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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노조 출범의 의의

현장에서 미래를  제72호
이성백

교수노조 출범의 의의


이 성 백
연구위원장, 교수노조 서울․제주지부장,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지난 11월 10일 전국교수노동조합이 교육, 노동, 시민, 사회단체의 따뜻한 성원 속에서 출범하였다. 초겨울의 싸늘한 날씨에 서울대학교 8동 옆 야외 계단에서 거행되었던 발족식은 전교조 선생님들의 신나는 노래와 여러 내빈들의 위트있는 축사로 매우 흥겨운 분위기에서 치루어졌다.
발족일 당시 교수노조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교수들은 대략 천명 정도로 원래 기대했던 숫자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참여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가장 교수노조가 필요한 교수들이 실제로 참여하기가 어려웠던 것을 주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사립대학, 그 중에서도 특히 지방사립대학 교수들이 노조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인데, 이들은 재단으로부터의 불이익을 우려하여 참여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실제적인 참여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데에 반해, 교수노조 건설의 필요성은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를 종합해 보면, 대강 40% 정도가 교수노조가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반면, 60% 정도가 교수노조가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교수노조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떠나, 대학교수들과 일반 국민들의 다수가 교수노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 교수도 노동자다
이 글을 통해 교수노조에 대해 처음 듣게 되는 독자도 당연히 맨 먼저 의문을 떠올리게 되겠지만, 교수노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로부터 가장 빈번하게 듣게 되는 소리가 “대학교수가 무슨 노조인가?”라는 물음이었다. 높은 학식을 갖춘 학자로서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고 또한 매우 높은 보수를 받아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학교수를 노동자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특권계층”에 속하는 교수가 노조를 건설한다는 것이 마치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이기주의로 비추어져서 교수노조 건설에 대해 사회 일각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심지어 교수노조에 반대하는 어떤 이는 지금까지 무사안일 속에서 편하게 지내오다가 계약제와 연봉제가 실시되면 무능한 교수로 찍혀 낙오될 것을 두려워하는 교수들이 노조를 만들어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교수노조 건설을 매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보다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은 없다. 교수가 무사안일 속에서 지내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물론 아직도 “10년, 20년 된 강의노트”를 갖고 강의하고 있는 교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 이런 교수들은 대학재단에 기대어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교수들이다. 교수노조가 대학운영의 민주적 개혁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수들은 교수노조의 건설을 불편해하고 있다.
교수는 정말 사회적 특권계층으로 노동자로 보기 힘든 것인가? 교수가 직업 분류상 노동자에 속한다는 것은 이미 사회학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교수는 대학이라는 사업장에서 교육 및 연구라는 정신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전문직 지식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한국에서 교수가 노동자란 사실을 정서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 낡은 선입관 때문이다.
선비를 중히 여겼던 유교적 전통과 교육을 중시하는 풍토는 대학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스승님으로 깍듯이 예우하는 정신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관념적인 신분상의 프리미엄이 대학교수의 객관적인 지위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또 다른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노동자는 싼 임금을 받고 노동을 파는 하층계급이란 관념은 이미 낡아버린 것으로 직업이 고도로 분화되고 전문화된 현대 시민사회에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잘못된 선입견은 노조에 대한 인식이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합법적인 민주적인 대중조직이다. 군사독재체제의 이데올로기적인 유제를 털어버리지 못한 일부 사람들에게 노조는 아직도 불법, 과격, 심지어는 용공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교수가 노조를 만드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조를 과격, 불법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선입견에 있는 것이다.
교수가 노동자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헌법이 이미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서 ‘근로자’에는 사기업에서 근로하는 일반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교원을 포함한 공공부문 근로자까지 모두 해당된다. 그리고 교원에는 당연히 교수도 포함된다. 그러나 공무원과 교원에 대해서는 노동조합 결성이 국가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을 통해서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조합 결성을 금지하는 법률에 대해 그동안 학계와 노동계는 그 위헌성에 이의를 제기하여 왔다. 또한 국제노동기구도 한국 정부에 그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의 합법화투쟁에 힘입어 교원의 노조결성이 합법화되었지만, 그 적용대상이 초․중등교원에 제한되고 대학교원에게는 여전히 노조결성이 금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교수노조 결성은 그동안 교원 가운데에서 교수들에게만 금지되어 있는 당연한 신분상의 권리를 찾으려는 데에 그 기본적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과 “대학의 위기”
초․중등학교의 “교실 파괴”, 공교육체계의 붕괴가 여기저기에서 운위되고 있듯이, 오늘날 한국의 대학 또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대학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의 심각성을 절감하면서 대학교수들이 나서서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이 교수노조를 결성하게된 직접적인 동기이다.
학문 연구와 교육의 장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상실한 채 대학이 취업준비기관으로 변질되어 감으로써 한국의 대학의 위기는 그 수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지식강국의 초석으로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만든다는 취지 하에 추진되고 있는 교육부의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정책은 대학을 살리기보다는 도리어 대학 내에 폐해만을 더 키우고 있다.
그 첫 번째 사례로 학부제의 실시를 들 수 있다.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학부제는 취업전망이 좋아 보이는 소위 ‘인기학과’로 몰리게 함으로써 대학의 연구 및 교육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학문간 균형발전이 위태롭게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인기학과’에 속하는 기초학문분야는 지원학생 저조로 의욕상실 뿐만 아니라 학문 후속세대 양성마저 어렵게 되었고, 인기학과는 인기학과대로 취업준비학과의 성격이 강해지면서 연구와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요즈음 학계의 쟁점이 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학부제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교수들간 내부경쟁을 도입함으로써 교수들의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교수업적평가제도 또한 연구와 교육의 부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지 않다. 연구와 교육 부실의 원인이 교수들의 안이와 나태에 있다고 단정한다면 이는 분명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는 것이다. 연구와 교육이 부실한 근본 원인은 과도한 강의시수와 교수 일인당 학생수, 연구재원의 빈약 등 그 환경의 열악성에 있다. 통계수치를 보면 1980년에 27.9명이었던 교수 일인당 학생수는 1999년에는 49.6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OECD평균인 15.3명을 세 배 이상 웃도는 것이다. 과도한 강의 부담, 그 외에도 학생지도, 각종 행정업무 등의 부담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할 시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 대학에서는 연구를 제대로 못하겠다는 이유로 외국 대학으로 떠나간 어느 교수의 일은 한국 대학에서의 연구환경의 열악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교수들이 대학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들은 오늘날 세계화의 강화되는 국제경쟁 속에서 한국의 대학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절박성을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다. 교수들이 반대하는 것은 대학개혁이 아니라, 이미 여기저기에서 그 폐단이 가시화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그릇된 신자유주의적인 대학개혁이다. 시장 원리의 도입과 효율적 지식 생산의 강화를 요체로 하고 있는 현행 신자유주의적인 대학개혁 정책은 설사 단기적으로는 가시적 성과를 가져올지도 모르지만 실용적 지식의 기반이 되는 기초학문을 도태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한국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될 우려를 예견케 하고 있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개혁 정책 중에서 대학교수들과 교육부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것이 계약제와 연봉제이다. 교육부는 교수들의 연구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들어 계약제와 연봉제를 강제적으로 도입하려고 하고 있고, 대학교수들은 교수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계약제와 연봉제는 교수 계층 전체를 일종의 비정규직노동자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계연제는 대학에 대한 교육부 내지 사학 재단들의 효율적인 통제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다분히 위험스런 요소를 안고 있다. 특히 비리 사학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사립대학에서는 계연제가 강도높게 교수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은 이미 불 보듯 뻔한 일이다.

