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학생회선거 평가
안 태 수/학생
1. 들어가며
언제부터인가 ‘그 어느 때보다도’가 유행이 되어버린 현실.
학생운동의 고립과 대중운동의 침체가 그 부침을 거듭하며 해소되지 못하면서 진행되어진 올해 선거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진통의 과정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대학선거에 예의 주시를 해오던 수사기관과 언론의 유례 없는 호들갑은 비권/반권의 상대적인 득세와 저조한 선거 및 투표율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겠다. 마찬가지로 90년대 들어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귀착되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우리들의 착목은 그래서 성급하게 ‘운동권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운동 지형의 정세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운동세력들의 대응을 올곧게 평가하는 속에서 ‘대안이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명의 차원이라는 점에서 그 변별점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금의 현실들을 단순하게 정권의 학생운동 무력화나 변화된 학생사회의 시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간 학생운동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반성 속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90년대 이후 전반적 선거경향으로 점철되어 왔던 행보 속에서 올해 선거 역시 “전반적 대중운동의 침체 속에서 진행된 운동진영 간의 세력다툼”이라는 다소 거칠고 부정적이기까지 한 경향화의 안착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이 선거과정 속에서 일체의 발전적 고민의 분출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반전의 계기보다는 전반적 추세 속에서 잠식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며, ‘대중운동의 침체’와 ‘선거운동의 왜곡’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악순환의 되풀이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작금의 학생 선거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위기극복의 새로운 전망을 내올 것인가?
조금은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다시금 “선거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개입하려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스스로의 답변과정이 평가 이전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선거 일반에 대한 운동적 관점과 계급대립이 관통하는 전체 정세 속에서 선거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개괄적 서술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 속에서 구체적인 진단과 평가의 세부항목으로 ① 현상적 진단(표 분석과 집계 등을 일차적 근거로 한) ②구체적 쟁점에 대한 측면 ③활동적 측면을 중심으로 점검한 이후 그에 따른 전망의 모색을 소결로써 마무리하려 한다.
2. 2002년 학생선거가 가지는 의미
1) 선거 일반에 대한 운동적 관점
선거는 학생회 1년 사이클의 순환을 매개하고 있는 하나의 사업 일정으로 자리매김되어 온 지 오래이다. 지금으로서야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는 선거마저도 80년대 초․중반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학생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함께 투쟁으로 쟁취했던 소중한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학원내의 학생자치조직/공간과 민주적 의사결정이 존재치 않았던 당시, 그리고 그러한 기반조차 미약했던 수준에서 수천․수만의 대중들 속에서 학내의 사안을 넘어선 대사회적 정치투쟁의 발언들이 서슴지 않고 터져 나오는 선거의 열기와 그 결과로 추대된 총학생회의 건설과 출범은 당시만 해도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학선거의 현실은 유세장에 운집한 학생들의 인파 속에서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대사회적 이유들에 대한 소통과 논쟁은 고사하고 운동원들만의 떠들썩한 잔치 속에서 내용은 간 데 없고 이벤트와 이미지만 난무하는, 다시 말해 선거 자체의 최소한의 의미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급격하게 변화된 현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변한 것에 대한 한탄’이 아니라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 80년대 학생선거의 상대적 급진성은 당시 분출하던 군부독재에 대한 불만과 대학사회의 급진적 학생운동의 복원을 통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따라서 당면한 정권타도투쟁과 학원민주화투쟁의 전술 및 전략 논쟁에 따른 정치적 쟁점의 형성과 연행과 수배에 따른 지도부위의 대중적 보위와 신속한 추대를 보장하는 장으로서의 선거는 당시만 해도 적절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선거에 대한 도구론적․기능주의적 관점에 기인하는 것으로써 그것이 대다수 학우들의 동의와 자발적 참여에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분명 ‘부르주아 선거’(대리민주주의 형식)와 질적 차이를 가지지 못하였다. 