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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전쟁과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자의 분열

현장에서 미래를  제72호
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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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최경희

제국주의 전쟁과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자’의 분열

송태수

제국주의 침략자가 된 소위 좌파정권

김세균

미국의 제3세계정책과 군사적 개입

사사키 타츠오

미 제국주의 보복전쟁과 동남아시아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12월호는 ‘전쟁’을 특집으로 기획하였습니다. 9월 11일 미국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와 이후 그에 대한 미국의 보복전쟁이 진행되었으며, 현재 알 카에다의 항복과 이후 구도의 재편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세워내기 위해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은 아래의 세부주제들을 기획하였습니다. 먼저 「제국주의 전쟁과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자’의 분열」을 통해 세계대전 당시 서구 사민주의자들의 혼란과 분열상에 대해 살펴보고, 「제국주의 침략자가 된 소위 좌파정권」을 통해 현실 사민주의 정당 역시 제국주의적인 세계재편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며, 「미국의 제3세계정책과 군사적 개입」을 통해 미국이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제3세계에 어떻게 개입해 왔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해의 심화를 위해서는 일본의 ꡔ사상운동ꡕ에 실린 사사키 타쯔오의 「미 제국주의 보복전쟁과 동남아시아」를 번역하여 싣습니다. 이 글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혁명과 그에 대한 미국의 개입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특집을 통하여 9․11 대미테러공격과 이에 대한 소위 미국의 보복전쟁에 대한 적확한 이해와 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관점 확립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국주의 전쟁과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자’의 분열

최 경 희/연구위원




1. 문제설정을 위하여: 제국주의의 연속과 계급투쟁의 경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20세기는 제국주의 전쟁으로 시작하였다. 2001년 9월 11일 아프카니스탄의 ‘대미공격’1)의 발발과 즉각적인 공격을 시도하기보다는 국제적인 여론 조성에 힘을 기울였던 미국은 국제정치무대에서 독보적인 입장을 관철시키면서―테러의 공포조성과 전세계적인 반테러 전쟁선포―일명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하였고, 현재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즉, 21세기 전반기 또한 전쟁으로 세계정치는 뜨거워졌다. 이러한 보복전쟁을 수행한 미국 대통령 부시는 미국 내에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테러와의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아직 ‘미국에 반하는’ 국가 또는 집단에게 전쟁의 가능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20세기 전반기의 역사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을 경험하였다. 거의 반세기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럽은 ‘황금의 30년 시대’를 만난 것이다. 전후 체제는 진영간 대립이라는 또 다른 전쟁으로서 냉전(cold war)과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포드주의적 생산양식의 일반화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체제는 소련과 동구유럽의 붕괴로 인한 탈냉전과 이윤창출의 한계에 부딪힌 포드주의 생산방식에 의해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은 자본주의 세계화의 첨병인 미국의 독주2)와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축적방식으로 폭력적인 변화3)를 수반하고 있다. 세계경제 위기가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맹주, 미국주도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21세기 현 시점은 제국주의 전쟁의 가능성―직접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내전을 가장한 대리전 등 다양한 형태로―이 도사리고 있다. 과연 21세기 계급투쟁은 20세기와 어떤 차이점을 가질 수 있는가?

지난 역사에서 주목하고자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계급투쟁의 조건을 제공하였다. 이 과정 속에서 어떤 태도와 입장으로 좌파 정치세력들이 임했는지에 따라 개별국가의 계급투쟁의 지형과 국제정치체제가 달리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19세기 형성된 각국 노동운동을 실험대에 오르게 만들었다. 즉, 유럽의 각국 노동운동은 1870년대의 독점자본의 출현과 식민지 쟁탈전의 제국주의 열강시대의 도래에 따라 ‘부르주아 민족주의’ 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본고는 특정하게 제1차 세계대전 전후를 중심으로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의 노동자운동의 성공과 후퇴를 다루려고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제국주의 전쟁의 시대에 좌파 정치세력은 어떠한 태도와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제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앞서 간단히 ‘전쟁’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을 정리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제2차 인터내셔널의 붕괴라는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자’의 분열, 그러한 측면에서의 러시아 혁명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2. 계급투쟁의 연속으로서의 전쟁: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

