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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위한 운동방향 발표문

현장에서 미래를  제75호
공동토론회

불안정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위한 운동방향


사회: 강동진 / 민의련 대표

1주제 불안정노동자의 권리실현을 위한 연대를 제안하며

발제: 김혜란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무처장


2주제 2002년 상반기 불안정노동자 공동투쟁 제안

발제: 윤애림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준) 사무국장


종합토론



■ 목차

1주제 발제문 불안정노동자의 권리실현을 위한 연대를 제안하며

2주제 발제문 2002년 불안정노동자의 투쟁과 그 방향

(보론) ‘비전 2011’ 비판


■ 참여단체

노동건강연대/보건복지민중연대/서울경인지역평등노조이주노동자지부/서울지역실업운동연대/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준)/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불안정노동자의 권리실현을 위한

연대를 제안하며*


1)

1. 이 자리가 있기까지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주체들은 2001년 10월 26일부터 28일간 진행되었던 ‘민중의 복지, 노동권․생활권을 쟁취를 위한 연대한마당’의 제1마당(토론회)을 조직했던 주체들이다. 우리는 당시, ‘불안정노동자의 권리선언’이라는 대주제 하에, 비정규․실업․이주․장애․산재노동자 등 취약하고, 주변화된 노동자의 상태와 요구를 다루었다. 처음치고는 비교적 방대한 양의 실태자료와 각각의 투쟁이 의미하는 쟁점을 명확히 제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은 바 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성과로서,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에 저항하는 ‘민중의 복지’를 제기함으로써, ‘복지’란, 국가가 시혜적이고, 온정적으로 베푸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하나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삶을 유지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복지’를 대중투쟁으로 ‘쟁취’하는 권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동시에 ‘권리’와 ‘복지’가 동일한 용어로 사용됨으로써 일정한 혼란과 새로운 고민이 초래되었는데, 일례로, ‘민중의 복지’라 해도 ‘복지’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게 되면, 결국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유럽의 복지국가에서 유래된 복지 담론과 변별력을 찾을 수 없지 않는가, ‘민중의 복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가 갖는 궁극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궁핍화로 가는 우회로’의 역할과 다르다면, 다른 그 내용은 무엇인가, 보다 넓게는 노동자․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정책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투쟁을 무엇으로 호명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제기되었다. 그러나 ‘민중의 복지’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이론적 노선이라기보다, ‘생산적 복지’에 대응하는 정치적 상징물이었다.

또 다른 혼란과 고민은, 비정규직, 이주, 장애, 산재 등 각각의 요구는 비교적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모인 것은 “같은 처지에 있는 약자” 또는 “힘없는 사람들끼리 뭉쳐 뭐 한번 해보자”는 것 이상으로 공통적인 자기 내용을 갖지 못했다. 물론, ‘안정적인 일자리의 보장문제’가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판단 하에 ‘노동기본권’ 쟁취를 공통의 요구로 뽑아보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되지 않고서는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자연적이든 노동능력을 상실한 자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가. 결코! 그리하여, 토론회 이후 우리들은 즉각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써 각각의 투쟁과 조직의 역사를 공유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공통의 투쟁과제는 발생원인의 제거라는 본질적 문제와, 정세로부터도 규정되지만, 투쟁의 역사성을 확인하는 속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리는 바로 이 두 가지 고민의 연장선에 있다.

그 중에 이 글은, 불안정노동의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통해, 어떻게 하면 개별적이고, 특수해 보이는 불안정노동자의 상태, 요구, 투쟁을 하나의 원칙 하에 묶을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을 집중하고자 했다. 특히, 발생원인을 규명하는 문제는,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내고 심화시키는 문제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계급투쟁의 함의나, 결론을 추출하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따라서, 사회적 현상으로서 이러한 문제가 왜 발생하는 지를 밝힌 후, 불안정노동층이 상대적 과잉인구의 여러 존재형태라는 점을 통해, 불안정노동층의 사회적 연대에 있어서 가장 중심축이 무엇인지를 명백히 하고자 했다.



2. 개별적이고, 특수해 보이는 문제들: 상대적 과잉인구의 여러 존재형태

1) 돌파구는 하나, 계급운동으로 만나야 한다

이제, 불안정노동층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는 지, 게다가 그 요구는 또 얼마나 많은 지 살펴보자. 그런데 이 내용은 두 번째 글에서 소상히 다루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 글의 주장을 돕는 수준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주장의 핵심은, 서로가 서로를 보기에도 확실히 개별적이고, 특수한 점이 있어서 하나의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는 데에는 남다른 노력과 근본적인 관점의 통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관점의 통일은 이들 모두가 상대적 과잉인구의 여러 존재형태에 속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해야만 계급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불안정노동층으로 일컬어지는 노동자와 그들의 핵심적인 요구는 다음과 같다.

근로자파견제의 도입으로 급속도로 확산되어 공식적 수치로도 50%를 넘고, 비공식적 통계로는 70%에 육박한다고 확인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들의 주요 요구는 ‘비정규직․파견법의 철폐’이다. 이제 막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노동자로 스스로를 지칭하기 시작한 장애인노동자는 ‘장애인 노동권과 인권’의 쟁취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95년 명동성당의 농성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는 ‘연수제도의 폐지와 노동권’ 문제를, 산재노동자는 ‘원직장 복귀와 사업주 처벌강화’를, 실업노동자는 ‘단결권과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2001년 말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허구성을 수급자가 직접 나서서 투쟁함으로써, 00대책위와 00공대위가 수없이 많이 있는 것만큼이나 투쟁과제는 한층 복잡해졌다. 유사해 보이는 노동권 문제에 있어서도 한 꺼풀 벗겨 보면, 장애인 의무고용준수․확대, 산재노동자 원직복직, 정규직화, 단결권 등 그 방점이 다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고, 핵심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하여 또다시 각종 대책위가 만들어지지만, 그 실상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에게 이중, 삼중의 과세를 부과하는 실정이다. 여전히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투쟁’이고, ‘정당한 투쟁에 (여력이 되는 만큼)지지, 지원’하는 투쟁이다.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품앗이 투쟁을 벗어나려고 해도 별다른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돌파구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이 투쟁을 자리매김하면서 계급운동의 전선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인권의 문제, 시혜적 문제, 금전적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계급운동의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불안정노동층의 문제가 어째서 계급의 문제, 노동자계급 운동의 문제인지 살펴보자.

비정규․실업․이주․장애․산재노동자 등 불안정노동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맑스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다양한 존재형태로 설명한다.


2) 불안정노동자 발생의 근본적 원인과 배경1)

우리는, 자본주의는 항상적으로 산업예비군을 양산함으로써만이 자본 축적을 보장받는다는 사실을 안다. 생산규모의 팽창은 노동자의 증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다른 영역의 생산규모에 해를 끼치지 않고 결정적인 시점에 투입될 수 있으려면, 다시 말해, 자본의 변동하는 증식욕구를 위해서 현실적 인구증가의 제한에 상관없이 인간재료를 언제나 착취할 수 있으려면, 그러한 인간재료의 공급처가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바로 이 공급을 과잉인구가 한다.

이 과잉인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모든 자본가의 절대적 관심사는 일정량의 노동을 보다 적은 노동자로부터 뽑아내는 것이지, 같은 가격, 또는 보다 싼 가격일지라도 그것을 더 많은 노동자로부터 뽑아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본가는 생산증가에 비해 사용노동자 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과잉인구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노동에 대한 수요는 총자본이 증가함에 따라 가속적, 누진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인구법칙이고, 이러한 잉여노동인구의 축적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렛대가 되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한 존재조건이 된다. 바로 이 잉여노동인구가 산업예비군을 형성하고, 산업예비군은 고용된 노동자의 과도노동과 실질임금의 하락을 유도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본의 횡포에 노동자가 종속되는 과정을 수반하게 한다.

결국 ‘강제된 노동’의 이면에 ‘강제된 나태’가 있게 되고, 한편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의 ‘유리’를 통해 공급을 증가시키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이제 노동자계급의 힘은 그 수적 증가만큼이나, 현역군과 산업예비군의 비율변동에 의해 좌우된다. 다시 말해, 고용된 노동자가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의 비율을 떨어뜨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노동자계급의 힘은 커질 수 없고, 자본에의 종속은 약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맑스는 상대적 과잉인구의 여러 존재 형태들을 크게 유동적․잠재적․정체적 형태 등 세 가지로 나눈다. ‘유동적 형태’는, 공업생산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산업화로 노동력이 대량 유입된 뒤, 방출되면서 형성되는 과잉인구를 말하고, 이때, 방출된 노동력이 자본의 이동에 따라 이주를 시작하면서 여성노동력이 증가하게 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잠재적 형태’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농업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도시노동자로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농촌인구를 가리키고, ‘정체적 과잉인구’는 현역군이지만 취업이 전적으로 불규칙한 인구, 즉 가내노동, 비정규직 같은 노동자를 일컫는다. 맑스는 최대한의 노동시간과 최소한의 임금(과소지불/과도노동)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이 계층이, 자본의 고유한 착취부문의 광대한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적 과잉인구의 가장 밑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부분이 ‘피구휼 빈민’으로, 산업예비군의 사중(死重)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그 제1부류가 노동능력을 가진 자이고, 제2부류는 고아나 빈민 아동 등으로 이들은 산업예비군의 후보자로서, 호황기에 급속히 현역에 편입되는 층이고, 제3부류로서 노동능력이 없는 자, 육체적으로 쇠잔해진 자, 산업의 희생자, 장애인, 병자 등이 있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영세기업의 노동자, 3D업종에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는 정체적 형태의 과잉인구에 속하고, 장기실업자, 산재노동자, 장애인노동자 등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가장 밑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층’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층이 한국 사회의 빈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빈민’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산업예비군의 침전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비용에 해당되고, 혹 계산되더라도 그 비용을 노동자계급이나 중간계층에 전가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가복지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빈민의 생산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생산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 필연성도 상대적 과잉인구의 필연성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극빈층과 산업예비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적 피구휼 빈민도 점차 많아진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이다.

이 모든 것들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적 생산의 적대관계에서 비롯된다. 한쪽 극에서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편 극에서의 빈곤, 노동의 고통, 종속상태 등을 초래하는 것, 부가 생산되는 똑같은 생산 제관계 속에서 빈곤 또한 생산되는 것, 이것이 적대적 생산관계의 결과물이다.

