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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실업, 잠복된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71호
유의선



대량실업, 잠복된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유 의 선/서울지역실업운동연대





1. 실업률과 실업대책
이른바 IMF 사태 이후 급격히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노동자들이 대량 실업 상태에 머물게 되면서 전사회적인 관심이 실업문제에 쏠린 때가 있었다. 정부 통계만으로도 178만명, 8.6%까지 올라갔던 대량실업 사태! 뒤늦게 수습하고자 실업대책을 연이어 발표하던 정부의 호들갑 속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업률은 점차 하락해갔고, 이에 발맞추어 실업정책마저 슬그머니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실업노동자들이 자신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간 것일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업의 고통을 호소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이들 중 대다수가 몇 년간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하는데 정부는 현장에서의 체감과는 정반대로 실업문제가 거의 해결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상당한 인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우선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실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이다. 97년 말 이후, 정부가 바라보는 실업의 문제는 ‘실업률’의 문제였다. 하기에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실업률’의 문제에 천착하여 이 수치를 낮출 수 있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광범위한 실업자층을 적당히 관리․포섭할 정책들을 시행하면서 한편으로는 계속적인 노동시장 유연화를 지지, 강화시킴으로써 실업을 발생시킨 근본적인 구조를 유지한 채 일시적인 공공근로, 민간자원 동원 등으로 실업률을 낮추고 실업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시켜왔던 것이다. 이런 정부 대응의 결과는 실업의 일상화, 장기화로 이어져 실제 취업률 상에서 상용근로자는 계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임시근로자는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실업문제에 대한 민간부문의 온정주의적인 태도이다. 대량실업시 범국민 모금운동으로 수백 억을 모금한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를 비롯하여 상당수의 민간단체들이 실업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다. 이들의 활동은 실업의 고통을 완화시켜주었고, 그중 일부는 자활사업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활동영역을 개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부문의 활동이 실업에 대한 온정주의적 태도, 즉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따뜻한 관리’를 하는데 치우쳐서 실업문제의 초점을 실업대중에 대한 물질적 지원으로 왜소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실업노동자들의 생활상의 문제가 방송과 언론을 통해 마치 자선의 대상인 것처럼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이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점차 안정된 일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노동자가 아닌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실업자로 고착되어 실업의 문제는(대량실업을 구조적으로 발생시키는) 사회 자체의 문제에서(주위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하는) 실업노동자 개인의 문제로 전화되었다. 결국 실업의 진정한 원인에 대해 밝히고 실업노동자들의 주체적인 투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은 형성되지 못했고, 이것은 정부의 실업에 대한 안이한 태도를 더욱 안착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업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잠복되어 있는 대량실업은 불안정 노동층에 포괄되어 있는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조그만 경제적 충격에도 쉽게 실업 상태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에서, 미취업 상태로 매년 수십만 명 씩 쏟아져 나오는 청년예비실업노동자들에게서 읽어 낼 수 있다. 또한 세계적인 경제 후퇴의 조짐이 보이고 있고, 국내적으로도 정치적 불안과 사회정책적 토대의 취약함으로 보다 후퇴된 사회정책들이 언제 목을 조여올지 모른다. 이러한 잠복된 실업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인식을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2. 실업노동자의 생활실태
실업단체들은 올해 초 저소득실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국 10개 지역의 총 877부를 분석한 결과를 통해 실업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해 보았다. 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권자에 신청하여 탈락되었거나 혹은 몰라서 신청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일자리가 없고, 재산기준이 3000만원 이하인 차상위계층이 주된 응답자인 것이다.
