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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 약인가? 독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70호
현광훈

노동시간 단축, 약인가? 독인가?


현 광 훈
연구원, 공공연맹 교육국장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의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정신이 메이데이에 스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안고 있다. 임금인상투쟁이 자본의 착취로부터 자신의 노동력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 생존투쟁이라면,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착취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계급투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더불어 89년부터 2년에 거쳐 주44시간제가 도입되었으나 사실상의 노동시간 단축효과보다는 주로 초과근로로 인한 임금인상효과로 흡수되면서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되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전투성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릴 정도로 급성장을 하고 있음에도 최장 노동시간국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노동운동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그러기에 지금의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실노동시간에 초점을 두고 애초부터 요구를 2,600여 시간에 이른 실노동시간을 ‘연 2000시간 이하’로 제한하는 것으로 정식화하였다. 그리고 1996년부터 민주노총은 주40시간 노동제를, 금속산업을 중심으로 주요 대공장 73개 노조에서는 41~42시간제를 부분적으로 쟁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IMF 이후에도 고실업과 비정규직의 확대 등 고용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2000년 5월부터 본격화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이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되면서 정부로부터 연내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투쟁이 수그러들자 노사정의 미합의를 이유로 입법화가 무산되었다. 그 이후 노사정위원회의 그늘 아래 뒷골목 논의로 진행되었던 것이 2001년 하반기에 최대쟁점으로 다시 부각되었는데, 김대중 정권은 2002년 대통령 선거와 그 전초전격인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도시서민을 의식한 생계지원형 각종 정책이 발표되는 가운데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시키고 있다.
현재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집단들도 시기상조론에서 단계적 도입론으로 입장을 변경하고 있고, 별 끗발 없는 노동부가 9월 15일까지 노사정 논의결과를 지켜보고 독자적으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제 노동시간 단축은 다시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DJP 공조가 깨지면서 형성된 여소야대의 국면이 변수로 작용하여 예측불허의 상황에 처해 있다.
민주노조운동진영도 그 동안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단축문제가 급물살을 타면서 노동시간 단축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다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어림잡아 보아도 주5일제는 사회적으로 생활패턴을 크게 바꾸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어느 일간지에서 주5일제가 레저산업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듯이, 그리고 한 노조간부가 그동안 토요일 오후에 집중되었던 민주노총의 집회투쟁이 이제는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던지듯이 다양한 변화들을 암시한다.