장애인노동자의 집회에서 자주 듣는 “장애인도 인간이다”는 외침은 정상인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차별대우를 받는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이자, 노동능력이 상실된 자를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는 자본주의 극악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것을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 “빈곤은 피억압 민중의 권리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이자, 모든 권리의 박탈을 의미하며, 기회와 선택권에 대한 도발이다.”2)

따라서, 과잉인구를 줄이는 문제는 빈민을 감소시키는 문제와 같은 얘기이고, 노동자계급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과 동일한 얘기가 된다. 일례로, 노동자의 소비수요를 증대시켜 과잉인구를 없애려면, 즉 소비수요의 증대→고용증대→실업해소의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실질임금의 상승과 함께 자본가의 태도를 규제․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실질임금이 상승하여 착취율이 저하될 때까지 자본가가 생산이나, 고용을 축소하는 행동을 취할 수 없게 해야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계급간 힘의 문제이다.


3) 과잉인구의 출현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 빈곤, 고용불안, 과도노동, 과소지불, 항상적 경쟁, 자본에의 굴종

과잉인구가 생산되면 기본적으로, 과도한 노동, 실질임금의 하락, 노동자 간 항상적 경쟁, 자본의 지배에 대한 굴종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서 노동자․민중의 빈곤이 증대되는 것이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결과, 현재, 전세계 50억 인구 중 5억이 부유층이고, 45억이 빈곤층이다. 게다가, 그 부유층 중 358명의 재산이 25억의 소득과 맞먹는 부의 극한을 목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결식아동이 98년 1만명에서 2000년 15만명으로 2년 사이 무려 15배 이상 증가했다.

고용불안의 대표적인 형태인 고용유연화 역시, 성․인종․연령․고용형태 등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갈등, 실업자와 취업자 사이의 경쟁 등을 틈타 대폭적으로 확대된다. 특히, 생산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는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을 수반하는데, 자본의 축적이 고도화된 대기업과 초국적 기업일수록 기업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 강한 관리자와 노동귀족, 그리고 정규직 남성노동자를 ‘일차 노동시장’으로 확보하는 한편, 자본의 요구에 따라 채용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이차 노동시장’을 구축한다. ‘이차 노동시장’에 속하는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이고, 그 가장 밑바닥에 이주노동자가 자리하게 된다.3) 이것이 고용유연화의 내용이고,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의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고용유연화의 전형적인 예를 산업구조가 한국과 가장 유사한 일본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지금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이 그림을 맑스의 과잉인구론과 연결시켜본다면, A, B, C, D, L 이외의 모든 노동자가 실업, 반실업 상태의 상대적 과잉인구에 속한다. 그러하니, E, F, G, H, I 등의 증가는 곧 전체 노동력 시장에서 C, D의 감소를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전판’이라는 생각은 명백히 자본의 이데올로기다(그림 생략).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내용이 노동자계급 운동에 있어서의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불안정노동층은 자본/임노동 관계에 포섭되어 있지만, 자본은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성․인종․연령․고용형태 등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갈등이 야기되는 것과 동시에 계급문제의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를 부여한다. 따라서, 이들 계층을 포함하는 다시 말해, 노동자․민중을 대상으로 하는 ‘권리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본질적으로 새로운 사회재편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3. 개별적이고, 특수해 보이는 문제들: 노동자․민중의 권리실현

1) ‘권리의 정치’: 생존권, 생활권, 민주적 권리

공동체 속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생명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전쟁, 빈곤, 교통사고, 노동재해 등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 빈궁하지 않은 삶, 궁핍하지 않은 삶, 안락한 삶을 누린다고 할 수는 없다. 둘째, 미래에까지 의식주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루, 한달, 일년 정도의 보장이 결코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은 당연히 철폐되어야 한다. 셋째,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결정권이 없이 자신의 삶이 타인의 의지대로 조종된다면 그 역시 인간다운 삶이라고 볼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첫째와 둘째를 포괄적으로 ‘생존권’과 ‘생활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를 ‘민주적 권리’로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자․민중의 권리실현이란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생활권,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민주적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에서는 생명의 안전이나 의식주의 보장이 타인의 요구에 따라 변경, 의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권리의식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또한 근대 시민권에서 출발했지만 노동자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로 나아감으로써 사회변혁의 성격을 담지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하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전략이 정치의 민주화를 수용하는 대신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더욱 후퇴시키고 있다는 점(부의 편중, 빈곤의 확대)을 감안한다면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실현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핵심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은 곧,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이자, 민중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실현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밑으로부터의 투쟁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이 민주주의에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배세력의 권력을 포장하는 용어로 사용하거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토대로 해서만 성립하는 민주주의로 제한하여, 민주주의라고 표현되더라도 그 실내용은 비민주적이기 때문이다.


2) 권리쟁취투쟁에 있어서 넘어야 할 두 가지 문제: 정책대안론적 제도개선투쟁과 조합주의적 투쟁

노동자계급의 삶과 권리를 쟁취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전략 속에서 위기에 처한 생활과 생존을 지켜내는 투쟁의 도정에 놓여있는 노동자계급에게는 크게 두 개의 과제가 놓여 있다. 하나는 기존 운동이 걸어왔고, 현재도 짙게 우리 운동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잘못된 관점과 실천을 수정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노동자계급의 삶과 생활을 새로이 조직하고 이를 기제화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하여 새로운 사회적 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제반 이데올로기적․이론적․실천적 공백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우리 운동 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권리쟁취투쟁에 있어 왜곡된 전략과 단절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온갖 이념적 미숙과 혼란, 공백을 올곧게 세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권리의 정치’의 활성화와 이를 담보하는 주체 형성이라는 과제와 맞물려 있다. 이러한 과제실현에 있어 무엇보다 우리 운동에 짙게 드리우고 있는 왜곡된 관점과 실천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것이 소위 ‘정책대안론적 제도개선투쟁’과 ‘조합주의적’ 사고에 갇힌 실리주의적 흐름이다.

우리는, 대중적 투쟁력이 바탕되지 않으면,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왜곡되어, 일단 제도를 만들어 놓는 것이 진전이라거나, 문제의 해결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지난 몇 년동안 경험했다. 이것은 대규모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그 보조물로 사회적안전망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4) 또한, 정부/자본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등 노동운동을 협조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도 보았다. 노사협조주의, 독점자본에 고용된 노동자에 대해 독점자본의 높은 이윤을 보장함으로써 조합주의적 투쟁에 머물게 하는 것, 그리하여 회사에 대한 귀속의식을 증대시키거나, 무관심을 유도하는 것 등이 운동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음을 안다. 이하에서는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정책대안론적 제도개선투쟁은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상층부가 결합하여 진행해왔던 소위 ‘사회개혁투쟁’이 대표적이며 활동양식으로는 노동조합운동과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 속에서 정책과 제도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틀’을 만드는(혹은 강제하는)방식을 채택해왔다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투쟁, 국민기초생활보장법쟁취 투쟁, 산재보험개혁투쟁, 비정규보호입법투쟁 등 법 제․개정 청원을 위한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조합주의적 실리주의 흐름은 대공장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힘’에 기반한 각종 권리와 쟁취를 기업별 수준에서 해당 노동자에게만 적용하는 투쟁이 비일비재함을 가리킨다. 물론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그것에 매몰되어 계급적, 전 노동자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거부하는 경우를 지적하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각종 수당 인상을 따내면서, 그 이면에, 위험작업장의 하청 등 비정규직 도입을 합의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투쟁은 ‘합의주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하나의 뿌리를 갖는다. 전자는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고, 후자는 기업차원에서의 ‘노사 합의’를 중요시한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노사협조주의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 줄기이다. 물론 일정한 국면에서의 ‘합의’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합의의 이면에 ‘주고받기’가 반드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권리의 실현과 쟁취’의 관점을 갖는 다는 것은 무엇은 내어주고 무엇은 받는다는 식의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동안 사회개혁투쟁이란 이름 속에서 정책적 제도개선을 투쟁이 전개되어 왔으며, 대정부 투쟁의 결과 여러 가지 성과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실시되게 된 의료보험통합, 의약분업실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고용․산재보험의 전국민적 확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개선의 결과 노동자들의 권리가 그만큼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5) 혹은 그러할 가능성이라도 존재하는가? 위와 같은 제도의 실현 속에서 어느 정도 노동자의 삶과 생활을 보장할 체제를 구축하였던 서구 유럽의 경우에는 특정한 물질적․정치적 조건6)이 구비되었던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현재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배태된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더욱 제한적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낳고 있으며, 국가와 자본은 단기적이고 근시적인 위기관리와 갈등관리에 주력하게 되고 뚜렷한 이념적 지향보다는 모든 쟁점들에 대해 미봉적인 정책에 주력하게 됨에 따라,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제―이른바 ‘사회적 합의’, 이를 수행할 기제로서 ‘NGO운동’의 동원―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7) 따라서 ‘제도개선’ 혹은 ‘정책대안’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관철하고 실현하는가? 이른바 권리 실현의 내용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며, 그것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아닌 ‘투쟁’이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정책대안론적 제도개선의 관점에서도 대중의 투쟁을 요구하기도 하고, 대중운동적 자원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압력수단’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조합주의적 실리주의 흐름은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 활동에서 강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사실 기업적 차원에서의 노동자의 삶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은 1987년 노동조합운동의 일정한 성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조건 잘못된 경향이라고 비판하기는 힘들지만 이를 강조하거나 집착하게 될 경우 신자유주의적 복지 패러다임 속에서 자본측이 노동자간 분리․분할을 유도하는 노동유연화 전략 하에 포섭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일례로, 정부가 최근에 도입을 고려중이라고 발표한, 그리고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도입된 ‘선택형 기업복지제도’가 그것이다.

