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번.역
아르헨티나에서의 실업자 운동*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
* 이 글은 Monthly Review Vol.53, No.8(2002년 1월)에 실린
“The Unemployed Workers Movement in Argentina”를 두 차례에
나누어 번역한 것입니다. 후반부는 3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서론
지난 25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에는 세 가지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이 운동들은 상호 연관을 맺고 있으며 서로 공통되는
부분도 있다. 그 첫 번째 흐름은 주로 “신사회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대략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이 흐름은 NGO 운동뿐만 아니라
인권, 생태, 여성, 인종 부문의 운동을 포괄하고 있었다. 이
운동들의 지도층은 하층 중간 계급에 속하는 전문가들이었으며,
이들은 당시의 군부/민간 독재 정권을 대상으로 정책과 전략을
배치했다.
두 번째 흐름은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해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발전하였다. 농민과 농촌
노동자들을 구성원으로 하고 이들이 주도해온 대중조직들은
지지자들의 경제적 이해를 향상시키고 방어하기 위한 직접적
행동을 수행해 왔다. 멕시코의 자파티스타(EZLN), 브라질의
땅없는 농촌노동자들의 운동(MST), 볼리비아의 농민과
Cocaleros의 운동, 파라과이의 전국농민연합, 콜롬비아의
혁명군(FARC), 에콰도르의 농민-토착민 연합(CONAIE) 등이 이
운동들 중 가장 괄목할만한 것들이다. 각 그룹들의 구성과 전술,
요구는 다양하지만,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및 자국과 외국의 소수 엘리트들의 손에
점점 더 부가 집중되는 것에 반대해서 단결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토지 재분배와 토착민
공동체의 자치권 확보를 위해 투쟁했다. 또한 마약퇴치를
빌미삼아 미국이 국내문제에 개입하는 것, 군사기지를 통해
영토를 식민지화시키는 것, 전국적 경찰/군사 기구의 확산, 플랜
콜롬비아(Plan Colombia)와 안덴 계획(the Andean Initiative)
등을 통해 사회적 대립을 군사화시키는 것에 대항해 싸웠다.
세 번째이자 가장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운동의 흐름은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아르헨티나의 스페인계
거주지역(barrio)을 기반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업자들의
역동적인 대중운동, 도미니카 공화국의 실업자들과 빈민들,
그리고 베네주엘라 대통령 챠베즈(Hugh Chavez)의 인민주의적
슬로건을 따라 몰려들었던 판자촌 주민들의 운동이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운동뿐만 아니라,
농업 노동자들과 중소농민층을 결합시키는 대중투쟁에 참여하는,
다양한 부문을 포괄하는 새로운 운동들이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 파라과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 세 번째 운동 흐름의 본질이나 작동방식, 정치적
행동의 유형은 구래의 자유주의적 사회과학과 포스트 맑스주의적
정설이 상정하는 많은 전형과 가정을 반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사회 운동”의 저자들은 계급정치가 끝났음을 선언하면서
민주주의, 성평등, 정체성의 정치에 집중하는 “시민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 운동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릭 홉스봄
같은 이론가는 현대 정치투쟁에서 농민운동의 중심성을 반박하기
위해 “인구학적인” 근거를 사용했고, 다른 이론가들도 파편적,
주변적으로만 고용되거나 아예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도시
빈민 대중은 기존 정치세력에 대항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일어난, 토지와 정치권력을
지향한 농민과 도시 계급운동의 폭발은 이러한 정설을 산산히
깨뜨렸다. 경제적, 정치적 자유주의가 대중적 이데올로기 투쟁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관념은 자파티스타, FARC, CONAIE의 등장과
함께 증발해 버렸다. 이 운동들은 수십년에 걸친 권력남용과
부패, 반동적 통치에 맞서기 위해 대중적 조직들을 건설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실질적인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 직접행동으로 중심으로 하는 투쟁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중심부를 강타했고, 빈번히 신자유주의 정권 재생산의
핵심인 상품의 생산과 순환을 마비시켰다. 2000년에 에콰도르
의회를 토착민들이 장악한 것, 콜롬비아의 지방자치기구 중 거의
절반에 대해서 FARC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그리고
MST가 브라질의 24개 주 중 23개 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등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홉스봄의 명제는
명백하게 반박되었다.
