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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기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폭력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69호
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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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기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폭력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이 현/연구원


현 시기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폭력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현 시기 정권에 의한 공권력 행사는 적나라한 폭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자본과 정권의 노골적으로 폭력적인 대응양상은 올초 정권이 ‘강한 정부’와 ‘힘있는 공권력’을 천명할 때부터 일정하게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지난 첫 민중대회 때부터 강경일변도로 나타났던 정권의 폭력적 대응은 4월 10일 대우차 노조원들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사태가 발생한 이후 잠시 자제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경찰에 의한 폭력사태는 캐리어 하청노조, 한통계약직노조, 울산 효성노조, 레미콘노조 등의 현장에서 끊이지 않고 나타났으며 더구나 거기서 보여진 폭력의 양상은 경찰의 묵인 혹은 동조 하에 구사대, 용역깡패마저 동원한 그야말로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바 과거의 공안정국과 비견할만한 아니 오히려 한층 심각한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폭력사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자본과 정권이 도발하고 있는 전면적인 폭력
현 시기 나타나고 있는 자본과 정권에 의한 폭력은 그 성격과 함의에 있어 이전 시기와는 구별되는 내용을 갖고 있다. 현재의 양상은 단지 이전과 똑같은 ‘폭력적 행위’들이 격화되었거나 우발적으로 시기가 집중된 것이 아니다. 즉 이는 현 시기 경찰, 구사대, 용역깡패 등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폭력은 단순히 노동운동에 대한 ‘대응’의 차원이 아니라 명백히 ‘공격’의 의미를 지닌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현 시기 한국 사회의 계급투쟁의 양상이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의 형태로 전개되는 이유를 명확히 인식해야 함을 의미하며, 그 폭력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 시기 자본과 정권에 의한 폭력은 무엇보다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면적인 폭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폭력양상들은 민중의 저항에 대해 모든 물리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철저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는 공권력 자체를 동원하는 직접적인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4월 10일의 대우차 사태는 물론 여의도 농성장의 건설운송(레미콘)노조에 대한 침탈 등 이제 공권력은 중립성의 가면을 걷어내고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적 탄압을 수반한 전면적인 개입으로 나서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공권력은 도저히 그 진위 여부조차 확인이 안되는 ‘신종화염병’을 핑계로 소위 비살상무기라는 고무총탄 등의 새로운 폭력수단을 동원하는 것에 이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공권력의 행사는 이제 경찰력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제 이러한 폭력양상은 철거현장과 파업현장에 생선회칼, 야구방망이, 쇠파이프, 전기봉, 가스총 등의 살인무기를 지닌 용역깡패와 구사대를 동원하는 것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경찰의 철저한 묵인과 비호아래 거의 테러와 린치에 가까운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의 폭력양상들은 가능한 모든 물리적인 수단과 방법을 공개적으로 동원하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현 시기의 폭력은 이전처럼 일시적이거나 간헐적인 폭력이 아니라 그 목적과 내용이 뚜렷한 철저하게 의도된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파업현장이나 농성장에 대한 공권력의 침탈과 폭력적 탄압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용역깡패나 구사대의 동원이 처음 나타나는 사태만은 아니다. 그러나 현 시기 나타나고 있는 폭력은 이전과는 달리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철저한 탄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자본과 정권의 폭력은 철저한 파괴와 진압 아니면 충분한 순종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선택지를 놓고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극단적으로는 노조 간부를 수배, 구속하거나 노조 사무실에 난입, 집기를 파괴하고 압수하는 등 노동조합 자체를 파괴하는 양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이제 악질적이고 극단적인 몇몇 특정 사업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일부 사업장만이 용역집단을 고용하고, 어용 구사대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자본들이 이들을 고용하고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는 사실 현 정세의 성격과 전개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기 때문이다.
현 시기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록 그 외적인 양상을 비슷하더라도 전혀 다른 의의를 획득하고 있다. 현재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재편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정치적 투쟁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투쟁은 독점적 자본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개방화-자유화-탈규제화를 기조로 삼고 있는 정권의 구조조정, 민영화 정책 등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이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생존권을 담보로 한 투쟁이며 정권과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지배의 기반과 이해관계의 존속유무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타협의 여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해관철을 위해 정권과 자본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저항과 투쟁에 그토록 폭력적인 대응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넷째,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정권은 자신의 폭력을 끊임없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두어 정당화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현 시기 드러나고 있는 무차별적인 폭력에 대해 사회 및 민중운동 단체들은 최소한의 법적 질서를 준수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권의 대응은 법의 내용 자체를 멋대로 해석하거나 법 자체의 개악을 추진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공관 100m 내 집회금지에 대해 궁여지책으로 시도된 1인 시위가 종로경찰서장에 의해 위법이라고 매도되는가 하면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던 건설운송노조원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연행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신고인원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40여명의 건설운송노조원을 연행하는가하면 신고시간을 25분 초과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교사 7명을 연행하는 등 공권력은 법 자체를 마음대로 해석하여 구미에 맞게 이용하고 있다. 