또한, 노동자간 연대를 더욱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권쟁취를 위해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나 공공의료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별 차원에서 사업주의 비용 부담 하에 ‘민간의료보험가입’을 보장받는 투쟁의 차이는 비단 그 사업장 소속의 노동자 개인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차이가 없지만 전체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건강권을 보장받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또 다른 예로 정규직 임금 보전의 대가로 비정규직의 증가에 노동조합이 동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쟁취한 성과는 언제든지 무너져내릴 수 있는 모래성과 같은 것이며 자본은 이러한 부분도 자신의 운동 속으로 편입시켜내면서 그것을 또 다시 자본의 이윤창출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즉 조합주의적 실리주의 흐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투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노총의 ‘사회임금요구’ 투쟁에 대하여

민주노총은 올해 12.5%의 기업별 임금인상과 함께 ‘사회임금8) 인상요구안’으로 ▪최저임금의 상향조정 ▪공공주택건설 등을 통한 주거비 지출축소 ▪무상의무교육 확대통한 교육비 지출축소 ▪국민기초생활보장금 확대를 통한 생활보호 강화 ▪사회보험(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보조 확대 ▪산전후 유급휴가에 대한 국고보조 확대 ▪조세개혁을 통한 국가 복지예산 확충9)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으로 ‘임금소득격차와 소득분배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를 이제는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첫 출발점으로 삼아 사회적 의제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임금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요구는 그동안 ‘사회개혁투쟁’으로 제출되었던 내용을 더욱 구체화하여 ‘사회임금’ 형태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면에서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의미가 ‘사회복지 요구투쟁이나 혹은 조세개혁 투쟁은 모두 시장임금을 늘리기 위한 임금인상과 동일한 선상에서 인식해야 한다’10)는 관점에서 제출된 것이라면 이는 허상임을 밝히고 싶다. 즉 사회임금이 노동자에게 가져오는 효과와 관련하여 그것이 자본가계급이 전유하고 있는 잉여가치를 노동자계급에게 재분배하는 기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윤에서 임금소득으로의 재분배나, 상류 및 중상류계층에서 저소득계층으로의 재분배가 아니라, 임금과 봉급을 얻는 광의의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다 더 진전된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극복해야 할 점이 있다. 즉 위와 같은 요구를 앞에서 지적했던 몇몇 ‘정책제도개선’으로 한정지어 사회개혁투쟁의 한계와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정부 요구형태가 아닌 대자본을 향한 구체적 요구가 제시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투쟁계획이 함께 나와야 한다.11) 또한 시장임금과의 교환의 대상으로 사회임금을 상정한다면 이는 ‘조합주의적 실리주의’의 확대판이 될 것이 분명하다.



4. 권리실현을 위한 일반적 투쟁방향

첫째, 생존권, 생활권, 경제-사회적 민주화 과정은 오로지 계급간 힘의 관계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러한 투쟁은 전 사회적 관점에서 배치하고, 기획되어야 한다.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권리 때문에, 거꾸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인해, 사회적 권리가 희생당하는 데 대한 광범위한 반격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부를 둘러싼 투쟁을 촉발시킨다. 동시에, 밑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은 모든 권력과 소유불평등을 제거하는 투쟁으로 나아간다.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결과 축적된 사회적 부의 일방적 점유가 오늘날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따라서 지배계급에 응축되어 있는 사회적 부를 노동자계급이 전취하고자 하는 과정이 동반되고, 이 과정이 노동을 합리적인 정도로 제한하고(노동시간 단축, 과도노동 해소), 노동자계급의 여러 층을 연령과 성에 따라 재편성하는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과정은 오로지 계급간의 힘 관계에 달려 있다.

둘째, 생활권은 노동․고용관계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 권리의 정치로서 생활권은 노동능력이나 고용관계와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국가에서 제공하는 모든 보장책은 노동과 관련을 맺고 있어, 노동능력이 있거나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을 구분한다. 이 구분에 따라 이들 집단에 대한 관리 및 보장 역시 상이하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에서는 고용되어 있다가 실업자가 되어야 실업급여를 지불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하에서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은 조건부 수급자로 구분되면서 일반 수급자와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즉, 노동능력과 고용관계를 조건으로 사회적 보장이 차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권은 노동능력이나 고용관계와 무관한 권리이기 때문에 노동․고용관계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

셋째, 재산이나 소득과 관련이 없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한 사람들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공공부조제도이다. 따라서 빈곤층이 주요대상이다.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할 때 빈곤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측정방법이 사회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에 많은 나라들과 한국에서는 소득조사와 재산조사를 통해 빈곤을 측정해왔다. 그러나 소득과 재산에 대한 조사는 조사를 받는 노동자․민중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이었다. 또한 최저생활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선산이나 소득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항목들이 재산으로 계산되면, 최저생활도 할 수 없는 노동자․민중의 생활은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 전체를 생활권의 대상으로 포함해야만 한다. 이를 기본으로 생활권은 재산이나 소득과 무관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넷째, 기본적인 생활 확보가 필요하다. 공공부조는 최저생활을 보장하는데, 이는 노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낮추지 않기 위해서이다. 즉, 공공부조를 통한 생활보장은 사람들이 게으름병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의 최저임금보다 낮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공공부조를 통한 생활보장은 빈곤을 제도적으로 안착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아무리 일을 해서 돈을 벌어도 국가에서 결정한 최저선 이상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권 확보는 최저선을 넘는 기본적인 생활 확보를 원칙으로 한다. 빈곤선을 넘어 노동자․민중의 생활의 불안정성과 박탈감이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사회와 국가로부터 공공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생활권은 단순한 소득 증대를 넘어선다. 소득 증대는 다른 한편에서는 공공서비스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안정적인 무상주거 제공, 평등한 공교육과 의료서비스의 제공은 생활 확보를 위한 하나의 전제가 된다.

다섯째, 생활권 확보의 모든 재원은 자본가로부터 나와야 한다. 노동능력이나 재산․소득과 관련 없는 기본적인 생활 확보의 재원은 노동자․민중이 아니라 자본가로부터 나와야 한다. 현재의 역진적인 조세제도를 통해 재원이 마련된다면, 그것은 또 다시 노동자․민중의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와 자본가가 반반씩 부담하는 사회보험을 통해 생활권 확보의 재원이 마련된다는 것 역시 노동자․민중의 부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생활권 보장 재원은 자본가의 이윤, 투자이익, 자본의 이동 등에 대한 누진적인 과세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섯째, 기본의 사회보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4대 사회보험(국민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을 제도적으로 구축하였다. 그러나 기금을 비롯한 통제권은 자본가와 국가가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산재를 당했을 경우 산재를 국가 산하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실업자가 되었을 때에도 비자발적으로 실업자가 되었다는 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국가로부터 아무런 생활보장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현재 국민연금의 막대한 적립 기금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권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노동자․민중의 호주머니에서 꼬박꼬박 돈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 돈이 어떻게 어디로 사용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생활권은 본래부터 노동자․민중의 것이었던 사회보험을 노동자․민중이 직접 통제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적립된 기금에 대한 권리 역시 노동자․민중이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노동자․민중은 양대 선거와 양대 국제행사라는 굵직한 사건을 앞에 두고 있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든, 삶이 불안정한 노동자든 현 시기 계급대립의 지점은 노동자․민중이 다시 한번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과 제반 권리의 요구투쟁에 기반하여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현실화시켜낼 것인지, 보수정치의 재편과 개혁의 물살에 휘말리면서 그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데 만족할 것인지의 선택지에 놓여있다.12)




2002년 상반기 불안정노동자 공동투쟁 제안*


13)

1. 정세적 배경

▪김대중 정부의 집권말기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은 더욱 고도화, 다면화하고 있다. 상품시장, M&A시장, 금융시장을 통해 기업경영을 규율하고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을 완비한다는 구상 하에 한국 경제의 금융화․개방화는 한 단계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대중은 이미 장기적 불안정화의 국면으로 진입하였으며, 그 파괴적 양상은 내부의 경제적 격차 심화에도 불구하고 노동대중 전반의 삶에 걸쳐 더욱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IMF 경제위기체제와 함께 등장한 김대중 정권은 경제위기 극복의 전략으로서 ‘노동유연화’와 ‘노사정합의주의’를 전면적으로 제기해왔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기본권의 후퇴는 1990년대 내내 지속된 공격이었지만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서는 개별 자본 차원에서의 전략을 국가의 노동정책으로 전면화시킨 특징을 보였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필두로 상시적 인력조정을 뒷받침하는 법제도가 완비되었으며 노동시간․임금을 탄력화하려는 공세가 전면화되었다. 이러한 공격의 결과 노동대중 전반의 삶의 불안정성이 심화되었으며 빈곤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과정은 노동대중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 합의주의를 매개로 투쟁하는 대오를 고립시키면서 폭력적으로 노동기본권을 침탈하는 한편, 소위 ‘생산적 복지정책’을 통해 완충지대를 만들어 왔다.


▪김대중 정권 들어 비정규직노동자를 비롯한 여성, 이주, 장애노동자들의 조직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의 파괴적 효과가 이들 불안정노동대중에게 더욱 집중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조직노동자가 이에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함으로 인해 이들의 독자적 조직화가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민주노조진영의 대응은 단사별로 파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수세적인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리고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의 경우도 그 격렬함과 긴급함과는 별개로 노동의 불안정화를 강요하는 구조조정 자체에 대한 반대로까지는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2. 2002년 상반기 불안정노동자의 투쟁요구

1) 비정규직 노동자

▪간접고용 철폐, 파견법 철폐

파견, 용역, 사내하청, 외주, 분사 등 간접고용형태의 확산은 다중적 착취구조를 통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할 뿐 아니라 사용자로서의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1998년 도입된 파견법은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주기적 해고를 양산하고 간접고용의 확산을 부추기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 반인권적, 반사회적 간접고용은 철폐되고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본에 대해 직접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지입차운전수, AS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이 계속되자 국가와 자본은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는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놓고 노사정위원회에서는 ‘준근로자’ 개념을 도입해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법 전면적용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2) 이주 노동자

▪미등록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 중단, 거주․노동의 권리 쟁취

불법체류는 정부가 10년이 넘도록 이주노동자들에게 강요한 노예노동의 결과이다. 강제추방의 위협 앞에서 노동조건 개선, 노동기본권 보장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2001년부터 한층 더 광폭해진 단속․추방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기순환정책 및 연수제도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정책의 일환이다. 정부는 불법체류 미등록노동자를 전원 사면하고 이들의 거주․노동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현대판 노예제도, 연수제도 철폐

중소기업협동회 추천 또는 현지법인(해외투자기업) 연수생은 1년 또는 2년짜리 계약직 노동자로 절대적인 저임금에 착취당하고 있다. 이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회사는 곧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들은 강제출국당한다. 2001년 12월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서는 현행 연수제도를 변형․확대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바 있다.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저임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연수제도 및 연수제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이주노동자관련 정책은 철폐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노동기본권 쟁취

연수제도와 불법체류라는 굴레 아래 주로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은 사문화되어 있다. 또한 정권과 자본은 강제퇴거(추방)를 미끼로 최소한의 노동의 권리를 위해 저항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억누르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은 이주노동자를 이 땅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보면서 함께 연대하고 엄호할 때에만 쟁취할 수 있다.


