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저들의 잔치
이 무 열
책 만드는 노동자
신들린 듯한 드리블에 이은 대포알 같은 강슛, 자로 잰 듯
정확한 센터링과 몸을 날린 헤딩슛,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한
삼각 패스로 적진을 유유히 꿰뚫는 환상의 팀워크, 화살처럼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쫓아가 골 밖으로 쳐내는 신의 손들 …
월드컵 스타들의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은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꼭 축구광이 아니더라도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는다.
사람들은 스타들을 자기와 동일시하며 게임 속으로 빠져들어
환희와 울분을 함께 나눈다. 게다가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은
사람들의 몸 속 깊이 뿌리박힌 집단 의식을 자극한다. 자기 나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과 그 결과에 환희하고 분노하며 심한
경우에는 히스테리에까지 빠져든다. TV로 이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는 지구촌의 인구가 20억을 넘어섰단다. 또 축구
단일종목인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종합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
경기를 넘어선 지 오래란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라는 말이
근거 없는 헛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월드컵 경기가 올해 5월 31일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단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줄줄이 들어오고, 한 달 동안 세계의
카메라들이 우리나라 곳곳을 비춰댄단다. 이 얼마나 ‘심장
떨리는’ 일인가! ‘지구촌 최대의 축제’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진다니! 게다가 9월 말에는 부산에서 수십억 아시아인의
눈과 귀가 쏠리는 아시안게임까지 열린단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고 그토록 부산을 떨던 게 불과
16년 전이고, ‘인류 평화와 화합의 대제전’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내 도약의 기틀을 다졌다고 떠들어대던 게 불과 14년 전의
일인데, 그를 능가하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 올해 한꺼번에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니! 이래저래 올 한해는 스포츠와 그 선전의
홍수 속에서 살게 생겼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홍보는 새해
벽두부터 귀를 따갑게 하며 우리를 현혹하고 있다.
월드컵, 그리고 2002년
한편, 올해는 우리에게 여로 모로 의미심장한 한 해다. 안으로는
양대 선거를 맞아 지배권력이 재편되는 시기다. 권력이 어떻게
재편되느냐에 따라 노동자 민중의 앞길 또한 크고 작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중세력이 얼마만큼 의미 있는
정치적 진출을 이루느냐는 것도 중요하다. 밖으로는 ‘전쟁의
해’를 선포한 부시의 미국의 전쟁놀음이 세계와 한반도를
공포의 늪 속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미국의 깡패식 세계 평정
전략의 성공 또는 좌절이 앞으로의 국제 질서의 기본틀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침체에 빠진 세계경제가 회복되느냐,
아니면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느냐도 중요한 변수다. 세계경제
침체와 광포한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 휘청거리는 여러
나라들에서 어떤 새로운 움직임들이 태동할지도 주목거리다.
미국의 강경 자세와 미국의 눈치만 살피는 권력의 저자세로
말미암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진전시키느냐도 중요하다. 갈수록 노골화되는 제국주의
세력의 책동에 맞서 민족의 진정한 살길을 찾아 나서는 일이
전에 없이 중요한 과제로 부가되고 있다. 모든 껍데기를 다
벗어던진 내외 독점자본의 야만적인 이윤 추구가 몰고 올
민중생존권 파탄의 가속화, 계속되는 사유화와 가혹한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을 막아내고 민중의 삶을 지켜내는 것은 늘
변함 없이 중요한 과제다. 이제 막 나타나기 시작한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의 성과들을 발전시켜 그 든든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요컨대 변화하는 정세에 발맞추어 올 한 해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적지 않게
달라질 것이다.
이런 비상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라는
대형 스포츠제전이 연달아 열린다는 것은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는
태도로 소 닭 쳐다보듯 하다가는 저도 모르게 강풍에 휩쓸려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대형 스포츠제전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자본과 권력의 치밀한 기획이기도 하거니와, 해가 갈수록 그
입김이 드세지면서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향후 상당 기간 한국 사회를 좌우할 선거에
미치는 영향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자, 연달아 열리는 대형 스포츠제전을 앞세워 자본과 권력은
어떤 공세를 취해올 거고, 우린 그에 어떻게 맞서야 하나? 그에
앞서 먼저 그 제전들의 본질을 살펴보고, 자본과 권력이 그
제전을 통해 노리는 것들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평화와
화합을 모토로 내거는 대형 스포츠제전들이 모두 마찬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그 의도를 가장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고 그
영향력도 가장 큰 월드컵을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월드컵 기간 중에는 계급도 계층도 사라진다
월드컵대회는 올림픽에서 새끼쳐 나왔다. 1896년에 시작된
올림픽경기는 월드컵대회가 시작된 1930년 당시에는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고 있었다. 당연히 축구 경기에서도
프로 선수들은 원칙적으로 제외되었다. 1920년대 들어 프로팀이
많이 늘고 있던 유럽과 남미의 축구계로서는 불만이 많았다.