나아가 지난 7월 5일 검찰과 경찰은 주요 도심지의 집회인원 500명 제한 및 집회시위의 범위와 방법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자신의 행동에 형식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이러한 사법당국의 온갖 시도와 소위 신종화염병 유포를 통한 경찰의 신종폭력수단 도입, 공권력 엄정집행을 이유로 강화된 민중, 학생운동 단체 성원에 대한 수배, 체포는 현재의 공권력의 폭력이 또 다른 측면에서 자행되는 양상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들의 폭력에 대해 ‘앉아서 당하라’는 식의 태도, 민중의 저항 자체를 꽁꽁 묶어놓으려는 시도는 그것이 지속되면 될수록 동의에 의한 최소한의 사회적 통합조차 유지되기 어렵게 만들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이러한 네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올 2001년 상반기에 자행된 일련의 폭력양상은 우발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현 정세의 귀결에 따라 드러난 자본과 정권의 의도적인 폭력이며 지속적인 정당화 시도를 통해 은폐를 시도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면적인 폭력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폭력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 어떤 관점을 세울 것인가.
현재의 폭력은 명백한 계급적 폭력이다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이 사회는 사회와 분리된 국가에 정치적 관계가 집중되고 따라서 정치는 제도권 영역의 정치로 한정되며, 경제는 정치가 개입할 수 없는 비정치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정치와 경제의 일정한 분리를 전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는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엄존하는 상황에서는 현존하는 사회의 계급관계를 은폐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국가는 다만 경제적 영역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지배계급의 일분파에 의해 작동될 뿐이며 이러한 정치의 영역에 궁극적으로 초계급적 이해가 끼어들 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적 의미에서 정치권력이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폭력에 다름 아니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정치권력의 행사가 국가권력의 형태로 드러난다.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권력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 국가와 사회의 분리라는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마치 그 자체가 경제적 영역과는 단절된 정치, 사회의 경제적 생산관계와는 분리된 어떤 실체로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특히 이것이 행사되는 각종의 경찰과 행정, 학교 등의 국가장치들은 이른바 공공성과 중립성이라는 표상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사회의 계급적 관계가 온존하는 한 이는 단지 계급적 공공성, 계급적 중립성일 뿐이며 오히려 국가는 중재자, 공권력의 이름으로 피지배계급을 통치하기 위한 각종 기제를 창출하며 동시에 계급간 갈등을 조절하고 이러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성, 중립성의 표상으로 국가가 나타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지배구조가 기본적으로 동의와 억압이라는 양날의 칼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한편으로 각종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요소와 계급타협적 사안을 동원하여 계급적 지배에 대한 동의를 획득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질서를 조금이라도 흔드는 근본적인 저항이나 투쟁은 철저하게 억압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가는 특정 계급에 의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억압, 즉 물리적인 폭력을 공권력이라는 이름 하에 합법적으로 독점하게 되며 자신의 이해관계와 지배질서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이를 즉각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사되는 합법적으로 독점된 공권력의 폭력은 단순히 폭력 일반이 아닌 철저히 계급적 폭력일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국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권과 자본의 전면적인 폭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공성과 중립성의 가면을 벗고 공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공권력의 폭력성은 과연 무엇인가. 나아가 공권력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있는 구사대, 용역깡패를 부추기거나 묵인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정권의 방침이란 도대체 어떠한 성격의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다.
현재 자행되고 있는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폭력은 명백한 계급적 폭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의 목적은 다름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철저히 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사회인지, 그 지배가 얼마나 강고한지 이러한 적나라한 폭력을 통해 민중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경찰 폭력으로,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의 테러와 폭력으로 노동자와 민중은 끊임없이 피흘리고 상처입고 구속, 수배되고 있지만 가해자는 아무도 처벌받고 있지 않은 현실인 것이다.
이는 올 상반기 진행된 상황들에 잠시만 눈을 향해도 선명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다음의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2001년 4월 18일 건설운송(레미콘) 노조원 폭행
- 부천유진공장 진입과정에서 용역깡패에게 폭행당해 조합원 4명 부상 당함. 용역깡패 60여명이 소화기를 뿌리고 폭행을 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실신. 현장에 있던 부천중부경찰서 경찰들은 신변보호 요청을 거부.
- 현장에 있던 경찰 300여명은 조합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신변보호 요청을 했음에도 맞고 있는 노동자들을 외면. 심지어 경찰은 실신한 조합원이 ‘맞아서 실신했는지, 햇볕이 뜨거워 실신했는지 어떻게 아냐’는 망발을 했다.

