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컬럼 > 목록보기 > 글읽기

 
아르헨티나의 비극

현장에서 미래를  제73호
채만수

채만수(정세초점).hwp 채만수(정세초점).hwp(39 KB)

정세

초점



아르헨티나의 비극



채 만 수

부소장





누군가 “‘혁명적 상황’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라고 물으면,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얻어야 할 보다 중요한 교훈은 “혁명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르헨티나에는 왜 혁명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가”에 관한 것일 것이다.


부르주아 언론에 의해서 널리 “아르헨티나의 비극”이라고 보도되고 있는 대로, 지난 12월 19일 이후 아르헨티나에는 가히 혁명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12월 19일과 20일에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위시한 여러 도시에서 ‘폭동’과 ‘약탈’이 발생,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진압경찰의 발포로 26명(보도에 따라서는 31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체포되었으나 폭동과 약탈을 저지할 수 없었고, 델라루아(Fernando de la Rua) 대통령의 퇴진(12월 20일)에 의해서만 사태는 잠시 진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1월 1일까지 불과 두 주일만에 사임한 델라루아와 두 사람의 서리(署理)를 포함, 다섯 명의 대통령이 등장했으나 시위, 폭동과 약탈, 그리고 은행에 대한 공격이 거듭되면서 무정부적 혼란이 진정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공백 상태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직접적으로 격발시킨 것은 주당 250달러, 그리고 한 달에 1,000달러 이내1)로 은행으로부터의 현금 인출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당시 경제장관 카바요(Domingo Cavallo)의 ‘임시금융조치’였다.2) IMF가 국제적인 금융자본의 채권 확보를 위해 가혹한 긴축정책을 강요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대외이자 지불을 위한 추가 지원을 유보한 가운데, 외환 위기와 페소화의 평가절하를 예상한 투기자본이 대거 이탈하자3) 노동자들을 위시한 대중과 영세 상공업자들의 예금을 볼모로 잡은 조치였는데, 이는 물론 계기였을 뿐 폭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아주 풍부한 천연자원과 광활한 대지, 남반부에 위치하여 계절만 거꾸로 되어 있을 뿐 북아메리카의 미국과 비슷한 기후, 그리고 잘 교육된 풍부한 노동력을 가진, 즉 미국과 같은 부국(富國)이 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갖춘 나라고, 또 실제로 2차 대전 직후에는 세계 7대 부국의 하나였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지배력이 강화되고, 그리하여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으로 전락하면서 아르헨티나 인민의 처지는 급격히 추락하였다. 신자유주의적 개방과 자유화로 미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독점자본이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장악함에 따라 노-자간 계급 투쟁이 격화되자 1976년부터 83년까지 제국주의에 의해서 뒷받침된 잔혹한 군사정권에 의한 “더러운 전쟁”의 시대를 겪으면서 35,000명 이상이 사망․실종되었고, 1982년에는 영국과의 포클랜드(Falklands) 전쟁에서 참패했다. 1989년부터 1991년 초에 걸쳐서 연율(年率) 5,000%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최근에는 연속 4년 이상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프랑스의 진보적 부르주아 월간 잡지 ꡔ르몽드 디쁠로마띠끄ꡕ(2002년 2월)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의 은행의 90%, 기타 산업의 40%가 국제 자본의 수중에 있으며, 그 결과는 끔찍하다.”4) ꡔ르몽드 디쁠로마띠끄ꡕ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70년대 초 이래 아르헨티나의 대외 부채는 76억 달러에서 1,320억 달러(혹은 심지어 1,550억 달러)로 증대했고, (공기업의) 사유화(민영화)를 통해 국가가 거두어들인 400억 달러는 연기로 사라졌다. 실업은 3%에서 20%로,5) 극빈자 수는 20만에서 5백만으로, 빈민은 1백만에서 1천 4백만으로,6) 문맹률은 2%에서 12%로, 기능적 문맹률7)은 5%에서 32%로 증대했다. 정치 지도자 및 노동조합 지도자,8) 그리고 사업가들에 의한 해외투자는 1,200억 달러에 이른다. 신자유주의 과시 국가(neoliberal show state)는 신자유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비참한 영향과 거대한 도둑질을 과시하는 모델이다.”


