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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범지구화

현장에서 미래를  제71호
샤미르 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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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와 범지구화


사미르 아민(Samir Amin)*
* Samir Amin은 국제 비정부 연구 및 논의 단체인 Third World Forum 소속 African Office(세네갈 Dakar 소재)의 책임자이다. 그는 Spectres of Capitalism(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98)을 비롯한 수많은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이 논문은 2001년 1월 브라질의 Porto Alegre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회의에서 행한 강연 노트를 재구성한 것이다.





제국주의는 하나의 단계(stage)가 아니며,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는 더더욱 아니다. 애초부터 그것은 자본주의의 팽창에 고유한 타고난 속성이었다. 유럽인들과 그 후예인 북미인들에 의한 이 지구의 제국주의적 정복은 지금까지 두 개의 국면(phase)을 거쳐왔고 아마도 현재는 세 번째 국면으로 접어드는 중인 듯하다.
이처럼 파괴적인 활동의 첫 번째 국면은 당시 대서양 유럽의 중상주의 체제라는 틀 내에서 아메리카의 정복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그 실질적인 결과는 인디오 문명의 파괴 및 이들의 히스패닉화(기독교화), 또는 미합중국 건국의 바탕이 된 철저한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앵글로색슨 식민지 개척자들의 근본적인 인종차별주의는 왜 이 같은 양식이 호주, 태즈메이니아(Tasmania)(역사상 가장 철저한 대량학살), 뉴질랜드 등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카톨릭을 믿는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 피정복 인민들에게 강요했던 종교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데 그친 반면, 앵글로 프로테스탄트들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독해를 통해 ‘이교도들’을 쓸어버릴 권리를 끌어냈던 것이다. 인디언들의 전멸 또는 그들의 저항 때문에 필요했던 악명 높은 흑인노예제는 이 대륙의 유용한 부분을 확실히 ‘활용’할 수 있도록 활발히 전개되었다. 오늘날에는 이 같은 참사의 실질적인 동기가 과연 무엇인지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것이 상업 자본의 팽창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유럽인들은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을 받아들였으며, Las Casas와 같은 저항의 목소리들에 동감하여 귀를 기울이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세계 자본주의 팽창의 첫째 장이 낳은 참담한 결과는 시간이 흐른 후, 이 같은 사태를 야기한 바로 그 논리에 도전하는 해방의 동력을 만들어 내었다. 서반구에서 발생한 첫 번째 혁명은 18세기 말 Saint Domingue(오늘날의 아이티)의 노예들이 일으켰고, 그 후 1세기가 조금 더 지난 1910년대의 멕시코 혁명, 그리고 그 50년 뒤의 쿠바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필자가 그 유명한 ‘미국 시민 혁명’이나 그에 곧 뒤이은 스페인 식민지의 혁명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이들이 단지 의사 결정 권한을 본국으로부터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옮김으로써 같은 일, 같은 기획을 더욱 잔인하게, 다만 모국과 그 이익을 나눌 필요 없이 진행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유린의 두 번째 국면은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배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의 진정한 동기가, 영국 청교도들이 중국에 아편시장을 강요한 것처럼, “시장을 열기 위해” 그리고 지구의 자연자원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음은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의 노동운동을 포함한 유럽의 여론은 다시 한번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이번에는 ‘개화의 사명’(civilizing mission)이라는 명목으로 자본측의 새로운 합리화 담론을 받아들였다. 당시 이 같은 사고 방식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것은 식민지 정복을 통해 영국의 사회 혁명을 회피하려 했던 세실 로즈(Cecil Rhodes)와 같은 냉소적 부르주아들이었다. 다시 한번, 파리콤뮨에서 볼셰비키에 이르는 저항의 목소리들은 거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제국주의의 이 두 번째 국면은 1800년 경 2대1로 최대 비율을 이루었던 사람들간의 불평등 문제를 오늘날 60대1로 격화시키면서 지구 인구의 단 20%만이 체제의 혜택을 향유할 수 있는 중심에 속하게 만든 엄청난 규모의 양극화(polarization)라는, 지금까지 인류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가장 커다란 문제의 기원이 되고 있다. 동시에, 자본주의 문명의 이처럼 막대한 성취는 세계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 가운데 가장 폭력적인 대립을 제국주의 권력들 사이에 낳았다. 제국주의적 침략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발생한 사회주의 혁명(이 두 혁명 모두가 실제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양극 대립적 팽창의 희생물이었던 주변부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과 민족해방혁명 등 다시 한번 그 기획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승리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된 자본주의가 마침내 겨우 문명화되었다는 환상을 조장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반세기에 걸친 유예 기간을 가져왔다.
