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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역사
ꡔ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역사(87-95)ꡕ
울산노동정책교육협회 엮음
이 공 순 (전 한겨레21 기자)
한치 건너 있는 국외자로서 노동운동사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서투르고 부담이 가는 일이다. 몇 년간
눈동냥을 해 오기는 했지만, 그 때의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이
땅에서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남의 일
같지 않게 확인한 터라, 그 어려움을 헤치고 싸워온 궤적에 대해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 또한 주제를 넘어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까닭에 ‘87년 이후의 영웅적 투쟁’에 운운하는
상투적인 찬사들은 굳이 길게 끌고 나가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오히려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익명의 저자들도 그랬겠지만,
이 짧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은 87년 이후 울산지역, 특히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노동운동과 관련해 그때그때 발표된 문건을 모은 것이다.
형태상으로는 자료집이지만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비교적 일관된 하나의 입장에서, 따라서 노동운동
내부의 다양한 견해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운동에 개입해 온 기록들이며, 지역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지난 9년간의 전체 노동운동 속에서의 특정한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자료집에 실린 50여편이 넘는 문건들은 크게 3가지 관점에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노조관’에 대한 것이다. 노조를
‘계급조직이자 대중조직’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이들의
입장은 운동노선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번째는 바로
이들의 운동노선에 관한 것인데, 무리를 감수하고 굳이
개념화하자면 ‘정치투쟁의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는,
특히 이 자료집이 주로 현중, 현자를 대상으로 한 문건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대공장 중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노동운동의
전개과정 속에서 대공장 노조들의 입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먼저, 노조관부터 살펴보자. 한국사회 변혁운동, 또는
노동운동에서 노조의 위치와 역할에 관한 논의는 실상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적게 논의되어 온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집 역시 노조관이 집중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언급들이 실려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들은 명시적으로 노조를 ‘계급조직이자
대중조직’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이런 관점은 아주
원론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계급조직’과 ‘대중조직’의 비중에는 조금씩 편차가 있다.
90년 무렵까지는 이들의 노조관은 ‘계급’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자생적 투쟁만으로는 역사적 발전도 새로운
사회도 불가능하다. 그 투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정치활동일
수밖에 없다... 전노협과 대공장 민주노조는 정치활동을
중심으로...”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노조가 계급적인 정치활동의
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91년을 지나면서는 그 축이 ‘대중조직’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94년에 씌여진 ‘새로운 전진을
위하여’(현대자동차)라는 문건에서는 “남한 계급운동의
조건에서 대공장 민주노조는 일상적인 공격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받아 왔다. 이후로도 물리적 공격만이 아닌,
이념적, 제도적 공격 등의 고도함이 추가된 조합장악-침탈, 혹은
무력화의 모습은 반복될 것이다. 결국 제기되는 문제는 조합의
형식적 안정성이 아닌 계획과 판단에 근거한 상황과의 대결이다.
조합은 대중조직이라는 성격, 그로부터 제기되는 한계를 갖고
있는 투쟁수단에 불과할 뿐이다.”(2권, p.300)라고 주장한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조합은 대중조직이라는 성격...’이라는
말 앞에는 ‘노동자 계급운동에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87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노조’가 갖고
있는 특수한 역사적 전통이다. 정당이나 기타 정치적 대표체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땅의 노조는 의도와 무관하게
부분적으로 계급적, 정치적 성격을 부여받아 왔다. 그것은 이
자료집의 필자들도 다른 문건에서 ‘대공장 노조 스스로의
정치세력화’라고 썼을 만큼 일상화된 어법이었다(역으로 본다면
노동자 이외의 정치적 대표체가 배제되어 나간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간극은 대단히 크다. 그런만큼 이 자료집이 강조하고
있는 ‘정치투쟁’에서 노조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한 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계급운동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이 자료집에서
두번째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정치투쟁에 대한 강조이다.