일각에서 진짜 일급 선수들끼리 자웅을 겨뤄볼 수 있는 대회를
만들어보자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30년
프로와 아마를 가리지 않고 출전할 수 있는 제1회 월드컵 대회가
올림픽과 별도로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열리게 된다. 이것이
월드컵의 시작이다. 월드컵 역시 겉으로는 ‘축구를 통해 인류
평화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긴 했지만 그 출발부터가
상업적이었다.
그렇다고 아마추어리즘을 내세우던 올림픽이 말 그대로 ‘인류
평화와 화합을 위한 순수한 제전’이었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올림픽 대회 역시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는 달리,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인류 평화와 화합’이라는 모토 아래
제국주의적 대립과 침략을 은폐하고, 애국심을 고취함으로써
국내의 계급 대립을 은폐하며, 대회를 자본과 상품의 선전장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출발했거나 적어도 처음부터 그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뒤 올림픽이 점점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이를 활용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촉수가 점점 더
깊숙이 뻗어 들어온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처음부터 상업화 의도를 감추지 않은 월드컵의 경우, 자본의
진출 속도는 더욱 빨랐다. 어떻게든 월드컵 대회를 하루 빨리
정착시키려는 역대 FIFA 지도부의 노력이 이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사실 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월드컵대회는 세 번밖에
치러지지 못했고, 2차 대전 전후 기간은 쉰 다음에 1950년에
제4회 대회가 열렸다(‘인류평화’ 운운하는 대회 목적과
상관없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올림픽도 월드컵도
세계대전 동안에는 푹 쉬었고 대전 전에는 제국주의 파시즘
국가들의 정치 선전장으로 이용되었다). 대자본, 특히 여러
나라에서 장사를 벌이는 초국적 자본들이 월드컵대회에
본격적으로 눈독을 들이는 것은 이때부터다. 1950년대부터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월드컵경기가 전세계에 생생하게 생중계되기
시작한 것이다.
초국적 자본들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다투어
월드컵의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면서 월드컵대회는 탄탄한 토대를
구축해갔다. 이 기회를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각
나라의 권력집단과 대자본도 월드컵을 충분히 이용했다.
대중들은 황금신이 주재하는 제전을 넋을 잃고 구경하며 그에
마취돼갔다. 대회를 통해 직접, 간접의 이익을 취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음흉한 속셈은 맹목적인 국가주의로 포장되어 대중들을
현혹시켰다. 적어도 대회가 열리는 동안은 계급도 없고 계층도
없고 국민이라는 단일한 응집체가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계급
갈등과 온갖 사회문제는 은폐되고, 대회에 반대하거나
시큰둥해하는 사람들은 이방인으로 매도되었다.
이리하여 월드컵대회는 자본과 권력이 대중들을 마취시켜 사회
모순을 은폐하고 체제의 유지 보존에 활용하는 또 하나의 장치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황금신이 주재하는 타락한 제전, 월드컵
오늘날의 월드컵대회는 더 이상 스포츠행사가 아니다. 스포츠를
앞세워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고 권력이 대중들의 의식을
마비시켜 그 체제를 공고히 하는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사실
본래는 하나이던 노동과 놀이가 분리되어 노동대중이 노동과
놀이로부터 소외된 지는 오래지만, 거기에 이윤욕과 권력욕이
가세하면서 오늘날의 스포츠제전은 더할 수 없이 타락해 버렸다.
노동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놀이에 상업성이 가미되고 권력욕이
더해지고 거기에 막강한 거대자본의 힘까지 결합하여 황금신이
주재하는 타락한 제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본래는 제전의
주역이어야 할 인간들은 철저하게 객이 되어 박제화된 노동,
박제화된 놀이, 박제화된 예술에 웃고 울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스스로를 망각하는 서글픈 신세로 전락했다. 월드컵대회는 그
전형이다.
