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권, 신자유주의
그리고 민주노조운동
이 철 의
연구위원, 철도 민주노동자회 부의장
“철도 사유화는 미국의 음모다?”
1월 6일 ꡔ한겨레ꡕ는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ꡔ워싱턴 포스트ꡕ의 폴 블루스타인이라는 기자가
쓴 ꡔ징벌ꡕ이라는 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는
것이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에 닥쳤을 때 캉드시 IMF
총재는 한국의 외환보유고에만 관심을 보였다. 반면에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등 미국의 경제정책라인이 한국의 구조개편을
강력히 요구했다.
미국은 그 뒤에도 여러 사람을 보내 국제통화기금과 한국의
협상과정을 감시했으며 계속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김대중 정권은 미국의 앞잡이다. 한국의 공공부문
사유화 등 구조조정 정책은 모두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은 매국적인 정책이며
국부를 유출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한국 공공부문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해야 하며 동시에
반미투쟁을 기본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동지들이
철도노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줄여본 것이다.
헷갈린다. 정말 김대중 정권은 미국의 압력에 의해 철도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추진하는 공공부문 사유화 정책이 반드시
미국 반대투쟁으로 저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면 독일계나
프랑스계로 넘어간 은행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또
삼성중공업을 인수한 볼보의 스웨덴은? 독일이나 프랑스,
스웨덴도 미국의 똘마니들이니까 그 대장인 미국에 반대하면
되는 것일까?
김대중씨의 영국유학
199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김대중씨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때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김대중씨의 기자회견을 보며
집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집사람의 출신이 그쪽이라서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뭔가 찡한 기분이 되었다. “야,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떠나는 것은 깨끗하구나. 김대중은 그래도
사람이 다르구나.” 그런데 그는 영국에 가서 쥐약을 먹은 것
같다. 돌아온 뒤 영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대처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그러면 노동조합을 무자비하게 깬
것도 존경한다는 것인가? 공공부문을 마구 팔아치운 것도
존경한다는 뜻인가?
결국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어 보여준 행동은 대처의
수제자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불과 4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대처가 십여 년 동안 해온
사유화 작업을 불과 4년 만에 쓱싹 해치워 버렸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차이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한 사람은
돌대가리이고 한 사람은 머리가 무척 좋다. 그래서 김영삼씨는
늘 억울한 모양이다. 김대중씨도 파업을 무지막지하게 진압했다.
김대중씨도 노동자들을 더 많이 무차별로 잡아 가뒀다.
파업지도부들은 더 오래 징역을 살았다. 김영삼씨가 잡아넣은
군부독재의 수괴들을 풀어주었는가 하면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는
데 앞장을 섰다. 신문 방송에서 떠든다고 방북 허락까지 받은
교수를 잡아 가뒀다. 나라를 망친 대통령이라고 욕을 먹었지만
누구는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김대중씨에게는
노벨상을 주고 나는 신문방송에서 분유깡통에 오줌을 눈 것만
보도하는 거냐?
김대중씨의 변신
나는 김대중씨의 ꡔ옥중서신ꡕ을 읽은 일이 있다.
때문에 한 때는 김씨를 존경하기도 했다. 나는 김대중씨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 이야기들을 조금 알고 있다. 그때 김씨는
향토예비군제 폐지, 영세중립국 선언, 노동기본권 보장,
농가부채 탕감과 같은 과감한 공약을 내세웠다고 한다. 87년
대통령 선거 때도 바로 그와 같은 이미지 때문에 비판적
지지론이 힘을 얻었다고 들었다. 92년 대통령 선거 때는
전국연합하고 정책연대를 하기도 하였다. 그 때 김대중씨는 뉴
DJ플랜인가 뭔가 하며 이상한 징후를 보이긴 했다.
그런 김대중씨가 대처를 스승으로 삼았다지 않는가?
김종필씨하고 손을 잡지 않는가? “종필이도 이제 틀렸어.
저렇게 간신처럼 왔다 갔다 하면 누가 찍어 주겠어? 나는 이제
종필이 안 찍을란다.” 평생 김종필씨만 찍었던 우리 어머니도
종필이에게 미련을 버렸는데.
마침내 박정희 기념관까지 만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김씨가 안
돼 보였다. “야, 저렇게 늙어서도 혁명적으로 변할 수 있구나.
사람이 자기의 가치관을 지키는 게 저렇게 힘드는 것이구나.
사람의 욕심이란 게 참으로 무섭구나” 하고 생각했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전철 안에서 어떤 청년이 “당신의 경쟁력은 얼마입니까?” 하고
묻고 있을 때 나는 신자유주의를 느낀다. 나는 경쟁력이
빵점이야, 임마. 니가 내 경쟁력을 키워주는 데 뭐 보태준 것
있어? 이렇게 신자유주의는 나같은 놈에게도 경쟁을 시킨다.
똑같이 기차를 몰고 다니는 기관사들도 서로 경쟁을 한다.
