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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의 위기와 장기침체의 원인

현장에서 미래를  제70호
김두한




일본 경제의 위기와 장기침체의 원인

김 두 한/연구원




들어가며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2000년 말부터 본격적인 경제위기와 침체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간 친자본적 지식인 및 언론들은 ‘신경제’ 운운하며 장기 호황을 찬탄해마지 않았으며, 지속성장을 떠들어 왔지만, 2001년 다시 마이너스 및 저성장으로 돌입하고 있다. 이는 90년대 초 경제위기의 재판이며, 오히려 더욱 심각한 수준을 초래할 것이다. 현 경제위기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한계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본경제도 이러한 전세계의 경제침체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일본의 주가는 지난 17년 전 수준으로 내려앉으며 1만선 붕괴의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내 총생산은 사실상 1~3월 중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4~6월 마이너스 0.8%를 기록했다. 그리고 7~9월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제조업의 잇따른 구조조정으로 실업률은 사상최고인 5%를 넘어섰다. 일본의 내각부에 따르면 일자리 찾기에 지쳐 취업을 포기한 사람을 실업률에 포함하면 10.4%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경기침체와 실업의 증대는 다시 소비지출의 감소를 초래하여 23개월 연속하락세를 보이고 있다.1)

그런데 일본 경제의 현 위기는 미국 및 유럽 등의 위기와는 다른 점이 있다. 즉, 현재 일본의 경제위기는 90년 이후로 회복다운 회복이 없이 장기침체에 빠져 있다. 이하에서는 90년대 일본 경제를 장기간 침체로 몰고 간 원인을 살펴봄으로써, 자본주의 경제 및 신자유주의 정책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경제 위기의 원인과 ‘버블’론의 기만성

90년대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의 원인은 91년부터의 경제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일본 경제위기와 장기침체의 기본적인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주장되는 것은 86~92년 간의 소위 ‘버블(거품)’과 그 붕괴다. 이는 마치 거품처럼 팽창되어 있던 금융을 매개로 한 투기가 일시적으로 붕괴하는 것을 빗대는 표현이다.


“85년 엔고 후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및 금리인하로 불황극복을 유도하였다. 87년에는 공정할인율(이자율: 인용자)을 1985년 말 5.0%에서 사상 최저치인 2.5%로 인하하는 등 통화공급을 증가시켰으며, 금융자유화로 해외의 저리자금 조달을 활성화였다. 토지와 주식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였으며, 이로 인해 담보가격의 상승과 저리자금으로 인한 왕성한 설비․주택투자가 발생하였으며 자금시장에서는 머니게임이 일어났다. 이것은 주가상승을 한층 더 부추겼고 80년대 후반에 버블이 발생하였다(버블이란 토지나 주식 등의 자산의 가격이 실제가치를 괴리하여 부풀어 오른 부분을 말함) … 버블의 정도를 보면 86년 2월 일경평가주가는 1만 3,000엔 대였으나 90년 12월에는 3만 8,000엔 대까지 상승하였다. 전국 시 지가지수는 90년 9월에는 85년 3월의 3배를 초과하였으며, 상장기업 자금조달액이 86년에는 4조엔 이었으나 89년에는 17조엔으로 증가하였다 … 이러한 금융긴축과 부동산 관련 대출억제책은 지가․주가 등 자산가격의 폭락을 유발하였다. 89년 대비 97년 주가는 57.3%가 폭락하였으며, 91년 대비 96년 상업용 지가는 약 30%나 하락하였다. 동 기간 중에 주식 및 부동산을 대랑 매입한 기업과 금융기관은 보유자산의 평가손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되었다.”2)


그러나 일본 경제를 포함한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버블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행위다. 왜냐하면 ‘버블’이란 실제 자본주의적 생산과 분리되어 혹은 무관하게 금융을 매개로 한 투기현상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3) 사실 자본주의의 어떤 경제위기도 금융(신용)을 매개로 하며, 투기를 수반한다. 그리고 또한 경제위기는 잘못된 금융정책으로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단순히 금융적 현상 혹은 투기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위기의 원인을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다.