3) 장애노동자

▪장애인 이동권․교육권 보장

2001년 8․29 버스 점거농성 이후 장애인이동권연대는 100만인 서명운동의 지속적 전개와 함께 매달 한번씩 정기적인 버스탑승투쟁을 벌이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와 노동권의 보장을 위해 이동의 권리와 교육의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혁신과 장애인 수급권자 생존권 확보

2001년 12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자인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씨의 결의 속에 전개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단’의 활동은 정권의 ‘생산적 복지정책’이 강요하고 있는 노동빈민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역별․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 도입 등 장애인 수급권자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의무고용제도 확대․강화

장애인의무고용제도는 장애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현행 2%인 의무고용률, 적용대상사업장 확대, 강력한 강제조치 도입 등 장애인의무고용제도 확대․강화와 함께 모든 노동관계법상의 장애노동자와 비장애노동자의 분리조항이 철폐되어야 한다.


4) 실업 노동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혁신을 위한 공동투쟁

2000년 10월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의 일차적 책임을 국가가 지고, 국가가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수급자 선정 기준의 엄격함과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형식적인 자활사업 등으로 인하여 수급자의 대부분이 최저생계는커녕 생존조차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권은 2002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령 개정에서 오히려 대상자의 선정 기준을 더 엄격하고 까다롭게 개정하여 빈곤계층이 수급자가 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되었으며, 독소조항이라 지적해 왔던 부양비 및 추정소득간주제, 의료보호의 비급여 부분 등을 폐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이에 지역별․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 도입, 생계급여의 현실화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혁신을 위한 투쟁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저소득 일용직노동자 조직화와 고용보험 전면적용

2001년 정부는 실업정책의 일환으로 일용직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보험확대 적용을 2003년부터 실시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이후 계속 유보하고 있다. 2001년 정기국회에 일용노동자고용보험 적용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였으나 검토할 내용이 많다는 이유로 상임위에 계류중이다.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비정규직․일용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로서의 고용보험 전면적용투쟁과 함께 저소득 일용직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고민 중이다.

5) 산재노동자

▪산재보험제도․근로복지공단을 노동자 중심으로 개혁

산재은폐와 산재노동자의 탈락을 제도화하고 있는 산재인정절차, 산재노동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제도화되어 있는 산재심사제도, 재활정책의 부재,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하여 실제적인 적용대상범위의 제한, 구태의연한 근로복지공단 등 산재보험체계의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다.


▪중대 산재사고 사업주 처벌 강화

반복적으로 악질적으로 계속되는 산재사망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미 일어난 산재에 대해 사업주가 은폐한 건수가 적발된 것만도 2000년에 2,654건에 이른다. 또 2000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입건한 4,391개 사업장 8,124명의 사업주 중 구속수사 5개 사업장 10명에 불과하다. 안전에 대한 투자 없이 기업활동을 하려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산재사고를 실질적으로 예방해야 한다.


▪산재노동자의 일할 권리 보장 및 원직장 복귀 보장

산재노동자의 직업재활은 사회적 책임을 사실상 방기한 채 개인이 감당할 문제로 떠넘겨 왔다. 산재노동자의 사회복귀의 핵심은 직업을 통한 복귀이며, 원직장 복귀는 산재 이전 상태로 되돌려지는 재활의 목표에 비추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3. 불안정노동자 공동투쟁방향 정립을 위한 고민

▪다양한 불안정노동자 조직들이 연대를 하게 된 배경에는 1) ‘불안정노동’을 강요당하는 조건의 유사함 2) 기존 대기업정규직중심의 노동운동으로부터의 배제라는 공통점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좀더 들어가서 살펴보면 현재 일차적인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단위들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여성,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는 고용되어 있지만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면서 기존 노동자조직에서도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경우이다. 실업의 경우는 현재까지로서는 ‘실업자’를 주체로 조직한다기보다는 취업과 실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혹은 실업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대중의 정치적 투쟁과제로 자리잡혀야 할 영역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불안정노동자의 고통에다가 이주노동자라는 민족적 모순이 결부되어 있는 경우이다. 장애노동자와 산재노동자의 경우는 노동권이 비장애노동자만이 아니라 장애노동자로까지 보편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가, 혹은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는가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역이다. 이처럼 다양한 불안정노동자조직이 공동투쟁의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정치적 요구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기존 노동자조직이 지향과 구조를 개혁할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


▪불안정노동자의 공동투쟁방향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수준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공통의 전선적 요구로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정책에 대한 반대”를 제기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삶의 위기의 바탕에는 불안정․불완전한 일자리를 강요하는 구조조정정책이 가로놓여 있다. 고용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존도 지탱할 수 없는, 그리고 고용되어 있어도 열악한 노동조건과 고용불안으로 끊임없이 생존의 위기를 경험하게 되는 사회에서 ‘고용의 위기’는 곧 ‘노동자 삶의 위기’라 할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은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금융세계화로의 편입과 노동의 불안정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 합법화를 통해 고용파괴를 정당화시켰으며, 상시적 기업구조조정을 뒷받침함으로써 고용불안을 일상화시키고 있다. 정권은 공공․금융부문에서의 인원감축을 주도하였고 이는 대기업의 인원감축으로 이어졌다.13) 이러한 대규모 인원감축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 자체가 그만큼 사라졌다는 면에서도 충격적인 것이다. 대부분 인원감축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와 함께 추진되었고, 정규직․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노동조건은 더 악화되었다.14)

김대중 정권은 ‘노동유연화’와 ‘생산적 복지’를 노동정책의 기조로서 강조하고 있다. “평생고용에서 평생직업으로”라는 허울좋은 구호 아래 고용파괴와 노동조건의 악화가 강요되면서도 노동자 삶의 위기는 노동자 개인의 능력과 책임 탓으로 돌려진다. 소위 ‘생산적 복지’는 불안정한 노동이라도 수용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방식으로 열악한 노동을 강제한다. “노동의욕을 상실하지 않는 수준”을 운운하며 최소한의 생계마저 보장하지 않는 복지급여수준, 3D업종을 비롯한 불안정한 일자리를 거부하였을 때는 실업급여를 중단하겠다는 방침 등은 불안정한 노동을 강제하고 유인하려는 생산적 복지정책의 목표를 드러내주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일차적 요구는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이고 적정한 일자리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이다. 장애노동자이건 산재를 당한 노동자이건 장기실업상태의 노동자이건 마찬가지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도 우리사회의 필요에 따라 들어온 노동자인만큼 안정적이고 적정한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은 바로 이러한 안정적이고 적정한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의 투쟁을 통해 분쇄되어야 한다. 노동유연화정책의 중단을 요구할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하여 ‘안정적이고 적정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이런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을 경우 현재 취업하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기본생활보장을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음을 부각시켜야 한다.

2001년은 다양한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이 만들어졌던 한해였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은 2000년에 이어 “비정규직 철폐․노동기본권 쟁취”를 내걸고 처절한 싸움을 벌여냈다. 장애운동단체들은 장애인 노동권의 기초가 되는 이동권 쟁취를 위해 열심히 투쟁했다. 또 최옥란씨 농성을 계기로 장애인 수급권의 실질화를 위한 공동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도 스스로 노동조합의 주체가 되어 한국 노동운동과의 연대를 모색해보는 첫해가 되었다. 이처럼 2001년은 다양한 불안정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 선언해내고 연대를 모색하는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와 연대는 아직 초보적 단계이다. 아직은 주체로서의 역량이 부족하고 산발적인 이슈 파이팅 이상의 대중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불안정노동자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고 이들의 투쟁이 분명한 권리 요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부적으로 운동으로서의 관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불안정노동자들이 당면하는 문제들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일자리를 강요하는 구조적 요인이 놓여 있음을 직시하고,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의 제거를 위한 사회적 투쟁이 요청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한 불안정노동자 스스로를 단결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정치적․조직적 시도들의 중요성이 충분히 부각되고 옹호되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이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인식된다는 것은 노동권․생활권에 관한 자주적 결정의 원리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1년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단’의 활동은 수급권자들이 주체가 되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혁신을 요구하는 투쟁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비정규직, 이주, 장애 등 불안정노동자 투쟁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들을 주체로 조직하고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 공통의 투쟁요구로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를 부각시켜야 한다.


노동유연화론의 기저에는 고용과 노동조건의 분리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즉 어떠한 일자리이건 고용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정책의 목표가 된다. 국가정책 자체가 고용을 파괴하는 효과를 가지면서도 일자리 창출은 전적으로 기업의 의사와 능력에 의존하게 된다. 당연히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일지라도 기업이 선호한다는 점에서 고용창출의 현실적 방안으로 선택된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과 노동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정규직 일자리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로서 규제파괴가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으로 치부된다. 이처럼 고용파괴 자체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만드는 가장 큰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열악한 노동조건의 확산 때문에 고용유지 자체에만 급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고용에 대한 요구와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가 분리되는 순간 노동대중 내부의 분할선이 더욱 공고화되는 결과를 맞이하게도 된다. 고용유지에 제한된 요구는 고용유지의 거래대상으로 노동조건의 삭감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일단 노동조건의 삭감이 이루어지면 역으로 고용축소의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1990년대 이래로 각종 신경영전략의 이름으로 노동강도의 강화와 배치전환, 현장통제 강화와 비정규직 도입이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정규직 조합원에 제한된 방어투쟁에 매몰된 경우 대부분 인력감축과 비정규직화가 전면화되었다. 1997년 경제위기를 경과하면서 고용과 노동조건을 맞바꾸는 교섭패턴이 전면화되었을 뿐 아니라, 일자리 방어의 명목으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우선적 해고와 노동조건 삭감을 용인하는 양상까지도 보이게 되었다.15)

그러기에 단순한 ‘고용유지’를 넘어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를 부각시킬 수 있는 풍부한 요구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초과노동 없는 생활임금 쟁취”를 제시할 수 있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저임금은 장시간노동을 강요하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아예 근로계약 자체에 초과노동이 기준노동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도 2001년 노동부 조사결과 미등록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64.1시간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지법인연수생의 경우, 격주로 주야간 2교대제를 실시해 12시간씩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성이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5시간 일하며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여성도 40% 이상이 된다.16) 장애노동자의 경우도 2000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1일 평균 13시간동안 노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7) 이런 장시간노동의 구조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비롯한 생존권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이다. 저임금장시간노동을 강제하는 일자리는 사회적으로 제거되어야 하는 상태로 낙인찍고, 초과노동 없이 기본생활권을 지탱할 수 있는 생활임금쟁취를 노동대중 전체의 요구로 내걸어야 한다.

