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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셰비치 재판의 이면

현장에서 미래를  제69호
박영자

국/제/노/동



밀로셰비치 재판의 이면


박 영 자
연구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의 국제전범재판이 국제적으로 큰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글은 이에 대한 한국 노동운동진영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번역 작성되어졌다. 먼저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하여 유고 연방과 이 사건의 전사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유고연방이란 이름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1946년.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 요시프 티토의 주도 아래 6개 공화국, 2개 자치주로 유고연방이 출범했다. 그러나 티토의 사망, 소련 해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영향 등으로 유고연방은 내전 끝에 1991년 해체됐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 4개국이 잇따라 독립한 것이다. 1992년 새로 출범한 현재의 유고연방은 2개 공화국, 2개 자치주(보이보디나, 코소보)로 구성되어 있다. 1992~95년 보스니아와 1999년 코소보에서 벌어진 소위 ‘인종청소’는 사회주의의 붕괴,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이루어졌다. 95년 7월 보스니아 내전 중 스레브레니차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 7,000명이 학살되었으며 코소보 지역에서는 알바니아계 이슬람교도 74만명이 추방됐으며 수만명이 학살됐다. 이러한 역사의 중심에 밀로셰비치가 있었다. 밀로셰비치는 1999년 코소보 사태 당시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강제 추방, 반인륜적 범죄로서의 살인 전쟁 규범 위반으로서의 살인 정치적․인종적․종교적 이유에 근거한 박해 등 4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소재한 유엔 산하 구유고 ICTY(국제전범재판소)는 밀로셰비치 등을 1998~1999년 코소보에서 이루어진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인종청소’ 등 전쟁범죄 혐의로 1999년부터 수배해 왔다. 그러나 애초 유고 내에서 처리하기로 합의됐던 이 사건이 서구의 국제정치적 문제로 인하여 국제전범재판소로 넘겨지며 경제적 이유로 하여 세르비아 공화국 총리의 결정에 의하여 밀로셰비치는 헤이그로 이송되었다. 이것은 미국, 유럽과 현 세르비아 공화국 총리 조란 진지치(Zoran Djindjic) 사이의 경제적 거래의 결과였다. 밀로셰비치의 이송이후 EU는 유고에 3억 유로를 지원키로 합의했다.
밀로셰비치는 7월 3일 오전 10시(한국시각 오후 5시) ICTY의 제1호 법정에서 열린 1차 심리에서 ICTY 자체의 적법성을 인정치 않는다면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다. 홀로 법정에 나온 밀로셰비치는 “이 법정은 잘못된 법정이며 기소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유엔 총회에서 승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법정은 불법이며, 따라서 나는 변호인을 선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3일부터 시작되는 구유고 국제전범재판소(ICTY)의 심리과정에서 자신이 10년 동안 권좌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서방 정부들과 맺은 밀약 사실을 폭로할 것이라고 밝혀 서방세계를 긴장케 하고 있다.
현재 유고는 서방측 원조를 얻기 위해 밀로셰비치를 인도한 진지치 총리와 밀로셰비치를 지지하는 세력간의 대립, 사회주의 진영 붕괴 이후 계속 문제가 되었던 인종과 종교적 문제 등으로 인하여 세르비아공화국과 몬테네그로공화국이 분리독립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올해 출범 9년째를 맞은 유고연방이 붕괴 위기를 맞은 것이다.

다음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The World Socialist Web Site, 이하 WSWS)가 실은 이 사건에 대한 논평 글이다.

밀로셰비치의 검거와 헤이그로의 이송을 둘러싼 사건은 발칸의 민주주의적 권리와 법의 실행을 주장하는 서구 정부들의 주장을 우스개 거리로 만들었다. 워싱톤은 현 세르비아 공화국 총리 조란 진지치(Zoran Djindjic)와의 야비하고 더러운 경제적 거래를 했고, 밀로셰비치의 ICTY로의 이송의 대가로 10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받았다. 미국은 이전의 독재자인 밀로셰비치와의 경제적 거래를 교묘히 묻어두려 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국제법에도 위반되는 밀로셰비치의 재판을 배후에서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세력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적 권리와 법의 실행, 인간의 권리와 정의가 현란한 수사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는 약소국들의 주권을 힘과 권력으로 침해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ICTY는 약소민족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적 유형의 개입으로의 복귀를 책임지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ICTY는 1999년 봄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US-NATO의 공중전의 절정시기에 이미 미국과 NATO의 발칸반도 정책에 기초하여 유고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도하였다. 제국주의 세력은 알바니아계의 인권이라는 수사학적 기치를 가지고 약소 국가의 정치에 직접 개입하였다. 즉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유고 내전에 깊숙이 관여하였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헤이그 재판은 보여주기식 재판의 성격을 가질 것이다.
미국과 유럽 정부가 1999년 발칸 전쟁에서 행했던 일련의 행위들은 밀로셰비치를 과거 10년 동안 그 지역의 재앙에 대한 유일한 책임자인 사악한 천재로서 묘사하고 선전함으로써 덮어지고 이러한 과정은 미국과 유럽 정부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
물론 밀로셰비치가 알바니아계에게 폭력적인 공격을 감행하게 하였던 맹목적 민족주의자(chauvinist)정책을 추구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워싱톤과 유럽 자본은 유고에서 일반적인 전쟁상태를 형성하였던 파괴와 불안정의 정책을 추구하였다. 유고의 일반적인 전쟁상태는 유고 연방과 분리 독립을 시도하는 각 세력들에게 계속적인 무기판매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제국주의적 힘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팔레스타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만약 인간성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한 국제 정의의 객관적 적용이 존재한다면, 밀로셰비치는 한국, 아프리카, 베트남과 그 밖의 수백만의 죽음을 초래한 행위를 하였던 미국과 유럽의 정치 대표들과 함께 동일하고 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참고문헌《
ꡔ조선일보ꡕ, 6월, 7월 기사.
ꡔ동아일보ꡕ, 6월, 7월 기사.
Chris Marsden and Barry Grey, “Behind the Milosevic trial: the US, Europe and the Balkan catastrophe”, 2001.7.4. (http://www.wsws.org/articles/jul2001/milo-j0 4.shtml)

2001-08-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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