실상 바로 이 부분이 이 자료집 전체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 자료집은 골리앗 동맹파업을
정치파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규모 독점사업장의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정치적
총파업투쟁!...이후의 과제는 이런 계급의식을 조직적으로
완성시켜 내는 것이다.”(‘골리앗 전사들, 노동운동의 자생성에
종지부를 찍다.’ 1권 p.84) 골리앗 동맹파업은 사업장을
뛰어넘은 연대투쟁인 것은 틀림없지만 정치적인 내용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대중적 진출이 일상화되었던
당시의 정세 효과 속에서, 현대중공업이 노동운동 탄압의
상징적인 보루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현중의 투쟁은 바로 자기 사업장의 조건과
마찬가지이며 현중에 대한 탄압은 바로 자기 사업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즉, 연대의
현실성은 개개의 노조들이 자기 사업장의 조건으로 인식했다는
데 있다. 국가의 개입과 그 개입으로 말미암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폭로됐다는 정치적 의미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정치적
총파업투쟁이라고 규정하는 데는 비약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골리앗 동맹파업의 주된 고리는 ‘공권력의 불개입과 노사간
자율타결’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정치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정치투쟁을 규정짓는
주,객관적 조건에 대한 판단은 별개의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골리앗 동맹 파업이 계급의식의 표출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 자체로서 계급의식이 성숙되어 있으며 단지 이를
조직적으로 완성하면 되는 것으로 보는 태도이다. 이것은 다소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싶다.
이 자료집에서 가장 명확하게 노동자의 정치투쟁과 정치조직화를
주장하고 있는 ‘상반기 노대위 사업에 대한 평가’라는 문건을
살펴보자. 지난 91년 5월 정국 및 박창수 위원장 사건과 관련해
결성된 노대위에 대한 평가를 통해 “민주노조 총단결의 상을
제시한 점에서 즉, 산별로의 발전전망이 업종별 공동투쟁,
공동임투 등을 투쟁동력으로 하는 것이 아닌 위로부터의
정치투쟁에 기초해야 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이 문건은 주장한다.(1권 p.180) 따라서 “권력과의 대립을
노조를 넘어서서 인식한 가운데 민주노조 그 자체의 강화의
동력에 근거하지 않은, 노조를 넘는 정치적 자각과 이에 근거한
연대의 현실성을 입증해 준 점에서 그 의의가 있으며 아울러
이는 현단계 선진 노동자의 진출지점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p.183)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산별의 전망이 노조들의
공동연대투쟁보다는 ‘위로부터의 정치투쟁’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은 주장 자체의 원칙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산별 역시 결국은
대중조직이라는 점을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같은 노선이 현실에서 ‘투쟁’으로
전화할 때는 다분히 도식적인 전략이 배치될 수밖에 없다. 이
문건은 “정치선동이 현실의 과제로 오고 있음을, 정치파업이 현
시기 핵심적으로 확보해야 할 투쟁 양식임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현시기 우리가 획득해야 할 투쟁양식은 민주주의적 요구에
기초한 정치파업이다. 선진 노동자의 의식적 활동 속에 선진적
사업장에서 전개되는 정치파업은 중,후진 사업장의 경제파업을
촉발시킬 것이며 나아가 (정세의 진행과 맞물리면서) 경제파업은
정치파업으로의 전망을 갖게 된다. 이러한 정치파업-경제파업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서 노동자 계급은 단련되며 여기서 획득된
정치적 경험과 의식, 독자적으로 준비되어지는 행동 전술들이
대중적 투쟁의 기세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인 것으로 보인다. 선진노동자의
‘대오’에 대해서도 과대평가라는 비판의 여지가 남아있다. 이
점은 자료집에서도 각주를 통해 “물론 이는 객관적인 의미
부여이며 당시 선진 노동자의 의식이 이렇게 철저한 자각에
기초했던 것은 아니다”(p.183)라고 인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노협과 결합 못할 만큼 취약하다던 대공장 노조가 앞뒤가 맞지
않게 갑자기 ‘선진적 사업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91년
이후의 진행과정에 비추어 볼 때 노대위가 권력과의 대립전선을
형성하게 됐다는 평가는 자의적인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
점과 관련해서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립전선’이라는 그 간의
규정에 대해서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태를 때 이르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한 연구자의 평가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이 전노협과 대공장노조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단지 전노협과 관계만이 아니라 87년 이후
노동운동을 결정지은 가장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며 오늘날