제국주의의 문제, 그리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역의 문제인 해방과 발전의 문제는 최근까지 자본주의의 발전에서 그 무게를 더해 왔다. 따라서 제2차세계대전 직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의 정치적 독립을 쟁취한 해방운동의 승리는 식민지체제의 종식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1492년에 개시되었던 유럽팽창 시대의 마감을 가져 왔다. 15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4세기 반 동안 이 팽창은 역사적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형태를 취하여 동일한 실재의 이 두 가지 측면이 서로 분리될 수 없게 된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확실히 말하자면 ‘1492년의 세계체제’는 18세기가 끝나고 19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미국의 독립으로 인해 이미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독립이란 것이 식민지 개척자들이 수입한 노예들(아이티는 예외)과 토착인민들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식민지 개척자들이 이루어냄으로써 아메리카를 제2의 유럽으로 바꿔 놓은 것이었으므로 그 균열은 단지 자신의 모습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 그쳤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인민들이 탈환한 독립은 이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유럽에 있는 식민지 지주국가의 지배계급은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내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자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달려 있다는 기존의 관점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존의 식민지권력(주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만이 아니라 19세기에 형성된 새로운 자본주의 중심인 독일과 미국, 일본도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유럽 내부간 및 국제간 대립은 주로 1492년 제국주의체제의 식민지들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것이다. 신대륙 전체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미합중국이 보유하는 것으로 용인되었다.
일급 기술과 과학적 잠재력, 강력한 군사적 전통을 가진 부유하고 발달된 거대한 단일 유럽이라는 공간을 건설한다는 기획은 ‘식민지’없이, 즉 1492년의 시스템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범지구화(globalization)를 토대로 자본주의적 축적을 새로이 소생시킬 수 있는 탄탄한 대안인 듯했다. 남은 문제는 이 새로운 세계체제가 기존의 것과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새로운 토대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양극적 대립을 낳을 것인가, 아니면 양극적이기를 멈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은 이 건설기획이 아직 완료된 것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그 장기적 유의미성을 의심케 하는 위기를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통일된 단일 유럽의 형성과 함께, 그 중요성이 너무나 큰, 각국의 역사적 현실의 조화를 가능케 할 처방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 통일된 유럽이라는 경제적 정치적 공간이, 역시 아직 건설되지 않은 새로운 글로벌 체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이 경제적 공간이 과연 미합중국이라는 제2의 유럽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거대한 공간의 맞상대가 될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라이벌 체제는 유럽 및 미합중국과 세계의 나머지 부분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라이벌들은 이전 기간의 제국주의 권력들처럼 서로 대립할 것인가? 아니면 협력할 것인가? 후자의 경우 유럽은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을 워싱턴과 일치시키면서 1492년 제국주의 체제의 새로운 변형에 참여할 것인가? 단일 유럽의 건설이 1492년 체제를 확실히 종식시킬 범지구화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제국주의적 팽창에 따른 세계 황폐화의 세 번째 물결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은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와 제3세계의 인민주의적 민족주의 정권의 붕괴에 의해 촉진되고 있는 사태이다. 지배 자본의 목표는, 비록 그것이 바로 이전 국면의 제국주의를 특징지운 것보다 새로우며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상이한 조건에서 추진되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동일하다. 시장의 확대를 통제하는 것, 지구의 자연 자원을 약탈하는 것, 주변부의 노동 예비군을 초과 착취하는 것이 바로 그 목표인 것이다. 중심 3강(미합중국, 서구유럽, 일본)인민들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은 새로이 쇄신되어 현재는 ‘인도주의’와 ‘인민의 권리’, ‘민주주의’의 보호로 정당화될 것으로 여겨지는 ‘개입할 의무’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그 이중 기준의 사례들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이 언어들이 얼마나 냉소적으로 사용되는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너무나 명백하다. 그러나 서구의 여론은 이전 단계 제국주의의 정당화 논리에 그랬던 것과 똑같이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더욱이 이 같은 목표를 위해 미합중국은 3각 동맹에 속한 나머지 파트너들을 모두 아우르는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그 절대적 헤게모니를 확실히 하기 위한 체계적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코소보 전쟁은 유럽 국가들의 완전한 투항을 입증해 주는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유럽 각국은 1999년 4월 23일부터 25일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승리’직후 나토(NATO)가 채택한 ‘새로운 전략 구상’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대서양 다른 쪽에서는 이보다 세련되지 못한 표현으로 ‘클린턴 독트린’이라 이름 붙은 이 ‘새로운 구상’에서 나토의 임무는 사실상 아시아와 아프리카 전역(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개입할 권리는 미국만이 보유)으로 확장하는 것으로서, 나토가 방어를 위한 동맹이 아니라 미합중국의 공격용 무기임을 고백하고 있다. 동시에 이 임무는 새로운 ‘위협들’(국제 범죄, ‘테러리즘’, 나토 외부 나라들의 ‘위험한’ 무장 등등)을 포함한 더 이상은 애매해지기조차 어려운 용어들로 재정의되어 미합중국에 유용한 거의 모든 침략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게다가 클린턴은 ‘예방’차원에서 미리 공격할 필요가 있다는 ‘불량국가’라는 표현을, 그 불량함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명확히 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나토는 UN의 위임에 따라서만 행동해야 하는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졌는데, 이것은 국제연맹에 대해 파시스트 권력이 보였던 모욕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사용된 용어에서도 놀라운 유사성이 발견된다).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상품인 제국주의적 기획을 신중하게 포장하여 ‘미합중국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너무나 거룩한 표현으로 치장하고 있다. 그 초기부터 물려받은 전통으로서의 이 사명은 이들의 신성한 의식의 고취를 확신케 해준다. 자기 사회내부에서 자신들 스스로를 ‘좌파’로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자유주의자들도 이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필연적으로 ‘어진 것’, 도덕적 양심과 민주주의 실천에서 진보의 원천이며 이들의 눈으로 볼 때 이 기획의 희생자들이 아니라 수혜자들인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이롭게 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미국의 헤게모니와 세계평화, 물질적 진보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결합된다. 물론, 현실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이 기획을 중심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재집결한 유럽 여론(특히 자기 지역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좌파들의 여론)은 비극적 결과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파멸적인 것이다. 워싱턴이 개입하기로 결정한 지역에 초점을 둔 언론의 집중적인 홍보가 이 같은 광범위한 동의를 끌어낸 부분적인 원인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를 넘어 서구의 인민들은, 미국과 유럽 연합의 나라들이 ‘민주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부가 동구의 악독한 ‘독재자들’이나 갖고 있을 ‘악한 의지’를 품을 수는 없다고 설득 당한 것이다. 이들은 이 같은 확신에 너무나 눈이 멀어 지배 자본의 이해가 갖고 있는 결정적 영향력을 망각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의 인민들은 이렇게 다시 한번 자신들에게 명확한 도덕적 의식을 부여한 것이다.