이들의 월 평균 총소득은 72만원이나 최소생활비가 105만원으로서 33만원이 적자이다. 실업대책으로 생활안정을 위한 실업자대부를 신청하고 있으나 최대 5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실업자 대부도 보증인을 세워야만 신청을 할 수 있어 실제 실업자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특히 주로 세대주가 실직인 상황에서 가족들이 일시적인 일자리나 비정기적인 일자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불안정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빚을 얻거나 친지의 보조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50%가 넘는 반면 정부의 보조를 받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2.5%에 불과하다. 또한 경제파탄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0.3%인 반면 경제파탄 가능성이 전혀없는 응답자는 4.75%에 불과하다. 친지의 도움 없이 생활한다면 모아둔 재산이 다 없어질 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1년 이내인 응답자가 무려 91.7%이다. 이는 대부분의 실업노동자들이 다른 도움없이는 파산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법에조차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부양의무)을 1차적으로 명시하고 있어 국가의 책임보다는 가족의 책임을 과다하게 지우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대량실업이후 가족이 급속하게 해체되고 1인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의존할 곳 없는 이들의 생계는 매우 절박한 상황이다.
총 응답 877 가구 중 가구주가 실업상태인 가구는 739가구. 그 중 3년 이상 장기실업 상태인 가구주가 39.2%에 이른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실직한 사람들이 2001년 2월 현재까지 직장을 갖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1년 이상 직장을 갖지 못한 가구주는 3년 이상을 포함해 63.6%로 2/3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경기호전으로 실업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와 상반되는 결과이다.
2001년 2월 현재 가구주가 임시직이거나 일용직인 403가구의 가구주의 평균 근로일수는 9일이다. 기초생활보장법 시행지침에서 임시직이나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에 근로 여부가 불분명할 경우 8일 동안 일하는 것으로 추정소득 기준을 삼고 있다. (8일×20,000=160,000을 추정소득으로 부과) 이는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평균적인 근로일수로서 수급신청자들이 대부분 평균 근로일수에 못 미치는 열악한 노동경쟁력자 보유자임을 고려할 때 추정소득 부과기준이 너무 높게 책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시직이나 일용직이나마 일을 하고 있는 응답자 403명 가운데에서도 조사시점 전으로부터 1개월 동안 전혀 일을 하지 못한 가구주가 98명으로 24.3%를 차지했다. 근로의욕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어 1달 내내 소득활동을 하지 못하는 저소득 실업자의 생계지원과 일자리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가구주가 실업상태인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1%가 체면이나 위신을 버리고서 무슨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응답했다. 또한 전직보다 더 힘들고 보수가 적더라도 일할 의향이 있는가에 대한 응답자의 59.9%는 하향취업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부가 계속적으로 ‘눈높이 취업’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결과는 실업자들의 취업욕구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기실업과 빈곤을 재생산하는 불안정한 일자리는 실업을 일상화시키고 있다. 실업노동자들은 ‘복지병’ 때문에 놀고 먹으려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또한 취업의 욕구와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사람들임다. 그럼에도 오히려 대량실업 초기 ‘실업자’로 칭해졌던 사람들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저소득층, 혹은 수급자들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실업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의 가장 하위를 차지하면서도 노동자로서의 동질성을 가지지 못하도록 관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3. 정부의 실업대책
실업을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라고 인식할 때, 이것은 단지 사회적 불안요소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실업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의 긴박한 생존의 문제에 착목하는 동시에 실업의 상시적 존재가 일으키는 자본-노동간의 역학적 재편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이다.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는 이러한 세력구조 속에서 자리잡고 있으면서 정당성 확보를 위한 실업층 관리를 계속적으로 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움직임은 최소비용으로 사회통합을 유지하려고 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더욱이 실업문제가 경제회복으로 다소 완화되려는 조짐이 보이자 ‘생산적 복지’라는 기이한 레토릭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 해왔고, 더욱이 최근에 와서는 부실한 실업대책마저 축소해가며 실업노동자의 삶의 문제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

1) 실업대책과 일자리창출 사업의 문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 신년사를 통해 임기내에 중소․벤처기업, 문화․관광산업 등을 대대적으로 육성해 200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 사실상의 완전고용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에게 실업대책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조금만 살펴보면 대부분의 일자리가 인턴, 벤처육성, 소상공인 창업, 공공근로가 중심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인턴채용확정인원만 2만9천명이다. 창업지원도 올해만 1만 명을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인턴제는 기업이 필요한 신규채용 인력을 정규채용하지 않고, 인턴으로 고용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턴제는 오히려 정규직의 고용을 축소시키며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유지하면서 더욱더 열악한 근무조건 및 높은 노동강도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창업 또한 일자리창출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창업에 필요한 지원자금의 대부분은 보증인을 조건으로 하는 까다로운 융자조건과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사업실패 부담이 큰 소자본 창업의 경우, 사업실패시 융자금 상환과 부채부담은 실업자들이 빈곤상황으로의 급속한 전락 위험을 전적으로 감내하여야 한다는 것(전실연요구 中)’이다.