주체로서의 학생대중을 표 찍기의 대리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급진적이고 반자본주의적 구호를 주창한다 하더라도(또한 그들에게 더 많은 참여의 기회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대상화시킴으로써 정치의 탈각화와 대리주의의 질곡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학원에서 실질민주주의의 형성과 대중정치의 복원을 과제로 실천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주장들을 급진적으로 제기하고 올바른(!) 우리의 주장에 대한 승인의 절차를 거쳐(더 많은 학생 대중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선거를 통해) 대중공간(총학생회)을 장악․사업들을 펼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관점을 과감히 폐기해야만 한다. 실질 민주주의/대중정치의 전형은 학생운동의 일상적 대중정치활동의 지속적인 수행 및 과정 속에 배치되는 선거 공간을 학생대중들이 민주주의 학습의 경험 장1)으로 체득케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학습의 공간이자 반동적/대리주의적 관성들과의 철저한 대결의 장2)으로 역할 해야 한다는 점에서의 투쟁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속에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2) 2002년 정세 속에서의 학생선거
선거가 단지 국한된 시기 새로운 학생회를 추대받는 형식적 사업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이는 당연히 국내외 계급대립을 아우르는 전체 정세 속에서 선거 또한 위치지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정세를 관통하는 학생운동 진영의 활동진행 속에서 배치되어야 하는 것임은 자명하다. 이는 대학사회 선거라는 공간이 전체 정세의 계급 역관계속에 위치 지워지고 영향을 받는 반영지대임과 동시에 의식적 학생운동의 활동역량을 통해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어 나가는 실천영역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경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남한은 초국적 자본 및 지배 블록의 하위 파트너로 진입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선진대국으로의 진입과 세계 인류강국으로의 발돋움’이라는 현란한 수사적 이데올로기로 위장하면서 내딛어 왔다. 후진적 경제체제의 개선과 해외자본 및 투자 유인의 활성화란 명목으로 천명된 4대부문 개혁과제는 재벌 및 자본에게는 자금지원․조세감면 및 규제완화를 통한 각종 특혜를, 그리고 정리해고 및 파견근로의 법제화를 통한 일상적 구조조정을 통한 실업 증대 및 비정규직/임시직 등 불완전 노동의 확장이라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분단화를 가속화하는 양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보수정당간 이전투구와 각종 게이트로 이어지는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인한 민심 이반 및 상대적 빈곤의 급증이 중첩되면서 필연적으로 계급간 대결 국면을 동반해 왔으며 지난 한일투자협정 체결 및 다자간 협정 진행 과정을 예비하기 위한 공공부문 민영화․민간의보 도입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2002년 남한사회 전체의 계급 대립전선에 도화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전사회적 확장은 교육부문 조차 예외로 남겨두지 않았는데 이는 단지 ‘외연의 확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 수급조건의 변화와 노동시장의 분할․배제전략의 교두보로 기능하기 위한 교육시장의 질적 재편인 것이다. 이미 해를 거듭하며 인상된 등록금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며 그 자체 수익성의 원칙만이 통용되던 대학의 현실은 잠정적 분쟁의 소지를 내포해 오고 있었다. 김영삼 정권이래 본격화된 교육구조조정은 교육발전 5개년 계획으로부터 BK21 및 7차 교육과정의 도입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교육개혁’이라는 빛바랜 수사를 진작에 벗어 던지고 노골적인 ‘교육시장화’ 및 ‘교육위계화’ 전략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단편적으로 보더라도 등록금 인상/모집단위 광역화/학사관리 엄정화/자치활동 탄압 등에 대한 학생사회의 불만과 교수업적평가제 및 인사제 도입/2002년 시행을 압둔 연봉제 및 계약제로 인한 교수사회의 불만, 그리고 정규직의 비정규․계약직으로의 전환을 통한 불안전노동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직원노조의 불만을 기계적으로 취합하는 갈등의 폭발 수준을 훨씬 넘어 경쟁의 만연과 교육위계서열화의 조장․교육비의 민중전가와 교육 공공성의 해체에 맞서는 전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구조조정 저지투쟁과 교육총파업, 교수노조의 건설 등의 가시화는 불가피한 결과이자 이러한 자본의 의도에 반전을 꾀하는 움직임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학생선거는 첫째, 대학에 대한 자본과 국가권력의 전일적인 학원 통제와 그로 인한 폐해가 전면적으로 폭로되고 교육 시장화가 단지 교육주체만의 문제가 아닌 전 민중의 문제이며 그들과 연대해야 함을 선전․선동하는 장이어야 한다. 둘째, 청년실업을 비롯한 신자유주의로 인한 착취의 심화와 삶의 황폐화를 폭로하고, 신자유주의반대 정권퇴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등을 정치 선동하는 장이어야 한다. 셋째, 학부제․모집단위 광역화 등으로 파괴되어지는 학생대중활동(조직)의 메카니즘 즉, 대중운동의 복원3)이라는 측면에서 선거행위 그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3. 2002년 학생선거 진단 및 평가
1) 표 분석에서 드러난 현상적 진단
(1) 대중의 참여율 저조: 이반(離反)현상?