2001년 4월 22일 제일레미콘 노조사무실 침탈
- 오전 5시 30분 경 노조원 6명이 잠을 자고 있는 사무실에 용역깡패 50여명 난입. 이들은 잠을 자고 있던 노조원들을 짐짝 끌듯이 잡아끌고 노조원의 팔을 꺾고 뒷춤을 잡아채어 회사밖 정문밖에 내팽개침.
- 이후 용역직원들은 노조원들을 도로에 감금해 놓고 대형 렉카차를 이용해 노조원들의 레미콘 차량을 탈취. 믹서트럭 14대를 탈취하였으나 관할 구로3파출소는 이를 묵인, 차량도난신고 거부.

2001년 5월 1일 광주 대우 캐리어 농성장 무단 침탈
- 오전 8시 30분 박병규 본부장이 구사대가 뒤에서 던진 쇠파이프에 허리를 맞아 쓰러짐. 이들은 119 구급차 접근을 막은 채 박본부장이 나가지 못하도록 함.
- 오전 10시 용역깡패와 구사대가 쇠파이프와 소화기, 경찰진압봉, 최루까스분사기, 공포탄을 동원하고 지게차를 몰아 바리케이트를 밀치며 폭력해산에 들어가 농성은 10시30분에 종료. 농성자 8명은 집단폭행으로 중상을 당해 하남성심병원 응급실로 옮겨짐.
- 박본부장은 구사대가 계속 구급차와 의료진의 접근을 막아 8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누워있는 상태에서 방치했다가 11시 30분 넘어서야 풀어줘 하남성심병원으로 옮겨짐.

2001년 5월 17일 광주 대우 캐리어 아침 출근선전 참가자 집단폭행
- 아침 7시 40분께 출근선전전이 끝나고 정문 천막 앞에서 마무리를 하는 순간 용역경비 등 50여명이 달려들어 삽자루와 쇠파이프을 휘두르고 돌로 찍으며 하청노조 조합원들을 집단폭행. 특히 송영진 사무국장과 박홍용 조직부장을 대여섯명이 달려들어 집단폭행한 뒤 공장안으로 끌고 들어감. 두 사람은 캐리어노조 사무실로 피신했다가 경찰들에게 넘겨짐.