정부의 일자리창출 대책을 살펴보면 정부는 지금의 실업상황을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시키는 호조건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노동력밖에는 팔 것이 없는 노동대중들에게 저임금의 비정규노동, 파트타임 노동, 파견근로 등을 강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일자리마련을 위한 예산수립 및 계획을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 재원조달의 계획조차 없는 예산 속에서 실업대책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예산책정 구조의 문제
올해 실업예산은 작년 5조 9,000억원에서 3조가 삭감된 2조 9,000억원으로 책정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예산 삭감의 가장 큰 근거는 작년 실업대책의 성과로 실업률을 4%대로 억제하는데 성공하였고, 앞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정부의 낙관적인 판단에 있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올해 실업대책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복지체계 구축”이라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실업문제의 원인을 실업자의 취업능력 부재에서 찾고, 실업자들의 취업능력을 제고하는 교육훈련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으로 정부의 실업대책을 “제한”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실업예산을 둘러싼 쟁점은 실업예산의 많고 적음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왔다. 올해의 실업예산 또한 예산의 규모에 있어서 턱없이 부족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본원적 일자리 창출”사업을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실업대책과 예산이 마련되고 있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사회간접망 투자 확충’, ‘벤처기업 창업 활성화’와 같이, 실업자들을 위한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사업은 실업대책 수립과 예산책정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부차화되어야 한다. 이미 ‘벤처기업 창업 활성화’사업의 경우는 몇 백억원의 예산만 낭비한 대표적인 낭비행정의 표본으로 드러난 바 있다. 동일한 이유로 “청년실업자는 IT인력화하고 중장년실업자는 창업을 지원한다”는 발상도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앞으로 실업대책 수립과 이에 따른 예산책정 과정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실업자를 위한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3) 실업자의 권리침해
정부는 “IT․3D업종 인력부족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3D업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당한 이유없이 2회 이상 취업알선을 거부할 경우 실업급여 지급을 정지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해 자활지원을 받고 있는 대상자들이 정당한 사유없이 자활사업에 불참할 경우 생계급여 중단 등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번 실업대책 보완과제를 통해 소위 눈높이를 맞추어 3D업종에 취업하는 실업자에게는 남은 생계급여의 전액을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추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우선 이러한 정부대책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력수급의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 실업자들의 취업문제에 접근하는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3D업종의 인력난은 실업자들이 3D업종에 취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3D업종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수준 및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인해 실업자들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낙후된 고용조건 자체에 원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기회복 전망이 불투명하니 실업자들은 “눈높이를 낮추어”(!) 빠른 시일내에 3D업종으로 취업하라는 것이다. 악화일로에 있는 고용조건에 대한 혁신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러한 정부의 대책은 어떻게든 실업률을 낮춰 보겠다는 근시안적인 대증(對症)요법을 답습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커다란 문제는 소위 “눈높이 취업”이라는 발상 자체가 지니고 있는 기만성과 반민중성에 있다. 과연 실업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서 실업대란이 발생하였으며 우리사회가 고실업시대로 접어들었단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눈높이만 높은 실업자들의 취업행태가 실업문제 해결의 걸림돌인양 호도하는 정부의 처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실업의 책임을 실업자 개인에게 돌리고, 실업자들을 직업선택의 자유마저 없는 한낱 정부 실업대책 상의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현재의 정책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이는 여타의 정부 정책상 통제와 감시의 대상에 속하는 국민들은 누구나 정부의 필요에 의해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당할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4) 실업노동자 생활보호책의 미비
