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INP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위원장)
2001년 12월 3일 기획인터뷰
출처: 울산지역총력투쟁사이트(http://ultu.liso.net)
얼마 전 출소하셨는데, 구속부터 출소까지 이야기부터 해
주시지요.
지난 6월 5일 효성노조 경찰력투입 규탄시위에 참가했다가 시청
앞에서 1차 연행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남부경찰서로
연행되었는데 저만 동부경찰서로 이송하더군요. 시위관련 조사는
형식적으로 끝내고 INP 하청노조 관련으로 긴 시간 심문
받았습니다.
지난해 10월 9일 노조 결성 이후 출․퇴근 투쟁 도중
일어났던 몸싸움, 올해 4월 11일부터 해왔던 노숙농성, INP
앞에서 열린 집회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미
회사는 다섯 차례 저에 대해 업무방해, 폭력행위 등 혐의로
고소․고발해 놓았습니다. 다행히 6월 8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 영장신청이 기각돼 저녁에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효성 공장 진격투쟁이 열린 9일, 효성
울산공장 앞 삼미특수강 4거리에서 대치중에 갑자기 밀려들어온
경찰이 저를 비롯해 많은 노동자들을 몽둥이․방패로
패면서 닭장차에 가두었지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습니다.
지금껏 지켜온 투쟁현장과 우리 조합원들을 떠나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습니다.
울산구치소로 넘어가고 나서는 정말 노동자들로 넘쳐 났습니다.
줄줄이 사탕으로 동지들이 끌려왔지요. 한때는 40명이 넘게
구치소에서 한솥밥을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9월 3일 울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부산구치소로
이감되었다가, 11월 15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받으면서 느낀 점은?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재판받은
여러 동지들도 이구동성으로 회사와 경찰․검찰 그리고
재판부가 한몸뚱이로 엉켜 돌아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고발했던 내용은 재판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검․경의 구속수사 내용이 온통 거짓말로 도배질되어
있는데도 법원은 우리의 항변에 대해 콧방귀만 뀌더군요.
‘이 재판은 노동자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속임수다. 한마디로
정치재판이고 정치적 보복행위다.’ 그래서 재판투쟁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들의 합법이라는 기준으로도 이
재판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지요.
만약 사법부가 지배계급과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처럼 반노동자적인 정권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하고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사기고발과 거짓증언들을 진실로 둔갑시킬 수
있는지 … 솟아오르는 분노는 어쩔 수 없더군요.
그리고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를 심판한
저들을 반드시 민중의 심판대에 세울 날이 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혹시라도 어느 순간 내가 비굴해지지 않을까 굽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건 실형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재판투쟁도 잘되었고 항소심에서 출소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울산에서 처음 만들어진 사내하청노조로서 ‘INP중공업
사내하청노조’의 건설과정과 투쟁과정을 간략히 요약해
주시지요. 현재 상황까지.
INP중공업 회사는 공장 전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정규직의 절반 값에 노예처럼 부려먹으면서도
노무관리를 쉽게 할 수 있으니 사장놈들에게는 이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겁니다. 반대로 우리 노동자들은 단 하루의 유급휴일도
없이 하루 평균 11~12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가혹한 저임금에
시달려야 했지요. 상습적인 임금체불과 잦은 업체폐업, 작업복,
안전화 한 켤레도 지급받지 못하는 비참한 노동조건이
지긋지긋했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우리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동지들과 함께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는 원청을
상대로 싸워야 하고, INP 공장 안의 여러 사내업체노동자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기업단위 노조 형태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노조결성과 함께 내건 요구는 ‘근로기준법 준수, 임금체불 관행
철폐, 산재은폐 중단, 4대보험 가입, 단체협약 체결’등 아주
기초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원․하청 사업주들의
불법․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고소․고발을 해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대성기업 등 5개 사내하청 업체가
적발되었고, 산재은폐․안전장치 미설치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INP중공업 사장이 입건되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가벼운 벌금형을 때리더군요.
그런 다음부터는 INP중공업 원․하청 사업주들이 안심하고
불법을 저지르게 되었고, 사내하청노동자에게 임금체불,
임금착취, 산업재해 등으로 무슨 문제가 생겨도 원청과 하청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면서 처벌을 피해갔습니다.
한 술 더 떠서 회사는 민주적이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설립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노조의 정당한 활동을 폭력으로
방해했습니다. 합법적인 노조결성에 대해서 노조간부 소속 업체
위장폐업, 노조간부 전원 해고, 노조가입 방해․탈퇴
공작은 물론이고, 노조 소식지 배포방해, 상습적인 폭행, 노조
물품 강도질 등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을
일삼았습니다.
다행히 지역의 여러 노조와 단체들의 연대에 힘입어서 매주
수요일 INP 공장 앞에서 금속집회를 열고 공장진입투쟁을 하는
등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4월 11일부터 공장
앞 농성에 들어갔던 겁니다. 그때 구사대와 전경이 농성장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농성천막과 물품을 강도질하지 않았습니까?
노숙농성 기간 내내 이런 강․절도와 치졸한 폭력행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출소하고서는 지난 11월 26일부터 출근투쟁을 하고 있는데,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5개월 정도 되는 길지 않은
구속기간 동안 여러 업체가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습니다. 우선은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 계획인가요?
그동안 전국적으로 많은 비정규직노조들이 만들어졌고 투쟁을
펼쳐왔습니다. 한라중공업 사내하청을 시작으로 대상식품,
볼보코리아비정규직, 방송사비정규직, 한국통신 계약직,
캐리어사내하청, 이랜드, 린나이코리아, 인사이트코리아 등
…
성과도 있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힘겨운 투쟁에 비하면 그
성과는 너무나 작은 것들입니다. 비정규직노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요구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자본가들은 심리적
마지노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노리는 것은
구조조정을 통한 비정규직화와 이윤 극대화인데, 우리 요구를
일단 수용하게 되면 노동착취의 전망과 목표 자체가 흔들릴 것에
대한 공포에 찬 우려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투쟁은
그만큼 힘들지만,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구속되었을 때 처음에는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끝이 아니라는 생각’, ‘급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웃음과 여유를 찾을 수 있었죠.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투쟁들이 벌어질 것이고 그 투쟁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발전된 투쟁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INP투쟁 뿐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을 확대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울산에는 정확한 통계조차 낼 수 없는 많은 사내하청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비정규직의 문제는 비정규직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밖에
없습니다. INP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먼저 나선다면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과 여러 활동가들이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자의 힘은 오직 우리 노동자가 얼만큼 단결하여 투쟁에
동참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회사에 대해서 돈도 빽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수의
힘으로 올바름을 입증하는 것뿐입니다.
불이익한 처우에 대한 대응이든 노동조합 결성이든 여럿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갔으면 합니다. 언제까지고 좌절과 절망,
포기상태에 빠져있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선다면 그때부터 하나하나 바뀔 것이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
구속으로 중단되었던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INP
사내하청노조를 지켜보고 있는 지역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INP사내하청노조에게 있어서 지역 동지들의 연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큽니다. 지금까지 헌신적으로 연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연대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지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규직․비정규직 모두의 앞날을 결정짓는
일인만큼, 같은 노동자라는 의식으로 투쟁을 만드는 단계부터
연대하고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