이제 그 자체가 하나의 대자본(몸값이 수십, 수백억)이 된
월드컵 스타들은 노동에서 괴리된 차가운 몸짓(예술)을 대중
앞에서 펼쳐 보이며 수많은 대중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유혹한다. ‘너희들도 이렇게 될 수 있어. 나처럼 돼 봐’
하면서. 그러나 모든 스타들이 다 그렇듯이 그 위치에 올라서는
사람은 수십, 수백만 명에 하나일 뿐이다.
월드컵대회는 그 자체로서 스포츠관련산업을 비롯한
거대자본들의 힘겨루기 장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주최국이나
참가국들에서도 스포츠 자체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부차적이고,
행사나 자기 나라 선수들의 선전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광대패를 앞세워 연희를 펼쳐놓고 뒤편에서는
노골적으로 약을 팔며 주판알을 튀기는 장터가 돼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 이득이
대중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면 비난받을 일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준비(경기장과 부대시설 건설 등등)에는
국민들의 엄청난 혈세가 쏟아부어지는 데 반해서 그 이득은
장사꾼들에게 떨어진다는 데에 황금신의 제전으로 전락한
월드컵대회의 슬픔이 있다. 구경꾼들에게 굿은 펼쳐지지만 떡은
거의 없다.
그 기획부터가 이제 아예 노골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조직위원회(한국측)의 기획을 통해 그 내막을 한번
들여다보자.
제2의 도약의 발판? 국운 상승의 절호의 기회?
한국 월드컵 조직위에서는 일찍부터 야심찬 기획을 내놓았다.
월드컵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나라의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거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정치․외교 면에서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한․일
관계를 재정립하며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겠단다.
경제면에서는 거시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낳고
관련산업을 성장시키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단다. 사회․문화면에서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건전한 여가문화를 정착시키며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단다. 그럼으로써 흩어진 국민들의 에너지를 결집하고 국가
신인도와 기업 이미지,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거다. 그와 함께 3조원 남짓한 돈을 들여
최소 5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과 함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 이미지 제고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 등등을
감안하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이 이번에는 진짜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우선 이 기획안에서 스포츠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
있다시피 하다. 처음부터 아예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관심은
오로지 젯밥에 있다. 그런데 그 젯밥마저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들을 다 빼고 나면 한․일 관계 재정립은 누구의
입장에서? 미국의 입김에 좌우돼온 남북관계의 개선은 어떤
탁월한 묘안으로? 몇몇 지방도시는 엄청난 부담에 짓눌려
파산할지도 모르는데 지역경제의 활성화라 … 월드컵으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한다고? 혹시 계급의식도 계층의식도 마비시키는
파쇼 공동체? 건전한 여가문화 정착? 한국문화의 세계화? 글쎄
… 남는 건 오로지 스포츠산업과 관광산업 등 관련산업의 성장,
그리고 나라의 위상 제고와 (브랜드) 이미지 쇄신을 통한
수출증대 효과뿐이다. 이를 위해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월드컵을
잘 치를 수 있도록 정성을 쏟자는 거다.
자, 여기가 월드컵 기획안을 검토하는 자리도 아니고 그 야심찬
기획의 성공 여부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곧 판가름날 거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그만 접고 본질만 보자. 한마디로 월드컵
유치 목표는 국가 이미지 제고를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이고,
그럼으로써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다시 한 번 잡아보자는
거다. 스포츠니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건 거기에 양념으로
곁들여진 것일 뿐이고, 저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경쟁에서의
승리,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무한 돌진
이데올로기뿐이다.
그리고 이 제전의 제일 제주는 물론 초국적 자본과 FIFA로
상징되는 제국주의 군단이지만, 우리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제이 제주는 주최국의 하나인 우리나라의 자본과 권력이다.
여기서 권력은 현 집권세력이 아니라 사실상 영구 집권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배집단이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월드컵조직위원장
정몽준은 그대로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대자본의 후견인이자 하수인이며 사실상
한몸뚱이인 정․관․재․언의
권력집단들이다.
저들은 ‘국운’을 걸고 이번 월드컵에 임하고 있다. ‘국’자
돌림이 대부분 그렇듯이 ‘국운’은 사실 저들의 운명일 뿐이다.