맑스와 엥겔스를 시작으로 한 맑스주의 성립의 역사는 맑스의 위대한 이론적, 실천적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법, 철학, 정치, 경제로 이동하는 관심의 영역은 ‘계급투쟁’과 ‘계급해방’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통일되어 나타난다. 결코 계급투쟁과 계급해방이라는 말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하나의 차원―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 등―으로 치환되어 설명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엥겔스는 과학의 역사에 새겨넣게 만든 맑스의 많은 업적 중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여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계급투쟁의 역사관이요. 다른 하나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의 최종적 해명, 다른 말로 하면 현재의 사회 내부에서, 즉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서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증명이다.4) 역사에 대한 통시성과 공시성을 관통하는 과학적인 분석을 수행한 것이다. 전자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하자면, 기존의 지배적인 역사관은 모든 역사적 변화를 인간의 변화된 관념에서 찾거나, 다시 정치적인 것들이 역사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는 표상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관념들이 어디에서 인간에게 오는지 또 정치적 변화들을 움직이는 원인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질문하지 않았다. 이제 맑스는 이제까지의 역사 전체가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것, 갖가지 복잡한 모든 정치적 투쟁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사회 계급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배, 즉 낡은 계급측에서의 지배의 고수, 신흥계급측에서의 지배의 획득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맑스가 경험했던 봉건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계급투쟁의 시기는 바로, 이러한 것을 발견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래로 신흥계급은 정치권력까지 전취하였고 프롤레타리아트와 소농민에 대한 지배계급이 되었다. 사실 이러한 것이 순수하게 인간 역사에 드러나게 한 것이 역사의 진보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진실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처음으로 진정한 기초 위에 세워졌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함의를 갖는다.5) 이 역사파악은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가 계급대립과 계급투쟁 속에서 운동했다는 것, 언제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이 존재했으며 줄곧 인간의 대다수는 고된 노동과 하찮은 향유라는 형벌을 받아 왔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이전의 모든 인류발전단계들에서는 생산이 극히 미약하게 발전하여 역사적 발전은 이와 같은 대립적 형태로만 일어날 수 있었고, 대체로 역사적 진보는 우선권이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소수의 활동에 위탁되어 있던 반면에 다수 대중은 자신을 위한 모자라기 일쑤인 생활용품에다가 우선권이 있는 자들을 끊임없이 부유하게 해주는 것까지를 노동하여 벌어야 하도록 저주받은 채로 있었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6) 이에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하여 통제불가능한 현 단계 체제―공황과 대파산―에서 대부르주아층은 소명을 다했다고 맑스는 언급한다. 역사적 지도는 그 사회적 처지 전체로 말미암아 일체의 계급지배, 일체의 예속, 일체의 착취를 전반적으로 제거함으로써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에게로 넘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수중에서 벗어날 만큼 성장해버린 사회적 생산력들은, 사회성원들 각각을 사회적 부의 산출뿐만 아니라 분배와 관리에까지 참가하게 할 수 있으며 전체 생산의 계획적 운영을 통해 사회적 생산력들과 그 수확을 현저히 증대시켜 일체의 합리적 욕구들의 충족이 각각에게 끊임없이 증대되는 규모로 보장되는 상태를 수립하기 위한 연합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점유 획득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7)이다.

여기에서 맑스의 분석은 기대와 희망도 함께 섞여 있다. 부르주아지를 넘어서 사회적 생산력의 발달은 다른 계급―프롤레타리아트―에게로 역사적 지위이동을 필연적으로 생성시키지만 여기서 다음 사회를 지배할 지배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지배의 지속성’이 아니라 ‘계급의 폐지’를 자기의 역사적 과제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태내에서 형성된 노동자계급에게 이러한 정치활동의 목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구성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진전과 후퇴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질 뿐만 아니라 계급해방을 위한 노동자운동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 노동자 운동은 몇 가지 근대 부르주아 정치형태를 극복해야 한다. 바로, ‘민족국가단위’로 규정되어 있는 정치의식의 구성과 정치활동의 범위를 극복하는 것이다. 첫째로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의 분리로서 각각의 독자적인 시스템을 영구불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배적인 사고요, 둘째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애국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문제는 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이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에 따른 경쟁격화로 인해 국가간 전쟁이라는 현상으로 외화될 때, 전쟁 수행자로서 노동자․민중을 동원시킨다거나 자본의 위기를 국민의 위기로 전화하면서 ‘비계급적’인 사태로 몰입시키고, ‘환상적인 공동체’인 국가 아래로 노동자․민중을 포섭하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에게는 국가가 없다’는 ꡔ공산당 선언ꡕ의 구절은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개별 국가를 넘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를 지속 유지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극복의 필요성과 자본과 노동의 계급투쟁에 대한 세계적 지형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현실적으로 직면한 것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국면’이었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실현한 정치세력은 유럽 내에서 많지 않았으며 이 이후 제2인터내셔널은 붕괴하였다.