<표 1> 주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성장률(GDP)

 

88년

89년

90년

91년

92년

93년

94년

95년

96년

97년

98년

99년

00년

미국

4.2

3.5

1.8

-0.5

3.1

2.7

4.0

2.7

3.6

4.4

4.3

4.1

5.0

일본

6.5

5.3

5.3

3.1

0.9

0.4

1.0

1.6

3.5

1.8

-1.1

0.8

1.5

독일

3.6

3.7

5.7

5.1

2.2

-1.1

2.3

1.7

0.8

1.4

2.1

1.6

3.0

영국

5.2

2.1

0.7

-1.5

0.1

2.3

4.4

2.8

2.6

3.5

2.6

2.3

3.0

프랑스

4.4

4.1

2.6

1.0

1.5

-1.0

2.0

1.7

1.1

1.9

3.5

3.0

3.2

이태리

3.9

2.9

2.0

1.4

0.8

-0.9

2.2

2.9

1.1

2.0

1.8

1.6

2.9

캐나다

4.9

2.5

0.3

-1.9

0.9

2.3

4.7

2.8

1.5

4.3

3.9

5.1

4.4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DB.


91년 당시 일본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단지 버블(투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당시 세계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살펴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위의 표를 보면, 일본만이 경제위기로 빠져든 것은 아니라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89~93년 사이에 경제위기와 그 이후 경기침체를 겪었다. 이 89~93년에 걸친 세계 각국의 경제위기가 과잉생산위기라고 한다면, 유독 일본의 경제위기를 버블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외에 다른 나라들도 경제위기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버블(투기현상)을 겪었다.4) 따라서 일본 경제의 위기가 버블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잉생산이라는 본질문제를 은폐한 채 외관만을 설명하는 것이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 바로 지배 이데올로기들의 역할이라고 할 때 이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하에서 자본주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인 과잉생산을 중심으로 일본의 경제위기를 분석하고, 일본의 과잉생산과 극심한 투기와의 관련성을 분석하겠다.

그런데 이런 ‘버블’론자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논리는 일본의 경제위기 이후의 장기침체를 설명하는 데 있다. 즉 91년 버블 붕괴로 인해 발생한 은행권의 부실채권이 일본 장기침체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실채권을 가진 은행권의 구조조정이 철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은행 도산을 중심으로 장기침체와 현재의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위에서 일본 경제가 93년을 저점으로 경제성장률이 회복과정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96년 3.5%의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5) 따라서 일본의 장기침체와 현재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96년 경제성장이 왜 다시금 97년에 정체되기 시작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일본 경제위기의 근원

앞의 표에서 본 것처럼, 선진 자본주의 경제가 모두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처럼 자본주의 경제가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이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에 근거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생산력의 무제한적 발전을 추구하고 그리하여 생산의 무제한적 증가를 초래하는 반면에, 노동계급을 포함한 국민의 대다수는 착취와 빈곤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6) 바로 80년대 일본경제는 이런 상반되는 모순이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훨씬 심했다.

앞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80년대 말 90년까지 그 어떤 선진국 보다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90년에는 이미 다른 산업국가들이 경제위기로 빠져들고 있음에도 독일과 함께 일본경제는 최고의 국내 총생산(GDP)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경제가 다른 선진 공업국에 비해 더 극심한 과잉 생산으로 치닫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점을 일본의 투자율을 통해서 좀 더 살펴보자.


<표 2> 일본 경제성장률과 투자율 (단위%)

연도

경제성장률

투자율Ⅰ

투자율Ⅱ

명목

실질

명목

실질

명목

실질

1984년

6.4

5.1

27.9

29.7

15.4

16.7

1985년

6.4

4.9

27.7

29.9

16.2

18.0

1986년

4.4

2.5

27.5

30.9

16.1

18.5

1987년

4.3

4.6

28.7

32.6

16.2

19.2

1988년

6.3

5.7

30.3

34.7

17.5

21.0

자료: 경제기획청, ꡔ국민경제계산연보ꡕ, 1990년판.