발전과 민주주의: 동일한 운동의 불가분한 두 측면
민주주의는 발전을 위한 절대적 필요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이유와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최근에 와서야 이 같은 아이디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듯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서구에서는 동구와 남반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발전’으로 인해 사회의 물질적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가능한 ‘사치품’이라는 것이 지배적 도그마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적 서클이 공유한 공식적 원리였다. 미합중국은 라틴아메리카의 군사 독재자들에 대한 자신의 지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럽은 아프리카의 독재 체제에 대한 자신의 지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도그마를 공유했으며, 제3세계의 국가들(라틴아메리카의 (desarrolismo)이론이 이를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아이보리코스트(Ivory Coast), 케냐, 말라위(Malawi),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만이 단일 정당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여러 나라들, 또한 소비에트 체제의 지배자들도 이 도그마를 공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갑자기 이 명제가 그 반대 명제로 바뀌었다. 모든 곳에서 또는 거의 모든 곳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일상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합당한 형식으로 수여된 민주주의의 증명서가 거대하고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로부터 지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미사여구의 신뢰성은, 완벽한 냉소주의와 함께 적용되는 ‘이중 기준’의 원리가 다른 목표, 즉 지배 서클이 단순하고 간단한 조작을 통해 달성하려 하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목표에 진정한 우선 순위를 두고 있음이 현실에서 너무도 쉽게 밝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나 일부 사회운동은 진정으로 민주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는 실제로 발전의 조건이 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제안하는 바와 같이, 개별적 인간 존재와 집단적 인간 존재(즉, 사회)가 자신의 역사를 책임진다는 원리의 적용을 근대성으로 이해한다면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바로 근대성을 정의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근대적인 개념이다. 이 같은 개념을 구성하기 전에, 인간은 종교적 소외이든 아니면 영원하고 초역사적인 사실로 인식되는 ‘전통’의 형태를 취한 소외이든, 자본주의에 선행한 권력 형태에 특유한 소외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만 했다. 근대성의 표현, 그리고 근대성이 의미하는 민주주의의 필요성의 표현은 계몽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여기서의 근대성은 자본주의와 동의어이며 그것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자체와 마찬가지로 제한적인 것이 된다. 그 역사적인 부르주아적 형태는, 그것이 이제까지 알려지고 실천이 이루어진 유일한 형태라 하더라도, 하나의 ‘단계’(stage)를 의미할 뿐이다. 근대성도 민주주의도 그 잠재적 발전의 마지막까지 이르지 않았다. 필자가 ‘민주화’(democratization)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우리가 그것에 명확한 정식을 부여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강화하는 반면, ‘민주화’라는 용어는 아직 완료되지 않은 과정의 동적 측면을 강조한다.
부르주아 사회 사상은 그 시작부터, 즉 계몽의 시대로부터, 사회 생활의 상이한 영역들(사회의 경제적 관리 영역과 정치적 관리 영역이 그 중 일부임)을 구분하고, 이 영역들 각각에서 ‘이성’의 특정한 요구의 표현으로 간주되는 상이하고 특정한 원리를 적용하는 것을 바탕으로 해 왔다. 이 같은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선의의 정치적 관리에 관한 합리적 원리가 된다. 인간(men)(당시에는 여성의 포함 여부는 전혀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다),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서(충분한 교육과 부를 지닌) 일부 인간은 이성적이므로 법을 만드는 책임을 지녀야 하며, 이 법을 집행할 의무를 갖는 개인들을 선거를 통해 선택할 책임을 지녀야 한다. 한편 경제 생활은 역시 ‘이성’(인간 본성과 동의어)의 요구의 표현으로 이해되는 또 다른 원리들에 의해 관리된다. 사유재산, 기업을 운영할 권리, 시장에서의 경쟁이 그 원리이다. 우리는 이 원리들을 그 자체로는 민주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자본주의의 원리로 이해한다. 민주주의를 평등, 즉 여성과 남성의 평등은 물론이요 모든 인간 존재의 평등(1865년까지 미국의 민주주의는 노예를 망각하고 있었으며 1960년까지는 그 후손들의 기본적 시민권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점), 재산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않은 자의 평등(사유 재산이라는 것은 그것이 배타적인 것일 때에만, 즉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가 있을 때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점에 유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자본주의의 원리가 민주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은 특히 명백하다.