저들의 방식에 따르면 이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는 길은 모든
기회를 다 이용하여 남들에 앞서고 남들 위에 올라서는
것뿐이니까. 물론 저들의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고 대중들이
저들의 말을 순순히 따라준다면 대중들의 일부에게는 떡고물이
떨어지겠지만 다수 민중들과는 무관하다. 이번 IMF 극복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하에 막
나가는 지금의 말기 자본주의, 그리고 미국과 초국적 자본들
앞에는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국내의 대중들에게는 다 함께
죽기 싫거든 무조건 따라오라고 협박하며 제왕처럼 군림하는
우리나라의 지배집단들은 우리 민중을 먹여 살릴 능력도 의사도
없다.
저들의 공세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저들은 저들의 운명을 위해 대중들에게 호령한다.
일치대동단결하여 월드컵을 위해 봉사하라. ‘국운’이 달린
월드컵에 재를 뿌리는 건 반국가, 반민족 사범이다. 불만이
있어도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어라. 나라가 살아야 노동자도
농민도 사는 것이니 나라의 융성을 위해 조금 참아라. 나라의
이미지를 위해 외국인들에게 무조건 친절하라. 외국인들에게 잘
보여야 우리가 산다. 개고기도 웬만하면 먹지 말고 참아라.
노점상도 집안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거나 영 여의치 않으면
양놈들 좋아하는 것만 팔아라 … 민중에 대한 저들의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저들은 그런 점잖은(?) 주문에만 그치지 않는다. 혹시라도 있을
어리석은 대중들의 ‘망동’에 대비하여 제도적, 비제도적
장치들을 두루 동원하고 보완해갈 것이다. 국가의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국공기업의 사유화, 정리해고를
동반한 구조조정, 시장의 대외개방을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다. 그에 맞서는 모든 종류의 저항, 월드컵과 상관없이 현
체제, 지금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섬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삶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사회운동들을 ‘국운’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짓밟으려 들 것은 불문가지다.
그 극적인 표현은 아마도 지난해 말에 제기된 테러방지법의
제정이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보다도 훨씬 더 편의적으로
반체제, 반정부, 반독점자본 운동, 비인간적인 체제에 맞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모든 운동을
탄압할 저들의 무기가 될 테러방지법은 아마도 월드컵 개막
때까지도 호시탐탐 이 땅에 출생신고를 할 기회를 노리게 될
것이다. 설령 그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지금 전세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붙잡아두려는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나머지
만인의 공적이 되고 있는 미국의 선수단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강구될 게 분명한 온갖 책동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자본과 지배집단의 음흉한 속셈은 당면한 양대 선거에 대한
언급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들에게 양대 선거는 사실
월드컵대회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다음에 어떤 세력이 정권을
잡느냐, 새로 들어서는 정권의 발목을 어떻게 잡아두느냐에 따라
그 이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그 속셈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 표현은 ‘국운이 달린 이 중차대한 시기에
정치가 더 이상 경제의 발목이나 잡지 말았으면 좋겠다’로
집약된다. 썩어빠진 정치가 민생에 주름살을 지우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진정으로 민생을 보살피는 정부가
들어서기를 사람들은 갈망한다. 현 체제와 제도 하에서는 가망
없는 바람인 줄 알면서도 차선, 차차선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나은 정부가 들어서기를 갈망한다. 지금은 아무리 썩어빠진
정치일망정 정치의 본령은 그렇지 않고, 또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은 그런 정치를 애써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는 실속을 다 챙기면서.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저들의 선거전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를 극도로 조장하여 자기들의
영구집권을 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저들의 선거전략의 하나다.
선거와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조금이라도
나은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그러면 저들의 영구집권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적어도 저들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손상당하기 때문이다. 월드컵대회는 저들의 속셈을 충족시키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을 마련해 준다.