주: 투자율Ⅰ=총고정자본 형성÷국민총지출×100%, 투자율Ⅱ=기업설비÷국민총지출×100%


위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86년 플라자합의의 충격으로 성장률이 잠시 위축되었지만, 다른 선진국들의 경제성장율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투자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이윤율 지표인 경상이익률도 86년 잠시 위축인 된 후에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7) 이처럼 생산은 급속히 팽창한 반면에 노동계급의 임금은 극히 저조한 상태를 유지하거나 소득의 전체 비중에서 낮아지기조차 하였다.


<표 3> 각국의 임금, 노동생산성, 임금 비용추이(1977~86년) (단위%)

국가

임금

노동생산성

임금비용

일본

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캐나다

4.8

6.4

10.0

*5.1

*11.8

7.6

3.8

3.2

2.7

*2.9

*3.8

*3.2

1.0

3.1

7.1

*2.2

**8.4

*4.8

자료: 일본은행, ꡔ일본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비교통계ꡕ, 1987년.

주: *1977~85년 평균, **1977~84년 평균


위의 표를 보면 일본은 그 어느 선진국에 비해서도 높은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보였음에도 낮은 임금 상승률을 기록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낮은 임금 비용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정은 8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89년도의 전국 상장기업(1529개 사)의 경상이익은 12조 130억엔이다. 각사의 결산에서 노동분배율을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노무비의 비율로 산출하면 49%가 된다. 70년도에는 노동분배율이 50%대에 있었으나 각 기업이 전례 없는 이익을 계속 올렸던 80년대에 들어서서부터는 50%이하 수준으로 헤매는 해가 많아지고 최근 3년 간 계속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8)


이처럼 80년대 일본 경제는 급격한 투자와 생산의 증대를 기록하는 한편,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소득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불을 부은 것은 바로 소비세라는 대형간접세의 도입이다. 일본 자민당 정부는 10년에 걸쳐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소비세 도입을 시도하였고, 87년 이를 관철시켰다. 이로 인해 노동계급들의 부담은 증가했으며, 고소득층은 누진세의 부담을 덜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은 이 소비세를 절세와 탈세의 수단으로도 이용하였다. 즉 소득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일본 내 소비는 더욱 제한 받았다.9) 요컨대 일본 노동계급의 상대적 빈곤화의 심화가 바로 일본 과잉생산위기의 토대였다.

부언하자면 이런 일본 노동계급은 당시 OECD국가들 중에서 최장의 노동시간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런 장시간 노동은 다른 한편 일본 노동계급의 상대적 빈곤화의 심화를 보여준다. 이런 열악한 상황은 당시 일본 노동운동의 개량주의적이고 협조주의적인 투쟁도 한 몫 하였다.



일본 내 과잉생산의 격화와 플라자합의

앞서 지적한 대로 일본 경제는 여타 다른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더 극심한 과잉생산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과잉생산이 문제를  더 농축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시장으로의 수출을 통해서 과잉문제를 해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해외시장을 통한 과잉생산의 해소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필수적인 것이다.10) 그러나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달은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협소한 시장과 충돌하게 된다.11)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국가들간의 경제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 플라자합의도 그 중 하나였다.


<표 4>  국가 및 지역별 무역수지 (단위: 억 달러)

구분

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279

200

179

△101

△106

60

△365

181

267

△155

△80

41

△620

315

233

△82

△31

△13

△1,084

433

233

△41

△61

△55

△1,290

540

293

△45

△103

△10

미국의 對 일본

△158

△170

△211

△370

△430

자료: 통상산업부, ꡔ통상백서ꡕ, 1986년판.


위에서 보면 일본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는 수출을 통해서 생산이 확대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와 생산의 확대는 미국의 대폭적인 경상수지 적자에 그 토대를 두고 있었다.12) 이러한 결과는 소위 레이거노믹스라고 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인한다.

