용하는 제도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셋째 사회적 정의의 규정에서 이른바 ‘무임승차’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과 그룹의 생산성 극대화를 도모하는
생산체제의 정비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외교정책에서
탈이데올로기와 탈군사화, 경제와 외교의 중시를 의미한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노멘클라투라의 비협조로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않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언로의 광범한
개방이랄 수 있는 글라스노스트를 들고 나오는데, 이는 체제의
붕괴로까지 연결되었다. 이에서 우리는 현재 중국에서의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의 관계에서 정치개혁에 비해 경제개혁 및
시장제도 등의 도입 속도가 급격히 앞서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 첫째로 보수진영은 현실사회주의에서의 개혁의 시도를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면 붕괴’로 해석하는 동유럽 국가진영
및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전면붕괴론을 들고 나왔다. 이들에
따르면 ‘Pt독재의 주인공이어야 할 바로 그 Pt가 자신들의
체제에 항의하고 그 체제로부터 집단탈출하고’ 있는 것이
‘인민민주주의의 실상’으로서 “정치적 다원화 같은 서방의
제도와 정치적 가치”가 중시되는 국가의 건설이 “동독인민들의
시위 목표”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우선 구동독 사회구성에서 이른바
Pt로 규정되는 사회현상은 실제 존재하지 않았었다. 즉
경제적으로 사적 소유가 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산계급이라는
용어가 사실상 성립하지 않는다 할 수 있으며 동독 사회
대다수를 구성하는 노동자 및 근로자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서
Pt라는 규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둘째로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임노동’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사회’
차원에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생태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으며 셋째로, 이들 인민대중이 부정적 체험을 쌓은
‘사회주의’가 현실사회주의이지 이상적인 사회주의가 아니었던
만큼, 이들이 ‘동경’하는 자본주의도 현실로서 자본주의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한 지적이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즉 탈출한 인민대중들이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상은 실업 문제 등이 없는 물질적 풍요의 상징으로서의
자본주의였었다는 것이 통독 후 구동독 주민이나 전환기 동구권
현실사회주의국가 국민대중들의 의식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60년 초부터 1989년 장벽붕괴의 시점까지
서독에서나 동독에서도 국영방송은 서로 시청 가능했는데(물론
흑백시청이나 음성청취 등의 제한된 수준이라도), 이는
지리적으로 서베를린이 동독의 영토 내에 있어 방해전파
불가협정을 맺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실업문제를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그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는 정도로 그 이해의 수준은 극히 낮은 상태였다.
그 결과 은폐실업을 포함하여 1/3정도가 실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서 실업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저항하는 것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동독의 90년대 초반의 파업들이
그 단적인 예이다. 즉 통일 이전에 실제 동독 인민대중들의 눈에
비춰진 서독사회에는 실업이 전혀 없거나 설령 있다해도
사회적으로 노동자 개인에게 심각한 의미를 갖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단지 벤츠(자동차)나 구동독에서는 수년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던 전화 또는 세련돼 보이는 백색
가전제품 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모두에게 보장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즉 이들이 동경했던
자본주의는 결코 완전한 자본주의의 실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2) 둘째로 동구 변화에 대한 인식에서 ‘사회주의 번영론’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진정한 발전은 스탈린주의와
완전히 결별한 당대의 시점부터이고 이러한 진정한 발전이
지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국가에
있는 모든 정치세력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으며 “사회개조의
뜻을 잃어버렸거나 무력감에 빠져든” 서독 사민당과 녹색당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내 몫까지 살아주!” 하는 심정으로
독일에서 새로운 사회주의의 실험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첫째, 정치과정상
사회주의 원칙으로서 정치참여를 기존의 공산당 또는 제도
정치권에 국한시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즉 페레스트로이카로
표현되는 현실사회주의 개혁세력의 지향점은 공산당이 선도하는
전위적 권력구조였지 인민자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권리국가는
아니었다. 이 주장은 둘째로 사회주의는 결코 붕괴되지 않았지만
그 발전을 위해서는 인민의 확인을 거쳐야 하는, 보다 탄력성
있는 공동체적 성격의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었으며 셋째, 당시의 서구유럽 내 좌파정당 및 비판세력의