전쟁유형과 관련해서 엥겔스와 맑스의 출발점은 “인민전쟁”이다. 엥겔스는 근대의 전쟁은 “부르주아지와 농민의 해방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이 해방의 군사적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다수 인민의 이해에서 분리된 당대의 지배계급간의 국지전이나 정부간의 전쟁은 반동적이거나 반혁명적인 것이다. 전쟁은 원칙적으로 비판된다. 그러나 모든 전쟁이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서 “억압자에 대항하는 피억압자의 전쟁”은 “역사상 유일한 정당한 전쟁”이며, 낡은 국가기구를 분쇄할 계급전쟁, 곧 “노동과 자본간의 전쟁”은 본질적으로 “정전(正戰)”이다. 엥겔스와 맑스에게 그러므로 내전, “방어전쟁”, 반식민주의적 민족해방전쟁, 이들의 게릴라전쟁 등은 ‘정당한’ 전쟁이다.8) 레닌과 볼셰비키는 당시 대다수 정당이 전쟁을 개시한 쪽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 관점에서 전쟁을 공격전쟁과 방위전쟁으로 나누는 것에 반대하였다. 어떠한 전쟁에도 방위와 공격이 따르며 침략자가 방어자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고, 해방전쟁에서 공격을 하는 경우도 널리 일어난다. 전쟁의 성격을 밝히는 데 누가 맨 처음 전쟁을 시작했는가, 누가 누구를 공격했는가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제국주의자라면 누구든 세계대전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계급이 전쟁을 일으켰는가, 어떠한 정책을 전쟁이 수행하는가, 그 전쟁에서 지배계급은 어떠한 정치 목적을 추구하는가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맑스주의자는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식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은 식민지를 재분배하고 착취를 확대해 이윤을 쫓는 약탈적인 전쟁으로서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고, 이 정치목적을 분쇄하려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인 것이다.9) 맑스와 엥겔스, 레닌 시대의 혁명적 맑스주의자가 견지하는 전쟁에 관한 관점이었다. 이러한 관점과 태도는 후퇴하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현 21세기가 식민지 시대가 아니라서 달라져야 하는가? 사실 식민지 쟁탈전 시대는 아니지만 고도의 신식민지 시대가 아닌가? 영토에 대한 강권적인 직접적인 지배는 아니더라도 문화자본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지배장치를 바탕으로 금융자본의 이윤수탈을 시스템화하고 있으며,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에 대한 저항을 하면 세계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의 ‘무력적인 침탈’은 서슴지 않고 자행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3.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제1차 세계대전은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삼국동맹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른바 ‘중구열강(central powers)’ 사이의, 기본적으로 유럽적인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세르비아와 벨기에가, 전자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공격(실제로 그 전쟁을 촉발시킨)과 후자에 대한 독일의 공격(독일의 전략적 전쟁계획의 일부였던)으로 즉각 전쟁에 말려들었다. 곧 투르크와 불가리아가 중구열강에 합류했고, 상대쪽 삼국동맹 역시 점차 아주 큰 동맹체로 발전했다. 이탈리아가 매수되었고 그리스, 루마니아, 포르투갈 역시 삼국동맹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보다 적절하게도 일본은 극동과 서태평양에 있는 독일의 진지들을 접수하기 위해서 거의 즉각적으로 참전했으나, 자기 지역 밖의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한 보다 중요한 사실로서, 미국이 1917년 참전했다.10) 모든 제국주의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제국주의자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호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식민지 배당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9세기 말경 독일은 산업성장에서 영국을 앞지르기 시작하여 영국이라는 경쟁상대를 구시장에서 내쫓고 있었다. 독일은 세계를 자기 나라에 유리하게 근본적으로 재분할하려고 했다. 이들 두 제국주의자 사이의 모순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다.11) 독일의 계획은 서부에서 재빨리 프랑스를 때려눕히고 나서 동부로 이동하여, 짜르의 제국이 자신의 거대한 전투인력을 충분히 효율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기 전에 러시아를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때려눕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전쟁은 1914년 이전의 역사와 1914년 이후 역사를 구분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대부분을 서부전선에서 싸웠던 영국인과 프랑스인에게는 그 전쟁이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소름끼치고 더욱 정신적 충격이 큰 ‘대전쟁’(Great War)로 기억된다는 사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얼마나 끔찍했다는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12).