(이 운동들 중에서도: 역자) 아르헨티나의 도시 실업자 운동은
특별히 흥미롭고 중요성을 갖는 현대 사회운동이며,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운동은 원자화되고 무능력한 도시
빈민이라는 가정을 명확하게 반박하고 있으며, 그 혁신적 성격과
폭발적 잠재력으로 보아 다른 라틴아메리카 도시 민중을
위해서라도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실업자들이 일어서다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산업노동자 계급을 사회 변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생산과정에서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전략적 지위이다. 따라서 산업노동자 계급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불안정 고용노동자 및 실업자들, 그리고 비정규, 또는
“주변부” 도시대중이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은, 사회의
급진적인 변화를 지체시키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맑스주의자들은, 도시빈민들의 파편화된 고용구조가
그들을 원자화시키며, 또한 도시빈민들이 주요 경제
부문들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에 자본축적과정을 저지하는 그들의
능력이 약화된다고 주장하였다. 맑스주의자들은 또한, 이
도시빈민들이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시키고, 고용된
노동자들이 더 낮은 수준의 요구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한
자본주의를 이롭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몇몇
주류 사회과학자들과 NGO들은 고용 형태의 이러한 변화가 좋은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변화들이 미시영역에서의 활동, 자급 경제, 상호 교환 등을
촉진함으로써 도시 대중의 독립성을 증대시켜 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고용 불안과 생활수준 하락, 사회적 불만과
폭력사태의 증가, 그리고 스페인계 거주지역에서부터 시작된
불법적인 경제활동의 엄청난 증가에 대해, 주류 이데올로그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우습게도 “자조(self-help)”라는 한가로운
미사여구로 채색하였다. 그러나 조직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졌던
대중들이 정교하게, 성공적으로 조직되었으며, 이에 따라
맑스주의의 정설 또한 도전받았다. 2001년 8월, 고도로 조직화된
10만 이상의 실업자들이 전국적으로 동원되어 300군데 이상의
고속도로를 봉쇄하였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경제 전반이
마비되었으며, 이전에는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던 금융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아르헨티나
전역에서는 폭력충돌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연방 경찰이
피켓시위대 다섯 명을 죽이고 삼천 명 이상을 체포했었다.
조직된 실업자들은 그들의 조직을 독립적으로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압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로 수천 개의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시간제 일자리를 보호하고 식품 분배를 비롯한 다른
사항들에 관해 주정부와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2001년 9월까지
실업자들은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역에 걸친 대규모
고속도로 봉쇄를 조직할 수 있었으며, 노동조합의 일부와 함께
성공적인 총파업을 벌임으로써, 정부의 활동을 방해하고 모든
주요 사기업의 출입을 봉쇄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러한
행동들이 다양한 부류의 시민과 사회계급들로부터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지역 상인들, 지방자치기구의 공무원들,
연금생활자, 공공보건 노동자들, 학교 교사, 마드레스 드 플라자
드 마요(the Madres de Plaza de Mayo)를 주축으로 한
인권그룹들 등이 이 투쟁에 참여했다.
이와 같은 최근의 눈부신 성공은 여러 해에 걸쳐, 때로는 좌절을
겪으면서도, 끈기 있게 진행된 조직화의 성과였다. 실업자들은
지방정부와 주정부, 연방정부에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고
평화적인 시위도 진행했다. 그러나 이런 전술들이 효과를 얻지
못하자 실업자들은 더욱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때로는 불을 지르기도
했다. 1996년 6월, 도로 점거와 대규모 피켓시위가 두 도시,
Cutrol Co와 Plaza Huincal 시내에서 시작되었고, 1997년
4월에도 재개되었다. 이 투쟁에는 일자리 삭감과 공장 폐쇄에
대항하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1990년대 후반까지
대중적 도로 점거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각의
노동자거주지역에서 발생했으며, 민영화된 전력회사의 높은
전기료와 전기료를 지불할 수 없는 실업자 가정에 전기공급을
중단하는 것에 대한 항의로 일어난 것이 대부분이었다.