3. 대학의 지배구조와 민주적 대학 주체의 형성
오늘날 한국의 대학이 처하고 있는 위기상황과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 정책의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교수노조에 참여하는 교수들이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점이 대학개혁의 주체가 바로 서야한다는 것이다.
대학개혁의 정책은 교육 당국뿐만 아니라, 교수(강사 포함) 및 대학생을 포괄하여 대학 주체들의 민주적인 의사수렴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는 비민주적인 대학지배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은 각기 교육부의 관료주의적 통제와 사학재단의 전횡에 의해 자율적 대학운영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교육부 마피아’란 표현이 공공연히 상용될 정도로 내부적으로 부패와 비리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관료주의적 통제의 고삐를 놓으려 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교육부 관료와 정계 인사들과 연계되어 있는 사학재단들 또한 반민주적 전횡을 일삼고 있다. 직접적으로 교육부와 사학재단이 대학운영과 정책결정 등의 민주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몇 해 전 어느 교수 출신 국회의원이 “우리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육부가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듯이, 교육부가 참된 교육개혁의 원천적인 방해물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대학정책을 수립할 철학도 없이 오직 관료주의적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교육부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화의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는 대학개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아울러 비리 사학재단이 척결되어야지만 사립대학들도 교육의 공기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학교수들은 대학의 한 주체로서 자신들의 의사를 단체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결집된 조직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와 비리 사학재단에 대해 힘있게 대응하지 못했다. 물론 1980년대 중후반에 각 대학에 교수협의회가 성립되어 당시 대학의 민주화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얼마전 전국교수회가 결성되어 교수협의회를 법적기구화하고 교수회의 행정참여권을 법제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수협의회도 필요한 운동이지만, 협의회가 느슨한 자발적인 성격의 조직이기 때문에 결집된 단체행동이 필요할 경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대학교수들이 대학개혁 등 대학 사회에서 발생할 이슈들에 대해 전국적인 차원에서 단결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 결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교수노조를 결성하게 되었다. 교수노조는 다른 교수단체들과 상보적인 관계 속에서 대학의 민주화와 올바른 대학개혁을 위해 노력해 나가게 될 것이다.
교수노조 건설은 외국에 전혀 없는 일을 유독 한국의 교수들만이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서구 여러 나라에는 교수노조가 결성되어 있거나, 대학교수들이 교수를 포함하여 교원, 연구원, 교직원으로 구성되는 넓은 형태의 노조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미국, 스웨덴은 교수노조가 독립적인 형태로 결성되어 있고, 영국, 독일, 프랑스는 교육연구기관을 총망라하는 교육학술노조가 결성되어 있다. 이웃 일본은 기업별 노조형태로서 대학별로 교수와 교직원이 조합원이 되는 교직원조합이 결성되어 있다.


4. 교수노조와 민주노동운동
교수노조는 대학 내 비민주적 지배구조의 청산과 대학 주체들에 의한 교육 민주화 실현, 대학 주체들의 민주적 참여에 의한 올바른 대학개혁을 추구한다. 이러한 대내적 과제와 더불어 교수노조는 또한 대외적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수노조는 출범선언문에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대학을 건설하기 위하여 국가의 교육재정을 확대하고 평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며, 사회에 개방적인 대학체제를 건설하고 사회민주화를 위해 교육․노동․시민․사회 단체들과 연대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을 주요 정책방향의 하나로 천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교수노조는 바로 노조의 하나로서 모든 민주노조들과 함께 민주노동운동의 대오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하에서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 투쟁에 같은 노동자의 신분으로 교수들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사회의 비판적 기능을 담당하는 지식인의 집단적 단체로서 교수노조는 여러 민중 및 시민 단체들과 함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사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힘을 쏟을 것이다. 한/노/정/연

2001-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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