<표 1> 시기별 투표/득표율(서울지역)
비율
연도 |
투표율* |
당선율 |
선거연기 |
선거파행 |
표 미달 |
2000 |
50.44 |
63.48 |
1 |
3 |
2001 |
51.48 |
59.29** |
? |
3 |
2002 |
52.40 |
64.80 |
1(교투중) |
1 |
* 3년 모두 4개 캠에서 연장투표 실시.
** 3파전 이상의 캠이 상대적으로 많음(9)으로 인해 비율이 떨어졌음.
올해 역시 선거에 대한 투표율이나 당선율에 있어서 매우 저조한 수위를 기록하였다. 대다수의 캠에서 투표율이 과반수를 간신히 넘기는 상황이었으며(52.4%) 심지어 과반수 부족으로 인한 재선 및 선거 일정 자체를 연기하는 파행으로 치닫기도 하였다. 당선율 조차도 다수의 선본 간 경합이라는 구도 속에서 당선 과반수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 비일비재하였음은 과연 이러한 선거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한 당선된 선 본을 통한 총학생회 건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가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심각한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중앙선관위나 선본 측은 지금까지의 이러한 경향의 안착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이에 대한 극복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하지 맙시다!’라는 선정적 문구를 내걸며 투표기간의 연장으로 해소하려 하거나 선본의 경우 정치적 쟁점의 희석화와 이미지를 부각하는 선거운동 중심으로 보다 많은 학생대중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고 참여할 수 있는 획기적 기획의 대안마련에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그것이 결코 대안이 되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오히려 이러한 선거관행의 반복이 선거 자체에 대한 무관심 혹은 왜곡된 대중적 인식을 되풀이하여 낳았을 뿐이다. 참여율의 저조를 대중의 이반현상으로 진단하는 것이나 또는 참여율의 상승을 목적으로 배치되는 선거방식을 꾀하고자 하는 것은 양자가 동일하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협소한 시각으로 후퇴하는 것일 뿐이다.
(2) 비권/반권의 발호: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권은 90년대 말 학회 혹은 동아리 중심의 서클 형태를 유지해 오다가 서서히 그 세력을 조직적으로 확장해 오는 과정에서 ‘운동권이 아님(비권)’을 넘어 이제는 ‘운동권의 반대(반권)’의 기치를 명확히 하면서 대학내 안정적인 거점을 마련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99년도 시립대와 덕성여대, 연세대와 상명대 등 몇 개의 서울캠들과 ‘푸른 21’의 전북지역에서의 대거 당선은 당시 한총련 사태와 운동권의 관성에 대한 정권 및 학교당국의 대대적인 여론몰이와 함께 학생운동의 자기 혁신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는 틈을 타 일거에 관심을 타기 시작하였으나 당시만 해도 단지 ‘비운동권의 출마’라는 신선한(?) 어필 자체로 일정정도의 지지도를 획득한 수준 정도였지 안정적인 연임과 조직의 재생산은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하지만 매 선거 시기마다 선거국면을 운동권/비(반)운동권의 대립으로 왜곡․조작하면서 대중적 인기몰이에 영합해 왔던 이들은 정책 연합과 선거 공조의 형태로 전화되기 시작하면서 외연의 확대를 통한 증가 추세를 지속해 오고 있는 현실이다.4) 학생운동의 부정 혹은 탈(脫)정치화를 주장하는 그들의 이면엔 오히려 역으로 학생대중운동의 대리주의/의회주의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설파한다는 점에서 그 어느 ‘운동권 세력’보다도 더욱 ‘정치적’ 세력이다.