기차운전이란 정시에 무사하게 도착만 시키면 그게 그건데 어떤
사람은 성과급을 더 받고 어떤 사람은 적게 받는다. 소속별로도
경쟁을 시켜서 소장이 “이번에 성과급을 더 받으려면 소속이
조용해야 한다”고 호소하던지 협박을 한다. “여러분들이
공투본에 앞장서서 우리 소속은 이제 틀렸습니다.”
동네에 실업자들이 늘어나서 마누라의 바가지가 줄어들 때 나는
신자유주의를 느낀다. 해고자나 실업자나 돈을 못 벌기는
마찬가지인데 숫자가 늘어나면 마누라의 피해의식이 줄어드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때 신자유주의가 고맙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우유배달 일거리를 찾을 때 그나마 눈에
보이지 않으면 나는 서글퍼진다. 야, 이젠 해고자하고
실업자하고 진짜 경쟁이 시작되었구나. 그 치사한 밥벌이도 눈에
불을 켜지 않으면 잡을 수가 없구나.
모처럼 취직하여 첫 월급을 받을 때 나는 화가 치민다. 월급이
6년 전으로 후퇴하여 있는 것이다. 택시기사보고 월급을
물어봐도 그 정도이고 지입차 일을 알아봐도 거기서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생산팀장은 조회 때마다 큰소리를 친다. “여러분,
지금 실업자가 넘치고 있어요. 여러분 아니라도 모집공고만 내면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듭니다. 그러니까 이 어려운 고비를 불평만
하지말고 잘 넘겨야 해요. 회사가 잘되면 다 여러분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요일날 꼭 출근들 하세요.” 그래서
생산직도 아닌 나도 일요일날 출근을 한다. 배달할 일도 없는데
하루종일 공장에서 눈치보며 공장을 치우거나 조립일을 거든다.
야, 한때는 활동가였는데. 이제 나도 별수 없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구나. 신세타령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각박해지고 또는 야비해진다. 다 먹고살기가 힘든
탓이다. 대우자동차 파업 때 군산공장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야, 이게 노동조합운동이냐? 연대는 고만두고 같은
노조원들끼리도 외면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군산은 고사하고 부평에서도 정리해고자들을 외면할 때 “야,
정리해고자들 눈에서 피눈물이 나겠구나. 우리 조합원들은
그래도 같이 싸우다 깨져서 고개를 숙였는데.” 지도부와
정리해고자들이 불쌍했다.
그렇다. 당하는 사람들은 대가리 터져가며 싸운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진짜 임금노예가 되어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개처럼
살아간다. 물론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싸우다 짤리면 나만
손해니까. 싸워서 이긴 노동조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럴
것이다.
대우자동차 때문에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부평에 룸클럽만
늘어간다. 모르긴 몰라도 룸싸롱을 흉내낸 것일 게다. 이게
뭐냐? 부자들은 룸싸롱 가서 미스코리아 뺨치는 처녀들을 끼고
술을 쳐먹는다. 가난뱅이들은 룸클럽에서 부자 흉내내며
아줌마를 끼고 기분을 내는구나. 요즘은 노래방에서도
아줌마들을 부른다고 들었다. 그러면 누가 누굴 욕한다는
말이냐? 거기에 나오는 처녀나 아줌마들도 뭔가 다 사연이 있을
텐데. 자기 딸이나 마누라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 개들이 따로 없구나.
수많은 노조운동의 지도자들이 “국가경제가 살아야 하니까”
하며 강력한 파업을 부정한다. 국민이 지지해야 하니까 너무
과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주 구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고통을 분담하였습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감내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부나 회사가 이렇게 나오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에라, 이 순 … 노조운동이 국민을 상대로 하는
앵벌이라도 된다더냐? “우리는 노동자들을 등쳐먹는 사장들과
그 뒤를 돌봐주는 정권하고 맞짱을 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세가 불리해서 졌다. 다음에는 이를 악물고 반드시 갚아
주겠다.” 이런 결기를 보여주는 파업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일까?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그리고 노사정위원회
내가 보기에 민주노조운동이 결정적으로 약화된 것은 1996년
노동법 총파업 때인 것 같다. 그때 민주노총은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참여하는 문제를 놓고 일년 내내 입씨름을
벌였다. 그러다 노동법이 국회에 상정되려 하자 총파업 시기를
놓고 세월을 죽였다. 국회에 상정되면 총파업을 하자. 아니다,
상임위원회에 넘어가면 하자. 아니다, 너무 투쟁일변도로 가면
국민들이 싫어하니까 국회에서 통과되면 하자. 결국 노동법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자 열 받은 노동자들에 의해 총파업이
벌어졌다. 그 힘을 얻어 민주노총 지도부도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본의는 아니었는데 얼떨결에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잘나갈 때는 쳐다보는 눈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하는 것인데, 너무 잘나가니까 그게 다 표로 보였던
모양이다. 국민들의 눈을 의식한 순간 총파업은 흐지부지되었고
지도부는 노사정 위원회에서 직권조인을 해버렸다. 실은
그때만큼 국민들이 지지를 한 파업도 없었는데. 그때 민주노총이
유연한 전술을 보였다고 칭찬해 마지않던 신문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진출했던 노동자들은 지도부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떤
무기력증을 보였는지는 우리가 겪은 바와 같다.