경제적, 정치적 영역의 구분은 이들을 지배하는 구체적 논리의 결과가 서로 수렴하는지 아니면 분기하는지의 문제를 즉각적으로 제기한다. 달리 말해 ‘민주주의’(정치적 생활의 근대적 관리의 줄임말)와 ‘시장’(경제적 활동의 자본주의적 관리의 줄임말)을 서로 조화롭게 합쳐지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서로 갈라지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현재 유행하는 담론들이 의존하고 있으며 너무나 자명하여 논의의 필요조차 없는 진리의 지위로까지 격상된 부르주아 사상의 공리에서는 이 두 가지가 수렴한다고 단언한다. 민주주의와 시장은 서로를 발생시키는 존재로서 민주주의는 시장을 요구하고 시장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가 증명해 주는 바에 따르면, 이보다 더 진실과 거리가 먼 것은 없다.
계몽시대의 사상가들은 현대의 일반적인 경향보다 까다로웠다. 후자와 달리 이들은 이 같은 수렴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조건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본 것이다.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은 민주주의와 시장의 입장에서 바라본 관리 양식의 공통 분모인 이들의 ‘이성’개념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인간(men)이 성적이라면 이들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들은 시장이 창출한 결과들을 강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조건은 이성을 부여받은 존재가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이성을 부여받은 존재란 일부 남성들을 말하며,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지배를 받는 여성이라든가, 오로지 본능에 복종할 따름인 노예, 가난한 자, 무산자(프롤레타리아) 등은 제외된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재산 자격에 근거해야 하며, 따라서 시민이자 기업가인 자들에게 유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선거에서 이들의 선택은 항상 또는 거의 항상 자본가로서의 자신들의 이해와 일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즉시, 경제에 대한 복종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그 수렴 과정에서 정치가 자율성을 상실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경제적 소외는 이 사실을 은폐하는 완벽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후에 시민 기업가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 민주적 권리가 확대된 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자발적 결과도 아니고 이 발전의 요건의 표현도 아니었다. 그와 완전히 반대로 그러한 권리들은 체제의 희생자들(노동계급, 그 이후에는 여성들)이 점진적으로 쟁취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체제가 이에 적응했다 하더라도, 체제에 대한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회복한 결과였다.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고 무엇을 대가로 이것이 가능했을까? 여기서 반드시 제기해야 할 진정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이 같은 권리의 확장은 시장이 이들을 위해 준비한 운명, 즉 점점 불안정해지며 때로 폭발적일 수도 있는 위험을 지닌 체제와 (그 체제에 의해 착취당하는) 다수의 의지 사이에서의 민주적 투표를 통해 표현되는 하나의 모순을 필연적으로 드러낸다. 경제적 영역이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자본의 이윤 극대화와 일치하지 않는 사회적 이해의 표현에 문제의 시장이 복종해야만 하는 위험과 가능성이 최소한의 수준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시장이 그 철저하게 일방적인 논리대로 작동하지 않고 규제될 수 있는, 일부(자본)에게는 위험이요 다른 일부(노동자 시민)에게는 가능성인 사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후 복지 국가에서와 같은 일정한 조건에서는 정말로 가능한 사태였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와 시장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은폐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구체적인 역사에서 사회적 비판 운동이 파편화되고 무력화되어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형성된다면, 시장에 방해가 되거나 잠재적으로 위험한 모든 내용이 민주주의에서 제거될 수 있다. 여러분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효과는 전혀 없을 것이다. 여러분의 운명은 다른 곳에서, 의회의 영역 밖에 있는 시장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한 민주주의의 (수렴이 아닌) 종속은 정치 언어에 반영된다. ‘교체’(권력의 외관만 바꿔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라는 단어가 ‘대안’(뭔가 다른 일을 한다는 뜻)이라는 단어를 갈아치운 것이다.
