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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투쟁의 평가와 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70호
김혜진



김 혜 진/노동자의 힘(준비모임) 연대사업국장


비정규직 투쟁의 평가와 과제



1. 들어가며
8월 2일. 단병호 위원장이 명동성당을 떠날 때 주먹 불끈 쥐고 울분을 터뜨리던 노동자가 있었다. 긴 겨울 노숙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한 동지는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20대의 젊은 동지 하나는 제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상태가 되어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했던 한국통신 계약직 동지들이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총력지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민주노총이 김대중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하고 있기에, 한국통신 계약직 동지들은 불평 한번 없이 명동성당 사수대를 자원하여 단병호 위원장을 지켰다. 그러나 그 단병호 위원장은 한국통신 계약직 동지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는 약속도 없이 떠나가고, 민주노총에서는 김대중 정권 퇴진 투쟁의 방향이 옳았느니 아니었느니 하고 있다. 그러나 투쟁을 강고하게 유지해왔던 그 동지들은 여전히 투쟁전선을 지키고 있다. 치열하게 싸웠던 자들은 말이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라도 전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다시 결의를 다질 뿐이다.

2. 상반기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의 성과
1) 들불처럼 일어나 긴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현재(9월 10일)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사업장은 다음과 같다.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270여 일째 파업투쟁을 하고 있고,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이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면서 200일 가까이 투쟁하고 있다. 린나이코리아노동조합이 원직복직과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면서 투쟁하고 있고, 방송사비정규직노동조합이 파견법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해고되는 것에 맞서 1년이 넘게 싸우고 있다. SK인사이트코리아노동조합이 정규직으로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년 넘게 투쟁하고 있고, 명월관노동조합은 복수노조 금지조항으로 인해 노조설립신고필증조차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해고된 8명의 노조 간부들의 복직을 요구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대송텍노동조합은 불법파견과 부당해고에 맞서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국방부와 대한송유관공사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캐리어사내하청노동자들은 2년 이상자들이 정규직화되었으나 노조 인정과 2년 이하자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아직도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보험모집인노동조합도 노동조합 인정을 목표로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하고 있다. 홍익매점노동조합도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9월 10일 현재 파업투쟁 87일째를 맞고 있는 린나이코리아노동조합이 파업 39일째 되던 날 다른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이 린나이를 소개하면서 새내기 투쟁사업장이라고 소개했던 웃지 못할 일화가 있을 정도로 파업투쟁 40일의 경험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있을 만큼 길고 치열하다.
도대체 이 노동조합들은 왜 이렇게 길게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은 구조조정을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했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밟으면서 초과착취를 감행했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이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계약해지당하고 쫓겨난다. 그리고 길고 긴 농성투쟁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집단성을 무력화하려고 비정규직을 활용하는데, 그리고 그 비정규직이라는 존재조건에 근거해서 마음대로 초과착취를 하려고 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투쟁하기 시작하면 자신들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이유 자체가 다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내쫓고 투쟁을 파괴해도 법적으로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마음놓고 비정규직들의 투쟁을 파괴하려고 한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존권 자체가 유린되고 있는 현실을 참을 수 없어 투쟁으로 일어선 것이기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그래서 비정규직 투쟁은 자본에게나 노동자들에게나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며, 그래서 길고도 강도 높은 투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2) 고강도 투쟁을 통해 투쟁의 의미를 새롭게 복원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매우 처절하다. 해고가 되었어도 고용보험이 제대로 안 되고, 집을 떠나 천막농성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너무나 힘든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밀려나있다 보니 자본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기도 힘들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정세를 열어가기보다는 여론의 향방에 좌우되거나 버티기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의 비정규직 투쟁은 다르다. 고강도 투쟁, 즉 점거투쟁을 통해 주체적으로 투쟁의 흐름을 주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점거투쟁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첫째는 지도부를 보위하고 투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점거이다. 현대중공업의 골리앗투쟁이나 효성투쟁에서의 옥탑점거 등이 그러한 의미였다. 이러한 점거는 상징적인 의미는 있지만 대중투쟁동력이 소진될 때는 그 의미를 극대화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두 번째로는 선도적인 투쟁을 통해 업무를 마비시키고 투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점거이다. 이랜드노동조합의 전산실 점거투쟁 등이 그러한 것이었다. 세 번째는 투쟁의 정치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여론화하기 위함이다. 정당에 대한 점거나 국회의사당, 정부기관 등에 대한 점거가 그런 것이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투쟁은 정치적으로 투쟁을 확산시키거나 선도투쟁적 의미를 갖고 진행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리가 점거투쟁을 이야기할 때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서 공장점거 파업투쟁을 꼽는다. 공장점거투쟁은 선도적인 투쟁이 아니라, 대중동력에 의존하는 투쟁이다. 공장점거를 통해 파업의 효과는 극대화되고 노동자들은 점거를 위한 훈련과 점거과정에서 노동자계급으로 훈련을 하면서 자신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점거투쟁을 통해 자본과 노동자들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게 된다.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의 점거투쟁, 캐리어사내하청노동조합의 점거투쟁에 이르러서는 이 투쟁이 공장점거 파업투쟁의 의미를 갖게 된다.
한국통신계약직이나 캐리어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점거투쟁은, 먼저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투쟁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 의지는 오래 가지 않는다. 공권력의 침탈에 의해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거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파업투쟁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두 번째로 대중적 점거투쟁은 노동자들에 대한 훈련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들이 목동전화국을 점거하기 위해 고도의 훈련을 거치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던 것처럼, 대중적 점거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훈련되고, 그 속에서 정부와 자본에 대한 투쟁의지를 긴장감 있게 쌓아나간다.
최근 자본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도 파업의 효과를 없애기 위한 것이며, 노동자들이 투쟁하려고 할 때 구사대나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현장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적 점거투쟁은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공장점거 파업투쟁의 의미를 다시 확장하고 있다.