광범한 빈곤을 초래한 정책들은 모두가 국제적 독점자본의 이익의 옹호자인 IMF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는데, 공기업의 민영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예산의 삭감이 그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자유시장 이데올로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공기업들은 매각되었고, 새로운 소유자들은 노동자들을 수천 명씩 해고했다.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광산이나 에너지 센터를 포함해서 폐쇄되었고, 그 결과 유령의 도시가 생기면서 모든 사회경제적 부문이 악영향을 받았다.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조건은 낮아졌고, 다수가 해고되었다. 수천 명의 공공 부문 피고용인들이 몇 달이고 전혀 보수를 받지 못했다. 노동조합이 공격을 받았고, 조합원들이 해고되었다. 공공 서비스가 맹렬하게 공격받았고, 그 결과 연금생활자 및 자비로 교육이나 의료를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이 타격을 받았다.9)


또한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은 작년에 연율 11%의 축소성장을 기록했고, 많은 사람들이 금년에도 7~8%의 축소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해왔으나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사태는 더욱 비관적일 것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르헨티나 인민의 빈곤화․비극이 더욱더 심화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상황이 개선될 어떤 전망도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혁명적 노동자신문(Workers World)은 “1976년에서 83년까지 ‘더러운 전쟁’을 통해서 철권으로 아르헨티나를 지배했던 군사 정부로 되돌아가느냐, 아니면 국제통화기금(IMF)의 착취를 깨부수는 노동자 정부냐, 두 가능성이 점점 더 열리고 있다”10)고 쓰고 있지만, 사실은 양쪽 모두 아직은 그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군사 정부로의 회귀’. 이는 부르주아적 길이다. 그런데, 어쨌든 그것이 다소라도 안정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금 갈수록 더욱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적 상황, 특히 금융의 붕괴를 저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인데, 어디에도 그것을 가능케 할 방안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1991년 이후 11년 동안 미 달러와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1대 1로 고정되어 아르헨티나 정부의 공공 부채는 물론 기업 및 개인의 차입이 대부분 달러 표시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페그제(peg system)’로 불리는 기존의 고정환율제를 고수할 수도, 그것을 그만두고 페소화를 평가절하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페그제의 고수는 갈수록 페소화를 고평가시키면서 무역적자를 증대시킬 것이기 때문에, 즉 지금 아르헨티나를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부채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기 때문에11) 이미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다름 아니라 지난 해 12월부터 벌어지고 있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 단적으로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페소화의 절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페소화의 절하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은 물론, 나아가 금융기관의 전반적 붕괴, 아니면 제국주의적 국제 금융자본과의 전면 승부라는, 필사의 양자택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19일 이후의 사태로 금융거래가 정지된 상태에서 두알데(Eduardo Duhalde) 대통령은 지난 1월 6일 페그제를 포기, 페소화를 절하하면서 ‘이중환율제’를 채택하고 11일에 외환거래를 개시했는데, 이는 개시 첫날부터 두알데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했다. 우선 두알데는 달러화 예금 인출 쇄도를 막기 위해서 “시한폭탄의 안전한 제거를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12월 1일의 인출 제한조치를 강화했는데, 이는 여러 도시에서의 폭력 시위의 재연, 은행 습격, 예금자동인출기의 방화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두알데가 택한 ‘이중환율제’는 무역대금의 지출 등 공정환율은 1달러 당 1.4페소로 하고 기타 거래의 환율은 ‘자유시장’에 맡긴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당연히 자유환율이 높아야 1.5페소 정도에서 결정될 것을 기대한 위에서의 조치였다. 그러나 첫날부터 페소화의 가치는 1달러 당 1.7페소, 심지어는 1.9페소까지 폭락했다. 이는 우선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의미하고, 그만큼 노동자․민중의 빈곤화가 심화될 것임을 의미하고, 따라서 그만큼 계급투쟁이 격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페소화의 절하는 금융체제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기존의 기업 및 개인의 달러 표시 부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페소화의 절하는 이들 부채 부담의 엄청난 증가를 의미한다. 즉, 10,000달러의 부채는 이전에는 10,000페소의 부채였으나, 페소화의 가치가 달러 당 1.7페소로 절하된 상황에서는 17,000페소의 부채로 되고, 페소화가 절하되면 될수록 부채는 그만큼 증대하면서 기업 및 개인의 전반적인 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노동자․민중은 물론이요 소수 남은 이른바 ‘중산층’의 ‘반란’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해질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정부는 지금 소액 부채의 페소화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이제 은행측의 저항과 대대적인 도산이 문제로 된다. 즉, 페소화의 가치가 절하되는 만큼 은행측은 손실로 되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도산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그들의 저항이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데, 지금 은행의 90%가 외국자본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이는 제국주의의 강한 압력으로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물론 지금 지불불능(소위 ‘디폴트’) 상태에 빠진 대외채무에 따른, 지금 당장은 상황 전개를 예의주시하면서 표면상 잠잠하지만 조만간 여러 형태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압력에 추가적인 것이다. 이 압력은 항공기 선박 등을 포함한 대외 자산에 대한 압류는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군사적 점령, 즉 노골적인 식민지화까지를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될 경우, 그것이 민간 정부건 아니면 군사 정부건, 아르헨티나가 그 압력을 견뎌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의 인민이 그들의 지배자들에게 질려 있기”12)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아르헨티나의 “장군들이 병영에 머물러 있는 것은 군사 지배라는 지난 실험이 너무나 유혈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경제적 상황이 너무나 참담해서”13) 어떤 해결 방도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착취를 깨부수는 노동자 정부’라는 노동자․민중의 길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아르헨티나 인민의 진정한 비극이 있다.