왜 제1차 세계대전은 양쪽 진영의 주도적 열강 모두에 의해서 제로섬게임으로, 즉 완전한 승리 아니면 완전한 패배만이 있을 수 있는 전쟁으로 수행되었는가? 그 이유는 이 전쟁이 대체로 명확히 말할 수 없는 제한된 목표를 위해서 수행되었던 이전의 전쟁들과는 달리 무제한적인 목표를 위해서 수행되었다는 데에 있다. 제국의 시대에 정치와 경제가 융합되었다. 국제적 정치경쟁은 경제성장 및 경제경쟁의 양상을 따랐는데 그것의 고유한 특징은 분명히, 한계가 없다는 데에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양대 경쟁국인 독일과 영국에게는 하늘이 경계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독일은, 당시 영국이 차지하고 있던 것과 같은 세계적인 정치적, 해상적 위치에 올라서기를 원했으며, 독일이 그러한 위치에 올라선다면 이미 하락하고 있던 영국은 자동적으로 더 낮은 지위로 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었다. 프랑스에게는 당시에나 그 뒤에나 이해관계가 덜 세계적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절박했다. 독일에 비해 갈수록 심해지고 불가피해 보였던 인구적, 경제적 열세를 만회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던 것이다. 양쪽의 경우 모두, 타협은 단순히 연기만을 의미했을 것이다.13)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으로서 경계 없는, 무제한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또한 제국주의자들이 근 10년 동안 성장해 온 강력한 혁명적 노동운동을 탄압하려고 했던 것도 전쟁이 일어나게 된 중대한 원인이었다. 1905~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격화하고 동양에서 민족해방운동이 싹트게 되었다. 혁명이 격화하는 것을 두려워한 강대국의 정부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러시아 짜르 정부는 전쟁이야말로 인민 대중의 관심을 혁명투쟁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38개국 15억이 넘는 인간이 서서히 전쟁에 휩쓸려 들어갔고, 전쟁은 세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모든 국가의 부르주아 정당은 인민에게 전쟁 지지를 호소했다. 독일에서는 러시아의 짜리즘이 독일 인민의 민주적 성과를 쓸어 없애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프랑스에서는 프러시아 군국주의가 프랑스 민주주의를 짓밟으려 하고 있다고 그럴싸하게 선전했다. 러시아에서는 독일인이 맨 먼저 러시아를 공격해 노예로 삼으려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 부르주아 정당은 마치 전쟁이 국민을 구제하려고 일어난 것처럼 부르주아 조국의 방위를 호소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것이 마지막 전쟁이라고 거짓 선전하여 인민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소부르주아 정당도 부르주아지를 지지하여 전쟁을 정당화했다.14)

부르주아 정당은 그렇다할지라도 좌파정당은 어떠했는가? 1907년의 제2인터내셔널은 “… 어느 곳에서든지 전쟁이 터지게 되면 그들의 임무는 전쟁이 빨리 종결되도록 중재하는 것,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전쟁이 야기 시킨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이용하여 대중을 일깨우고 그럼으로써 자본가 지배계급의 몰락을 촉진하는 것이다”라는 슈투트가르트 회의에서 공식화된 결의문에 모든 정당들이 동의했지만, 1914년 전쟁이 발발하자 제2인터내셔널에 속한 정당은 거의 대부분이 노동자의 이익을 배반하고 전쟁을 지지했다. 즉, 아직 대규모로 성장하지도, 든든한 기반을 갖지 못하고 합법적인 대중정당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회주의 정당들은 전체적으로 전쟁에 반대한 반면에, 제도화된 대중정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의 전쟁정책에 굴복했던 것이다.15) 오랫동안 제2인터내셔널의 전위당 역할을 했던 독일 사회주의자는 정부에 전시공채권을 부여하자는 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프랑스, 영국, 벨기에의 사회주의자는 전시공채권 부여안에 찬성 투표를 했을 뿐만 아니라 반동적 부르주아 정부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러시아에서 멘셰비키는 조국 방위라는 부르주아지의 슬로건을 지지했다. 러시아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을 포함하는 사회주의자가 1915년 런던 회의에서, 다른 한편 독일 블록의 사회주의자가 빈 회의에서 각각 부르주아 조국의 방위를 승인했기 때문이다.16) 전쟁발발 후에도 희망은 아직도 조금은 있었다. 노동자들의 쓰라린 경험은 그들의 도취된 애국심을 틀림없이 깨뜨릴 수 있었다. 따라서 슈투트가르트의 결의안을 지지하는 정당들은 대중들을 이끌어 전쟁과 자신들의 정부에 대항하여 싸우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고립과 박해 그리고 불법화의 시기를 견디어 낼 준비를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당들은 그러한 상황 아래에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그 정당들은 필연적으로 자국 정부의 전쟁정책도구로 전락했으며, 지배계급의 도구로 변하고 말았다. 더구나 대중들이 재차 궐기했을 때조차도 그 정당들은 그런 역할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 때부터 거대한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당원들을 지도하는 대신에 오히려 머뭇머뭇 대중들의 분위기를 따를 뿐이었고, 때로는 정부의 이익을 위해서 대중의 의식과 행동을 마비시키려고까지 하였다.17) 1914년 8월에 제2인터내셔날은 붕괴하였다.