3) 연대의 정신을 복원하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은 투쟁대오가 그다지 많지 않다. 건설운송노동조합이 초기 투쟁에는 약 800여명이 결합했으나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하나둘 떨어져나가, 나중에는 300명 정도가 남았다. 이 정도가 가장 큰 대오이고,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0명 미만의 인원으로 투쟁을 하게 된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2명에서 4명 정도가 긴 투쟁을 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나와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전술도 제한적인 데다가 기본 동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으로 이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투쟁은 연대투쟁으로 이루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은 투쟁사업장의 일정을 서로 공유해가면서 집회를 만들고 집회에 서로 가주는 품앗이 투쟁을 발전시켰다. 이런 품앗이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의 전통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비정규직의 처지를 경험하고 있기에 이 투쟁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것인지 이해한다. 그래서 당장 자신의 일정이 있다 하더라도 비정규 투쟁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마다 않고 달려간다. 이것이 신뢰가 되고, 그래서 더욱 돈독한 연대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연대투쟁의 전통은 투쟁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이어진다. 강고한 연대투쟁의 힘으로 승리한 이랜드노동조합의 경우 내부 조직화에 힘을 기울이느라 비정규직 연대투쟁이나 집회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었다. 익명의 한국통신계약직조합원이 이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이랜드 홈페이지에 올렸고, 이랜드노동조합에서는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연대투쟁의 정신을 결코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면서 각종 투쟁에 함께 한 바가 있다. 이랜드 노동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연대투쟁의 정신이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보여준다.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들이 패배하면 그것은 곧 이랜드도 패배한 것이다.”