“아르헨티나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제2차 총회에 참석한 라틴 아메리카의 유일한 국가였고, 남북 아메리카에서 사회주의운동이 최초로 시작된 국가에 속했다 … 아르헨티나에서는 계급투쟁이 여러 차례 폭발해 왔는데, 그 때마다 지도자가 계급 화해를 시키려고 시도해 왔다. 페론(Juan Peron)과 그의 아내 에비타(Evita)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일반적으로 전투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말들을 구사한다. 에비타는 아주 능변이었고 좌익적이었지만, 결코 부르주아지의 재산을 몰수하자고 할 만큼 좌익적은 아니었다. 그녀는 반부르주아지적이고 반지주적인 언사를 구사했지만, 그를 위해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혁명적 계급 노선과 데마고기(민중선동)의 차이이다.”14)


그런데 1930년대이래 CGT가 중심이 된 아르헨티나의 노동(조합)운동은 페론당의 이러한 민중주의(대중선동․인기연합주의)에 철저히 농락당하고, 또 그에 적극 협조해왔다. 그 과정과 결과는 노동(조합)운동 지도부의 부패․타락이고, 혁명적 계급 노선의 약화․좌절이다. 그리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중의 투쟁은 민중주의적 페론당과 급진당이라는 양대 정당 및 그 정치가들에 대한 불신만이 아니라 CGT를 비롯한 주요 노동(조합)운동 지도부에 대한 진한 불신과 배신감을 깔고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그만큼 그야말로 자연발생적인 투쟁이고, 그만큼 한계가 명확하고 혁명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공산당(CPA)을 위시하여 소수의 혁명적 (지하)정당들이 존재하지만, 광범한 민중주의와 그 데마고기는 이들 정당을 대중으로부터 분리시켰고, 따라서 현재와 같은 혁명적 상황에서도 혁명을 인도하기엔 턱없이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페트라스(James Petras)가 보고하고 있는 것처럼, 아르헨티나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피케테로’(piqueteros=picketers)라는 이름의 ‘실업자운동’이 활발히 조직되고 활발히 전개되면서 전국의 주요 간선도로를 점거, 물류를 정지시키고 그를 통해서 자본의 재생산을 정지시키는 투쟁이 전투적으로 전개되어 왔다.15) 그리고 그러한 투쟁을 통해서 조직의 확대․강화라는 성과와 더불어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는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도 많이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2월 19일 이래의 투쟁의 중심에도 이들 실업자 운동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페트라스가 평가하고 있는 대로, 실업 및 불완전 고용, 비정규직의 확산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의 유연화가 심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노동운동과 대중운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운동과 투쟁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만일 피케테로 운동이, 페트라스가 보고하고 있는 대로라면, 그것은 건강하면서도 동시에 ‘대중운동 지상주의’라는 심각한 편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고, 그만큼 사회혁명을 이루어낼 수 없는 불임성의 운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페트라스의 보고대로라면, 거기에는 대중과 투쟁만 존재할 뿐, 당과 당의 지도의 문제의식은 존재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향은 필경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서 발생한, 20세기 사회주의의 비극적인 붕괴, 그리고 노동운동 지도부의 민중주의적 배신에 대한 즉자적인 반동일 것인데, 자신들의 시행착오에 대한 성찰과 아르헨티나 공산당 등 미약하지만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혁명적 정당들의 헌신적 투쟁과 노력만이 그 편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민중주의는 단지 지구 저편 아르헨티나나 기타 남미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것은 지금 강고히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문제로 되어 있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노동자 및 노동운동이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부터 뿌리깊은 흐름을 형성해 오고 있는데, 잦은 선거와 군사 파시즘의 후퇴로 표현되는 부르주아 제도 정치 영역의 확대 및 역시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를 계기로 그 대오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른바 ‘진보 대 보수’, ‘진보 세력의 총단결’ 혹은 ‘진보정당’이라는 기치 하에 시간이 갈수록 노동(조합)운동의 상층부에 그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아르헨티나 상황을 보면서 절실하게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중주의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노동자․민중과 그 운동은 타락한 지도부에 의해서 농락당하고, 그만큼 운동은 불임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혁명적 계급 노선과 민중주의 노선을 준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한/노/정/연