연관하여 불안정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노동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해주는 차별적 임금-노동시간체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의 거의 대부분 법정 노동시간이나 초과노동수당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것은 시설관리노동자나 중소영세사업장노동자의 사례처럼 아예 근기법 적용제외대상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포괄임금제 등의 방식으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임금총액을 정해놓고 법 위반을 피해가기 위해 임금항목을 적당히 맞추는 식으로 임금을 지급한다. 2001년에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불안정노동자의 저임금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하나의 접근방식으로서 긍적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02년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임금체계의 개선, 최저임금 적용대상의 확대 등을 요구하고 불안정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조직하려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 건강권 쟁취”도 중요한 공통의 투쟁요구가 될 수 있다.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존권으로서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데에는 근로계약의 법적 형식이나 대상이 제약조건이 될 수 없다. 위험하고 유해한 업무에 불안정노동자를 투입하거나 3D업종에 취업을 강요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부분이 장시간노동이나 충분한 안전조치 없는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는 성과급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스스로 노동강도를 강화해야 하거나, 산재가 발생해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작업장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는 자를 대상으로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각종 사회보험의 적용확대만이 아니라 사회보험의 구조 자체를 개혁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흔히 불안정노동자의 최소한의 안전망으로서 사회보험의 적용확대가 중요한 과제로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김대중 정권 들어 각종 사회보험의 적용대상 및 지급액이 크게 확대된 것을 들어 복지확대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제도적인 적용대상이 확대되었다고 하여 불안정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혜택이 증가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국가의 재정부담 없이 기업과 노동자 개인의 기여에 따라 지급하는 현행 사회보험의 구조상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는 불안정노동자들에게는 애초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또한 고용보험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회보험의 기능 자체가 사회구성원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노동유연화를 지탱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유인․강제하기 위한 것으로 설계된 것도 문제이다. 한 사회 구성원이 어떠한 지위에 있건 기본적 생활보장이 될 수 있도록 사회보험의 성격 자체를 재편하기 위한 투쟁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여기에 “자주적 단결을 통한 노동조건․생활조건의 결정권”을 덧붙일 수 있다. 이는 불안정노동자의 공동투쟁전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그 자체가 실제적인 권리로서 충분히 부각될 필요가 있다. 노동조건․생활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로서 자주적 단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은 지금까지의 노동3권보다 더욱 보편화된 단결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세 번째, 공통의 실천프로그램으로서 근기법 완전적용, 근로감독 강화, 근기법 위반 및 산재발생 사업주 처벌강화 등을 요구하며 노동부, 보건복지부, 근로복지공단, 경총 등을 집중적으로 타격해야 한다.


한편 민주노총은 2002년 사업계획 중 하나로 명예근로감독관을 대대적으로 조직하여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한 노동조건 감시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고민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 차원의 명예근로감독관은 이미 법상 보장되어 있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과 함께 노동운동진영 전체에서 대대적으로 조직되어 지역차원에서 노동조건에 대한 투쟁을 벌여내는 기획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1990년대 초 지역노조들의 투쟁사례처럼 지역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여내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불법파견노동자처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조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4. 2002년 상반기 불안정노동자 공동투쟁주간 제안

불안정노동자 각각의 투쟁 요구 하나 하나가 매우 절박한 요구인지라 투쟁도 매우 힘차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투쟁은 개별투쟁 이상으로 확대되거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우리의 대안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한 채 각개약진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들을 올해는 반드시 하나로 모아서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공동투쟁이라고 하더라도 올해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제야 투쟁주체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있으며 공동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첫째, 각 불안정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아마도 올해는 시기집중 정도가 되겠지만 그것으로도 의미가 클 것이다. 두 번째는 이 투쟁을 통해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에 대한 대안을 함께 만들어나가기 위한 기획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에 국한되지 않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동지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본적 문제의식을 정책적으로 확보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각자의 절박한 요구들을 부각시키고, 최소한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동의 요구로 정치적 쟁점화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개별적으로 투쟁하는 것보다는 나은 성과를 만들어서 절박한 요구들의 최소치를 따낼 수 있도록 공동행동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1) 시기집중을 통해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만든다. 2)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의 공통의 요구를 정식화하기 위한 틀을 만든다. 3) 민중운동 전체에 이 문제의식이 확산되도록 한다는 목표를 갖고 공동의 기획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상의 공동투쟁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시기집중투쟁기획으로서 ‘불안정노동자 공동투쟁주간’을 제안한다.


▪‘불안정노동자 공동투쟁주간 제안 관련

시기집중투쟁의 하나의 예로 4월 산재추방의 달을 중심으로 불안정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집중 제기하면서 공동투쟁을 만드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명예근로감독관 투쟁,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인정 및 의료보험 인정, 산안법, 산재법 위반시 정규직 고용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비정규직의 경우 위탁집배원들의 투쟁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이것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불안정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집중제기할 수 있다. 또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제기하는 공동의 프로그램을 만든다. 장애노동자들과 실업노동자들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혁투쟁 속에서 의료보호의 실질화 등 문제제기를 던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놓고 집중적인 타격투쟁을 전개한다. 지역마다 거점을 설정하고, 거점 중심의 농성과 타격투쟁을 벌인다.

이런 공동투쟁주간을 진행함에 있어 전국적인 공동실천이 가능한 기획을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면 릴레이농성처럼 지역에서도 함께 할 수 있는 투쟁기획이 적극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보론) ‘비전 2011’ 비판*

18)


1. 총론

1) 지배계급에 빌붙는 지식인 모리배들의 합작품

모든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은 경제적 지배를 바탕으로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고 피지배계층을 착취한다. 극소수 지배계급이 대다수 피지배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경제적 지배 자체와 정치적 혹은 군사적 폭력이라는 물리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간에 대한 지배는 그 의식을 지배함으로써 지속되고 강화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지배계급은 그들의 지배와 착취를 지속할 수 있도록 미화하고 변호하고 왜곡할 지식인 집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악어새와 같은 지식인들은 이들에 빌붙어 세 치 혀를 놀림으로써 다수의 피지배계층을 기만하는 데 앞장선다. 「2011 비전과 과제: 열린 세상, 유연한 경제」도 바로 한국 사회의 온갖 친자본 지식인 집단들의 합작품이다. 한국개발연구원과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유명 ‘정부출연 연구소 및 민간연구소, 학계, 경제계는 물론 언론기관과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 등의 NGO를 망라하는 광범위한 집단’ 들의 300여 쪽 이상의 방대한 분량을 통해서 그들이 노리는 것은 ‘국민들의 여론을 결집’ 다시 말해 조작하는 것이다. 비전이라는 언어로 대중들에게 현혹하는 이들은, 구원이라는 말로 현실의 고난을 인내하라고 하는 설교하는 기독교 목사들과 비슷하다.


2) 무엇이 새로운 상황이고 무엇이 새로운 비전이란 말인가?

그들은 2011년의 한국 경제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현재의 상황이 그리고 앞으로 10년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현 시점에서 ‘새로운 비전 모색의 필요성’이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의 자본주의는 이전의 ‘산업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 변화의 중심축은 세계화와 지식정보화’18)라고 한다. 이러한 그들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은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기만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는 16세기 그 시초부터 세계무역을 바탕으로 해서 탄생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가 성숙한 1825년부터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주기적인 과잉생산위기를 겪었으며, 자본은 이 과잉을 더욱 더 해외의 시장에서 해소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세계화는 그 때 이후로 자본의 생존의 필수조건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이전의 자본의 세계화는 지난 30여 년 동안의 세계화 이상이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세계화가 초래한 것은 자본의 독점, 금융적 기생자본의 세계지배, 그리고 그들로 인한 1․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과 종말이었다. 자본의 세계화는 그 파국으로 인해 전후 74~5년까지 30여 년 동안 통제되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화는 완만하게나마 지속되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자 착취의 세계화를 위한 자본의 본성은 다시금 통제를 깨뜨리고 현재까지 진행되는 신자유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는 결코 새로운 상황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으며, 반복적으로 심화되는 상황이다. 그런 자본의 세계화가 초래한 결과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한국 석학(?)들은 세계화가 마치 최근의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그것이 초래해 왔던 파탄의 역사를 은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다시금 노동계급을 억압과 파탄의 상황으로 내몰고 유인하는 것이다.

그들의 무지는 ‘지식정보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본은 노동자로부터 잉여노동을 착취하여 가치를 증식시킨다. 노동시간을 늘릴수록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착취하기 때문에 자본은 더 많은 노동시간 더 강한 노동강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은 이외에도, 즉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그리고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생활수단의 양을 줄이지 않고도 잉여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다. 생산력을 증대시킴으로써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동일한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잉여노동을 상대적으로 증대시킴으로써이다. 이러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착취의 과정, 즉 생산력 증대의 과정은 자본간 경쟁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관철된다. 이와 더불어 자본은 이윤율의 증대를 위한 기계 및 원료에 대한 투자비용 절감을 위해서도 이를 추구한다. 이런 생산력 증대를 위한 그리고 비용절감을 위한 자본의 욕구는 기술개발, 과학의 실제 생산에의 적용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생산력 증대는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위기를 초래하고 노동자들을 실업과 반실업으로 내몰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자본은 노동계급을 더욱 철저히 착취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말하는 ‘지식정보화’는 자본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추구해온 생산력 증대와 상대적 잉여가치 착취의 일환일 뿐이다. 즉 현재의 IT산업은 단지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비용을 절감하는 형태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앞으로의 IT산업과 IT산업이 이끄는 미래를 새로운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1990년대의 경제는 IT산업이 이끌지 않았다는 말인가? 오히려 그들은 90년대 내내 누누이 그런 경제를 신경제라고, 그리고 이제 자본주의는 위기 같은 것은 없다고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들의 신경제가 별반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들의 선전과는 달리 IT산업이 이끄는 세계경제가 이전과 동일한 주기적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에서 실업과 임금 삭감의 칼바람이 불고 있지 않는가?