3. 하반기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과제
1) 장기투쟁사업장 문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투쟁이 있을까마는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하나 하나의 승리가 너무나 소중하기에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된다.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의 투쟁은 대량의 정리해고로 나타나는 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박살내면서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투쟁이다. 이 투쟁의 승리는 지금까지 수세에 몰린 채 구조조정을 승인해 왔던 우리 운동에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SK인사이트코리아나 대송텍은 어떤가? 사내하청은 대다수가 불법파견이다. 하지만 불법파견이라고 노동자들이 고소․고발을 하면 오히려 노동자들만 짤리고, 자본은 타격을 입지 않는다. 게다가 자본과 정권은 불법파견을 합법화할 수 있는 길을 열고자 노동법 개악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인사이트코리아나 대송텍의 투쟁은 사내하청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이 결국 불법파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투쟁이며 불법파견을 투쟁으로 박살내고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선례를 남기는 투쟁이다. 이 투쟁 여하에 따라 대다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의 길이 열릴 수 있다.
건설운송노동조합이나 보험모집인노동조합, 그리고 린나이코리아노동조합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특수고용직을 확대해왔다.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고, 4대보험도 적용하지 않아도 되고, 경기변동의 손해를 노동자들에게 전부 떠넘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수고용직은 당연히 노동자이고, 그래서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인 노동3권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이 투쟁의 승리는 자본의 특수고용직화라는 구조조정을 박살내는 것이며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회복하는 투쟁이다.
장기투쟁사업장 승리는 무엇을 통해 가능한가? 사업장 하나가 열심히 싸우는 것을 통해서? 물론 그것은 기본이다. 동시에 공동투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금 장기투쟁사업장이 길게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요구가 거창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정부와 자본의 구조조정에 파열을 내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투쟁의 승리는 개별 자본가의 목줄을 죄는 것만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투쟁할 때 가능하다.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이 힘을 합해서 정부에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 힘있게 대정부 투쟁을 벌여야 한다. 품앗이 연대투쟁을 넘어서는 대정부 공동투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장기투쟁사업장들과 민주노총, 그리고 파견철폐공대위와 한통계약직공투위 등이 함께 모여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고 투쟁에 임하고 있다. 각종 공동집회와 선전전, 그리고 8월 28일의 국회의원회관 옥상점거투쟁 등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문제를 걸고 공동투쟁을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단위사업장의 요구와 투쟁의 경험이 너무 달라서 공동투쟁의 수위를 맞춰나가기가 힘들고, 공동투쟁의 경험이 일천하여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투쟁들을 통해 공동투쟁의 경험을 쌓고, 상호 신뢰를 쌓아나간다면 품앗이 투쟁을 넘어서는 정권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투쟁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서서 구조조정에 맞서는 전체 투쟁으로 발전시키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있어 구조조정 분쇄의 관점을 갖지 못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는 만리장성이 생긴다. 우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비정규직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투쟁을 통해서만 노동자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함께 조직하지 못한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할시키는 자본의 전략에 놀아나게 되고, 이것은 투쟁의 힘을 더욱 위축시켜서 결국 자본에 순응하는 인간들만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단지 조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박살내는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전체의 투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먼저 단위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확산시키는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 싸워야 한다. 분사, 용역, 외주화, 아웃소싱 등에 맞서 힘있는 싸움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목에 칼날이 되어서 돌아온다. 올해 많은 사업장들이 단협을 통해 비정규직 관련 문제들을 쟁취했다고 하지만 아직 소수인데다 그나마 보건의료노조에 편중되어 있다.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자본의 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투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결의를 세워야 한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특히 비정규직들을 자신의 고용안전판으로 사고하거나 차별의식에 찌들어있는 정규직들을 조직하고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많은 노동조합들이 그 현실적 한계 앞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한계는 우리가 돌파해야 할 한계이지 편승해야 할 한계가 아니다. 힘들겠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조장하는 자본의 일상적 관리체계를 분쇄하는 투쟁을 벌이고 작은 연대투쟁을 조직해가자. 그리고 지속적인 선전과 작은 실천을 통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하나로 아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자. 그것이 곧바로 우리 운동의 계급성을 복원하는 것이며, 진정 구조조정 분쇄투쟁을 제대로 힘있게 하면서 모두가 사는 길이다.