시장 규제를 제외한 의미 없는 자투리들에만 이 같은 ‘교체’가 적용된다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신호이다. 이것은 민주적 절차의 신뢰성과 정당성을 침식하고, 민주주의를 예컨대 종교적 또는 인종적 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환각적인 여론으로 쉽게 대체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민주주의와 시장이 ‘자연스럽게’ 수렴한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이런 곤란이 발생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 주장은, 일부 소위 포스트모더니스트의 해석이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조화를 이루는 사회, 갈등 없는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증거에 따르면 범지구적인 자본주의 시장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해 왔다는 점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수렴이론-시장과 민주주의가 서로 수렴한다는 관념-은 오늘날에는 완전한 도그마, 상상의 정치 이론이다. 이 이론은, 그 고유 영역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상상 속의 경제에 대한 이론인 ‘순수 경제학’에 대응하는 정치 이론이다. 시장 근본주의의 도그마가 어디서나 현실 앞에서는 그 천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우리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수렴한다는 오늘날 흔히 유포된 관념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대로 우리는 권위주의가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을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 개인 대 집단(사회)의 변증법이 제기하는 과제에 대한 자본주의적 대응은 이처럼 위험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회에서 그 현실의 모든 층위에 내재하는 개인과 집단간의 모순은, 근대 이전의 모든 사회 체제에서, 그 첫 번째 조건의 부정에 의해, 즉 사회가 개인을 길들이는 것에 의해 극복되었다. 개인은 가족과 혈연집단, 사회 내에서 그가 갖는 지위를 통해서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이 부정의 조건은 유보되었다. 근대성은 사회에 반하는 경우에 조차 개인의 권리를 옹호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 같은 역전은 해방의 전제 조건, 즉 해방의 시작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동시에 개인들 간의 관계에서 항구적인 공격성이 발현될 가능성까지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경쟁에 대한 찬양과 강자의 승리라는 모호한 윤리를 통해 이 현실을 표현한다. 이 이데올로기의 파괴적 효과는 때때로 다른 윤리적 원칙들, 대부분 종교에 기원을 두거나 이전의 사회 형태로부터 물려 받은 다른 윤리적 원칙들과의 공존에 의해 억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장애는 무너지게 되어 있으며, 사드(Sade) 또는 니체(Nietsche)의 통속화된 형식이든 아니면 미국식이든 개인의 권리에 대한 그 일방적인 이데올로기는 증오와 공포, 그리고 극단까지 밀고 갈 경우, 강성(파시스트) 또는 연성의 독재를 낳을 수 있을 뿐이다.
필자는 맑스가 이 같은 위험을 과소평가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유래하는 환상을 조장하지 않으려는 배려 때문이었는지, 개인에 관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존재하는 반동적 가능성을 모두 인지하지는 못한 것 같다. 유럽에서 진보를 방해했던 봉건적 과거의 잔재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그가 미국 사회를 선호했던 것이 이를 말해 준다. 필자는 반대로 유럽의 봉건적 과거가 오히려 유럽을 옹호할 수 있는 비교적 긍정적인 특성의 일부를 설명해 준다고 말하고 싶다. 미합중국의 일상 생활을 지배하는 폭력의 정도가, 모든 면에서 유럽에 존재하는 폭력의 정도를 뛰어 넘는다는 점은 바로 미합중국에 전근대적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더욱 나아가 이 같은 선례의 존재가 관용과 인류의 결속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자본주의 이후 이데올로기의 요소들이 나타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선례의 부재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갖고 있는 지배적인 힘에 대한 복종을 강화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역사에 대한 자신의 기억에서 매카시즘의 기억을 체계적으로 지워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그 경험이 일깨워 주는 것처럼, 강성 권위주의 국면을 대체한) ‘연성’ 권위주의가 미국적 모델의 항구적 특성 중의 하나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이 때문에 미국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투표 기권자들의 비율이 높은 저강도 민주주의의 완벽한 모델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처럼 투표소로부터 대량으로 이탈하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이 과거를 물려 받지 못한 자들(the disinherited)이라는 또 다른 사실이 단지 단순한 우연일까?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변증법적 종합은 과연 어떻게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권리의 조화를 가능케 할 것인가? 그리고 이 같은 조화는 어떻게 개인의 생활과 사회의 생활에 투명성을 제공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이 자리에서 답변을 시도할 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분명히 현존하는 질문들이며 부르주아적인 민주주의 개념에 도전하고 그 역사적 한계를 규명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시장과 민주주의 사이에 적어도 ‘자연스러운’ 종류의 수렴 따위는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보다 선진적인 수준의 민주주의와 발전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결론지어야 하는 것일까?
이 같은 주장을 옹호할 만한 사실적 근거들은 충분하다. 군사독재체제 하에서의 한국, 대만, 브라질, 그리고 (나세르, 보메딘(Boumedienne), 바스 정권의 이라크 등등) 상승 국면의 민족주의적 인민주의는 민주주의를 어떤 식으로든 진정으로 존중한 체제에서는 결코 달성하지 못했던 수준의 ‘성공’을 보여 주었다. 더 과거를 보아도 일본과 독일이 경쟁국들을 따라잡는 국면에 있었을 때는 영국과 프랑스보다 확실히 덜 민주적이었다. 또한 민주적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던 근대 사회주의 실험은 때때로 주목할 만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혹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주화된 이탈리아가 거칠었던 파시즘 시절의 온갖 협박으로도 결코 달성하지 못했던 속도와 깊이로 근대화를 이루었으며, 서구 유럽은 그 선진적인 사회 민주주의(전후 복지국가)를 통해 역사상 가장 경이적인 성장기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지 만성적 경기침체만을 낳았거나, 또는 지독하게 엉킨 엄청난 난제들을 양산한 독재체제를 수없이 열거함으로써 민주주의에 유리한 비교를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보적인 상대주의적 입장을 채택하여 발전과 민주주의 사이에 어떠한 종류의 관련성도 설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이들의 양립 여부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조건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태도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체제 내부의 가속적 성장과 발전을 동일시하는, 발전에 대한 ‘통상적인’ 정의에 만족하는 한에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연구에서 제출한 중심 명제 셋 중 두 번째 명제를 인식한다면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범지구화된 자본주의는 그 본성 상 양극 대립을 야기하며 따라서 발전이 핵심적 개념인데, 이는 발전이 반드시 대안적인,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건설이라는 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사회의 건설은 인민의 진보 의지와 행동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인민의 의지와 행동이 함축하는 바와는 다른 것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가 참으로 발전의 조건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주제에 대해 지배적 담론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명제이다. 우리의 명제가 말하는 것은 결국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보다 나은,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한다면) 민주주의 없이 사회주의가 있을 수 없으며, 사회주의적 변형 없이는 민주화의 진전도 있을 수 없다.