2001년 5월 31일 분당 - 한국통신114노동자에 대한 탄압
- 회사 관리부서 책임자들의 진두지휘 아래 동원된 청원경찰들이 오후 6시경부터 20-30여명 씩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114 여성조합원들에게 고의적으로 시비를 걸기 시작함.
- 오후 6시 20분 경부터는 본격적으로 청원경찰들이 1층 현관문 앞에 서있던 남성조합원들에게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 처음에는 한 두 명에게 집중적으로 자행되다가 나중에는 집단구타를 말리기 위해 달려든 다른 조합원들에게도 역시 마구 주먹질과 발길질이 자행.
- 청원경찰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와 6층 노동조합 사무실로의 진입을 시도. 입구에 있던 여성조합원들을 마구 구타.
- 이어서 1, 2층 농성장 침탈. 가방, 침낭, 음료수, 도시락, 홍보용 선전물 등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부숨. 순식간에 농성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함. 잠시 후 본사 노사협력실 직원들이 내려와서 아수라장이 된 농성장의 물품들을 밖으로 들어내는 등 매우 치밀한 대응을 보임. 이날 상황으로 당일 파악된 피해자만부상자 25명, 입원 11인에 이름.
- 이 때 현장에 주둔했던 800 여명의 경찰은 폭력사태를 방치. 뿐만 아니라, 당시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화장실에 숨은 여성 노동자들의 112신고를 받았으나 파출소 직원 1~2명만 출동해 폭력사태 예방을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상황파악만 하고 되돌아감.** 이상은 전국민중연대 (준)에서 발행한 “용역폭력․구사대폭력․경찰폭력 실태고발 자료”에서 발췌함.



현시기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계급적 폭력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현재의 노동운동 탄압은 이른바 ‘전노협 이래 최대의 탄압’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 탄압의 양상은 기간 민주노조운동의 그 어느 시기에 뒤지지 않는 폭력적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현재 이처럼 도를 넘어서고 있는 자본과 정권의 폭력, 소위 ‘강력한 공권력’의 천명이란 다른 측면에서 저들의 위기의식의 반영이라는 점을 읽어내야 한다. 나아가 이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이 어떠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핵심적으로 초국적 자본과 국내독점자본의 이해를 보존하고 남한자본주의의 축적․착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배계급 스스로의 능동적인 질서재편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비용의 민중전가, 착취강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대외적인 종속과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 억압 및 노동강도의 강화 위에서 작동해온 한국경제의 구조에서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와 노자간의 계급대립의 첨예화로 귀결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민중생존권 파탄 및 사회파탄의 상황은 집권여당 정국운영의 상시적인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2000년 총선의 패배와 2001년 보궐선거에서의 패배는 집권여당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이들이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위해 이니셔티브를 재창출하려는 온갖 시도를 우리는 야당과의 끊임없는 정쟁, 언론사 세무조사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지속적인 집착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자행되고 있는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과 전면적인 일련의 폭력사태는 이러한 정권의 위기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의 국면이 이처럼 자본과 정부의 노골적인 폭력성으로 현상되는 만큼 노동자들의 대응 역시 정면대응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비록 아직 폭발적인 응집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지만 최근에 보여지는 노동자의 투쟁은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즉 현재의 투쟁은 무엇보다 이전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같은 명목적인 정권투쟁이 아니라 명확히 자본을 대상으로 설정하고 그 집행권력으로서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97년 총파업처럼 우연적이고 외부적인 계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요구와 조건에 따라 필연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투쟁인 것이다.
자본과 정권의 계급적 폭력은 앞으로 더욱 적나라한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사회질서재편에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정확히 일치시키고 있는 지배계급으로서도 우회로가 없는 선택이다. 나아가 이에 따라 한국전쟁 이래 처음으로 전면적인 계급적 요구와 세력간 분기가 대중운동의 수위에서 분출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격언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폭력의 작태는 스스로 위기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조건을 새로운 기회로 전화시키는 노동운동의 대응이다. 역사적으로 자본과 정권의 억압과 폭력에 대한 노동운동의 돌파구는 전면적인 연대투쟁을 통해 창출되어 왔다. 전계급적 이해와 전민중적 요구를 걸고 투쟁하는 연대투쟁이야말로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이 지닌 형성하는 사회적 힘이며 응집력이다.
현 시기 자본과 정권의 전면적인 폭력 양상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읽어내야 할 것은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그것의 계급적 성격뿐만 아니라 이에 맞서 점차 달구어지고 있는 연대투쟁과 대중운동의 전망과 방향이다. 한/노/정/연

2001-08-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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