1) 1991년 이후 아르헨티나의 통화 페소(peso)의 가치는 “1페소=1달러(US Dollar)”로 고정(peg)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는 동시에 “일주일에 250페소, 한 달에 1,000페소 이내”를 의미한다.


2) 이 조치의 주요 내용은, ① 은행으로부터의 현금 인출을 주당 US$250.-, 월당 US$1,000 이내로 제한하고, ② 12월 3일 이후 페소화 대출을 금지하며, ③ 페소화 예금에 대한 이자율을 달러화 예금에 대한 이자율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④ 페소화 표시 예금을 수수료 없이 달러화 표시 예금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며, ⑤ 해외 송금을 US$1,00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3) “12월 1일의 조치 직전 하루에 20억 달러의 예금이 인출”(“Argentine rioters attack banks”, http://www.usatoday.com, 2002.1.15)되었으며, “거대한 아르헨티나 및 국제적인 투기꾼들에 의해서 150억 달러 이상이 국외로 유출되었다”(Carlos Gabetta, “Economic Crisis Ends an Era - Argentina: IMF show state revolts”, http://www.en.monde-deplomatique.fr/2002/01/12argentina)고 보도되고 있다.


4) Carlos Gabetta, 같은 글.


5)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실업률은 18%이나, 노동조합 및 사회단체들은 “불완전 고용 및 극빈자들을 고려에 넣은” 실제의 실업률은 50%에 육박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Workers World, 2001.12.27과 2002.1.10 및 Carlos Gabetta의 같은 글 참조).


6) 인구 약 3,600만의 약 42%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7) ‘기능적 문맹’이란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하여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를 가리킨다.


8) 뒤에서 다시 논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노동조합, 특히 노동자총동맹(General Confederation of Workers: CGT)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민중주의(인민주의: populism)에 기생하여 철저히 부패한 자들이다.


9) James Petras, “The Unemployed Workers Movement in Argentina”, Monthly Review, Vol.53, No.8, 2002년 1월호(http://www.monthlyreview.org/0102petras.htm에 의함).


10) Andy McInerney, “Mass struggle topples Argentine government”, http://www.workers.org, 2002.1.10.


11) 사실은 IMF까지도 추가적인 자금의 공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12) “Accepting default, avoiding disaster”, http://www.economist.com, 2002.1.4.


13) 위의 글 참조.


14) Sam Marcy, “Haiti and the role of leadership”(Adapted from a speech given by Marcy at a Sept. 29 Workers World Party forum on Haiti), http://www.workers.org/sm941013.html


15) 이에 대해서는 James Petras의 앞의 글 참조.


2002-01-15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