‘현실주의’적인 관찰자들은 실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경험은 필자의 주장과 반대된다는 점을 즉시 지적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통속적인 소비에트의 역사적 맑스주의는 사적 소유의 철폐는 곧 그것이 사회적 소유에 의해 대치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천명했다. 맑스도 레닌도 그처럼 원대한 단순화는 행한 적이 없다. 그들에게 자본과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의 철폐는 사회적 소유의 구성이라는 장기적 진화 과정을 촉발하는 데 필요한 첫 번째 조치일 뿐이었다. 시민이자 생산자인 사람들이 작업장에서부터 국가의 수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생활의 모든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정을 자유로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민주화가 강력한 진보를 이룩했을 때에만 사회적 소유는 현실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리 낙관적인 인간이라도 이 같은 결과가 미국이든 프랑스든 콩고든 세계의 어떤 곳에서 '몇 년 안에', 그야말로 그 몇 년의 마지막 즈음에 이곳 저곳에서 사회주의의 건설이 완료되었다고 선언했던 것 같은 식으로 달성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 작업은 그야말로 새로운 문화를 구성하는 것에 다름 아님으로 여러 세대가 스스로의 행동으로 자기 자신들을 점차적으로 변화시켜 가야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1) 역사적 자본주의에서, 유토피아적 자유주의와 실용주의적 사회 관리 사이의 관계가 수행하는 기능과 2) 소비에트 사회에서,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담화와 실제의 사회 관리 사이의 관계가 수행하는 기능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흡사하다는 것을 바로 간파했을 것이다. 여기서 대상으로 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1914년 이전 유럽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따라 (그리고 그 근본적인 지점에서 이와 전혀 단절하지 않고) 사회 생활의 다양한 영역의 논리들이 ‘자연스럽게’ 수렴한다는 관념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그 ‘필연적인’ 경로라는 편리하고 단선적인 해석을 통해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 볼셰비즘의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이것이 역사적 맑스주의 독해 방법 중 하나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이런 방식으로만 맑스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필자의 방식은 아니다.) 수렴이라는 관념은 여기서도 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 도그마가 강요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시장을 대체한) ‘계획’에 의한 경제 관리는 필요에 대해 명백히 적절하게 반응한다. 민주주의는 ‘계획’의 결정들을 오로지 강화할 뿐이며, 이에 반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역시 환상적인 사회주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예를 들어 '따라잡기' 위해 생산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심각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한 현실 사회주의의 관리 요구에 맞닥뜨리게 된다. 당국은 자인할 수도 없고 자인하지도 않은 냉소적인 수단과 관행으로 그것을 지탱한다. 전체주의는 두 체제에 공통된 것이며 같은 방식으로, 즉 체계적인 거짓말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것이, 쉽게 말해, 더 폭력적이었다면 그것은 소비에트 연방이 극복해야만 하는 후진성이 그 정도로 극히 무거운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서방에서 이루어졌던 진보는 안락한 완충 장치를 제공했다. (따라서 성장이 용이했던 기간의 소비자중심주의에서와 같은 '부드러운' 전체주의로 나타난 것이다.)
수렴 테제를 포기하고 상이한 영역의 논리들이 충돌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론과 현실의 조화가 가능하도록 역사를 해석하기 위한 선행 요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진정으로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을, 즉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진보를 이룩하는 것을 가능케 할 전략을 고안하기 위한 선행 요건이기도 하다.