저들의 명제에 내포된 또 하나의 주장은 정경분리의
‘원칙’이다. 경제는 정치와 분리시켜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경유착에 숱하게 덴 대중들에게는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길
경우 결국에 가서는 자본, 그 중에서도 대자본들이 거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고, 다수 대중들은 경쟁 만능의 시장에서
쓴맛을 보게 된다. 그나마 정치가 대중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부분이 적지 않고, 또 지배집단들이 대중들의
표를 두고 다투는 선거 시기는 그나마 그 역할이 가장
극대화되는 때인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저들 스스로는
‘정치’에서도 챙길 것은 다 챙기면서 입으로는 ‘정경분리’를
외친다는 것이다. 월드컵대회와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저들의
정치적 무관심 조장과 정경분리 주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
어떻게 할 것인가? 월드컵대회를 통해 저들은 한편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챙기면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제반 사회운동을
강력하게 짓눌러올 텐데, 그에 맞설 방법은 무엇인가? 어차피
그럴 바엔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된 기회를 이용해 한바탕 일을
크게 저질러버려? 그 경우 저들의 공세에 말려든 대중들이
오히려 우릴 잡아죽이려고 달려들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아니면
저들의 선전에 잠식된 대중들의 정서를 감안하여 일단 한숨 접고
그 박제된 예술이나 감상하며 훗날을 기약해? 그러다간 그동안의
힘겨운 노력으로 확보해온 공간과 성과들마저 상당 부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월드컵대회를 개최한 프랑스의 예에서 한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자본과 지배집단들은 지난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온 국민이 월드컵 개최와 우승에
열광했고, 온 국민이 월드컵을 열성적으로 지원하여 대회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던 것으로 선전하고 싶을테고 또
선전해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시 프랑스 인구의
절반은 월드컵대회에 시큰둥했고 월드컵대회를 공공연히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단체와 개인들도 적지 않았다. 국수주의에
가까운 맹목적 민족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는 조금 다르겠지만,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다수 대중들이 저들의 선전에
놀아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아니, 세계경제의 침체가 더
심해지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책동이 강화되며 게다가
월드컵대회를 빌미로 신자유주의적 기획과 파쇼적 억압이 더
강력하게 추진될 경우 대중들 스스로의 입에서 ‘월드컵이 밥
먹여 주냐?’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와 더 좋은 조건이 조성될
수도 있다.
요체는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자세를 강력하게 견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월드컵대회는 저들의 잔치일
뿐이다. 저들의 농간에 놀아나거나 주눅들 것도 없고, 저들의
잔치에 편승하려고 머리를 짤 필요도 없다. 그저 흔들림 없이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세계인의 눈과 귀가 쏠리는 그 시기에도
우리는 우리를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우리의 삶, 우리의 현실,
우리의 상황, 우리의 투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어떤
판소리나 사물놀이, 탈춤, 승무보다도 그것이 진정한 한국문화의
세계화 아니겠는가?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 물론 탄압이
드셀 터이므로 그에 대비한 무장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사족 몇 마디
물론 이 땅에 사는 어느 누구도 자본과 권력의 월드컵 공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계산이 비교적 잘
들어맞아 상당수의 대중들에게 그 떡고물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경제의 수치상 호조는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터무니없는 저평가가 부분적이나마 바로잡히는 추세의 반영일
수도 있고, 초국적 자본의 비위를 맞추어 국가 신인도를
높이려는 정부와 지배집단, 그리고 어떻게든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보려는 우리 민중들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월드컵 경기(경기장 건설, 기대 심리 등) 역시 미약하게나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연말부터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주가에는 월드컵 경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월드컵대회 전까지는 아무래도 이 추세가 이어질
공산이 크고, 대회 후까지 그 효과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리하여 선진국 운운하는 이야기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설령 그런다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적 기획에 따른 성장, 그것도 언제 다시
나락으로 굴러떨어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성장은 대다수
민중에게 결코 그 빛을 내리쬘 수 없다는 것이다. 혹시 하는
기대는 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또 하나. 아무리 스포츠가 민중의 아편이 된 지 오래고 특히
월드컵은 본래부터 민중의 ‘히로뽕’이었다지만, 그 박제된
예술도 때로는 볼 만하고 우리 팀이 이기면 기분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이 저들의 선전에 오염된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마음 속에 본래 의미의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가 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공동체 노동과
공동체 놀이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였던 이미지 말이다. 어쩌면
노동 후의 여가로 한데 어울려 놀이를 즐기는 세상에 대한
그리움 또는 기대감의 반영인지도 모르겠다. 월드컵대회가
시작되면 경기를 보면서 아스라이 잊혀진 우리(인류)의 꿈을
한번 되살려보자. 자본과 권력에 의해 타락한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자연과 공동체가 한덩어리가 되어 약동하는 그런
꿈을.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지 않는가?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