민주노총 결성으로 귀결된 노동운동계 내부의 역학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자료집에서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전노협을 ‘중심’에 놓고 대공장이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합류의 방식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전혀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먼저 전노협 합류를 주장하고 있는 「진단과
방향」이라는 문건을 좀더 살펴보자. 예컨대
「대공장노조연대회의」가 출범하던 90년 하반기에
나온 ‘대공장 노조 민주화 운동의 진단과 방향’이라는
문건에서는 “물론 지금 당장 대공장 노조가 전노협에
합류하기는 무리가 따른다.”고 잠시(그러나 영영이 되어버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유보의
이유는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을 포함한 다양한 일상 투쟁으로
단련된 조합원들이 핵심을 이루는 선진 노동자 집단이 대공장
노조 민주화 투쟁에서 형성되어 왔으나 대공장 민주노조의
현주소는 대중투쟁에 의한 방식이 아닌 선거를 통한 집행부
교체, 민주파의 대중적 기반의 취약성, 연대운동의 지도력 부재,
불투명한 전망으로 인한 단위노조의 매몰 가능성 등의 모습을
노정”하고 있는 대공장사업장 노조의 현황 때문이다. 이같은
대공장 노조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보다 솔직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전국 동시 쟁의돌입과의 결합은 사실상
힘들어졌다....동시 쟁의돌입이 현 여건상 무리임과 함께 전국
노동운동의 선진적 부분의 결합이고 현대자동차에서는 아직도
전노협이 선도적 조직이지 자신과 함께 해야 할 전국 노동운동의
단결 구심으로서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점, 전노협보다도
현대계열이 더욱 가깝게 생각되어지고 있다는 현실 또한 충분히
고려되어져야 한다.”(‘91년 현대자동차 임투의 승리를
위하여’, 1권, p.164) 그러나 90년 당시의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전노협 소속 노조 중에 극히 소수의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과연 얼마나 이같은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현총련 소속 노조들이 일부 중소기업노조로부터 “우리를 위해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는 비난을 받은 것도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이같은 점은 중소기업 위주의 전노협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반박하면서 사실은 모순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서는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의
두가지 측면이 제시된다. 하나는 “노동자 계급 운동 전체에
대한 정책, 기획의 지도 역량으로서의 전노협”이라는 규정으로
그 지도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곧바로 “전노협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의 연대체”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민주노조 운동은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의 주변에 결집되어야 할 대상이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전노협은 대공장 주위에 보조역량으로 존재해야
하는 대상으로 격하되고 만다. 이같은 규정은 “그러나 전노협의
지도역량이 그 자체로서 당위적으로 주장되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대공장의 민주노조 운동은
중소기업과는 다른 특수한 발전 경로를 가지고 있고 전노협의
지도역량은 지금까지 그러한 지도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노협은 먼저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연대의 구심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 지도해 나가면서 대공장 노조를 견인해
나가야 한다.” 그 견인의 방향으로 제시되는 것이 민주적
산별노조의 건설이다. 그리고 “전노협의 현실적 임무는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에 대공장노조를 세워내는 것이다. 즉,
대공장 노조를 중심으로 한 산별체제로의 재편을 지도해 내는
것이야말로 현 시기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의
사활적 과제이다.”(1권, pp.110~111) 사실상 이같은 견해는
현실에서는 전노협이 대공장 노조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식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게 된다. 전국적 노동운동의 상징적
구심체로 인정받고 있는 전노협이 자기 조직바깥에 있는,
심지어는 “전노협보다는 현총련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대공장을 위해 ‘사활을 걸고’ 복무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라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주장이다. 또 다른
문건은 산별로의 이행경로에 있어서 “민주노조 총단결의 형식을
전노협, 업종회의, 연대회의의 수평적 결합으로 보는 견해에
반대한다면서” 이는 “전노협을 중소기업의 결합으로 보는
협소한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현대자동차 민주노조 운동의 전망과 과제’,
1권.p.228).