그러나 레닌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적대적인 세계관임을 명확히 했다. 민족주의자에게 최상의 것은 협소한 민족적 이익이고, 국제주의자에게 최상의 것은 노동자의 국제적인 계급적 연대임을 밝혔다.18)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 레닌과 볼셰비키의 슬로건이었다.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제국주의를 지지하느냐 아니면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함으로써 혁명을 지지하느냐, 이것이 당시의 각 당을 구별하는 경계선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에 소속된 대다수 당들은 기본적으로 전쟁을 지지하고 자기 나라의 부르주아지와 정부를 지원하고 다른 나라의 인민에 대한 승리를 지지했다.19) 1915년 8월말에 스위스 베른 근교의 침머발트에서 국제 사회주의자회의가 열렸다. 이 침머발트 국제사회주의자회의를 앞두고 1915년 여름에 발해된 소논문 「사회주의와 전쟁」 가운데서 레닌은 전쟁에 대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의 태도를 명확히 규정했다. 침머발트 회의에는 11개국에서 38명의 대표가 참가했다. 회의는 평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주된 요구로 하는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의 한계를 인식한 레닌과 볼셰비키는 회의에 참석하여 배외주의적 사회주의자와 투쟁하였다. 회의에서는 레닌의 발의로 8명으로 이루어진 침머발트 좌파그룹이 조직되었다. 레닌의 슬로건을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결의문을 회의에 제출함과 동시에 따로 특별성명을 내어 회의 선언 중에 토론이 충분하지 못했던 점, 선언 기초자들이 기회주의자와 절연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으나, 좌파그룹은 회의 선언에 찬성표를 던지는 한계를20) 드러냈다.

다른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는 달리, 레닌은 당시 자본주의 정치경제적 분석을 과학적으로 진행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러시아에서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게 하였다. 즉, “제국주의 전쟁 반대, 내전으로”라는 레닌 주도의 볼셰비키 전술은 러시아의 지배계급의 자리를 바꾸게 하는 중대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자본주의 형성 초기에는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민족해방혁명이 전형적이었다면, 새로운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면 자본주의 국가들의 부르주아지는 반동 세력으로 변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국제혁명운동의 주력이 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국제적 지배는 모든 국가의 피압박․피착취 대중의 노력을 단결시킴으로써 비로소 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21)고 지적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 원인 중에 하나는 바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계급투쟁의 양상을 국내적으로 연계시켜 정확히 파악하고, 프롤레타리아 해방투쟁으로 전화시켰다는 점이다.



4. 마치며

홉스바움은 20세기를 단기의 역사로 해석하고 있다. 레닌과 볼셰비키당은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시키면서 혁명에 성공하였고, 이에 러시아 혁명은 세계혁명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이후 반제민족해방투쟁의 전범으로서, 노동해방투쟁의 전범으로서 위치를 갖게 하였다. 즉, 20세기를 관통하는 체제의 특징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단기 20세기라고 명명하는 것은 이러한 체제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는 이러한 체제가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러했는지는 여러 측면에서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 체제의 종말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정말로 2001년 현재 세계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고, 형상화되고 있는 이 체제가 정말로 인류에게 진보적인가 발전적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역사의 진보를 묻지 말라고 한다. 구태의연하다고 … 그러나 맑스주의자에게 역사의 진보란 모든 피착취 인민대중이 가난과 빈곤, 정치적 무권리 상태를 벗어나 그들이 진정한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할진대, 신자유주의 시대 이러한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계속된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은 더 많은 유휴자본을 만들었으며 이윤창출을 위한 경쟁을 격화시키고 있고, 따라서 점점 더 금융자본의 주도를 가능하게 하는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는 자본주의체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반세계화 투쟁이 진전되고 있음이 또 하나의 현실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밝혔듯이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을 전후로 한 유럽의 제도화된 좌파정당이 노동자 대중투쟁으로부터 어떻게 미끄러졌는지, 그리고 레닌이 왜 혁명에 성공하였는가도 간략하게 언급했다. 국제적인 제국주의 전쟁을 국내 계급투쟁으로 질적으로 전화시켜 노동자계급이 권력의 물질성을 획득하지 않는 한, 21세기 노동해방투쟁은 힘든 싸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과제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20세기를 극복해야할 21세기 노동운동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대할 만한 노동자계급의 해방투쟁들이 항상 있다. 그곳에 희망이 있다. 