신자유주의의 성격의 핵심은 화폐소유자와 금융업자들을 위한 정책이듯이, 레이거노믹스의 핵심도 금융긴축, 그를 통한 고금리, 그 결과 달러고였다. 물론 이런 정책의 관철을 위해 감세정책이라는 전체 자본가계급을 위한 양념을 첨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13) 달러고의 결과 미국 제품의 대외 가격이 상대적으로 상승하여 수출이 줄어들게 되었으며, 반면에 원료 등 수입품 가격의 상대적 저하는 수입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경상수지의 적자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감세의 결과 재정적자를 초래하였다. 소위 이를 ‘쌍둥이 적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 레이거노믹스는 달러고를 통한 국내총생산의 확대와 과잉생산을 촉진하였다. 생활수단과 원료 및 기계 등의 가격하락은 미국 국내 자본의 이윤율 증대를 야기하는 요인이었다. 그리하여 미국 내 자본유입을 통한 투자의 증대와 생산의 증대가 발생하였다. 이런 사실은 79년 이래의 경제성장률에 반영되었다. 79년 3.2%, 80년 -0.2%, 81년 2.5%, 82년 -0.2%, 83년 4.3%, 84년 7.3%, 85년 3.8% 였다. 79년~82년까지는 오일쇼크 형태로 드러난 과잉생산위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83~85년의 고성장은 달러고에 의한 내수확대에 기인한다.14)

하지만 이 달러고에 의해 해외시장을 희생으로 한 미국 내 생산의 확대는 곧 한계에 다다르고 이는 경기하락 조짐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정책적 달러고로 인해 세계 각국은 수입물의 가격 상승과 자국금리의 상승, 그리고 채무국들에게는 이자비용의 증대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15) 이 시점에서 미국은 자국의 경상수지 적자 증대에 대한 국내의 반발을 계기로 국제적인 해결책을 찾는데 바로 이것이 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에서의 합의였다.

1985년 9월 22일 자본주의 주요국들이었던 미국, 일본, 독일(서독), 프랑스, 영국의 소위 G5가 모여서 정책협조에 합의한 것이었다. 즉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낮추기 위하여 높은 달러가치를 인하를 목적으로 G5를 중심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였다. 그 결과 9월 23일 달러에 대한 일본의 엔화는 240엔에서 일시에 220엔으로 급등하였다. 그리고 이 급등세는 지속되어 1987년 엔화환율은 143.775엔으로 1985년 9월 20일 대비 40.6% 가치가 절상되었다.16)

이 엔고는 이제 거꾸로 일본의 해외시장을 상대적으로 축소시켰는데 이것은 수출의 감소로 나타났다. 즉, 수출은 1985년 10~12월 기부터 전년도 동기 대비에서 보았을 때, 마이너스로 전락하였고, 1986년 4~6월 기에는 명목에서 19.5%, 실질에서 7.8%로 감소하였다. 이런 결과는 앞서 본 것처럼 일본의 실질경제성장률이 86년 실질경제성장률이 2.5%로 하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엔고는 원료 및 기계 등의 가격하락으로 인해 일본 자본의 이윤율은 상승하게되었다. 이로 인해 민간부문의 투자 증대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였다.17) 이는 앞서 본대로 국내총생산, 즉 경제성장률을 급격히 상승시켰다. 이는 일본의 과잉생산을 더욱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플라자합의 자체가 일본 경제의 과잉생산위기의 원인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플라자합의는 각 자본주의 국가들의 과잉생산이 충돌하면서 초래되는 현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과잉생산과 투기(버블현상)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