그러나 대공장 노조의 역할이라는 부분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얘기가 달라진다. “대공장 노동운동은 투쟁의
파급력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여타 관행의 파급이라는
측면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공장
스스로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한다. 이는 “대공장 노동운동이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조직적 전망의 제시와 그 주체로 나서야
함을 의미한다.”(‘현대자동차 민주노조 운동의 전망과 과제’,
1권 229쪽) 이같은 주장은 결국,‘협소한 시각’을 비판한다면서
그 협소함을 이유로 전노협을 대공장노조 아래 종속시킨 것에
다름없다.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이 전노협이라면서 주체는 (아직
전노협에 결합하지 않은) 대공장 노동운동이라는 것은
‘중심’이라는 표현이 현실에서는 수사학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후의 현실은 결국 전노협이 그런 과정을 밟고
말았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규정은 말만 바꿨다뿐이지 내용상 ‘대공장 중심론’에
불과하다. 실상 대공장과 전노협의 ‘정치투쟁의 연대를 통한
결합’이라는 주장은 바로 대공장 중심론과 ‘정치편향’의
결합간의 산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쨌든 이같은 판단 하에서 전국노동운동 흐름에로의 합류
경로는 “전노협과 대공장 민주노조는 정치활동을 중심으로
연대활동의 축을 잡아야 한다”(1권 p.123)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까지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공장별
경제선동, 경제투쟁’이란 방식은 한 걸음도 그 이상으로
벗어나보지 못한 조직화와 투쟁의 가장 전형적인 내용이다. 물론
당연히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며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으로
발전해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경제투쟁의 가장
대중적 형태’인 전투적 노동조합주의가 지배적이던 당시의
시점에서 정치투쟁에 주목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대중조직인 전노협과 대공장노조의 결합에
있어서 중심축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대공장 중심론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대중투쟁에서의 전략적
배치라는 입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대규모 독점 사업장에서의
의식적인 정치적 동맹파업과 후진사업장에서의 경제파업간의
결합이라는 전형적인 투쟁의 양상”이 이들이 제시하는
기본구도이다. 그러나 왜 이같은 구도가 제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충분하다. 더구나 현실에 적용될 때는 다분히
도식적이기까지 하다. 90년대 초까지의 상황 속에서는 이 책도
인정하고 있듯이 가장 기본적인 경제투쟁조차도 객관적으로는
정치적인 성격을 부여받았으며, 그리고 가장 지역적인 개별
기업의 쟁의조차도 전국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의도한
결과라기 보다는 국가와 자본의 공격에 대응한 방어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전노협 결성 초기
대국가, 대자본 전선이 노운탄 분쇄로 정리된 것도 바로 이같은
상황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정치투쟁으로 바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조급해 보인다.
전노협에 대한 대공장의 이같은 2중적 태도는 실제 전노대의
결성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들은 “현재와 같이
민주노조운동이 일반화되면서도 상호간에 원심력이 작용하고
그리하여 전노협의 사업관장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대표자회의를
상설화시키고 나아가 민주노조 총단결조직으로 격상시킨다면
전노협의 위상이 약화되는 것은 분명해진다...민주노조운동의
하향평준화.”라고 지적한다. 또 대표자회의 결성에서
노동운동단체가 제외된 데 대해서도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근거로, 전노협 대다수 관계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공장 동지들의 다수는 단체와의 결합을 거부했다.
하지만 노조만으로, 대중이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사업을
기획한다면 민주노조총단결에서 요구되는 국가권력에 대한 높은
정치의식,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각성은 요원한 일일 것이며,
산별노조 쟁취의 시기도 멀어질 것이다”(‘민주노조 총단결과
산별노조 건설에 대하여’, 2권, p.97)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에 사실은 대공장도 한 몫하고 있다는
점은 다시 한번 검토해 볼만 하다. 실상 이같은 평가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집에서 보여주는 논의들은
적어도 확고한 계급운동 시각을 유지하며, 지난 시기 노동운동을
뿌리부터 좀먹어 오고 있는 경제주의, 개량주의와는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아마도 이 점이 이 자료집에서 가장 크게 평가받을
만한 장점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들이 더 도드라져
보인 이유는 그것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제들은 지난 9년여의 ‘영웅적인 투쟁’이 그랬듯이
그 고단함을 뚫고 값진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왜냐하면, 일찌기 ‘고전’에서 말했듯이, 그 힘은 우리의
존재조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종속은 이전의 종속에 비교해 볼때 진보적이다....왜냐하면
이 종속은 노동자계급의 정신을 각성시키고 지리멸렬한 무언의
불복을 의식적인 항의로 변화시키며, 작고 분산된 의미없는
반란을 모든 근로인민의 해방을 위한 계급투쟁으로, 그 힘을 이
대규모 자본주의의 존재라는 바로 이 조건으로부터 얻으며
따라서 의심의 여지없이 일정한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