실업이 구조화되고 장기화되면서 ‘실업’은 ‘사회적 문제’라기 보다는 일정정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 문제로 인식되고, 이러한 실업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업급여 등 실업부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고용보험에 6개월 이상 가입을 했어야만 지급대상이 된다. 현재 제도적으로는 5인이하 소규모사업장까지 고용보험에 의무가입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 적용률은 절반에 못미친다고 한다. 경북 구미상공회의소는 최근 이 지역 사업장 70여곳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중 의료보험과 산업재해보험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는 각각 11.6%와 4%에 그쳤으며, 고용보험은 0.5%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경기침체 및 구조조정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 비정규직이라고 할 때 실업급여의 수급권대상에조차 포괄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제는 장기실업이 늘어나면서 고용보험에 가입했었다 할지라도 6개월 정도 실업급여를 받고나면 다른 어떠한 실업부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생활안정에 기여했다는 공공근로가 대폭 축소되었으며,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도 차상위계층의 장기실업자를 포괄하지 못한다.
실업급여는 실업자의 생활보장책이다. 낮은 고용보험 적용률, 엄격한 수급제한조건, 짧은 수급기간과 적은 금액의 실업급여는 실업자의 생활보장보다는 정부의 ‘눈높이 취업’을 강제하는 도구로 쓰여지고 있을 뿐이다.


4. 실업운동의 요구
실업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실업을 ‘극복’한다 해도 누군가는 계속 실업자가 되고 있다. 실업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이어서 무수한 경쟁과 노력을 통해 개인적으로 극복해 내는 것이 아니다. 실업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업 운동은 인간적인 동정과 개인의 격려를 뛰어넘어 실업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제거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오늘날의 구조조정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는 잠재적으로 실업의 위험을 지닌다. 실업자들은 영원히 실업 상태를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불안정한 노동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게 된다. 노동자나 실업자 모두는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만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실업자와 노동자라고 분리되어 불려지기보다는 ‘실업 노동자’라는 명명을 통해서 실업자와 노동자의 동질성을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업자가 기실은 ‘일을 하고 싶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받지 못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실업자는 바로 ‘실업 노동자’인 것이다. 그리고 실업운동은 바로 이러한 실업 노동자의 자주적 요구, 즉 떳떳한 노동을 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그것을 통해 보다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인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실업 노동자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함께 고통받고 있는 노동 대중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실업의 원인을 사회적으로 제거하는 지난한 투쟁의 몫이 실업 대중만의 것임이 아닐진대,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과정 속에서 조직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광범위한 연대 속에서만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가능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실업 노동자의 요구가 있다. 실업 노동자가 원하는 것은 자기 삶의 존엄성의 토대가 되는 ‘일자리’이며, 그것도 떳떳한 노동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이다. 그러기에 평생 고용에 대한 미련도, 안정적인 생활의 꿈도 버려진 상황, 늘 이런저런 일자리를 옮겨 다녀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한꺼번에 여러 개의 일자리를 가져야 하는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다.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의 창출과 유지’는 실업 노동자뿐 아니라 보편적인 노동 대중의 요구이기도 하다. 어떠한 장밋빛 환상도 가지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고서는 실업이 사라지지도, 실업 노동자의 권리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했을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기만적인 실업정책 철폐하고, 공공적이고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하라!
실업노동자의 의료, 주거, 교육권을 보장하라!
실업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라!

2001-1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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