단위노동조합에서의 이런 실천과 더불어 민주노조운동 전체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의 과제로 삼아 실천해가야 한다.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모든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현재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로 내버려두지 말고, 우리 운동 전체의 힘으로 승리하도록 연대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3) 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자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너무 힘들게 싸웠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완전히 말살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자체가 노동기본권의 훼손상태를 의미한다. 고용의 불안정성은 곧 생존의 불안정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성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데, 파견노동자들은 파견법으로 인해 2년에 한번 주기적 해고를 당하도록 되어 있다. 계약직의 경우 계약기간이 마음대로여서 심지어는 3개월에 한번씩 주기적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용역․하청 노동자들은 계약갱신으로 인해 고용이 불안정해진다. 이러한 고용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은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기본권을 쟁취한다는 것은 비정규직 주기적 해고를 보장하는 각종 장치들을 없애는 것이다. 파견법의 철폐와 계약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및 정규직화, 용역계약시 계약관계자가 바뀌더라도 노동자들의 고용이 승계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그래서 당연한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에 갖가지 불합리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4대보험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위배되는 저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한다. 그리고 산업재해에 완전히 노출되어서 정규직이 꺼리는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4대보험 적용이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너무나 당연히 쟁취해야 할 노동기본권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또 다른 한계에 부딪힌다. 바로 노동3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 사용자를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체계 때문에 원청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임의계약해지에 노출되고, 계약직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해지당하고, 또 복수노조금지조항에 의해 노동조합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특수고용직노동자들은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함으로 인해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박탈당한다. 투쟁을 통해 노동기본권을 쟁취해야 하는데, 투쟁을 할 권리조차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현실이다. 하반기에는 반드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쟁점화하고, 이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사회적․정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의 힘겨움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다.
다만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미명 아래 이 투쟁을 법․제도 개선으로 국한하는 흐름을 경계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이미 말살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기 위해 4대보험 중 일부를 적용하는 등의 떡고물을 주고, 노동3권을 완전히 무력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보호 운운하면서 이런 떡고물과 노동3권을 맞바꿔치기하는 것에 동의하는 흐름이 있으며, 그 흐름은 항상 비정규직들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법개정 문제로 협소하게 만들면서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말살하는데 일조한다.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은 자본과 정권의 국회 일정에 따라 호소하고 협상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투쟁, 그리고 우리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투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장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고, 정치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쟁취에 대한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강력한 투쟁을 배치하고, 그 투쟁에 비정규직들이 공동투쟁으로 선두에 설 때 노동기본권 쟁취는 가능해진다.


4. 마치며
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여론의 냉대와 구사대의 탄압을 견디면서 투쟁을 시작한지 3년이 되었다. 그동안 비정규직 투쟁이 너무나 급속하게 확대되었고, 많은 노동자들이 힘있게 투쟁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폄하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심지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비정규직 투쟁을 입에 올려야 하는 상황에까지 와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되는 만큼 비정규직 투쟁은 모두의 투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전혀 아니다. 여전히 비정규직들은 비정규직 이야기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외롭게 전선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비정규직 투쟁이 활성화된 만큼, 비정규직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기보다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가 무리하다고 깎아내리는가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의 강고함을 부담스러워하는 논의들도 무성하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한 때는 아니다. 지금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연대하는 자만이 비정규직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동시에 비정규직 투쟁을 흠집 내고 투쟁의 의지를 꺾는 각종 시도와 논의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비정규직 투쟁이 발전한다.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과 입장을 올곧게 세우고, 장기투쟁사업장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발전시켜서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정당한 요구를 사회화하는 투쟁으로 발전시키자. 이것이 비정규직 투쟁을 만들고자 하는 모두의 몫이다. 한/노/정/연

2001-10-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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