(3) 민족계열의 현상유지: 우경화로의 경도
<표 2> 계열별 당선수(연도별)
연도
계열 |
2000 |
2001 |
2002 |
NL |
30 |
59 |
63 |
좌파 |
15 |
18 |
9 |
반권 |
26 |
36 |
46 |
기타 |
4 |
6 |
7 |
계 |
75 |
119 |
125 |
NL세력들은 큰 변동폭을 보이지 않은 채 해마다 꾸준한 현상 유지를 보이고 있다. NL 내에서는 학생운동의 쇠퇴와 공안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총련’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 혁신의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쉽게 동의하기에는 그 이면에 가리워 진 내면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올해 역시 NL 선본의 주된 선거대응(정책 포함)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째로 학내 복지 공약의 남발을 통한 정치적 견해의 탈피, 그리고 둘째 한총련의 합법화와 통일운동의 대중성(DJ 정권에 대한 부분적지지) 획득을 통한 우경화로의 심화이다. 이러한 ‘우경화로의 전도’가 낳는 결과는 매우 심각한 수준인데,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한 계급 대립의 전선과 정상회담 개최와 6․15선언을 정점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정권의 통일 정책을 순진하게도 분리 사고하면서 민족경제의 수립 가능성과 경쟁력 강화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통일국가의 장미빛 전망을 주장하는 망상(오죽하면 ‘월드컵 생중계’를 공약으로 내세웠겠는가!)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급운동에 끼치는 해악은 정상회담의 지지와 정주영 조문 파동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현장에 대한 방기 등에서 보여지듯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또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학원 정세에 대한 이들의 왜곡된 판단인데, 단지 형식 민주주의의 절차상 문제에 대한 해결 및 획득이나 교육재정의 확보 등 재원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외하곤 자본과 학교당국의 ‘학교발전 이데올로기’에 전적으로 찬동하고 이를 설파하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4) 좌파의 부진
<표 3> 계열별 당선수(지역별)
지역
계열 |
서울 |
경기 |
전라 |
경상 |
강원/제주 |
충청 |
전문대 |
계 |
주사 |
20 |
13 |
4 |
14 |
2 |
4 |
6 |
63 |
좌파 |
5 |
? |
? |
? |
1 |
2 |
1 |
9 |
비/반권 |
3 |
7 |
10 |
11 |
2 |
10 |
3 |
46 |
기타 |
3 |
? |
2 |
? |
2 |
? |
? |
7 |
파행/연기 |
/2 |
1/2 |
2/3 |
2/4 |
/2 |
2/7 |
1/1 |
8/21 |
계 |
33 |
23 |
21 |
31 |
9 |
25 |
12 |
154 |
좌파학생운동은 올해 선거에서도 연대회의와 전학협, 그리고 노실단 등을 중심으로 공동후보단의 건설을 통해 조직적으로 개입하였다. 좌파가 내걸었던 구호는 대체로 ‘노동자 민중의 정치 세력화와 4기 전학협 건설’(전학협), ‘노동자 민중의 정치 세력화와 통합적 대중운동 구현’(연대회의), ‘반동적 학생회 반대! 투쟁하는 학생회 건설!’(노실단) 등으로 총론 수준에선 학생대중운동에 대한 입론을 제외하곤 크게 대별되는 수준은 아닌 듯 하다. 대체적으로 지난 선거 시기 20여개의 당선을 획득했던 경우와 대비해 올해의 좌파 당선은 9개 캠에 머무를 정도로 부진한 결과를 낳았다. 또한 선거 개입조차도 기존에 당선되었던 캠에서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점, 그리고 2년 이상 재집권이 주사나 반권에 비해 거의 전무하다는 점(숙대를 제외하고)에서 득표율의 한계에 대한 지적을 넘어선 전반적인 좌파활동의 한계지점에 대한 명확한 재평가가 시급한 과제로 요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좌파진영은 학생운동의 위기와 대중운동의 피폐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방하며 이에 대한 복원과 학생운동의 혁신 및 재건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모색이 다분히 ‘대중 속으로 천착하자!!’라는 추상 수위에서의 슬로건에만 매몰되어 그 구체적인 계획과 혁신의 과제들을 실천하지 못했던 한계들을 노정하면서 다시금 학우들을 대상으로 한 채 현장과 학원이라는 분리된 공간 속에서 ‘반복 이전’ 활동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해마다 보여지듯 선거 시기, 학원으로 매몰됨으로써 하반기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중심으로 한 계급운동의 전선에서 다소 이탈하는 경향의 잔존은 ‘선거’라는 매개를 통해 그들의 총론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외화된 고민의 확장을 가져오기보다 학원에서의 시기별 사업의 축소로 점철되는 한계를 가져오기도 했다.