진정한 사회 발전과 민주화간의 밀접한 관계, 너무나 가까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이 관계는 지배 이데올로기 변호론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 떠드는 잡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들의 사고는 언제나 열등하고, 혼란스러우며, 애매모호하고, 결국에는 반동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고는 자본의 지배적 권력을 위한 완벽한 도구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보편주의적 개념이며 그 본질적 가치로부터의 어떠한 일탈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배적 담론, 그 중에서도 스스로를 주관적으로 ‘좌익’으로 분류하는 세력들의 담론에서조차도 민주주의를 조각조각 단편적으로 해석하여 결국에는 인류의 단일성을 부정하고 다수의 ‘인종들’, ‘공동체들’, ‘문화 집단들’, 등등을 선호한다. 앵글로-색슨식의 정체성의 정치학과 그 총괄적 표현인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는 인류의 진정한 평등을 부정하는 뻔뻔스러운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공동체 개발’의 구체적 형태들은 문제의 공동체들(예를 들어 런던 교외 지역의 서부 인도인들, 프랑스의 북부 아프리카인들, 또는 미국의 흑인들, 등등)의 의지가 민주적으로 표현된 결과라고 주장될 것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보아도 그것은 결국, 개인을 이들 공동체 내부로 가두고 이들 공동체를 다시 체제가 부과한 견고한 제한선 안에 가두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다름 아니다. 다만 그렇게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공동체 개발’모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주장은 실용적(“이들 공동체에 모여든 소외 받는 사람들과 피해 받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하라”)이며 동시에 민주적(“공동체들은 있는 그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를 갈망한다”)인 것처럼 보인다. 아직도 보편주의자들의 이야기들 대부분은 순전히 미사여구로 차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킬 효과적 행동을 위한 전략을 추구하지도 못한다. 즉 이런 저런 특정 집단들이 감내하고 있는 억압에 대항할 투쟁의 구체적 형태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로 삼고 있는 억압은, 그것이 보다 온건한 형태로라도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게 하는 틀을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다면 결코 철폐할 수 없다.
억압받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는 자기 고유의 억압 문화에 대한 애착은, 우리가 그 감정 자체는 존중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위기가 낳은 산물이다. 민주주의의 유효성, 신뢰성, 정당성이 침식되었기 때문에 인류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체성의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문화주의라는 의제와 맞닥뜨린다. 문화주의는 이들 (종교적, 종족적, 성적, 또는 기타) 공동체들 각각이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즉 보편적 의미가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는 선언이다. 문화주의란, 필자가 다른 곳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 즉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수단이 아니며 오히려 반대로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것이다.


사회적 투쟁의 지구화: 발전을 되찾기 위한 조건들
미래를 위한 시나리오는 강한 객관적 경향들과, 그 경향들이 표현하는 문제들에 대해 인민과 그들을 구성하는 사회 세력들이 전개하는 반응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비전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주관성의 여지, 직관의 여지를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미래란 미리 계획되는 것이 아니며 창의의 산물이라는 것, Castoriadis의 강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미래는 실제 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행위자들의 행동을 좌우했던 모든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메커니즘들이 사라져버린 지금 같은 시기에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가 종결되면서 그 정치적 삶의 구조가 붕괴하였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삶과 정치적 투쟁은 그 정당성을 의심받지 않았던 정치적 국가를 배경으로 하여 수행되어 왔었다. (정부의 정당성은 의심받을 수 있었으나 국가의 정당성은 그렇지 않았다.)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정당과 노동조합, 그리고 언론에서 ‘정치적 클래스’이라 부른 서클들과 전국 고용인 연합 등 몇 개의 거대한 기구들이 체제의 기본 구조를 형성하고 그 내부에서 정치운동, 사회투쟁, 이데올로기적 경향들이 스스로를 표현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이들 기구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정당성을 상당 부분(전부는 아닐지라도) 상실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을 대신하여 다양한 종류의 ‘운동들’, 환경이나 여성의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들, 민주주의 또는 사회적 정의를 위한 운동들, 자신의 정체성을 인종적 또는 종교적 공동체로서 선언하는 집단들의 운동들 등등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따라서 이 새로운 정치적 삶은 매우 불안정하다. 이러한 요구 및 운동들과, 사회(즉, 현존 자본주의) 및 지구화된 신자유주의적 관리 사이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 운동의 일부는 지배적 권력에 의해 투영된 사회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데 참여하거나 또는 참여할 수 있으나, 다른 일부는 그와 반대로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으며 전혀 반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 권력들은 이 같은 구분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일부 운동은 공개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조작하거나 지원하고, 다른 운동에 대해서는 단호한 전투를 전개한다. 이것이 이 새롭고 불안정한 정치적 삶을 재배하는 규칙인 것이다.
세계 관리를 위한 지구적인 정치 전략이 존재한다. 이 전략의 목표는 국가 형태의 사회 조직의 붕괴를 촉진함으로써, 체제에 잠정적으로 적대적인 세력들 가운데 가능한 많은 부분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슬로베니아, 코소보, 쿠웨이트 등등 가능한 많은 부분을! 이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정체성에 근거한 요구를 활용, 내지는 조작까지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인종적, 종교적 또는 기타 공동체의 정체성의 문제는 우리 시대의 중심적 문제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다양성(민족, 인종, 종교, 문화,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의미하는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에서는 어떠한 균열도 허용될 수 없다. 다양성을 관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실패한다면 그것은 그 적대자가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역사상의 다양한 좌파들은 이러한 측면이 부족했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자주 얘기되는 것보다는 훨씬 부족했다. 여러 예 가운데 하나: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여러 민족들이 진정으로 동등한 지위를 기반으로 공존하는, 거의 하나의 모델이었다. 그러나 루마니아는 분명 그렇지 못했다! 제3세계의 경우 반둥(Bandung) 시기에는 민족 해방 운동이 다양한 종족 집단들과 종교 공동체들을 제국주의라는 적에 맞서 종종 통합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들 제1세대의 여러 지배 계급들은 진정으로 종족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양성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거나, 진전이 있는 경우에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던 권력은 거의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들의 소극적 태도는 이들 사회의 다른 문제들을 관리한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 영역에서도 애처로운 결과를 낳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이에 맞설 힘이 없었던 지배 계급들은 종종 특정 종교 공동체들에서 참여 철회를 호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대중에 대한 자신의 ‘통제’를 연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서구의 여러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공동체의 다양성을 항상 올바로 관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북아일랜드가 그 가장 뚜렷한 사례이다.