바로 이러한 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생산은 급격히 팽창한 반면에 노동계급의 상대적 빈곤의 심화는 곧 과잉생산을 초래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과잉생산은 자본주의의 신용제도를 매개로 해서 진행된다. 즉 “신용제도 아래서 사회적 자본의 큰 부분이 그것의 소유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소유자는 자기의 사적 자본을 사용할 때는 그것의 한계를 소심하게 타산하는 데 반하여 이 비소유자들은 소유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18) 그리하여 신용은 그 사회의 소비한계를 무시한 채 산업자본의 재생산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도록 몰아간다. 이런 생산의 확대는 동시에 소비를 확대시키며, 그리하여 그 정상적인 소비 이상으로 생산은 확대되었지만 아무런 문제를 노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 생산은 이 한계를 넘어서 위기로 전화한다.19) 요컨대 신용은 과잉생산을 현실화시키는 조건이며, 소비를 넘어서 구매하는 과도한 상업투기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 신용제도의 투기적인 성격이 일본에서 80년대에 적나라하게 관철되었던 것이다. 이를 야기했던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 및 개방화였다. 일본은 80년 12월 신외국환관리법을 제정하여 그 때까지 대부분 허가제였던 국내외 자본거래를 원칙적으로 자유화하고 그에 따라 일본 자본들이 외화에 의한 자금조달, 운용을 폭넓게 만들었다. 그리고 2년 후 미일 “엔․달러 위원회”를 통해서 예금금리 규제의 단계적 철폐, 금융 및 외환거래에 대한 규제완화, 선물외환거래의 실수요자원칙폐지, 동경 역외금융시장 및 동경금융선물시장 설립, 외국증권회사에 동경증권거래소 개방, 외국은행의 일본 내 신탁업 진출 허용, 유로엔 채권의 발행규제완화 등이 그것이었다.20)

이런 금융자유화와 개방화는 국내외 신용과 투기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리하여 이는 팽창하고 있는 일본 경제에 한 마디로 기름을 붙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금융자유화 및 개방화에 따른 신용의 팽창은 과잉생산을 더욱 격화시키고 또한 투기를 증폭시켰다.


“85년 엔고 후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및 금리인하로 불황극복을 유도하였다. 87년에는 공정할인율(이자율: 인용자)을 1985년 말 5.0%에서 사상 최저치인 2.5%로 인하하는 등 통화공급을 증가시켰으며, 금융자유화로 해외의 저리자금 조달을 활성화였다. 토지와 주식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였으며, 이로 인해 담보가격의 상승과 저리자금으로 인한 왕성한 설비․주택투자가 발생하였으며 자금시장에서는 머니게임이 일어났다.”21)


“또 하나 지적할 수 잇는 정책요인은 금융규제의 완화이다. 금융산업의 전반적 발전(?)과 새로운 금융상품의 출현으로 대기업의 은행의존도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이에 대처하기 위한 은행간의 과당 경쟁으로 중소기업, 개인, 그리고 급성장하고 있던 부동산업 부문에 대한 대출이 광범위하게 증가하였다. 따라서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고 위험 부담이 높은 자산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게 되었다.”22)


요컨대 일본의 90년대 과잉생산의 심화와 투기의 격화를 야기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와 금융개방화였다. 한 마디로 일본의 90년대 경제위기는 한국 및 동남아시아가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가 초래했던 동일한 결과를 먼저 겪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언하자면, 이런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는 미국의 압력에 기초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금융자유화와 개방화는 일본 내 독점자본 특히 화폐자본을 대표하는 은행 독점자본의 이해에 의해 관철되었다. 이런 은행자본의 권력이 증대한 것은 바로 일본의 막대한 흑자로 쌓인 달러를 그 배경으로 하였다. 이런 막대한 국제통화인 달러를 보유한 일본의 은행자본들은 국가경제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금융의 자유화와 개방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서 일본은 세계의 국제적 자금 공급국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당시 이런 일본 자본을 가리켜 저팬 머니(Japan money)라고도 하였다.23)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신자유주의

이제까지 일본경제의 위기원인이 단순한 버블이라는 투기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내재한 과잉생산과 그를 격화시키는 신용에 기반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와 금융개방화가 이를 가속화시켰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그런데 일본경제의 위기는 이런 ‘버블현상’ 외에도 장기침체라는 형태를 띠고 등장했다.