한/노/정/연


1) ‘대미공격’이라는 명칭은 ꡔ진보평론ꡕ 2001년 겨울호에 실린 채만수의 용어이다. 즉, “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및 미 국방성에의 여객기 돌진 사건은 ‘테러’로서의 내용과 성격도 가지지만, 다른 한편으로서는 무소불위의 초대 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필사적인 ‘저항 전쟁’으로서의 내용과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미 테러’라는 용어 대신에 ‘대미 공격’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채만수, 「9․11 대미공격과 세계경제」, ꡔ진보평론ꡕ 2001년 겨울호, p.193)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에 동의한다는 측면에서 사용하고자 한다.


2) 이러한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의 독주에 이의를 제기하는 유럽국가들이 있다. 아프카니스탄과의 전쟁을 치루기 전에 미국의 전세계적인 방위 체제인 NMD/TMD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하고, 유럽에 군사권을 주도하려는 미국의 저의에 대한 이의를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중과부족일 뿐만 유럽정치가 세계정치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경제위기, 빈곤, 환경, 복지 등―를 풀어가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미국과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개별국가의 외교정책과 방향은 국내정치의 계급투쟁의 역관계, 계급투쟁의 성숙을 반영한다고 하였을 때, 현재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시기에서 국내 노동자계급 투쟁의 정치적 성숙은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서유럽 좌파정당의 무력함 또는 노동자계급 투쟁으로부터의 이탈은 현실의 어려움과 무거움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노동당은 집권당으로서 보수당과 다르지 않는 외교정책을 수행하면서 미국의 지원국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반세계화 노동자․민중의 대중투쟁이 진행되는 현 시기에 의미 있는 좌파정당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3) 이러한 폭력성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전세계적으로 확장될 때뿐만 아니라 현 시기 금융자본 우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전세계적으로 관철될 때 심화되어 나타난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어디든 대다수 민중들은 빈곤화하고 있다. 비민주적 정치체제에서 민주적 정치체제로의 전환과 세계자본주의 시스템의 편입과정,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바터되어지는 국제정치경제적 메카니즘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민주주의’ 담론의 내용적 퇴보와 대다수 민중의 빈곤화라는 정치․경제적 결론에 이른다.


4)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 ꡔ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ꡕ 제4권, 박종철출판사, 1995, pp.391~401.


5) 앞의 글, p.398.


6) 앞의 글, p.399.


7) 앞의 글, p.399.


8) 이해영, 「전쟁, 정치 그리고 자본주의」, ꡔ이론ꡕ 11호, 1995년 봄․여름, p.22.


9) B. N. 포노말료프 엮음, 편집부 옮김, ꡔ소련공산당사 ②ꡕ, 거름출판사, 1991, pp.113~114.


10) 에릭 홉스바움, ꡔ극단의 시대ꡕ, 까치, 1997, pp.41~42.


11) B. N. 포노말료프 엮음, 앞의 책, pp.105~106.


12) 에릭 홉스바움, 앞의 책, p.43.


13) 앞의 책, p.49.


14) B. N. 포노말료프 엮음, 앞의 책, p.107.


15) 볼프강 아벤드로트, 신금호 역, ꡔ유럽 노동운동사ꡕ, 석탑, 1983, p.75.


16) B. N. 포노말료프 엮음, 앞의 책, pp.107~108.


17) 볼프강 아벤드로트, 앞의 책, p.76.


18) B. N. 포노말료프 엮음, 앞의 책, p.92.


19) 앞의 책, p.112.


20) 앞의 책, pp.127~128.


21) 앞의 책, pp.132~133.


2001-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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