2000년에는 한때 부유한 석유생산 중심지였던
네퀜(Neuquen) 시와 제너럴 모스코니(General Mosconi)
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민영화로 인해 작업장이
폐쇄되고 실업자가 양산되었으나, 아르헨티나 정부는 IMF의 재정
요구안에 맞추기 위해 예산안을 삭감했고 따라서 대안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운동을 설명하기(실업자 운동의 경과)
아르헨티나의 실업자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맨 처음 해야 할
것은, 이 운동을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삶을 피폐화시켰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라는 상황에
놓고 보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자유시장 이데올로그들이
그어놓은 기준에 맞춰 춤추고 있을 때, 이 정부는 이미 그
결과가 뻔히 보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공기업은
매각되었고 새 고용주는 수천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이윤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사업들은 광업이나 에너지 부문의 중심
역할을 하던 기업까지 문을 닫았고, 공장이 있던 마을은 유령의
도시로 변하면서, 모든 사회경제적 부문에 악영향을 미쳤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하락했고, 많은 수가
정리해고를 당했다. 수천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몇 개월을 보내야만 했다. 노동조합이 공격받았고,
조합원들은 해고되었다. 사회복지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연금생활자들과 사립학교와 민간병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인해 투기가 만연하였고, 이는 금융부문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들은 이 나라의 공적부채와 맞먹는 규모인
1,300억 달러를 국외로 유출시켰다.
1997년에 경기침체가 시작되었고 2001년에는 극도의 불황에
빠졌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30%에서 80%에 이르는
노동인구가 실업상태에 있거나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공식적인 실업 통계수치였던 16~18%가
금새 두 배로 되었다. 고용된 노동자들도 대부분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노동자들의 인구 비율이 높은 시
외곽에서는 30~50%가 실업상태에 있다. 어디를 가나 절대다수의
가구가 이미 비참할 정도인 빈곤선 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정치적 상황은 경제적 어려움을 더 심화시켰다. 가장 최근의 세
대통령들(라울 알폰신, 카를로스 메넴, 페르난도 델라루아)은
아르헨티나의 “국보급 기업들”을 자국과 외국인 자본가들에게
헐값에 넘기고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기존 사회법안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3000명의 죽음과 실종에 책임이 있는 군 간부들을
면책시켜 주었다. 빈민들을 달래기 위해, 두 주요 정당인
급진당과 페론당은 가끔 식품 바구니와 일자리를 그들의 충실한
추종자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전혀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집약되면서 대중조직이
형성되기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조직이 형성되기에
유리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조건들과 조직 자체의 의식적인
전략을 구분할 수 있다. 유리한 객관적 요소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실업자들(전(前) 산업노동자들)과 지금까지 고용경험이
한번도 없는 젊은이들, 여성가장들이 준(準)격리상태의,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스페인계 거주지역(barrio)에 밀집해
있었으며, 이들은 하층 중간 계급의 영향력에 그다지 경도되어
있지 않았다.
(2) 노동조합을 경험했고 집단적 투쟁에 친숙한 상당히 많은
수의 실업자들이 스페인계 거주지역에 있었다.
(3) 장기간 지속된 경제 위기로 인해 가계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이는 여성들을 훨씬 더 많이 전투적으로 만들고,
행동에 나서게 했다(일자리 경험이 거의 없고, 암울한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이다).
(4) 스페인계 거주지역들은 주요 고속도로 근처에 위치해
있는데, 이 고속도로를 통해서 많은 상품이 이동하고 통근자들이
주요 도시들과 국경을 오갈 때 이곳을 많이 지나치게 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조직이 성장하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조직은 반드시 올바른 전략 및 전술과 결합되어야 한다.