앞서 간단히 지적한 대로 ‘버블’론자들은 91년 버블 붕괴로 인해 발생한 은행권의 부실채권이 일본 장기침체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 따르면, 이런 부실채권을 가진 은행권의 구조조정이 철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은행 도산을 중심으로 장기침체와 현재의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권의 부실은 장기침체의 배경일지언정 결코 원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앞서도 말했듯이 일본의 경제가 93년을 저점으로 경제성장률이 회복과정에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96년의 3.6%의 성장은 회복세로 접어들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과잉생산을 위기와 그에 따른 침체를 통해서 해소한다. 이러한 필연적인 계기를 통해서만 자본주의라는 문제투성이 시스템은 다시 작동할 수 있다. 일본 자본주의의 과잉생산도 91년 위기와 93년까지의 침체를 통해서 해소되고 있었다. 그러나 94~96년 이후 회복되던 일본 경제는 다시 침체로 빠져들었는데, 이는 신자유주의적인 정부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에 의해서였다. 먼저 일본 경제를 직접적으로 침체로 몰고 간 직격탄은 일본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긴축정책과 노동계급 등 국민 대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증세정책이었다. 일본 정부는 경제회복이 안정적이라고 오판(?)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였다. 즉,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재정건거전법을 통과시키고, 본격적인 재정감축정책으로 돌입하였다. 그리하여 97년 재정감축을 12~13조엔 감축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정부의 소비지출을 축소하였다. 반면에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국민들의 희생을 수반하며 도입되었던 소비세의 세율을 3%에서 5%으로 인상하였다. 그리고 의료보험제도 개혁으로 2조엔 규모의 국민부담을 증가시켰으며, 공공사업비를 96년 대비 4조엔을 감소시켰다. 이러한 자본 특히 은행자본의 이익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본경제의 소비를 위축시켰으며, 주가는 급락시키고, 금융시스템의 불안정 및 기업의 연쇄도산을 초래하였다. 반면에 이자율은 상승하였다.24) 이처럼 97년의 연쇄도산은 91년 경제위기 이후의 부실채권의 처리 지연 때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정부정책 때문이었음은 명백하다.

이런 정부정책에 의해 촉발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였다. 먼저 자금 공급이 소위 시장에 맡겨진 금융자유화로 인해 금융위기는 훨씬 증폭되었다. 즉 위기에 봉착하여 은행들은 엄격하게 채권을 회수하였으며, 대출심사도 엄격히 하였다. 이런 대출 기피 현상에 의해 산업자본은 인원정리에 몰두하는 경향이 확산되어 고용 불안, 임금인하 등의 불안이 고조되었다.25) 이런 효과를 배가시켰던 것이 국내외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강요되었던 소위 ‘BIS기준 8%’26) 조기시정조치의 실행이었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의 대출금회수는 강화되었고 금리는 인상되었으며, 기업의 수익구조는 악화되고 부도는 급증하였다.27) 이 와중에 국내외 화폐자본가들은 금리 인상으로 이득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96년 경제회복이 다시금 침체의 국면으로 들어간 이유는 바로 신자유주의적 정부의 정책과 그간 진행되었던 금융자유화 및 BIS 기준 달성이라는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의 결과 때문이었다. 덧붙여 말한다면 일본 은행의 부실채권의 증대도 바로 이 신자유주의정책의 산물이었다. 97년 중반이후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 아시아 각국이 차례로 심각한 금융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던 바, 이로 인해 이 지역 최대 채권국인 일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바로 이로 인해 일본의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크게 증가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부실채권의 증대는 아시아지역 전체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금융개방 열풍의 결과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나오며

이제까지 90년대 초의 경제위기와 그 뒤를 이어지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의 원인을 살펴보았다. 정리하면 세간에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일본 경제의 위기와 장기침체의 원인이 소위 피상적인 ‘버블’ 때문이 아니며, 장기침체도 그 버블에 의해 초래된 부실채권의 처리지연에 있는 것도 아님을 확인하였다. 일본 경제의 위기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위기와 마찬가지로 과잉생산 때문이며 일본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이런 결과는 일본의 국민 대다수를 이루는 노동계급의 빈곤의 심화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잉생산을 현실화시키고 증폭시켰던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와 개방화였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그나마 회복되던 경제를 거꾸러뜨리고 다시 위기와 침체로 빠지게 만들었다.

현재 다시 일본 경제는 전세계적 경제위기와 맞물려 침체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다. 이 위기는 실업률 증대와 임금상승억제, 노동조건 악화를 가져올 것이다. 일본의 노동계급은 이러한 그들의 상황이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 자체에 있으며, 노동계급의 빈곤화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개량주의적 협조주의적 노동운동을 일신하고 신자유주의 반대 및 자본주의 변혁의 관점에서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노동계급은 이러한 일본의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노/정/연


1) ‘日경제, 저성장 고실업 디플레 탈출구 안보여’, ꡔ매일경제신문ꡕ 9월 6일자. ‘日 2분기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0.8% ‘추락’’, ꡔ한국경제신문ꡕ 9월 8일자.