정황판단에서의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즉 서독 사민당과 녹색당
등은 이들의 주장처럼 동구 변화에 대한 기대를 그렇게 크게
걸지도 않았었고 서구 좌파운동도 그다지 비관적 상황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트로츠키주의자의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인식논리를
첨가하기로 하자. 이들에 따르면 동구 현실사회주의 체제를
노동자를 탄압하는 국가이며, 따라서 이러한 체제는
밑으로부터의 혁명과 저항에 의해 극복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국가사회주의 내에서는 관료적인 통제로 인해 인민대중의
참여가 봉쇄되어 있다고 보고, 따라서 이들 국가(당)관료를
아래로부터의 혁명에 의해 타도돼야 할 집단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현실사회주의에는 사적소유가 없는 게 아니라
관료집단에 의해 생산자본과 생산시설 자체가 소유되고 있어,
이들에 의한 재화의 (재)분배 구조를 척결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3) 셋째로 페레스트로이카는 수정주의 혹은 개량주의화에 입각한
계급협조적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때 핵심적인 논의는 ①
시장경제와 사적소유권을 인정하는 경제체제를 사회주의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 ② 공산당과 Pt독재 원칙을 폐기하고, 다당제
도입, 의회민주제 도입 등을 사회주의체제에 적용, 실현가능한
것인가라는 논의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나오고 당시까지
진영대립의 인식 속에서 계급협조정책이라 말하는 논자들도
있었다.
끝으로 북한의 현재 변화의 이해에 도움이 될 페레스트로이카 및
동구변화에 대한 북한의 해석방식을 살펴보도록 하자. 북한
지도부는 당시의 변화움직임을 정통노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었는데,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에 의해서 사회주의권 내부에
부르주아세력이 복고되고, 이러한 결과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반사회주의적인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는 ‘사회주의 사상교육’과 공산당의
영도성을 강화하는 것(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의 령도”를
강화하는 것)이며 동시에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정치적 다원주의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헝가리의 변화에 대한 입장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헝가리가
이른바 ‘정치적 다원주의’를 운운하며 사회주의적 원칙에서
점차 이탈하여 반혁명, 반사회주의분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고 있다. 헝가리에서 다당제라는 이름 밑에 반혁명적
정당들이 조직되고 있으며 심지어 반사회주의분자들이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관료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 속에 낡은 사상잔재가
남아 있고 아직 사회생활 전반에서 공산주의적 집단주의 원리가
잘 구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므로,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모두가 공산주의적 혁명사상을 가지고 동지적으로 굳게
결합되어 생사고락을 같이 해나가는” 것이라고 하고
“사상교양사업을 강화 … 사업체계와 방법에서 혁명적
군중로선을 구현하여 지도일군들과 대중이 동지적으로 긴밀히
협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및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러한 욕구를 억압한 채,
사회주의 사상교육과 공산당의 영도성 강화를 통한 ‘사회주의적
인간상’ 확립이라는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은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6
현실사회주의에서 노동자와 정치의 문제를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앞에 잠시 언급된 Pt독재의
문제와 둘째, 노동자의 대중조직인 노조와 당의 관계이다.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권수립, 즉 Pt독재와 더불어 시작된다는 것이
맑스․엥겔스, 레닌의 입장이었다 할 수 있다. 즉 Pt독재에
의해 취할 과도적 경제조치는 이를테면 사적소유의 대토지 및
기업의 국유화, 교통기관과 은행의 국유화, 전인민에 대한
무상교육의 보장 및 빈민가의 일소, 도농격차의 해소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계급적 차별을
철폐하고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Pt독재는 이행기적 국가권력형태이고 장기적으로는 그
국가권력이 사멸해 갈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Pt독재’ 개념은 이미 1936년에
‘전인민국가론’으로 바뀌면서 사라지고, 이후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내용은 Pt독재에 대한 언급없이 전인민국가론의
연장선상에서 규정되는 역사적 과정을 거쳐왔다. 이러한
현실사회주의 역사과정에서 볼 때 Pt독재는 그 본래적인
의미와는 무관한 국가권력 강화로 귀결되고, 전인민은 실질적인
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1990년 초 소련공산당 28회대회 전에 당중앙위원회에
토론을 위해 제출되었던 당강령에서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인민자치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법치국가와 자치권을 갖는
사회주의사회의 형성”을 강조하면서 “전인민적 법치국가는
어떠한 계급의 독재 및 관료주의 정권도 배제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국가권력의 약화․사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대신 “어떠한 계급의 독재 및 관료주의 정권”도 배제하는
‘전인민적 법치국가’를 유지했던 것이다.