아무튼 이후의 노동법 개정투쟁의 기상도를 간략히 살펴보자. 우선 기 제출된 노사정위원회 공익안(2001.9.5)을 기초로 입법을 추진하려 했던 정부는 한나라당이 다수야당인 상황에서 독자입법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고 노사정합의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변했다. 그리고 자본가집단들도 이를 활용하여 기 합의된 사항도 파기하면서 공세적 유예전술을 취하고 개악쪽으로 무게를 더욱 싣고 있다.
한국노총의 경우도 민주노총과의 책임분담을 명분으로 공동대응에 모양을 갖추려 하고 있지만 연내 입법화가 안되면 사실상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이유와 정치적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 양보를 불사한 합의를 시도할 것이 예상된다.
노사정위원회의 줄다리기가 지속될 전망 속에서 민주노총은 일단 한국노총이 야합하지 않도록 개악 내용을 사회적으로 쟁점화하기 위한 총력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시기는 노사정위원회가 주관하는 지역설명회에 대한 대응을 배치하여 입법화에 대한 대세를 확고히 하며, 2차로 국회 입법화 시기에 맞춰 비정규직보호입법, 공무원노동기본권 쟁취투쟁, 직권중재 문제와 복수노조 허용문제 등의 사안들에 집중하는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주요 쟁점을 보면 총자본은 2000년의 경우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노무비 증가문제에서 그 쟁점을 휴가일수 축소로 옮기더니 이제는 변형근로시간제의 확대까지 촉수를 뻗치고 있다. 임금보존에 동의하는 대신 휴가일수 축소와 더불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대 1년 단위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만 보더라도 1개월 단위에서 1년 단위로 확대할 시 민주노총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실정에서 볼 때 연간 노동시간이 2,704시간까지 가능해져 단축이 아니라 증대를 초래하게 되며 7.5% 정도의 임금삭감 효과를 가져와 사실상 주5일제는 사문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저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고 노동시간 단축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외국의 사례와 같이 초과근로에 대한 일단위, 주단위, 년단위로 제한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흐름과 쟁점은 이 정도하고 이후 전망에 대한 문제인식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주5일제(40시간제) 도입으로 총고용의 5.2%의 고용증대 효과가 있어서 2000년 임금노동자 1,314만명을 기준으로 6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비정규직의 확대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즉 노동시간이 단축되더라도 저렴한 비정규직을 대체고용하면 별로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자본이 너무 투정하지 말라는 다독거림에 틀림없다. 즉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노동통제가 더욱 고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과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사업장 밖의 사회적 영역에 대한 대응력이 취약한 민주노조운동이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와 전술변화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 현재로서는 다소 비관적이다.
과학기술혁명에 힘입어 고도로 발전해 온 총자본은 꾸준하게 노동의 유연화와 차별화를 추구해 왔다. 감시장치를 통한 일상통제, 주변부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연봉제 등으로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노동조합활동을 포위해 왔고 그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종이호랑이라는 혹평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고 민주노조진영의 전선은 비정규직의 힘겨운 투쟁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이 과연 우리가 희망하듯이 자본의 속박으로부터 노동의 인간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는 다분히 낭만적인 생각이다. 노동비용의 증가부담을 하청업체에 전가할 수 있는 대공장과 노동특성상 근로기준법 개악으로 인한 영향권에 다소 떨어져 있는 사무, 전문직 노동자들이 과연 민주노총의 방침에 따라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입법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민주노조진영이 사실상 총자본과 권력에 대하여 전선구축 능력이 취약하고 주요 대공장 노조의 선거까지 걸려 있는 상황을 보면 안타깝게도 총력투쟁을 통해서 자본의 의도를 막고 뭔가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본인은 최근 3년간 민주노조진영의 총파업투쟁에 대한 평가에서 민주노조운동이 총노동을 대표할 수 있는 능력과 위상을 상실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기에 민주노조운동진영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국 자신의 조직이해, 즉 대공장과 정규직 중심이라는 조직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역부족이었다는 형식적 반성만이 남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시간 단축관련 제도적 장치들은 노자간에 누구에 의해서 주도되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나타나게 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정책적 대안이 작동되는가의 여부는 이를 뒷받침할 노동의 힘에 있다.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당면한 대응과제는 물론이고 일보전진을 위한 중장기 전략을 세워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개악되든 개정되든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대응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본에 포섭되는 결과로 갈 것이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 논의되고 추진중인 산별노조건설운동을 시급히 전면화해야 한다. 산별노조가 완수된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를 일국적 수준에서 방어한다는 것도 대단히 불안정한 한계를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과 같이 노조운동이 기업별체계에 고립되어서는 대응전망은 요원하기만 하다. 산별노조운동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저지에 대한 대안이념을 대중적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를 저지하든 반대하든 그에 따르는 정책대안과 대안사회에 대한 제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러한 과제는 당연히 노동조합만의 과제일 수 없고 노동운동 전체가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내부 현실을 보면 내부의 쟁점을 만들기에 앞서 실천적 성과를 이루는데 주력해야 한다.
단위노조간의 연대수준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임단투 중심의 연대에서 사회적 요구로 연대하는 산별노조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현장활동가는 자신의 활동공간을 당위적으로 사업장 내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에 입각한 사회적 영역에서 현장활동을 재구성해야 한다. 형식적 산별전환을 극복하고 내용을 준비할 수 있다면, 민주노조운동이 계급적 이념으로 재무장할 수단과 전망을 가진다면, 노동법이 개악되는 것은 결코 두렵지 않다. 오히려 우리에게 투쟁의 계기와 동력을 제공할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이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이 총노동을 대표할 수 있는 능력과 위상을 복원할 실천전략을 차분하게 준비해 가자. 한/노/정/연

2001-10-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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