오늘날 아르헨티나 실업자 운동의 성공은 함정을 피하는 방법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스페인계
거주지역 내에서 독립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노동조합의
관료주의과 선거용 정당들, 그리고 국가기구로부터 자율성을
획득한 것이다. 노동조합들, 특히 노동조합총연맹(CGT)은, 메넴
정권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델 라루아 정부와 그들의
억압적 정책에 맞서기를 꺼려하는, 높은 임금을 받는 억압적이고
부패한 왕초들로 구성된 집단에 의해 운영되어 왔다. 가끔씩
하는 정부에 대한 협박이나 심지어 총파업조차도, 정권과
노동자들 모두에게, 굴복 전에 “울분을 터뜨리는” 의미 없는
상징적 의례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노동조합들이 이전에
건성으로 실업자들을 조직하려 했던 시도는 실패했으며, 이것은
“강성노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실업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형식상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동조합은 조합비를
내는 노동자들과 그들의 부분적 요구에만 힘을 쏟았다.
실업자들이 조직된 곳에서조차 그들은 1일 시위를 “보조하는”
파트너로 봉사하기 일쑤였고, 경제나 개혁조치의 획득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했다. 정당들도 마찬가지여서
직접적으로 운동을 억제하려 했으며, 기껏해야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거나 지도부를 공동으로 구성하는 것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실업자들을 새롭게 성공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선거용 정당의 우두머리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후견인-피보호자 정치를 거부하고 자기조직화와
직접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업자 운동(MTD)은 스페인계
거주지역과 지방자치단체 구성원들이 조직하고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시작되었고, 그렇게 지속되어 왔다.
MTD는 매우 분권화된 구조로 조직되어 있다. 각 자치구는 자신의
경계 안에 스페인계 거주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자체 조직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스페인계 거주지역 안에는 몇 개의
구간마다 비공식적인 지도자와 활동가들이 있다. 각 자치구는
활동적인 구성원 모두가 참석한 총회(assembly)에 의해
구성된다. 정책도 총회에서 결정된다; 도로봉쇄에 대한 요구와
조직도 총회에서 집단적으로 결정된다. 일단 한 고속도로나 주요
간선도로가 지정되면, 총회는 해당 거주지역 내에서 지원을
조직한다. 수백, 그리고 심지어 수천의 여자, 남자,
어린아이들이 텐트를 설치하고, 도로 한켠에 주방을 만들어 놓고
도로봉쇄에 참여한다. 경찰이 협박을 할 경우에는 인근의
판자촌으로부터 수백의 주민이 더 쏟아져나와 동참한다. 정부가
협상하기로 결정하면, 봉쇄장소에서 모든 피켓 시위대와 함께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정은 행동현장에서
집단적인 총회에 의해 내려진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피켓 시위대는, 아무리 전투적인
지역주민이라 할지라도 그를 대표단으로 보내서 정부기관의
사무실에서 개별적으로 협상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
피켓시위대의 지도부가 이야기하듯이 “일자리로 매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요구―대개 주정부가 비용을 대는 일정 수의
임시직 일자리―가 받아들여지면, 일자리의 분배는 가계사정이나
봉쇄투쟁에 참가한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집단적으로 결정한다.
실업자들보다 일자리수가 적은 경우에는 순환적으로 일자리를
배분하게 된다. 다시 한번, 피켓 시위대가 이 과정에서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은, 개별 지도자들이 협상을 하고
일자리를 분배하게 되면,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 친지들에게 더
우호적으로 되고, 결국에는 운동을 부패시키는
독재자들(caudillos)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봉쇄하는 것 또한 MTD의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도로 봉쇄는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멈추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도로를 봉쇄함으로써 상품의 유통,
생산에 필요한 투입물과 국내와 해외 시장으로 향하는
산출물들의 이동을 마비시킬 수 있다. 교통 봉쇄는 또한
스페인계 거주지역에는 친숙하고 자극적인 행사다. 도로봉쇄를
조직하는 사람들, 페피노(Pepino)와 같은 지역 노동자들, 히피,
제너럴 모스코니의 피켓 시위대들은 가장 용감하게 발언하고
요구안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이 투쟁에
지지를 보내지만, 자신이 발언하는 것에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이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로 봉쇄
투쟁을 지원하는 일에 대규모로 동참하게 되었으며, 투쟁
지도부들이 경찰에게 구속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했다. 빈곤과
사회적 탈조직화, 기회주의적 조작의 수동적 희생자들이었던
이들은 강력한 연대투쟁을 통해 더욱 활동적으로 변해갔고,
자율적인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와 독자적인 정치에 참여했다.