착취와 억압을 지속해왔던 자본주의를 새롭게 포장하고 위장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친자본가적 지식인들의 목적이다. 더 나아가 노동계급을 현혹하여 포섭함으로써 무력화시킨 뒤에 더욱 극심한 착취를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의 파괴성 그리고 노동계급에 대한 탄압 앞에서도 의연히 그들의 임무를 수행한다. 현실이 더욱 더 파괴적일수록 그들의 미화와 변호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3) 신자유주의 강화라는 낡은 비전에 새칠하기: ‘열린 세상, 유연한 경제’

좋다. 그들의 말대로 현 상황이 이전과는 다르다고 하자. 그렇다면 다른 모색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떠벌리는 것은 30년 동안 반복되는 신자유주의적 억압의 메뉴로 가득하지 않은가! ‘열린 세상’이란 바로 기생적인 국내외의 초국적 금융자본들이 마음대로 투자하고 투기할 수 있는 금융자유화와 개방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유연한 경제란 이들 자본이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시장, 상시적으로 노동계급을 압박할 수 있는 제도의 구축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들은 네 가지 세부 비전을 제시한다. 첫째,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시장경제 둘째, 지식과 기술이 견인하는 성장경제, 셋째, 경제발전수준에 맞게 삶의 질이 향상된 복지사회, 넷째, 동북아 경제권 형성을 선도하는 거점국가들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부문별 추진과제를 제시하였는데, 그 중 특징적인 몇 가지를 적어보자. ▪부실기업 상시신용평가 제도화를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 ▪성과급 재편 ▪국유화된 금융기관 민영화 ▪금융기관의 수익성 제고라는 명목으로 국민경제 압박 ▪투기적 금융상품 증대 ▪노동시장 유연화, 정규직의 위축 가속화와 비정규직 불만의 조직화 방지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한 개량화 심화(그리고 그를 통한 단위노조 무력화) ▪재정건전성의 명목으로 긴축정책 추구 ▪재정 지출의 성과관리 강화를 통한 공기업 압박 ▪공기업 민영화 ▪공기업 경영혁신이라는 명목으로 공기업 구조조정 강화 ▪전력 및 가스 등 에너지사업 민영화 ▪사회보험을 수혜자 부담으로 변질 ▪생산적 복지라는 명목으로 복지 축소 ▪중소 농어민 몰락의 가속화를 위한 조치 ▪다국적 기업 투자를 위한 개방 강화 등등.19)

이들이 지금 제시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비전을 실현시킬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미 30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며 노동계급에 대한 극우정치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통화주의) 정책은 1844년 영국의 필은행법으로부터 160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낡고도 고전적인 기생적 화폐자본가들을 중심으로 한 정책이기도 하다. 이런 정책이 가져온 국민경제와 노동계급에 대한 파멸적 영향을 한국 노동계급은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직접 겪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을 한국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비전이랍시고 덧칠을 해서 치장하고 포장하고 있다. 고리타분하고 낡은 처방, 경제 붕괴를 심화시키고 인위적으로 야기하기도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그리고 그것을 새로운 모색이라고 주장하는 돌팔이 지식인들의 선전은 파멸을 선동하는 한 편의 코미디이다.


4) 신자유주의 세력의 본격적 힘쓰기에 앞선 권력 강화: ‘전방위적 개방화 추진’, ‘법치주의 확립’, ‘분권화 확대’, ‘전문화 제고’

한국의 경우 1980년대 초반부터 금융시장 개방과 금융자유화가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97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형태의 과잉생산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97년 이후 IMF에 의해 자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위기를 심화시키면서, 노동계급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위기도 IMF의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은 바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위기를 심화시키는 금융개방화를 비전이랍시고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금융개방화 및 금융자유화가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심화시켰다는 사실은 은폐하고 오히려 이것을 미화한다. 그들은 ‘경제위기를 계기로 급진전되어 온 개방화 기조를 법․제도는 물론 문화․의식․사회적 관행까지를 포함하는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20)고 주장한다. 그들은 외친다. ‘무역․금융분야를 실질적으로 개방하기 위한 보완적 조치와 함께 외국인 친화적인 사회환경을 조성’하라. ‘인력 및 문화부문까지도 개방’하라. ‘외국인 투자의 확대를 위하여, 피동적 수용이 아닌 능동적 자세로 유치를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고 국가연구개발사업․교육․정부조달 등에 대한 외국인의 진입장벽도 폐지’하라.

경제위기를 초래한 개방화를 열렬히 환호하고 지지를 보냈던 지식인들은, 이제 급기야 집단적인 정신착란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개방화의 파괴성을 완전히 숨기지 못한 채 교묘한 말장난을 벌인다. 그들은 ‘개방의 혜택은 중장기에 걸쳐 경제집단 전체에 대해 점진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피해는 특정집단에 즉각적이고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피해집단의 강한 저항에 봉착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적절한 보상체제를 마련하면서 개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나가야 할 것이다’21)라고 한다. 신자유주의 30여 년의 역사는 빈부격차의 심화와 실질임금 축소 노동조건 악화의 역사였다. 이 30여 년의 기간 동안 그 혜택은 자본가들의 몫이며, 노동계급의 피해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그 지식인들은 그 개방화의 역사의 혜택이 중장기적으로는 나타난다고 지껄이고 있다. 신자유주의 30여 년이 짧은 기간이란 말인가? 이제는 그 낡은 이념과 정책을 그들의 목구멍에 쳐박아버리자.

그런데 이들의 개방화에 대한 주장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이 권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개방화의 결과 한국 자본주의는 그 중추기능인 금융을 완전히 종속당했다. 예컨대, 10개의 시중은행 중 외환, 제일, 신한, 국민, 하나, 한미은행이 개방의 결과로 외국계의 초국적 화폐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외국계에 의한 금융의 지배,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항상화와 내재화의 토대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방화의 과정에서 외환위기 직전 29개였던 은행이 2001년 말 현재 14개로 감소함으로써 은행의 독점화가 초래되었다. 이는 국내외 화폐자본의 권력 강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금융개방과 자유화 아래 주식시장은 외국의 초국적 자본에 완전히 좌우되고 있다. 이처럼 개방화는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일국의 경제를 좌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신자유주의 세력은 더 나아가 ‘전방위적 개방화’를 주장함으로써 이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한 경제지배는 그들에 의한 국가 권력의 장악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국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하여 국가가 개입하지 않거나 시장논리라는 명목으로 순응하도록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지식인들은 국가개입을 배제하기 위한 선전논리로 법치주의를 주장한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엄격한 법치주의가 아니라 행정관료의 재량적 판단에 의한 정책집행이 상당부분 허용되어 왔다’, ‘특히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개입을 최소화하고 경제구조 변화를 둘러싸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여야 하는 현재와 같은 시점에서는 법에 의한 통치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목적이 정당하면 불법한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실정이고, 법 위에 국민정서가 있고, 국민정서 위에 떼쓰기가 있다는 풍자가 말해주듯이 우리 사회의 법적 질서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22)고 그들은 주장한다. 한 마디로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 그 파괴성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사전에 압박하려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법치주의다. 경제의 법치주의를 주장하면서 국가개입과 국민들의 저항을 막으려는 논리는 인간생체의 법치주의를 주장하면서 의사와 약사가 환자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들은 동시에 시장논리의 관철이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개입을 뒷구멍으로 끌어들인다.

분권화도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국가의 개입을 막고, 국민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한 선전문구다. 이 분권화는 중앙정부에 의한 개입을 배제하고 지방정부의 개입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중앙정부에 비해 지방정부를 요리하는 것이 더 수월하며, 중앙정부의 통제체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23) 그리고 이것들과 함께 제시된 ‘전문화’는 공무원 채용을 상시화함으로써 그들의 지위를 약화하고 동시에, 친자본적 전문인력을 행정부에 심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세력은 국가 권력 장악을 통해 전면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중이며, 그들의 앞잡이인 지식인들은 이러한 목적을 위한 여론조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5) 신자유주의 세력, 공격을 위한 마지막 요새 접수중: ‘금융기관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및 협조적 노사관계 정립

신자유주의는 바로 화폐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한 그리고 이와 결합된 초국적 독점자본을 위한 정책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화폐경제를 토대로 한 신용경제이기 때문에 화폐자본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들 화폐자본은 은행 등 그들의 대리기관을 통해서 집중된다. 이런 집중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그리고 국가 권력에 대한 지배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런 집중이 심화될수록 그 가능성이 증대한다. 이런 과정은 1844년 이래로 빈번하게 발생해 왔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 앞서 말한 대로 금융자유화와 개방화의 결과 97년 29개이던 은행이 14개로 축소되었으며, 10개의 시중은행 중에 국유화되지 않은 시중은행은 모두 외국의 초국적 화폐자본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한 마디로 은행의 독점화와 종속화를 초래했다. 은행의 독점화는 화폐자본가들의 권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신자유주의가 한국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 뿌리박은 세력을 통해서 철저히 관철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들인 화폐자본가들은 이러한 독점화를 바탕으로 국민경제를 더욱더 신자유주의적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리고 종속화는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극단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외국의 초국적 화폐자본가들은 종속된 해당국가를 농락하고 철저히 이용해먹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외국의 초국적 화폐자본에 종속된 국가일 경우 가장 철저히 화폐자본가들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사용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이 금융의 독점화와 종속화를 추구하는 이 신자유주의 세력에 마지막 장애가 있다. 그것은 현재 시중은행 10개중에서 4개가 공적자금 투입은행으로서 국유화되어 있는 것이다. 국유화되어 있는 은행으로서는 노골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노골적으로 기생적 화폐자본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 세력은 이 마지막 은행 4개를 빠른 시일 내에 민영화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럴 경우에만 실질적인 독점적 종속적 은행지배체제를 완성시키고,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여 우리의 기회주의적 지식인들은 외친다. ‘우선 기업구조 개혁 및 투자자의 신뢰도 제고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경제적 자원배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민영화방안부터 우선적으로 추진하며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물론 부실기업의 정리나 외국인 투자 등에 광범위하게 관련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및 협조적 노사관계 정립을 위한 과제를 중점 추진’24)하라.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은행 민영화를 통해 은행체제의 독점화․종속화를 완성시키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은행체제의 독점화와 종속화의 완성을 토대로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전면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엄호하기 위하여 노동법 개악과 노조의 개량화와 무력화를 추구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항들을 친자본적 지식인 무리들이 선동하며 미화하고 있다.