둘째 문제, 즉 현실사회주의에서 노동자대중의 권익향상의
조직으로서 노조의 위상이라는 문제를 쉽게 이해하는 데는
노조의 ‘전달대’로서의 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노조는 대중의 이해관계 및 이들의 주장을 위로 전달하고
관철시키는 조직으로 역할 하였다기보다는 당의 입장을
노동자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만을 담당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통일 이후 구동독이나
전환기 동구에서 노조에 대한 불신이 노동자대중에 광범하게
확산되어 있었고 이들은 체제전환기에 노조에서 광범하게
탈퇴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전환기에 이들 노동자대중은 광범하게 실업을 당하게 되면서
파업이란 무기를 사용하여 이에 저항한다. 그러나 노조의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에겐 파업기금이 지급되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속출하였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다시 조합에 가입하고 있는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실제 동독
대중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천하고 피상적인 수준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이들의 직접 경험이 부재한 상태에서 실생활과 분리된
사상이데올로기적 경험에 지나지 않았던 상태의 문제점을 보면서
우리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주체사상 중심의
‘사상무장’ 또는 사회주의 사상교육 강화를 통한
사회주의강화논리에 대해 필자는 아주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강의에서 다룬 주제에 대한 이해에서 우리는
현실사회주의가 70년대 이후 특히 비효율적인 상태로 유지되는
문제상황을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계기 또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았던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현실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이념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고, 이를
이해하는데는 냉전적 진영대치 현실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한다고 본다.
문: 소유에서의 노동자 소외와 행정적으로 이식된 사회적
공공성에 대해 설명해달라.
답: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기업의 소유구조에 대해서 보기 위해
최근 동구유럽 체제전환 및 사유화․민영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역으로 유추해 보기로 하지요. 이 과정에서 예를 들면
전에 관료로 있던 사람들(노멘클라투라라 할 수 있음)이 법제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소유권을 자기 것으로 쉽게 전취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대중들이 법적으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인 것들이 없다라는 거죠. 특정 관료들이 거의
소유권에 대해, 없는 소유권을 보장되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몇몇 소수에 전유되는 것이 가능한데에서 대중들이
소유권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현실사회주의에서는 사회적인 공공성에 대한 강조는
그 기본 이념으로서 작동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공급결핍
사회에서 이러한 공공성의 강조는 다른 한편 권력관계에 의해
왜곡될 여지가 많이 있었다고 봅니다.
문: 소유로부터 소외되는 부분 못지 않게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소외가 컸다고 생각하는데?
답: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가지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노동과정에서의 소외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즉 노동자들이 노동력의 적절한 배치 및 그
결정과정에 개입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동구에서
실제 노동자들의 노동과정에서의 권리라고 하는 것이 많이
실현된 것 같지 않습니다. 현실사회주의에서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이었지요. 그런 측면에서 노동자의
소외를 말할 수 있습니다.
통독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실업에 봉착하면서 겪게된 고민이
경제적으로 사회적 구조에 떨어져서 도태되기도 하지만,
노동과정에서 탈락되는 자체에서 나오는 문제점도 봐야한다고
봅니다. 즉 노동력은 노동과정에 결박되어 있음으로써 피폐화를
방지하고(노동력의 가치라는 것도 유지되고) 업그레이드될 수
있지요.
실업이라는 것은 노동력 가치 자체가 피폐화되는 것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동과정에 결합된 과정에서
구조조정도 있어야 사회적 가치도 확대돼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사회적 비용이 상당히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봅니다.
문: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대해 설명해 보라.
답: 경제개혁, 즉 체제적 측면에서 경제 효율성을 향상시키려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도입의 우선적인
목표였습니다. 그 결과 실제 강고히 고착되어 있는 체제 뿌리인
관료체제에 의해 관철이 안 되는 겁니다. 위에서 내려가는
부분들이 밑으로 전혀 전달되지 않고 각 기업이 독립채산제,
투입산출 관계에서 독립채산구조라 하더라도 운영이 안되거나
다른 식의 정치적 참여기회를 열어 놓으려해도 되지 않는 거죠.