좌파적 학생운동의 선거 개입을 통한 대학사회 급진적 정치의 복원은 그것이 수직적 학생회 연합체의 형태든 수평적 대중운동의 형태든 또는 투쟁하는 학생회로의 강화로의 귀결이든 간에 타 조직․선본과의 정책적 구별짓기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전후한 대중공간에서의 지속적인 정치활동과 선거 시기 실물화된 대중 권력의 전형을 창출하는 과정 속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임을 다시금 각인해야 할 것이다.
2) 정책․사안에 대한 측면
(1) 정파별 정책적 쟁점
아래의 정파별 정책내용들은 말 그대로 그들의 선거자료집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는 정책사안 중 주된 제기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적 쟁점형성이 현실의 선거지형에서 학생대중과의 직접소통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현되었는가에 대한 지점 및 평가는 담고 있지 못하는 한계를 전제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대략적인 사안별 쟁점에 대한 올해 선거의 특징들을 검토해 보면, 첫째, 학생대중운동의 강화 측면은 자본의 교육재편에 따른 대중운동지형의 피폐화를 정파들 공히 인정하는 속에서 기층단위의 재건과 활성화(과반학생회, 학회 및 소모임 관련)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학생회론/대중운동론에 대한 발본적 문제인식보다는 대표적으로 ‘과발특위’의 건설 및 강화, 자치모임 활성화계획 등 제도적 차원에서의 지지지원 수준으로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운동적 과제로는 최소수준의 합의지점에 의한 ‘교육학생연대’의 공활(등록금 인상 저지! 교육재정 확보!)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 학생운동 재편 및 강화 측면을 보면 90년대 중후반 한총련의 자기기반 상실을 핵심으로 하는 연대체 운동의 소진 속에서 NL진영의 경우 연합체 운동의 혁신/해소에 대한 다양한 분파로의 분화가 가속화한 가운데 SM의 질적 재편 고민은 상대적으로 제기되지 못하고 있다(다만 올해 민노당 재창당 과정에서 SM의 단일한 결집이라는 조건으로 한시적 수준의 재강화 논의가 제기될 가능성은 잔존한다). 좌파의 경우는 사안별 시기별 투쟁체의 연대기풍조차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핵심 정파를 중심으로 한 부분적 연합질서의 독자구축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장정의 선대조론에 입각하여 수평적 대중운동 형성을 주장하는 연대회의나, 단일연합체 질서(한대련)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2파 한총련’의 수준을 면하지 못하는 전학협, 투쟁하는 학생회(학생운동) 건설을 주장하며 실천적 노학연대의 독자질서를 확보하고 있는 노실단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셋째, 부르주아 정치일정과 관련한 ‘노민정’과 관련하여, NL의 경우 대체로 현정세를 통일/반통일 세력의 대결구도로 바라보면서 재야 및 사회운동세력의 제결집을 통한 민족민주전선/민족민주정당의 결성을 꾀하면서 부분적으로는 부르주아정당 내 개혁분파와의 공조가능성 또한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좌파의 경우 사회당 지지와 민노당 지지파를 제외하고 살펴보겠는데 우선 장정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민중연대의 좌익적 강화를 통한 대중투쟁으로의 돌파를 그 핵심활동으로 하면서도 선거일정과 관련 범민주후보 추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실단의 경우는 현 시기 의회정치로의 수렴을 필연적으로 의도할 수밖에 없는 진보정당계열에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 한통계약직 투쟁 등 비정규직 투쟁을 핵심으로 하는 민중연대전선의 일상적 실천 외 다른 입장을 내오진 못하고 있다.
(2) 대중적 논쟁과 소통의 부재
상술했듯이 정파별 정치쟁점화의 입장제출을 자료집의 정책을 중심으로 나열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대중적 논쟁과 소통의 확장으로 구체화되는가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전반적 진행상황에 대한 대체적 평가에 근거하면 올해 역시 ‘쟁점이 없는 선거’ ‘이미지를 부각하는 선거’식의 평가가 회자되는 것처럼 대중적 논쟁 및 소통이 부재하였던 것이 현실이다. 이는 쟁점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운동주체간의 쟁점형성이 부재했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운동주체간의 쟁점형성 부재가 ‘무차별적 대중선동을 조직하자!’라는 반복된 슬로의 강변으로 묻혀지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는 ‘대중정치활동(론)’5)에 대한 관점의 부여와 이를 통한 일상적 실천활동의 작동방식에서 경험적인 전형을 획득하고 활성화 될 수 있으리라 본다.