실업자운동은 지역별로 주정부가 지원하는 일자리에 대한 직접적
요구와 함께, 식품 화물의 분배, 수백명에 달하는 투옥된 전투적
실업자들의 석방 및 물, 도로포장, 보건기관 등에 대한 대규모
공적투자를 요구했다. 고용에 대한 요구는 간신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임시직 일자리를 넘어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고용에 대한 요구로까지 나아간다. 제너럴 모스코니에서는
운동의 지도자들이 식품과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삼백가지가
넘는 프로젝트를 제출하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빵집과 채소밭,
정수시설과 1차 보건의료시설을 스페인계 거주지역에 설치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몇몇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을은 사실상 지역의 실업자 공동체가 통치하고 있으며,
지방정부 관료들은 한켠에 밀려나 있다. 몇몇 도시 외곽의
노동자거주지역은 실업자운동을 통해 준(準)해방구가 되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운동의 동원력이 지역 관료들과 대등하거나
이들보다 우세하며, 제기되고 있는 특정한 문제에 대해 주정부와
연방정권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너럴
모스코니에서는 한정된 범위이긴 하지만 “병렬적인
경제구조(parallel economy)”가 등장함으로써, 투쟁에 대한
대중적 지원과 함께 실업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이웃, 생활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적이고 즉각적인 요구를 넘어서, MDT는 부채지급과
긴축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신자유주의적 모델을 되돌릴
것과 국가가 통제하고 지원하는 경제발전을 다시 시작할 것을
요구했다. 2001년 9월 초에 두 차례의 전국적인 실업자 그룹
회의가 마탄자(Matanza)와 라 플라타(La Plata)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수십 개의 실업자조직, 노동조합, 학생조직, 문화
단체, NGO들에서 파견된 2000명 이상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회의의 목적은 공동의 활동을 조직하는 것과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전국적인 프로그램과 투쟁 계획을 만드는
것이었다. 라 플라타 총회에서 각 대표단들은 다음과 같은 6가지
긴급한 요구에 동의하였다.
(1) 구조조정 정책과 균형재정정책 철회, 체포된 활동가들에
대한 재판과 다른 활동가들에 대한 사법적 행위 중지 (2)
긴축예산안 철회 (3) 공공부문 고용계획의 확장과 유지, 그리고
16세 이상의 실업자들에게 식품을 분배할 것, 실업자들에 대한
대규모 명단 등록작업을 총회에 참가한 실업자조직들의 회의가
통제하는 가운데 실시할 것 (4) 중소농민들이 자신들의 땅에
씨를 뿌릴 수 있도록 1헥타르당 100페소(1페소=1$) 역자 주: 이
글이 씌어진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심화로 인해 페소화가
평가절하되었기 때문에 페소화의 현재가치는 이에 훨씬 못
미치게 되었다.
를 지급할 것 (5) 해고 금지 (6) 제너럴 모스코니 지역 내에서
무장 경관을 즉시 철수시킬 것.
총회는 자신들의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9월에 두 차례의
전국적인 도로봉쇄를 계획했다. 그리고 추가로 다음의 다섯가지
전략적 목표를 채택하였다.
(1) 불법적이고 부정이 있는 외채에 대해 갚지 않을 것 (2)
연금기금에 대해 정부가 통제할 것 (3) 은행과 전략기업에 대한
재국유화 (4) 소농의 부채탕감과 그들의 생산물 가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 (5) 빈곤을 부추기는 정권 퇴진과 새 내각
구성.
총회는 36시간의 총파업과 반체제 성향의 노조연합인 the
Central de Trabajadores Argentinos와 함께 공동활동을 하기
위한 전국적인 위원회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면서 끝났다. (다음
호에 계속)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