찬바람을 맞으며 찬밥만 먹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잘 싸운다.
그러나 잔치의 한 귀퉁이에 초대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하면
안방으로 건너갈 수 있을지를 궁리하게 된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한 다리 끼려고 노력하던 민주노총이
어느새 노사정위원회에도 한 다리 끼었다. 변형근로제도
합의해주고 근로자파견제도 합의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국고
보조금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국고보조금
민주노총이 마침내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연말이 되어도 받지
못해 20억원을 날릴 판이었는데 간신히 7억원을 조금 넘게
받았다고 한다. 시한에 쫓겨 협상하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하기는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이니까, 그것을 충실히
집행해야 하는 책임도 있으니까. 그리고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자”는 시대도 아니고 국민들이 낸 세금이니까.
그 날은 일부 소수 대의원들과 일부 경직된 노조 간부들의
사기가 매우 떨어진 날이었다. 마침 위원장이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고 구속되어 있을 때였다. 그 날 회의는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표결을 하였는데 약 70퍼센트쯤의 찬성표를 얻었다고
한다.
어쨌든 민주적으로 한 결정이었다. 총연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아닌가? 조합원들에게 물어도 그 이상의
지지표가 나온다. 이렇게 자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정하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위원장이
구속되었다고 항의투쟁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한 손으로는
주먹을 흔들며 싸우겠다고 하고 또 한 손을 내밀어 돈을 받는다?
그림이 너무 안 좋다. 김형곤인가 하는 코미디언이 알았으면
봉숭아 학당을 만들었을 것 같다. 아니면 네로인가 뭔가 하는
코미디를 만들었을 것 같다.
지역본부들도 받고 있으니까, 조합원들 대다수가 찬성하니까
하는 논리도 좀 그렇다. 그럼 박정희 기념관을 짓겠다는데
대다수의 국민들이 찬성한다면 우리도 거기에 따라가야 하는
것인가? 박정희 기념관도 전화투표에서 80퍼센트의 사람들이
찬성하였다. 그리고 지역본부가 그렇다고 총연맹도 꼭
뒤쫓아가야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총연맹은 지도력, 조직력, 투쟁력이 모두
바닥에 와 있다. 총연맹의 책임도 크지만 때로는 세가 불리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상징성이라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인데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그게 가능할지 한숨이
나온다.
나는 민주노조운동이 목적의식을 가지려면 그런 문제는 지도부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조운동의 원칙에 대한
문제이니까 단호한 태도를 가지고 대의원들을 설득했어야
옳았다고 판단한다.
한국노총에 대한 문제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나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을 분할 통치한다.
지금도 김대중 정권은 한국노총을 키워주고 민주노총을 탄압하고
있다. 한국노총이야 원래 그런 곳이니까 별로 손해볼 일이 없다.
내가 보기에 한국노총하고 뭘 같이하면 항상 민주노총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 같다. 한때는 한국노총도 뭔가 해보려고
노력한 시기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96년 노동법 총파업
때라고 기억한다. 가만 있으면 노동자들을 민주노총에 모조리
빼앗기게 되었으니까 쑈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한국노총이 막나가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연월차, 생리휴가등 노동기본권을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거기다
직장, 지역 의료보험을 나누자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노동조합 운동을 집단이기주의로 격하시키는
짓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조직을 지켜야 하겠다는 저질적인
패권주의라고 볼 수 있다.
한 쪽은 탄압하고 한 쪽과 저렇게 짝자꿍하고 있으면 열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비판하는 사람도 없고 항의하는 사람도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항의는 무슨? 지도부가 어용이지
조합원이 무슨 죄냐? 이런 논리로 연대투쟁을 하는데 조합원들은
구경꾼이고 지도부끼리만 쓱싹 결정들을 한다. 94년 전해투가
점거투쟁을 한 뒤 한국노총을 약화시키거나 항의하는 투쟁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리고 많은 부분, 민주노총이 오히려
한국노총을 닮아가고 있다. 사실이 이런데도 철도노조가 아직도
한국노총을 나오지 않아서 실은 나도 별로 할말이 없다.
한겨울을 넘기면 곧 봄이 올텐데
지금은 전투적 노조운동의 한겨울이다. 겨울은 앞으로도 더
오래갈 것 같다. 김대중 정권의 사이비 노동정책에 휘둘리고
신자유주의의 경쟁논리에 알게 모르게 휘둘려 민주 노조운동이
술 먹은 것처럼 비틀거리는 것 같다. 노동자들이 죽어라고
파업투쟁을 벌여서 앞으로 한 발 가면 비틀하고 뒤로 한 발
간다. 비정규직, 계약직이 또 한 발 나가면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틀하며 뒤로 두 발짝 간다. 민주노조운동이 꼭 상여를 메고
가는 것 같다. 앞으로 한 발, 뒤로 두 발. 고개가 있다고 가지
않고 다리가 있다고 멈춰 선다. 그래서 과격하고 경직된 나는
곧잘 열 받는다. 어떤 때는 슬프고 어떤 때는 쓸쓸하다. 전투적
노조운동의 봄은 도대체 어느 때 오는 것일까?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일까?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