3) 공활 및 정치활동적 측면
(1) 공동 후보단 활동
선거는 끊임없는 ‘소통과 연대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소통할 것이며 누구와 어떠한 연대를 꾀할 것인가?
몇 해 전부터 좌파학생운동간 공동선거 활동이 진행되어 왔었고 이것이 정파간 갈라치기(?)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정정도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좌파학생운동진영은 그간 연합질서를 통한 공동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선거대응에 있어서도 공동대응을 하여 왔다. 선거를 매개로 한 투쟁사항과 정치방침의 논투는 결코 일개 캠으로 국한되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것이며 선거라는 해당시기 대응을 위한 한시적인 연대(그 정치적 귀결을 선거로 매김하는 것)가 아닌 일상적 정치활동의 대응이라는 점에서 이는 분명 필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총론적인 수준에서의 정세전망과 해당시기 및 차후 년도의 투쟁방침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나열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현실에서 이러한 수준의 문서공유는 핵심정파(혹은 정파간)에 의해 생산되는 정책기조를 전파․하달하여 각 캠마다 선거자료집으로 전환․활용되는데 급급하기만 한 현실의 한계들을 극복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정책내용생산의 구체적 생동감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캠단위 운동의 자활력을 약화시키거나 하위범주로 인식하는 수직적 통합체계의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무릇 선거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것은 선거를 전후한 일상적 좌파간 공투 경험을 매개로 한 정세 및 투방 분석 못지 않게 해당 캠별 구체적 실사와 핵심 쟁점에 대한 분석과정을 통해 총적 기조가 구체적 정책사안으로 형성․공유되어져야만 한다.
(2) 대중적 선전선동활동
이제까지의 대중선동 및 정치폭로의 과정을 살펴보면 선진대오에 대한 선전/교육의 수준은 어느 정도 진행된 반면 대중공간/운동지형내의 직접적 개입과 정치활동은 부재하거나 단지 매체나 자보를 통한 간접적이고 일회적 폭로의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대체적인 현실이다.
선거시기와 관련된 대중활동 역시 이러한 범주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다만 대중과의 접촉에 대한 횟수나 선전방식의 세련화라는 양적 차이 그 이상을 뛰어넘는 활동전형을 창출하는데 실패해 왔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정파를 떠나 으레 선거개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선거운동원 모집(선진대오의 형성)을 통한 선본으로의 최대한의 역량 결집을 가장 중대한 핵심사업으로 제기되어왔다. 선거운동원은 중앙에서의 정세토론 및 사안별 교육을 거쳐 대중선동의 핵심역량으로 기능하고 좀더 진척된다면 이들이 자신들이 기반하고 있는 대중공간으로 침투하여 선본(정파)과 대중공간의 전달벨트 역할6)을 수행하는 정도이다.
효과적이며 잘 교육된 선진대오(선거운동원)의 선전선동. 우리는 혹 이제까지 일상적 대중선전선동의 발현을 선거시기 공표된 일정계획 속에 배치된 유세장과 공청회 등에서의 대중선동만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대중의 발자취가 끊긴 그곳에 선거운동원들의 함성으로만 가득 찬 현실에 절망해오고 있지는 않았는가?
좌파학생운동의 가장 큰 취약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대중정치/선전활동’ 부재의 극복은 따라서 선진대오 결집과 이를 통한 현실 긴장감 없는 자족적 선전선동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의 대중공간 속으로의 직접적인 인입과 영향력을 획득하는 속에서 능동적이고 일상적인 대중선동/정치폭로를 실현해 나가고 선거시기 선진인자의 중앙결집만이 아니라 구체적 대중활동의 성과 및 한계를 평가하는 속에서 이것이 어떻게 선거쟁점 및 사안들의 내용과 연결 지을 것인가를 대중과 토론하고 대중 스스로 조직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3. 총평 및 전망
이제까지 2002년 선거에 대해 기본적 평가관점 속에서 표 분석과 쟁점사안별/정치활동적 측면에서의 진단과 평가를 살펴보았다.