2) 강만옥, 「선진국 불황기의 대응과 시사점: 미국․일본경제를 중심으로」, 1998.

2) 강만옥, 「선진국 불황기의 대응과 시사점: 미국․일본경제를 중심으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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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자․생산 등 실물경제의 활발한 움직임이 없는데도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 투기가 심해지고 증권시장이 과열되는 등 돈의 흐름이 활발해지는 현상”, ꡔ경제신어사전ꡕ, 매일경제신문사, 2000, p.284.


4) “그러나 1986년부터 몇몇 주의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시작된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S&L위기가 시작되었다 … 1989년 연방 S&L보험공사가 파산을 선고하였고 … 1980년과 1992년 사이 S&L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원된 자금은 약 1,800억불로 추산되고 있다.”, 주상영, ꡔ금융․자본자유화에 따른 금융위기 사례와 정책시사점ꡕ, 1996, p.54.


5) 橋本壽朗, 신장철 역, ꡔ최신 일본경제론ꡕ, 1998, pp.12~13. 이는 일본기업의 매출액 및 경상이익률 수출입 증대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6) 맑스, 김수행 역, ꡔ자본론ꡕ 3권,1993, p.298.


7) 橋本壽朗, 상동, p.290.


8) 일본경제신문사, 매경출판부 역, ꡔ일본경제이야기ꡕ, p.332.


9) 일본경제신문사, 상동, pp.215~220.


10) 맑스, 상동, p.292.


11) 맑스, 상동, p.291.


12) 권석언 외, ꡔ환율대란과 국제통화제도ꡕ, 신한종합연구소, 1994, p.68.


13) 권석언 외, 상동, pp.60~61.


14) 이렇게 경상수지의 막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달러고에 의한 내수확대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제통화로서의 미국의 패권과 특권에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15) “미국의 경기둔화 전망과 그에 따른 금리하락 전망, 저축 대부기관의 경영파산 증가 등이 바로 그것으로 …”, 권석원 외, 상동, pp.92~93.


16) 김의진, 「엔고 전망과 일본의 대책」. http://www.seriecon.seri21.org


17) 橋本壽朗, 상동, p.288.


18) 맑스, 상동, p.542.


19) 맑스, 상동, p.591.


20) 일본경제신문사, 상동, p.181. 경제, 「일본의 외환관리제도 변천과정 및 우리나라 외환관리제도」, 1991. http://www.seriecon.ser21.org


21) 강만옥, 상동.


22) 주상영, 상동, p.56.


23) 권석언, ꡔ환율대란과 국제통화제도ꡕ, 1994, p.71.


24) 권혁태, 「일본경제의 위기와 시사점」, 1998. http://seriecon.seri21.org; 강만옥, 상동.

24) 권혁태, 「일본경제의 위기와 시사점」, 1998. http://seriecon.seri21.org; 강만옥, 상동.

  “그러나 이와 같은 경기 회복의 과정은 1997년대 초에 취해진 소득세에 대한 감세의 중단과 소비세의 5% 인상조치 등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리고, 10월 이후의 금융불안에 의해 좌절되었다.” 橋本壽朗, 상동, pp.12~14.


25) 권혁태, 상동; 강만옥, 상동; 橋本壽朗, 상동, p.15.


26)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의 8% 달성은 은행들로 하여금 대출을 축소키며, 그리하여 경제를 극도로 위축시킨다는 것은 한국도 98년 외환위기 당시 경험했던 사실이다. 김두한, 「금융권 구조조정 어떻게 볼 것인가?」,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62호, 2000, p.15.


27)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의 영향을 받아 회사부도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97년 일본기업의 도산 건수는 86년이래 최대규모인 1만 6천건을 돌파하였으며, 부채규모도 97년 14조엔에 달해 사상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강만옥, 상동.


2001-10-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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