문화주의는 다양성에 대한 민주적 관리가 실패한 바로 그 정도만큼 성공했다. 필자가 말하는 문화주의는 차이들을 ‘근원적’이라고 선언하는 것, 예를 들어 계급 차이 보다 ‘우선 순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 그리고 종종 차이들이 ‘초역사적’이라고, 즉 역사적으로 불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의 것은 종교 문화주의의 주장으로서, 반계몽주의와 광신주의로 쉽게 경도된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엉켜 있는 이러한 요구들을 분류하기 위해, 필자가 보기에 기본 기준이라 생각되는 것을 제시하려 한다. 사회적 착취에 반대하고 모든 영역에서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확보하려는 싸움과 연결된 요구를 가진 운동들은 진보적이다. 반면, 자신은 ‘아무런 사회적 프로그램이 없다’고(왜냐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지구화에 적대적이지 않다’고(이것도 역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는 운동, 특히 자신들은 민주주의와 무관하다(민주주의는 ‘서구적’ 개념이라고 비난 받음)고 선언하는 운동들은 공공연하게 반동적이며 지배 자본의 목표에 완벽하게 봉사한다. 지배 자본은 이점을 알고 있으므로 (언론 매체가 자신의 야비한 기사를 활용하여 그의 희생자들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경우에도) 이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이들의 운동을 활용하고 종종 조작하기도 한다.
지배 자본의 대표들이 오늘날 읊어대는 민주주의와 인민의 권리는 현대의 세계 위기를 신자유주의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에서 경제적 수단을 보완하는 정치적 수단 이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때의 민주주의는 사안에 따라 선별적으로 작동한다. 이들이 말하는 ‘선의의 통제’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이 그것은 미합중국 3강의 전략이 부여하려는 우선 순위에 철저하게 종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따라서 이중 기준의 체계적 적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구실로,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페르시아만의 여러 나라들에 개입하는 것의 문제는 과거 모부투(Mobutu) 정권에 개입한 것과 오늘날 Savimbi정권에 개입하는 것의 문제와 다르지 않으며, 그리고 앞으로 여러 다른 나라들에 개입할 것에 따른 문제에 다름 아니다. 인민의 권리는 (오늘날에는 코소보,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는 티벳 등과 같이) 어떤 경우는 신성하지만, (팔레스타인, 터키 쿠르디스탄, 키프로스, 크로아티아 정권이 무장 군대를 동원해 추방한 크라이나의 세르비아인들, 기타 등등과 같이) 어떤 경우는 그냥 잊혀진다. 르완다에서의 무시무시한 대량 학살조차, 이를 공공연하게 획책한 정부에 외교적 지원을 제공한 국가들의 책임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특정 정권의 가증스러운 행위가 이용하기 쉬운 핑계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이 같은 작업을 촉진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서 볼 수 있는, 흡사 공범과 같은 침묵은 민주주의와 인민의 권리에 대한 말 잔치로부터 모든 신뢰성을 제거해 버린다.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과 인민에 대한 존중이라는 근본 요건에는 양보가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이 없으면 진보도 있을 수 없다.
(다행히도) 이것은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새로운 국면에서 이미 우리는 체제의 희생자인 근로 인민을 둘러 싼 투쟁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브라질의 토지 없는 소작농들, 일부 유럽 나라들에서의 임금 소득자와 실업자의 단결, (한국 또는 남아프리카에서처럼) 임금 소득자의 대다수를 포괄하는 노동조합, (인도네시아에서처럼) 도시 노동 계급과 함께 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학생들 등등, 그 목록은 매일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투쟁은 반드시 확장된다. 이 투쟁들은 분명히 매우 다원적일 것이며, 이 다원성은 우리 시대의 긍정적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분명히 이 다원주의는 소위 ‘신사회운동’이라 불렸던 여성운동, 환경운동, 민주운동 등이 축적된 결과이다. 물론, 이들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장애물에 맞서면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심적인 질문은 지배적 충돌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배적 충돌이란 필자가 위에서 그 예상 구성도를 간추려본 다양한 지배 계급들(즉 국가들) 사이의 지구적 충돌을 말한다.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사회 투쟁은 종속되어 보다 큰 규모의 지구적 제국주의적 충돌 환경에 포함되고, 따라서 지배 권력에 굴복 당함으로써, 항상 조종당하지는 않는다 해도, 이들의 목적에 따라 동원될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사회 투쟁은 스스로의 자율성을 쟁취하고 권력을 강제하여 자신들의 요구에 적응하도록 할 것인가? 한/노/정/연


번역: 박용준(연구원)

2001-1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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