기실 새로운 전망을 내온다는 것은 명확한 관점 하에 수행된 평가지점을 분석하는 속에서 그 맹아적 수준의 전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학생운동의 계승과 단절의 과정에서 학생대중운동의 정치적․좌익적 정치세력화의 관점을 가지고 그 질적 재편을 고민하는 동지라고 한다면 다시금 우리 스스로에게 근본적 질문을 되물으며 일상적으로 생동적인 운동적 긴장감을 끊임없이 가져가는 자세 속에서만이 그 복원과 혁신의 가능성을 예비할 수 있는 것이리라.
선거평가의 이유 역시 그 승패를 떠나 평가 속에서 그간 우리의 활동에 내재적으로 경향화되어온 관성적 운동작풍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그 곪아온 환부를 냉철히 도려내어야만 한다. 대중공간에 대한 장악력의 복원은 결코 권리정치의 위임을 받음으로써 대리민주주의의 형식적 표상에 의해 온전히 발현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에 대한 극복은 ① ‘학생선거’의 실질민주주의의 장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질적 변화를 예비하는 중장기적 프로그램을 기획/실천하는 것과 ② 일상적 대중활동 속에 자신의 활동근거를 가지고 끊임없이 학습/조직/선전하는 활동작풍의 복원과 그 속에서 체득되고 경험되어지는 과정에 실물화된 전형을 대중 스스로가 체화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다.
1) 이는 단지 학생대중의 민주적 훈련만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대중들의 실질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력 기획은 존재치 않은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대중의 기획력/가능성들이 형식적 질서에 매몰시킴으로써 운동주체에 의해 사전봉쇄당하고 ‘대상화’되지는 않았는가? 따라서 ‘정치적 학습’은 학생대중의 훈련(가능성을 실물화시켜내기 위한)이자 오히려 운동주체들의 훈련장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2) 대리주의적 경향과의 철저한 대립전선의 구축은 단지 학생운동 내에 경향적으로 안착화되어있는 자기관성과의 대결이자 근래 들어 비권/반권의 조직적 선거개입과 같은 반동적 운동 분파와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반동 분파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은 80년대 전대협 시절 안기부의 공작/파괴활동에 그 전거를 찾아볼 수 있다. 90년대 중반 들어 현재까지 조직적 확장을 꾀하고 있는 반권세력이 직접적인 국가권력의 정치공작이라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 당국 및 자본의 비호와 보수언론을 통한 대대적 보도가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이들의 수면부각을 단지 ‘음모론’이라 치부하며 무시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 역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학생운동 내외적으로 강제되고 있는 반동적/대리주의적 경향에 대한 철저한 대결의 장이라는 의미로서의 선거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3) 학생회라는 조합조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학생대중의 이해와 요구는 기본적으로 학생회를 매개로 실현될 수밖에 없으며 학생회 선거는 그 조합조직이 연속적으로 작동되는 핵심적인 메카니즘이다. 때문에 선거는 그 자체로 대중운동의 복원의 한 계기점이다.
4)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자면, 학생운동의 아성으로 불렸던 고려대․한양대에서의 당선과 성대(‘성대사랑’ 2년 연임)․전북대(‘푸른 21’ 3년 연임) 등 전국 20여개 대학에서 연임을 하였다. 특히나 단일 선본이 아닌 1캠 2팀 이상의 반권 선본(서울대, 국민대 등)이 등장하였으며 심지어는 반권 선본들 간의 경선으로만 치러진 대학(관동대, 충북대, 대전대 등) 뿐 아니라 한양대 안산 캠의 경우 총학뿐 아니라 대부분의 단대 선거에서도 출마․대거 당선된 사례들을 보아도 그 수준을 짐작 할 수 있다.
5) ‘대중활동론’에 대한 입장제출을 여기서 세부적으로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은 듯 하다. 다만 ‘일상적이고 능동적인 대중선동/정치폭로의 실현’이라는 추상적 수준의 재확인과 그것이 작동되는 방식 및 관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6) 하지만 이역시 거의 미비한 수준이며 대중간 수평적 소통구조의 안착화로 귀결되기보다는 선거시기 일회적인 모니터 역할의 수행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