6) 결론: 노동계급의 정면 돌파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한국의 지식인 모리배들이 새로운 비전이라고 제시한 사항들을 검토하였다. 이들이 제시한 비전은 그들의 포장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의 낡은 비전, 노동계급에 대한 강화된 공격과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기만적 선전에 불과하다. 그들은 실제 자본의 이러한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에 앞서, 노동계급의 저항을 완화시키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여론조작을 수행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권력을 강화했으며 이제 그들의 공격이 전면화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금융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국민경제를 일본 혹은 아르헨티나와 같이 항상적인 위기와 불안정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경제를 위기에 봉착하게 함으로써 높은 이자를 얻고, 기업들을 헐값으로 인수하여 되팖으로서 이득을 챙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와 그에 따른 구조조정을 통해서 노동계급을 실업과 반실업으로 내몰며, 실질임금을 인하시키고 노동조건 악화시킬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2011년 비전의 실체는 다름 아닌 일본식이며, 아르헨티나식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기구, 특히 행정부의 장악과 법적 제도적 개편 그리고 노조 상층부의 개량화와 그를 통한 협조주의를 추구하려고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대응은 명확하다. 노동계급은 이들의 선전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은 노조 상층부의 개량화와 귀족화를 저지하는 동시에, 노동계급 전체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세력이 획책하는 국민경제의 파탄을 저지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분쇄해야 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폭압적 구조는 국가 권력의 장악과 법적 제도적 개편을 통해서 관철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노동계급의 투쟁은 항상적인 국가 권력과 법과 제도, 즉 사회구조 자체와 충돌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신자유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전면적 투쟁이 필요하다. 즉 앞으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에서는 더욱 더 자본주의체제의 변혁이라는 관점이 요구된다.



2. ‘비전 2011’ 사회복지부문 비판

1) ‘비전 2011’ 사회복지부문 개괄(pp.223~31)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생산적 복지제도 확립이 주요한 과제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하리라 전망하면서 비용부담의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복지는 근로유인을 강화하는 매개여야 하고, 사회복지 시스템이 효율화 될 필요가 있다고 서술한다. 그 외 사회보장제도간의 연계성 강화나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 강조, 고령화에 대비한 대책 마련 등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서술이기에 굳이 자세히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다.


2) 보고서 속의 신자유주의적 복지논리

(1) 복지는 근로유인을 저하시키는 매개라고 본다

보고서는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저생계비와 가구소득간의 격차를 보전하는 보충급여방식으로 지급되는 현실을 들어 근로유인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소득이 발생한 만큼 급여가 삭감되므로 노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서술한대로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일단, 현재의 수급자 선정과정을 보면 노동을 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 만약 노동능력이 있는데 저소득층이라면 조건부 수급자가 되어 이미 노동을 한다는 전제 하에 일부 소득을 보전받고 있는 형편이다.

즉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복지가 주어져서 근로유인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어 생활하기 힘든 경우거나 아예 노동능력이 없는 경우에 복지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복지과잉논리는 민중들의 열악한 삶의 조건을 외면하는 효과, 기본적인 복지의 삭감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2) 복지확대에 있어 본인부담의 인상을 당연한 전제로 두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정도에는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이 선진국 수준에 이를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전제로 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재정의 불안정한 현실에 대하여 보험료의 인상과 보험급여의 하향조정을 들고 있다.

이는 복지확대에 따르는 비용부담을 손쉽게 민중들에게 전가하는 조치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대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사회보험의 원리는 소득재분배와 사회적 위험에의 대처인 것이지, 기여수준에 따른 일정시기의 급여가 아니다. 그래서 보험은 저축과 다른 것이다. 따라서 소득재분배를 위해서는 보험료 부과에 있어 정확한 소득조사에 따른 철저한 누진적용을 해야하고, 사회적 위험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위험할 상황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장치의 마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하게 되는 위험에 대한 철저한 보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 보고서에 나온 처방대로라면 사회복지 재정의 확충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단지 재정의 불안정에 대하여 기여수준을 높이고 급여수준을 낮추는 그야말로 사회보험 원리에서 벗어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3) 유연화된 노동시장을 보완하는 사회안전망 차원으로 접근한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을 수반한다. 이 보고서는 아주 직접적으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데 있어서의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기제로서의 사회안전망을 이야기한다.

복지는 절벽 위로 사람들을 몰아넣은 뒤 떨어졌을 때 다치지 않게끔 하는 그물망이 아니라, 최대한 절벽 위까지 사람들이 가지 않게끔 만드는 매개여야 한다. 즉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해고가 된 뒤 실업급여를 주는 것보다 해고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3) 신자유주의적 복지논리를 타파하고 노동능력과 상관없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1)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곧 빈곤과 직결된다. 따라서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공적부조는 아주 기본적일 터이며, 노동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유연화된’ 일자리가 아닌 안정적인 일자리가 무엇보다 시급히 보장되어야 한다.


(2) 실질적인 기초생활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적부조로서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전의 생활보호제도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보호’가 아닌 ‘권리’의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전국민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는 복지의 물적 기반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생색을 내려는 정부의 노력은 눈물겹다. 까다로운 선정기준으로 인해 수급자로 선정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수급자가 되었더라도 추정소득과 부양비 간주제로 인해 실제 지급받는 돈은 생활이 불가능한 액수이다.

이데올로기적 우위성을 선점하면서 실제로는 빈 껍데기뿐인 기초생활보장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3) 사회보험 부담의 누진적용 강화 및 자본의 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신자유주의 복지논리는 복지의 공적책임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을 따르고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 사회보험에 대한 입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사회보험의 재정은 이미 고정시키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사회보험이 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재정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효율적 배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재정의 확보에 있다.

이 재정의 확보에 있어서도 가입자의 기여율을 높이는 안일한 대책이 아니라, 실제적 누진적용의 강화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소득을 자랑하는 자본가의 부담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고민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3. ‘비전 2011’ 보건의료부문 비판

1) ‘적정부담-적정급여 구조’는 정권과 자본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의약분업사태와 건강보험 재정파탄,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보건의료체계의 전망’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그 와중에 일부 시민단체와 기득권세력(의사, 정치권, 학계, 행정관료집단 등)은 이구동성으로 ‘적정부담-적정급여’를 전망으로 제시했다. 이같은 주장은 기존 건강보험이 ‘저부담-저급여’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문제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언뜻 보기에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논리이다. 그리고 금번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적정부담-적정급여 구조로 전환하여 우리 사회가 부담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함과 동시에 재정안정화를 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적정부담-적정급여’ 논리는 본질적으로 반민중적이다. 왜냐하면 ‘적정부담-적정급여’ 주장은 부담을 더 많이 하면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논리적 정합성에도 불구하고, 현행과 같은 파행적 보건의료체계의 근원을 ‘민중의 적정치 못한 부담’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점의 근원을 이렇게 정의하면서 민중건강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성과 이윤 추구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의료의 실상, 그리고 이로 인해 그 동안 민중이 감내해야만 했던 건강권의 박탈과 경제적 고통은 간과되거나 부차적인 것이 된다. 알고 보니 민중이 돈을 더 내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부담’이란 주장도 근거가 없는 정치적 공격이다. 외국에 비해 건강보험료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워낙 취약한 급여수준으로 인해 민중이 의료 이용을 할 때 본인부담금의 형태로 지출하는 비용은 건강보험료의 몇 곱절에 달한다. 그리고 외국의 경우에는 건강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정부와 기업이 내 주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그 동안 우리나라 민중은 저부담을 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부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적정부담-적정급여’는 민중에게 보다 많은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수사(rhetoric)에 불과한 것이다.


2) 보건의료부문의 ‘전방위적 개방화 추진’은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적 특성을 극대화한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에서 2011년 비전 달성을 위한 추진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는 ‘전방위적 개방화 추진’은 보건의료체계의 고질적 폐해를 악화시킨다. 보건의료부문이 개방화되면, 이윤창출을 추구하는 영리기업인 외국의 의료자본의 진입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투자는 철저하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될 것이다. 첨단 장비와 기술, 지식으로 포장된 선진의료는 일부 구매력있는 계층에게 고가의 비급여 항목을 통하여 이윤을 창출해 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정부의 “활성화” 결정과는 무관하게 이미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과 결부되어 우리 보건의료의 성격을 한층 상업적으로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의료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국한하고 있는 현행 의료법을 개정하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듯이 국내 보건의료기관의 영리기업화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초국적 제약자본과 각종 의료산업의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되어 나갈 것이다. 이와 같은 전망 속에서 우리는 의료체계의 개방화가 극도의 무정부성과 상업성을 특징으로 하는 우리 의료체계를 개선시킬 여지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3)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정부개입은 이미 더 이상 최소화될 수 없는 수준이다

또 보고서는 추진 원칙으로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개입을 최소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정부 개입의 과잉으로 설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가장 미약한 국가에 속한다.