그 과정에서 고르바초프가 문제시한 건, 언로가 개방되지 않은
것의 문제점들, 개혁세력들이 상부에서까지 개혁할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개혁의 노력을 하지만, 86․7년 체르노빌
문제에 대해 중앙에까지 보고되지 않고 아래에서 은폐하려다
서방 언론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러시아에도 알려지게
된 겁니다. 인민대중들이 직접 피해당사자인데도 불구하고
긴급한 대피 등의 조치를 취하기보다 쉬쉬하여 대충
무마하려했던 것이지요. 서방언론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기존 공식적 언로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저항적 집단 내에서의
불신감들이 급팽창하게 됩니다. 그를 통해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증폭됩니다. 그래서 글라스노스트가 힘을 받아 추진됩니다.
문: 현실사회주의 체제자체가 우리의 기대보다 너무 쉽게
무너졌다.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 문제점이 더 큰데, 개방이라는
것 떄문에 쉽게 무너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답: 현실사회주의처럼 언로가 폐쇄적인 사회에서 이의 개방은
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특히 체제의
기본이념에서 자본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경제현실적 측면에서 대중들의 눈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 대중들의 불신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이때 내부적으로 개혁이라든가 그 계기들을 포착할 수 없는
체제간의 대립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민주적인 요구들을 수용해
체제 자체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회가 역사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었던 점들이 고려돼야 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중들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는 공급결핍이 아닌 수요결핍의
경제상황이었던 반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사회주의에서는
공급결핍현상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사회주의가 가진 인간의 가치, 자발성, 자본주의의 경쟁에
따른 폐해 등을 극복해내야 한다고 보는데,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해 답을 찾아갈 것인가?
답: 솔직히 답은 없습니다. 대안적인 것이 어떤 것이 있을
것인지, 특별히 일국사회주의의 가능성이 있는가에 개인적으로
답은 없습니다. 특히 북한에서 사상의식 교화를 통한 사회주의
인간형의 강화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서 한
인간의 형성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의식적인 노력으로서만,
전적으로 개인의 의식적 자각을 요구함으로써 가능하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개인에게 억압으로 다가오는 것을 통해서는 긴 호흡을
견뎌낼 수 없습니다.
대안적인 길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할 것인 가에는 답할 수
없고, 단지 사회주의 사회주의적인 이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건 현실적인 힘을 얻어갈 것이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단순한 거대담론체계에서 가치판단의 문제로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는 현실과정에서 좀더 세분되고 과학적인 개념적 장치를
개발하여 주류이론의 개념적 지배성을 공격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현재의 상태에서는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는 개념들, 대안적
가치의 사회적 정당성과 지배력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문: 공기업에서의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제안된 경쟁체제,
즉 한국에서 공기업을 유지하고 공기업 내에서 경쟁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결국 경쟁을 인정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민주의자나 공산당에서
일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시장경제 도입에 적극적인 입장이
있는데 이와 차이는?
답: 시장의 도입과 경쟁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이를 부정하는 어떤 대안적인 것이 상대적 열위를 극복할
수 없으리라 보기 때문이죠. 노동자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것들,
그것은 단선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세계화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처럼 세계경제에 목을 메고
있는 그런 사회에서는 그 관계 자체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내국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행기적 과제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해외경제에의 의존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의
발전전략을 잡아나가는 것이 과제라고 보고, 이는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부의 분배구조가 잘못되어있고,
기형적으로 소수에 장악되어 있음으로 인해 지나치게
대외의존적인 경제구조에서 더욱 자립적인 경제구조로 이행하는
과정이 잘 안되고 있다는 사정에 착목하고, 부의 공적인 재분배
과정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논리들을 끌어들여 담론구조를
변형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구조를 좀 더 자립적으로 갔을
때에만이 노동자들에게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상황을 돌파할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봅니다.
자주적인 경제시스템으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사회적인
總가치로 보면 가능한데, 불균형적인 소유의 문제, 수요의
기형적 편제에서의 문제점이 있다고 보거든요. 세계경제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좀더 자립적인 경제구도로 가는
상태에서 대안적인 것을 만들어갈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