의약분업이나 의료보험 통합이 사회적 갈등의 소재가 된 후, 이른바 “정책 실패”란 말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보건의료부문에서 정부의 개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정부 실패”로 나아가는 것은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의약분업이나 의료보험 통합으로 드러난 갈등은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근본적 성격을 더욱 명확히 보여 주고 강력한 이익집단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것에 불과하다. 백 보 양보하여 현상적으로 정책이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핵심으로 파악해야 할 것은, 보건의료의 사적, 상업적 성격을 그다지 훼손하지 않는 그런 정책조차도 실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기득권 세력과 기존 체계의 완강함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보건의료부문에서 정부 실패를 운위할 정도로 정부가 아직 별로 해본 일이 없다. 고가의료장비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나라, 의료기관 및 인력의 극심한 지역적 불균형 분포에 대해서 보건지소, 보건지소 외에는 거의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나라, 그나마 있던 지방공사의료원마저 수익성을 이유로 포기하려는 나라에서 정부의 실패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한 번 더 양보하여 현상적으로 정부가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 역시 정부 정책의 기획과 실행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할 것이지 정부의 최소한의 공적 기능마저도 포기하는 것으로 논리화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러 논자들과 본 보고서는, ‘정부 기능의 최소화’라는 한번도 검증되지 않은 처방을 위험하게도 제출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를 반길 사람이 누구이며, 더욱 고통받을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논리의 진의는 자명해질 뿐이다.


4) ‘지출 효율화’를 위한 정책은 그 목표를 결코 달성할 수 없다

이 보고서가 보건의료부문에 대하여 일반적인 신자유주의의 논리로써 정부 개입의 최소화, 지출 효율화를 제시한 것에 더해 단 한 가지 구체적으로 대안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지출 효율화를 위한 비책(?)이다. 보고서에서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지불제도의 개혁이 필요한데, 우선 포괄수가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는 현재까지의 논리와 모순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모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한 후 여기에서는 지불제도의 개혁이라는 엄청난 변화와 파장을 불러일으킬 정책적 변화를 권고하고 있어 모순적이다. 특히 총액계약제라는 지불제도는 일년 동안 소요될 의료비 수준을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거시경제적 차원에서 정부의 조정 역할의 획기적 확대를 요구하게 된다. 정부개입의 최소화와는 정면에서 배치된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보수지불제도의 개혁 주장은 암묵적으로 기존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를 경제적 유인구조를 통하여 개선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건의료부문에서는 경제적 유인구조의 철폐 자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수지불제도의 개혁 이전에 사적, 상업적 성격의 보건의료를 재생산하는 물적 토대인 의료제공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보수지불제도 개혁이 기대하는 미시적, 거시적 수준의 지출 효율화는 공상에 불과하다. 공공의료기관으로 분류되는 국립대병원이 의료를 통한 이윤 창출의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90% 이상의 의료기관이 수익 극대화를 자신의 비전(vision)으로 설정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수지불제도의 개혁만으로 지출효율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거시적 수준에서 사회적 필요에 따른 적정 수준의 의료비 지출을 기대하기 위해서, 또 미시적 수준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적정한 공급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의료체계의 공적 성격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내는 것 외에는 우리 보건의료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출구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진정으로 지출 효율화를 기대한다면 정부가 국공립 병원과 병상 수를 대폭 확충하고 의료제공체계를 확립하고, 의료인 양성 체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의사의 95% 이상이 전문의로 양성되고, 서울 시내 전체 개원의사의 28%가 강남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흡입수술과 라식수술과 피부미용으로 인한 국민의료비의 증가가 하늘 높은 줄을 모르는 상황이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측면이고 효율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는 관념적 공상이 아닌 현실에 대한 직시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주장한다. 보건의료부문의 유일한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은 ‘상업적 민간의료를 약화시키고 공공보건의료를 획기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고서는 그 어떠한 해결책도 공염불에 불과하다.



4. ‘비전 2011’ 노동부문 비판

▪이 보고서는 효율적인 노동시장의 구축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부 노동정책의 중립성․일관성 유지’, ‘노사정위원회의 운영 개선’, ‘직업훈련의 효과성․효율성 증진’ 등 4가지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개혁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불가피한 대세임을 직시하는 가운데 기술진보와 정보화, 그리고 세계화에 따른 경제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정책의 기본방향을 ‘시장친화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정책을 시장주의에 입각하여 재구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의 완화,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의 강화와 비정규직 노동의 양산․고착화를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정부 노동정책의 중립성․일관성 유지와 올바른 법 집행을 통해 분규 없는 타협적인 노사관계 확립에 주목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쟁의행위 및 단결권을 국민을 담보로 하는 집단이기주의로, 지식기반경제에서의 효율성의 논리를 들이대어 노동조합을,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을 저해시키는 비효율적인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핵심적인 노동정책의 하나인 사회적 합의주의의 강화를 통한 노동유연화정책은 노사정위원회 강화라는 것을 통해 여전히 드러나 있다. 노사정위원회의 기능을 노사정 합의기구가 아닌 협의기구로 전환하여 노사간 이해관계 대립이 첨예한 이슈는 공익위원안을 채택하고, 개별사업장 차원보다는 노동부문의 주요정책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여 참여위원들의 전문성을 제고함으로써 합리성과 효율성이 있는 해결방안을 도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 구체적 방향이다. 이는 전문성과 객관성을 근거로 친자본적이고 반노동적인 노동정책을 양산하고 노사정합의의 틀을 더욱 견고히 함으로써 법․제도적 국가장치에 노동자의 권리를 묶어두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직업훈련의 효과성․효율성 증진이라는 목적 아래 직업습득의 문제를 민간기관에 떠넘기고 정부는 직업훈련에 있어 인프라 구축지원 등 간접적인 지원방식만을 통해 민간의 역할이 중심이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직업훈련, 직업정보 제공, 직업상담, 교육훈련상담, 직업교육훈련, 근로자 파견 등을 일괄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종합인력개발회사의 도입을 그 구체적 상으로 하여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미명 아래 종합적이고 합법적인 형태의 근로자 파견을 확대하는 것으로써, 근본적으로 안정적인 노동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정성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에 다름 아니다.


▪물론 유연화의 근원적 목적은 해고의 유연성이 아니라 인력의 재배분, 즉, 재취업의 유연성에 있기 때문에 논의의 초점을 장기적 고용창출의 역량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재조정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비정규직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회안전망의 확대를 통하여 해결하고 규제를 통한 해결책보다는 시장에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모순된 주장 속에서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명제 아래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식의 기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이 글은 강동진(민의련), 김혜란, 성은미(이상 한노정연)의 공동논의를 통해 작성되었다.


1) 맑스, ꡔ자본론ꡕ, M658~M740.


2)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위원회 빈곤보고서팀, 「신자유주의, 빈곤 그리고 인권」, 2001.2.26.


3) 김진균, ꡔ한국의 사회현실과 학문의 과제ꡕ, 문화과학사, 1997.


4) 남구현, 「자본의 복지를 넘어, 민중의 복지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72호, 2001.12.


5) 이러한 정책과 제도들은 자본의 입장에서도 현존하는 자본에 대한 위협들을 완충시켜주는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제3세계에 강제하면서(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을 반드시 요구하는데, 이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한 노동자의 고통과 삶의 위기 속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져 나올 자본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완충하고 무마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미리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안전망’은 노동을 위한 안전망이 아니라 자본을 위한 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서구자본주의 국가는 전후 자본축적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요구에 따라 이러한 제도적 프로그램을 갖추어 왔기도 하다.


6) 안정된 자본축적 구조속에서 일정한 개량과 개혁이 가능했으며, 그러한 토대위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7)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적 고찰」, ꡔ사회진보연대ꡕ 2002년 1․2월호.


8) 민주노총은 사회임금을 “기업 또는 산업별 단위의 노사교섭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장임금과 법정외 복지인 기업단위 복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복지 제도와 법정 기업복지 등 사회적 기준에 의해 제공․분배되며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임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9) 민주노총, 「사회임금인상요구안」, 2002.


10) 김연명, ꡔ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보장전략ꡕ, 1998.


11) 조세개혁의 내용에 포함될 것으로 보이나, 요구안 확정에서부터 대자본 요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료 기업주 부담을 현행 50%에서 80%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러한 것이다.


12) 박성인, 「2001년을 보내며」,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72호, 2001.12.


* 이 글은 전국불안정철폐연대(준), 보건복지민중연대, 서울지역실업운동연대 등과 공동논의를 통해 작성된 글이다. 작성과정에서 공동주체인 다른 단체는 자료와 기본 논점을 제공해 주었다.


13) 정부 주도의 고용조정에서 감축된 인력은 공공부문(1998~2001년) 14만 3천여 명, 금융부문 4만 6천여 명(1998~1999년)에 달했으며, 이러한 정부 주도의 인원감축은 민간 대기업 고용조정으로 이어져 20%에서 40%의 인원감축으로 나타났다. 권혜자, 「김대중정부의 고용정책 평가」, ꡔ2001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대토론회 자료집ꡕ, 2001.10.24, p.97.


14) 한국통신, SK의 예.


15)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안정노동자에 대해 가지는 차별의식․배제의식은 자본의 일상적인 분할통제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정규직 조합원의 고용방어를 위해 이들 불안정노동자를 안전판으로 삼으려는 의식에 의해 한층 악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좌절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을 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는 의식, 이주 노동자를 한국 노동자의 고용기회를 빼앗는 존재로 보는 의식 등이 그것이다.


16) 송수진, 「이주노동자의 상태와 투쟁과제」, ꡔ민중의 복지, 노동권․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한마당 공동토론회 자료집ꡕ, 2001.10.26, p.87.


17) 엄태근, 「장애인노동자의 삶과 현실」, ꡔ민중의 복지, 노동권․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한마당 공동토론회 자료집ꡕ, 2001.10.26, p.63.


* 이 글은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나온 「2011 비전과 과제: 열린 세상, 유연한 경제」(이하 ‘비전 2011’)에 대한 비판 글이다. 애초 토론회 기획에 참여한 장애, 이주, 실업, 비정규직, 보건의료, 사회복지 단위들이 ‘비전 2011’을 각각 검토하여 비판글을 준비하기로 하였으나, 장애, 이주, 실업에 대한 부분은 ‘비전 2011’에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한노정연, 보건복지민중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준)이 주로 글을 작성하였다.


18) ‘비전 2011’, p.99.


19) ‘비전 2011’, pp.296~312.


20) ‘비전 2011’, p.102.


21) ‘비전 2011’, p.103.


22) ‘비전 2011’, pp.103~4.


23)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중앙집권적 체계로 인하여 토지 및 인력훈련 등에 관한 지역의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려운 여건에 있으므로 분권화가 필요하다.” ‘비전 2011’, p.109.


24) ‘비전 2011’, p.109. 강조는 저자들.


2002-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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